창세기(Genesis)
1.명 칭
창세기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첫 글자를 따서 (베레쉬트:tyviareB(bereshth) 처음에, 태초에) 라고 기록 되어있다. 옛날 유대인들은 세계창조의 책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창세기라는 명칭은 본서 2:4의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은 이러하니라 라는 말씀을 따라 지은 것이다.
2.내용과 주요 사상
그림설명 / 쿠르나 : 아라랏산이 있는 아르메니아의 산지고원에서 발원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큰 강은 쿠르나에서 합류하여 샷트-알-아랍강을 이루어 160km이상 흘러 내려가 페르시아 만으로 들어간다. 이 강의 하류는 이라크와 국경이 있으며 강가에 접한 이란의 아바단 주유소의 주변은 강폭이 대단히 넓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빛을 만드시고 물과 물을 나누시고 식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다섯째 날에 동물을 만드셨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합류기점인 쿠르나의 풍경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는 의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3.내용 분해
1. 천지 창조로 부터 아브라함까지(원 역사) 창1:1-11:32
1) 천지와 만물 및 인류의 창조 창1:1-2:25
2) 죄의 시작 창3:1-5:32
3) 홍수의 심판과 노아의 구원 창6:1-9:29
4)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계보 창10:1-11:32
2. 아브라함의 일생 창12:1-25:34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 창12:1-20
2) 아브라함과 롯의 거주지 분할 창13:1-14:24
3)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심 창15:1-17:27
4) 소돔의 멸망과 롯의 구원 창18:1-19:38
5) 이삭의 출생 창20:1-21:34
6)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험 창22:1-24
7) 이삭의 결혼과 두 아들 창23:1-25:34
3. 이삭과 야곱의 일생 창26:1-36:43
1) 이삭의 번영과 형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 창26:1-27:46
2) 야곱이 라반에게로 도망감 창28:1-30:43
3) 야곱이 하란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옴 창31:1-35:29
4) 에서의 계보 창36:1-43
4. 요셉의 일생 창37:1-50:26
1)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감 창37:1-36
2) 유다와 다말의 사건 창38:1-30
3)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됨 창39:1-41:57
4) 요셉이 형제들을 만남 창42:1-45:28
5)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함 창46:1-49:33
6) 요셉의 죽음 창50:1-26
그림설명 / 청년 모세의 새로운 생활의 장이 되었던 자연. 이곳에서의 그의 고독한 마음에는 천지창조의 현상과의 일체감이 형성되었다.
4.내용 (역사적 고증 ) 다까바시마오 저, 한영철 역
1.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2.성서의 모델은 이집트인가 메소포타미아인가?
3.<성서>의 첫 부분에 숨겨진 신비
4.하와(여자)는 아담(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는가?
5.바벨탑은 어디 있었는가?
6.점토판에 새겨진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원형.
7.<길가메슈 서사시>란?
8.노아가 도달한 아라랏산은 어디인가?
9.이스라엘 민족사의 시작
10.<족장설화>의 역사적 배경
11.할례는 언제 왜 시작했는가?
12.왜? 약속의 땅<가나안>으로 떠났는가?
13.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인가, 누이인가?
14.사라진 도시국가 우르는 어디 있었는가?
15.우르의 대 지하 고분군의 발견.
16.갈디아 우르는 어디인가?
17.악덕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8.악덕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실재 했는가?
19.고대 이스라엘인은 어떤 신을 섬겼는가?
1.이스라엘 민족의 기원
창세기가 전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 야훼가 땅과 하늘을 만들었을 때 땅과 들에는 아직 나무 한 포기 없고 풀도 없었다. 하나님은 땅에 인간의 죄악이 가득 찬 것을 알고 땅에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 하고 분히 여겨 땅에 홍수를 일으켜 세상의 생명이 있는 모든 피조물을 멸망시켰다. 홍수는 40일간 계속되었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에 탄 노아와 그 가족과 각종 동물의 한 쌍 씩만이 구원되어 아라랏산에 도착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을 축복했다. 이윽고 피조물들이 다시 번창하여 인류는 동쪽 슈메르 땅에 정주하게 되었다. 그 때 온 세상은 말이 같았다. 그들은 불손하게도 벽돌로 하늘에까지 닿는 바벨탑을 건설하려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제까지 모두 하나의 백성 하나의 말이었던 그들의 말을 혼란하게 하여 서로 말이 통 하지 않도록 하고, 그들을 그 땅에서 온 세상에 흩어지게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도시를 세우는 일을 중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 혼란이 일어나고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살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대아인이며 우르에 살았으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 우르를 떠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서 온 가족과 가산을 거느리고 이주하였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신앙과 그 명령에 대한 복종이 모범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계약에 의하여 그 자손이 번창하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아브라함과 늙은 아내 사라 사이에 오랜 기도로 장자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이 그 뒤를 계승한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고 에서와 야곱의 쌍둥이를 낳는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형 에서는 사냥을 잘해서 들에서 사는 청년이 되고 동생 야곱은 내성적이어서 집안에 만 묻혀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다. 이삭은 잡아오는 짐승의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 어느 날 동생 야곱은 계략을 꾸며서 형 에서에게서 장자 권을 빼앗았으며 부친 이삭의 분노를 사서 동쪽에 있는 친척 라반에게로 도망갔다. 야곱은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얻어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야곱은 또한 길르앗에서 흘러 요르단 강으로 들어가는 얍복강을 건너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laer:c]yI,Israel) (<하나님과 겨루다>의뜻) 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주어졌다. 민간 어원적 설명에 의하면 이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아브라함,(!h;r:b]a', Abraham) 열국의 아버지, 이삭qj;x]yI,Isaak) 웃음, 야곱(bqo[}y",Jacob,발뒤꿈치를 잡음, 거짓말쟁이)및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4대는 족장이라고 해서, 모두 유목민의 족장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이스라엘 12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2.성서의 모델은 이집트인가 메소포타미아인가?
창세기라는 이름은 70인역에서 나온 것이며, 창세기 2장4절의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창조하신) 순서는 위와 같다>는 구절에 근거한 것이다.
헤브라이어 원전의 명칭은 1장 1절의 <베레쉬트>(<태초에>라는 뜻)라는 어휘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 말 성서의 창세기라는 명칭은 한문 성서에 유래된 것이다. 현존하는 창세기는 적어도 시대를 달리하는 세 가지 주요 사료층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즉, 하나님의 이름이 야훼로 되어있는 야훼이스트 사료층. 하나님의 이름이 엘로힘으로 되어있는 엘로히스트 사료층. 하나님의 이름이 같은 엘로힘으로 되어 있는 제사적 사료층의 세 가지이다. 이것은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로니아 포로 후, 기원전 5 세기에 모세 5경 전체를 편찬한 제사학파에 의하여 기록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제사학파의 기록은 이스라엘의 전통을 정리하고 지키기 위해서 계보, 연대, 날짜, 통계 등의 객관적인 기록을 즐겨 쓰고 모든 사료를 편찬하는 기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문체는 무미건조하고 딱딱하나 깊은 신학적 통찰은 야훼이스트 사료와 엘로히스트 사료층이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성립 당초의 유대교단의 신앙이 숨겨 져 있다. 제사학파에 유래되는 사료층 안에는 상당히 오래된 사료도 들어있다. 내용은 만물의 기원과 인류의 역사(1장-11장), 족장들의 역사(12장 -50장)로 되어있다. 전자는 천지 창조, 인간의 타락, 카인과 아벨, 아담의 계보, 홍수와 노아의 자손, 바벨탑과 셈의 계보, 후자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전설, 야곱의 전설, 요셉의 전설 등으로 되어있다.
창세기 1장에서 2장4절 전반의 천지창조설은 제사적 사료층에 의한 것이며, 그 원형은 <위로는 하늘의 이름이 없고 아래로는 땅의 이름이 없을 때에>하는 구절로 시작되는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 <에누마. 에리슈 신화>였다고 생각된다. 창세기 3장에는 낙원의 상실이 얘기되어 있으며, 이것은 야훼이스트 사료층에 속하는 이야기이며, 메소포타미아의 전승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3장은 도덕적 종교적 통찰이 대단히 깊고 구약성서 중 에서도 가장 훌륭한 부분의 하나이며, 어느 구약성서학자는 창세기 중의 진주라고 극찬하였다. 불사와 금단의 열매에 관한 부분과 흡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점토판 문서가 이집트 제18 왕조의 이단 왕 아벤 호테프 4세(BC 14세기)가 아멘신의 수도 테베의 하류에 세운 새로운 수도 아케토아텐, 현지명 텔.엘-아마르나와 앗시리아 왕 앗슐바니팔이 니네베에 건설한 왕궁 부속의 도서관 자리에서 출토되었다. 이것은 <아다파전설이라고 불려진다. 그 대충 줄거리는 지혜의 신 에아가 자기 종을 삼기 위해서 아다파라는 원인을 인간의 모습을 닮게 만들었다. 에아에 의하여 초인간적인 지혜를 갖게 된 이 아다파가 에아의 질투 때문에 영생의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 이다. 어떤 학자는 이 이야기가 3장의 원형이라고 하고 야훼 이스트가 그것을 순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소재는 메소포타미아로 소급된다 할지라도 제한된 적은 사료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3.<성서>의 첫 부분에 숨겨진 신비
성서중에는 <주해자의 십자가>라고 일러지는 난해한 부분이 적지 않다. 성서의 첫 부분에 있는 창세기 1장 13절은 그 첫 번째 것이다. 창세기 1-2장은 천지 만물의 창조의기사이며, 1장1절- 2장 4절상과 2장 4절하-2장25절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그 어휘, 문장, 사상 등으로 보아 전자는 제사적 사료층이고 후자는 야훼이스트 사료층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첫머리의 1장1절과 2,3절의 관계에 관해서 최근에 많은 연구가 있다. 우선 여기서 원문을 보자
(1)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 하였다. (2)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 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나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3)하나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여기서 제1절은 표제적 성격을 갖는 독립구절이라고 보는 전통적 해석이 일반적이고, 제2절에서 창조의 설명이 전개되고 창조의 소재인<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은 깊은 물>이 어디서 왔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제사적 사료층은 창조를 무와 유의 대립으로서가 아니라 혼돈과 질서의 대립에서 생각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떤 해석자는 제1절을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하는 독립 구절이 아니라, 3절의 <하나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하는 구절의 종속절이라고 해석한다. 2절은 상황 설명의 도입 구절, 3절은 주 구절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성은 2장4절하-6절(야훼이스트 사료층)의 <야훼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였다. 땅에는 아직 아무 나무도 없었고 풀도 돋아나지 않았다. 야훼 하나님께서 아직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 온 땅을 적시었다>는 구절과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 <에누마. 에리슈의 첫머리의 한 구절 <위에는 하늘의 이름 이 없고 아래로는 땅의 이름이 아직 없었을 때.>하는 것과 같이 이 부분도 <야훼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에, 땅에는 아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구약성서의 창조 설화에는 내용적으로 바빌로니아 신화의 다신교적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 1장1절의 어순은 헤브라이어 원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숫자는 번역의 순서이다.
1 8 2 4 3 5
태초에(tyviare). 창조하셨다(ar;B;). 하나님(이)(!yhil~a>). 을 . 하늘(!yIm'v;) . 그리고
7 6
(tae)을 ($r,a,)
<하나님>은 명사. 남성. 복수형이며 의미가 단수인 것을 <경외의 복수>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경우 짝을 만들어 주리라, 그래서 야훼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고는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든 다음, 아담에게 데려 오자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그래서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 아담 내외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창세기 2장7-25절) 이것은 야훼이스트 사료층의 창세기의 일부이다. 구약성서는 여러 시대를 통해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왔다.
유럽 중세기에는 <하와가 아담의 왼쪽 갈빗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보다 못하다>고 하는 속된 생각이 있었다.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성향을 갖는 하와는 남자보다 짐승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보다. 창세기에 의하면 낙원에서 사는 아담과 하와는 알몸이었을 것이다. 알몸의 남녀(이것은 왼쪽에 아담이, 오른 쪽에 하와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사이에 뱀이 있는 나무가 서 있는(고대 그리스나 서아시아에서는 유혹을 상징했다) 그림이 3세기 초에 나타났다. 그것은 1920년에 우연히 발견된 투라. 유로포스 (북시리아의 안타오키아와 세르키아 사이)의 <그리스도교도의 집>의 세례실의 벽화 <아담과 하와>의 낙원 상실의 서막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로마의 라테라노 미술관 소장의 3-4세기의 석관 부조의 <하와의 창조> 장면의 묘사에도 보인다. 여기서는 아담이 누워있고 그 발치에 하와가 서 있다. <뱀의 유혹>이 미술의 테마로서 중세를 통해서 취급되었는데 <하와의 창조>는 9세기경부터 다시 취급되고, 13세기부터는 신학적 의의 때문에 아담의 창조 이상으로 자주 취급되었다. 그럼 중세기의 속된 생각처럼 하와는 과연 아담의 왼쪽 갈빗대로 만들어진 것일까. 성서는 하와가 아담의 어느 쪽 갈빗대로 만들어졌다는 언급은 없다. 아담이 깊이 잠든 사이에 야훼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 만들었다고만 했다. 하와는 아담의 심장과 평행으로 있는 갈빗대로 만든 것이므로 하와와 아담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동등하며 사회적으로 평등하다. 시각 예술의 면에서는 아담의 오른 쪽 갈빗대에서 하와가 만들어지는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서양 미술에 있어서 오른쪽과 왼쪽은 무엇을 의미할까.
5.바벨탑은 어디 있었는가?
창세기 11장 1-9절은 바벨탑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야훼께서 땅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 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에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 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그리하여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lb,B;,Babel,하나님의 문, 혼란이라는 뜻)이라고 불렀다. 탑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바빌론 제1왕조(BC 19-16세기) 시대에 바빌론 주변에 세워진 인공의 거대한 산, 즉 지그라드의 하나이다. 그 정상에는 제사 때에 신이 하늘에서 강림했다고 생각되었다. 헤브라이어의 바벨은 바빌리의 변음이며 바빌리안 앗카도어로 <신의 문>이라는 뜻이며 원래는 도시이름이었던 것이 뒤에 그리스어로 바뷸론이라고 불리게 되고, 다시 그 지방 일대가 바빌로니아라고 부르게 됐다. 이층 탑은 메소포타미아 제 도시의 주요 신전의 중앙에 세워지고 파라밋 형태를 이루고 큰 토대 위에 보통은 7층으로 쌓아올린 햇빛에 말린 벽돌로 되어있으며 각층 은 경사지게 만들어진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최상층에는 신전이 설치 되어있고 거기서 희생을 드리는 식이 거행된다.
고대의 우르(현대 명:텔. 엘. 무카이아르)나둘. 운탄(현대 명:초가. 잔빌)의 층탑은 특히 유명하다. 구약성서의 바벨탑은 바빌론의 유적 발굴조사의 결과 바빌론의 도성 마르둑의 신전 에사길라(<머리를 높이 든 자의 집>이라는 뜻)의 북방 에테메난키(<하늘과 땅의 토대의 집>이라는 뜻)라고 하는 층탑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이것은 슈메르인에 의해서 기공된 것이었으나 셈족의 침입으로 정치적 변동이 일어나 준공하지 못하고 그 미완성의 층탑은 오랫동안 고대 세계의 수수께끼의 하나였다.
그 후 재건이 시도됐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하고 겨우 기원전 6세기에 느브갓네살 2세(BC 604-562)에 의하여 수축되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정원이나 성벽도 이때 축조된 것이라고 한다. 바벨탑 설화는 야훼이스트 사료층에 속하며 단순히 지명의 유래를 설명하는 민간 어원이나 전설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이 인간 상호간의 몰이해를 빚어내어 탑 건축이 중단된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의도는 바빌론의 탑의 기원에 빙자해서 홍수 후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에게 도전하려고 하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엡스키(1821-1881)는 <카라마조프의 형제>(1867-1880)에서 인간의 가공한 바벨탑의 건축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6.점토판에 새겨진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원형
1872년 가을, 당시 런던의 대영박물관의 유물수리인으로 있던 죠지 스미드(1840-1876)는 1853년에 모슬 주재 영국 부영사의 동생 H.랫삼(1826-1910)이 니느웨의 앗슐. 바니발 왕(BC668-626)의 왕궁 부속 도서관 자리에서 출토한 점토판 문서들을 정리하다가, 그 중에서 한 단편의 기록이 창세기 6장에서 9장에 기록돼있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J사료층, P사료층에 들어 있는 것이며 중복과 모순이 있다)와 흡수한 것을 발견하고, 동년 12월에 새로 창설된 <성서 고고학회>에서 그것을 보고했다. 이 보고는 각계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대단한 평판을 받았다. 이것이 <길가메슈 서사시>의 본래의 부분인지 여부는 별 문제로 치고, 이것이 후일에 <길가메슈 서사시>의 제11 서판의 일부라는 것이 알려지고, <길가메슈 서사시>중의 최대의 에피소드로서 각광을 받은 서판의 발견이 되었다.
죠지. 스미드는 대영박물관에서 <앗사리아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H.C.롤링손이 간행한 착 쐐기꼴 글자 도판의 제작 등을 도우면서 당시 알려져 있던 쇄기꼴 글자의 구조를 알게 되고 점토판 위에 기록된 고대문학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는 그 때의 광경을 본 4년 후 인 1876년에 출판한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단편들(랏삼이 니느웨에서 발굴한 점토판 문서의 일부)의 조사를 시작한지 얼마 후에 나는 반 조각이 된 묘한 서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처음에는 분명히 여섯 난으로 된 것이었다. 그 셋째 난을 보자 나는 배가 니시르 산에 닿았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비둘기를 날려 보낸 일, 그것이 내려앉을 곳이 없어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나는 곧 이것이 <대홍수>의 갈디아(지리적으로는 바빌로니아와 같다)판의 일부라는 것을 알았다." 죠지. 스미드는 신문사 등의 후원으로 다음 해 1873년 초에 현재 니느웨로 갈 수 있게 되어 1873년과 74년의 2회에 걸쳐서 발굴 조사를 지휘하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또다시 홍수 설화의 일부가 되는 대량의 점토판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먼저 발견한 서판이 12매의 서판으로 된 대 문학작품의 일부라는 것도 알았다. 이것은 어느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서사시라는 것을 알았으나 세 개의 쐐기꼴 글자로 기록된 주인공의 이름을 쉽게 해독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창세기 10장8절에 보이는 영웅 니므롯이다.
7.<길가메슈 서사시>란?
엔키두는 우르크로 내려와서 그곳 생활양식을 익힌다. 양자는 우르크시의 성문에서 격투를 한다. 서로 상대의 힘을 알고 우정을 맺어 그 후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힘을 합해서 모험을 하게 된다. 길가메슈는 엔키두에게 측백나무 숲으로 원정할 계획을 의논한다. 결국 두 사람은 우르크의 장로들과 의논해서 여행의 수호신과 태양신 샤마슈의 허락을 받고 측백나무 숲으로 원정을 떠난다. 두 사람은 측백나무 숲의 산지기인 괴물 프와와를 죽이고 측백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돌아온다. 사랑과 향락의 여신 이슈탈은 개선하는 길가메슈를 발견하고 이 세상의 부를 약속하고 구혼한다. 여신의 불륜을 알고 있는 길가메슈는 이것을 거절한다. 그래서 분노한 여신 이슈탈의 저주로 하늘의 신 아누로부터 하늘소가 파견되지만 두 사람은 이것을 격퇴하고 우르크로 돌아온다.
다음에 여신 이슈탈은 친구 엔키두를 12일간의 병고로 눕게 하고 저 세상으로 빼앗아 가버린다. 비탄에 젖은 길가메슈는 처음으로 이 세상이 끝이 있다는 것과 인생의 공허함을 깨닫고 불사의 약초를 찾아 방랑의 여행을 떠난다. 그는 산과 들을 넘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 드디어 삶과 죽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인간의 조상 우도나피슈팀이 살고 있는 행복의 섬을 찾아가서 그에게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묻는다. 그는 신이 내린 대홍수의 위험에서 자기가 어떻게 피했는지를 말한다. 신 에아의 말씀으로 자기는 네모진 배를 만들고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을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길가메슈는 찾고 있던 해답을 얻지 못하고 낙심해서 돌아오려고 하자, 우도나피슈팀은 그의 아내의 권고에 따라 바다 밑에 있는 불로장생의 약초가 있는 곳을 가르쳐 준다. 길가메슈는 곧 바다 밑으로 가서 그 약초를 얻고 기쁘게 그것을 우르크로 가지고 온다. 도중에 차고 맑은 샘을 발견하고 거기서 목욕하는 사이에 이 약초의 향기에 끌려 온 뱀이 물속에서 나와 이 약초를 훔쳐 달아난다. 길가메슈는 실망에 빠져 허무하게 우르크로 돌아간다. 본문에는 이상의 줄거리에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첨가 되어 있다.
우도나피슈팀의 설화는 창세기 6장-9장에 기록되어 있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흡사하다. 노아가 물이 빠졌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 날려 보낸 새가 까마귀와 비둘기인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주의 깊게 읽어보면 양자는 전혀 다르다. <길가메슈 서사시>에서는 대 홍수가 일어난 것은 신들이 서로 싸웠기 때문인 것으로 되어 있는데,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인간의 죄가 만연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여 내린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인의 대 홍수 이야기를 그 신앙에 따라 고쳐 쓴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도나피슈팀은 신 에아가 특별히 불쌍히 여겨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대 홍수를 면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방주를 타고 구원된 것으로 되어 있다. 노아의 홍수 설화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노아의 홍수 설화의 원형은<길가메슈 서사시>중의 우도나피슈팀 설화로 소급되고, 다시 이 설화의 원형은 슈메르의 서사시들 중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파손이 많이 된 점토판 문서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인간의 창조와 왕국의 기원과 홍수 설화와 슈르파크와이며 경건한 주스트라가 배를 타고 이 난을 면한 이야기이다.
전승은 주스트라->아도나피슈팀->노아로 이동된 것으로 생각된다.
<길가메슈 서사시>는 여러 민족 사이에 널리 애호되고 많은 조각과 그림 등의 테마가 되었으며, 또한 서사시 전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이른바 동양적 허무주의는 구약성서의 전도서로 계승되어 있다. 이 서사시는 바빌로니아의 종교와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가 될 뿐 아니라 시리아, 팔레스타인에 그리고 소아시아를 통해 서 그리스에도 전해진 문화 교섭의 역사를 해명하는데 도 중요한 연구 사료가 된다.
8.노아가 도달한 아라랏산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께서 노아와 배에 있던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들의 생각이 나셔서 바람을 일으키시니 물에 빠지기 시작 하였다. 땅 밑 큰 물줄기와 하늘 구멍이 막혀 하늘에서 내리던 비가 멎었다. 그리하여 땅에서 물이 줄어들기 시작한지 150일이 되던 날인 7월17일 배는 마침내 아라랏산 등마루에 머물렀다.> (창세기8장1-4절) 창세기 6장에서 9장에 걸친 노아의 홍수 설화는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되어 있지 않다. 방주에 실려진 짐승들 이야기도 홍수의 원인이나 기간 등도 오랜 야훼이스트 사료층과 새로운 제사적 사료층이 섞여있으며 중복과 모순이 있다. 이것은 창세기의 편찬자가 천지 창조 설화와 같이 오래된 전승을 버리지 않고 남겼기 때문이다. 구약성서가 전해진 뒤로 많은 사람들이 홍수 설화를 읽고 노아의 방주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물론이다.
이 설화를 테마로 그린 화가도 많고 교회당의 장식으로 노아의 방주와 비둘기를 조각한 조각품도 많다. 아라랏산과 노아의 방주에 관해서는 저 유명한 마르코 폴로도 언급 한 것처럼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문제 삼아 왔다. 노아의 방주가 최후로 도착했다고 하는 아라랏산은 어디 있는 산일까. 이곳은 흑해와 카스피해의 두 바다 사이에 아르메니아지방이라고 하는 고원지대가 있다. 높은 봉우리가 많고, 이것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이 되어 이라크 평야를 적셔주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아르메니아 지방에 있는 어느 높은 산이 아라랏산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지방은 소련, 터키, 이란의 세 나라로 갈라져 있는데, 아라랏산은 이 3국 국경에 솟아있는 화산이며 터키령에 있다. 그 최고봉은 5,156미터나 된다. 아르메니아 지방의 그리스도교도들은 옛날부터 이 산마루에 노아의 방주가 남아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 산에는 아무도 오를 수 없는 신성한 산으로 여기고 있다.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전설의 산 아라랏에 오르려고 했다. 1929년에는 도이치 의학자이며 등산가인 파로트가 이 아라랏산에 올라가서 산마루에서 노아의 방주가 앉을만한 넓은 대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방주를 실제로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창세기의 원문에는 <아라랏산들>이라고 되어 있으며 한 봉우리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어느 지대 전체를 의미하는 것 같이 생각된다. 헤브라이어의 아라랏은 앗카도어의 우랄루두(높은 지방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반 호수지방의 고원지대를 가리켜 이름 지어진 것이며, 기원전 8세기경에 그 땅에는 우랄루두 왕국이 번영하고 있었다. 이것은 창세기의 야훼이스트 사료층이 기록 된 시대와 비슷하다. 오늘날 우리는 니실산이나 아라랏산이나 방주의 도착지점을 입증할 수는 없다. 그리고 슈메르의 홍수설화에는 산 얘기가 없다. <홍수층>쪽이 확실한 고고학적 사료의 증거가 되고 있다.
9.이스라엘 민족사의 시작
헬레니즘과 함께 유럽의 정신적 전통을 이루고 있는 헤브라이즘의 담당자였던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에 유례없는 기구한 운명을 짊어지고 오늘에 이른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원 20세기의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는 깊은 안개 속에 싸여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실증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근년의 여러 가지 연구는 이에 관해서 고고학의 여러 가지 성과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특히 <마리문서>(BC 18세기), <누즈문서> (BC 15세기), <아라락 문서>(BC 15세기), <우가리트문서.(BC 15-14세기),<보하스. 쿄이문서>(BC 14세기)등이 그것이다.
창세기 12장 이하에 전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즉 아브라함(12장-25장), 이삭(25장-26장),야곱(25-36장)등에 관한 족장 설화는 오랫동안에 걸쳐 구전되어 온 근거의 전승들이며, 이 전승들이 야훼이스트의 손으로 새로운 문맥과 수식이 가해지는 것은 기원전 10세기로 소급된다. 그리고 이것들을 현존하는 모양으로 완성한 것은 바빌로니아 포로시대(BC 6세기)나 그 이후라고 생각되며 제사적 사료층의 기록자와 그 밖의 약간의 가필자들이라고 생각된다. 족장 설화는 19세기 말경까지는 후대의 창작의 반영이라고 했으며, 아브라함 이하의 족장들은 신화적인 인물로 여겼으며, 그리고 수수께끼에 싸인 부족의 조상이라고 여겨져 그 사실성이 부정되는 일이 많았다.
그 후 오리엔트 고고학의 진전에 따라, 특히 1925년 이후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여 그 내용이 일변하였다. 즉 족장 설화와 메소포타미아와의 지리적 역사적 관계가, 특히 족장 설화의 역사적 배경이 기원전 2천 년대 초기에서 중엽에 걸쳐서 메소포타미아 북부지방의 생활관습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고 전승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사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족장 설화는 출토된 여러 사료와의 관련으로 역사적인 테두리 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족장들의 연대에 관해서 1950년 이후의 주요 견해들을 구별하면, 기원전 2천 년대 전반기로 치는 설과 기원전 2천 년대 중엽 이후의 아람인의 이주와 결부시키는 설로 나뉘고, 양자는 학계의 쟁점이 되어 있다. 전자는 <마리문서>나 <누즈문서>등을 근거로 해서 족장들의 연대를 기원전 2천 년대 전반의 어느 때로 잡는가는 학자에 따라서 다르다. 이와 반대로 족장들의 연대를 기원전 2천 년대 중엽이후로 주장하는 학자로는 미국의 C.H.골든 등이 있다. 그는 <누즈문서>와 창세기에 전해지고 있는 족장시대의 관습이 평행되고 있는 예를 들어서, 그리고 <우가리트 문서>를 근거로 해서 족장들의 연대를 아마르나=미케나이 시대로 잡는다.
10.<족장설화>의 역사적 배경
족장 설화는 전승되는 소재들을 제공한 시대와 그것이 전승된 시대 및 그것들이 문장으로 기록되고 편찬된 시대를 포함한 이른바 세 가지 성격의 시대의 기록이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 이하의 족장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 난 선조들이다. 즉 구약성서에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 난 선조들이다.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 자체가 족장들의 생애로 묘사되어 있으며, 이 족장 설화들의 핵심에 이스라엘 민족의 여명기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로 들어간 역사적 개요는 다음과 같다.
기원전 2천 년대 초기부터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유목민 집단이 남러시아의 습지대에서 파상적으로 남하하여 서아시아로 침입하고, 그 일족은 아나트리이와 고원지대 하티를 정복하여 힛타이트 왕국(B.C. 1700경-1200경)을 세우고, 아시아의 원주민 속에서는 이란 서쪽 경계의 산간에 있던 카시드인이 바빌로니아를 검거하여 그 땅을 약500년 간 지배했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이북지방에 있던 원주민 후르리인은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을 개시하여 인도. 이란어파의 일부인 미탄니인은 유프라테스 강 중류 지역에 미탄니 왕국(BC 15-14세기 중엽)을 세웠다. 미탄니인이 기마술이 능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오리엔트의 대부분은 민족 대 이동의 물결에 휩쓸려 불안 동요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이 불안의 동요 가운데 소아시아지방이나 메소포타미아지방을 거쳐 시리아, 팔레스타인지방에서 다시 남하해서 나일강의 델타 지대까지 침입하여 그 땅의 아바리스를 근거지로 삼아 기원전 18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걸쳐서 1세기 남짓한 사이에 이집트의 태반을 지배한 것이 <힉소스>라고 하는 혼합 민족 집단이었다. 힉소스의 민족 구성은 분명하지 않으나 그들은 순수한 단일민족이 아니고 아시아의 후르리인을 근간으로 하고 거기에 옛 부터 고대 오리엔트지방에 세력을 뻗치고 있던 셈어족 등을 포함하는 혼성 민족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후르리인과 셈어족이 기원전 17세기 전후의 오리엔트 세계에 있어서 큰 세력을 차지하고 그 땅을 활동 범위로 했던 것이다. 그 후 힉소스가 침입해서 1세기 후인 기원전 16세기 전반에는 이집트에서는 힉소스의 지배에 반항하는 이집트인의 세력이 발흥하고, 테베 출신의 아하메스가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를 점령하고, 뒤에는 북진하여 페니키아 연안까지 빼앗아 힉소스 세력을 완전히 타파했다.
이렇게 해서 아하메스1세(B.C.1567-47)는 이집트를 재통일하고 제18왕조(B.C. 1567-1320)의 기틀을 잡았다. 이 해로부터 이집트 역사 뿐 아니라 오리엔트 전체 역사의 새로운 시대로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는 아시아의 분열된 여러 나라 사이에서 신 왕국 시대로 들어가서 이른바 제국주의적 침략을 해서 세계 제국을 건설하고, 약 200년 간 여러 나라의 우위에 섰다. 이 사이에 시리아. 팔레스타인지방은 이집트 신 왕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11.할례는 언제 왜 시작 했는가?
창세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이름은 처음에 아브람이었으나, 후에 하나님 야훼는 아브람과의 계약을 맺고 아브람(!r:b]a' ,Abram ,큰 아버지)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아브라함(!h;r:b]a' Abraham,열국의 아버지)이라고 개명하였다. 하나님과 노아(h[;nO, Noah, 위로)와의 계약의 증표는 무지개(tv,q ,,qesheth) ,[그] i'ris(iris) 였고, 아브람과의 증표는 할례[히] otloWm(muloth), pl. [그] peritomh(peritome)였다. 할례란 남자 생식기의 포피를 자르는 의식이며, 할례를 행하는 풍습은 전부터 셈족이나 함족(이집트인) 사이에 보급되어 있었고 성인의 표시로 행해지고 있었으며, 고대 이스라엘인은 여기에 전혀 새로운 의의를 발견했다. 남자가 출생하면 8일 째 날에 할례를 베풀고 명명하는 관습이 그것이고, 지금도 이것은 엄수되고 있다. 창세기 17장에서는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계약의 증표를 의미하고 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언어학적으로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개명은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의 갱신을 뜻하고, 또한 인간의 생애의 중요한 계기를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사명의 갱신도 뜻하는 것이다. 창세기 12장 1-4절에 기록되어 있는 야훼가 아브람에게 내린 축복과 저주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을 말하는 족장 설화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175세의 천수를 누리고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의 손으로 아내 사라가 묻힌 막벨라(hl;Pek]m', Machpelah),이중의 동혈(洞穴))동굴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아브라함 부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서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의 마음속에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계속 살아있다.
12.왜, 약속의 땅<가나안>으로 떠났는가?
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셈으로부터 계산해서 10대째가 되며 데라의 아들이고, 나홀과 하란 두 동생이 있었다. 가나안 땅으로 이사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으나, 메소포타미아 서북부의 도시 하란까지 가서 그곳에 주저앉게 되었다. 아버지 데라는 여기서 250세의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yr:c;, Sarai) 영귀, 헌화, 왕비)는 창세기 20장 12절(E사료층)에 의하면 아브람은 이복 누이동생이지만 그 출생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창세기 11장 27-30절의 기록은 혈통이 가까운 부족 사이의 이합집산을 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래의 이름은 아마 원래는 부족의 이름이었던 것 같으나 확증은 없다. 아내 사래는 남편 아브라함과 함께 조카 롯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과 재산과 물건들을 가지고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향해서 출발했다. 그때 아브라함은 75세였다고 한다. 아브람 일족이 메소포타미아의 변경인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향한 것은 그곳에서 안주할 땅을 찾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그들 일족은 가나안 땅에 도착하고 야훼를 위해서 제단을 쌓지만, 다시 남하하여 네게브 지방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이 지방에 기근이 들어 아브람은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 이집트로 갔다. 아브람은 이집트에 들어가면서 아내 사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정말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하오.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당신의 남편이라고 해서 나를 죽이고 당신만 살려 둘 것이오, 그러니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 덕으로 죽음을 면하고 대접도 받을 것이오"(창세기 12장 11-13절). 과연 그들이 이집트로 들어가자 이집트인들은 사래의 미모에 매혹 되어 버린다. 유대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아담의 아내 하와를 빼놓고 사래는 세계 제일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이집트 왕의 신하들도 절세미인 사래를 보고 매혹되어 그녀를 왕에게 칭찬했기 때문에 그녀는 왕궁으로 불려 들어갔다.
사래가 왕궁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일체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아내 사래는 무사히 남편 아브람에게 돌아왔다. 이런 점에서,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양 문명은 종래 주장된 것처럼 두개의 다른 문명이 아니라 동부 지중해라고 하는 공통된 지반에 세워진 유사한 구축물이라는 것을 원 사료를 구사해서 강조하는 C.H. 골든은 족장 설화와 우가리트의 <케레트 서사시>와 호메로스의 <일리엇>의 세 가지가 모두 빼앗긴 아내를 다시 찾는 모티브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13.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인가. 누이인가?
아브람은 이렇게 이집트 왕에게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였는데, 이와 흡사한 이야기가 창세기 20장 1-18절(E사료층)과 26장 6-11절(J사료층)에도 나온다. 전자에서 아브라함이 그랄에서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으며, 후자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마찬가지로 그랄에서 아내 리브가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고 있다.
1925년에서 31년에 걸쳐 언어학자인 동시에 고고학자로 유명한 E.키에라(1885-1933)가 지휘한 바그다드 아메리카, 오리엔트 연구소 및 하버드 대학의 학술 조사대에 의하여 티그리스강 동부의 구릉지대의 고도 누즈(바그다드 북쪽 약 240km )의 발굴 조사가 행하여지고, 그 결과 그 땅에서 쐐기꼴 글자로 기록된 수천의 점토판 문서들이 출토되었다.
그 후 이들 점토판 문서들의 해독과 연구에 의하여 족장설화의 사회적 배경의 일단이 밝혀졌다. 이 문서들은 후르리인의 서기에 의하여 바빌로니아어로 쓰여 진 것이며, 그중에는 본래의 후르리어도 자주 사용되어 있다. 문서들의 대부분은 기원전 15세기나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보다 조금 뒤에 쓰여 진 것이며, 후르리인의 법률 문서가 많이 들어있으며, 그 내용은 족장 설화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누즈는 고앗카드시대에도 가슬이라고 해서 작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으나, 기원전 2천 년대 중엽에는 후르리인이 살았고 그 지방의 중심지였다. 후르리어는 카프카스어에 속하며 인종적으로는 아르메니노이드계라고 한다. 후르리인은 이미 기원전 3천 년대 후반의 기록에 나오며, 그리고 우르 제3왕조 시대의 기록에도 나온다. 그들은 기원전 3천 년대 후반에 카프카스산맥의 남쪽, 즉 아르메니아지방의 반 호수 부근에서 티그리스 강 동쪽으로 침입해서 점점 서쪽 시리아지방으로 이동하고, 다시 남하하여 가나안 지방으로도 진출하여 기원전 2천 년대를 통해서 셈어족과 함께 고대 오리엔트에서 가장 세력을 떨쳤다. 그들의 문화나 관습의 대부분은 아무르인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은 독자의 왕국을 세우지 않았으나 힉소스 이후 가나안에 새로운 문화요소를 만들어내고 흑적 이색의 선상 문양으로 나타낸 물새나 태양의 장식이 있는 토기에 의하여 그들의 존재가 입증되었다. 그들은 구약성서에는 <호리족>(창세기 14장 6절)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탄니 왕국의 지배 아래 있던 후르리인의 법관습에 의하면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누이가 되어 이중의 연분이 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이중의 연분에 의하여 아내의 지위가 사회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이중의 연분은 혈연관계가 있을 경우에 더욱 많았으며 좋은 집안의 여자라면 같은 취급을 받았다.
따라서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아내를 누이라고 한 것은 거짓이 아니라 아내가 좋은 집안의 여자이고 그 지위가 사회적으로도 존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4.사라진 도시국가 우르는 어디 있었는가?
바그다드와 페르시아 만 중간, 유프라테스강에서 서쪽으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텔.엘=무카얄(역청이라는 뜻)이라고 하는 언덕이 있다. 1854년에 J.E.테일러에 의하여 이 이름 없는 황폐한 언덕이 구약성서가 말하는 아브라함의 고향 갈디아 사람들의 우르라는 것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우르의 유적은 1918년에 C.톰슨이나 H.R.H.홀 등에 의하여 소규모의 발굴 조사가 행하여지고, 그 후 1922년에서 34년 걸쳐 대영박물관과 펜실바니아 대학의 공동 출자로 L.울리 경의 지휘 아래 발굴조사가 행하여지고 그 성과가 많았다. 그 조사에 의하여 그곳이 슈메르의 도시 중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도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조사에 의하면, 우르의 도시 영역은 길이 1.2킬로 미터, 너비가 800미터나 되는 다수 불규칙한 타원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벽에는 방어 시설이 설치되고 드문드문 성문이 있었다. 우르에는 우바이드 기(B.C.4천 년대)이후부터 사람이 거주하고 문화가 번창했던 흔적이 보인다. 채문 토기,원통 도장, 진흙 토기(terracatta)등은 선사시대의 풍요했던 생활을 엿보게 한다.
그 후에 우르는 대 홍수에 의하여 유실되어 버렸다. 이 대 홍수는 두께가 2.4미터나 되는 점토층이 덮여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홍수는 바빌로니아 평원 일대를 덮친 격심한 것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홍수 전설을 낳았고 창세기의 노아의 홍수 설화는 그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이다.
우르 제1왕조(BC 26세기)는 슈메르의 패권을 잡고 있었으며<우르 왕릉군>은 당시의 높은 물질문화의 번영을 말해주고 있다. 그 후 같은 슈메르의 도시국가 라가슈에게 패배해서 당분간 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가 다시 우르 제3왕조(BC 21세기)가 번영을 되찾아 전 바빌로니아를 지배하여, 그 문화를 엘람, 시리아에 전하고 모든 왕은 성문 법전<우로난므 법전><슈메르 법>등)을 제정했다. 이어서 바벨로니아 전역은 바빌론 제1왕조(BC 19세기-16세기)아래 통일되는데 우르는 자주 슈메르인의 반란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 후 신바빌로니아 시대에 우르는 재건되고 지그라드의 복구 공사등도 있었으나 페르시아 시대에 다시 쇠퇴하여 기원전 4세기경에는 폐허가 되고 만다.
우르 제1왕조 및 제3왕조의 수도였던 우르는 이 도시의 수호신인 달의 신 난나르의 대신전을 중심으로 한 神域과 이 신역을 포함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그리고 그 성벽 바깥쪽에 펼쳐지는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는 우바이드기의 취락의 유적 위에 몇 번이나 다시 세워진 작은 언덕 위의 도시이다. 유프라테스강과 그 운하에 따라 성벽이 있고 그 내부에는 제방이 있다.
달의 신 난나르와 그 배우신 닌가르의 신전은 시가지보다도 한층 높은 기단 위에 있으며 흙벽돌의 거대한 담에 싸여 있었다. 신역에는 몇 군데의 신전이 있고 각 신전에는 관청과 창고가 붙어있었다. 신전과 지그라드가 우르의 번영을 상징하고 있다.
15.우르의 대 지하 고분군의 발견
우르의 도시지역 중앙 북쪽에는 신역이 있었다.
1927년에 우르 제1왕조나 제 2왕조 시대라고 추정되는 <우르의 왕묘군>이 발굴된 것은 신역의 동남쪽이다. 메스. 카람. 두그의 왕 묘에서 황금제 그릇, 투구, 촛대, 은제 띠, 단검 등 막대한 부와 정교와 기술을 말해주는 많은 유품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아바르기 왕의 고분 문서를 근거로 창세기 23장. 34장10,21절. 42장 34절. 이사야서 23장 8절 등을 비교 논증하고 있다. 아래에 그 골자를 추려 소개하자. 아브라함도 하타이트 왕의 비호 아래<우가르트 문서>에 보이는 <우라>에서 가나안으로 온 호상이었다고 주장하며 창세기 23장 6절의 주를( aycin: 방백) 70인역이 <왕>으로 번역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이것을 프토레마이오스 시대<왕>이 아니라 호메로스에 나오는 의미의 <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즉 동부 지중해적인 의미의 <왕>이라고 해석한다.
다음으로 위에서 말한 창세기의 기록이나 아마르나 = 미케네 시대의 국제 환경을 더듬어 아브라함이 상업 활동을 했던 것을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우르 중에서 갈디아인의 우르라는 지명이 오직 한 군데 뿐 이라고 할 수는 없고, 아브라함이 태어난 고향인 우르는 갈디아의 우르가 아니라 <우가리트 문서>에 보이는 <우라>라고 하며, 그곳을 하란 근처에서 찾는다.
이상의 여러 점에서, 왕들의 서사시로서의 족장설화는 틀림없이 왕실을 찬양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용되어 온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즉 갈디아인의 우르는 바빌로니아 남부의 우르가 아니고, 크세노판이 언급하고 있는 아르메니아인의 이웃이라고 하는 북방 갈디안의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사야서 23장 13절의 갈디아인의 나라는 바빌로니아의 남부의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북방의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Hald는 아르메니아/우랄어 것 같지 않다.
16.갈디아인의 우르는 어디인가?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다 자리 잡고 살았다.(창세기 11장 31절). 갈디아 우르는 일반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도시, 현재의 이라크의 나사리아 근처의 도시라고 한다. 그러나 창세기의 전승은 우르의 도시보다도 오히려 하란을 중심으로 하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결부되어 있다. 현재의 시리아 국경에 가까운 터키 령, 유프라테스강의 지류 베리크 강변에 <하란>이라고 하는 아랍인 한 촌이 있다. 그 근처는 예전에 바빌로니아-소아시아-이집트를 연결하는 통로에 있는 통상의 중심지였다. 이 하란과 창세기의 전승과의 연결은 아브라함의 조상의 이름이나 형제의 이름과 하란 근처의 도시들의 이름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는데, 구약성서의 족장들과 기원전 2천 년대의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있던 도시들과의 관계를 직접 입증하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C.H.골든은 하타이트 왕국의 수도 하투샤슈에서 기원전 15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서 번영했던 우가리트에 보실 근처와 선도에서 59명의 정장한 순장자의 유해가 발견되고, 두 대의 손수레와 그것을 끄는 소와 은제의 배 모형도 발견 되었다 한다.
슈브. 아드 왕비의 고분에서는 수금과 황금이나 청석금등을 사용해서 만든 머리 장식품이나 목걸이 등이 나왔다. 수금은 각각 숫소와 암소와 숫사슴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으며, L.울리경은 이것은 각각 베이스, 테너, 앨토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왕 묘에서는 노는 방법은 모르지만 조개껍질을 상감한 게임판이나 <우르의 군기>라고 불리는 조개껍질을 상감한 군기 등이 출토되었다.
<우르의 군기>는 각각 출정과 개선의 그림으로 나뉘어 있으며, 예술 작품으로서도 훌륭하며 역사 기록으로서도 가치가 있고, 당시의 전투 광경을 알려주는 귀중한 것이다.
우르의 왕 묘군-대 지하 고분군-의 발견은 종래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확실한 비문이 없기 때문에 왕 묘인지 아닌지에 관해서 논란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풍년제>에서 사랑의 여신 이슈달과 곡물의 신 다므즈의 역할을 하는 제관의 분묘라 하고, 어떤 사람은 나일강 유역에서 온 망명자의 분묘라고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왕 묘는 지하 깊숙이 만들어졌고 발굴 조사를 하려면 지하수가 넘쳐서 곤란하다. 1천년 이상이나 지난 고대 은나라 왕 묘와 흡사한 <우르의 왕 묘군>에 이어지는 발견은 앞으로 다시 있을 것의 옛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갈디아 우르는 골든 경의 말처럼, 과연 <우라>일까. 앞날의 연구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17.악덕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창세기에 의하면, 소돔<(!ds], Sovdoma, Sodom 둘러싸인 곳>이라는 뜻과 고모라(hr:mo[ Gomorrah) 깊은, 물이 많다)는 뜻의 도시들은 아라바의 저지 습윤한 땅에 있던 가나안인의 다섯 도시 중에 들며, 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의 아들 롯은 백부 아브라함과 헤어져 비옥한 요르단의 저지 소돔으로 옮겨 살았다. 소돔과 소모라는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의 내습을 받고, 소돔의 왕은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다행히 난을 면했다(14장2-22절).
그 후 이 도시의 악덕이 심해서 소돔과 고모라는 다른 도시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 불비로 말미암아 멸망했다. 롯은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천사의 경고에 따라 소돔에서 도피했으나 롯의 아내는 천사의 경고를 어겨서 뒤돌아 봤기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었다. 롯은 두 딸과 함께 요르단 동쪽의 산지로 피해서 동굴 속에 살았다고 한다.
사해 서남 연안의 이 소돔 가까이에서는 1952년에 칼리(Kali)공장이 세워지고 1955년에는 질소공장이 신설되어 사해 개발을 위해서 조업하고 있다. 1957년에는 광대한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었다. 그 지역은 과거 큰 지진에 의하여 땅이 내려앉고 천연가스와 석유가 폭발했기 때문에 도시들이 화염에 싸여 사해의 수중에 침몰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돔과 고모라의 위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해 남부 수중 수심 1.8미터 정도의 얕은 부분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장소라고 한다. 오늘날 사해의 남단에 가까운 서안 지역 남북 10킬로미터, 폭 2.4-5킬로미터, 높이 216미터의 암염 산이 있다. 이곳은 아라비아어로 제벨. 우스돔(소돔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둥근 봉우리들로 되어 있다. 그 근처의 도로 흙은 염분이 말라 백색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기슭에는 풍화 작용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이상하게 생긴 암염기둥이 여러 개 서 있다. 제벨, 우스돔의 북쪽 기슭 한 모퉁이에 있는 사람 형상의 암염 기둥이 <롯의 아내의 소금기둥>이라고 한다. 이 기암이 뒤를 돌아보는 부인의 모습과 가장 닮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리라.
물욕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이야기는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누가복음 17장 32절). 영어의 소도미 (sodomy,異色)는 악덕의 도시 소돔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돔은 죄악과 악덕의 형용사가 되어 부패한 지도자는 <소돔의 백성>(이사야서 1장 10절),<소돔과 포도나무> (신명기 32장 32절)등으로 불리고, 또한 예루살렘의 죄악이 심함을 <소돔의 죄> (에스겔서 16장 49절)라고 표현 했다.
성서를 통해서 소돔은 고모라와 함께 죄악과 하나님의 형벌의 귀감으로 인용되고 있다.
18.악덕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실재했는가?
악덕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과연 실재했을까
1976년 11월 1일 <요미우리 신문> 석간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미국 쎈트루이스에서 10월 29일 개최된 세계종교학회 연차회의의 강연에서 로마대학의 죠반니 페티나드 교수(고고학)가 <시리아의 고대 유적에서 출토한 셈어로 기록된 점토판 중에 소돔과 고모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발표하여 관계자를 흥분시키고 있다고 한다. 단 한 장의 점토판이기는하지만 이 보고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소돔과 고모라의 이름이 구약성서 이외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보고자 페티나드 교수는 이미 10년 이상이나 시리아 북서부 텔. 마르디크 지역에서 고대 에블라 왕국의 유적의 발굴 조사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 에블라 왕국이란 어디에 있었는가.
1976년 4월 1일자<요미우리 신문> <아사히 신문>조간은 로마대학의 파테오. 마티에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조사대가 12년 전부터 발굴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동 조사대가 도시 에블라에서 약 1만5천장의 쐐기꼴 글자 점토판 문서를 발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7월 2일자<아사이 저널 특집 고대의 부르는 소리>(제18권 26호)에는 스기이사무씨가 <모습을 드러낸 에브라 왕국 - 기원전 20세기의 도시국가)라는 귀중한 논문을 보냈다. 이하 이에 근거해서 <에블라왕국>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에블라(Ebla)는 이블라(Ibla)라고도 표기하며 셈어로 <목장>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이 지방의 주민이 유목민을 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유적은 지금의 알레포의 남남서 70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거의 지중해 연안의 대도시 라타키아(고대 우가리트는 이곳 북쪽 11킬로미터 지점에 있다)와 알레포를 연결하는 선상에 있으며 알레포 남쪽에 있는 하마와 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텔이라는 것은 시리아에서도 메소포타미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대 도시의 폐허를 가리키며, 이곳의 윤곽은 거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중앙은 아크로폴리스를 이루고 고지대와 저지대로 나뉘어 있다. 이 유적은 몇 개의 층으로 나뉘고 가장 오랜 층은 대략 기원전 3500년에서 3000년경까지의 것으로 추정되고, 이것을 제1기라고 한다.
제2기는 대략 기원전 2300년에서 2000년 내지 1900년경, 제3기는 대략 기원전 1900년에서 1700년경의 것이다. 이 중에서 왕궁이나 신전의 유적이 발견되고 제3기의 신전은 특히 중요시 되고 있다. 처음에는 아크로폴리스의 제3기의 신전 발굴 등에 주력했다고 한다. 제3기가 되자 에블라는 타민족의 내습을 방어하기 위해서 대단히 견고한 성벽을 쌓게 되었는데 그 성벽도 발견되었다.
1만 5천장에 달하는 점토판 문서는 이 제3기의 유적지에서 나온 것이다. 궁정 도서관에 붙은 두개의 작은 방에서 점토판이 나왔고, 이 도시는 앗카드의 나람신 왕(BC 24세기)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이 도시는 약탈되고 소각 당했으나 폐허 밑에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고 한다.
에블라의 국명은 이미 기원전 24세기로 소급되는 아카드 왕조의 조상 사르곤 왕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존재 자체는 여러 비문으로 알려져 있었다. <에블라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쐐기꼴 글자는 유프라테스강 중류 오른쪽 강안의 폐허 텔. 하리리에서 출토된 <마리문서>(BC 18세기)의 예로 보아서 아마도 마리의 말과 같은 아무르(구약성서의 아모리)어 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함무라비 왕조시대(BC 18세기)의 말과 같은 서북 셈어족의 말이다. 따라서 <에블라 문서>는 <마리 문서>보다 오래된 것이 된다. 기원전 2천 년대 초기라는 연대와 북시리아라는 지리적 상황으로 생각해보면 <우가리트 문서>의 경우처럼 1만 5천 장의 쐐기꼴 글자 점토판 중에는 북서 셈어족 이외의 셈어의 기록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19.고대 이스라엘인은 어떤 신을 섬겼는가?
전승에 의하면, 족장들은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해 왔다. 족장들의 지리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 전승(창세기 12-25장)은 헤브론, 이삭 전승(25-26장)은 브엘세바, 야곱 전승(25-26장)은 벧엘, 세겜, 드단과 연결되어 있다. 즉 이 주요 무대가 중부 팔레스티나의 일정한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들 각지에는 어디나 전부터 가나안의 성소가 있고 각 족장은 이 땅에 제단을 쌓았다. 구약성서의 이러한 기록은 족장들의 각 전승이 가나안의 특정한 성소와 연결되어 생성, 형성, 전개된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각 족장의 전승은 원래 독립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 전승의 재료는 어떤 구체적인 사건에 의해서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오는 시대를 거쳐서 만들어지고 편찬되어 현재의 문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각 전승과 관계가 있는 무대는 고고학적 발굴 조사에 의하면 어느 것이나 중기 청동기시대의 중부 팔레스티나의 대표적인 도시들이다.
창세기의 전승에 의하면, 족장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 가지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창세기 17장 1절28장 3절, 35장 11절, 43장 14절, 48장 3절, 출애굽기 6장 3절, 에스겔서 11장 5절), 엘 요르욘(높으신 하나님의 뜻), 창세기 14장 18절-24절), 엘오람<영원하신 하나님)의 뜻, 창세기 21장 33절), 엘 로이(나를 보시는 하나님의 뜻), 창세기 16장 13절), 엘 벧엘(벧엘의 하나님의 뜻). 창세기 31장 13절35장7절),엘 베르테(계약의 하나님)의 뜻.(사사기 9장46절)등이 그것이다. 이 하나님의 호칭의 공통되고 있는 <엘>에라는 어간은 원래 셈어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보통 명사였다.
한편 엘은 가나안의 만신 전(Pantheon)의 주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가리트 문서>의 발견 해독 연구에 의하여 엘은 또한 가나안 종교의 특정한 신격을 나타내는 고유 명사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엘은 여신 아슈라와의 거룩한 결혼으로 얌, 모토 등의 신들을 낳았다. 엘은 조물주, 왕, 신들과 인류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백발의 노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엘은 폭풍의 신 바알에 의하여 가나안의 만신전의 왕좌를 빼앗기고 추방되었다. 이것은 엘을 주신으로 섬기는 종교가 이미 가나안에 존재했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각 엘은 가나안의 특정한 성소와 결부되어 있다. 그들의 신들은 생성 번식을 기원하는 자연신이고 지연신(地緣神)이었다. 비옥한 땅 가나안의 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나안으로 들어간 족장들이 후대에 남긴 최대의 유산은, 도이치의 위대한 구약학자 A.알트(1883-1956)가 말하는 <족장의 신>이라는 신의 타입을 남긴 것이었다.
알트는 족장 전승이나 기타 구약성서의 전승에서 볼 수 있는 신의 호칭, 즉<아브라함의 하나님>(창세기 28장 13절31장 42,53절),<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이삭을 돌보시던 두려운 하나님>(창세기 31장 42.53절)<야곱의 하나님>(창세기 49장 24절)등의 호칭에 족장시대부터 전해진 옛 신의 호칭을 보고, 이 신의 이름을 짓는 방법에 족장 종교의 특징이 있다고 했다. 이러한 신의 이름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족장들의 신은 신의 현현을 체험한 족장의 이름과 결부시켜서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엘이 특정한 장소와 결부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이들의 신은 족장 개인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즉 전자는 산, 강, 나무, 돌 등의 일정한 땅과 결부되는 <토지신>이고, 후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특정 인물과 결부되는 <인격신>이다. 이 인격신이야말로 후대에 전해진 역사적 신이다. 이렇게 신이 일정한 토지와 결부되는 토착신이 아니라 특정한 인물에게 현현하는 특징이 바로 족장들의 종교와 모세의 종교와를 연결시키는 이스라엘 종교의 큰 특징이다.
출애굽기(Exodus)
1.명 칭
히브리어 성경에는 (웨엘레 쉐모드 twOmv] hL,aew(weelle shemoth)(이들이 이름이다)이름은 이러하니 라는 첫 말씀으로 되어 있다.출애굽기라는 명칭은 히랍어 역경인 [70인역]성경에서 본서 출19:1에 나오는 말씀과 본서의 중심적 제목을 따라 붙인 이름이다. [엑소도스 Exodo"(ex Aiguptou)=脫出(애굽에서의)
2.내용과 주요 사상
출애굽기는 요셉이 그의 모든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킨 400년 후로부터 시작되었다.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크게 번성하고 인구가 많아졌으며 그 후 요셉을 알지 못하고 유대인을 미워하는 새로운 왕조가 세워 지면서 그들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다.
그림설명 / 홍해를 건넘 : 이 출애굽의 최대의 스텍타클. 샤갈은 여기서 화면을 세로로 나누어 독자적인 대담한 구성법에 의해서 훌륭히 화면 화하고 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기적에 의해 만들어진 바다 속의 길을 통해 바다 건너편으로 계속 도망간다. 그때까지 피난민 선두에서 이끌고 있던 [하나님의 사자]는 뒤로 가서 그들을 추격하는 바로 군대의 위에 서서 구름과 어두움을 내려 그 추격을 저지한다. 1954-1955년 캔버스, 유화. 216*146cm 작자 소장.
본서는 모세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노예의 땅에서 이스라엘 이 해방되어 나오는 일과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율법을 받은 일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은 선민을 해방하고 더 나아가 선민의 국가, 곧 신정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한 사람을 준비 시켰다.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그의 능력을 나타내셨고 열 가지 재앙으로 선민을 해방하셨다. 출애굽기는 인간의 한 민족의 자유 추구의 역정과 신실히 언약을 지키시는 구원의 주 하나님을 계시하는 책이다.
본서의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본다.이스라엘 민족이 노예로 고생한 시대는 제18,19 왕조의 시대이다. (주전 3세기에 [마네토] 애굽의 제사장이 애굽의 역사를 30왕조로 기록 -후에 31왕조로 됨- 했다). 제 18, 20왕조를 신왕조라고 한 것인데 이 왕조의 연대는 주전 1570년부터 1085년 사이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바로 이 신왕조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 신왕조 시대의 전 왕조는 (Hyksos) 왕조인데 이 왕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주 후하게 대한 왕조였다. 이 왕조에서는 비옥한 고센땅에서 유목민으로 살며 번성하였다. 본서에서 우리는 위대한 영도자의 자격을 갖춘 모세의 인격과 그 탁월한 지도력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는 철저한 신앙의 소유자였으며 지혜가 있었고 뛰어난 용기의 소유자였다. 모세는 전 인류의 역사에 유일 무비의 위인이다. 본서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시나이산 언약 [히] yn'ysi (sinay) [그] Sinav (Sina)](출19:-24:)이다.
이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고 10계명과 기타의 율법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은 언약을 맺었다. 선민 이스라엘의 위대한 신앙과 그 역사는 바로 이 시나이산 언약위에 기초한 것이며, 이 언약을 떼어 놓고는 그 후의 이스라엘 역사와 신앙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언약의 중심적 내용은 이스라엘 민족은 영원히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의 율법을 충성되게 준수 한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반드시 축복 하시며 메시야 민족을 삼으시리라는 것이었다.
3.내용분해
1.선민의 해방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심 출1:1-18:27
1) 모세의 출생과 훈련 출1:1-4:31
2)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민족의 해방을 요구함 출5:1-6:30
3) 열 가지 재앙 출7:1-11:10
4) 첫 유월절 출12:1-13:22
5) 홍해 건너 자유의 땅에 첫 발을 딛음 출14:1-15:27
6)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께서 먹이심 출16:1-18:27
2.시나이산 언약 출19:1-24:18
1) 하나님께서 시나이산에 내려오심 출19:1-25
2) 하나님께서 10계명을 주심 출20:1-26
3) 언약 책의 율법을 주심 출21:1-23:33
4) 모세가 율법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들이 맹서함 출24:1-18
3.성막 건축을 지시하심 출25:1-31:18
4.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듦 출32:1-34:35
5.성막과 기구들을 완성함 출35:1-40:38
4.하나님에 칭호 모티어 (J.A.MOTYER)
1. 낱말들과 명칭
두 히브리어 낱말이 "하나님"으로 번역된다. 엘(EL)"신"신적권능과 신 본질의 특성을 가지신 하나님. 엘로힘(!yhiloa> ELOHIM) 형태상 복수이나 "신들"을 뜻하지 않고 신의 모든 속성을 완전히 갖추신 분을 뜻한다.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되는 세 번째 낱말이 있다. 아돈(yn;doa} adonay(ADON)은 하나님을 "절대주권자"혹은 "주님"으로 묘사하여 그의 신적 권위와 실제적인 통치를 지적하는 낱말이다. 이 명사들과는 별도로 또한 하나님의 고유명칭 여호와(야훼)가 있다. 그 고유 명칭을 직접 사용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추측컨대 경외심의 발로에서)공석에서 읽을 때에는 "주님"을 뜻하는 낱말로 대신하였다. 영어 성경들은 공교롭게도 그 관습을 이어받아 여호와를 "주"로 그리고 그 고유 명칭이 아도나이(아돈의 한 형태)와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주 하나님"으로 표기하고 있다.
우리가 만일 그 대치된 낱말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 자신의 고유 명칭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성경을 읽을 때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자기 백성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심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성품을 알리고자 하셨다. 하나의 낱말로서 여호와는 히브리어 동사 "있다"(존재)와 관계되어 있다. 이 동사는 "존재하다 (하야hy:h;)"의 뜻을 넘어선다. 그것은 "능동적으로 임재하다"를 의미한다. 여호와 (출3:13-16 )는 능동적으로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이 고유 명칭을 알리고자 하신 것은 그의 종 된 백성이 구속을 필요로 할 때였다. 달리 말해서 '능동적인 임재'의 개념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의 이름의 뜻을 계시하실 시기를 출애굽 때로 정하심으로써 그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의 원수들을 정복하시는 자로 나타내신다. 자기를 여호와로 알리신 그의 자기계시(출3:5) 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다. 이 성품은 유월절의 거룩한 구속과 거룩한 진노에서 구체화 된다(출12장). 그 고유 명칭이 계시하는 특성에 대한 구약성경의 이해는 출애굽기 34:6이하, 시편 103,111,146편. 미가서 7:18-19등의 구절들에 잘 나타나 있다.
2.계시의 진보와 명칭
여호와(hw:hoy_)라는 명칭은 성경의 초기에서부터 (창4:1) 나타나는데 그 구절들은 사람들이 그 명칭을 알았고 또 실제로 불렀음을 암시하고 있다(창 4:26,14:2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모세에게 (출6:2-3)"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아브라함 등)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전문적인 구약성경 연구는 이에 대하여 오랫동안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에 관하여 여호와라는 고유 명칭이 초장기부터 알려진 것으로 되어 있는 전승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 고유 명칭이 모세에게 처음 알려졌다는 전승을 각각 대하고 있다는 답변을 해왔다. 이 가설은 비록 영향을 미치긴 했을지라도 불가피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구약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단순히 어떤 지식을 갖는다는 의미를 벗어나서 그 알게 된 대상과 능동적으로 인격적인 교제를 즐긴다는 뜻을 갖는다. 예를 들면, 엘리의 아들들은 분명히 그 이름을 하나님의 "호칭"으로 알았으나 그들은 "여호와를 존중하지 (문자적인 의미로는 '알지') 아니하였다. (삼상 2:12,그리고 3:7,출33:12-13을 대조하여 보라).
그러므로 출애굽기 6:2-3은 우리에게 이제까지는 그 명칭이 하나님을 부르는 한"호칭"의 의미로 밖에는 알려지지 아니하였으나 지금은 그 명칭을 가지신 하나님의 성품 혹은 특성에 관한 진술 곧 그는 자기 백성과 항상 함께 계시는 거룩하신 구속자요 심판자라는 진술로 알려지게 되었음을 말하여 준다. 출애굽기 6:2-3의 의미에 관한 이 견해는 창세기의 증거들에 의해서 확증되고 있다. 만일 아브라함이 "여호와는 누구이신가?"하는 질문을 받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전능하신 하나님" 혹은 족장들이 사용하던 하나님의 다른 명칭들 중 하나로 대답하였을 것이다.
엘 쉬다이( yD'v' lae EL SHADDY) 쉬다이는 필시"산"을 뜻하는 말로서 인간의 무력함과 대조를 이루는 산의 불변성과 항구적인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것이다. 그 예로서 창세기 17:1이하 28:3 이 35:11, 43:14, 48:3 ,49:25과
엘 엘욘(@/yl][ l]aE, EL ELYON)"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세기 14:18.
엘 로이( ha;r; l]a EEL OLAM) "영생하시는 하나님."창세기16:13
엘 올람( ml;wO[yY l]aEe EL OLAM) "영생하시는 하나님,"창세기 21:13.
엘 벧엘(laeAtyBe l]aE EL BETHEL)"벧엘의 하나님",창세기 31:13
엘 엘로헤 이스라엘( laer;c]yI !yhil~a> l]aEe(EL ELOHE YISRAEL)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창세기 33:20.
그러므로 출애굽기 3장에서 여호와가 "네 조상의 하나님"(6,13,15,16절)으로 언급될 때 이 다채로운 의미들 전체가 "거룩하신 구속자"로서의 새로운 계시에 첨부되고 있다.
그림 : 하나님의 손 : 타울의 악화가 작품. 다섯 길 원한(후광)으로 둘러져 있는 하얀 공간의 중앙으로부터 소매를 늘어뜨린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 축복하고 있다.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상은 로마네스크의 성당의 내외에 그 전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만. 그리스도 출현이전의 시대. 곧 구약시대의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출33:20-23에 하나님이 "너희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상을 만들어 그것을 예배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출 20:4-5). 이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손만을 묘사하게 되었다. 신약시대도 하나님은 음성으로서만 그리스도 앞에 나타나셨지만. 이때에도 그림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경우는 손(보통 오른손)으로서 표현된다. 이 타올의 벽화의 손을 같은 교회에 있는 한 벽화(전능자 그리스도)와 같은 화가가 그린 것이 틀림없으며 그 윤곽과 하이라이트의 산뜻한 묘사를 통하여 표현된 정신 내용은 일견 단순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고 있으면 참으로 풍부함이 느껴진다.1123작품. 142*142cm.스페인 카탈루냐 미술관 소장.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이니까?"
-하나님 자신: 하나님속성 중 더러는 그의 신성의 핵심을 드러냄으로 명칭들로 사용되고 있다.
-거룩하신 자 ( vdoq;: kaw-doshe ):모든 명칭 중에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명칭이다.
(여호수아 24:19, 이사야 5:1610:17, 하박국1:12)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특히 이사야가 사용한 한 변형, (이사야 1:4)
-"질투 (a/Nq 'kan-no)라 이름 하는" 하나님: 이 명칭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출애굽기 34:14)
-만군의 여호와(ha;b;x]:tseb-aw-aw): 이것은 자주 반복되어 나오는 명칭으로서 신성의 잠재력과 권능을 가진 "만군"을 지적하며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엄을 뜻할 가능성이 있다. 예레미야 32:18하-23)
-더 나아가서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사시는 하나님이시오,(렘10:10) tmא yhil~a>
eh'-methel-o-heem
-높으신 하나님이시며(시7:7[히]!/rm; ,marom,[그]prwtokaqedriva(protokathedria)
-보복의 하나님이시다(렘51:56). hl;WmG_ ghem-oo-law
-온 세계의 하나님 그러한 하나님은 한 백성에게만 매이실 수가 없다.
-그는 창조주이시다. arewOB 이사야 40:28
-심판자이시다. 창세기 18:25 :[히]fp'v; shaw-fat [그]krithv"(krites)
-왕이시다. 예레미야 10:7 : [히] &l,m, (melek) [그] basileuv"(basileus)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시다. 민 16:22,렘32:27 [히]rc;B; baw-sawr'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는 특별히 자기를 한 백성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의 사자 그의 신성을 낮추지 않고 자신을 적응시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창세기 16:7 이하, 사사기 13:16이하 등.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수아 24:2 그는 또한 그 안에 함축된 은혜와 겸손에 강조점을 둔바 거룩함(사1:4)과 권능(시132:2)에 있어서 야곱의 하나님(시81:4)으로도 불리신다.
-개인의 하나님
자기의 택하신 백성 안에서 그는 개인의 하나님이시다. "나의 사랑하는 자"(사5:1),
-"내 구원의 하나님." 구약성경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풍성한 교제를 나눈
사실은 일상생활에서 알고 사랑한 하나님 에 대한 풍부한 은유들을 통해서 가장 잘
알 수가 있다.
-반석 출애굽기 17:1-7에서 유래된 명칭. 신명기 32장 [히][l's, (sela')
-목자 시편 23:1 [히] y[iro(ro'i) [그] poimhvn(poimen)
-방패, 산성 시편 18:2 [히] @gEm; (magen)] @wOmr]a'(armon)]
-빛 시편 27:[히] --r/a ('or), r/am; (ma'or) [그] fw'" (phos)
-힘 시편 28: [히]lyij'(chayil)j'Ko(koach)
-피난처(산성) 시편 37:39,시142:5 [히] hsej]m'(machseh)
-해 시편 84:11[히] -hn;v;(shanah) [그] ejniauto"(eniautos)
-아버지 시편 89:26,이사야 63:16 [히]- ba; ('ab) [그] pathvr(pater)
-어미, 새 시편 91:4,이사야 63:16 어미:[히] !aE ('em) [그] mhvthr(meter)
새:[히] #/[ ('oph), r/Pxi (tsippor) [그] o[rneon (orneon), [形]
-도움 시편 115:9 -[히] rz<[ eay'-zer
-그늘 시편 121:5 -[히] lx etsale
-분깃 시편 142:5 - [히] ql,jE (cheleq) [그] mevro"(meros)
-노래 이사야 12:2 -[히] r/mz]mi (mizmor , ryvi (shir)]
-구속자 이사야 41:14-[히] la,GO(ga'el) [동사인 la'G:(ga'al)의 分詞]
-전사 이사야 42:13 -[히] hm;j;l]m mil-khaw-maw vyaieesh
-토기장이 이사야 45:9- [히] hm;d;a} ycer]j'(charshe adamah)
-남편 이사야 54:5-[히] vyai ('ish) [그] ajnhvr(aner)
-생수의 근원 예레미야2:13 -[히] yj 'khah'-e !yIm' mah'-yim rqom;maw-kore
-이슬 호세아 14:5 [히] lf(tal) [아] lf(tal)
-사자, 표범, 곰 호세아 13:7-8 사자: [히]rypiK]kef-eer[히] rmen;(namer)
[아]표범:rm'n](nemar)[그]pardali"(pardalis) [히] bDo(dob), 곰:b/D(dob) [아] bDo(dob)
[그] a[rko"(arkos)
5.출애굽기의 내용들
1.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한 모세의 기적
창세기 37장 이하와 출애굽기는 족장시대 이후의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을 대강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다른 어느 형제들보다도 부친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형제들의 미움을 샀고, 형제들은 요셉과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다. 요셉은 미디안인(또는 이스마엘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료의 차이이다) 대상에 팔려 이집트의 파라오의 신하이고 경호대장 보디발의 노예가 된다. 얼굴이 아름답고 풍채도 좋은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으나 그것을 물리쳤기 때문에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투옥된다. 그리고 같은 감옥에 갇혀있던 술잔을 드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어 올리는 시종장의 꿈을 해몽해 준 인연으로 파라오 앞으로 불려나가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여 7년의 대풍작과 7년의 기근을 예언하여 결국 파라오의 대신으로까지 출세한다. 그리고 가나안에 남아있던 야곱의 일족은 기근 때문에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오고 요셉은 책략을 써서 그들을 곤경에 빠지게 하고, 결국은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부친 야곱을 포함한 온 가족을 이집트로 오게 하여 이스라엘인은 이집트에서 크게 번영하게 된다. 야곱의 수명은 147세, 요셉은 11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이집트에서는 요셉을 모르는 왕이 즉위하고, 그 새 왕은 이스라엘인의 번영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건축 공사 등의 고역에 흑사하고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다. 태어 난 지 얼마 안 된 모세는 그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파피루스로 만든 바구니에 넣어 나일강가에 버리지만, 다행히 이집트 왕녀가 물에서 건져 내어 길러 성인이 된다.
어느 날 모세는 동포 한 사람이 이집트인에게 학대받은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타살하고 시체를 모래 속에 묻고 파라오에게 도망하여 시나이로 가서 미디안 사제 이드로에게 몸을 의탁한다. 모세는 그의 딸과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된다.
그 후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떨기에서 불꽃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고 있던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학대받고 있는 동포 이스라엘인을 해방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모세는 형 아론과 함께 이집트를 돌아가 파라오에게 동포를 해방하라고 교섭한다. 그들은 파라오 앞에서 지팡이를 뱀으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지만 파라오는 이스라엘인의 해방을 완강히 거절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집트에 여러 가지 재앙을 내려 이집트인을 괴롭혀서 드디어 이집트 전국의 처음 난 아들과 짐승을 하룻밤 사이에 죽이는 대 재앙을 내린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만은 이 재앙을 면한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유대인 사이의 중요한 축제로서 지켜지고 있는 <유월절>의 기원이다. <유월>의 개념의 시작은 분명하지 않으나, 유목민이나 양이나 산양의 첫 새끼를 잡아 그 피를 천막 입구에 발라서 악령의 침입을 방지하는 관습에서 유래한 것 같다. 파라오는 결국 굴복하여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나가는 것을 허가했으나 다시 마음의 변화가 생겨 전차와 기병을 출동시켜 그들을 추격하게 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430년간이었으나, 이것은 사제적 사료층의 기록이며 그 숫자의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수에즈만 북쪽의 호수<갈대의 바다>)(홍해가 아니다)기슭까지 추격당한 이스라엘인 앞에서 바다는 좌우로 갈라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은 그곳을 지나 도망했으나 추격해 온 이집트 군이 그곳에 들어서자 바다가 본래대로 합쳐졌기 때문에 이집트 군은 물속에 빠져 죽고 만다. 이것이 그 유명한 <출애굽>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인을 갈대의 바다에서 인도하여 시나이의 황야로 행군해 나갔으나 이집트에서의 편안한 생활에 젖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고 모세를 곤란하게 하였지만 하나님은 식량이 부족할 때는 하늘에서 이슬과 함께 만나(@m;(man)[아]aN;m'(manna')[그] mavnna(manna)를 내리게 하고 백성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할 때는 메추라기를 보내는 등 여러 가지 은혜를 베푼다. 비루인에서는 오늘날도 만나를 수확하고 있다. 이것은 6월에서 7월에 걸쳐 위성류(Tamarisk)교목 가지에 생기는 반짝반짝 빛나는 물방울 같은 달콤한 나무의 분비물이며, 타마리스크의 수액을 많이 흡수한 여러 가지 패각충에 의하여 분비되는 것이다. 만나는 꿀과 버터와 같이 빵과 함께 먹을 수 있으며 <안개가 걷히면 광야 지면에 마치 흰 서리가 땅을 덮듯이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있었다> (출애굽기 16장 14절)
모세가 인도하는 일행은 드디어 거룩한 산 시나이산 기슭에 도착하여 머문다. 모세는 단신으로 시나이산으로 올라가서 번개와 천둥이 치고 나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십계 [히]!yrib;D]h' tr,c,[}(asereth haddebarim>가 새겨진 두 장의 석판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으로 기록된 석판이었다고 한다.
모세가 산 중에 있는 동안에 산 아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몰려 와서 황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이것을 예배했다. 하나님은 <그야말로 이 자들은 구제할 수 없는 백성이 구나>하고 분노하였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없는 유일신 야훼의 선민이 되어 <십계>의 석판을 넣은 언약궤를 모신 천막을 성전으로 삼고 아론을 비롯하여 레위족이 사제가 되어 40년간 하나님의 약속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가나안을 찾아 광야를 유랑하였다. 그 동안에도 모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바위에서 물이 솟게 하고 구리 뱀을 만들어 뱀에 물린 사람을 치유하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을 베풀었다.
여행 도중 아론을 비롯해서 이집트에서 탈출 한 이스라엘인의 제1세들은 모두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민수기 10장 11절이하 33장 16절), 가데스바네아(신명기 1장 19절)를 거쳐 모압 평야에 도착하여 오랫동안의 광야의 표류여행을 마치는 것이다(민수기 33장 48절),모세는 대망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죽는다(신명기 34장1-6절).가나안 정복은 다음 대 여호수아에게 맡겨지게 된다.
2.모세의 생애는 재현이 가능한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종교 지도자 모세의 출생은 다음과 같다.
<레위 가문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같은 레위 가문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아내가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너무나도 잘 생겨서 석 달 동안을 숨겨서 길렀다. 그러다가 더 숨겨 둘 수 없게 되자 왕골상자를 얻어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속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숲 속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형편을 살폈다.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나왔다.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공주가 갈대숲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하나를 보내어 건져다가 열어 보았더니 사내아이가 울고 있었다.(출애굽기 2장 1-6절)
모세의 출생은 다른 제왕과 마찬가지로 전설에 쌓여있다.
기원전 30세기 후반의 아카드 왕 사르곤 1세 (BC24세기)는 다음과 같은 비문을 남겼다.
나는 위력 있는 왕, 아카드의 왕 사르곤이다. 나의 모친은 비천한 몸이었고 나는 부친을 모른다. 나의 부친의 형제는 산 속에 살고 있었다. 나의 고향은 유프라테스강 강변의 이즈피라스이다. 비천한 모친은 나를 잉태했다. 그녀는 나를 남몰래 해산하여 갈대 광주리에 넣고 겉에 역청을 발라서 나를 강에 버렸으나 강은 나를 가라앉히지 않았다. 강은 나를 띄워서 관계자 아키에게 실어갔다. 관계자 아키는 나를 자기 아들로 삼아 길렀다. 모세의 출생은 이와 비슷하지만 이것이 모세 전승을 형성하는데 직접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이집트의 왕궁에서 성장한 모세는 이집트인에게 학대받고 있는 동포 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 이집트인을 죽이고 파라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집트를 탈출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가서 사제의 집에 의탁한다. 그 사이에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야훼 하나님을 만나고 동포 이스라엘을 구출하라는 사명을 받아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 파라오의 압정을 피해서 이스라엘 동포를 탈출시키는데 성공하고, 드디어 홍해의 기적을 베풀어 승리를 거두고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이 된다. 여기에서 모세는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개자가 되는 것이다.
애굽기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yn'ysi, Sinav, Sinai)에서 모세를 통해서 야훼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시나이 계약>이라고 한다. 이 시나이 계약은 광야를 표류하던 시기의 사건이며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의 출발점이다. 이 지도자의 역할을 완수한 것이 모세이다. 그 후 모세는 40년간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서 굶주림과 노고로 갖은 역경을 헤치며 광야의 생활을 계속하여 요르단강 동쪽까지 도달했으나, 그는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 느보산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상이 출애굽기, 민수기에 기록된 모세의 생애의 골자이지만, 그 재현은 극히 곤란하다.
신약성서에는 모세는 옛 계약의 중개자로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그리스도와 대비해서 묘사하고 있다.
3.이집트 탈출의 연대는 언제인가?
이스라엘인의 이집트 탈출 사건은 모세 5경 뿐 아니라 구약성서 전체를 통해서 취급하고 있는 가장 중대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학의 분야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오랜 세월을 통해서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논쟁을 거듭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관해서는 이집트 탈출을 포함해서 모세에 관한 이집트 측의 사료는 전혀 없으며,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에서 인용한 문헌 이외에는 이 사건을 입증한 사료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연대에 관해서도 결정적인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스라엘인의 이집트 탈출의 연대에 관해서는 <기원전 15세기 설>과 <기원전 13세기 설>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설은 후대의 연대 계산에 의한 열왕기상 6장 1절에 근거한 것이다. 그 구절은 <솔로몬 왕(B.C. 961년경-922년경)이 그의 치세 제4년, 이집트 탈출 후 제48년에 성전을 짓기 시작했다는>기록이다. 그러나 르호보암(유다왕국)과 여로보암(이스라엘왕국)에 의한 왕국의 분열은 아마도 기원전 922년이든가 그보다 조금 후의 일이며, 솔로몬은 40년간 통치한(열왕기상 11장 43절)것으로 되어 있음으로 솔로몬은 기원전 961년경에 즉위한 것 같다. 따라서 솔로몬왕의 치세 제4년은 기원전 958년경이 되며, 만약 그것이 이집트 탈출 후 480년에 해당한다면 출애굽은 기원전 1483년경의 일이 된다. 둘째 설은 출애굽기 1장 11절의 (그리하여 그들은 공사 감독들을 두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제 노동을 시켜 파라오의 곡식을 저장해 둘 도성 비돔과 람세스를 세웠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1920년대 이후, 열왕기상 6장 1절이나, 이집트의 카이로 남쪽 약 300킬로미터에 있는 텔. 엘 아마르나에서 발견된<아마르나 문서>(B.C. 14세기)가 언급하고 있는 하빌의 활동이나, 영국의 J.가스댕에 의한 여리고의 발굴 조사 등에 의하여 <기원전 15세기 설>이 유력해 졌으나, 근년의 여러 발굴 조사에 유력한 증거가 나타나 현재로는 <기원전 13세기 설>이 유력해졌다. 그러나 기원전 13세기의 어느 해를 이집트 탈출의 연대로 잡느냐 하는 것은 아직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가령 W.F.울브라이트는 기원전 13세기초로 추정하고 있으나 T.J.미크는 기원전 13세기말로 추정하고 있다.
4.이스라엘 민족을 압박한 왕은 누구인가?
출애굽기 1장 11절(J 사료층)에 보이는 람세스는 <람세스 2세의 가문>을 의미하는 펠. 람세스이고, 그것은 또한 현재의 나일 강의 지류 동쪽 강변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어촌 아바리스. 타니스를 가리킨다고 추정된다. 그 땅은 1929-32년에 D.몬테가 발굴해서 비석과 유적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제19왕조 람세스 2세(B.C. 1304년경-1237년경)는 타니스에서 약 25킬로미터 떨어진 현재의 카르틴 부근에 호화로운 벽돌이 조각으로 장식된 왕궁을 가진 왕도를 건설했다. 이 아바리스는 힉소스의 축출(B.C.1570년경)후에 포기되었다가 제19왕조 세티 I세(B.C. 1318경-1304경)에 이르러 겨우 재건된 것이다. 보통 힉소스의 수도는 나일 델타인 산. 엘. 하갈의 위치에 있으며, 그 땅은 아바리스(BC1300년경-1100년경) 마지막으로 타니스(그리스 이름)또는 소안(B.C. 1100년경) 이 후, 민수기 12장 22절, 시편 78편 12,43절, 이사야서 19장 11,13절, 에스겔서 30장 14절 등)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열왕기상 6장 1절에 근거한 기원전 1438년경의 직전에 그 부근에서 대 건축 사업이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람세스와 비돔의 두 도시는 앞에서 말한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재건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스라엘인이 노예 생활을 한 곳이라고 생각된다.
출애굽기 1장 11절에 대한 다른 해석은 이스라엘인이 더 이른 시기에, 아마 힉소스에까지 소급되는 시기에 이들 도시에서 노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며, 람세스라는 명칭의 사용은 시대를 잘못 계산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우리는 출애굽기 1장 11절의 기록이 후대의 가필이거나 시대를 잘못 계산한 기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제 19왕조의 세테 1세나 람세스 2세가 이스라엘인을 압박한 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W.F. 울브라이트는 람세스 2세의 기록과 그 왕이 건설한 비돔과 람세스의 양 도시의 발굴 조사에 근거해서, 특히 그 왕이 델타에 거주하였고 그 치세 초기에는 오직 타니스에서의 건축공사에만 전념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이 전승의 역사성을 지지하고 있다. 특히 그 람세스는 전술한 것처럼 힉소스 시대의 수도 아바리스. 타니스를 말하며 그 도시가 람세스라고 불린 것은 기원전 1300년경에서 1100년경에 이르는 기간뿐이었다는 사실에서 이 전승의 진실성과 연대가 추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집트 탈출 후 이스라엘인이 광야를 이동하면서 가나안으로 갔다는 전승도 지리학 고고학적 연구가 진보한 결과, 그 실질적인 역사성이 증대되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전승에 대한 가혹한 비판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고 했다.
한편 M.노트는 <모세의 전승>을 울브라이트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관된 역사적 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여러 개의 독립된 테마의 전승에 모세라는 인물이 결합되어 전체적으로 일관된 설화가 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5.오리엔트를 석권한 이집트 왕은 누구였는가?
국경의 수비 도시 비돔과 람세스를 건설한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의 왕자이며 그 왕위를 계승한 메렌프타하 (B.C. 1236년경-1226년경)는 즉위 당시 이미 고령이었으나, 그는 델타 서부에 침입한 리비아인이나 지중해인과 용감하게 싸웠고. 또한 가나안인이나 시리아 지방까지 북상 원정하여 크게 세력을 떨쳤다. 이는 기원 전 13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그는 치세 제5년, 기원 전 1232년경에 제18왕조의 아멘호텝 3세(B.C. 1417년경-1397년경)가 세운 거대한 흑색 화강암 비석을 이용해서 그 위에 전승비문을 새겼다. 이 비석은 1896년에 W.M.F.피트리 경에 의하여 테베의 메렌프타하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이 <메렌프타하 비문>이라는 것이다. 카이로 박물관 소장, 높이 3미터이상, 폭 약1미터). 상부에는 신 아멘과 왕의 모습이 좌우에 한 쌍씩 조각되어 있으며, 좌측 왕 뒤에는 아멘의 아내 여신 므드가, 우측의 왕 뒤에는 아멘과 므드의 아기인 달의 신 콘스가 서있다. 그 아래 28줄의 비문이 새겨져 있고, 리비아인에 대한 전승을 축하하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포함한 피 정부 이방인의 이름이 들어 있는 시 한 수로 끝을 맺고 있다. 비문 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평화를>하고 말하면서 모든 왕들이 엎디었다. 아홉 궁족(이집트의 전통적인 아홉 적들) 중에서 머리를 들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테하느는 파괴되고 하티는 평정되고 가나안인의 나라는 모든 재앙을 약탈되었다. 아쉬케론은 빼앗기고 게젤은 정복되고, 야노암은 흔적도 없는 자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백성은 버려지고 그들의 자손은 없으며, 프르(팔레스티나)는 이집트에게 있어서 과부가 되었다. 모든 나라들은 통일되고 평정되고, 모든 옳지 못한 사람은 태양신 라아처럼 생명을 받은 왕 메렌프타하에서 날마다 사로잡히고 있다.
6.왜, 이집트 탈출 연대가 확실하지 않은가
비문은 테헤느(리비아),하티,가나안,아쉬케론,게젤,야노암,그리고 이스라엘 등에 대한 메렌프타하의 위력을 찬양한 승리의 노래이다. 이 승리의 노래는 이집트의 비문 중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서 극히 중요한 것이다. 당시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이스라엘인의 이집트 탈출은 이보다 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울브라이트는 이 전승비가 새겨진 시기를 메렌프타하의 치세 제5년경으로 보며 그 글에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은 이집트를 탈출해 간 이스라엘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구약성서에 보이는 그들의 40년간의 광야생활을 계산해 넣으면 이집트 탈출의 연대는 기원전 13세기 초기, 즉 람세스 2세의 초기가 되는 기원전 1280년경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연대에서 출애굽기 12장 40절(p사료층)에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머무는 것은 430년 동안이었다>는 말대로 소급하면 기원전 1710년경이 되며, 이것은 힉소스가 이집트에 침입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리고 이 힉소스 중에 셉어족에 속하는 이스라엘인의 조상이 섞여서 이집트에 들어왔다고 추측할 수가 있다. 이것은 전혀 우연한 일치이지만 참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유목민 힉소스는 기원전 1700년경에 아바리스를 근거지로 해서 델타지방에 정착하여 말과 전차의 사용을 이집트에 전했다.
이상과 같은 문헌사료와 고고사료와의 다소 안이한 결부에 반해서 노트는 전승비문을 새긴 시기에 가나안에 있던 <이스라엘>이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것이 이미 구약성서의 전승으로 알려진 이른바 12부족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이었는지, 아니면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은 가졌으나 더 오래 전의 통일체였는지 확실한 것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상과 같이 양자의 견해 차이는 연구 방법의 차이는 물론이지만 개인적인 역사관의 차이이며, 그것은 이른바 앵글로 색슨학파와 도이치학파의 학풍의 차이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출애굽기 1장 11절의 기록과 <메렌프타하 비문>의 기록에서 출애굽의 연대의 윤곽이 점차 밝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과학적인 검토로 밝혀질 만 한 그 시대의 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한 우리는 이스라엘인의 출애굽의 정확한 연대를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집트로 들어간 연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이것도 현 단계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상의 두 가지 사료의 기록이 잘못 되어있는지, 또는 시대를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인의 이집트 탈출은 제 19왕조의 람세스 2세(BC1304-1237년경) 치세에 있었던 것이라고 추정해야 할 것이다.
7.출애굽의 경로는 어디인가.
그제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러 야훼를 찬양하였다.
"나는 야훼를 찬양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야훼는 힘 있게 나를 붙드시어
나를 살려 주셨다.
내 하나님이시니
어찌 찬양하지 않으랴.
나의 선조의 하나님이시니
어찌 우러르지 않으랴..."
미리암이 노래를 하였다.
"야훼를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출애굽기 15장 1-2절.21절)
이것은 유명한 <갈대바다의 노래>이며 마지막 21절은 출애굽 전승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노래이다. 여기서 노래한 <바다의 사건>은 그 후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신앙의 방향을 결정 지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승에 의하면 델타의 람세스를 출발한 (출 12장 37절)이스라엘 백성은 지중해 연안에 가까운 페리시테 가도를 피하여(출애굽기 13장 17절) 숙곳과 에담을 지나(출애굽기 13장 20절, 위치 불명), 믹돌<망루>라는 뜻, 위치 불명)과 바다 사이에 있는 비하리롯 근처 바알스본 앞 해변에 진을 쳤다(출애굽기 1장2절, 바알스본은 헬레니즘-로마시대에 성소가 있던 곳이며 페리시테 가도 북쪽의 지중해 해안에 따라 실보니스 개펄의 서쪽이라고 한다. 이 바다에서 이른바 <홍해의 기적>이 일어나고 그들은 이집트군의 추격을 피할 수 있었다(출애굽기 14장 16절이하).<홍해>(13장18절)라는 것은 <갈대의 바다> <개펄의 바다>라는 의미의 <얌스프>를 오역한 말이며 그것은 홍해가 아니라 수에즈만 북방의 호수이다.
이집트 탈출 후의 경로는 <남하 설>과 <북방 설>이 있다. 전자의 설에 의하면, 시나이 반도를 남쪽으로 우회하여 카데슈를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추정된다. 그 근거는 전통적인 시나이산의 위치가 중요시 된 것이다. 그곳은 시나이 반도의 남단의 높이 2640미터나 되는 화강암의 깍아지른 산 속에 있으며 시나이산 기슭에는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 세워져 있고, 1844년에 C.티센돌프에 의하여 유명한 <시나이 사본>(라이프치히 대학 도서관 소장)이 발견된 승원이기도 하고, 지금도 순례 길의 하나가 되어 있다. 후자의 설에 의하면, 실보니스 개펄 북쪽을 지나 카데슈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경로가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 탈출의 경로는 멀리 돌아서 가는 길인 시나이 반도의 중앙을 지나 남부 시나이산을 경유하는 험한 길보다 시나이 반도의 북쪽의 평탄한 길을 지나갔다는 <북상 설>이 유력하다. 시나이 북쪽은 모세에게 있어서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최단 거리였을 것이다.
8.계약의 땅과 시나이산은 어디에 있는가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와 팔레스티나 사이에 있는 삼각형의 반도이며, 홍해의 두 팔, 즉 동쪽의 에이라트만과 서쪽의 수에즈만으로 싸여 있다. 이 반도는 <출애굽>의 주요 무대가 됐다. 반도의 북쪽은 낮은 언덕이 연속된 사막의 고원이고, 남쪽은 높이 2640미터나 되는 화강암의 산맥으로 되어 있다. 기후는 건조하고 연간 강우량은 북쪽이 65밀리미터, 남쪽이 40밀리미터를 넘지 않는다. 그리고 시나이산은 성서에서는 호렙산으로도 불리고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십계명을 받은 산으로 유명하다. 시나이산의 위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일정하지가 않다. 시나이산의 위치의 확인은 이집트 탈출 후의 전로의 확인과 관련이 있는 문제이므로 옛 부터 성서지리학 상의 난문제로 되어 있다.
이것을 간단히 소개하자.
전통적으로는, 시나이 반도 남부의 산중에 있는, 4세기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 (306-337)의 황태후 헬레나가 작은 교회를 세운 장소라고 전해지고 있는 곳에 527년에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스 1세(527-565)가 알렉산드리아의 순교자 성 카타리나를 기념하여 세운 성 카타리나 수도원의 뒤 쪽에 솟아있는 <제벨무사>(아라비아어로 <모세의 산>이라는 뜻, 높이 2285미터, 수도원은 제벨 무사의 서북 기슭, 높이 1529미터)라고 하는 산이 그것이라고 하며, 오늘날에도 유력한 설이다. 이 산의 8부 쯤 올라간 곳에 있는 암벽에 계약을 기념하는 대리석 판이 끼워져 있으며 영어로 신명기 5장 2절이 새겨져 있다. 최근의 이스라엘 학자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일 델타의 람세스에서 지중해와 발다빌 호수(실보니스 개펄) 경계의 사주를 통과해서 동진했다고 여긴다. 이 설에 의하면, 시나이산은 엘리 아리슈 남쪽 카디슈 바르네아의 서쪽 약 140킬로미터의 평안에 솟은 높이 890미터의 <제벨. 엘하랄>이라고 하는 제단을 닮은 암산이라고 여긴다.
제2의 설은, 카이로에서 아라비아의 메카로 향해서 시나이 반도를 정동으로 횡단하여 아카바만 북단에 이르는 통로에 있다고 한다. 이것은 출애굽기 19장 16절 이하의 화산의 폭발을 생각하게 하는 정경의 묘사에서 시나이산을 아라비아 반도 서쪽에 있다는 생각과 일치한다.
제3의 설은, 델타의 람세스에서 남진하여 수에즈만 입구 근처에서 시나이 반도 서안을 따라 남하하여, 제1설의 제벨무사에 이르는 통로라고 여긴다.
이 밖에도 신명기 33장 2절, 사사기 4-5장에서는 시나이산이 에돔 가까운 세일과 결부되어 있으며, 또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솟게 한 므리바가 민수기에서는 카디슈로 되어 있는 것으로 해서 시나이산의 위치를 카디슈. 바네아 부근의 산으로 보는 설도 있다. 아무튼 오늘날에는 시나이산의 바른 위치를 확인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인의 주 관심은 시나이산의 정확한 위치보다도 하나님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해서 계약을 맺었느냐 하는데 있다. 따라서 시나이산이 호렙산이라고 불려지는 것도 그 까닭이다.
9.모세의 십계명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너희 하나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이다.
제1계명: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제2계명: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 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대에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제3계명: 너희는 너희 하나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야훼는 자기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사업에 종사하고 이렛날은 너희 하나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날 너희는 어떤 사업에도 종하사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 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야훼께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야훼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제5계명: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제6계명: 살인하지 못한다.
제7계명: 간음하지 못한다.
제8계명: 도둑질하지 못한다.
제9계명: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제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출애굽기 20장 1-17절)
이것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모세의 십계명>으로 오랫동안 지켜온 계명이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탈출 후 3개월 만에 시나이산에 도착해서 그 산에서 하나님 야훼로부터 모세를 통해서 이 <십계명>을 받고 하나님 야훼의 백성이 되었다. 이 계명은 처음에 두 장의 석판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즉 야훼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전에 모세에게 나타났고 지금 여기서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과 쌍무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것이 출애굽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된 <시나이산 계약> (출애굽기 19장 25-24장8절)이라고 하는 것이다. <십계명>이라고 하는 말은 직역하면<열 조목>또는 <열 가지 조문> (출애굽기 34장28절, 신명기 4장 13절10장 4절) 이며, 원래는 ()안에 부연 설명한 부분을 제외한 열 조문의 극히 짧은 금지 형식의 글이었다고 생각된다.
10.십계명이 폭로하는 당시의 사회상
모세 시대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하나님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계약이 맺어지고, 그 계약 아래 공동체가 형성된 사실이다. 원래의 십계명의 부분과 후일에 부연 설명한 글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구별해 두었다. 이 부분은 에로히스트 사료층(BC 9-8세기경)에 속하는 것으로 출애굽기 34장 10절 이하의 <제사적 십계> 에 대비해서 <윤리적 십계>라고 한다.
십계의 내용은 제 1계명 하나님의 유일성(3절), 제2계명 우상의 금지(4절), 제3계명 하나님의 이름의 신성성(7절), 제4계명 안식일의 성별 (8절), 제5계명 부모에 대한 존경(12절), 제6계명 살인의 금지(13절) 제7계명 간음의 금지(14절), 제8계명 도둑질의 금지(15절), 제9계명 위증의 금지(16절), 제10계명 탐욕의 금지(17절)이고, 하나님에 대한 계명(제1계명-제4계명)과 이웃에 대한 계명(제5계명-제10계명)으로 나뉘고, 이것들은 탄언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 5계명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하는 계명이 아니라 성인에게 하는 계명이며 <늙은 부모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부모는 노인이라도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보시자라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5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이웃에 대한 계명을 연결시키는 계명이다.
십계명은 제4계명과 제5계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형이며 이것은 부정적인 단정인 것이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않는다는 말로 되어 있다. 십계명의 근본적 전제가 되어 있는 전문에 <너희 하나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다>(2절)라고 되어 있으며, <너희>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와 개개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너희는 이집트에서 구출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됐으니까><너희는 살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근년에 십계명의 대부분은 계약과 관계가 없었으나 후대의 가장이나 지도자들이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금지 명령(예레미야서 35장 6,7절)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으나, 아직 정설이 되어 있지는 않다.
십계명은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종교와 도덕의 기본을 가르치는 것이다. 모세의 이름으로 불리는 대부분의 율법은 후대에 가서 된 것이지만 십계명은 그 형식에서도 다른 고대 오리엔트 제국의 법들과 다른 이스라엘 고유의 오랜 율법이며 그 원형은 모세시대의 것이라고 생각된다. 출애굽기 20장 1-17절, 신명기 5장 6-21절에 기록되어 있는 <고전적인 십계명>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는 윤리적 사회적 질서의 헌장으로 삼고 있다. 십계명이 지향하는 사회상은 하나님을 존중히 섬기는 동시에 이웃의 기본적인 모든 권리를 지키는 사회이다.
11.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사람들이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밀쳐서 낙태시켰을 경우, 다른 사고만 없으면 그 여인의 남편이 요구하는 배상액을 재판관의 조정 하에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고가 생겨 목숨을 앗았으면 제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출애굽기 21장 22-25절). 이것은 그 유명한 <복수 율>또는 <동해 보복 법>이라고 하는 것의 일부이다. 출애굽기 20장 22절에서 23장19절에 기록되어 있는 법규집은 24장 7절에 의하여 <계약서>라고 부른다. 이것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법규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특히 21장 1절-22장17절에 수록돼 있는 민법과 형법은 아마도 가나안 법을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계약서의 법 형식은 십계명(20장1-17절)과 같은 <단정 법>과 <결의 법><..할때는>,<만약...하면>하는 조건에 따라 판결하는)는 양쪽이 섞여 있다. 그 내용은 앞에서 말한 민법과 형법(21장2절-22장17절),사회 윤리(22장21-27절,23장1-9절),종교적 제 규정(20장23-26절,22장18-20,28-31절,23장10-19절)으로 나뉘어 있다. 민법과 형법에 속하는 제 규정은 금세기 초에 발견된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이나 제2차 대전 후에 발견된 다른 고전 오리엔트의 제법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계약서에 들어 있는 법의 사회적 배경은 <함무라비 법전>보다 훨씬 소박하고 가나안 정주 이후의 농경 사회이다. 그리고 계약서의 법규는 복잡한 사회생활의 제 문제를 모두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기원전 30년대 말로 소급되는 법전 계열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다.
12.입법자 함무라비는 어떤 나라를 통치했는가?
바빌론 제1왕조 6대왕 함무라비(B.C. 1792년경-1750년경)는 고대 오리엔트에서 가장 유명한 군주의 하나이다. 그 치세의 많은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함무라비의 통치와 기원전 18세기의 바빌리노아의 사회 경제사적 배경의 윤곽이 밝혀지고 있다. 즉 그 첫째는 <함무라비 법전>과 <연명 표>이고, 둘째는 함무라비의 서간집. 셋째는 당시의 법률문서 및 경제문서 등이다. 함무라비의 43년에 걸친 치세에 관해서는 그 1년마다의 기록인 <연명 표>가 남아있기 때문에 그 치적을 상당히 상세히 알 수가 있다. 그는 즉위 후 각 도시와 싸우면서 그의 기반을 굳히고 제9년에는 <풍요한 함무라비>라고 하는 대 운하를 개설하여 양강지방의 굴지의 문화적 선진지역의 경제적 번영과 민생의 안정을 꾀하였다. 그 후 약 20년간은 국내의 통치에 전력했다. 제30년부터 충실한 국력을 배경으로 해서 에나국을 맹주로 하는 북방의 연합군을 비롯해서 제31년에는 라르사의 왕 리므신을 격파하고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지배종류의 머리를 정복하고, 제36년에는 당시 스발투라고 불리는 티그리스강 중상류 지역까지 수중에 넣고 여기에 함무라비는 사상 처음으로 바빌로니아. 앗시리아를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의 주요부분을 통일 지배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함무라비 법전>의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북쪽 앗슐, 서쪽 스발투, 동쪽 에람, 남쪽 슈멜, 앗카드를 지배하는 <사계의 왕>이 된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전성시대가 여기에 세워진 것이다.
함무라비는 아무르인의 민족 이동의 결과를 총합해서 이른바 바빌론 제국을 건설한 점에서 후대의 프랑크 왕국의 칼 대제(768-814)에 비교된다.
<함무라비의 정의의 법>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은 그의 만년, 즉 메소포타미아의 통일 직후에 포고된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기존의 <우르. 남 법전>(BC 22세기). 이신 왕의 <리피트. 이 법전)(BC19세기).(에나국 법전)(BC18세기) 및 제반 판례등을 기초로 해서 새로운 편찬 성문화시킨 것이며,<함무라비 법전>중에는 선행하는 슈메르 법보다도 더욱 조직적인 것이며 도이치의 학술 조사대에 의하여 1903-14년에 앗시리아의 고도 앗슐에서 발견(1920년 공표)된 후세의 <앗시리아 법>(BC 15-12세기)보다 더욱 정리되어 있다.
13.세계 최고의 성문 법전(함무라비 법전)의 발견
<함무라비 법전>은 1901년 겨울에서 다음 해 봄에 걸쳐서 프랑스 학술조사대에 의하여 에람(이란)의 고도 스사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높이 2.25미터, 하부의 둘레 약 1.9미터 크기의 흑색 섬록식 돌기둥이며, 상부에는 함무라비 왕이 정의의 신 샤마슈에게서 법전을 받고 있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고, 그 하부에는 49란, 약 3000행에 걸쳐 쐐기꼴 글자 앗카드어로 법전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쐐기꼴 글자는 각 행이 위에서 아래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원래 샤마슈 신의 도시 시파르(앗카드의 도시, 함무라비의 거성)에 세워진 것을 기원전 12세기경에 에람 왕 슈트르크 나푼테가 바빌론을 침략했을 때 전리품으로 가져간 것이다(루브르 미술관 소장).
<함무라비 법전>은 1902년에 프랑스인 L.V.슈유에 의하여 번역되고 현존하는 최고의 성문 법전으로 여겨져 왔으나 현재는 이보다 앞선 세 가지 법전이 알려졌다. 즉 <리미피트 이슈탈 법전>(1947년 발견), <에나국 법전>(1947 년),<우르 남 법전> (1953년)등의 발견, 해독에 의하여 세계 최고의 법전이라는 명칭은 빼앗겼으나, 어느 것이나 후대의 사본이며 단편이기 때문에 완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는 점에서 <함무라비 법전>의 지위는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법전의 시행 범위가 넓다는 것, 연구가 진보되어 있다는 것, 동시대의 법률 문서나 경제 문서가 많이 현존하여 그 시대 상황이 해명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후대에 영향이 컸다는 것 등으로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법제 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어 있다. 그리고 <함무라비 법전)과 후대의 이스라엘의 제 율법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있으며, 이것은 양자가 공통된 배경을 가졌음을 시사 하는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긴 서문과 282조의 법문과 발문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전면 211란 중 약 5란이 결손 되어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에람 왕 슈트르크 나픈테에 의하여 삭제된 것이지만 현재는 여러 사본에 의하여 그 대부분이 복원되어 있다. 법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민법에 관한 부분이며, 가족 관계의 법률은 특히 많아서 68조가 있고 법전 전체의 약 4분의 1이 된다. 서문에는 신들에 의하여 온 땅의 지배권을 맡은 함무라비 왕이<정의를 나라 안에 빛내고 강자가 약자를 학대하지 않도록><악한 자를 멸망시키기 위하여>이 법전을 받았다는 것이 기록되고 다음에 왕이 국토와 인민의 번영을 위해서 행한 여러 가지 업적을 든 뒤에 바빌론의 주신 마르두크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법률과 정의를 나라말로 규정하고 이것을 포고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82개조의 배열은 다음 별표와 같다(G.R.드라이버, J.C.마일즈에 의함
14.<함무라비 법전>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 서문
@ 법문
(1) 법 집행에 대한 범죄 무고죄(1-2) 위증죄(3-4),판결의 변경(5)
(2) 재산에 대한 범죄 절도범 및 도품의 수수(6-13) 유괴(14),도망 노예의 은닉(15-20) 불범 침입과 강도(21-24),화재 도적(25)
(3) 토지 가옥 가록의 보유 권(26-41),대추 야자원의 손질(60-A),가옥에 관한 범죄(B-K)
(4) 무역과 상업, 상인에게서 빌린 돈 (L-T),상업 대리인 (V-107),술집의 관리(108-111)운반인의 횡령(112),채무에 의한 인신 저당(113-119) 관리 및 기탁(120-126)
(5) 결혼, 가족, 재산, 여 사제 또는 <남의 아내>에 대한 중상(127),아내의 정의(128) 간통(129-132),남편 부재 시의 재혼(133-136),이혼(137-143),첩으로서의 여자 농예(144-147), 병 중 아내의 부양(148-149),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증여(150), 부채에 대한 부부의 의무(151-152),남편의 살인(153) 근친상간(154-158),약혼 불이행(159-161),아내 사후의 상속(162-166), 장자에 주는 증여(165),남자의 상속(166-167),상속인의 페적(168-169),인지(170),과부의재산(171-174),자유인의 딸과 노예의 결혼(175-176),과부의 재혼(177), 여승(178-184),양자와 유아의 양육(185-194)
(6) 살상과 동해 보복 형 아비에 대한 구타(195),사람의 살상(196-208),유산(209-214)
(7) 기능직 와과의사 (215-223),수의 (224-225),이발사 (226-227),목수(228-233),
조선가와 선원(234-240)
(8) 농업 소(241-252),밭 지키는 사람의 불법 행위(253-256),농부의 고용(257-258),농구의 절도(259-260),소몰이이의 고용(261) 목자의 의무(262-267),가축과 마차의 임차(268-272),계절노동자의 고용(273)
(9)보수 수공업자의 임금(274) 배의 임금(275-277)
(10) 노예의 되찾음(278-279),외국 노예의 매입(280-282)
고대 제법전의 비슷한 사례
출애굽기 21장 29절
만일 그 황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어 그 임자에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든 여자든 사람을 받아 죽었을 경우에는 황소만 돌로 쳐 죽일 것이 아니라 그 임자도 죽여야 한다.
함무라비법전 251조
만일 어느 사람의 황소나 뿔로 받으며 시회가 그에게 뿔로 받는 것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뿔을 짧게 자르지 않고, 그 황소가 귀족의 한 사람을 받아 죽게 했을 경우에 황소의 소유자는 은 2분의 1마나를 줘야 한다.
에나국 법전 54조
만일 어느 황소가 항상 뿔로 받는 것을 알고, 또한 당국자가 그 소유자에게 그 사실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황소의 뿔을 자르지 않아 그 황소가 사람을 받아 죽게 했을 경우에는 황소의 소유자는 은 1마나의 3분의 2를 지불해야 한다.
고대 제법전의 성립 연대
법 전 성립연대 잔존상태(해독가능)
신화. 전승 BC 25세기경
법 전 성립연대 잔존상태(해독가능)
슈메리어 사본
슈메르 법문집 BC 25세기경
슈메르 사본
슈메르 주술문집 BC 25세기경
슈메르어 사본
우르카기나 개혁비문 BC 24세기 서문,5조, 발문
슈메르어 원문
판례 집성 BC24-20세기
슈메르어 사본
우르.남 법전 BC 22세기 서문,5조
슈메르어 사본
슈메르 법전 BC22-21세기 26조
(<슈르기 법전>)
슈메르어 사본
리피토.이슈탈 법전 BC 19세기 서문, 38조, 발문
슈메르어 사본
에나국 법전 BC 18세기 61조
(<빌라리마 법전>)
앗카드어 사본
함무라비 법전 BC 18세기 서문, 282조, 발문
앗카드어 원문
15.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어떻게 정주했는가?
이집트를 탈출한 일군의 사람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제 부족의 가나안 이주의 경위에 관해서는 고고학적 전진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의 전승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가 없다.
여호수아기 1장-2장에 의하면 이스라엘인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군사적 지휘 아래 전 부족이 참가해서 요르단강 서쪽으로 들어간 뒤 가나안의 중부 남부 북부 순으로 진격하여 무력으로 그 성읍들을 단번에 공략하여 기브온 부근의 성읍을 제외하고 각지의 주민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의 신명기 저자의 역사관에 의한 기록이다.
이스라엘 제 부족의 가나안 이주는 사사기 1장의 기록처럼 오랫동안 복잡한 경과를 거쳐서 달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부족이 가나안으로 이주한 시기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서 기원전 13세기 후반이나 그 이후로 생각되고 있다. 고고학의 발굴조사의 여러 성과 및 사회학적인 관점에 의한 연구의 면밀한 검토와 종합이 필요하다.
가나안 이주 후의 이스라엘 부족은 예루살렘의 북쪽 약 65킬로미터, 전 가나안의 거의 중앙부에 위치하는 그리심산의 동쪽 기슭에 있는 중요한 성읍 세겜(지금의 텔.엘.바타라.<떡갈나무의 폐허>의 뜻. 구약성서의 세겜에 관해서는 창세기 12장 6절, 35장 4절 참조)의 집회에서 하나님과 시나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야훼 하나님과 맺은 <시나이 계약>을 갱신하고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과제와 방향을 찾았다.
여호수아기 24장에 의하면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세겜에 모인 이스라엘의 부족에 대해서(아마 요셉족을 중심으로 한 몇몇 부족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가> 시나이 계약의 갱신과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충성을 권고하고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결단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세겜 계약>에 의하여 전 부족 연합 형성의 기초가 굳혀지고 이스라엘 부족 연맹(안픽티오니)이 실제로 출발됐다고 생각된다. 여호수아서 24장1-3절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되고 있다.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 지파들을 세겜으로 소집하였다. 이스라엘의 장로, 어른, 법관, 공무원들이 그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 앞에 나서자 여호수아는 온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말씀하셨소. 옛적에 너희 조상들은 유프라테스강 건너 저편에 살고 있을 때 다른 신들을 섬겼었다.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도 그러했다. 그런데 나는 그 강 건너 저편에서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다가 이 땅을 샅샅이 밟게 하고 많은 후손을 보게 해주었다."
16.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의 비밀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새로운 하나님 앞에 동포 이스라엘 백성을 규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계약 공동체를 이루었다. 새로운 신의 이름을 <야훼>라고 한다. 이것은 모세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름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야훼 하나님에게서 조상 전래의 하나님을 재인식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야훼는 이집트의 신이 아니라 분명히 사막과 산악지방의 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학자는 야훼를 남쪽 네게브 지방과 아카바만 사이 지방에서 알려져 있던 신의 이름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 야훼는 헤브라이 글자 4자음 YHWH(hwhy모두 자음이고 모음이 없다)로 표기되어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약 6800번 나온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고유명사 야훼 Yahweh의 본래의 뜻은 분명하지 않으나 야훼는 <있다>를 뜻하는 동사 하야 hayah(hy:h;어두의 h를 강하게 발음하면 hayah가 되어 <산다>를 의미한다)가 변화한 말이며 <있게 하는 자><살리는 자>라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신관이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 학자들은 자음만의 말에 모음 표를 붙여서 성서의 바른 독법을 보존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출애굽기나 레위기 24장 11절의 계명에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이것을 읽어야 할 때는 <아도나이 yn;doa}> (<나의 주>의 뜻)라는 말로 대용해 왔다. 후에 야훼를 나타내는 자음과 아도나이를 표시하는 모음이 합해서 <여호와>라고 발음되었다. 즉 아도나이의 모음을 YHWH에 붙인 것이다. 단, 제1모음은 제1자음, 아래서는 a로 읽지만 y 아래서는 e로 읽는다. 따라서 그것이 16세기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에 의하여 Yehowah라고 잘못 읽히고, 이 독법이 그리스도교에 전해져서 그리스도교도가 구약성서를 읽을 때에 이것을 <여호와>라고 읽었다.
근년의 여러 연구에서는 이 Yehowah는 <야훼>로 읽는 것이 바르다고 알게 되었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야훼는 이스라엘인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내신 구원의 하나님이며 창조자이신 유일한 인격신이다.
17.<자색의 나라> 가나안(@['n'K], Canaan) 낮은 지방)에는 어떤 신들이 있었는가?
가나안은 시리아. 팔레스틴 지방의 고대 이름이며 성서의 이야기가 전개 된 무대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레바논 공화국, 이스라엘 공화국 및 요르단 왕국에 걸친 여러 지방을 주 무대로 하고 있었다. <가나안>이라는 이름은 지중해 특산인 호네 조개(학명 무렉스)에서 만들어 낸 자홍색염료와 관계가 있으며 <자색의 나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나안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교통상의 요로이며 <육교>라고도 붙인다. 가나안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의 슈메르시대까지 소급된다. 기원전 4천 년대 초기에는 셈어족이 가나안에 정착하였고 기원전 3천 년대에는 상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가나안의 문화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 아래 발달하여 기원전 2천 년대 중엽에는 절정에 이르러 염색, 직물, 도기, 건축, 알파벳의 발명 등으로 기원전 13세기 중엽 이후에 사막의 신, 유일신 야훼를 모시고 가나안에 이주 정착한 이스라엘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페니키아를 통하여 그리스 문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우가리트, 비프로스, 듀로스, 아코 등의 도시들이 일찍부터 발흥하였다. 종교는 고대 오리엔트 공통의 다신교적 자연 종교였다.
시리아 북부 해안에 람. 샤므라(거룩한 곳)이라는 뜻이라고 하는 언덕이 있고 이곳에서 출토된 점토판 문서들 <우가리트 문서>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엘(남신)과 그의 아내 아세라(여신), 그의 아들 바알(남신)과 그의 아내 아나드(여신) 그리고 다곤(우가리트에서는 바알의 아버지로 숭배되고 있었다. 셈족의 신이며 원래는 곡물 신, 구약성서에서는 BC12세기에 가나안 연안지대에 정착한 폐르시아인의 신이며, <삼손과 들릴라>이야기에도 나온다. 이 지역의 신은 연애 투쟁 신화나, 생식과 풍요의 제사의식이 각지의 성소에서 거행된 것이 알려져 있다. 유일신 야훼를 섬기는 이스라엘인은 이런 종교와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옛날부터 큰 발견은 우연한 것이 많다. 예를 들자면 <아마르나 문서>(1886),<그노시스 문서>(1946 또는 1945경우라고도 한다) <사해 문서>(1947년, 또는 1945년)의 경우가 그렇고 <우가리트 문서>의 발견도 예외는 아니었다. 1928년 5월에 언덕부근에서(항구 도시의 북쪽) 시리아인의 한 농부가 자기 밭을 갈고 있을 때 그의 팽이가 우연히 무덤 자리를 찍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 다음 해 1929년부터 프랑스의 학술 조사대에 의하여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시까지 계속되었고 전후에는 1950년에 재개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 폐허와 같이 일부를 발굴 조사한데 불과하지만, 이것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굴 조사의 하나이다. 우가리트에서 출토된 점토판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은 슈메리어,앗카드어,푸르리어,힛타이트어,이집트어,우가리트어, 그리고 에게음절문자로 표기된 언어이다. <우가리트 문서>는 문학, 행정, 외교 문서 등으로 되어있다.
18.우가리트 문학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가리트 문학은 두 가지 중요한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다. 즉<신화>와 <서사시>(epic)이다.
C.H.고든에 의하면, 신화라는 것은 풍요에 관계되어 있는 기본적인 양상(예를 들면, 비나 이슬)등의 자연 현상이나 인류의 복지(예를 들면, 평화나 건강이나 번영) 영향을 주는 일반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야기이고, 서사시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영웅담에 해당한다. 이것들은 모두 운문(poetry)으로 쓰여 져 있다. 전자로는 <바알과 아나도에 관한 신화), 후자로는 <케레트 서사시>등이 있다.
<우가리트 문서>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기원전 2천 년대 후반, 특히 기원전 15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서 번영하고 있던 우가리트는 기원전 14세기 전반에 왕위에 있던 니크마드 2세(?-1345년경)의 시대에는 남쪽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북쪽의 힛타이트에도 조공하고 있었다. 또한 우가리트 왕국의 국가 구조는 소규모이긴 하지만 강대한 왕권을 가진 오리엔트 형의 국가 구조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문서 가운데 있는 시가의 단편들은 구약성서에서 이교의 신으로 악평을 받고 있는 농업신이나 영웅에 관한 신화와 전설을 전하고 있다.
우가리트 문학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이주하기 이전의 가나안의 농경 종교의 양상을 아는데 극히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우가리트어 (Ugarit Tablets)는 헤브라이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구약성서의 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골든은 그의 저서<우가리트 문학과 고대 세계>라는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가리트에서 출토된 점토판 문서들은 20세기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 사료이다. 이것들은 구약성서의 제반 연구에 혁명을 가져왔고 그와 함께 헤브라이학의 착실한 발전을 촉진해 왔다. 우가리트 텍스트가 기원전 2천 년대 말엽의 그리스와 레반트의 영웅시대의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한 사실은 오리엔트 학 뿐 아니라 그리스 학(classics)에 대한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19.동부 지중해 세계에 어떤 역사가 숨겨져 있는가
기원전 2천 년대 중엽에서 후반에 걸쳐 동부 지중해 주변의 여러 지역(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소아시아, 그리스, 크레테 등)에서 발전단계를 달리하는 여러 종족이나 민족이나 국가가 서로 교류하고, 또는 지배와 종속관계를 맺고, 또는 전쟁과 평화속에 경합하며 하나의 역사적 세계를 이루어 간 것이 밝혀지고 있다. 역사적 산물인 이 세계는 <동부 지중해 세계>라고 불리고 있다. 따라서 이 세계는 일정한 역사적 조건에 의하여 형성되고 일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붕괴된 세계이다.
골든은 이 동부 지중해 세계에 전개된 문화 복합체를 기원전 14세기 전반에 이집트 제 18왕조의 아멘호테프 4세(BC 1379경-1362년경)의 치세에 일어난 종교 개혁의 중심지 현재 이름 텔.엘-아마르나를 따라 <아마르나 통합체>Amarna Synthesis라고 불렀다.
골든은 구약성서와 호메로스의 작품 사이의 이집트, 우가리트, 이스라엘, 크레테 및 그리스의 문화적 친근 관계를 원문에 근거해서 실증적으로 파악하려 했고 논증 과정에는 비판도 있으나 기원전 2천 년대 중엽에서 후반에 걸쳐서 동부 지중해 주변의 여러 지역에 하나의 문화 통합체가 있었다는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있다. 이하 간단히 골든의 학설을 소개하자.
그의 기본적인 견해는, 종래 서양 문명의 2대 원류로서 대극적으로 파악해 왔던 넓은 의미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하나의 공통의 모태로서 역사적 세계 안에 나타난 것을 우가리트 출토의 텍스트를 근거로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우가리트 문서> 서사시 중에 있는 셈족 요소 뿐 아니라 그리스적 요소에도 주목하여 외교문서나 서간 등에서 기원전 14세기의 아마르나시대를 중심으로 해서 우가리트 왕국이 아나토리아-에게 세계와 셈 세계와 또는 이집트의 문화와의 접촉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리적 역사적 위치에 놓여있으며 각 나라들과 교섭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호메르스의 세계와 구약성서의 세계와의 유사는 우연이 아니라 그리스와 이스라엘 양쪽을 움직인 공통의 역사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솔로몬 이전의 우가리트, 그리스, 이스라엘의 문학에 있어서의 서사시 중의 공통 테마는 이스라엘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보다 오히려 그리스나 고대 오리엔트에 가까웠던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고, 그리스는 고대 오리엔트 세계의 동부 지중해 권 안에 이스라엘과 함께 넣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서양인에게 있어서 문명의 기본이 되는 성서와 호메로스의 작품의 유사는 보편적 모티브라는 식의 우연이 아니라, 그리스 문명과 헤브라이 문명의 공통 유산에 근거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그는 이것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에서 출토한 텍스트들, 구약성서, 호메로스의 작품 및<우가리트 문서>특히 그 문학작품 텍스트의 연구에 근거한 모든 성과를 가지고 밝히고 있다.
20.동부 지중해 세계가 서양 문명의 기원인가
골든은 원 텍스트에 근거, 일관해서 서양 문명의 기원 문제, 특히 그리스와 이스라엘의 문화적 밝히려고 한다. 그 구상은 웅대하고 거시적인 사관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18항에서 언급한 <우가리트 문학과 고대세계>의 의도도 원 서명 및 부제가 가리키는 것처럼 기원전 2천 년대 중엽의 우가리트 및 크레테의 비문이 보여주고 있는 세계 속에서 서양 문명의 기원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 책은 전 항에서 소개한 저자 골든의 종래의 주장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본서의 독자성은 우가리트 문학 비문의 해독과 크레테 출토의 선문자(linea) B의 해독의 성과를 결합시키면서 종래의 주장을 전개시키고 있는 점에 있다. 언어학자인 동시에 구약성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헤브라이트인 저자의 문제의식 안에서의 우가리트 문학의 위치는 서사시 텍스트의 번역이 이 책 전체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제1장 우가리트 문학과 그 중요성, 제2장 우가리트 문학과 그레코 헤브라이의 유연관계 제3장 미노아 문명기의 크레테, 제4장 우가리트 시가, 제5장 우가리트 산문 텍스트, 제6장 결론으로 되어 있다. 제4장은 골든의 지금까지의 실증적 연구의 모든 성과를 근거로 한 새로운 번역이다. 이 책은 골든의 텍스트 연구가 기초가 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골든은 영웅 케레트를 중심으로 한 서사시들 속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구약성서의 창세기의 족장 설화를 결부시키는 고리를 찾으려 한다. 이 서사시에서 비와 풍요의 신 바알과 전사의 여신 아나도를 둘러싼 신화, 그리고 영웅 케레트가 빼앗긴 아내 프르라이를 되찾는 <아내 탈환 이야기>등을 찾아내고 이스라엘이 반발한 가나안의 풍습을 지적하고 있다. 골든의 구상에서 중요한 것은 <케레트 서사시>이다. 이것은 1930년에서 다음 해 1931년에 걸쳐서 발견된 것이며, 석 장의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순서에 따라서 IK IIK IIIK라는 약호를 붙였다.
IK에서는 이야기의 주인공 케레트가 빼앗긴 아내 프르라이를 되찾는 광경이 기록되고, IIIK 에서는 케레트와 아내 프르라이의 결혼에 대한 신들의 축복과 자손의 약속에 관한 예언이 기록되고, IIK에서는 IIIK에서 약속된 케레트의 아이가 출생하여 병을 앓는 케레트가 건강을 회복하는 광경이 기록되어 있다. 골든은 아내를 잃은 왕 케레트가 아내 프르라이를 되찾는다는 모티브는 트로이의 헬레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모티브와 공통된 것으로 보고, 우가리트 문학은 호메르스의 <일리앗>과 구약성서의 족장 설화와를 결부시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리고 이 결론에 중요한 관계가 있는 크레테 문명의 성격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한 선문자 B의 음가를 크레테 출토의 선문자 A의 부호에 맞추어, 선문자 A의 부호 중 약간이 그 부호의 근거가 된 것을 나타내는 서북 셈어의 어두움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선문자 B(BC 1450년경-1200년경)가 사용되기 이전의 크레테인이 서북 셈어계의 말을 쓰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봤다. 그리고 이것을 다른 비문에도 적용하여 선문자 A를 서북 셈어로 해독하는 방법을 가리키고 있다.
근년에 특히 선문자 A의 해독이 세계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것을 인도 유럽어계의 말의 하나인 힛타이트어로 해독하려는 시도와 골든처럼 서북 셈어 (페니키아어나 헤브라이어와 같은)로 해독하려는 시도가 있다. 어느 쪽이나 난점이 있으며 아직 언어 진단의 단계에 있기는 하지만 골든의 주장은 개연성이 높은 가장 유력한 설이라고 한다. 선문자 A의 해독을 둘러싼 논의는 크레테의 주민 구성이나 시리아, 소아시아 지방의 언어와 관련된 관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사시들의 공통된 모티브는 공통의 문화권이 존재했다는 아직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기원전 2천 년대 중엽에서 후반에 걸쳐 미케네,크레테,우가리트,이집트,그리고 힛타이트 등을 포함한 <동부 지중해 세계>라고 하는 세계, 문화 복합체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회막 : d[e/m lh,ao(ohel moed) 무티어 (J.A.MOTYER)
하나님의 백성은 시나이산에 진을 쳤다. 매일 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그 산을 뒤덮고 있는 구름을 바라보았다(출 19:16-20). 이는 그것이 그들과 말씀을 나누시기 위하여 강림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표시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그들은 모세의 지시에 따라 회막으로 불리게 될 정교한 장막을 건립할 자재들을 가져다 하나님 앞에 드렸다. 그 회막이 완성되어 세워지던 날에 그들이 바라보았을 때에도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출40:34).여호와께서는 그 가운데서 그의 백성들 중에 거하시기 위하여 실제 강림하셨다. 이것이 바로 회막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사진 : 시나이산의 일출
율법은 시나이산에서 주어졌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출 24장에 서술) 의식은 율법의 제정을 바른 위치에 두고 있다. 그것은 다음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열 두 기둥이 세워진 단(4절)은 하나님의 온 백성이 그 면전에 나아온 것을 뜻한다(이는 이스라엘이 열 두 지파로 되었기 때문이다). 이 진리는 돌에 표시되어 있다. 그 관계는 영원한 것이다. 단에 뿌린 제물의 피 절반(6절)은 백성이 하나님의 면전에 나아올 수 있는 것이 피 흘림을 통해서임을 의미한다. 죄는 필연적으로 죽음, 곧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 죽음의 형벌이 만족될 때 백성은 하나님께 나아와 영구히 그의 면전에 설 수 있게 된다. 다음에 모세는 하나님이 그의 피로 사신 백성에게서 요구 하시는 바 순종의 형식인 하나님의 율법(언약서)을 낭독한다(7절). 다음에 모세는 하나님이 그의 피로 사신 백성에게서 요구하시는 바 순종의 형식인 하나님의 율법(언약서)을 낭독한다(7절). 백성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라고 약속한다. 이에 모세는 언약의 피를 그들에게 뿌려서(8절)알고 지었든 모르고 지었든 그들이 지은 일상생활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드린 제물과 그들을 일치 시킨다. 그러므로 시내산은 6:7의 언약 전반부 곧 "내가 너희로 내 백성을 삼으리라"는 약속의 성취를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에게로 이끄셨고 피 흘림의 제사를 통해서 그들에게 살길과 그와 동행 할길을 다 마련하여 주셨다.
사진 : 사용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덮개를 젖히고 가까이에서 본 성막의 모습
내주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그 언약의 나머지 절반은 어찌되었는가? 하나님은 또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6:7)고 약속하셨다. 백성들의 장막 가운데 그의 장막을 세우고 그들 가운데 거하심으로써 여호와께서는 이 두 번째의 부분을 성취하신다. 그는 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회막은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완성과 절정을 뜻한다. 그가 행하신 모든 일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기 위 한"(출 29:43-46) 최종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회막에 관한 기사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내주하시는 사실에 큰 강조점이 놓여 있다. 그 사실은 두 가지 특별한 면에서 강조되고 있다. 첫째로 이 사실을 주제로 하는 일련의 구절들이 나온다. (예.25:8,22,29:42 이하 40:34-38). 그의 백성이 항상 시나이산에서 깨달은 가치관을 간직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거하셨고 또 그들은 그의 임재를 눈으로 확인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기억해야 할 사실만을 제공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또 그들과 함께 여행하시기로 결정하셨다. 회막은 시나이산에서의 체험보다 더 강력한 무엇을 의미하였다. (24:18을 40:35과 비교하여 보라).그들은 점차 희미해져가는 한 순간의 체험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에 그들에게 그의 임재의 지속적인 실체를 보장하여 주실 것이었다.
회막
회막에 관한 기사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말미암아 중단되고 손상을 입는다(출 32-34장).이 거역행위의 앞면에는 회막의 상세한 설계도가 나온다(출 25:31장). 그리고 그 사건의 뒷면에는 그 설계대로 조목조목 제작한 사실이 나온다.(35-40장). 우리가 그처럼 세세한 제작과정을 읽어야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40:16이하의 요약된 진술로도 충분치 않겠는가? 작업진행의 각 과정을 일일이 숙고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큰 진리는 분명히 강조되어야 한다. 곧, 인간의 사악함과 거역에서 비롯된 극히 무례한 행위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고자 하신 선정된 목적을 포기하시도록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기쁘신 뜻에서 나온 계획대로 행하신다. 그리고 아무 것도 그를 제지할 수가 없다. 인간은 인내하지 못하고 거역할 수도 있으나 하나님은 끝까지 인내하심으로써 계속해 나아가실 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
그런데 회막을 통해서 구체화된 일반적 진리는 곧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 중에 거하기로 작정하셨으며 무엇이나 그가 원하시는 대로 그 위대한 회막의 설계와 제작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25:10이후로 그 서술은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간다. 곧 법궤와 떡 상과 등대(25:10-40)가 나오고 다음이 성막(26:1-37)과 단과 뜰(27:1-19)이 나온다. 이것은 질서가 서 있는 이야기이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 질서는 특이 하고도 예상 밖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사람들은 의당 "건물"이 먼저 서고 그 다음에 물건들을 보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회막 전체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 중에 거하기 위하여 강림하실 때 필연적인 "덮개"로 존재하였다. 모든 일의 결정권은 사람과 그의 필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성품에 있다.
이와 같이 회막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성경진리를 요약하고 있다. 곧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성품에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종교를 자기 자신의 쾌락의 도구로 삼거나(말하자면) "도움"을 얻을 것으로 짜 맞추는 인간의 경향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종교가 만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백해무익한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사 29:13).
그림 /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
온전히 하나님이 지시하신 이 종교의 구심점에는 법궤가 있었다. 모든 것들이 그것을 지행하고 있었다. 세 단계의 문(26:31,32,36,37,27:16,17)을 거쳐야 그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이는 회막의 뜰에 들어가는 것은 곧 하나님의 면전에 들어가는 것을 뜻하였기 때문이다. 법궤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번제단(27:1-8)과 분향단(30:1-6)과 제물의 피를 최종적으로 뿌릴 속죄소(25:17이하, 레16:14)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희생의 제물과 기도와 흘린 피의 효력을 통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법궤 안에는 율법(십계명)을 새긴 언약의 돌판 둘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최고의 문자적인 진술이었다(25:16). 그와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이 홀로 거하시는 이유(그의 거룩에 미칠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와 죄인이 피 흘림을 통해서 그의 면전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피는 죄를 속하기 위하여 희생된 생명을 뜻하기 때문에)를 설명하여 준다.
그러므로 회막의 전체구조는 분명하고도 찬란한 진리들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의 중심적인 주장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요약해주고 있다. 곧, 하나님은 그의 백성 가운데 내주하시며(고전 3:16,엡2:19, 22). 그는 그의 백성이 자기 자신의 일시적인 생각 대신에 그의 뜻에 따라서 그를 경배하기를 원하시며(막 7:6-13).오직 희생제물과 그 흘린 피를 통해서만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와 그와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엡2:11-18,히10:19-25)
레위기(Leviticus)
1.명 칭
히브리어 성경에는 본서의 첫 말을 따서 [와이크라 ar;q]Yiw' (wayyiqra')]부르시니 라고 되어 있다. 옛날 유대인들은 제사장의 율법이라고 불렀는데 사실 본서는 레위 지파 제사장 들을 위한 예배 지침서이다. 70인역에는 히랍어로 [레비티콘 λεβίτίκον]이라고 불렀고 벌게잇에서는 [레비티쿠스]라고 표기 하고 있다. 오늘의 영어 성경의 명칭은 벌게잇과 같다.
2.내용과 주요 사상
레위기는 선민 이스라엘의 종교적 및 사회적 생활 전반에 걸쳐 그들이 준수해야 할 율법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림설명 / 율법 판을 받는 모세 : 이러한 주제의 모자이크는 라벤나의 산 비탈레성당의 모자이크 (532-547년)에도 그 예가 있지만 그 화려한 색채에 의한 산의 묘사에 대응하여 시내산의 것은 무겁고 어두운 암산의 무대가 되어 이 장면 의 실제적 풍경을 잘 묘사한 듯하다. 바로 여기에 일종의 멋이 있다. 그러나 인물상 표현 등의 양식을 보면 이 모자이크 화가의 집단은 코스티니아누스가 콘스탄티노플 방면에서 파견하였다고 추측한다. 565-566년 모자이크 시내산 하기아. 에카트리니 수도원장 승리의 문 위 벽 오른쪽.
시나이산에서 언약에 의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선정민족 으로 원칙적 조직을 본 것이다. 이미 하나님은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본적 율법을 주셨고 성막도 세워졌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 속에 이미 임재 하시어 통치 하셨다. 이제 백성들이 긴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예배 하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주신 율법이 바로 레위기의 내용이다.
본서는 선민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계시되어 있다. 종교의식과 예배의 법이 주가 되지만 동시에 윤리적 생활의 규칙도 중요한 내용이다. 선민 이스라엘은 우주의 창조주 되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하여 구원해 주신 여호와께 찬송과 헌신의 표로 [번제]를 드리게 되었고, 또 생명의 주되신 은혜로운 하나님과 또한 이웃과의 교통과 화목의 표로 [화목제]를 드리라고 하셨으며 범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노엽게 한 자는[속죄제]를 드려 죄의 용서를 구하라고 하셨다. 본서에서 우리는 구원의 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의 은혜롭고 경건한 또 엄숙한 종교 생활의 법을 배우게 된다. 또 본서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제물을 성별하며, 제사장들이 마음과 몸을 성결케 하며, 부정 한 자는 반드시 먼저 정결케 된 후에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내용 분해
1.제사법 레1:1-7:38
1) 번제, 소제, 화목제에 관한 법 레 1:1-3:17
2) 속죄제에 관한 법 레4:1-6:30
3) 기타의 몇 가지 규정 레7:1-38
2.제사의 시작 레8:1-16:34
1) 제사장과 제단을 성별함 레8:1-36
2) 아론이 제사를 드림 레9:1-24
3)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죄 레10:1-20
4) 정결 법 레11:1-15:33
5) 속죄일을 정하심 레16:1-34
3.거룩하게 되는 법 레17:1-27:34
1) 회막 문 이외의 도살을 금함 레17:1-16
2) 부정을 금함 레18:1-30,레20:1-27
3) 거룩할 것과 이웃사랑을 명령함 레19:1-37
4) 제사장에 관한 법 레21:1-22:33
5) 성회에 관한 법 레23 :1-44
6) 공의에 관한 법 레24:1-23
7) 경작과 가난한 자에 관한 법 레25:1-55
8) 순종에 대한 축복을 재확인하심 레26:1-46
9) 서원에 관한 법 레27:1-34
4.다섯 가지 제사
1.번제 (레위기 1장)
2.화목제 (레위기 3장)
3.소제 (레위기 2장)
4.속죄제와 속건제(레위기 4:1-6:7)
희생의 제물을 바치는 것은 고대 근동종교의 한 통례였다. 이스라엘은 그 이웃 나라들의 제사방식과 개념들 중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스라엘만의 제사제도는 시나이산에서 내리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그 윤곽이 확정된 것이었다. 레위기에 제시된 그 절차는 한 성소와 단과 그 직무를 수행할 제사장 직분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의식들이 후대에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었고 또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는 분명치가 않다.
1.번제
(레위기 1장) : hl;[ ('olah) [그] oJlokauvtwma[o{lo"(전부)와 kaivw(태움)의 합성어] 영: Burnt offering . 번제의 특징은 제물 전체를 불사르는 데에 있다. 번제의 히브리어 명칭은 "타오르다"의 개념을 갖고 있는데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와 같은 뜻이다. 이러한 요점들은 번제가 하나님께 대한 예배자의 존경심과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예배자가 그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써 자신을 그 제물에 온전히 일치시켰다. 그 제물-드리는 자가 자기 소나 양 혹은 염소의 떼 중에서 가져온 것(가난한 자는 새를 가져와도 가하였다)- 은" 흠 없는 수컷"으로서 최선의 것이어야 했다
2.화목제
(레위기 3장) : [히] !l,v,(shelem) [그] iJlasmo"(hilasmos) 영: Peace offerings
화목제의 특징은 그 제물을 나누어 먹는다는 데에 있다. 일부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단에서 불살랐고, 일부는 제사장들에게 돌려졌으며 일부는 드리는 자와 그의 가족이 나누어 먹었다. 히브리어 명칭은 "화목"혹은 "복지"를 뜻하는데 이 제사는 때때로 교통 혹은 교제의 의식으로도 간주되고 있다. 그 전체를 놓고 볼 때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과 그의 이웃들 사이의 바른 관계를 지속시키고 그것을 공고히 하고자 하는 소망의 표시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이 화목의 소망은 어떤 종류의 서원과 함께 드린 제물(레 22:21)이나 감사제(레22:29).혹은 자의로 드리는 예물(레22:21)로도 표시될 수가 있었다. 그 제물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개인의 감사를 뜻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자발적인 헌신의 표시였다.
3.소제
(레위기 2장) [히] hj;n]mi (minchah) [아] hj;n]mi (minchah) [영] Cereal offering
히브리어 명칭은 "선물"혹은 "공물"의 뜻을 갖고 있다. 별개의 뜻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 제물을 필시 경외심과 감사를 표시하였을 것이다.
4.속죄제와 속건제
(레위기 4:1-6:7):속죄제 taF;j'(chatta'th)[그][句]perivaJmartiva"(peri hamartias). 속건제[영] Sin offering[죄제]영 :Guilt offering [히] !v;a; ('asham)
절차상 이 두 제사는 서로 비슷하다. 그리고 그 의미상의 차이점을 정확히 가려내기는 어렵다. 속죄제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를 다루는 반면에 속건제는 배상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사람의 상해가 포함된 경우들을 다루고 있을 것이다. 둘 다 죄를 객관적으로 다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제물의 피를 사용할 것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둘 다 부지중에 지은 죄 혹은 피할 수 없는 율법의 죄들을 다룬다. 그러므로 이 문맥에서는 "죄"가 자주 순수한 의식적인 의미를 갖는다. 해산한 후에 속죄제를 드리는 경우와 같다(레12:6).이 경우에는 그 제사가 제물을 드리는 자를 거룩한 공동체의 완전한 회원으로 회복시켜 준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 모든 제사들은 "속하는"-죄를 덮는- 제사로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은 무릇 제사의 행위가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가 언급되는 문맥에 온전히 일치됨을 암시한다.
제사제도는 분명히 오용되기가 쉽다. 그래서 선지자들에 의해서 비판을 받았다(예를 들면, 암5:25,사1:11-12 렘7:22). 필시 그 당시 제사에 대한 백성의 태도가 비판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또 그 밖의 수많은 문맥들이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삼상 15:22-23,시40:6-8). 하나님이 제사를 받으실 것만 생각하고 그에게 순종해야 할 도덕적 의무는 소홀히 하기가 일수였다. 죄를 순전히 하나의 외형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그 심각성을 둔화시키고 축소시켰다.
한편 제사제도는 내면적인 바른 자세를 요구하였다. 속죄제는 죄의 고백이 따라야 했고 가능한 곳에서는 일을 바로잡는 순수한 시도까지도 수반되어야 했다(렘 5:5,민5:7).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온 회중의 죄를 고백하고 나서 속죄염소를 광야 무인지경으로 보내었다(레 16:21).더욱이 율법은 "높은 손으로",곧 짐짓 혹은 고의적으로 범한 죄를 속할 제사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민15:27-31).
하나님의 약속과 권능에 의해서 확정된 각 제사는 실제적인 효력을 갖고 있었으나 이것은 인간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능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임을 확증해 주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접촉점으로서 사람을 하나님과의 교제 안으로 회복시켜 주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불어놓을 수가 있었다. 여하튼 인간의 행위만이 그 율법들의 준수에 있어서 유일한 요소는 아니었다.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제사장들은 예배자와 그의 드린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셨거나 거절하셨다는 것을 선언해야 했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제사가 기껏해야 죄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불완전한 해결책에 지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주고 있다. 제사들 그 자체는 지금 사라졌으나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단번에 드리진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다.
5.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들 죠지 캔스데일(GEORGE CANSDALE)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대체적으로 레위기 목록의 반복)의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들의 목록은 자주 무시되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도락이나 기호에 근거한 금기 음식의 목록과는 아주 달리 이 목록은 지난 세기말에 이르러서야 발견되었고 또 아직 일반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곧 동물들이 사람에게 위험한 질병들을 옮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엄밀한 구분은 못 될지라도 이 목록을 대게 다섯 그룹-육지동물들, 새들, 파충류, 물속동물들, 그리고 곤충들로 나눌 수가 있다.
집쥐 : 레위기는 기어 다니는 길짐승 가운데 부정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1. 모피를 가진 정한 육지동물들은 가축이든 야생동물들이든 한 형태에만 제한되어 있다. 그것들은 반추동물 혹은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들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도 그 종류는 우리에게 중요한 식육을 제공해준다. 그 밖에도 식용할 수 있는 동물들이 더러 있었으나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들만 먹으라는 단순한 규례를 따르는 것이 더 안전하였다. 굽만 갈라져 있거나 되새김질만을 하는 짐승들은 제외되었는데 그 중 세 종류만 든다면 토끼와 사반과 돼지가 있다. 그 주된 목적은 필시 돼지를 제외시키는 데에 있었을 것이다. 돼지는 최근에 와서 여러 가지 심각한 사람의 기생충과 균들을 옮기는 숙주로 알려졌다. 돼지고기는 완전히 익혀서 먹을 때에만 안전하다. 더욱이 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의 일종으로서 무의식적으로 그 밖의 질병들을 옮길 수가 있다.
2. 새의 종류는 너무 많아 어림으로도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금지된 종류만 밝히고 나머지 다른 종류는 먹을 수 있다고 진술한다. 이 중 어떤 이름들은 매우 난해하고 문맥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어서 다양하게 번역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새들은 맹금류와 까마귀 종류와 그 밖의 썩은 고기를 먹거나 육식을 하는 새들이라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3. 레위기 11:29-30의 목록은 일체 금지된 파충류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뱀은 42절의 '배로 밀어 다니는 것'에 해당되어 금지된 목록에 포함된다.
4. 비록 물고기들은 어느 목록에도 실제로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으나 "물에 있는 모든 것"(9절) 중에 포함된다. 사실 이 부류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곧 "정한 것"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이어야 함으로 오직 일반 물고기들만 이에 해당이 된다. 모든 갑각류와 조개류 등은 광범위하게 배제되고 있다.
5. 곤충은 그 종류가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한 나라들에서도 불과 몇 가지만 먹는다. 흰개미 종류는 지방에 따라 이용될 수가 있으나 메뚜기, 베짱이, 귀뚜라미, 팟종이 종류-한 쌍의 뛰는 다리에 의해서 쉽게 식별이 되는 곤충-는 단연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이것들만이 정한 곤충들이다. 이 곤충들은 좀 생소한 생생한 문구-"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 땅에서 뛰는 것" -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다. 메뚜기는 이 종류들 중에 집단생활을 하는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것들은 전적으로 채식을 하며 고단백질과 칼로리 함량이 많아서 훌륭한 식품으로 이용된다. 따뜻한 나라에서는 메뚜기가 일찍부터 표준 음식이 되어 왔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이 메뚜기가 규정식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
6.피 제사의 의미 모티어(J.A.MOTYER)
동물의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리는 관습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다루시는 초창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4:4). 그 관습은 성경 전체에 가득 퍼진다. 신약성경에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설명해 주는 기본적인 용어들을 제공해준다.( 히브리서 9:11).
핵심 구절인 레위기 17:11은 제사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필요를 위하여 그가 베푸신 은혜의 방편이다. 제사의 기본적인 의미는 단순히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혹은 선물이라고 말하는 (많은 구약 전문가들이 그렇듯이)것은 이 점과 모순이 된다."제물"로 번역된 낱말은 분명히 선물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 제물을 가져오는 사람은 그 희생제물의 생명인 피를 취하여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방법을 통해서 그는 새 생명을 그의 하나님과의 교제에 불어넣는다. 레위기 17:11은 우리에게 피와 제물의 의미에 대한 두 가지 큰 단서를 제공하여 준다.
성막 안의 성물들을 복원해 놓은 모습 : 좌로부터 분향 단, 일곱 가지로 된 금 등대, 그리고 떡 상이다.
첫째로, 피 흘림의 목적은 죄를 속하는 데에 있다. 그 말이 "속하다"는 뜻으로 번역될 때는 언제나 값-속전(몸값)-을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피가 죄를 범한 자의 "칸막이가 된다"는 말은 타당하지 못하다 피를 흘림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죄의 빚을 갚기에 충분한 값을 치렀다고 말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경에서 언제나 그러하듯이 "죄의 삯은 사망이다"는 진리가 확인된다. 무릇 죄나 죄인은 전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면전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곧 사망이다. 오직 이 죄의 삯이 지불될 때에만 그 선고된 형벌이 풀리고 죄인이 다시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면전에 들어갈 소망을 가질 수가 있다. 레위기 17:11은 이것이 바로 정확히 피가 하는 일이라고 말씀한다.
둘째로, 우리는 피가 "생명을 위하여 : vp,n neh'-fes<"죄를 속한다는 말씀을 대한다. "위하여"라는 말은 언제나 값 혹은 비용을 표시할 때 사용되는 히브리어 전치사를 번역해 놓은 것이다(왕상 2:23,잠7:23,애5:9). 그 말은 정확한 공평을 요구하는 법적인 기본관계의 문맥 곧 "생명은 생명으로"(신19:21)-"생명에 대한 값은 생명으로"-와 같은 구절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레위기 17:11에서 "속한다"는 말이 "값(속전)을 치른다"는 의미이듯이 "생명을 위하여"라는 말도 "생명의 값을 치루기 위하여"의 의미이다. 달리 말해서 "피"는 죽음 - 생명의 종국 -을 뜻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비유적 용법에서와 같다(창 9:5, 37:36). 제사에서 생명은 종국을 만난다. 흐르는 피는 그 제물을 드리는 자신의 죄로 얼룩진 삶을 위한 하나의 대속물로서 그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생명이 취한 바 되었다는 상징이요 증거였다.
동물제사는 그 원리를 표시하고 있다. 그 원리와 실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 구약의 백성은 하나님이 주신 바 장차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하나의 예표를 갖고 있었다. 예수의 대속적인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단번에 자신의 몸을 드리신 피의 제사요 불의한 자를 위하여 의로우신 자가 죽으신 죽음이었다
7.각종 절기들 필립 버드(PHILIP BUDD)
매우 일찍부터 유대의 한 해는 큰 절기들- "여호와의 절기들"-에 의해서 나뉘어져 있었다. 어떤 절기들은 바뀌는 계절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백성에게 하나님의 끊임없이 공급하시는 은혜를 상기시키고 그들이 받은 모든 것 중에서 어떤 감사의 표시를 할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다. 다른 절기들은 이스라엘 역사의 큰 사건들, 곧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명백하게 개입하신 사건들을 기념하는 것들이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선한 선물들을 전심으로 즐기고 기뻐하는 절기들이었으며, 그와 동시에 성회로 모여서 하나님의 용서와 정결함을 추구하는 기회들이었다. 이 절기들은 단순히 형식에만 그치고 내용이 없는 의식으로 지켜질 것이 결코 아니었다. 선지자들은 그 절기들을 이처럼 천박한 것으로 전락시킨 자들에 대해서 신랄한 말로 책망하고 있다. 절기들의 목적은 영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갖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1.유월절과 무교절(출 12:1-20:15).
[히] js'P, (pesach) [그] pavsca(pascha) [영] Pass over뜻은 [넘어감, 지나감]
목축과 농업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이 두 절기들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함께 지켜졌다(출 11-12장을 보라) 유대월력으로 1월(3/4월) 14일에 시작하여 한 주간 동안 계속되었다.
2.칠칠절(초실절)(출23:16,레23:15-21).
[히] t[obuv; gj(hag shabuath) [영] Feast of Weeks
뒤에 가서 오순절로 알려진 이 절기는 유월절로부터 7주 후 50일째 되는 날에 지켜졌다. 이것은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로서 본질적으로 농사절기였다.
3.수장절(초막절)(출23:16,레23:33-43).
[히] #ysia;h; gj;(chag haasiph) [영] Feast of ingatherin
일반적인 추수 끝에 지켜진 가을철의 절기. 백성들은 풀잎과 나뭇가지로 지은 초막에서 7일간 기거하였다. 본질적으로 농업 감사절이었으나 그것은 또한 광야에서 그들이 장막생활을 하던 일을 기념하는 절기였다.(레23:43). 이 모든 절기들은 일상생활의 모든 일들을 쉬는 "거룩한"때들로 간주되었다. 그 밖에도 여러 절기와 때들이 있었다(모두가 다 어떤 면에서 7 이라는 숫자와 관련되어 있었다).
4.안식일
[히] tB;v' (shabbath) [그] savbbaton(sabbaton) [영] Sabbath
일곱째 날에는 모든 일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이 날에는 매일 드리는 제물의 갑절을 드렸다. 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던 일을 마치신 것(출20:11)과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신 5:15)과 사람의 안식과 원기 회복의 필요(출23:12)에 관계되어 있다. 포로시대 이후에는 안식일에 관한 규례가 엄격하게 강화되었고(느13:15-22) 이 날을 지키는 것이 유대교의 현저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5.월삭
[히] [名] vd,jo (chodesh), +[名] wOvdij;B](b chadisho 영: New moon
이날은 안식일과 나란히 언급되고 있다(사1:13).특별한 제사를 드리는 것 (민28:11-15)과 나팔을 부는 것(민10:10)이 월삭절기의 구별되는 특징이었다. 초기에는 또한 특별한 식사와 가족제사도 있었고(삼상 20:524) 때로는 선지자들에게 나아가 상담을 하기도 했다(왕하 4:23). 유대월력과 제7월(9/10월)의 월삭 곧 그달 초하루는 특별히 나팔절(민29:1)로 지켜왔다.
6.안식년
[히] @/tB;v' tn'v] (shenath shabbathon) [영] Year of sloemn rest, Sabbatical year. 율법에 의해서 매 7년에 안식년으로 지켜 땅을 쉬게 하였고(레25:1-7),또 매 일곱 칠년 곧 제50년마다 희년(레25:8-34)으로 지켜서 저당한 재산을 본소유주에게 돌려주었고 히브리 종들을 자유케 해주었다.
7.속죄일(레16장)
[영] Day of Atonemen
대월력 제 7월 10일에는 매년 죄를 고백하고 속하는 특별한 제사의식이 있었다.
성경의 율법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은 다른 절기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부림절(에9장) 이었는데 이것은 유대인이 하만의 손에서 구원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그리고 후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Antiochus Epiphanes)에 의해서 B.C. 168년에 성전이 더럽혀진 이래 그것을 정결케 한 일을 기념하는 수전절(요10:22)이 지켜졌다.
민수기(Numbers)
1.명 칭
히브리어 성경에는 첫 글자를 따서 [베미드바르 rB;d]miB] (bemidbar)]광야에서 라고 되어있다. 70인역에는 [아리트모이] 계수로 되어 있고, 라틴어 역인 벌게잇도 70인역을 따르고 있다.
2.내용과 주요 사상
제사법은 이미 주셨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행진할 준비가 이미 다 되어 있다.그리하여 시나이산을 출발하기에 앞서 백성을 계수하고 행진의 대오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림설명 / 히브리인들은 숙영을 마친 후 이 아름다운 시내의 경지를 마지막으로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였다.
3.내용 분해
1.시나이산에서의 행군 준비 민1:1-8:26
1) 첫 인구 조사와 대오정비 민1:1-2:34
2) 레위족속의 인구조사와 직책 민3:1-4:49
3) 깨끗함과 부정, 손해배상,간음등에 관한 법 민5:1-31
4) 나실인의 법 민6:1-21
5) 아론의 축복 민6:22-27
6) 족장들이 예물을 받침 민7:1-89
7) 등과 정결케 하는 의식 민8:1-26
2.시나이산에서 가나안을 향해 행군함 민9:1-19:22
1) 유월절을 지키고 출발함 민9:1-10:36
2) 먹을 것 때문에 백성들이 원망함 민11:1-35
3)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함 민12:1-16
4)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냄 민13:1-14:45
5) 가나안에 들어간 후 제사에 대한 명령 민15:1-41
6) 고라 당파의 모반과 멸망 민16:1-17:13
7) 예물과 정결 법 민18:1-19:22
3.요단강 동편 민20:1-25:18
1) 에돔이 이스라엘 통과를 허락지 않음 민20:1-29
2) 모암 땅을 돌아 아모리 왕 시혼을 침 민21:1-35
3) 모압 왕 발락과 발람 민22:1-24:25
4) 백성의 타락과 형벌 민25:1-18
4.가나안 정복의 준비 민26:1-36:13
1) 제2차 인구조사 민26:1-65
2) 모세가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임명함 민27:1-23
3) 절기와 서원에 대한 규칙 민28:1-30:16
4) 미디안 족속에게 복수함 민31:1-54
5) 세 지파에게 요단강 동편을 줌 민32:1-42
6) 출애굽 이후의 모압까지의 노정 민33:1-56
7) 모세가 가나안의 경계를 정하고 토지를 분배함 민34:1-29
8) 레위 인에게 42성읍과 6도피성을 줌 민35:1-34
9) 여자 상속인의 결혼 법 민36:1-13
4.내용 분석
본서의 내용은 이스라엘 민족이 시나이산을 출발한 때부터 요단강 편에 이르기까지의 약 38년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이 38년 동안 광야를 진군해 가는 동안 일어난 중요한 일들은
1.백성의 인구 조사,
2.성막을 중심으로 대오를 정리함,
3.시나이산을 출발하여 가데스바네아 이르는 행군,
4.남쪽으로 부터 가나안에 진군하려다 실패함,
5.요단강 동편을 점령한 일 등.
이렇게 행군해 가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선택된 민족답게 하나님과의 약속을 준수하며 신실하게 산 것이 아니었다. 광야 40년의 삶은 그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고 큰 민족으로서 자치적인 생활의 경험도 없는 그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를 헤매면서 그들은 많은 실수와 범죄를 거듭 하였다. 반면 하나님은 항상 언약을 지키셨다. 완악하고 어리석으며 변덕스러운 이스라엘 민족을 때때로 벌을 주시기도 했지만 끝까지 참으시며 자비를 베풀어 한 발 한 발 약속의 땅으로 발걸음을 인도 하셨다. 광야 40년 동안의 이스라엘 민족의 반역도 컸으나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은 그보다 더 크셨다.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민족으로 한 나라를 세워 메시야 민족이 되게 하고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려고 작정하신 하나님은 그 계획을 끝까지 포기 하지 않으셨다.
모세와 그의 세대는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그의 자손들만 허락받았다(14: 26-35). 인류를 구원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 사업은 아비의 세대들이 부족하면 그의 자손들 의 세대를 통해 서라도 계승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메추라기 죠지 캔스데일(GEORGE CANSDALE)
자고새 / 메추라기[히] wl;c] (selaw) [영] Quail꿩과에 속하는 새.
성경의 기사는 그 수효가 아주 많았던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계산은 좀 어렵다. 각 가정에서 거둔 양이 10 호멜이었을 경우 이스라엘 백성이 잡은 메추라기의 전체 수효는 대략 900만 마리에 달하였을 것으로 산정되어 왔다. 지난 100년 동안 매년 애굽의 수출 주종품은 사실 이 메추라기였다. 여러 해 동안 매년 200만 마리 이상을 잡았고 또 때로는 300만 마리에 달하였으나 이처럼 계속해서 잡기만 하다 보니 1920년경에 이르러서는 번식률이 극히 떨어져서 모세 시대 이전부터 줄 곳 계속되어 왔던 메추라기의 집단이동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민수기 11:31에 언급된 2규빗(3피트/90cm)은 다소 난해하여 여러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지면위에 2규빗 높이로"(Authorized/king James version)는 확실치 않은 번역이다. "진 양편으로 하룻길 되는 거리에 지면에서부터 2규빗 높이로 날아갔다"(Douai)는 번역이 최선일 것이다. 메추라기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이동 시에 바람을 의존한다. 본문에 그것들이 바람에 불려왔고(민11장) 또한 저녁에 진에 덮였다(출16:13)고 진술되고 있는데 오늘날에도 훨씬 더 작은 떼들이 밤에 이동하다가 지면에 내리는 것을 흔히 본다. 백성은 이틀이나 계속해서 메추라기를 모았는데 그것은 그 새들이 때로는 이동을 하다 기진함으로 지면에 내려 하루나 이틀은 쉬었다가 이동을 계속하는 것이 보통이다. 민수기 11:32은 백성이 그 새들을 진사면에 펴두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수 십 세기 후에 헤로도투스(Herodotus)는 애굽인들이 여전히 메추라기를 먼저 깨끗이 씻어서 햇볕에 말려두었다가 먹었다고 전하였다.
구약의 성경의 큰 숫자들 죤 웬함(JOHN WENHAM)
구약성경 여러 곳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큰 숫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자주 이 숫자들은 단순히 날조된 것이 지나지 않으며 성경이 역사적으로 신빙성을 갖지 못한 증거일 뿐이라고 가정되어 왔다. 그러나 분명히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누가 그 숫자들을 날조 해 낸 것인가? 무릇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1,000,000명의 승객이 사망한 버스 충돌 사고와 같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날조 해 내겠는가? 이 구약성경의 숫자들은 그것들이 사리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충실하게 복사되었을 가능성이 더 짙다. 날조 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이 못된다. 그 설명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사실 끈질긴 연구가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서 이미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숫자들의 변조
구약의 본문 전체가 놀랍게도 잘 보존된 증거가 있다. 또한 숫자들이 정확히 전달되기도 어렵다는 증거도 사무엘서와 열왕기하 역대기. 그리고 특히 에스라 2장과 느헤미야 7장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우리는 어떤 숫자에 또 하나의 0 이 덧붙여진 예를 발견한다. 곧 사무엘하 10:18은 '병거 700승'으로 되어 있는데 역대상 19:18은 "병거 7,000승"으로 되어 있다. 또 숫자 하나가 빠질 수도 있다. 열왕기하 24:8은 여호야긴의 등극 나이를 18세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역대하 36:9은 그 나이를 8세로 기록하고 있다. 숫자 전체가 빠질 수도 있다.
사무엘상 13:1은 단지 "사울이 왕이 될 때에 (40) 세라"로 만 되어 있다. 에스라 2장과 느헤미야 7장에서는 숫자들이 자주 한 단위로 달라지는 예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밖에 사본상의 오류들이 있는데 그 중에 많은 것들은 쉽게 설명된다.
낱말들의 혼동
현대 히브리어 성경에는 모든 숫자들이 완전히 기록되어 있으나 오랫동안 그 본문은 모음이 없이 자음으로만 기록되어 왔었다. 모음이 표기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문제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주는 두 낱말 곧 엘레프 (eleluph)를 혼동할 가능성이 있다. 모음이 없는 상태('lp)에서는 이 두 낱말이 동일하게 보인다. 엘레프는 '천'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낱말이다.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예를 들면 "집"혹은 "가족"(삿 6:15,R.V)이나 "씨족"(슥9:7,12:5,6,R.S.V)혹은 군대의 단위를 뜻할 수도 있다. 알루프는 에서의 '족장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창 36:15-43).필시 "천명"의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두목)을 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의 확실한 완전무장한 직업군인을 뜻할 것이다.
군사통계
어떤 시기에는 아주 대조를 이루는 두 형태의 군인들 - 골리앗과 다윗 같은 유형의 군인들 -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곧 완전무장을 한 정규군과 무기라고 해야 고작 시골 목자의 도구들에 불과한 비정규군(민간인)이 맞붙어 싸웠다. 여러 곳에서 정규군을 가리키는 낱말이 "천"의 의미로 오인되어 왔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서 사사기 20장에 나오는 소읍 기브아에 대한 공격이 경우를 살펴보자. 2절은 '칼을 빼는 보병" 400,000이 모였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실제로 완전무장한 400명의 정규군이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의 기사는 훌륭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베냐민 지파 군사(15절)는 칼로 무장한 26명의 정규군과 단지 물매로 무장한 비정규군 70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공격(2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정규군 22명을 잃었고 다음달(25절)에는 또 다시 18명을 잃었으며 셋째 날(29,34절)에는 복병 10명이 따로 배치되어 있었다.(10,000명의 복병이 그들의 위치를 숨기고 있을 수 있었겠는가?) 이날에도 "전과 같이"이스라엘 군대는 다시 인명의 손실을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에는 그 피해의 범위가 분명히 그대로 보존되었다. 이는 30명의 이스라엘 군인(명백히 칼로 무장한 정규군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과 베냐민 군인 25인과 다른 사람 100명이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냐민 군 전사자 중에 18명은 첫 추격에서 죽었고 또 5명은 "큰 길에서"죽었으며, 나머지 2명은 기돔에서 각각 죽었다. 나머지 600명의 비정규군은 림몬 바위에 숨어 넉 달을 지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 성 공격(수7-8장)에서도 36인의 전사자 수에는 복병의 수가 3만 명이 아닌 30명이라야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전체 기사의 진상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역대상 12장에 나오는 헤브론에서의 다윗의 연회에는 일반 사람들이 아닌 구별된 지도자들이 수 없이 많이-대략 340,800명 정도-참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 있어서 사실은 "천인의 두목(천부장)들"과"백인의 두목(백부장)들"이 참석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환유로서 혹은 약어로써 "천"이 "천인의 두목"의 뜻으로 "백"이"백인의 두목"의 뜻으로 각각 사용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천"과 "백"은 숫자들로 취급하여 서로 더하여서 계산해왔다. 수가 대략 2,000명에 달하는데 이 수효가 아주 사리에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해서 그 이후 역사의 숫자적인 문제들이 해결을 보게 된다. 열왕기상 20:27-30에서는 이스라엘의 소규모 군사가 아람 보병 100명(100,000 명이 아닌)을 죽였고 또 아벡에서 27명 (27,000명이 아닌)을 더 죽였다. 유다에 쳐들어온 구스 군사는 백만이 아니라 1,000명이었다(대하 14:9).또는 유다군사들이 바위 위에서 밀쳐 죽인 세일 군사는 10명(1만이 아닌)이었다(대하 25:12)
이스라엘의 민족의 규모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어렵고 또 (역사가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곧 이스라엘 역사의 각 장들에 있어서 그 민족의 규모가 얼마나 컸었느냐하는 것이다. 현재의 본문들은 요셉의 시대에 70명이었던 이스라엘이 출애굽 시대에는 2~3백만 (민1장)이 되었다고 다윗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5백만에 달하였다(삼하24:9,대상 21:5)후자에 관하여 드 보(R.De Vaux)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사무엘하)는 이스라엘에 싸움에 나갈 만 한 자가 800,000명이 있었고 유다에는 500,000명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사무엘서에 나오는 숫자들을 합하면 그 단위가 너무나 높다. 곧 싸움에 나갈 만 한자 1,300,000명의 숫자는 적어도 전체 주민이 5,000,000명에 달하였으리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그렇게 많은 수의 주민이 살았다는 것은 현대 유럽의 가장 인구가 조밀한 지역의 두 배에 가까운 인구밀도를 유지하였음을 뜻할 것이다." 출애굽 시대의 인구문제 해결에는 긴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나 민수기 1장과 26장의 본래 인구조사는 각 지파의 인구수를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열거하고 있을 것으로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말로 족할 것이다.
시므온 지파: 57 정규군과:23"백들"(부대단위)
이 숫자는 다음과 같이 표기되었다.57 'lp; 2 'lp 3 "백들"
'lp가 어떤 경우에는 "정규군"을 뜻하고 다른 경우에는 "천"을 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 숫자가 59,300으로 읽혀지게 되었다. 이 숫자들이 주의 깊게 해독될 때에는 그 전체적인 군사조직의 윤곽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전체의 전투병력은 대략 18,000에 달하였다. 이 숫자는 필시 그 전체 백성이 약 72,000이었음을 뜻할 것이다.
레위인들의 숫자는 일관되게 0을 하나씩 덧붙여서 열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플라톤의 어틀랜티스(plato's Atlantis)비밀을 이와 같은 숫자의 혼동을 인식한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플라톤은 애굽의 제사장들에게서 지금은 미노아 문명과 그 갑작스런 몰락에 관한 숫자들에 10이라는 인구가 곱하여서 있었던 만큼 그 지역을 지중해에 국한시키기에는 너무나 컸음으로 그는 그 장소를 대서양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연대도 수 천 년 전의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잡았다. 이와 동일한 10배의 인구가 민수기에 나오는 레위인들의 숫자에서도 발견된다. 그 인구를 제거시킨다면 레위 지파는 남자가 약 2,200명의 표준인구를 가진 지파가 될 것이다. 이 숫자들은 정복시대(여호수아 시대와 사사시대의 인구에 대한 다른 암시들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다윗의 인구조사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한 두 본문의 숫자 차이는 그 전달에 있어서 시대적 이해가 달랐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이해될 수가 있을 것이다. 곧 처음에는 여분의 0이 하나 덧붙였고 다음에는 'lp이 오해 되었다. 이스라엘은 80,000 + 30'lp 그리고 유다는 40,000+70'lp 사무엘서와 역대기의 현재 본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가 있다.
단계 이스라엘 유다
역대기 1 80,000 + 30'lp 40,000 + 70 'lp
2 800,000 + 300'lp 400,000 + 70 'lp
3 1,100,000 470,000
사무엘서 1 80,000 + 30'lp 40,000 + 70'lp
2 800,000 + 30'lp 470,000
이 마지막 단계에서 사본가가 부동숫자 "30'lp"에 당황하여 그것을 30,000으로 간주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그 숫자에 잘못 혼합시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3 800,000 500,000
만일 본래의 수효가 정규군 100명과 싸움에 나갈 만 한자 120,000명이었다면 그 전체의 인구수는 거의 50만에 달하였을 것이다. 이 숫자도 역시 본문의 다른 암시들과 잘 들어맞는다.
편집자 주: 그러나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성경의 현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신명기(Deuteronomy)
1.명 칭
히브리어 성경에는 !yr]b;D]h' hL,aE('elleh haddebarim)] 혹은 단지 [말씀](debarim)이라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 책을 훈계의 책이라고 불렀다. 70인역이나 벌게잇 성경은 신17:18의 율법서를 등사하여 라는 말을 번역하기를 [듀테로노미온](70인역) 이라고 하였다. 영어 성경의 명칭은 바로 그 낱말을 딴 것이고, 우리말 성경은 또 영어 성경에서 유래된 것이다.[신명기]란 율법의 반복이란 뜻이다.
2.내용과 주요 사상
신명기는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준 최후의 연설 들이다. 본서는 이스라엘의 지나간 역사에 대한 반복적 재확인이고 지나간 날에 주었던 중요한 율법들에 대한 복습이며, 이제 이스라엘 앞에 놓여있는 길, 즉 죽느냐 사느냐 하는 중대한 갈림 길에서 생명의 길을 가르쳐 준 기록 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의 운명은 그들 개인의 결단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본서의 내용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서 주신 율법에 대한 단순한 복습이나 반복이 아니다. 언약의 율법의 중심적 내용에 대하여 각자의 인격적 결단을 촉구하며 강조하고 있다.
그림설명 / 포드 파피루스 단편(Fouod Popyri):B.C. 2세기의 고대 희랍어 신명기 사본으로 야훼 이름은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있다.
모세는 본서에서 지난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푸신 자비와 은총에 대하여 백성들이 분명하게 기억하고 감사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본서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신6:4 hw:hoy_), 질투하고 있는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용서하지 않으시며 변심과 불순종을 용서하지 않는 엄한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본서는 많은 민족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그의 특별 한 자녀가 되게 하시고, 그들의 특별한 아버지 하나님이 되신 여호와 즉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히 사랑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오직 사랑의 이유이다. 그 민족의 위대함도 신실함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택의 사랑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이 사랑을 깊이 깨닫고 너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는 최고의 명령을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3.내용 분해
1. 모세의 첫 번째 설교 신1:1-4:43
1) 시나이산에서 가나안까지의 역사에 대한 회고 신1:1-3:29
2) 항상 신실한 것을 당부함 신4:1-40
3) 요단강 동편의 세 도피성 신4:41-43
2. 모세의 두 번째 설교 신4:44-28:68
1) 십계명에 대한 재 설명 신4:44-5:33
2) 배교를 경고함 신6:1-11:32
3) 종교 생활과 사회생활의 율법들 신12:1-26:19
4) 율법을 석판에 기록하여 에발산에 세울 것을 명함 신27:1-26
5) 순종하는 자의 축복과 불순종하는 자의 저주 신28:1-68
3. 모세의 세 번째 설교 신 29:1-30:20
1) 언약을 지켜 살길을 택하라고 교훈함 신29:1-30:20
4. 모세의 최후의 모습 신31:1-34:12
1) 여호수아를 영도자로 임명하고 레위인에게 율법을 줌 신31:1-30
2) 모세의 노래 신32:1-30
3) 모세가 각 지파별로 축복함 신33:1-29
4) 모세의 죽음 신34:1-1
4. 성경의 언약과 근동의 조약들 고오돈 웬함 (GORDON WENHAM)
히브리인은 국제적인 조약과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언약에 대하여 같은 낱말을 사용한다. 최근의 연구는 고대 근동의 조약들과 구약성경의 언약들 사이의 유사점들이 이보다 훨씬 더 폭 넓게 확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고 구약성경의 언약이 지닌 특징들에 관하여 상당한 빛을 던져주었으며 또 그 조약들을 그 당시의 일반 조약들과 비교할 수 있게 됨으로써 구약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를 증진시켜 주었다.
금세기에 발견된 대부분의 고대 조약들은 그 연대가 BC 150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에 구약성경의 상당부분이 저작되었다. 그러므로 성경 저작자들이 그 조약들의 초안을 작성하는 방법에 익숙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들의 조약의 용어와 개념들을 사용한 사실은 그들이 조약 당사자들 간의 관계에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윤곽을 찾아내었음을 보여준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언약은 하나님이 노아로 더불어 맺으신 것이다(창9장) 하나님은 또한 아브라함과 또 언약들을 맺으셨다.(창15,17장) 그러나 이제까지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언약은 시나이산 언약이다(출 19장이하) 비록 시나이산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려지게 된 장소로 간주되고 있으나 실상 율법의 제정은 훨씬 더 큰 사건, 곧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을 그의 거룩한 나라로 부르신 사건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 새로운 관계는 언약으로 호칭되었다. 시나이산에서 맺어진 언약은 이스라엘을 한 나라로 만드는 결정적인 단계였다. 그 뒤에 따르는 모든 언약들은 시나이산 언약을 그 모형으로 뒤돌아보는 것들이었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들이 시나이산 언약의 갱신으로 간주되었다. 언약들은 언어와 형식과 개념이 세 가지 관점에서 조약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언어
조약의 목적은 속국 또는 속국의 왕들이 그 조약의 당사자인 제국이나 그 제국의 왕에게 전적인 충성을 하도록 규정하는 데에 있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조약들에는 그 속국이나 속국의 왕을 감동시키고 순종의 중요성을 인상지어줄 화려하고도 수사학적인 언어가 사용되었다. 수사학적인 문체는 오랫동안 신명기의 특징으로 간주되어 왔다. 신명기는 다른 면에서 볼 때 속국의 좌약과 아주 비슷한 점을 갖고 있는 책이다. 어떤 용어들은 순종을 잘하는 속국의 행동을 묘사하는 조약들의 대목에서 사용이 되고 있다. 훌륭한 속국 혹은 그 속국의 왕이라면 그의 섬기는 제국의 왕을 "좇으며","두려워하며(경외)""사랑하며","그 음성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거역하는 속국이나 그 왕은 "죄"를 범하게 된다. 이 같은 의미의 언어들이 구약성경에 자주 반영되고 있다.
형식
조약들과 구약성경의 언약들 사이의 가장 현저한 유사점은 그 기본구조상의 형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헷 족속이 사용했던 전통적인 근동의 조약은 다음 여섯 조항들을 갖고 있었다.
1. 조약 발안자의 이름을 밝힌 전문
2. 조인에 앞서 조약 당사자 간의 관계를 밝힌 역사적 서언
3. 조약 당사자 쌍방의 의무들을 열거한 약정
4. 그 조약 문서를 설명하고 속국의 왕이 정기적으로 그것을 읽도록 하기 위한 기록조항.
5. 그 조약을 증거 하는 신들의 목록
6. 저주와 축복들 속국의 왕이 조약을 깨뜨릴 경우 그에게 질병과 죽음, 추방 등의 화가 미치리라는 위협적인 저주들과 그가 신실하게 조약을 지킬 경우 형통과 복이 임하리라는 소망적인 축복들을 열거한 조항.
구약의 언약들은 정확히 일치되지는 않으나 유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증인들로서의 신들의 목록을 생략하였다. 신명기는 조약형식의 요소들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1-3장 역사적 서언
4-26장 약정들
27장 기록조항
28장 축복과 저주들
출애굽기 19-24장. 여호수아 24장. 그리고 사무엘상 12장은 구약에 나오는 조약형식의 또 다른 그러나 보다 축소된 예들이다. 조약들과 언약들은 다 역사로 더불어 시작이 되고 또 그 언약 발안자의 은혜와 자비를 강조하고 있다. 헷 왕은 그의 속국 왕 중 하나가 최근에 반역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왕의 신분을 유지케 함으로써 그의 자비를 보여준 예가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에게 그의 자비를 다음 말씀으로 상기시키고 계신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
조약들과 언약들에 있어서 그 약정들의 기초는 그 최고주권자의 과분한 은총이다. 약정 혹은 율법들은 그 속국의 왕에게 조약의 주권자가 행한 바를 상기시킨 후에 따라 나온다. 속국의 왕 혹은 백성은 그 약정들을 감사함으로 순종할 것이 기대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에서 율법은 은혜에 뒤따라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로 인하여 그들은 순종할 것을 독려 받는다.
속국이 계속하여 순종하면 복과 번영이 약속되나 거역할 경우에는 저주가 따른다. 인간의 마음을 잘 알고 있던 조약의 입안자들과 구약성경의 저작자들은 축복보다는 저주의 문구에 훨씬 더 신중을 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백성이 언약의 요구들을 무시할 경우에 당하게 될 고난들을 보면 섬뜩해진다(신28:15-68을 보라). 임박한 심판에 대한 예언적인 위협이 자주 이 언약의 저주들을 반영해준다.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언약관계가 특권만 아니라 의무도 포함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암3:2). 사해사본은 언약의 개념들이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대교의 신학에 줄곧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예수께서도 분명히 그의 죽음을 새 언약의 시작으로 언급하실 때(막 14:24) 그의 제자들이 언약의 개념에 익숙한 것으로 간주하셨다.
여호수아(Joshua)
1.명 칭
그림설명 / 여호수아의 두루마리 :이스라엘 지파의 수에 따라 12개의 돌을 메고 가는 이 장면은 10세기 희랍어 사본의 삽화이다. 바티칸 도서관 소장.
역사서의 첫째 책의 이름은 이 책 속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 중에서 제일 두드러진 인물이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가 된 여호수아의 이름을 따라 붙인 것이다. 여호수아(['vu/huy_)라는 이름은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2.내용과 주요 사상
본서의 저자는 분명하지 않다.본서 수24:26을 보면 여호수아 자신이 본서의 어느 부분을 직접 기록한 것이 분명하고, 수5:1과 수7장과 수8장을 보면 본서 전부가 여호수아의 기록은 아니지만 그가 기록해 둔 기초적 문서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현재의 형태로서의 본서를 여호수아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본서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갈렙이 헤브론을 점령한 일, 웃니엘이 드빌을 점령한 일(수15:17), 여호수아 의 죽음과 장사 지낸 일 등이다.
본서는 본서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의 대부분을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이 틀림없다. 본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 곧 선민의 국토를 선민들이 점령한 일에 관한 기록이다. 가나안에 살고 있던 여러 족속과 작은 왕국들을 몰아내고 점령하는데 약 7년이 걸렸다. 40년 전 정탐꾼으로 가나안에 들어갔다가 다른 정탐꾼들과는 달리 용감하게 가나안에 쳐들어갈 것을 주장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성인이 되었다. 광야에서 불평하며 비겁했던 대중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그들의 자녀들만 들어갔다.
본서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부터 약속의 땅에 인도 하시고 거기에 신정국가를 세우시려 하셨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수아의 영도아래 가나안에 쳐 들어가는 일과 여러 민족을 정복하는 일, 영도자 여호수아의 충성된 책임 이행 등을 기록하고 있다.당시 가나안에 살던 족속들은 다음과 같다.
1) 가나안 족속 : 이스라엘 고원과 요단 계곡에 거주.2) 아모리, 부리스, 여브스 족속: 남쪽의 산들에 거주.3) 기르가스 족속: 갈릴리 바다의 동쪽에 거주.4) 헷 족속 : 레바논 산 지역에 거주.
이스라엘 민족은 이 모든 민족을 다 추방하고 그 지역을 완전히 점령할 수가 없었다. 그 까닭은 용기와 투지가 약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나안에 들어간 후 이스라엘 민족은 원주민의 문화에 많이 감염되어 우상 숭배와 부도덕의 유혹을 받았다. 원주민들은 도덕과 종교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보다 못했지만 일반 문화에 있어서 오히려 우수했다. 잔인한 전쟁의 기록인 본서는 특히 다른 민족을 모조리 무참하게 살육하는 기록은 도덕적 면에서 난문제를 제기하는 책이기도 하다
3 내 용 분 해
1. 가나안 점령 수1:1-12:24
1) 본서에 대한 서론 수 1:1-9
2) 요단강의 도강 준비 수1:10-2:24
3) 요단강을 건너감 수3:1-4:24
4)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킴 수5:1-12
5) 여리고의 함락 수5:13-6:27
6) 아간의 도둑질 수7:1-26
7) 아이를 점령하고 에발산에 단을 쌓음 수 8:1-35
8) 기브온 거민의 속임수 수9:1-27
9) 남쪽 가나안 지역의 점령 수10:1-43
10) 북쪽 가나안 지역의 점령 수11:1-15
11) 점령의 완료와 죽인 왕들 수11:16-12:24
2. 영토의 분할 수13:1-24:33
1) 미 점령지를 둔 채 아홉 지파 반에게 토지분할을 명 함. 수13:1-7
2) 요단 동쪽의 영토 분할 수 13:8-33
3) 요단 서쪽의 영토 분할 수14:1-19:51
4) 도피성들 수20:1-9
5) 레위 지파의 성읍들 수21:1-45
6) 루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영토로 보냄 수22:1-34
7)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 수23:1-16
8)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로 세움 수24:1-28
9) 여호수아의 죽음 수24:29-33
4. 정복한 성읍들 알란 밀라드(ALAN MILLARD)
가나안의 성소 : 므겟도에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 제단으로 현재의 지층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건에 관한 성경의 기사들을 불과 몇몇 성읍들만 실제로 무너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처에 이스라엘이 이전 주민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였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폐허가 된 성읍들이 널려 있는 황량한 땅은 40년간의 반 유목민 생활에서 이제 막 벗어난 이스라엘에게 별로 유익이 못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가나안 족속들의 이교사당과 그들의 제사도구들이었다.
여리고는 특별한 경우였다. 그 성읍은 정복의 한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었다. 아이와 하솔도 역시 정복되었다. 그러나 이 성읍들 또한, 아마도 정반대의 관점에서 예외적인 경우들이었을 것이다. 성경의 기록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스라엘 정복의 물리적인 증거를 많이 구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소유권의 이전은 필시 종교적인 영역을 제외하고는 알아볼 만한 표적들을 거의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성읍들은 여호수아서와 사사기가 지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성읍들이 당시에 함락되었을 것이나 히브리어 성경의 기사들은 그 세세한 목록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청동기 말엽의 가나안 성읍들에서 나타나는 모든 파괴의 흔적들을 이스라엘의 정복에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그르칠 우려가 있다. 벧엘과 벧세메스와 드빌의 유적지 발굴결과들은 어떠한가?(텔 베이트 미르심).하솔, 그리고 라기스는 B.C. 13세기에 폭력에 의해서 파괴된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 연대들은 어림으로 잡은 것들이고 또 그 성읍들이 동시에 파괴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파괴된 후에 그 성읍들은 초토화되었거나 아니면 보다 적은 규모로 다시 사람이 거주하였다.
이스라엘이 비록 궁극적으로는 가나안 족속들의 최대 적수였으나 그 밖에도 적수들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BC 13세기의 역사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쇠망의 경향을 포함하고 있다. 애굽의 바로는 가나안과 레바논과 다메섹의 통치권을 쥐고 있었다.
애굽의 총독과 관료들이 주요 성읍들에 상주하였고(가사와 므깃도 등) 그 밖의 성읍들은 주둔군을 위한 성읍들로 이용되었다. 이 시대에는 간헐적인 반역사건들이 일어났는데 왕실의 동맹군이나 애굽의 군사력에 의해서 진압되었다. 애굽의 쇠퇴기 다음에 쎄티I세(Seti I)는 B.C. 1300년경에 가나안과 요단 동편에 원정하였다. 고고학자들은 자주 그의 원정을 하솔에서와 같이 폐허가 된 성읍들의 파괴시기와 일치시킨다. 그 직후에 그의 아들 라암셋 결과로 일어난 반역을 진압시켜야만 했다. 그는 이 때(B.C. 1285년경)에 모압까지 뚫고 들어갔다. 아마도 이 강경조처의 결과로서, 라암셋이 헷 왕과 평화조약을 맺은 다음에는 (B.C. 1270년경에) 50년이 넘도록 애굽에서는 침공해 온 일이 없었다. 라암셋의 아들 메르네타(Merneptah)의 통치시대에는 또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애굽이 가나안에 개입했다는 사실과 그 곳에 애굽의 통치권이 존속되었다는 간접적인 증거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한 기록은 이스라엘을 여러 패배한 적들의 하나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성경 이외의 언급자료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메르네타는 북서편의 "해양민족들"에게서 내려오는 침략자들의 물결을 저지시켰다. 애굽은 수리아와 가나안을 통해서, 그리고 바다를 통해서 밀려오는 또 다른 침략의 물결이 밀려올 때까지는 안전하였다.
이 침략의 물결은 그들이 변경에 도착하기 전에 그 함대를 쳐부수고 전위부대에 제동을 가하여 얼마 동안 가나안 땅의 통치권을 확고히 했던 라메셋 III세에 의해서 저지되었다. 그러나 침략자의 무리는 아직 남아 있어서 어떤 무리들은 몇몇 성읍들을 정복하였다. 예를 들어 블레셋 족속은 아스돗과 아스글론, 에그론, 가드, 그리고 가사를 수중에 넣었다. 또 다른 무리는 돌의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이 모든 사건들과 우리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그 밖의 사건들은 정복시대를 전후하여 가나안 땅의 성읍들에 약탈과 파괴를 가져다주었다. 주변의 왕들도 침입세력으로서 황폐를 초래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세 성읍들-여리고, 아이, 하솔-이 이스라엘에 의해서 파괴되었다는 말씀을 대한다. 하솔에서는 청동기 말엽의 마지막 성읍이 BC 13세기의 어느 때에 폭력에 의해서 파괴되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가나안의 마지막 성읍들의 폐허는 잘 보존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일부가 비바람과 경작으로 손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록 그 전성기는 지나갔다 해도 그것이 중요한 성읍이었음을 보여줄 잔재들은 충분하다. 동일 연대의 다른 성읍들은 아주 비슷하다. 비록 성벽들이 자주 이전의 성벽과 연합(혹은 개수)되어 있었을지라도 모두가 다 철저히 요새화되어 있었다. 간선도로상의 성읍들(예:므깃도)은 훨씬 더 부요했던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편 텔 베이트 미르심(드빌) 같은 비교적 가난한 성읍들의 유적지들은 발굴자들의 관심을 도자기 모양들이 세목에 집중시켰는데 팔레스타인 고고학은 이 도자들의 여러 가지 형태에 그 비교연대를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격의 가장 분명한 증거가 나올 것으로 기대될 수가 있는 여리고의 유적지에서는 BC 13세기 중엽에 도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심히 부식된 흙벽들의 폐허는 그 성읍이 존재하던 이전 시기들의 흔적을 거의 남겨두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그 세기의 후반에 그곳에 요새화된 성읍이 서 있었을 가능성이 무시될 수는 없다. 그 폐허는 여호수아 때부터 아합의 때까지(약 400년, 왕상 16:34) 오랫동안 버려진 상태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한 때는 여호수아의 공격의 증거로 생각되었던 그 성벽들은 사실상 그보다 훨씬 더 이전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유적지의 발굴결과는 여호수아시대 이전에 이미 여러 차례나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적이 있는 한 아이 성도 역시 문제를 제기한다. 발굴결과들은 그 성읍이 초기에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나 B.C. 2500년경부터 B.C. 1200년 이후까지 버려진 상태로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아이(y[')라는 이름은 "폐허"를 뜻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여호수아 이야기를 단순히 아주 인상적인 폐허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로 보고 있다. 고고학적인 증거를 받아들인다 해도 일단의 가나안 족속이 이 전략상 중요한 산성의 옛 요새들을 이용, 이스라엘 자손을 대항해서 싸웠을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될 수 없다. 그처럼 일시적으로 점거하였던 경우라면 흔적을 별로 혹은 전혀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설명 : 하솔의 광대한 발굴 현장들 가운데에는 이 가나안 사람의 단 혹은 "산당"이 들어 있다. 여호수아시대 그 전지역의 주요 도성이었던 하솔은 완전히 진멸된 몇몇 성읍들 가운데 하나였다. 성읍의 모습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특히 가나안의 폐허들에서 이스라엘이 찾아낼 것으로 기대할 필요는 없다. 여하튼 이스라엘의 사명은 전적으로 파괴하는 데에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 밖의 파괴요인들이 있었다.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 정착하여 그것을 개척할 수 있었을 것이나 아니면 단지 부분적으로만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족속과 요단 건너편의 원수들이 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동안에는 그 땅을 완전히 정리할 수가 없었다. 가나안 후기 시대(철기 시대 초기)의 여러 유적들에서 그 잔재들을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사실은 이 상황을 입증해준다.
많은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정복한 사건을 유목민 목자들이 점차 침투하여 결과적으로 그들의 소유로 삼았다는 식으로 설명해왔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일부는 침투 해 들어왔고 또 일부는 여러 세대에 걸쳐 아마도 한 번 이상의 기회를 타서 몇몇 지파씩 애굽에서 이주했던 점진적 사건으로 간주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 땅 백성이 전체적으로 반역을 일으켰던 사건이었을 것으로 상상하기까지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견해들은 모세오경의 문서분석을 포함하는 이론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 견해들은 성경의 이야기들을 여러 다른 자표들에게 돌려서 각각의 기원을 제의하여 그것들이 서로 관계가 없는 여러 지파의 이야기들이라는 견해를 갖게 만든다. 이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바로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개념은 "정복"후 오래 뒤에 형성되었으며 후대의 이스라엘 역사가들이 초창기를 돌이켜 보며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이다.
점진적 과정의 사상은 그 밖의 침입들과 백성들의 이동에서 유추된다. 그 점유지가 제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예를 들면 사사기 1장은 간선도로상의 정복되지 아니한 혹은 원주민과 섞여 사는 가나안의 주요 성읍들을 열거하고 있다) 여호수아서의 이야기들은 지파 혹은 제사 자료들의 탓으로 돌려지고 있다. 그것들은 실제로는 작은 사건들, 지방의 사건들을 서술하고 있거나 혹은 폐허가 되어 실제적인 역사가 잊혀 진 성읍들의 기원으로 엮어진 민간설화들을 들려주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유추를 통한 주장에 대해서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 "정복"의 경우에 있어서는 특히 더 주의해야만 한다. 유목민 침투에 관한 유추들은 이스라엘을 이미 알려진 형태에 들어맞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한 성경의 모든 기록들은 경우가 전혀 달랐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사도들은 기껏해야 시험적인 것일 뿐 실제적인 것은 못된다. 실제로 성경에 제시된 설명을 그것이 특이한 것이라는 이유로 제외시키는 것은 편견이요 비과학적인 입장이다.
사사기(Judges)
1.명 칭
히브리어로 [쇼페팀 fp'v;]인데 재판자라는 말이다.본서 삿2:16-19를 보면 사사의 임무는 재판할 때 재판관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민족을 원수의 압박에서 구원하며 보호하고 그들을 영도하는 책임자였다. 왕은 아니었지만 죽을 때까지 정치적 최고 영도자였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본서는 가나안에 들어간 초기의 아직 불안정한 약 300년간에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 한 12명의 사사와 관련된 역사이다. 이 기간은 매우 고통스럽고 많은 시련이 있던 시대였다. 또 사사들 중에는 모세나 여호수아와는 달리 경건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이 300년 동안에는 민족 전체를 영도하는 전 민족적 지도자가 없었으며 통일 정부도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비조직적인 혼돈기였다. 사사가 훌륭하던 혹은 훌륭하지 못하던 하나님은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시어 이 혼란기에 선민으로 하여금 생존해 남게 인도하셨다. 본서를 일관하고 있는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의 삶의 형태는 불순종(타락), 형벌, 회개, 하나님의 구원(새로운 사사의 등장) 그리고 또 불순종의 반복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훌륭한 신정 국가를 건설해야 할 중대한 시기였다.천신만고 끝에 약속의 땅 가나안땅에 들어왔고 수많은 싸움으로 그 땅을 차지한 것이다. 영토는 열 두 지파에게 잘 분할하였고 이제는 합심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을 준수하여 국력을 배양하고 일치단결하여 아름답고 복된 선민의 나라를 건설해야할 중대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은 혼란했다. 신앙적으로는 쉽게 우상숭배에 빠지고 각 지파는 이기심만 크고 영합정신이 희박했다. 본서 삿17:6의 (그 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씀은 당시의 사정을 잘 드러낸 말씀이다.
이때에 이스라엘을 압제한 나라들과 그 년 수는 다음과 같다.1) 메소포타미아 8년2) 모압 18년 3) 가나안 20년4) 미디안 7년 5) 암몬 18년 6) 블레셋 40년
본서는 엘리, 사무엘, 아비멜렉을 제외하고 12명의 사사가 기록되어 있다.1 웃니엘, 2 에후, 3 삼갈 , 4 드보라, 5 기드온, 6 돌라, 7 야일, 8 입다, 9 입산, 10 엘론, 11 압돈, 12 삼손.
3 내 용 분 해
1. 서론 삿1:1-2:5
1) 본서 전체에 대한 소개 삿1:1
2) 정치적 형편 삿1:2-36
3) 여호와의 사자의 꾸중 삿2:1-5
2. 이스라엘의 사사들 삿2:6-16:31
1)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삿2:6-16:31
2) 웃니엘이 메소포타미아의 압제에서 민족을 구원함 삿3:7-11
3) 에훗이 블레셋 모압을 이김 삿3:12-30
4) 삼갈이 블레셋 사람 600을 죽임 삿3:31
5) 드보라와 바락의 활약 삿4:1-5:31
6) 기드온의 활약 삿6:1-8:35
7) 아비멜렉의 사건 삿9:1-57
8) 돌라와 야일이 민족을 구원함 삿10:1-5
9) 입다가 압몬을 항복시킴 삿10:6-12:7
10) 입산, 엘론, 압돈 삿12:8-15
11) 삼손의 역사 삿13:1-16:31
3. 두 가지 부가기록 삿17:1-18:31
1) 미가의 사건 삿17:1-18:31
2)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사건 삿19:1-21:25
4. 사사기서 (판관기 JUDGES) 이해
-사사기는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구원한 12 사사의 역사 기록이다.-하나님의 주권과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한 징벌을 보여준다.-가나안 정복 후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사무엘, 즉 왕의 제도가 이룩될 때까지(B.C. 1367-1025; 약 342년간) 역사이며, 이 시기는 이스라엘의 최고의 암흑시대이다.-민수기가 40여년의 광야에서 방황한 이스라엘을 기록한 비극의 역사서라고 볼 때에 사사기는 긴 세월 동안의 실패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기록시기 : 왕정 초기(사울 왕의 즉위 직후, B.C. 1051년)부터 예루살렘이 다윗에 의해 정복되기 전(B.C. 1004년)에
- 기록목적 :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준다.-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으로 다른 민족과의 동맹, 언약, 국제결혼 등을 멀리할 것을 명령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다
"반역(배신) - 징계(곤욕) - 회개 - 안정(구원)"
-신앙전통의 유실 삿2:1-10, 핵심구절-10절-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이방 문화의 영향을 받는 한편, 조상의 신앙의 전통을 잃게 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1.이방 문화의 영향/ 1-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의 죄악 된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 신앙자세를 잃게 되자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도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롬 12:2 우리는 처음부터 확고한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가 있다. 흔들리지 말아야겠다.
2.신앙전통의 유실/6-10
여호수아나 당대의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그런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직접 출애굽의 과정을 지켜본 자들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이 생생한 신앙 체험이 없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체험한 생생함이 전달되어야 한다. 이것을 전해주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죄악 * 삿2:11-23
-가나안에 도착한 이후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했으므로 재앙을 당했다.
3.우상을 섬김(11-15)
출애굽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의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과거 역사의 하나님으로만 여기고, 주위에 있는 이방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이 더 실제적이고, 실감나게 느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태도에 진노하시고, 사방의 대적들에게 고난을 당하도록 하셨다.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구원을 알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세상 가치관을 그대로 따라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4.사사에게 불순종(16-23)
범죄 한 이스라엘 자손을 회복하려고 사사를 보내셨다. 사사에게 불순종할 때는 죄악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예수는 영원한 사사가 된다. 그분에게 순종하고 생각을 그분의 뜻에 맞출 때(고후 10:5) 밝은 내일이 있다.
5.역사적 고증 다까바시마오 저, 한영철 역
1.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왕권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2.이스라엘에는 어떤 민족적 흐름이 있었는가
3.해양 족 블레셋인의 침입
4.무엇이<영웅시대>를 오게 했는가
5.어떤 영웅으로 사사시대에 활약했는가.
6.전승가<드보라의 노래>란 무엇인가
7.드보라의 전쟁 연대는 언제인가.
1.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왕권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왕은 신으로서 통치하는 신 왕 God king이라고 본 이집트에서는 왕의 재판은 신의 재판이었기 때문에 법률은 없다. 이에 비해서, 왕은 신을 위해서 통치하는 제사 왕 Priest King이라고 생각했던 메소포타미아의 민족 사이에서는 법은 신에게서 받는 신의 법칙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신 왕>과 <제사 왕>이라는 성격의 차이는 있었으나 고대 오리엔트 제국의 지배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신적인 기원을 찾으려고 했다. 이스라엘 지배자는 항상 초월적인 절대 영원한 신이다.
왕국 형성 이전의 이스라엘 제 부족은 유일 절대 영원의 하나님 야훼와 그 하나님과의 계약을 믿고, 그 계약을 실천하는 12부족의 동맹체였다. 이스라엘의 이 부족 동맹체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연합체와 같이 학문적으로<안픽티오니>라고 부른다. 안픽티오니라는 그리스 말은 <주위에 산다>는 뜻이며, 일정한 성소를 중심으로 해서 그 주위의 도시 국가가 동맹을 맺었다. 이것은 고대 로마에도 있었다. 이 제도는 이스라엘의 12부족의 조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안픽티오니의 특색은 반드시 12내지 6개의 도시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6내지 12라는 수는 1년의 12개월과 관계가 있다. 이들 도시나 부족은 1년에 1개월 내지 2개월 씩 번갈아서 중앙 성소의 관리나 보호를 맡고 동맹의 구성원은 정기적으로 중앙 성소에 모여 공통 문제를 협의하고 처리한다.
구약성서의 전승은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제 부족의 동맹체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이것을 최초로 지적한 것은 19세기의 구약학자 E.에발트이며, 그는 구약성서에 이스라엘 뿐 아니라 아람(창세기 22장 20-24절). 이스마엘(창25장13-16절), 에돔(창36장10-14절)의 12부족과 호리인의 6족(창36장20-28절)의 표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것들도 부족 연맹과 같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 후 도이치의 약학자 A.알트나 그 제자 M.노트 등의 연구로 부족 연맹의 존재가 알려졌고 특히 노트의 상세한 연구(1930년)는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학계의 통설이 되었다. 그러나 <안픽티오니 설>에 대해서 새로운 검토가 일어나고 이론을 제창하는 학자도 있다. 전승에는 모순도 보이나 12부족 중의 야곱의 아내 레아의 아들이라고 하는 6족은 항상 한 나라를 이루고 있으며, 레아족이 세겜에 있던 때부터 성소를 중심으로 해서 부족 동맹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원래 부족 연맹의 명칭이었고,<엘이 지배 한다>는 뜻이며, 그 종교는 그 명칭이 가리키는 것처럼 엘 종교였다. 거기에 뒤에 이집트 탈출을 감행한 요셉족 즉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새로 침입하여 그 새로운 하나님 야훼를 중심으로 레아족의 부족 연맹은 12부족의 동맹체로 확대되어 여기서 이스라엘 12부족이 새로운 하나님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통일체가 탄생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2. 이스라엘에는 어떤 민족적 흐름이 있었는가
구약성서의 기록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까지 소급되고, 이스라엘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며, 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12 아들이 각각 <12부족>의 조상이 됐다고 전한다. 이 12부족이라는 것은 사료 비판에 관계없이 창세기 35장에 의하면,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요셉,베냐민,단,납달리,가드,아셀이고,다른 기록에 의하면 레위를 제사로 별도 취급하고 그 대신 요셉족을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나누어 12부족을 만들고 있다(민수기 26장)
이처럼 이스라엘 12부족에 관한 전승에는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 경위는 전항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들은 처음부터 12부족이 아니었고 각 부족은 각각 독자적인 가나안 이주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각 부족은 이주, 정착, 화합 ,증대 ,분열 등의 복잡한 과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드보라의 시대까지 친근감을 가진 10부족의 동맹체가 성립된다. 이러한 부족 맹의 조직이 현실적으로 기능을 가진 것은 기원전 12세기에서 약 1세기 동안이고 블레셋인의 싸움으로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의 동맹이 성립되고, 그것이 다윗 왕에 의한 통일 왕으로 성장하고 다윗 왕조의 출현으로 그 기능이 정지된다. 이스라엘 12부족의 구조는 바로 이 다윗에 의한 유다. 이스라엘의 복합국에서 긴 정치 이념에서 성립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12부족의 계보
아 담 + 하 와 = 가인 + 아벨 + 셋 =셋 = 에녹 = 노아 = 셈 + 함 + 야벳 =셈
= 데라 = 아브라함 + 나홀 + 하란 + 사라 +아브라함 = 이삭 = 에서 + 야곱 = 유다 = 이새 = 다윗 = 솔로몬 = 요시야 = 요셉 =요셉 = 예수 + 제매들
3. 해양 족 블레셋인의 침입
기원전 12세기 초, 동부 지중해 연안에 해양 족 블레셋인이 침입하여 이스라엘 제 부족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고고학적 사료에 의하면, 블레셋인은 작고 둥근 방패와 길고 곧은 칼을 쓰며 머리에 반원형 뿔 장식을 단 투구를 쓰고, 두 필 말이 끄는 3인승 병차를 몰고, 행군 후방의 이륜마차에 처자를 태우고 있다. 그들은 이집트 제에 이집트에서 추방되어 북상하고 가나안 남부 두로에서 가자에 이르는 동부 지중해 연안에 정착하였다.
해양 족이란 이집트의 비문과 벽화에 의하여 그 존재와 활동이 입증된 소수의 혼성 민족이다. 이집트 측의 사료에 의하면 해양 족은 기원전 13세기 후반과 기원전 12세기 초, 두세기에 걸쳐서 해상으로부터 이집트 왕국을 공격하였다. 첫 번째는 리비아 왕의 동맹군으로서 서쪽으로부터, 두 번째는 해양 족이 주체가 되어 우선 힛타이트 제국을 습격하고 다시 키프로스와 시리아를 거쳐 남하하여 북쪽으로부터 이집트를 공격하였다. 이집트는 그때 상황에 따라서 파라오의 지휘로 전력을 쏟아 그들을 격퇴시켰다. 그들의 활동은 전승비문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해양족의 해상에서의 활동은 기원전 13세기, 발칸 반도 북부의 다뉴브강 유역을 근거로 한 민족 이동의 일환이라고 한다.
블레셋인은 해양 족을 구성하는 한 민족이었다. 블레셋인은 특히 가자. 아스클론, 아스돗, 에글론, 갓의 5개 연안 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북방의 페니키아 도시들과 지중해 무역을 경쟁하여 강력한 도시 문화를 건설하고 그 땅의 선주민 가나안인에 대한 군사적 지배층을 형성하고 가나안인은 군주의 지배 아래 있었다. 블레셋인은 구약성서에서는 <크레테에서 온 할례 받지 아니한 자>로 불리고 그들은 단일 인종이 아니라 소아시아나 지중해를 거쳐 크레테 섬 쪽에서 셈족세계로 침입해 와서 정착한 인도. 유럽어계의 이민이었다고 본다. 블레셋인의 종교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달라 가나안인의 종교를 혼합하고 셈족의 신 다곤을 숭배하고(판관기 16장 23절, 사무엘기상 5장1-7절),마르나(고기의 신)이나 아스타롯 등을 숭배하고 있었다. 즉 다곤을 아스돗과 가자에 모시고(헤로도토스<역사>I 105), 아스글론에서는 아스타롯을 모시고 에글론에서는 바알세불의 신전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블레셋인의 신들은 셈족의 신들이며, 그들은 에게 세계와 깊은 교역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우가리트 왕국의 신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4. 무엇이 <영웅시대>를 오게 했는가
가나안 정착에 이은 사사시대(B.C. 1200년경-1020년경)는 왕국 형성과 직결되는 시대이기도 하고, 사사시대의 사회는 이미 도이치의 사회 경제학자 막스 웨버(1864-1920)가 지적한 것처럼, 원래 반 유목민적 소 가축 사육자로서 출발한 소 가축 사육자 층, 농민 층 및 도시 정주 문벌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제 사회 층은 유동적, 발전적으로 가나안에 정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제 부족에 대한 블레셋인을 포함한 인근 제 부족의 군사적 침략으로 특징지어진다. 이스라엘 제 부족이 예기치 못하게 부닥친 가장 위험한 위협은 인근 제 부족에 의한 것도 아니고 유목민에 의한 것도 아니고 해양 족 블레셋인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이스라엘 제 부족은 선주민 가나안인 사이에서 그 생존을 확립하려고 전력을 다했다. 즉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제 부족이 인근 부족들의 군사적 압박을 이기고 가나안에 살아남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사사기에 의하면 이 싸움은 부족 집단의 공통의 하나님 야훼의 싸움이며, 그것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의 싸움, 즉 성전이고 그 싸움의 지도자들은 쇼페팀(구원자)의 뜻이라 부르면 판관 또는 사사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침입하여 왕국을 세우기까지의 사이에 이스라엘을 외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 야훼에 의하여 세워진 지도자였으며, 그 일은 동포를 외적의 위험으로부터 구원하는 군사적 활동과 중재와 조정의 재판 행정적 사법 활동이 있었다.
우리가 보는 현재의 사사기는 사료 비판에 관계없이 그 내용을 개관하며, 모세의 후계자이며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사망 후부터 사무엘의 탄생 전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침입한 후의 가나안의 부분적 점령의 서문적 개관(1장-2장5절), 판관의 이야기(2장6절-16장), 단 부족의 이주(17장-18장), 베냐민 부족에 대한 싸움(19장-21장)의 이야기를 포함한 부기의 3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사기는 다른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그 소재와 편찬이 대단히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학계에서 그 사료비판에 관한 연구가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 사사기는 그 사상, 문체, 용어, 그 밖의 여러 가지 차이가 시사 하는 것처럼 한 저자가 동일 소재에 의하여 일관하게 기록한 것이 아니고, 다른 구약성서의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료로 됐고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서 바빌로니아 포로시대 이후인 기원전 500년경부터 기원전 200년경의 3세기 사이에 편찬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5. 어떤 영웅이 사사시대에 활약했는가
사사기의 중심주(2장-16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사들은 보통 학문적으로는 <대 사사>(오드니엘, 에훗, 드보라와 바락, 입다, 삼혼 등)과<소 판관>(삼갈,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 등)의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사사시대에 1부족 내지 여러 부족의 집단에서 나온 전형적인 카리스마(신으로부터 주어진 영적 통치적 지배)적이고 일회적인 행위로 부름 받은 군사적 지도자이며, 막스 웨버의 말과 같이 이 부족의 구성원은 판관의 신성성, 영웅적 힘에 자발적으로 복종했고, 그 지배 관계는 비일상적인 성격을 가졌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는 계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그들은 왕국이 세워지기 전의 변혁기에 이민족에 의한 압박과 군사적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서 하나님의 카리스마를 받고 서서 그 위기를 구원한 대부분은 지방의 유력자이며 호족이었다. 그리고 그 위기가 지나가면 그들은 공적인 무대에서 물러나고 다시 새로운 위기가 닥치면 다른 사사가 서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지도자로서의 그들의 활동은 일시적인 것이며 그때그때의 하나님의 카리스마의 도래에 따르고 있었다. 따라서 그 활동 범위도 전 이스라엘이 아니라 대개는 좁은 범위에 그쳤다. 후자는 사사기 10장과 12장에 그 재임 연수만이 기록되어 있는 몇 사람의 지도자들이 그것이며, 그들은 아마 이스라엘 여러 부족에 대한 문관적 지도자로서 가나안 법을 이스라엘 여러 부족에게 도입하고 부족 간의 이해나 분쟁을 조정한 것 같다.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전자는 군사적 영웅 즉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후자는 사사라고 부른다. 사사시대의 지역적인 일련의 사건은 신명기 사가의 독특한 이데올로기적인 틀에 의하여, 계기적 국가적 규모의 사건으로 보고 현존의 사사기 속에 순차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 틀은 어느 사사에 관해서도 하나님에 대한 불의, 하나님의 분노, 외적의 침입의 형태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책벌로 이스라엘의 회개와 해방자(사사)의 출현 해방, 평화의 도래의 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사 설화도 계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사건은 국가적인 규모의 사건이라기보다는 지방적인 규모의 사건이었다. 단, 사사기 4장과 5장에 산문과 시문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 이른바 <드보라의 노래>는 이스라엘 평야의 가나안 도시들과 이스라엘의 북방 부족들의 싸움이며, 이 싸움은 시스라에 대한 드보라와 바락의 싸움이며, 에브라임, 베냐민,므나쎄,스불론,이사갈,납달리의 북방 6부족이 참가한 국가적 규모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은 사사시대에 일어난 전투 중 가장 중요한 전쟁이었다. 사사기 5장에 기록되어 있는 가나안 도시들 연합군에 대한 전승가<드보라의 노래>는 구약성서 중의 수많은 사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여기에 그 전문을 소개하자.
6.전승가<드보라의 노래>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용사들이 머리를 풀고 백성들은 스스로 전진하니, 야훼를 찬양 하여라!
너희 왕들아 들어라! 너희 왕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나는 야훼를 노래하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의 영광을 돌리리라.
야훼여, 임께서 세일에서 나오실 때, 임께서 에돔 땅에서 진군하실 때. 땅은 흔들리고, 하늘은 진동하여 구름이 비를 쏟았습니다.
신들이 야훼 앞에서 녹아나고 저 시나이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 앞에서 녹아 내렸습니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시대에도 야엘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큰 길을 버리고 오솔길로 다녔네.
오, 드보라, 당신이 일어서기까지 이스라엘의 어머니 당신이 일어서기까지, 이스라엘의 촌읍들은 죽어 있었네.
새 신들을 저희 신으로 삼았다가 전쟁이 성문에 들어 닥쳤는데 도시 다섯에 방패 하나 없었고 사만 명 이스라엘 군인 가운데 창 하나 없었네.
이스라엘의 사령관들은 생각하니 자원해서 나선 백성을 생각하니 나의 심장이 뛰는 구나.
너희는 야훼를 찬양하여라.
흰 암나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아. 비싼 양탄자를 깔고 사는 사람들아 대로를 활보하는 사람들아.
노래하여라.
우물가에 모여 기뻐하는 사람들아. 야훼의 승리를 노래하여라.
이스라엘을 거느리시고 거두신 승리를 노래하여라.
그때 야훼의 백성은 성문께로 내려갔다.
드보라야, 떨쳐 일어나라. 일어나라. 떨쳐 일어나라, 일어나 노래를 불러라.
바락아, 일어나라. 아비노암의 아들아, 그대의 포로들을 끌고 가거라.
그때에 이스라엘은 성문께까지 내려갔다.
야훼의 백성은 영웅처럼 야훼를 편들어 싸우러 내려갔다.
에브라임의 왕자들은 골짜기에 있고 네 형제 베냐민이 귀족들과 합세하였다
마길에서 사령관들이 내려왔고 즈불룬에서는 지휘봉을 잡은 자들이 내려 왔다.
이사갈의 왕자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며 ,이사갈도 바락에게 충성을 바쳐 그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갔다.
르우벤은 냇물가에들 모여서 끝도 없이 토론이나 벌이는구나
어찌하여 양떼 틈에 끼어 피리 부는 소리나 들으며 양 우리에서 서성거리는가. (르우벤은 냇물가에들 모여서 끝동 없이 토론이나 벌이는구나)
어찌하여 길르앗은 요르단 건너편에 머물러 있고 단은 남의 나라 배나 타고 있는가?
아셀은 바닷가에 자리 잡은 채 항구에서 편히 쉬고 있는데, 즈불룬 지파도 납달리도 언덕 위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웠다.
왕들이 몰려 와 전투 대열을 벌였다. 가나안 왕들이 므기또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수지가 맞지 않는 싸움이었다.
위로 하늘에선 별들이 싸웠다.
궤도를 돌며 시스라를 쳤다.
키손의 물결이 앞을 막았다가 저들을 쓸어 갔다. 키손의 물결이 나는 있는 다해서 짓밟았다.
굽을 안고 뛰어 가는 말. 그 발굽에 땅은 진동하였다.
"메로즈는 저주를 받아라"고 야훼의 천사가 선언하였다. 저주, 저주를 받아라, 그 안에 사는 것들,저들은 야훼를 도우러 나오지 않았다. 야훼를 도우러 용사들과 어울려 나오지 않았다."
켄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이여, 어느 여인보다 복을 받아라. 방구석에 묻혀 사는 어느 여인, 다 복을 받아라.
시스라가 무얼 달라고 하였을 때 우유를 주고는, 귀한 그릇에 엉긴 우유를 떠 주고는,
왼손을 내밀어 말뚝을 잡고 오른손을 내밀어 대장장이의 망치를 쥐고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부수고 관자놀이를 뚫고 쪼개 버렸다.
시스라는 그의 발 앞에서 꿈틀하고 죽었다.
그의 발 앞에서 꿈틀하고 죽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꿈틀하고 죽어 망하고 말았다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내다보며 창살 틈으로 소리쳤네.
"왜 그의 병기가 이렇게 늦느냐? 천리마가 왜 이처럼 더디냐?"
시녀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의 대답을 따라 그도 혼잣말로 지껄였네.
"틀림없이 약탈한 것을 모아 나누겠지 용사 하나하나에 여자 하나씩 또는 둘씩, 시스라 몫으로 채색 한 옷 한 벌, 또는 두 벌. 그리고 내 몫으로는 수놓은 목도리 하나 또는 둘. 야훼여, 임의 원수들은 모두 이처럼 망하고 임을 사랑하는 이들은 해처럼 힘차게 떠오르게 하소서."
이 유명한 전승의 기쁨을 노래한 <드보라의 노래>는 전쟁 직후에 노래한 것이며, 이 노래에는 전쟁의 생생한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 노래는 헤브라이 시가 중에서 최고 최대의 걸작이며, 문학사상 뛰어난 전승가의 하나이기도 하다.
7. 드보라의 전쟁 연대는 언제인가
드보라는 야빈과 시스라가 지휘하는 가나안군과의 싸움에서 바락을 독려하고 함께 싸운 여선지자로 자적 기능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을 때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서 시스라가 참가하여 결전이 이스라엘 평야에 벌려져 드보라의 참전 독려로 예상 밖의 대승리를 거두게 됐다.<드보라의 노래>에 의하면 이 전투는 겨울 우기에 <므깃도 물가다아낙>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호우 때문에 물이 붙은 키손강의 격류가 가나안군의 전차를 휩쓸어 그 기동력을 잃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지를 내려온 이스라엘의 북방 6부족의 군단에 의하여 격파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드보라의 도움으로 운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드보라는 여 예언자로서 활약한 인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녀는 길가에 서 있는 거룩한 나무 곁에 앉아서 영웅 바락에게 신탁을 알리는 이른바 무녀였다. 이것은 당시의 원시적 공동체 부족 사회에서 계급 사회로 전환하는 이스라엘의 과도기 사회의 최고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 여성의 영매였던 것을 전하는 것이 나타내는 것이 여성의 영매였던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고대 이스라엘 뿐 아니라 고대 오리엔트 여러 나라에서는 법은 신왕과 직접 관련을 가지며, 재판은 자주 제의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판결 방법이 특이했다. 특히 어려운 사건인 경우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인물에 의한 판결이 요구되었다. 드보라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여 예언자인 동시에 사사로서 활약한 인물이었다.
바락과 시스라가 싸운 연대는 <드보라의 노래>가 유일한 역사적 사건을 테마로 해서 지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고고학적 사료로는 기원전 13세기 중엽 이후가 된다. 기원전 12세기말이 가까 와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룻기(Ruth)
1.명 칭 : (dWl , dWr ,JRouvq , Ruth) 자손)
본서의 제목은 여주인공 룻의 이름을 따라 붙여졌다.그는 모압여인 이었지만 그녀는 다윗의 할머니로서 예수의 직계조상이 되었다.
그림설명 / 룻과 보아스(부분도) : 포생 작품 보아스의 보리밭에서 이삭을 줍던 나오미는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다. 루브르미술관 소장
2. 내 용
본서는 다윗왕의 증조모인 룻이라는 한 모압 여자의 생애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본서의 저자는 탁월한 문학적 재질을 가지고 전원 시 같이 아름답게 히브리 사람들이 멸시하는 이방인 그것도 여자의 이야기를 써 놓았다. 엘리멜렉이라는 한 히브리 사람이 가족과 함께 모압으로 이사 가서 살았다. 그런데 가장인 엘리멜렉이 불행하게도 객사하고 미망인 나오미는 역경 중에서도 두 아들을 길러 모압 여자에게 장가들게 하고 위로를 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불행은 계속되어 두 아들 역시 일찍 죽어 버렸다. 불행한 나오미는 고국으로 돌아가 살기로 작정하고 두 며느리에게 개가하여 각자 길을 찾아 가라고 하였다. 큰 며느리 오르바는 떠나갔으나 둘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한사코 떠나가지 않았다. 고국에 돌아온 후에도 시어머니를 정성으로 봉양하던 룻은 후일에 시가의 친척이며 재산도 있고 인격도 훌륭한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으며, 그 들 사이에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라는 아들을 낳았으며, 이새는 바로 다윗 왕을 낳았다.
3. 주 요 사 상
본서는 국수주의적이며 배타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사상을 기록한 것이다. 즉 그들이 멸시하는 모압의 한 여인이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왕의 증조모라는 것과 그 여인이 얼마나 훌륭한 인간성을 가진 모범적 인간이었나를 교훈하고 있다. 선민사상으로 굳어져 있는 유대교에 비추어 볼 때 본서의 사상은 독특하며 대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남성 위주요 남존여비 사상이 농후한 유대 사회에 있어서 본서는 여성의 위치와 가치를 높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다윗의 족보를 밝히기 위한 목적도 있고, 효를 중심한 선한 가정생활에 대한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본서를 사무엘이 기록했다는 설도 있지만 4:22에 다윗의 이야기가 기록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다윗이 이미 왕이 되고 존경받는 유명한 인물이 된 후의 기록임을 시사하고 있다.
사무엘상(1Samuel)
1.명 칭 : (laeWmv], Samuel)「여호와께 구함)
히브리어 성경에는 사무엘상과 하가 합하여 한 책으로 되어있다.이 책의 명칭은 본서의 주인공인 사무엘의 이름을 딴 것이다.그 까닭은 본서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이 사무엘이며 다른 두 주동 인물 즉 사울과 다윗을 기름 부어 왕을 삼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70인 역의 번역자들은 본서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제1왕국기, 제2왕국기라고 불렀으며 열왕기도 둘로 나누고 제3왕국기, 제4왕국기라고 불렀다.
2 내용과 주요사상
본서의 저자는 분명하지 않다.사무엘이 본서 전체의 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삼상25:1,삼상28:3에 기록되어 있고 또 그가 죽은 후에 일어난 사건 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본서의 저자는 왕국분열 직후에 살았던 아마 유대의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미 기록되었던 문헌을 기초로 하여 기록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림설명 / 미스바언덕 : 오늘날 텔 엔 나스베로 알려지고 있는 이곳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제지역에 있던 요새였다. 또한 이곳은 전 이스라엘의 기도와 경배의 장소였다(삿20-21장) 사무엘은 이곳에 온 백성을 모이게 하여 민족적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종교개혁을 시도하였다.
본서는 왕정 국가의 형성과 그 일에 있어서의 사무엘의 역할에 대한 기록이다.사사시대라는 과도기를 지나 왕정제도의 국가를 건설하고 그 왕국이 점차 제자리를 잡아 가면서 가나안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고 모든 민족의 통합을 완성한 모든 역사를 수록하고 있다. 사무엘은 그러기에 마지막 사사(삼상7:6, 15-17)이면서 동시에 선지자(삼상3:20)이었다. 사무엘과 엘리의 관계(삼상1:1-7:1), 사무엘과 사울의 관계(삼상7:2-15:35),사무엘과 다윗의 관계(삼상16:-),통일된 이스라엘 왕 다윗(삼하5: -24:)에 관한 역사의 기록 등이 본서의 내용이다.
3. 왕국의 신비 다까바시마오 저, 한영철 역
1.이스라엘 왕정은 언제 왜 시작 되었는가
2.다윗은 어떤 사료로 확인 되었는가
3.다윗은 유다 부족 출신인가
4.다윗은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5.다윗의 조가
6.예루살렘의 노래
7.예루살렘은 언제 성도가 되었는가
8.<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9.<슬픔의 성벽>은 왜 불굴의 재생을 나타내는가
10.왕의 계승 문제와 솔로몬의 즉위
11.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계통인가
12.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방문한 목적은 무엇인가
13.<코란>의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 이야기
14.게젤의 촌읍에서 출토된 가나안 달력
1.이스라엘 왕정은 언제 왜 시작 되었는가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 = 영웅들은 이스라엘을 습격하는 이민족, 블레셋인을 대적해서 타격을 주고 동포 이스라엘을 그 위기에서 구출하는 용사들이며 동포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만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사시대의 영웅들은 족장이나 왕인 호메로스의 영웅들의 군상과 공통점은 있으나 사사시대의 영웅들은 하나님 야훼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매개로 해서 동포 이스라엘과 결합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은 주변 부족과의 사이에 그 정치 조직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즉 에돔, 모압, 암몬은 군주 체제이고, 예루살렘, 게젤, 므깃도, 다아낙, 벳스안은 자기들의 왕을 세운 도시 국가의 체제를 갖추었으나 이스라엘은 허술한 부족 연합체였다. 거듭되는 불레셋인 내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의 예언자 사무엘에게 지도자 왕을 요구했다.
사무엘상 8장은 민족 투쟁 중에서 이스라엘의 장로가 이스라엘을 강대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왕정을 선택한 것을 말하고 있다. 왕국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은 사료적으로는 신 사료층(BC 7세기말-6세기)에 속하는데, 이런 생각의 중심은 상당히 오랜 시대로 소급되는 것 같다. 사무엘의 말(8장11-18절)중에 이스라엘을 둘러싼 왕제의 특징이 제시돼 있고 그것은 바로 아시아적 전제 군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11세기 후반에 활약한 최후의 사사이고 최초의 예언자인 사무엘은 백성의 찬성을 얻어 베냐민 부족 출신의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카리스마적 지도자 왕으로 삼았다.이스라엘의 경우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달리 왕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카리스마를 받아 왕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 왕국은 사사시대의 전통을 계승하여 출발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면 하나님의 카리스마와 함께 민중의 지지를 받아야 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은 초기 이스라엘 왕국의 두 가지 특징이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BC 1020년경-1000년경)의 치세는 사무엘기상 9장-31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무력하고 그 지배권은 이스라엘에 한정되고 외적의 침략에 대해서는 제 부족의 소집 군대를 가지고 싸웠다. 사사시대의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한 사울 왕은 무장 다윗과의 비극적인 분쟁 후에 블렛셋인과의 전투에 패하고 에스들렌론 평야의 동남부에 있는 석회암 구릉지대의 봉우리 길보아산(높이 497미터)에서 제 아들과 함께 전사하였다(삼상 28장 4절 이하, 31장1-6절, 삼하 1장6~10절). 사울 시대는 카리스마에서 왕정으로 과도기, 즉 종교적인 세계에서 세속적인 세계로의 이행기였다.
2. 다윗은 어떤 사료로 확인 되었는가
고대 이스라엘의 왕들의 치적을 조사할 때, 특히 다윗 왕의 치적을 조사하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은 사료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고대 오리엔트, 특히 슈메르, 바빌론 이집트, 힛타이트 등의 왕들의 치적 조사는 그 나라들의 왕들이 스스로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서 새겨놓은 비문이나 서판 등을 이용할 수 있으나 고대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그 시대의 사료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기원전 9세기의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 예후(BC 842S년경-815년경)나 기원전 8세기의 북 왕국 왕 므나헴(BC 745년경-736년경)의 치적에 관해서는 동시대의 앗시리아 측의 기록에 약간 언급되어 있으나, 여기서 말하려는 다윗(BC1000년경-960년경)시대의 일에 관해서는 동시대의 외국 기록에는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다윗 시대에 가장 가까운 문헌 사료는 구약성서뿐이다. 그중에서 다윗 왕의 치적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은 사무엘상 16장 이하 열왕기의 첫 2장까지에 있다. 그리고 사울에 관해서는 사무엘상9장-31장 솔로몬에 관해서는 사무엘하 12장 이하 열왕기상 11장까지에 있다.
사무엘기는 이스라엘 왕국의 기원과 초대 왕 사울과 다윗을 취급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사무엘의 사후의 사건들이다. 그 내용을 사료 비판에 관계없이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사무엘(상1장-7장), 사무엘과 사울(8장-15장), 사울과 다윗(16장-31), 다윗과 그 왕국(하1장-8장), 다윗 왕위 계승사(9장-20장), 부록(21장-24장) 사무엘기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내용의 중복과 모순, 그리고 서로 다른 기록이 있고, 구약성서의 다른 문서와 마찬가지로 전승의 다양성이 보인다. 가령 왕국의 성립에 관해서 왕국에 호의적인 입장에 선 기록(상9장,10장1절-16절)과 비판적인 입장에 선 기록(상8장,10장17-24절)의 대립이 그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무엘기를 일관된 한 권의 책으로 보기가 어렵다. 많은 연구자의 분석 결과 사무엘기는 기록된 사건에 시간적으로 가까운 사료층과 뒤에 기록된 사료층, 즉 신구 두 가지 사료층을 기초로 해서 편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두 가지 사료층은 구 사료층과 신 사료층, 또는 조기 사료층(BC 10세기)과 후기 사료층(BC 7세기말-6세기)이라고 가칭된다.
각기의 특징을 들면, 구 사료층은 사울과 다윗이 주인공이고, 그 특징은 소박하고 신학적인 수식이 적은 것이다. 이에 반해서 신 사료층은 사울이 주인공이며 그 특징은 대단히 논리적이고 신학적이며 야훼 신권주의로 일관되어 있다. 신 사료층의 성립 연대는 유다왕국 말기에서 바빌로니아 포로기(BC 6세기)에 걸친 시대로 보기 때문에 구 사료층이 다윗에 관한 기본 사료가 된다.
3. 다윗(dwiD;,Dauivd, David).사랑함)은 유다 부족 출신인가
헤브라이어의 <다윗>이라는 이름은 헤브라이어의 모음을 바꾸어 <돗>으로 고치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며, 1935년에서 38년에 걸쳐서 프랑스의 학술 조사대에 의하여 유프라테스강 하류 우측 강안의 고도 마리(현재 이름 텔 할리)의 발굴 조사가 진전되고 거기서 발견된(마리 왕실 문서)(BC 18세기)에 보이는 <다위돔><사령관><장군>의 뜻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있다. 다윗의 계보는 기원전 350년경에서 기원전 250년경 사이에 편찬된 역대기 상 2장에 유다의 자손의 계보로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다윗은 유다 부족의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며 부친 이새는 아마 사사시대에 모압 여자 룻과 결혼한 보아스의 손자가 되므로 다윗은 모압의 혈통을 받은 것이 된다. 그런데, 성서사전이나 다른 많은 책에는 다윗은 유다 부족 출신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다윗은 유다 부족 출신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기록하는 것은 아니고, 가령 미국의 J.브라이트는 그의 저서<이스라엘사>(1972)에서 다윗을<베들레헴의 젊은이>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기록(사무엘기상 16장18절, 17장12절, 20장 6절, 23장 23절, 사사기 17장7절, 역대상2장)을 자세히 검토하면 우리는 다윗이 유다 부족의 출신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이것은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B.C. 1020-1000년경)이 베냐민 부족의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난 귀족 가문의 출신이었다(사무엘상 9장1-2절)고 추정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다윗은 기원전 2천 년대 중엽 이후에 고대오리엔트 전역에 나타난 하피르 또는 아피르라고 불리는 집단과 성격적으로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이브리>(<헤브라이인>을 가리키고 구약서에는 34회 사용되고 있으며 노예인 경우도 있고 용병인 경우도 있다)출신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하피르라고 불리는 집단의 이름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아나토리아 방면에서 출토된 쐐기꼴 글자로 기록된 점토판 속에서 보이며 종족 이름이라기보다는 정주 사회밖에 있으면서 비옥한 땅 주변에 출몰한 사회층의 이름이라고 해석된다.
4. 다윗은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다윗의 출생에 관해서는 구약성서의 기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자세하지 않다.서로 모순되는 기록에 의하면, 다윗은 어려서부터 유다의 구릉지대에서 부친의 양치기를 도왔다. 그는 수금을 잘 타고 점점 사람들의 희망을 모았고, 그것이 결국 사울 왕의 귀에도 들려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울왕의 병을 수금으로 고치기 위하여 궁정으로 들어가게 했다(사무엘상 16장 구 사료층).
한편 다윗은 블레셋군과의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명성을 얻고 사울 왕에게 중용된다(사무엘상 17장 구 사료층) 다윗은 사울 왕에게 용병으로 고용되고 대장이 된다. 그러나 다윗의 명성과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군인 다윗은 점차 사울 왕의 질투를 사게 되고 사울 왕에게 내쫓겨 방랑군인이 된 뒤 블레셋 사람 땅에 있는 갓 촌읍의 아기스 왕에게 몸을 의탁하여 시글락 촌읍을 받아 블레셋군의 장교로서 블레셋 왕에게 충성하면서, 한편으로는 남방의 여러 부족을 약탈자들로부터 지켜주고 북방의 이스라엘 주변의 제 부족을 공략하여 그 전리품의 일부를 남쪽 유다의 장로들에게 보내어 그들의 신뢰를 얻어 후일에 대비했다. 이 사이에 북방에서는 이스라엘군이 블레셋군에게 격파되어 결국 사울 왕과 그의 세 아들이 전사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여 애도의 노래를 지었다. 사무엘하 1장 17-27절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의 조가>는 아브넬에 대한 다윗의 조가(사무엘하 3장 33-34절)와 함께 다윗이 친히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조가들은 사사기 5장의 <드보라의 노래>에 이어 고대 헤브라이 시가의 걸작이다.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인데, 18절에 의하면 후일에 이스라엘의 영웅의 공적을 주제로 한 국민시를 모아<야샬의 서>에 수록되고 그것이 사무엘하 1장에 전재된 것 같다.
사울 왕의 사후 다윗은 블레셋군의 진지에서 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헤브론으로 가서 옛부터 법궤가 있던 마므레에서 유다 집안의 사람들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유다 집안의 왕>이 되고 남방 유다국왕이 됐다.
사무엘하 5장은 다윗이 유다 집안의 왕이었던 기간을 7년 6개월이라고 했다.그 사이 남방 유다와 북방 이스라엘 사이에는 전쟁이 계속되고 이스라엘 제 부족의 장로들은 세력 범위가 달라지면서 헤브론으로 가서 다윗 왕에게 굴복하고 다윗과 계약을 체결하고 다윗은 장로들의 기름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왕권을 받아 그 수도를 헤브론으로 정했다. 전자의 즉위는 아마도 상호 호혜적인 계약으로 이루어지고, 후자의 즉위는 남과 북의 상당히 세력의 우열이 있는 당사자 사이의 계약 관계로 된 것이며, 그 지배권은 남과 북의 부족 연맹의 장로들을 통해서 된 것이다. 다윗 왕에게 있어서 에브스인의 도시 예루살렘이 남북 이스라엘을 연결하는 요로에 있기 때문에 남북통일의 장애가 되었다. 그래서 다윗 왕은 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12부족을 통합하여 통일 왕국 지배의 기초를 삼고 그 왕국의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이렇게 해서 다윗 왕은 사울 왕의 패배 후에 성립된 남북 왕국을, 즉 <전체 이스라엘>을 한 왕의 통치 아래 통합하고 에브스인의 촌읍 시온의 요새 예루살렘을 공략하여 그곳을 정치, 군사. 종교의 중심지로 삼고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지배 영역을 넓혔다. 그 왕국은 제도적으로는 용병제도의 왕국이었다. 다윗은 왕국을 세우면서 특히 행정기구를 - 적어도 부분적으로 -이집트의 본을 딴 것 같다.
사울의 왕국을 거쳐서 다윗 왕국의 건설과 번영은 그에 앞선 사사시대의 전쟁의 성과와 그 시대의 국제 정세가 유리했기 때문이다. 즉 남쪽 이집트 제21왕조(B.C. 1085년경-945년경)가 쇠퇴기에 들어갔고, 북쪽 앗시리아 왕조가 티그랏피레셀 1세(B.C. 1115년경-1077년경)의 사망 후 침체기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은 지금도 <다윗의 성>으로 불리며, 당시의 예루살렘은 현재의 성전 남쪽에 있는 구릉지대에 있었다. 성서에는 다윗 왕이 예루살렘 도시를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것은 고고학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유다의 자손의 계보
유다+다말 = 베레스-제라 = 베레스 = 헤스론-하몰 = 헤스론 = 람-갈렙 (에브라다= 후르-살마(베들레헴을 세움) = 람 = 아미나답 = 나흐손 = 살마 = 보아즈 = 오벳 = 이새 = 엘리압-아비나답-시마-느다넬-라때-오셈-다윗-스루야(딸)-아비가일(딸)
5. 다윗의 조가(弔歌)
다윗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여 조가를 지어 유다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하였다. 이 노래는 야살의 서에 기록되어 있다.
너 이스라엘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었구나
아, 용사들은 쓰러졌구나
이 소문을 갓에 알리지 말라.
아스클론 거리에 퍼뜨리지 말라.
블레셋 계집들이 좋아하고
오랑캐 계집들이 좋아 날뛸라.
길보아 산악에는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아니하고,
소나기도 쏟아지지 아니하리라.
거기서 용사들의 방패는 더러워졌고,
사울의 방패는 기름칠도 않은 채 버려졌구나.
요나단이 한 번 활을 쏘면 사람들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고,
그 살에는 적군 용사들의 기름기가 묻고야 말았는데,
사울이 한번 칼을 휘두르면 사람들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고,
그 칼에는 적군 용사들의 기름기가 묻고야 말았는데,
사울과 요나단은 살았을 때 그렇게도 정이 두텁더니,
죽을 때도 갈라지지 않았구나.
독수리보다도 날쌔고
사자보다도 힘이 세더니
이스라엘의 딸들아
주홍색 옷을 입혀 주고 그 옷에 금장식을 달아주던
사울을 생각하고 통곡하여라.
아, 용사들이 싸움터에서 쓰러졌구나.
요나단이 산 위에서 죽었구나
나디 형, 요나단 형 생각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오.
형은 나를 즐겁게 해 주더니,
형의 그 남다른 사랑,
어느 여인의 사랑도 따를 수 없었는데,
아, 용사들은 쓰러지고 무기는 사라졌구나.
(사무엘하 1장 17절-18절, 구 사료층)
6.예루살렘의 노래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 놓고서.
우리를 잡아 온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고 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닥 시온 노래 불러라"고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 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서 잊혀진다면
내 만일 너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야훼여, 잊지 마소서, 예루살렘이 떨어지던 날,
에돔 사람들이 뇌까리던 말
"쳐부숴라, 바닥이 드러나게 헐어 버려라"
파괴자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악을
그대로 갚아주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네 어린 것들은 잡아다가
바위에 메어치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시편 137편)
여기 인용한 시는 구약 문학 중의 걸작의 하나인 시편 137편이며, 기원전 6세기 초에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 포로로 바빌로니아 각지로 끌려가는 포로민이 포로기간에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노래한 노래이다. 따라서 이 시의 형성 연대는 페르시아 왕 큐로스(B.C. 559-529)에 의한 바빌로니아 정복 이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예루살렘은 헤브라이어로 예루샬라임, 아라비아어로 바리톨. 막디스 또는 알. 크투스라고 하며, 이스라엘 남북 양 지방을 연결하는 중간에 위치하고 동쪽은 요르단과 접경하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거쳐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로 통한다. 서쪽은 중동의 <비옥한 초생달 지대>에 접하고 지중해 연안의 항구들과 철도 및 육,공로로 연결되어 있다.
7. 예루살렘(!yil'v;Wry], jIerousalhvm,Jerusalem 평화의 소유물)은 언제 성도가 되었는가
구약의 시인들의 노래한 <예루살렘>이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된 것은 기원전 10세기 초에 다윗(B.C. 1000년경-961년경)이스라엘의 어느 부족에도 속하지 않은 이 땅을 에브시인에게서 쟁취하여 이 땅의 언덕의 동남일대를 수도로 정하고 정치 군사, 종교의 본거지를 삼은 때로 소급된다. 에브스인의 촌읍 시온의 요새 예루살렘은 그 후<다윗의 성>이라 불리고, 현재는 유대인에게 있어서 고대의 수도일 뿐 아니라 고대 유대교의 중심이었던 제1, 제2 성전이 있던 성역이기도 하고, 신성한 도시로서 그리스도교도에게 있어서는 예수의 생애와도 관계가 깊고 많은 유적을 가진 거룩한 도시이며, 이슬람교도에게는 마호멧이 여기에서 승천했다고 전하는 까닭에 메카와 메디나에 버금가는 제3의 성도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성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공화국의 수도이며 인구 36만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이다. 성도 예루살렘은 해발 약 800미터의 언덕 위에 세워진 천연의 요새이며 북쪽을 제외한 동, 남, 서 삼면은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언덕은 동쪽은 키드론 골짜기, 서쪽과 남쪽은 힌놈 골짜기에 끼어 있으며, 이 골짜기들은 남쪽에서 합류하여 유다의 황야에 이어지고 언덕 북쪽은 성벽을 사이에 두고 신시가지가 접해 있다.
8. 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루살렘>이란 이름이 구약성서 이전 기록에서 처음 보인 것은 기원전 19,18세기의 이집트 중 왕국 제12왕국 시대의 <저주문서>에서이다. 즉 Urusalimum이라는 형태로 나온다. 그리고 시대가 지나서 기원전 14세기의 이집트 신 왕국 제18왕조 시대의 <아마르나 문서>에는 Urusalim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문서에 의하면 당시 이집트의 세력이 가나안(시리아, 팔레스티나>에도 미쳤기 때문에 예루살렘에는 이집트의 관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성서의 헤브라이어 부분에는 <예루샬라임> Yyrusalayim이라고 되어 있으나 아람어 부분에는 <예루살렘>으로 되어있다. 70인역(그리스어역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에서, 아람어의 발음이 기원전 2세기경의 실제 발음에 가까웠던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예루>라는 말은 <기초>라는 뜻이며 (샬라임>이나 <살렘>은 헤브라이의 <평화>(헤브라이어에서는 생명이 넘치는 동적인 상태를 말한다)라는 뜻인 <샬롬>과 관계가 있으며, <예루살렘>은 <평화의 기초>를 의미한다고 해석돼 왔다. 그러나 예루살랴임 또는 예루살렘을 샬롬과 연결시키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무리가 있으며, 근년에는 샬렘이라는 이름의 신의 보좌, 즉 샬렘 신전이 있던 것에서 유래된다한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은 살렘 예배의 중심지가 된다.
앞에서 말한 <아마르나 문서>에는 침략을 계속하는 하피르의 습격에 관한 얘기가 있으며, 침입한 이스라엘인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했음을 전하고 있다. 도시로서의 예루살렘을 관한 더 확실한 사적은 <아마르나 문서>보다도 약 400년이나 소급되는 기원전 1800년경의 중기 청동기 시대의 이 도시의 성벽이라고 한다. 발견된 것은 극히 일부이지만 성벽은 언덕 위로 향해서 뻗혀 있으며 성벽 전체의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 있다. 이 성벽으로 판단하면 고대 예루살렘은 현재의 구시가지에서 남쪽으로 뻗혀있는 두 언덕의 낮은 쪽에 있는 약 11에이커의 지역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위치가 선택된 것은 물의 공급이 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시에는 물을 복잡하게 굴착한 경로를 통해서 공급되고 있었다.
9. <슬픔의 성벽>은 왜 불굴의 재생을 나타내는가
구약 문학 중의 걸작의 하나인 시편 제37편의 열정에 넘치는 싯구를 읽을 때마나 1964년 크리스마스에 성지 순례를 위해서 예루살렘을 둘로 나누고 있는 국경선에 있는 만델바움 문의 검문을 지나 요르단 영으로 들어가서 구시가지에 쓸쓸히 서있는 <슬픔의 성벽>(유대인들은 <서벽>이라고 부른다)을 찾아갔던 일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성벽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 흘린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기념하는 것이라든가, 로마군이 성전을 파괴했을 때에 천사가 눈물을 흘리며 사수한 기념비라든가, 아침이 되면 돌이 이슬에 젖어 망국의 유대인의 슬픔을 이 성벽이 슬퍼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이 성벽은 솔로몬의 성전관계가 없다. 기원전 63년에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됐고 결국 헤롯 왕(B.C.37-A.D.4)의 통치아래 놓였다. 헤롯왕은 로마 풍의 건물로 예루살렘을 개축하고 특히 바빌로니아 포로(BC 6세기)후 재건된 제2 성전의 대 개축을 하였다. 이때의 성벽의 서쪽 벽이 <슬픔의 성벽>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원후 66년에 로마에 대해서 독립을 요구한 제1차 유대 전쟁이 일어나서 기원후 70년에는 오히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AD 79-81)에 의하여 진압되고 성전을 포함한 예루살렘 전체가 철저하게 파괴되어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이 <슬픔의 성벽> 뿐이다. 현재의 성벽은 16세기의 이슬람 터키령 시대의 것이라고 하며, 성벽 하층의 거대한 돌들은 헤롯 시대의 것이다. 성벽의 폭은 54미터, 높이18미터, 하층 9단에는 거대한 석회암을 쌓았으며, 그중에는 9*1*1.5미터나 되는 큰 돌도 있으며, 상층 15단은 작은 돌로 쌓여 있다.성벽의 높은 곳에는 우슬초가 무성해 있다고 한다. 아무튼 유대인에게 있어서 기원후 70년에 파괴된 영광의 이스라엘의 기념비는 이 성벽이다.
예루살렘의 신 시가지와 구 시가지를 갈라놓은 냉혹한 성벽과 철조망은 6일전쟁의 3일째 되는 날에 제거되고 슬픔의 성벽 주위에 밀집해 있던 아랍인의 민가는 전후에 곧 철거되고 성벽 앞에는 수 만 명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생기고, 문자 그대로 <유대인의 광장>이 되었다.<슬픔의 성벽>앞에서 다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그것이 실현된 것이다. 이 전승의 소식을 들은 유대인들은 전국 전 세계에서 이 <슬픔의 성벽>앞에 모여 기도를 드리고 춤추고, 이스라엘군의 지휘를 맡은 모세 다얀 장군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모세에 비유해서 <제2의 모세>라고 찬양되고 있다는 것이다.
10. 왕위 계승 문제와 솔로몬의 즉위
다윗 왕의 만년에는 밧세바 사건(사무엘하 11장-12장)에 이어 왕위 계승을 에워싼 비극적인 집안싸움이 일어나고, 결국은 임종을 맞이한 다윗 왕에 의하여 애처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 계승자가 되고 밧세바는 궁정 예언자 나단, 다윗의 용병대장 브나야, 제사 사독 등의 지지를 얻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다윗의 나귀에 태워 기브온으로 데려가 제사 사독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리고 밧세바는 다윗 왕의 생전에 그녀의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다윗 왕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간, 예루살렘에서 33년간 합계 40년간의 통치를 마쳤다. 다윗의 생애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과 다사다난의 연속이었다. 한편 다윗은 그 40년간의 치세에 이스라엘인의 정주 지역의 남서부를 차지하고 있던 블레셋인과 동부와 동남부 지역의 암몬인, 모압인, 에돔인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고, 동시에 멀리 안티레바논산맥의 동부와 동남부 지역의 아람인들에 대한 지배권도 획득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적 통일과 독립을 실현한 것이다.
다윗왕의 사후 왕위에 오른 그의 아들 솔로몬(BC 961년경 -922년경)은 형 아도니야를 노왕 다윗의 허락을 받지 않고 왕위에 앉히려 한 자를 숙청하고 통치를 시작했다. 솔로몬의 즉위는 이스라엘 왕국의 카리스마적 이념을 타파한 왕위 세습제의 제1보였다. 솔로몬 왕의 치세에 관해서는 열왕기상 1장-11장과 역대기상 22장-하9장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솔로몬 왕은 부왕의 사업을 계승하고 그 지배 과정에서 왕국에 물질적 번영을 가져오고 실질적으로 외적의 공격에서 왕국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먼저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과 궁전의 신축을 완성하고 이들 건축 공사에 드는 모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와 교역을 하고 군비를 갖추어 주변 나라들을 정복했다. 그리고 주변의 백성들과 혼인이나 통상 관계를 맺어나갔다. 그러나 이들 국가적 제 비용은 통상으로 벌어들이는 수익만으로는 부족해서 징세제도를 재정비하고 국토를 종래의 부족단위로 된 12 지방 장관(열왕기상 4장 7-19절)을 두어 관할하게 했다. 다시 말해서 그 지배권을 중앙집권 체제로 고쳤다.
한편 솔로몬 왕은 <법궤>를 다윗의 성에서 황금으로 덮은 장대하고 신성한 성전으로 옮겨왔다. 그 <법궤>는 민족통일과 종교적 충성의 상징이었다. 이것은 형식적으로는 부족 공동체 시대의 관습을 답습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황야의 유목적 종교의 도시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새로운 성전에는 왕의 관료로서의 새로운 제사직이 임명되었다. 이리하여 종교적으로는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지고 정치적으로는 부족제도를 해체하고 일단 고대적 중앙집권체제 국가로 편성되었다.
이후 예루살렘은 일신교의 중심지로서, 그리고 그 신성한 도시로서 특이한 존재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예루살렘 도시는 솔로몬 왕의 시대에 비로소 확장되었다.
11.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계통인가
솔로몬 왕의 지혜와 명성을 전해 듣고 솔로몬 왕을 시험해 보려고 남쪽 아라비아로부터 멀리 이스라엘까지 찾아온 시바의 여왕에 관해서는 열왕기상 10장과 코란 경 제27, 개미의 장에 흥미 있게 기록되어 있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열왕기는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으나 사무엘기와 마찬가지로 헤브라이어 원전에서는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다. 이 책은 다윗 왕 만년(B.C. 961년경)에서 기원전 561년에 포로가 된 유다 왕국의 여호야긴이 바빌로니아에서 해방되기까지의 약 400년간의 이스라엘과 유다 양 왕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은 다윗왕의 만년과 솔로몬 왕의 치세(상1-11장), 왕국의 분열(12장)과 북 왕국 멸망까지의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의 치세 (12-하17장), 기원전 722년 이후의 북 왕국 이스라엘의 혼합 종족과 종교(17장),그리고 기원전 722년에서 기원전 561년까지의 남 왕국 유다의 왕들의 역사(18-25장)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이 책은 신명기 사가에 의해서 많은 사료에 근거해서 기원전 6세기 중엽 경에 바빌로니아에서 편찬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아라비아의 예언자 마호멧(B.C. 560년경-632년)이 창시한 계시 종교로서의 이슬람교는 엄밀하게는 일신교의 교리에 입각한 것이며, 그에 앞선 두 계시 종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동일 계열에 속하며 본질적으로 완전히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알라 신에 대한 절대 무조건의 복종)을 의미한다는 계시 종교로서의 최대의 특징은 마호멧이 알라 신에게서 아라비아어의 계시인 <코란>을 받았다는데 있다. 코란의 기록에 의하면 계시는 알라 신이 마호멧의 입을 통해서 아랍 백성에게 말씀한 계시이며, 하늘에 보관된 비석에 새겨져 있는 신의 말씀의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 정확한 복사라고 한다. 코란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편찬 된 것은 제3대 칼리프 우스만(B.C.644-656)때이며, 그것은 신의 명령을 받은 마호멧의 노예 사이드. 빈. 싸비트(B.C. ?-665/6년경)가 종이 돌, 나무, 잎, 어깨뼈, 갈비뼈, 가죽 조각,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서, 즉 모든 기록과 사람들의 기억에서 마호멧이 전한 말을 모아서 이룬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지 않고, 만 장구의 장단에 의해서 배열한 것이다. 모음 부호를 제외하고는 그 당시의 본문이 그대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그리고 근년의 비판적인 여러 연구의 결과도 코란이 대체로 마호멧이 전한 말씀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코란을 사료로 사용하는 경우 우리는 각 장구가 언제 어떤 사정으로 계시된 것임을 항상 음미하여 읽어야 한다. 코란 제27,개미의 장 15-45절에 기록되어 있는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방문한 이야기의 계시 연대는 예언자 마호멧의 메카시에 후반기나 메디나 시대 초기 (B.C, 620년대,624년인가)라고 생각된다.
12.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방문한 목적은 무엇인가
열왕기상 3장 16-28절에는 유명한 이른바 <솔로몬의 재판>이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유명한 시바의 여왕의 솔로몬 왕 방문 이야기는 열왕기상 10장 1-13절에 있다.
<시바라는 곳에 여왕이 있었는데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는 그를 시험해 보려고 아주 어려운 문제를 준비하여 방문 온 일이 있었다. 여왕은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왔을 뿐 아니라 각종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왔다. 여왕은 솔로몬 왕을 만나자 미리 생각하였던 문제들을 모두 물어 보았다. 솔로몬은 여왕의 질문을 하나도 막히지 않고 다 대답해 주었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이 모든 지혜를 갖추고 있는 것을 알고 또 그가 세워 놓은 궁전을 보고는 넋을 잃을 정도로 감탄하였다. 시바의 여왕은 왕의 식탁의 음식, 조신들 배석, 제복을 입은 시종들의 도열 ,술을 따르는 시종들, 또 왕이 야훼의 성전에서 드리는 번제를 보고서 찬탄해 마지않으며 왕에게 말하였다."당신과 당신의 지혜에 대한 소문은 내가 이미 우리나라에서 듣고 있었습니다만 과연 사실이군요 이렇게 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 이야기가 하나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들은 이야기는 이제 보니 사실의 절반도 못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번영은 내가 듣던 소문보다 훨씬 더 뛰어나십니다. 당신을 모시는 부인들이야 말로 행복한 여인들입니다. 언제나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기뻐하시어 당신을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히신 당신의 하나님 야훼께 찬미를 올립니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사랑하셔서 당신을 왕으로 삼아 법과 정의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여왕은 금 백 이십 달란트와 많은 향료와 보석을 솔로몬 왕에게 선물하였다. 솔로몬왕은 시바의 여왕에게 선물 받은 것만큼 많은 향료는 두 번 다시 받아 보지 못하였다. 오빌 지방에서 금을 실어 오던 히람의 상선대는 이번에는 굉장히 많은 오동나무와 보석을 운반해 왔다.왕은 이 오동나무로 야훼의 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노래에 맞추어 뜯을 수금과 거문고를 만들기도 하였다. 솔로몬왕은 시바의 여왕에게 관례에 의한 답례물 이외에도 여왕이 요청한 것을 모두 주었다. 여왕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솔로몬왕의 지혜이지만, 시바의 여왕의 방문 목적은 솔로몬왕의 영화를 보고 훌륭한 지혜를 직접 듣는 것도 있지만, 당시 다마스크스에서 홍해 연안까지, 즉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중요한 대상 통로를 지배하고 있던 솔로몬 왕국의 실력으로 봐서, 그것은 상업적인 목적, 다시 말해서 외교 관계의 수립과 그에 따른 통상 관계의 증진이 주목적이었던 것 같다. 대상을 이끌고 솔로몬 왕을 찾아온 시바의 여왕 이야기는 솔로몬왕의 교역활동과 그에 따른 거대한 부, 즉 솔로몬의 영화를 생생하게 알게 한다.
13. <코란>의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 이야기
코란 제 27,개미의 장 15-45절에 기록되어 있는 그 이야기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다윗왕의 뒤를 이은 솔로몬왕은 새들의 말도 알아듣고 인간이나 정령을 통치하는 명군 현인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정령과 인간과 새들로 된 군대를 동원해서 개미의 골짜기로 가서 새들의 열병을 받았는데, 새들 중에 프드프드 새(꿩)만이 보이지 않아 성이 났는데 곧 그 새가 와서 시바 나라(고대 남아라비아의 나라)에 한 여왕이 있는데 그 왕좌는 거대한 부에 싸여있으며, 신을 대신해서 태양을 숭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솔로몬왕은 곧 그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 새에게 명해서 그 왕궁에 초대장을 보냈다. 그것을 받은 여왕은 장로들과 의논하고 사자를 보내서 솔로몬 왕에게 산과 같이 많은 제보를 보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솔로몬 왕의 노여움을 샀다. 솔로몬 왕은 시종에게 여왕이 항복해 오기 전에 여왕의 왕좌를 빼앗아 오라고 명했다. 정령단에 있는 한 요정이 그 역할을 맡으려 했으나 결국은 성서의 지식에 통달한 자가 자청해서 순식간에 여왕의 왕좌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놓았다. 그래서 여왕도 두려워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와서 솔로몬 왕 앞에 나아갔다. 후세에 이슬람교도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왕은 여왕의 발이 산양이나 나귀와 같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나 그 진위는 별 문제로 하고, 왕은 여왕을 궁전으로 맞아 들였다. 그 궁전 바닥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같이 보여서 여왕은 무심코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두 발을 노출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솔로몬왕의 설명에 따라 그 바닥을 자세히 보니 그것은 수정 바닥이었다. 그래서 여왕은 솔로몬 왕의 지혜에 감복하고 지금까지의 불의를 뉘우치고 솔로몬 왕과 같이 만유의 주 알라 신에게 귀의하기로 맹세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여왕은 코란경에 의하면 무명의 여왕이지만 후세의 이슬람교도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빌키스라는 여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구약성서의 이야기와 비교해 보면 코란경 쪽이 더 설화 화 되어 있으며 로맨틱한 분위기로 윤색되어 있다. 시바 왕국의 여왕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도, 그리고 밀빌스라는 여왕의 이름에 관해서도 솔로몬 시대의 기록이나 아라비아의 비문에는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시바의 여왕은 아직도 전설의 베일 속에 묻혀있다. 아무튼 시바의 여왕 이야기는 오히려 슈메르의 도시국가 우르크의 왕 길가메쉬와 위대한 업적과 영생의 추구를 테마로 한 3천 수백 행이나 되는 대 서사시(길가메쉬 서사시>가 고대 오리엔트 전역에 퍼져있었던 것처럼, 서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으며, 솔로몬의 영지와 여왕의 거부와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도 많이 남아 있다.
14.게젤의 촌읍에서 출토된 가나안 달력
고대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 솔로몬 왕 만큼 좋은 조건을 가진 왕은 없었으며, 그만큼 건축 사업으로 유명한 왕도 없다. 그리고 솔로몬 왕 만큼 고고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킨 왕도 없다.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통하는 도로에서 북쪽으로 들어간 연안 평야를 한 눈으로 바라보는 언덕에 세워진 게젤의 도시(예루살렘 서북서 약 30킬로미터)는 오늘의 텔에샤살로 불리고 있다. 이곳은 가나안을 남북으로 뻗는 고대의 간선 도로(바다의 길)과 아얄론 계곡을 지나 동쪽으로 뻗는 중요한 도로와의 접점이며 고대에 있어서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이었다. 여호수아는 이 촌읍을 점령하지 못했고 가나안인이 장악하고 있었다(여호수아기 16장 10절, 사사기 1장 29절). 열왕기상 9장 16절에 의하면 이집트 왕은 게젤을 가나안인에게서 빼앗아 이 도시를 솔로몬의 왕비가 된 자기의 딸에게 주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이 연안 평야를 통과하는 대상으로부터 통관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열왕기상 11장에는 솔로몬 왕이 700명의 후궁과 300명의 수청 드는 여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에 대항하고 있던 가나안인의 도시 게젤은 이렇게 예루살렘 령으로 흡수됐다. 솔로몬은 이 오랜 도시를 개축하여 성벽을 쌓고 군사적인 요충으로 만든 것이다. 이 시기에 건조된 성탑이나 성문의 구조는 북부 갈릴리 지방에 있는 하솔이나 이스라엘 평야의 서남단에 있는 등 솔로몬이 세운 것들과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이집트 왕이 제21왕조(B.C. 1085년경-945년경)의 어느 왕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역사학자 아브라함 마라민트<역사기록으로 이집트 왕이 자기 딸을 외국의 왕에게 시집보낸 것은 이때 한 번 뿐이었으며 이것은 솔로몬 왕이 당시의 오리엔트 나라들 왕 중에서 얼마나 위대했던가를 웅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게젤의 유적지는 장방형으로 면적 12헥타아르의 로마시대 이전에 있어서의 가나안 최대의 도시였다. 1902-1909년에 R.A.S.마가리스타에 의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어 기원전 4000년경의 지하 동굴 주거지와 기원전 1500년경의 길이 67미터나 되는 지하 수로와 계단, 그리고 유명한 높은 곳의 석주 등이 발견 되었다. 그 후 1934년에 A.로우에 의하여 부분적인 발굴도 있었다. 1964년-1973년에 미국의 히브루 유니언 대학의 조사대에 의하여 처음에는 G.E.라이트, 이어서 W.G.디버의 지휘 아래 재조사가 진행되었다. 제1지구에서 확인된 것은, 이래 고적지는 17개의 문화층으로 되어 있으며, 깊이 7.6미터이고, 후기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었고, 로마시대에까지 이어져 온 것이 밝혀졌다. 1908년에 R.A.S.마카리스타 (팔레스타인 답사단)에 의하여 기원전 10세기 (B.C. 925년 경 솔로몬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문자를 새긴 석회암의 작은 서판, 즉 학생용 석판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농력이며, <게젤 달력>이라고 부른다. 그 안에는 각 달의 이름과 각 달에 하는 농사 일람표가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에는 농업이 공업보다도 훨씬 중요한 일이었음이 역력히 보인다. 1년간에 해야 할 여덟 단계의 농사일을 순서대로 기록한 <게젤 달력>을 12개월 표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1-12와 (9월-9월)은 필자가 넣은 것이다.
1. 그의 두 달은 올리브의 수확(9-10월)
2.(10-11월)
3.그의 두 달은 곡물의 파종(11-12월)
4.(12-1월)
5.그의 두 달은 늦은 파종(1-2월)
6.(2-3월)
7.그의 달은 삼을 갈고(3-4월)
8.그의 달은 보리를 걷어 들이고(4-5월)
9.그의 달은 추수와 축제(5-6월)
10.그의 두 달은 포도의 손질(6-7월)
11.(7-8월)
12.그의 달은 여름 과일(8-9월)
이 농력에 의하면 1년은 가을부터 시작한다. 출애굽기 34장22절에 의하면 가을의 수확(후일의 초막절)은 해가 바뀔 때에 하였다. 1년은 위와 같이 농사가 관련된 태음력의 12개월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게젤 달력은 달 이름에 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이 달 이름은 어느 시기부터 가나안의 옛날 음력이 점차로 숫자의 달 이름으로 바뀌어 갔다
사무엘하(2Samuel)
1.명 칭
※사무엘상 참조
2 내용과 주요사상
본서의 저자는 분명하지 않다.사무엘이 본서 전체의 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삼상25:1,삼상28:3에 기록되어 있고 또 그가 죽은 후에 일어난 사건 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본서의 저자는 왕국분열 직후에 살았던 아마 유대의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미 기록되었던 문헌을 기초로 하여 기록하였음이 분명하다.본서는 왕정 국가의 형성과 그 일에 있어서의 사무엘의 역할에 대한 기록이다.사사시대라는 과도기를 지나 왕정제도의 국가를 건설하고 그 왕국이 점차 제자리를 잡아 가면서 가나안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고 모든 민족의 통합을 완성한 모든 역사를 수록하고 있다.
그림설명 / 전승에 따르면 사무엘은 현재의 엘람 인 라마에 장사되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엘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네비 세무엘 회교사원으로서 과거에는 기독교교회였다. 녹색의 막이 덮인 빈 관이 [사무엘의 묘]위에 놓여 있다.
사무엘은 그러기에 마지막 사사(삼상7:6, 15-17)이면서 동시에 선지자(삼상3:20)이었다.사무엘과 엘리의 관계(삼상1:1-7:1), 사무엘과 사울의 관계(삼상7:2-15:35), 사무엘과 다윗의 관계(삼상16:-),통일된 이스라엘 왕 다윗(삼하5: -24:)에 관한 역사의 기록 등이 본서의 내용이다.
열왕기상(1KINGS)
1 명 칭 : [멜라-킴 mykil;m mlakim]
열왕기 상서와 하서도 사무엘 상서와 하서처럼 히브리어 성경에는 한 권의 책이었다.히브리어 명칭은 말킴(왕들)이다. 70인역에서는 제3왕국기, 제4왕국기라고 되어 있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본서는 솔로몬 왕이 된 때부터 시작하여 나라의 분열, 그리고 두 나라의 멸망과 또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여호야긴이 돌아오는 때까지의 남북 두 나라에 관한 역사에 관 한 기록이다.탈무드 성경 바바 바트라(Baba Bathra)에 의하면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레미야서와 열왕기 그리고 애가를 썼다고 되어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주장은 불확실한 주장이다.본서는 예레미야와 동 시대의 어떤 예언자가 이미 있던 문서들을 자료로 삼아 옛 역사 의 사건들에 관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림설명 /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표현되어 있는 솔로몬 왕.
본서 내용을 연대별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구분 할 수 있다.
첫째, 솔로몬 왕 시대(주전 979-933, 왕상1: -11:).
다윗왕이 노쇠하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암투가 벌어졌다.장군 요압과 제사장 아비 하달의 후원을 얻은 넷째아들 아도니아와 장군 브나야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 의 후원을 얻은 솔로몬 사이에 왕위 계승의 싸움이었는데 결국 솔로몬이 등극하였다. 솔로몬왕은 놀라운 지혜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많은 부귀와 영광을 누렸으며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고 13년 동안 왕궁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노동력의 동원과 무거 운 세금징수, 그리고 많은 이방인 비빈들과 그들을 통해서 들어온 잡다한 우상 숭배 등으로 국민의 반감을 샀다.
둘째, 분열 왕국시대(주전 933-722. 왕상12: -왕하17:)솔로몬이 죽은 후 나라가 분열되어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남쪽 두 지파의 왕이 되어 유다 왕국을 다스리고 여로보암이 북쪽의 10지파를 규합하여 북쪽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북쪽 이스라엘에는 아합왕이나 여로보암 2세와 같은 영도력이 강한 왕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정변이 많아 여러 왕이 암살 되었고 남쪽 유다에서는 르호보암의 후손이 대개 통치하였다.당시의 예언자들은 엘리야,엘리사,이사야,아모스,호세아등이며 이들의 예언자 운동은 이 시기를 이 민족의 역사상 위대한 각성의 시기가 되도록 하였다.
셋째, 유다 왕국의 역사(주전 722-561.왕하18:-25:)북 왕국이 멸망할 때 남 왕국 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이었다.이사야의 경고에 감동되어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나라를 중흥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한 훌륭한 왕이었다(왕하 19:). 그 후 요시야 왕 때에 율법서를 발견하고 전국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왕하22:-23:). 그러나 요시야왕은 아깝게도 애굽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그 후 친 애굽파와 친 바벨론파로 국론이 둘로 나뉘어 갈팡 지팡하다가 586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점령되어 멸망하였다(왕하24:-25:).
성전들 알란 밀라드(ALAN MILLARD)
솔로몬의 성전은 석재와 레바논에서 가져온 백향목 자재로 지어졌다. 이 백향목 숲은 오늘날 레바논에 남아 있는 몇 개 안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광야 여행 중 장막에 거주할 때에 이스라엘은 회막이라 불리는 이동식 "천막"성전을 갖고 있었다. 그 이동식 성전의 기본개념은 B.C. 2,000년 이전의 애굽에서도 그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보전되어 온 예들은 귀금속을 입힌 나무 들보와 기둥들로 이루어진 구조물로 갖고 있는데 쉽게 세우기 위한 연결구멍과 고리들이 부착되어 있다. 고대의 그림들은 그것들이 전에 휘장을 어떻게 드리우고 있었는가를 보여 준다
사진 설명 : 백향목
애굽에서 경력을 쌓은 이스라엘의 기술자들은 그러한 구조물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또 거기에 필요한 모든 재료들은 시내 반도에서 얻을 수 있었거나 아니면 이미 그들이 갖고 있던 것들(예를 들면,금과 은)이었을 것이다.
회막은 단순한 설계로 만들어졌다. 회막 뜰 안에는 방이 둘로 된 성막과 제물을 드릴 번제라 정결케 하는 의식을 위한 물두멍이 있었다. 성막의 두 방은 너비가 15피트 정도였다. 내부의 방 곧 '지성소'는 정방형이었고 입구 쪽의 방 곧 "성소'는 길이가 30피트 정도의 장방형이었다. 가나안땅 정복 이후에 회막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솔로몬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예루살렘에 고정된 성전이 세워진 그것을 대신하게 되었다. 성전을 건축하고자 한 것은 다윗의 큰 포부였다. 하지만 그 포부를 실현한사람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었다. 강한 왕이 이처럼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 그때까지 보전되어 온 회막은 하나의 단순한 중앙성전을 위한 기본 설계도를 제공하여 주었다. 다윗이 값 주고 산 예루살렘의 성전 터는 지금 "마람 에스쉐리프."(the Mosque of Omar,회교사원)에 덮여 있다. 한가운데의 바위로 된 표면은 아마도 번제단을 두었던 장소였을 것이다.
열왕기상 6-7장과 역대하 3-4장에 나오는 상세한 서술은 아주 완전한 성전의 모습을 제시해준다. 이것은 고고학적 발견에서 얻어진 증거에 의해서 보충된다. 성전은 회막의 설계도에 입구의 현관이 덧붙여져 방이 세 개로 되어 있는데 몇몇 가나안의 신전들(예를 들면 하솔과 라스 사마라에 있는 신전들과 비슷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 성전은 솔로몬이 활용한 베니게 건축자들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3층으로 된 일련의 다락들이 지성소와 중간 방("성소") 밖으로 돌아가며 덧붙여 지어 졌다. 입구 좌우편에는 별도로 큰 놋 기둥이 서 있었는데 그 기능은 분명치가 않다.
솔로몬의 기능공들은 성전을 장식할 때 여기 보이는 그 당시의 상아 조각상 비슷한 고안에 따라 일했다. 솔로몬의 성전을 에스겔의 성전과 비교한 결과는, 그 전체의 건물이 성전 뜰의 평면보다 높은 지대 위에서 있었음을 암식하고 있다. 직무를 맡은 제사장은 성전 뜰을 지나 놋으로 써서 만든 큰 번제 단(대략 33평방피트에 높이 10피트)을 거쳐서 열두 놋 황소가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놋 바다 (물두멍) 앞으로 해서 성전의 계단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분명히 현관에는 문들이 없었다. 대문들이 그 통로를 막고 있었을 것이나 "성소" 입구에는 한 쌍의 접는 출입문이 있었을 것이다. 이 문들은 꽃들과 종려나무와 그룹들의 모양이 새겨진 잣나무로 되어 있었고 모든 나무제품들과 같이 다 금으로 입혀져 있었다. 이 방에서 제사장은 금으로 된 분향단과 다섯 쌍의 정금등대들을 보았을 것이다. 벽 상단의 창을 통해서도 빛이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바닥의 마루는 금이 입혀져 있었다. 또 만일 '지성소'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그 방 전체는 입구 쪽에서 들어온 빛으로 희미한 금빛이 감돌았을 것이다. 그러나 출입문들은 일 년에 한 차례씩 돌아오는 속죄일 외에는 열리는 법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장식의 특징들은 솔로몬 시대 전후의 베니게 놋작품과 상아조각품들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또 애굽과 바벨론 왕들은 그들의 신전 바닥을 금으로 깔고 문과 여러 기구들을 정금으로 만들었던 사실을 자랑하고 있다.
솔로몬의 성전은 B.C. 587년 느브갓네살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그 영광은 이미 손상되어 있었고 보물의 대부분은 외국의 정복자들이 유다를 위협할 때 예물 혹은 조공으로 바쳐진 뒤였다. 아무 위안이 없던 바벨론 포로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준, 하나의 새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겔 40-43장)은 상세히 서술되고 있는데 솔로몬의 성전공사에 대한 기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성전 뜰에 관한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환상에서 본 성전은 건축된 바 없으나 B.C. 537년에 포로생활에서 풀려 고국에 돌아온 백성은 다소 지체한 뒤 B.C. 515년에 이르러 비로소 옛 성전의 재건을 마무리 지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은 지식은 그것이 옛 설계도에 따라 지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옛것만 못하였다. 첫 성전에 있었던 것 중에 보전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성전 터 동편의 기드론 골짜기 위에 길게 축조된 석벽은 제 2성전(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진 지대의 일부요 또 헤롯이 연하여 벽을 쌓았던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포로시대 이후 예루살렘의 세계주의적인 성격은 느헤미야에게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 이는 신성한 성전지역 안에 비유대인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느13:4-9). 이 일은 필시 성전 뜰을 유대인만 들어갈 수 있는 안뜰과 이방인이 들어갈 수 있는 바깥뜰(이방인의 뜰)로 구분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헤롯의 성전에 있어서도 그러하였다. 더 이상 안으로 들어 갈 경우에는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비유대인에 대한 경고문이 새겨진 두 돌판이 발간되었다( 행 27:17).
헤롯의 성전은 유대백성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이두매인 헤롯왕의 시도였다. 대부분의 공정은 B.C. 19년-9년 정도에 마쳤으나 나머지 공사는 A.D. 64년에 마무리 되었다. 이 헤롯성전은 A.D. 70년 로마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었다. 그 거대한 건축물의 부분들은 서편('통곡의 벽')과 동편에서 아직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리고 벽의 난간에서 떨어져 나온 돌 몇 개가 발굴현장에서 발견되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서술들과 랍비 문헌들의 특주들과 그 밖의 자료들은 우리에게 이 화려한 건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큰 규모의 성전 뜰은 가르치는 일과 업무를 처리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던 행각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었다(요10:23. 눅19:47,요2:14-16).위에서 언급한 담(이방인 뜰) 너머에는 연보궤들이 마련된 여인의 뜰(막 12:41-44)이요. 그 다음은 이스라엘의 뜰이요 그 다음은 번제단과 성전의 본건물이 있는 제사장의 뜰이었다. 이 제사장의 뜰은 솔로몬 성전 설계도의 확대판이었다. 하지만 제2성전의 경우에서와 같이 "지성소"는 비어 있었다. 언약의 두 돌 판이 들어 있던 법궤와 하나님이 나타나시던 법궤 위의 "속죄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새 언약과 새 이스라엘의 확립과 더불어 이 헤롯성전 역시 사라진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성전의 모든 의의가 온전히 성취된 이상 예루살렘 성전(현재는 그 터 위에 회교사원-오마르의 모스크-이 서 있다)은 영구히 복구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복구된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의가 없을 것이다.
고고학에 이용되는 성경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고고학 교수 이가엘 야딘(Yigael Yadin)은 그가 고대의 기록들, 특히 성경을 어떻게 이용하였으며, 한 잃어버린 성읍 하솔의 역사를 찾아내는 데에 그것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하여 서술한 바 있다.
거대한 언덕의 발치에서 야딘은 170에이커에 달하는 하솔의 아랫 성 도시지역을 발굴하였는데 이 성읍은 가나안 시대의 성지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 성경은 그 성읍을 "그 모든 나라의 머리"(수 11:10)로 서술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두꺼운 층의 재는 필시 BC 13세기의 후반기에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파괴한 증거일 것이다.
이 아랫성은 결코 재건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벌판은 바로 그 마지막 남은 가나안 성읍의 폐허들을 뒤덮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솔로몬이 그 성읍에 재건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장소는 어디였겠는가? 사실 우리는 그 언덕(텔) 자체에서 솔로몬의 성읍을 찾아냈다. 후기 층을 파내려갔을 때 우리는 솔로몬의 요새들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장갑장벽이라 칭하는 구조물이었다. 곧 그 성벽은 내벽과 외벽의 이중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 여러 개의 방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 근처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성문을 찾아냈다. 우리는 설계 상 그것이 여러해 전 므깃도에서 발견되어 역시 솔로몬의 것으로 돌려진 성문과 아주 유사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물론 솔로몬이 예루살렘 근처에 게셀과 므깃도와 하솔, 이 세 성읍을 재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발굴 작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므깃도 성문의 설계도를 복사해두었다. 우리는 그 설계도를 땅에 표시하고 나서 우리의 발굴 작업반에게 "여기를 파면 성벽이 나오고 또 여기를 파면 방이 나올 겁니다"라고 하였다.
물론 일이 우리가 말한 그대로 되어가자 그들은 우리를 마법사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성경을 아는 인부들은 내가 성경구절들을 다시 읽어주자 우리가 어떻게 그 해답을 얻어냈는지를 깨달았다. 우리의 명성은 엄청나게 전하여졌다. 사실은 성경의 명성이 그보다 더 엄청난 것이 되어야만 했을 것이었다.
므깃도와 하솔의 성문들에서도 역시 동일한 설계와 동일한 규모가 드러났다. 열왕기의 그 구절에 언급된 세 번째의 성읍 게셀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 성경구절로 인하여 나는 마칼리스터(Macalister0가 그곳에서 훨씬 더 수월하게 해낸 발굴 작업에 관한 세 권의 보고서를 들추어내기로 작정하였다. 놀랍게도 그리고 기쁘게도 그 첫 권에서 나는 마칼리스터가 마카비성으로 칭한 바, 우리의 성문과 장갑장벽과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축조물의 설계도를 발견하였다. 그는 성문을 절반만 발굴하였기 때문에 그 전체의 윤곽이 드러나지 아니하였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사실은 솔로몬의 성문이요 요새라는 제안을 담은 논문을 내기에 이르렀다.
근년에 들어와서 미국의 히브리 유니온 대학의 원정대가 게셀에 왔는데 그들의 목적들 가운데 하나는 나의 이론을 확인하는 데에 있었다. 그들은 매우 신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성문의 나머지 절반을 찾아내었고, 또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성문의 바닥에서 그들이 BC 10세기 솔로몬이 재건한 것으로 언급된 세 성읍 모두에서 동일한 요새들과 성문들이 발견된 것이었다.
아더 쿤덜(ARTHUR CUNDALL)
하솔에 있는 솔로몬의 성문터 : 성경의 역사적 정확성을 극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열왕기 연대의 해결 (역사적 내용 )
1.재위기간의 문제들
2.해결의 실마리
3.고대 근동에서는 왕들의 통치기간을 계산함에 있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법을 사용하였다.
4.어떤 통치기간들은 섭정으로 인하여 서로 중복되어 있다.
5.어떤 통치기간들은 서로 동시에 진행된 것일 수도 있다
6.외적인 자료들과의 대조
(1)앗수르의 림무(Limmu) 혹은 신임관리 명부
(2)코르사밧(Khorsabad)왕의 명부
(3)톨레미 (Ptolemy)의 성인록
(4)바벨론 연대기
(5)수많은 당대의 비문들
얼핏 보면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에 관한 자료만 가지고도 정확한 연대표를 충분히 작성할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각 왕의 통치기간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사울왕의 경우는 제외 된다. 삼상 13:1은 불확실하다). 또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열이후의 기간 동안에는 각 왕의 등극이 상대 왕국 왕의 통치와 관련되어 있다. 또한 예후가 한날에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인 경우(왕하 9:21-28)와 같이 한 사건이 두 왕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 곳에는 "확실한 표시들"을 해두고 있다. 열왕기 저작자는 두 왕국의 연대기를 조심스럽게 통합시킨다. 그는 한 왕의 통치기간을 그의 등극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다루고 난 다음 이 기간 중에 통치를 시작한 상대 왕국 왕들을 다룸으로써 두 왕국의 역사들을 서로 병행시키고 있다. 다만 유일하게 예외가 열왕기하 8-9장에 나오는데 그곳에 보면 예후가 요람과 아히시야를 죽인 사건이 열왕기 저작자로 하여금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를 언급할 필요를 느끼게 만들어 주고 있다(왕하 8:16-29). 정상적으로 다루어졌다면 그 왕들은 이스라엘 왕 요람이 죽고 난 뒤에 가서 언급되었을 것이다.
1. 재위기간의 문제들
하지만 자세히 검토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유다 왕국에 있어서 르호보암에서 아하시야의 죽음에 이르는 전기간이 95년인데 반하여 이스라엘 왕국에 있어서는 그와 동일한 기간인 여로보암에서 요람의 죽음까지 98년이나 된다.
그보다 더 큰 모순점이 예후의 거사에서 사마리아의 함락에 이르는 기간에서 나타난다. 이 기간 중 유다 왕들의 통치기간을 모두 합하면 165년인데 반하여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기간을 모두 합하면 144년밖에 안 된다. 그 이상의 사소한 문제 하나는 곧 섭정을 한 여왕 아달랴가 6년간을 통치하였다는 언급(왕하 11:3)을 우리가 대하고 있음에도 일반연대의 계산에는 이 여왕의 통치기간이 포함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외견상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등극 연대에 대한 기록들 (왕하 1:17과 3:1)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서 또 하나의 두통거리를 안고 있다. 솔로몬의 죽음이 B.C. 930년 이전이었을리는 없다는 것이 사리에 맞는 결론일 것이다. 이것은 솔로몬의 죽음과 B.C. 587년의 예루살렘 함락 사이의 기간을 대략 343년으로 추정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연대적인 숫자들을 가장 낮게 계산하더라도 이 기간은 대략 372년에 달하게 된다.
2.해결의 실마리 ~ 5.어떤 통치기간들은 서로 동시에 진행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 가지 요인들이 그 기간의 연대에서 발생하는 외견상의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증진시켜 주는 동시에 그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하는 일을 상당히 진척시켜 주고 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들의 통치기간을 계산함에 있어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 하나는 "양입 계산법"이고 다른 하나는 '단입 계산법'이었다. 양입 계산법에 있어서는 한 왕이 죽고 다른 왕이 그 위를 계승하면 그 해는 이중으로 계산이 되었다. 이는 죽은 왕이 그해를 다 채우지 못하였어도 완전한 1년으로 계산하였고 또 그의 뒤를 이은 왕이 그 해의 나머지 기간 곧 1년의 일부를 통치하였어도 그것을 완전한 1년으로 계산하였기 때문이다. 이 계산을 정확한 연대계산으로 환원하기 위해서는 각 왕의 통치기간에서 1년씩 삭감해야 한다.
단입 계산법에서는 한 왕의 전 통치기간에 등극한 해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완전한 한 해가 못 되는 그의 첫 해는 그의 등극의 해로 간주되었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정확한 연대계산이 나왔다.
왕국 분열의 초기에 이스라엘은 양입 계산법을 사용하고 유다는 단입 계산법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두 왕국 사이의 전 통치기간에서 발견되는 모순은 이 기간에 있어서 이스라엘 왕들의 숫자가 더 많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그 이상의 복잡한 문제는 유다 왕국의 한해 (하여튼 그 기간의 초반에 있어서는)가 다스리월(9월/10월)에 시작된 반면에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한 해가 니산월(3월/4월)에 시작되었음을 시사하는 증거에서 연유된 것이다.
아합의 행정 지구는 므깃도에 있는 군비 저장소 건축물들의 규모에 의해서 예증되고 있다. 그는 반앗수르 동맹에 병거 2000승과, 군사 10,000명을 제공하였다. 어떤 통치 기간들은 섭정으로 인하여 서로 중복되어 있다. 이에 대한 선례는 다윗과 솔로몬의 경우에서 발견되는데 그 섭정은 아도니야가 실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효과적으로 막을 수가 있었다(왕상 1장). 또 하나의 분명한 예는 요담의 경우로서 그는 그 의 부친 웃시야가 문둥병에 걸렸을 때 섭정자로서 행동하였다(대하26:21). 유다 왕국에만 국한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관습은 분명히 다 윗 왕조를 견고하게 해주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사와 여호사밧, 여호사밧과 여호람, 아마샤와 웃시야 요담과 아하스, 아하스와 히스기야, 그리고 히스기야와 므낫세 사이의 섭정기간을 인정하고 있다.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는 나아가 더 적은 자(예를 들면, 히스기야)가 그의부친(아하스)보다 뛰어났는데 이것이 실제의 왕이라기보다는 섭정자를 가리키는 언급을 통해서 사건의 연대를 추정하게 만들었다(왕하 18:9-10). 이 관습을 안다는 것은 곧 유다 왕들의 전통치 기간을 감축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사실은 또한 우리가 성경의 숫자들이 지닌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유다 왕 므낫세는 B.C. 687년에서 642년까지 통치하였다.
열왕기하 21:1은 그가 55년간을 통치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로 697년부터 687년까지의 섭정기간을 추정하게 해준다. 이 섭정의 가능성은 히스기야의 심각한 병으로 인하여 더욱 짙어지고 있다(왕하 20:1) 어떤 통치기간들은 서로 동시에 진행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림; 므깃도에 있는 창고들에 짐을 나르는 나귀들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과 물을 마시게 하는 돌 확.
이것은 필시 북방 이스라엘 왕국에서 여로보암 II세가 죽고 난 후 마지막 몇 십 년의 요란한 기간 중에 있었던 일일 것이다. 이 시대의 여섯 왕들의 혼합된 통치기간은 41년 7개월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 기간은 31년을 채 넘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기간이 실제로는 24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기간 중에는 경쟁적인 왕들이 그 왕국의 서로 다른 지역들을 동시에 "지배하고"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6.외적인 자료들과의 대조
이러한 요인들을 신중히 적용시킨다면 유다와 이스라엘의 연대기는 조정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결과로서 얻은 연대기를 주변 세계의 사건들에 연결시키는 작업이 주로 고고학적인 발견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는 상대적인 연대기보다는 절대적인 연대기를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다음과 같다.
(1) 앗수르의 림무(Limmu) 혹은 신임관리 명부
앗수르에서는 매년 공직을 맡게 되는 신임관리의 이름을 그 특정한 해의 명부에 올리는 관습이 있었다. 그 특정한 해의 명부에 올리는 관습이 있었다. B.C. 892-648년 어간을 포괄하는 이 신임관리들의 명부가 아주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었는데 그 명부에는 그들이 공직에 있는 기간 중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부르. 사갈데가 림무였던 해의 심마누 달에 일식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천문학자들은 그 연대를 B.C. 763년 6월 15일로 계산한다. 이것은 림무 명부에 나오는 그 밖의 모든 연대를 해준다. 성경의 역사와 앗수르의 역사가 여러 가지 면에서 한 점에 집중되고 있으므로 성경의 사건들도 역시 그 연대가 정확히 추정될 수 있다.
(2) 코르사밧(Khorsabad)왕의 명부
이 명부와 그 사본들은 B.C. 745년에 이를 때까지의 앗수르 왕들의 명단을 완전히 수록하고 있고 또 자주 그들의 통치기간을 밝힌 예들이 나오고 있다. 이 명부는 림무 명부와 일치된다.
(3) 톨레미 (Ptolemy)의 성인록
비록 이 저서의 연대가 AD 2세기로 추정된다고 할지라도 그 정확성만큼은 정당한 의심의 여지가 없음이 판명되었다. 그것은 B.C. 747년 나보낫사르(Nabonassar)의 등극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벨들의 명단과 그 통치기간들을 담고 있다. 아합 시대의 수많은 상아 조각품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 사마리아의 것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날개 달린 생물의 조각으로서 그 시대의 전형적인 장식이었다.
(4) 바벨론 연대기
예를 들면 무엇이 유다 왕 여호야김을 자극해서 B.C. 601/600년에 바벨론에 대해 번역을 일으키게 했는지 혹은 그 반역사건이 어찌하여 B.C. 598/597년에 이르도록 진압되지 못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바벨론 연대기는 우리에게 B.C. 601년 11월/12월에 애굽 국경지대에서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는 말을 들려준다. 비록 그 전투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바벨론의 손실은 막심하였고 그리하여 결국은 그 지역에서 철수하여 전열을 재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여호야김이 반역을 일으키게 한 것은 바로 이 외견상의 약점이었다. 바벨론 연대기는 구약역사상의 한 사건인 예루살렘 함락의 정확한 연대를 B.C. 597년 3월 15-16일로 밝히고 있다.
또 하나의 작은 문제가 남는다. 히브리 연혁이 획일적으로 바벨론의 형식을 따르고 있느냐 하는 점은 분명치 않다. 이것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통치 연대에 있어서 1년의 오차를 유발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의 함락은 B.C. 587년이나 586년으로 그 연대가 제시된다. 두 가지 형태의 계산법이 예레미야 52:12과 29절에 나타나고 있는데 첫눈에 보기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한 해 전에 그 곳에서 백성이 사로잡혀간 듯한 느낌이 든다.
사마리아의 요새화된 산꼭대기에 건축했던 아합 궁의 잔재들.
(5) 수많은 당대의 비문들
역시 특별한 사건들을 진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앗수르군과 아합왕 치하의 이스라엘을 포함한 군소 도시국가들의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B.C. 853년의 갈가 전투나 예후가 B.C. 841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 III세에게 조공을 바친 사건, 혹은 B.C. 722/721년 앗수르인들에게 사마리아가 함락된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 기록들은 성경의 자료를 확증할 수 있는 믿을 만한 근거들을 제공해준다.
성경의 연대기들의 기초가 되는 원리들을 신중히 적용시키고, 또 그것들을 유다와 이스라엘과 그 당시의 세계열강들 사이의 대조를 통해서 가능케 된 고정적인 연대와 연결시킴으로써, 우리는 열왕시대의 대부분 기간에 있어서 오차 1년 미만의 정확도를 가지고 있는 성경의 모든 자료를 포함시키는 하나의 절대적인 연대기를 확정지을 수가 있다. 사울의 통치기간은 예외로 남는다. 히브리어 원문에 남아 있는 유일의 숫자는 "2"이므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10단위 하나가 빠져있다고 보고 12,22 혹은 32년의 통치기간이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22년이 필시 가장 받아들일 만한 수치일 것이다. 이는 그 수치가 사사시대와 같은 그 밖의 연대기 자료에 가장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분열과 멸망의 신비(열왕기상) 다까바시마오 저, 한영철 역
1.다윗 왕국의 분열과 남북왕조 대립시대
2.고난의 바빌로니아 포로시대
3.비문이 말하는 왕국의 분열에서 멸망까지
4.지하 수로에 있는 실로암 비문
5.히스기야 왕은 왜 성 밖에서 지하 수로를 끌었는가
6.바빌로니아 포로생활을 무엇을 남겼는가
7.현명한 왕후 에스더의 이야기는 사실인가
1. 다윗 (dwiD;,Dauivd, David) 「사랑함」왕국의 분열과 남북왕조 대립시대
앞 장에서 말한 것처럼, 사울과 다윗의 왕국 시대는 야훼 하나님에 의한 지명과 백성들의 찬성으로 카리스마적 왕이 탄생하고,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 왕정의 출발점이 되었는데, 다윗 왕에게서 그 아들 솔로몬으로 왕위가 계승된 것은 하나님의 지명도, 백성의 찬성도 없었다.열왕기상 3장 4절 이하에 보면, 솔로몬은 즉위 후 예루살렘의 북서쪽 약 12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는 가나안인의 산당이 있는 기브온(오늘의 엘지브)으로 가서 그 제단에 번제물을 1천 마리나 드린 적이 있다고 한다. 세습적인 왕위 계승의 원리는 하나님이 다윗과 계약을 맺고 다윗 왕가의 영속을 약속했다고 하는 <다윗의 계약>(사무엘하 7장)에 의하여 틀이 잡혀 있다.솔로몬 왕이 죽었을 때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국은 서산에 해가 떨어지듯 갑자기 쇠퇴해 갔다.
처음부터 북 왕국 이스라엘의 10부족과 남 왕국 유다의 유다. 베냐민 두 부족 사이에는 상당히 이질적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자기들 쪽이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 다윗이 등장하고 그에 의하여 남북이 통일되었고 이스라엘, 유다의 통일 왕국을 세웠다. 그리고 그 아들 솔로몬 시대에는 이집트도 앗시리아도 무력했고 왕국의 안전이 위협받을 염려가 없었으나, 솔로몬 왕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강대한 군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과 빈번한 통상 교역을 하고 관료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백성에게 중과세를 하여 왕국의 통일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쪽의 보수적인 이스라엘 부족들은 솔로몬의 종교적 정치적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자유를 요구하여 언젠가는 독립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보호암이 왕위에 오르자 남쪽 유다와 베냐민 부족은 이것을 승인했으나 북쪽 이스라엘 부족들은 반란을 일으켜 솔로몬에 의한 강제 노동의 감독을 하고 있던 여로보암이 망명지 이집트에서 돌아와 이스라엘의 독립 운동을 지휘하여 북쪽 부족들에 의하여 왕으로 선출되었다. 이렇게 해서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의 두 나라로 갈라지고 남북 왕조의 대립시대가 시작되었다.
다윗왕가에서 떨어져나간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명과 백성의 찬성을 받아 여로보암 1세가 초대 왕 (B.C. 922년경-901년경)으로 즉위하여 카리스마적 원리가 유지되어 약 200년간에 9개의 왕조가 교차된다. 이것은 다윗 이후 하나님의 왕조가 지속된 남 왕국 유다의 세습제와 대조적인 양상이다. 여로보암1세는 그 궁전을 처음은 그림심산 아래 세겜(예루살렘 북쪽 약 65킬로미터)에 세웠다가, 다시 전략적인 이유로 요르단강 동쪽 브누엘로 옮기고 마지막으로 세겜의 동북쪽 약 11킬로미터에 위치하는 디르사(여로보암1세에서 오므리(B.C. 876-869년경)에 이르는 약 40년간 북왕국의 수도)로 옮겼다. 북쪽 부족들의 불화를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디르사는 가나안인의 옛 도시이며 아직 부족 조직 속에 확실히 편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고난의 바빌로니아 포로시대
전일에 다윗도 이와 같은 이유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던 것이다. 그 후 오므리는 북 왕국의 수도를 에브라임의 산지에 있는 도시(세겜의 북서쪽 약 10킬로미터)로 옮기고 이곳을 사마리아라고 이름 지었다(열왕기상 16장 24절). 그 후 사마리아는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 왕 사르곤 2세 (BC 721년경-705년)에 의하여 멸망될 때까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대 왕의 수도였다. 북 왕국은 남 왕국보다 경제적 문화적으로 부요했으나 종교적으로는 늘 이교화의 위협을 받아왔다.
한편 남쪽 유다왕국은 다윗 왕조의 전통으로 안정된 왕위 계승이 유지되었다. 따라서 왕위를 둘러싼 분쟁은 다윗 왕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불과했다. 그리고 남 왕국은 수도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한 정치적 종교적 중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초대 왕으로 해서 20명의 왕이 계승하여 남 왕국 유다를 지배하였다. 유다왕국은 북 왕국 멸망 (B.C. 722년경)후에도 존속하여 앗시리아 이집트 양 세력 사이에서 내정과 외교가 활발하지 못하다가 신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 2세(B.C. 606-526)에 의하여 수도 예루살렘이 세 번이나 침공을 당하고 기원전 586년에 멸망하였다.
그 후 바빌로니아의 속국이 되어 유다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그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최악의 고난 시대였으며, 동시에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시대였다. 많은 위대한 예언자가 배출된 것도 이 시대였다. 예언자들의 외침은 구약성서의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소박한 민족 신앙에서 고도의 윤리 종교로 발전해 가는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그 후 기원전 538년에 포로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 왕 큐로스 2세(B.C. 559-529)에 의하여 해방되어 고국으로 귀환하였다. 기원전 516년에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교단을 세웠다. 이 성전은 솔로몬이 세운 성전에 견주어서(제2성전)이라고 부른다. 그 후 교단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민족의 역사가 시작된다. 기원전 4세기에는 알렉산더 대왕(B.C. 336-323)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의 속주가 된다.
유대인은 66-73년에 로마로부터 독립을 꾀했으나 베스파시아누스황제의 아들 티투스(AD39-81,재위79-81)의 탄압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이 다시 파괴되었다. 그 후 133-135년에 다시 독립 투쟁을 했으나 하드리아누스황제(117-138)에 의하여 진압되고 주민의 대부분은 로마제국 영토 안의 각지로 분산되고, 그 후 오랜 시기에 걸친 유랑과 박해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디아스포라 diaspora라고 하는 말이 생겼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이산자>라는 뜻이며, 주로 헬레니즘시대이래 팔레스타인 이외의 세계로 이주한 유대인을 말한다. 이 디아스포라의 유대인은 초대 그리스도교 선교의 유력한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70인역 구약성서는 알렉산드리아 주변에 사는 디아스포라의 회당에서 예배에 사용하기 위해서 현지 일반용인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이다.
3. 비문이 말하는 왕국의 분열에서 멸망까지
남북 왕국의 분열에서 유다왕국의 멸망까지의 이스라엘 유다 왕국의 역사는 열왕기하, 역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열왕기는 바빌로니아 포로시대 말기에, 역대기는 기원전 4세기 초에 예루살렘에서 각각 편찬된 것이며, 모두 오랜 사료들에 근거하고 있다. 이 사료들은 양서 안에 보존되어 있다.열왕기의 원저자와 후대의 편찬자는 양 왕국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여러 가지 사료에 조금씩 가필과 수정을 한 정도인데 반해서, 역대기의 편찬자는 그 원 사료에 상당히 가필을 해서 당시의 말로 모든 사건들을 누누이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의 저자는 양 왕국의 모든 왕들의 중요 치적을 기록한 문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이스라엘 왕조실록><유다 왕조실록>이라는 책 이름이 열왕기상 14장 29절,15장 23절,31절, 16장27절 등에 나온다. 이 책들은 기원전 13세기에서 동 11세기의 앗시리아의 연대기,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의 바빌로니아의 연대기와 같은 형식으로 기록된 일종의 준 공식적인 기록이었다고 생각된다.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기록도 사용하고 있다. 편찬자들은 이러한 기록들과 함께 기원전 9세기의 초기 예언자들에 관한 설화들도 사용하고 있다.
현존하는 열왕기는 이들 사료에 근거해서 바빌로니아 포로시대 말기인 기원전 6세기에 편찬되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정신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역사적 소재는 문서 예언자들, 즉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의 각 문서에도 들어 있다. 이 밖에 중요 사료는 전시기에 이래 발견된 헤브라이어나 아람어 등으로 기록된 비문 사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모압 왕(BC885년경-874년경)<메사 비문>이다. (1868년에 프러시아의 선교사 F.A.크라이인이 발견한 것이라고 전한다. 비석은 높이 112센티미터, 폭 약 71센티미터. 두께 약 37센티미터의 흑색 현무암에 헤브라이어의 한 방언 모압어로 새겨진 비문이며, 트란스 요르단의 다이반에서 발견되었다. 메사 왕이 그모스 신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에 이긴 것을 기록한 34행으로 된 전승비이다. 루브르 미술관 소장). 이것은 기원전 9세기의 왕의 비문이며 열왕기하 3장의 모압과의 전쟁 이야기를 보충하는 것이다.
이밖에 헤브리아어로 돌에 새긴 유일한 현존 기록은 남 왕국 유다 왕 히스기야(BC 715년경 -687년경)시대에 한 석공이 예루살렘 동남쪽 언덕 아래 있는 실로암 지하수로 공사의 완성을 축하해서 실로암 지하 수로에 새겨놓은 <실로암 비문>이다. 글자가 기록된 토기 조각 오스트라카도 양 왕국의 행정적 사회적 상황을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잘 알려진 것은 기원전 8세기의 사마리아 오스트라카(ostraca)는 유다국왕 말기에 기록된 <라그시 서간>, 근년에 남 이라드에서 발견된 서간이나 행정문서, 그리고 아스돗의 북쪽 메사드햐샤브얍에서 출토된 이스라엘 왕 요시야(BC 640년경-609년경)시대에 기록된 서간(농민의 슬픔을 쓴 편지)등이 있다.
4. 지하 수로에 있는 실로암 (Silwavm, Siloarm) 「보냄을 받은 자」 비문
1880년 6월의 어느 날, 예루살렘 동남쪽 언덕 아래에 있는 실로암 못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못가 북쪽에서 굴 입구를 발견하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소년은 입구에서 7,8미터쯤 가서 발이 미끄러져 뒹굴었다. 일어나서 무심코 굴 벽을 보니 거기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년은 급히 되돌아 나와서 함께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 이 얘기를 했다. 이 아이들이 다니고 있던 학교에 도이치인 건축가이며 오랫동안 예루살렘에 살면서 옛 건물이나 유적을 연구하고 있던 콘라드시크라는 사람이 있었다. 시크 박사는 이 얘기를 듣고 곧 아이들을 따라 그 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벽의 일부가 깎여지긴 했으나 옛 헤브라이 글자 같은 것이 여섯 줄이나 새겨져 있었다. 이것이 후일에 <실로암 비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성서 고고학의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이것이 그 발견의 경위이다.
이것은 지하수로의 남쪽 출구에서 약 8미터 들어간 동쪽 벽면에 새겨진 여섯 줄의 글자이며 한 석공이 남 왕국 유다의 왕 히스기야(B.C. 715년경-687년경)의 지하수로 공사의 완성을 기념하여 새긴 것이다. 1890년에 지하수로 안에 새겨진 이 글자는 생각 없는 사람들에 의하여 바위에서 다섯 장의 조각으로 떼어서 도난당했다. 그러나 그 조각들이 후일에 매입되고 다시 결합되어 한 장의 석판으로 복원되고, 지금은 이스탄불의 터키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높이 37센티미터. 길이 72센티미터).
지하 수도의 벽면에 새겨져 있던 글자는 확실히 헤브리어 글자였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서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리고 이 여섯 줄은 더 긴 문장의 후반 부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양쪽에서 지하 수도를 파가던 석공들의 망치와 도끼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생생한 문장이다. 지금 남아있는 여섯 줄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때(이 굴이)파졌다. 그리고 이것은 이 속이 파여 진 유래이다. -한쪽은 곡괭이를 들고 서로 마주 서서<.....>하고, 다른 한 쪽은 아직 3규빗(1규빗은 약 45센티미터)더 파야 하는 곳에서 서로 동료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그것은 오른 손<과 왼 손과>의 바위 지층의 균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굴이 다 파졌을 때 석공들은 서로 동료들 쪽을 향해서 곡괭이를 휘둘러 <그 바위>를 파 나갔다. 그리고 물은 수원에서 저수지까지 1200규빗 흘렀다. 그리고 석공들 머리 위의 두께는 100큐빗이었다.
이 글은 왕이 자신의 위업을 자랑하기 위해서 새긴 모압의 왕 메사(BC 885년경-875년경)의 비문과 달리 히스기야의 토목 사업에 참가한 한 석공이 이 굴의 완성을 기념해서 새긴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사업을 완성시킨 석공의 기쁨이 엿보인다. 그리고 이 사업의 완성은 고도의 기술을 가진 석공들의 땀과 눈물의 결정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그럼, 이 굴은 언제 누구에 의하여 완성되었는가. 열왕기하 20장 20절에는 유다 왕 히스기야아가 예루살렘에 저수지와 수로를 만든 기록이 있으며, 역대기하 32장 30절에는 <기혼 샘 윗 쪽 물줄기를 막고 땅을 뚫어 그 물을 감쪽같이 다윗 성 서쪽으로 해서 성 안으로 끌어들인 것도 바로 히스기야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실로암 못과 그 지하 수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히스기야의 석공들이 굴을 성벽 밖에 있는 기흔 샘에서 도시 언덕 동쪽으로해서 다시 서쪽 밖으로 파서 <셀라 높><느헤미야 3장 15절>까지 판 것을 의미한다. 이 셀라의 늪은 후일에 <실로암의 못>이 되었다.
이 굴은 높이 1.2-2.0미터, 폭 60센티미터, 직선거리 270미터, S자형으로 굽어 있다. 전장은 533미터이다. 그 사이의 낙차는 2.18미터이고 1미터에 4밀리미터의 비율이다. 양쪽에서 파들어 간 석공들이 만난 지점은 북쪽에서 전장의 3분의 1 근처이며 연결되는 10미터 정도의 거리는 양쪽이 서로 목소리를 듣고 정확한 방향으로 찾아 가기 위해서 고생한 것처럼 길이 좌우로 굽어 있다.
5. 히스기야 ((hY;qz]ji, Hezekiah, JExekiva") 여호와는 강하게 하심)왕은 왜 성 밖에서 지하 수로를 끌었나?
열왕기하 18장 이하(25장까지는 북 왕국 멸망 후의 1 히스기야 왕의 시대, 2 요시야 왕의 시대. 3. 남 왕국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의 역사 기록)나 역대하 32장에는 히스기야왕의 치세 제 14년 (B.C. 701년경)에 앗시리아의 대군이 예루살렘에 쳐들어 온 기록이 있다. 그리고 당시 예루살렘에서 히스기야왕의 자문을 받고 있던 예언자 이사야의 얘기를 기록한 이사야서 36장-39장에도 같은 기록이 보인다. 이렇게 앗시리아 왕 산헤립(B.C. 704년경-681년경)은 블레셋 해안 라기스(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40킬로미터, 지금의 텔에두엘)에 진을 치고 팔레스타인의 각 촌읍들을 습격하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포위한 것이다. 이때의 일은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앗시리아 쪽 기록에도 남아 있다. 영국의 A.H.레야드가 니느웨를 발굴할 때 산헤립 왕의 궁전 자리를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쐐기꼴 글자가 새겨진 6각통형 토기를 발견했다. 이것은 산헤립이 자신의 군사적 공적을 후세에 전적을 기록하라고 명한 것들이다. 이것은 최초의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테일러의 각주>라고 한다. (대영 박물관 소장) 이 각주는 기원전 691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며 산헤립의 마지막 기록도 들어있다. 이 안에 히스기야의 이름이 보이며,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유대인 히스기야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는 나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 나는 그의 견고한 도시들이나 성벽을 둘러싼 요새 등 46개소와 부근의 무수한 마을을 점령하고, 다진 (흙의)경사 공성로에 의하여 그리고 파송추를 (성벽에)붙여 토목작업처럼 몸을 구부려 구덩이를 (이용하는)보평의 공격과 (연결해서)(그것들을)정복했다. 나는 (이들)도시에 20만 150명의 남녀노소와 헤아일 수 없을 정도의 말, 노새, 당나귀, 약대 및 대소 가축을 몰아 빼앗았다. 나는 그 자신을(히스기야 왕을 가리킴)그의 도성 예루살렘에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다. 그의 도성 문으로 도망치는 자를 괴롭히기 위해서 나는 토성으로 그를 포위했다. 그가 약탈한 그의 도시들을 그의 나라에서 빼앗아 그것들을 아스돗의 왕 미틴나와 에크론의 왕 파사, 그리고 가자의 왕 시리벨에게 주었다. 이렇게 나는 그의 나라를 몰락시키고 그 위에 더욱 공납을 늘리고, (그에게)왕 중의 왕인 나에게 카드루라는 선물을 바치게 하고, 그것을 나는 이전에 과한 공물에 보태서 그에게 부과했다. 히스기야 자신은 나의 지배력의 공포에 찬 위대함에 압도되었고,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을) 강화하려고 그의 도성 예루살렘에 모은 비정규군과 정예군을 벌하고, 그들을 금 30달란트, 은 800달란트, 보석, 안티몬, 크게 자른 붉은 돌, 신앙(로 상감한) 팔걸이의자. 상아(로 상감한)니메두 의자. 코끼리 가죽, 흑단 문제, 회양목 목재,(그리고) 여러 가지 제보, 그(자신의)딸, 후궁, 남녀 악사와 함께 나의 왕도 니느웨로 보냈다. 공물을 보내고 한 노예로서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그는 그의 (개인적인)사절을 보냈다.> 여기에는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공략했다고도, 유대의 도시들을 마음대로 파괴했다고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산헤립이 히스기야에게서 받아낸 막대한 조공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포함해서 많은 도시들을 공략하고 히스기야가 이에 굴복해서 무거운 공납을 승낙하자 곧 산헤립의 대군은 철수한 것 같다. 그러나 산헤립은 그 군대의 많은 병사가 열병에 걸려서 예루살렘의 성벽에서 철수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산헤립의 내습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 큰 재난을 가져왔다. 기원전 700년경 히스기야 왕은 앗시리아군의 예루살렘 포위에 대비해서 종래의 <실로암 냇물>(지면을 흐르는 물, 이사야서 8장6절)을 버리고 새로이 기혼의 샘에서 지하 수로를 파서 성벽 밑을 지나 실로암의 저수지를 만들어 농성에 대비케 하고 앗시리아군의 내습을 기다렸다. 역대하 32장 30절은 이 지하수로 공사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높이 790미터의 언덕에 있는 예루살렘은 골짜기로 싸이고 지리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이상적인 요새여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에는 좋았으나 옛부터 물 사정이 나빴다. 사무엘하 5장 6절에 의하면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공략하려고 했을 때 여브스인들이 <너 같은 것이 이리로 쳐들어오다니 어림도 없다. 소경이나 절름발이도 너 쯤은 쫓아낼 수 있다>고 빈정거렸기 때문에 다윗 왕은 분노하여 물을 길어 올리는 바위벽을 타고 올라가게 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6. 바빌로니아 포로생활은 무엇을 남기었는가
바빌로니아 포로시대 때 유대의 역사를 말해주는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귀환시대의 일관성 있는 기록도 없다. 다만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B.C. 538년)에서 예루살렘 제 2성전의 완성(B.C. 515년)까지와, 바빌로니아에서 귀환한 유대인 공동체의 유력한 지도자의 한 사람인 에스라의 등장(B.C. 458년)에서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닥 1세(B.C. 465-424년)의 시종이었던 느헤미야가 유대의 지사 직분을 마칠 때까지 (B.C. 430년경)의 두 시기에 관해서는 구약성서 안에 약간 언급이 있다. 이사야서 40장 이하 55장까지의 제2이사야서, 학개서 및 스가랴서 1-8장의 예언자들의 글, 에스라서에 인용되어 있는 아람어 부분, 그리고 페르시아 시대 말기에는 이미 한권의 책으로 편찬돼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 느헤미야의 회고록과 에스라의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비문과 고고학적 사료는 특히 중요하다. 페르시아의 지배하의 유대인의 역사의 후반시대에 관해서는 기원 1세기의 유대인의 역사가 프라비우스 요세퍼스(A.D. 37년경-100년 이후)(유대 고대사), 헬레니즘. 로마, 비잔틴 시대의 역사가들이 남긴 글 속에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다. 바빌로니아 포로라는 것은 남 왕국 유다의 백성이 느브갓네살 왕의 신바빌로니아 대군에 의하여 바빌로니아로 포로가 되어 끌려간 것을 말하며, 포로에서 페르시아 왕 고레스 2세의 포로 해방령에 의하여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까지(B.C. 598-538)를 포로시대라고 한다. 예레미야서 40장 7절-41장 18절과 그 기록의 발췌라고 생각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열왕기하 24-25장에 의하면 모든 관리들과 상류 계급이 바빌로니아로 연행되어 모든 지방이 황폐화 되고 가난한 자들만이 포도나 과일이나 기름을 수확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포로민은 유다 왕국의 핵심층이었고 귀족, 사제, 군인, 기술자들이었다.
기원전 598년에서 582년 사이에 세 번에 걸쳐서 바빌로니아로 연행된 유대인들의 수는 구약성서의 기록의 모순이 있어 분명하지 않으나 부녀자를 포함해서 4만5천명 이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원전 8세기의 유다 왕국의 추정 인구는 25만 명이고 예레미야서 52장 28절 이하에 느브갓네살에 의하여 여호야긴과 함께 잡혀간 백성의 수(4천6백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가장의 수인지 포로 전체의 수인지 알 수가 없다. 포로민은 가족 단위로 우선 니플 시 근처의 중요한 관계용 운하 그발강가에 정착되었다(에스겔서 1장 1절).
예언자가 만난 지도자는 전통적인 지도층의 <장로>였다. (예레미야서 29장 1절).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일대 시련이었으나 반세기 동안에 포로들은 여러 가지 고난에 직면하면서도 바빌로니아의 문화를 접하여, 전에 앗시리아의 포로로 잡혀갔던 북 왕국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구약성서의 근간이 된 문서들의 집성을 성취하고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인 공동체 회복의 원동력이 되었다.
7. 현명한 왕후 에스더의 이야기는 사실인가
<에스더설화>는 고대 헤브라이 문학 말기의 작품이며, 근대어 번역 성서에서는 설화의 주제가 바빌로니아 포로 귀환 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사사시대 (BC 12-11세기)의 부인의 일화를 주제로 한 단편 설화 룻기를 사사기 다음에 놓은 것처럼, 70인역의 배열에 따라서 대개의 경우<역사서>다음에 놓고 있다. 또한 헤브리아어 원전에서는 아가, 룻기, 전도서, 애가와 함께<다섯 두루마리>의 하나로 치고 있다. 그것은 이들 두루마리가 중세 이후의 유대교에서의 다섯 가지 특별한 절기, 즉 유월절(태양력 3-4월), 칠칠절(5월-6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아브 달 제9일(7-8월),초 막절 (9-10월) 및 부림절(2-3월)에서 각각 유대교의 회당에서 낭독되었기 때문이다. 이 관습은 현재에도 유대인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다. 그리고 이 절기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초막절, 유월절 ,그리고 칠칠절의 3대 절기이며, 이것은 유대인의 역사에서의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농업 특히 수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절기이다.
이 설화는 페르시아 왕 아하스에로TM(아케메네스 왕조 크셀크세스 1세,BC 486-465)의 치세에 겨울 수도 수사(이란 서남부)와 그 궁전을 무대로 벌어지는 유대인 박해를 주제로 한 이색적인 단편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페르시아 제국의 왕궁에서 설화의 여주인공 에스더(별)라는 뜻의 신변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저자의 의도는 <부림>(<불>의 복수, <제비의 뜻)이라고 하는 유대교의 절기의 유래에 관한 역사적 상황을 묘사하는데 있었다. 그리고 이 설화의 성립 연대는 여러 가지 근거에서, 가령 구약성서 외경 벤. 실라의 지혜나 제2 마카비서 등의 기록이나 설화의 문체나 어법 등으로 미루어 보아, 기원전 3세기에서 동 2세기 중엽 사이라고 생각된다.
10장에 걸친 내용은 다음과 같이 6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야기는 페르시아 왕 아하스에로스가 그 치세 3년에 제국의 고관들을 엘람 주 수사 별궁에 초대하고 180일 동안의 잔치를 시작했다. 왕후 와스디가 자리에서 물러난 것(1장). 에스더이 왕후가 된 것(2장). 하만의 승진과 유대인 암살의 음모(3-4장), 하만의 실패와 유대인의 해방(5-9장19절), 부림절의 제정(9장20절-32절),부록-아하스에로스 왕과 모르드개에 관한 후일담(10장).
이 설화의 배경은 극히 복잡해서 여러 가지 요소가 섞여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고대 오리엔트 신들의 전쟁 신화가 그 배경에 있다고 하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과 신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결부시킨다. 모르드개는 바빌로니아의 주신 마르두크로, 에스더는 바빌로니아의 여신 이스달로, 하만은 엘람의 신 후만으로, 와스디는 엘람의 신 마디스로 해석한다. 이것은 엘람의 신들에 대한 바빌로니아 신들의 승리를 구가한 설화에 근거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어원적으로는 신의 이름이라기보다 사람이름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기록의 형식을 따서 왕의 치세 연대나 날짜 등이 붙어있는데 등장인물은 아하스에로스를 제외하면 모두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인물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저자는 가령, 페르시아 왕궁의 풍속, 습관 등에 관해서 부분적으로는 상당히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기 록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배경에 있는 것은 신화가 아니라 설화나 구비이며, 가령 다니엘 이야기(다니엘서 1장-6장)에서 보는 것 같이 디아스포라의 유대인이 페르시아 제국의 왕궁에서 일하며 남의 질투를 산다고 하는 테마를 추구한 하나의 역사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쪽으로 이산해 있던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이 설화 성립의 직접 동기이며, 부림절을 제정하는 원인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부림절의 기원에 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부림절은 현재에도 아달 월(태양력 2-3월) 즉 유월절의 전월 14,15일에 지켜진다. 유대인이 하만의 간계에서 구원된 날 13일에는 유대인은 단식하고 다음 13일 일몰(하루는 일몰부터 시작된다)부터 회당에 모여 <에스더의 두루마리>를 낭독하여 이 날을 기념하며 하나님에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 필자는 전에 이스라엘인 친구와 함께 이 날에 예루살렘 회당을 찾아갔을 때 유대인 학살을 음모한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회당에 있던 유대인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큰소리를 외치며 하만에 대해서 항의하는 뜻을 나타내던 광경이 생각난다. 이 날은 유대인에게는 1년 중 가장 즐겁고 요란스러운 날이다. 남편인 페르시아 왕 아하스에로스를 설득하여 유대인 암살 계획을 저지시킨 현명한 왕후 에스더는 민족적 애국자로 지금도 전 세계 유대인의 마음속에 살았다.
열왕기하(2KINGS)
1. 명 칭
열왕기 상서와 하서도 사무엘상서와 하서처럼 히브리어 성경에는 한 권의 책이었다.히브리어 명칭은 말킴(왕들)이다. 70인역에서는 제3왕국기, 제4왕국기라고 되어 있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 열왕기상 참조
그림설명 / 기도하는 솔로몬의 모습과 성전을 건축하는 장면을 그린<벨리공의 호화로운 기도서>의 삽화.
역대상(1Chronicle), 역대하(2Chronicle)
1 명 칭 : [디브레-하이야-밈- mymiY:h' yreb]Di(dibre hayyamim)]
히브리어 원전의 명칭은 (그 날에 생긴 일들)이다. 또 원전에서는 상하 두 권이 아닌 한 권의 책이다. 본서는 성문서집의 맨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본서의 저자는 에스라라고 한다. 역대하의 마지막 말들(대상36:22-23)과 에스라의 첫말(대상1:1-3)이 같은 말임을 알 수 있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본서의 내용은 열왕기 상,하 두 권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를 대체로 포함하고 있으나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거의 빠져있고 남 왕국 유다 특히 다윗왕국과 솔로몬 왕국 에 관심의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 즉 저자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며 후세를 위하여 역사에 대한 종교적 교훈을 주려고 본서를 쓴 것이다. 저자가 가르치려고 하는 사상은 다음과 같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제사장으로 삼기위하여 선택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 사명을 자각하며 율법을 지키며 종교 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실하게 산 때에는 약속하신 대로 큰 축복을 받았으나 반대로 우상을 섬기며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도덕적으로 부패할 때에는 불행과 비참이 왔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이스라엘의 과거의 역사를 가지고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를 보면 제사장 나라로서 왕을 비롯하여 모든 국민이 자각하고 노력한 때인 다윗과 솔로몬시대의 역사는 상세히 힘을 주어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책임을 소홀히 하고 타락한 북 왕국에 대해서는 그 죄로 받은 멸망의 사실 외에는 별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 이러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다시 제사장 나라의 책임을 재인식하고 분별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에스라(Ezra)
1 명 칭 :(hr:z][, , Ezra) 「조력」
원래는 이 두 책은 한 책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라틴어 번역 성경인 벌게잇에서는 에스라서를 제1에스드라스라고 하고 느헤미야서를 제2에스드라스라고 부르고 있다. 또 이 두 책은 정경상의 위치도 다르다. 즉 한글 성경에는 역대하 다음에 있는데 히브리 원전에는 성문서집 중에서 다니엘 다음에 있다(히브리 원전 중에도 팔레스틴 계통의 원전). 전통적으로 우리는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앞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믿고 있는데 최근의 어떤 학자들은 사실은 그 반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개혁자 에스라-느헤미야는 제사장이요 율법 학자였다(스7:11). 그는 아닥사스닥 왕 때 바벨론으로부터 많은 유대인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그는 먼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이방 여자와 결혼한 제사장과 백성들에게 이혼할 것을 명령하고 율법 준수를 강조하였다.
에스라는
(1) 유대족의 잡계 야베스 자손 에델˙ 메렛˙에벨˙얄론의 부친이다(대상 4:17).
(2)B.C. 536년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같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 중 하나이며, 또 레위인 22조장 중 한 조장이다(느 12:1). 느헤미야 12:12, 13에 동명인의 아들 므술람이 대제사장 요야김 시대에 동족의 장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 느헤미야 12:33에는 예루살렘 성벽이 B.C. 445년에 중수되었을 때, 성벽 위를 행진한 제 1조의 한 사람으로 되어 있다. 느헤미야 10:2의 아사랴와 동일 인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3)B.C. 458년 바벨론에서 제 2차 포로귀환 시 지도자였던 제사장이며 학자이다.
에스라서의 기자로 알려져 있다. 대 제사장 아론˙엘르아살˙ 비느하스를 거쳐 사독 가계(家系)의 제사장이며, 또 모세의 율법에 정통했던 학자였다. 그는 바벨론에서 사로 잡혀간 스라야의 아들로 태어났다(스 7:1-6). 그는 바사 정부 아닥사스닥 왕의 법률학자로서 봉사했으며,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의 종교적, 정신적 퇴폐에 대한 소식을 듣고 새로이 모세의 율법을 유대에 확립하기 위한 귀환자를 조직하기로 결심하였다. 즉 그의 소원은, 고국에 돌아가 율법에 따라 신정정치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그의 뜻은 바사 왕 아닥사스닥 1세에 의해 실현되었다. 즉, 그는 바사 왕 아닥사스닥의 제 7년(B.C. 458년) 정월 1일에 바벨론을 출발하여 도중 3일간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기도를 한 후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일행은 1,754명(어떤 기록에는 8,000명, 또는 56,000명)인데, 그 안에는 마지못해 따라간 레위인 성전 봉역자 38명, 느디님 사람 220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때에 왕과, 모사들과, 그리고 방백들과, 이스라엘 잔류인들이 바친 막대한 헌물은 제사장 두목들에게 위탁했다. 그들은 정월 12일에 아하와 강을 떠났다. 이들의 여행은 일대 모험이다. 그들은 방어기능이 전무한 무방비 상태로 4개월간이나 장도의 행군을 한 끝에 무사히 예루살렘에 안착했으니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에스라는 왕에게 보호병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이것을 수치로 생각하고 하나님만 의지했던 것이다. 그들은 귀환한 지 얼마 안 되어 본 토민(원주민 7종과 애굽인 등 이방인)과 율법을 어기고 상혼하므로 범죄 하였다. 그 중에서도 레위인 제사장˙방백˙족장들이 더하였다.
이때에 에스라는 백성의 잡혼에 대한 범죄의 책임을 지도자 되는 자기가 친히 지고 백성을 대표하여 옷을 찢고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그의 단장의 고백은 백성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면목이 없으며, 그 죄가 하늘에 미쳤다는 것과, 열조의 죄 값으로 적국에 사로 잡혀 가게 되어 수치를 당했으며, 수난(受難) 중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으며, 해방으로 인하여 성전이 중건된 사실 등이었다. 그는 성경학자요, 애국자요, 신앙과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복하기를, 백성들이 계속하여 하나님께 배은망덕하고, 약속의 땅을 범죄로 더럽혔다고 했다. 이방인과 상혼치 말고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면영복 받을 약속과, 하나님은 정죄보다 은혜가 풍성하신 것과, 하나님의 심판의 공의로우심과, 주의 의로서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했다.
이러한 에스라의 참회 운동은 백성에게 큰 감화를 주어 백성이 이에 호응하여 몰려와서 통회 자복하였다. 에스라는 이스라엘로 돌아온 지 4개월 후인 9월 20일에 민중대회를 열었다.
우기인데도 불구하고 큰 비를 맞으면서 백성들은 죄를 자복하고 잡혼 자를 제거함으로 선민으로서의 성별을 맹세했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반대자도 있었다. 에스라는 종족을 따라 족장 및 몇 사람에게 위임하여 조사를 실시했다.
10월 1일부터 이듬해 1월 1일까지 이방인 아내를 취한 자의 명단을 작성했다. 그들은 에스라의 권고에 따라 이방인 아내와 이혼했다. 그는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했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 성수, 율법 준행, 성전에 정해진 헌물을 드리도록 가르치고, 또 세금에 대한 제도를 제정했다(스 7장-10장). 요세푸스에 의하면 에스라는 대제사장 엘리야십 시대에 사망했다. 유대인 교사들은 그를 제 2의 모세라고 하여 거의 동격으로 존경하고 있다.
참고〉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상호관계에 대한 최근의 역사 연구의 결과, 느헤미야는 에스라보다 2, 30년 앞섰다는 것이 판명되어 종래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되어 있던 그들의 상호 접촉이 문중에서 엿보이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아닥사스닥 왕은 성경에 2명 있는데, 느헤미야의 그것은 아닥사스닥 1세(B.C. 465- 425), 에스라의 그것은 아닥사스닥 2세(B.C. 405- 359년)이다. 따라서 에스라의 예루살렘 방문연대는 이 견해에 의하면 B.C. 398년이라고 한다.
그림설명 / 에스라 :에스라를 묘사해 놓은 아미아티누스 사본의 삽화. 로렌츠 도서관
3 내 용 분 해
(A) 에 스 라
1. 포로들의 귀환 스1:1-9:43
1) 고레스왕이 성전 재건을 선포함 스1:1-11
2) 돌아온 자들의 이름 스2:1-70
3) 예수아와 스룹바벨이 성전의 기초를 놓음 스3:1-13
4) 방해 때문에 공사가 중지됨 스4:1-24
5) 학개와 스가랴가 격려함 스5:1-17
6) 성전을 완공하여 헌당함 스6:1-22
2. 서기관 에스라 스7:1-10:44
1)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옴 스7:1-28
2) 함께 간 자들의 명단 스8:1-36
3) 백성의 죄에 대한 에스라의 자복 기도 스9:1-15
4) 백성들의 회개와 잡혼자의 명단 스10:1-44
느헤미야(neha)
1. 명 칭: (hy:m]j,n] , Nehemiah) 「여호와께 위로를 받음」
에스라서 참조
2. 내용과 주요 사상
그림설명 / 예루살렘 언덕: 바벨론 포로가 되어 황야에서 눈물지었던 유태인은 과거의 모든 고통을 잊고 마음은 새로운 성도 재건에 정열을 불태웠다.
3. 내 용 분 해
(B) 느헤미야서
1. 총독 느헤미야 느1:1-7:73
1) 느헤미야가 권세를 갖고 고국에 돌아옴 느1:1-2:20
2) 예루살렘 성곽 건축자들의 명단 느3:1-32
3) 무장을 하고 일함 느4:1-23
4) 대금업자들을 꾸짖음 느5:1-19
5) 예루살렘 성곽을 완성함 느6:1-19
6) 돌아온 자들의 명단 느7:1-73
2. 에스라와 느헤미야 느8:1-13:31
1) 에스라가 율법 책을 백성에게 읽어줌 느8:1-18
2)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송축함 느9:1-38
3) 백성이 율법 준수를 맹서함 느10:1-39
4) 예루살렘 주민의 명단 느11:1-36
5) 각 족속의 명단과 축하 행사 느12:1-47
6) 느헤미야가 성전을 정화함 느13:1-31
느헤미야는
(1)B.C. 597년 제 1회 바벨론 포로가 된 스룹바벨과 같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인솔자의 한 사람이다(스 2:2,느 7:7).
(2)바벨론에 사로잡혀가 수산 궁에 있던 유대인으로서, 하가랴의 아들이다(느 1:1).
후에 예루살렘의 총독이 되었다. 그의 가문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확실치 않다. 그는 바삭 왕 아닥사스닥 노세의(B.C. 465- 424 재위) 신임이 있던 주관(酒官)이었다(느2:1).
그는 어느 날(아닥사스닥 제 20년 기슬르월, 즉 B.C. 444년 11- 12월 사이) 예루살렘이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성벽은 훼파되고 성물들은 소화되었다(느1:3)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서 울면서 며칠 동안 금식 기도하였다. 그는 왕에게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에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느 2:5)라고 부탁했다. 왕은 이를 허락하고 삼림 감독 아삽에게 영문과 성곽 및 저를 위한 집 재목을 주라고 명하고, 군대장관과 마병까지 딸려 보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느헤미야는 왕에게 일정한 기간이 차면 바사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동년(B.C. 445)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간 쉰 후 밤에 몰래 몇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벽을 살펴보고 그 심한 파괴 상을 조사했다. 그 후 제사장 귀인, 방백 및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중건하자고 하니 모두 승락하고 협력했다. 공사는 많은 사람들이 분담했다. 양문(羊門)과 북편 성벽들은 제사장 엘리아십과, 기타 제사장 귀족들이, 서편 성벽은 살롬과 그 딸들이, 동편 성벽은 살룬 등등이 공사를 진행시켰다(느 3장).
그동안 그가 도착한 이래 반대 태도를 취해온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주위의 여러 종족이 반대하여 박해했기 때문에, 모두 무장을 하고 복구 작업에 가담했다(느 4:1-6:14). 또, 공사에 봉사하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부자의 압제 때문에 생활이 곤궁하여 그 불평을 호소해 오는 자들이 있었음으로 그는 부자에게 저당 잡힌 것을 돌려주게 함으로써 빈부의 충돌을 조정하였다. 공사는 개시한 지 52일 만인 엘룰월 25일에 놀라울 정도로 빨리 끝났다.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고 놀랐다(느 6:15,16). 이러한 대적들의 방해에 느헤미야는 경계와 세심한 경비에 의해 완공되었으며, 그 동안 그는 유대인 간의 악습을 개혁하고, 그들의 불평불만을 제거하고, 법과 질서를 확립하고, 백성에게 율법을 강해시키게 하고, 초막절을 지키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예배와 성회를 부흥시켰다(느 8장이하). 그는 또 자기형제인 하나니와 하나냐에게 성벽을 수비시킴과 동시에(느 7:1-5) 지방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내에 살게 했다(느 11장).
그 후 성곽낙성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그 때 성문은 정결케 되고, 사람들은 두 떼로 나뉘어 감사 찬송을 부르면서 성 위로 행렬을 지어 갔으며, 거제물과 십일조를 고간(庫間)에 쌓게 하였다(느 12:27-44). 그 후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12년 있는 동안 민폐는 고사하고 총독의 녹까지 받지 않았으며, 자비로 유대인 150명을 먹이고, 또 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진심으로 환영했으니, 이것으로 그의 청렴결백한 인격을 엿볼 수 있다(느 5:14-18).
당시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에서 추방하던가, 가능하면 암살하려는 모략이 있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예루살렘을 부흥시켜 유대를 독립국으로 하고 그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 위증 편지가 아닥사스닥 왕에게 보내어졌는지 왕은 별명이 있을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라는 조서를 내렸다(스 4:21). 느헤미야의 개혁 운동에는 에스라도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느8:1,9,13,12:36).느헤미야는 12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바벨론으로 돌아갔다(느 5:14,13:6,BC 433)가 다시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에 왔다(느13장).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있을 때 대적의 박해는 없었으나, 내부에 여러 가지 번민이 있었다. 즉, 제사장 엘리아십이 이스라엘의 대적 도비야에게 성전 큰 방 하나를 주고(느 13:4,5) 레위인들에게는 월급을 주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각처로 도망치고(느 13:10), 안식일을 범하고(느 13:15), 이방 여자들과 결혼했다(느 13:23). 이와 같이 문란한 상태를 본 그는 개혁을 단행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난 혼혈족인 암몬과 모압 사람은 분리시켰다(느 13:1,2). 그리고 암몬 사람과 도비야를 성전에서 추방하고(느13:4-9), 성전에서 주는 월급을 조정했으며(느 13:10-14), 안식일을 엄수시켰으며(느 13:15-22), 잡혼을 금지시켰다(느 13:23-30).
그 후 느헤미야의 행동과 최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바사 왕 다리오 치세의 말기까지(BC 405)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 같다(느 12:22). 고령으로 사망한 것만은 틀림없다. 그는 이스라엘 종교사상 특수한 지위를 겸한 인물로서, 유대교 건설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그와 에스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에스라 항을 참조).
[3]느헤미야 때 아스복의 아들로,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린 방백이다(느 3:16).
에스더(Esther)
1. 명 칭 (rTes]a, , Esther) :별)
본서의 명칭은 본서의 주인공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에스더]이름은 파사 말이며 [별] 이라는 뜻이다. 옛 유대인의 전설에는 본서의 저자를 모르드개라고 한 곳이 있지만 그 견해는 불확실한 주장이다. 우리는 누가 기록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용으로 보아 저자는 바사(Pevrsh", Persiva, Persia)의 사정을 잘 알고 그들의 관습을 익숙하게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본서의[아하수에로]왕은 일반적으로는 크셀크스(Xerxes)왕으로 간주되는데 이 왕은 주전485년부터 465년까지 바사의 왕 이었으며 세계사에 유명한 파사 전쟁의 왕이다.
그림설명 / 에스더 :아르트 데 켈더가 1685년 그린 그림으로 모르드개가 하만의 음모를 알고 에스더드에게 나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 부다페스트 미술관 소장.
2. 내용과 주요 사상
베냐민 사람 아비하일의 딸이다. 히브리 이름이 `하닷사라'하는 아름다운 처녀였다. 조실부모한 고아였으므로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자기 딸같이 양육 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들이 사로잡혀 갈 때 그들도 같이 잡혀 갔다(에 2:5-7).
바사의 아하수에로스(vwOrwEv]j'a} ,jArtaxevrxh",Ahasuerus) 왕은 그의 치세 제3년에 나라의 부함과 왕위의 혁혁함을 시위하기 위해 일대 향연을 베풀었다. 제 7일에 왕은 7인의 어전 내시에 명하여 왕비 와스디를 불렀다. 그것은 왕비의 아름다움을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왕명을 거역하여 나오지 않았다. 분노한 왕은 법률과 규례에 능통한 일곱 방백 중 하나인 므무간의 의견에 따라 왕후 와스디를 폐하고 새 왕비를 맞게 되었다(에 1:21,2:2-4). 왕의 치세 제 7년 10월 와스디에 대신하여 에스더가 피택 되어 왕비가 되었다(에 2:16,17).
그녀는 복잡한 때에 왕비가 되었으나, 그 때에는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것이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왕은 하만을 중용(重用)하였다. 에스더가 왕비가 된 지 5년 후(에 2:16,3:7) 하만은 자기에게 `꿇지도 아니하고 절도 하지 아니하는' 모르드개를 비롯하여 왕국에 사는 온 유대인을 학살하려고 했다. 그는 막대한 뇌물(은 1만 달란트: 국고의2/3에 해당)을 왕에게 바치는 한편, 유대인들이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으며, 자기네의 율법과 풍속을 고수한다고 왕에게 참소하여 유대인 학살 승낙을 얻어 왕의 조서를 각도에 발송했다(에 3장).
모르드개는 이 사실을 에스더에게 말하여 유대 민족을 하만의 마수에서 지킬 것을 부탁했다. 왕이 부르지 아니한 자는 그 누구도 왕 앞에 나아갈 수 없고, 만약 이 같은 법을 어기는 자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런데 왕이 왕비인 그녀를 찾지 않은지가 한 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왕의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녀는 동족 모두와 함께 3일간의 금식 기도를 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죽음을 각오한 다음, 왕에게 유대인의 구명을 부탁하려고 결심했다. 그녀가 죽기를 무릅쓰고 왕에게 나아갔을 때 의외로 왕은 그녀를 기쁘게 맞아 주었다. 이제 그녀는 비상한 신중성과 기지로 하만의 음모에 대하여 왕의 주의를 끄는 절호의 기회 포착했다. 즉, 그녀가 마련한 3일간의 연회석상에서 기분이 상쾌한 왕의 제안에 따라 그녀가 요구한, 그녀 자신의 생명과 동족의 생명의 위급함을 왕에게 알리고, 함께 참석하고 있던 하만이 그 주모자라고 지적하자, 사태는 일변하여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준비했던 높이 50규빗의 나무에 하만 자신이 달려 죽었다.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취소할 수 없으므로 왕은 새로운 조서를 각 도에 내려 유대인 스스로가 생명과 재산을 지키도록 했다. 유대인의 학살 예정일인 12월 13일은 그들의 위대한 승리의 날이 되고, 모르드개는 왕 앞에서 큰 자가 되어 존귀함을 받게 되었다(에 5:1-8:17). 이는 하나님께서 한 연약한 여자와 믿음의 사람 모르드개를 통하여 이방의 사지(死地)에서도 자기의 백성들을 보호하신 역사적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부림절'로 지키고 있다. 에스더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만일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는 것처럼, 아하수에로 왕이 크세르크세스라면 에스더는 그의 아내 중 하나이며, 오타네스의 딸이나 손녀이며, B.C. 479년, 즉 왕의 치세 7년인가 8년에 왕비로서 기록되어 있는 아메스토리스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와스디는 제 3년, 즉 헬라와의 전쟁에 관해 대 회의를 열은 해에는 이미 권력 있는 왕비였다(에 1:3,9). 에스더는 제 7년 10월에 왕비의 자리에 올라(에 2:16,17) 12년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에 3:7,5:3).
참고〉`에스더'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일 것이며, 또 후일 히브리인들은 귀여운 여자아이에게 반짝이는 샛별에서 따온 이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사 14:12,계 22:16). 그러나 `에스더'와 별의 신 `이슈탈'을 동일시하는 것은 어원학적으로 긍정할 수 없다.`에스더'의 두 문자는 a(아레프)로 시작하고, `이슈탈'은 [(아인)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바벨론에서 발견된 토기 위에 쓰여 져 있는 유대인의 주문(呪文)에 `이슈탈'의 복수(複數)의 두 문자가 a로 쓰여 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토기의 연대가 분명치 않으며, 혹 에스더서와 같은 연대일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퇴화한 변형에 불과하다. 여하튼 `에스더'와 `이슈탈'을 동일시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당시 바사에서는 별을 `스태라'라고 말했다. `하닷사'가 신부를 뜻한다고 하는 것은 옳으나, 이것이 여신들의 이름에 쓰인 확증은 없다. 다만 에스더의 히브리 이름 `하닷사'가 앗수르어의 `하다삿'와 비슷하기 때문에 오해를 받기 쉬우나, 이것은 오히려 `아다삿'이라고 발음되어야할 말이지 `하다삿'이 아니다.
특이 하게도 본서에서는 하나님이란 칭호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3 내 용 분 해
1. 와스디 왕비가 폐위됨 에1:1-22
2. 에스더가 왕비가 됨 에2:1-23
3. 하만이 유대인 학살 계획을 세움 에3:1-15
4. 모르드개가 흉계를 알고 에스더에게 구원을 호소함 에4:1-17
5. 에스더가 왕을 초대하고 소원을 말함 에5:1-7:4
6. 왕이 하만의 흉계를 알고 죽이게 함 에7:5-10
7. 모르드개가 권좌에 오르고 복수함 에8:1-9:16
8. 부림절을 제정함 에9:17-32
9. 모르드개가 존귀케됨 에10:1-3
욥기(Job)
1. 욥기의 가치[잇요-브 bwOYa('iyyob)]
욥기는 종교적 경전으로서 교회 안에서 귀히 여김을 받는 책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 있어서 불멸의 가치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귀중한 책이다. 특히 현대의 실존주의적 작가들에게 준 영향은 지대하다. 인생의 가장 크고 무거운 문제인 고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고난에 처한 인간이 가져야 할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2. 내용의 요약
[우스]라는 땅에 [욥]이라고하는 의로운 사람이 있었다. 그는 7남 3녀와 많은 가축을 가진 부자요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단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그로 하여금 그 자녀들이 일시에 죽고 많은 재산을 잃어버리고 자신은 심한 종기가 나고 아내에게 멸시를 받는 큰 고난을 받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욥은 믿음으로 잘 견디고 이겼다. 그리하여 끝내는 이전보다도 더 많은 재산과 훌륭한 자녀들의 축복을 받았으며 장수의 복까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줄거리이다.
1장과 2장은 서론 부분이며, 3장부터 42장 6절 까지 본론부분이며, 42장 7절부터 17절 까지는 결론 부분이다
3. 주 요 사 상
본서의 주제는 인생의 고난의 문제다. 특히 의인의 수난의 문제이다.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사랑하는 욥이 말로다 형용할 수 없는 많은 끔찍한 고난을 당하였다.왜 의인이 세상에서 이렇게 고난을 받는가?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찾아와 함께 슬퍼하고 의인 욥이 고난을 당하는가에 욥과 말을 주고받는다.본서에는 이 세친구와 욥 사이에 교환된 각각 세 번의 긴 논쟁이 기록되어 있다.그 들의 논쟁의 중심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지배하시는 이 세계에서 의인이 고난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욥이 고난을 받는 것은 죄 값으로 받는 고난의 형벌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욥은 자기는 결백하고 죄가 없다고 강경하게 주장하면서 세 친구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반박 한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께 직접 대답을 듣겠다고 절규한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욥에게 직접 나타나시어 대답하여 주셨다(38:1이하). 즉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우주의 통치자시라는 것을 욥에게 깨우쳐 주시고 동시에 인간의 무력함과 무지함을 알려 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그 작은 지혜와 힘으로 역사와 인생의 모든 일, 곧 하나님께서 주관 하시는 일에 외람되이 입을 놀리거나 반항하는 일의 무의미를 깨닫게 하셨다. 이때에 욥은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42:3,6고 대답 하였다. 인간은 오직 회개로 고난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 며 간구할 뿐임을 깨달은 것이다.
4. 저자와 저작 연대의 문제
그림설명 / 베두인 : 욥의 이야기는 족장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욥의 재산은 양과 소로 계수되었다. 여기 베두인들도 브엘세바의 양 시장에 몰려 있었다.
본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다. 몇 가지 주장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 모세가 저자라고 하는 주장: 탈무드에 모세가 JOB에 관한 말을 썼다는 말이 있는 것을 근거로 한 학설이다(예수교 장로회 총회교육부편 표준 주석에는 이 학설을 채택하고 있다).
2) 솔로몬 시대에 어떤 사람에 의하여 저작 되었다는 주장: 그 근거는 본서가 잠언서와 같이 지혜문학적인 성격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3) 예레미야 시대의 저작이라는 주장: 의인이 고난을 받고 악인이 번영하는 모순을 가장 철저하게 경험한 시대가 이때라는 것.
4) 제 2 이사야(549-538년) 시대의 저작 이라는 주장: 그 이유는 문장의 표현과 사상이 같고 JOB기와 제2이사야서(흔히 비평가들이 말하는 이사야서 제40장 이하를 가리킴)와 평행하는 구절이 있다는 것.
5.내 용 분 해
1. 서론 욥1:1-2:13
1) 욥의 소개 욥1:1-5
2) 첫 번째 하늘위의 장면(첫 재난) 욥1:6-22
3) 두 번째 하늘위의 장면(두 번째 재난) 욥2:1-10
4) 친구들이 찾아옴 욥2:11-13
2. 욥의 탄식 욥3:1-26
3. 세 친구와의 변론 욥4:1-31:40
(1) 제 1회 변론 욥4:1-14:22
1) 엘리바스의 첫 번째 변론 욥4:1-5:27
2) 욥의 첫 번째 대답 욥6:1-7:21
3) 빌닷의 첫 번째 변론 욥8:1-22
4) 욥의 두 번째 대답 욥9:1-10:22
5) 소발의 첫 번째 변론 욥11:1-20
6) 욥의 세 번째 대답 욥12:1-14:22
(2) 제 2회 변론 욥15:1-21:34
1) 엘리바스의 두 번째 변론 욥15:1-35
2) 욥의 네 번째 대답 욥16:1-17:16
3) 빌닷의 두 번째 변론 욥18:1-21
4) 욥의 다섯 번째 대답 욥19:1-10:22
5) 소발의 두 번째 변론 욥20:1-29
6) 욥의 여섯 번째 대답 욥21:1-34
(3) 제 3회 변론 욥22:1-27:23
1) 엘리바스의 세 번째 변론 욥22:1-30
2) 욥의 일곱 번째 대답 욥23:1-24:25
3) 빌닷의 세 번째 변론 욥25:1-6
4) 욥의 8 번째 대답 욥26:1-14
(4) 욥의 최종적 대답 욥27:1-31:40
1) 욥이 자기의 무죄를 다시 강조함 욥27:1-12
2) 악인의 자식들의 운명 욥27:13-23
3) 지혜의 찬양 욥28:1-28
4) 욥의 결론 욥29:1-31:40
4. 엘리후의 연설 욥32:1-37:24
5.하나님께서 말씀하심 욥38:1-42:6
1) 세계의 창조 욥38:1-15
2) 하늘과 땅의 신비 욥38:16-38
3) 들짐승의 신비 욥38:39-39:30
4) 하나님께서 두 번째 말씀하심 욥40:1-42:6
6. 결론 욥42:7-17
시편(Psalms)
1 .명 칭 :[테힐림 !yLihiT] (tehillim)
시편이라고 부르는 이 책의 원명은 찬양의 책(세펠 테힐림)이다.본서 속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서에는 찬양뿐만 아니라 기도의 내용의 시가 더 많다.70인 역이나 벌게잇에서는 시의 책 이라고 하였다.
시편이라고 하는 우리말 명칭은 한국, 중국, 일본이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다
그림설명 / 사해 두루마리 하나로서 시편 32편 후반부와 시편 36편이 기록된 것. AD1세 기 것으로 추정 파리 성서박물관 소장
2. 시편의 제목과 구분
시편 150장 중에서 34개 장(이 시들을 [고아]라고 부른다)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편의 첫 머리에 제목이 붙여져 있다.대개 5가지 종류의 제목들이다.
1) 시의 성격을 설명하는 제목들
2) 그 시를 반주할 음악적 지시를 표시하는 제목들
3) 그 시가 사용될 예배 의식을 표시하는 제목들
4) 작자 또는 원천이 되는 시집을 표시하는 제목들
5) 그 시가 지어진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제목들
시편 150편의 시를 다섯 권으로 구분해 있다.
제 1 권 : 1-41장
제 2 권 : 42-72장
제 3 권 : 73-89장
제 4 권 : 90-106장
제 5 권 : 107-150장
이렇게 나눈 것은 모세의 율법이 다섯 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 것과 또 유대인의 큰 다섯 명절 수에 맞추어 나눈 것이다. 각 권의 마지막에는 송영(Doxology)이 있고, 제150 편은 시편 전체의 마지막 송영이라고 할 수 있다.
3. 시편의 교 훈
시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오랜 세월 동안의 많고 깊은 종교적 교훈이 숨어 있는데 특히 다음과 같은 교훈들이 두드러진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우월성: 창조주로서 전지전능하심과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일과 그 사랑과 자비의 크신 것과 놀라운 구원의 은혜 등을 가르치고 있다.하나님과 같이 크신 이 누구오니이까? (77:13) 라고 찬미하고 있다. 2) 인간의 연약함: 시인들은 솔직하게 자기의 무지와 인간의 연약함을 고백하면서 동시에 그 피조물을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감사 하고 있다(103:14장,8:4-5참조).
3) 하나님을 계시하는 자연 광대무변한 우주와 심비하고 기묘한 자연을 시인들은 노래하면서 바로 그 자연이 여호와를 나타내 보이는 계시임을 인식 하였다.(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19:1).
4. 내 용 분 해
A. 편집된 대로의 분해
1. 제 1 권 시1:1-41
대개가 다윗의 시이다.
2. 제 2 권 시42:1-72
1) 고라 자손의 시: 시42:1-49:
2) 아삽의 시: 시50장
3) 다윗의 시: 시51:1-65:,시68:1-70:1
4) 솔로몬의 시: 시72장
3. 제 3 권 시73:1-89:1
1) 아삽의 시: 시73:1-83:1
2) 고라 자손의 시: 시84장,85,87
3) 다윗의 기도: 시86장
4) 헤만의 시: 시88장
5) 에단의 시: 시89장
4. 제 4 권 시90:1-106
1) 모세의 기도: 시90장
2) 여호와를 왕으로 찬양하는 시: 시93장,시95:1-99
3) 안식일장, 감사장, 탄식의 시: 시92장,100,시102장
4) 다윗의 시: 시101장,시103장
5) 여호와를 역사의 주로 찬양하는 시 시103:1-106
5. 제 5 권 시107장-150
1) 다윗의 시:시108:1-110,시 122:시122장, 시124장, 시131장, 시138장, 시145장
2) 감사장, 찬송의 시: 시111:1-118
3) 솔로몬의 시: 시127장
4) 순례의 시: 시120장-134
5) 찬송의 시: 시135:1, 시136장, 시145:1-150
B. 문학 형식에 따른 분해
1. 찬송의 시
1) 공동 찬송시: 시29장,시33장,시47장,시65장,시67장,시93장,시96:1-100,
시105:1-113,시 117:">시117장,시134:1-136,시147:1-150
2) 개인 찬송시: 시8장,시103장,시104장,시138장,시145장,시146장
2. 탄식의 시
1) 공동 탄식의 시: 시10장,시44장,시74장,시79장,시80장,시83장,시123장,시137장
2) 개인 탄식 시: 시17장,시22장,시26장,시35장,시38장,시39장,시51장,시55장,
시69장, 시70장,시88장,시109장,시140:1-143
3. 감사의 시
1) 공동 감사시: 시107장,시124장
2) 개인 감사시: 시18장,시30장,시116장
4. 확신의 시
1) 공동 확신시: 시46장
2) 개인 확신시: 시3장,시16장,시23장,시62장,시63장,시131장
5. 예언의 시 시15장,시50장,시81장,시82장
6. 지혜문의 시 시1장,시37장,시49장,시78장,시112장,시119장,시128장,시139장
※ 복합적인 내용을 가진 것은 위에 구분되어 있지 않음
잠언(Proverbs)
1. 히브리 민족의 지혜문학 : hm;k]j(chokmah=wisdom)
어느 민족이나 인생을 지혜롭게 또 가치 있게 살기를 원하며 그러한 삶을 위하여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많은 속담이나 수수께끼 같은 것이 생기고 격조 높은 귀한 격언이나 금언을 많이 갖게 되었다.
그림설명 / 솔로몬의 재판: 푸생작.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받은 지혜를 이용하여 재판하 는 이 장면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주제가 되었다. 루브르미술관 소장.
이러한 것들은 특히 청소년 들을 훈계하는데 사용되었다.그리하여 그것들은 자연히 근면, 정직, 순결, 효, 신의, 경건, 희망, 사랑, 믿음 등을 주로 가르치고 있다. 히브리 민족에게 있어서도 역시 그러했다.옛 속담에 이르기를 (삼상24:13)하는 말씀이나 삼상 10:12같은 구절을 보아도 옛날부터 구전으로 많은 속담 같은 것들이 히브 리 민족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솔로몬 왕은 잠언 3,000수를 지었다(왕상4: 32참조).
2. 잠 언 의 교 훈
격언과 같은 문장인 잠언들은 삶에 대하여 다양한 교훈을 준다.
1) 신앙의 교훈을 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1:7)이라는 것. 여호와 의 미워하시는 것(6:16-19)이 무엇이라는 것. 죄를 지복하고 버리는 자(28:13)가 될 것 등을 가르치고 있다. 2) 도덕적 교훈을 준다: 효도(10:1,15:20),선과 악(10:9),사랑과 미움(10:12),진실과 허위(12:17), 정의 와 불의(16:8)등 여러 방면의 실생활의 도덕적 교훈을 주고 있다. 3)사회 생활상의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근면과 나태(12:11,24),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10:9,10,29),화목(17:1), 바른 언어생활(10:19) 등 유익한 교훈들이 많다.
3. 저 자 문 제
본서의 대분이 솔로몬 왕이 지은 것이 분명하나 본서 전부의 그의 작이라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본서 자체도 본서가 여러 사람의 잠언을 모은 것임을 강조 하고 있다.잠1:1에는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하여 본서가 대체적으로 솔로몬의 저작임을 말하고 있지만 잠25:1에 보면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라는 말이 있고 잠30:1을 보면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 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또 잠31:1을 보면 그 잠언은 르므엘왕의 어머니의 잠언이라고 말하고 있다.
4. 내 용 분 해
A. 편집된 대로의 분해
1. 지혜의 탁월성 잠1:1-9:18
2. 솔로몬의 잠언 잠10:1-22:16
3. 지혜있는 자의 말씀 잠22:17-24:34
4. 편집된 솔로몬의 잠언 잠25:1-29:27
5. 아굴의 잠언 잠30:1-33
6. 르므엘의 잠언 잠31:1-31
B. 교육의 내용별 분해
1. 지혜의 근원 잠1:1-8:36
2. 지혜로운 아들과 미련한 아들 잠10:1, 잠15:20, 잠j17:21,잠25:장
3. 세상의 허무함과 신앙의 축복 잠10:2-3,잠11:4, 잠15:16-17
4. 근면과 나태 잠10:4, 잠26장, 잠12:11, 잠24장
5. 의인과 악인 잠16:6, 잠9장, 잠16장, 잠 24:잠24장, 잠11:3
6. 영광의 치욕 잠10:7, 잠12:3-9, 잠18:3
7. 순종과 불순종 잠10:17, 잠12:1, 잠15장
8. 유익한 일과 해로운 일 잠10:10,잠29장, 잠11:19장
9. 의인의 말과 악인의 말 잠10:11, 잠13:1-14
10. 사랑과 미움 잠10:12, 잠15:17, 잠27:5
11. 가난한 자와 부자 잠10:15, 잠22장, 잠11:28
12. 진실과 거짓 잠10:18, 잠12:17, 잠19장
13. 명철과 미련 잠2:2, 잠3:5, 잠9:10, 잠10:13, 잠15:22
14. 다변과 침묵 잠10:19,잠11:12
15. 정의와 불의 잠11:1, 잠16:8
17. 존경과 모욕 잠11:12, 잠14:21
전도서(Ecclesiaste)
1. 명칭 ( tl,h,qo(dibreqoheleth) [그] !Ekklhsiasthv" (ekklesiastes) [영]
히브리어 성경에는 [코헬레드]로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카할(Qahal) (불러 모은 무리) 이라는 단어의 변형이다. 불러 모은 자들에게 말하는 사람 즉 설교자, 전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낱말은 70인 역에는 에클레시아스테스((Eccleisates)라고 번역 하고, 영어나 한글 성경은 이것을 따랐고, 우리말로는 전도서라고 번역하였다. 본서의 내용을 보면 근엄한 설교자나 전도자의 태도라기보다 생을 달관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의 세계관이나 인생관 또는 행복 론 등을 아주 마음 가볍게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말해버리는 투이다.
2. 내용과 주요사상
어떠한 역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굳세게 살아가는 것이 신앙이라고 가르치는 기독교의 성경에 허무주의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책이 정경으로 수록되어 있는 일은 놀라운 일이다. 인생의 달관자의 입장에서 일체의 노력이나 기쁜 일이 무가치 하고 허무한 일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책이 유대인의 즐거운 절기인 장막절에 낭독하는 두루마리 책이었다니 매우 역설적인 교훈이 담긴 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은 생의 비극과 비참과 허무성 속에서 그것들을 초월하는 저쪽에 인간의 관심을 끌어가려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저자가 헛되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나 또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고 인간 자신에 대한 신뢰를 두고 하는 말이다. 5:2나 12:13-14 같은 곳을 보면 저자는 인간의 허무를 절감한자이지 하나님의 섭리나 힘 또는 그에 대한 신앙을 허무로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본서에서 찾아볼 중요한 교훈과 사상 몇 가지가 있다.
1) 인간의 일과 계획과 힘은 유한한 것, 상대적 이라는 것2)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삶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거기에 가치 있는 삶이 있다는 것3) 현실의 삶에는 모순, 당착과 고통이 많은 것 같으나 그 배후를 깊이 꿰뚫어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4) 인간의 최고의 삶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
3. 내용 분해
1.서 론 전1:1-11
2.모든 것의 허무함 전1:12-6:12
1) 지식의 추구는 헛된 번뇌 전1:12-18
2) 쾌락의 허무 전2:1-11
3) 지혜와 재산의 허무 전2:12-23
4) 노력의 허무 전2:24-3:15
5) 악한 자가 땅에서 흥함 전3:16-4:6
6) 둘이 함께 일하는 것이 더 나음 전4:7-12
7) 지혜로운 가난이 어리석은 부보다 나음 전4:13-16
8)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 전5:1-7
9) 재산의 허무 전5:8-6:12
3. 지혜의 말 전7:1-12:8
1) 삶을 위한 실제적 충고 전7:1-14
2) 모든 사람은 죄인 전7:15-29
3) 왕을 존경해야 함 전8:1-8
4) 하나님 앞에서 악인은 잘 되지 못함 전8:9-17
5) 세상의 질서와 통치 전9:1-10
6) 지혜 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 전9:11-10:20
7) 잡다한 실생활 교훈 전11:1-12:8
4. 결 론 전12:9-14
아가(Song of son)
1. 명칭 (!yriyVih' ryvi 쉬르,, 하쉬림 )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를 다섯 두루마리 ( Megilloth ) 라고도 부른다.이 두루마리는 유대인들의 명절 곧 절기 마다 한 권씩 낭독 하였다고 한다.즉 아가는 유월절에, 룻기는 오순절에, 애가는 (압 Ab)달 제 9일(예루살렘이 파괴 되었다는 날)에, 전도서는 장막절에, 에스더는 부림절에 낭독 하였다.
2. 내용과 주요사상
본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솔로몬의 노래 중의 노래)이며 아가는 사랑이 주제가 되어 있는 책이다. 그러기 때문에 세속적인 것이라고 하여 정경으로 채택되는데 있어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 이스라엘 청년은 만 30세가 되기까지는 이 책을 못 읽게 하였다고 한다.본서는 솔로몬이 지은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사랑을 남녀의 사랑으로 우화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
내용은 (술람미)라는 주인공이 궁중에서 왕의 사랑을 강요받지만 보잘것없는 한 목동에게 받친 그의 참 사랑을 중히 여기고 왕궁의 호사스러운 영광을 물리치고 끝까지 그의 첫 사랑의 대상을 사모하는 진실한 사랑에 관한 고상한 교훈이다.신랑은 여호와 하나님이고 신부는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탈무드의 해석이 바로 이 해석이다.기독교에 있어서도 어거스틴이나 존 웨슬리 같은 이는 신랑은 예수그리스도요 신부는 교회와 신자라고 해석 하였다.이 책은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에 마땅히 있어야할 사랑의 순결과 정열을 가르친 해석이다.
1. 두 주인공의 희곡이라는 해석2. 세 주인공의 희곡이라는 해석3. 결혼식의 노래라는 해석4. 순전히 세속적 사랑의 노래라는 해석이 여러 해석들 중에서 첫째 해석이 옳은 해석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3. 내용 분해
1.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사랑을 노래함 아1:1-3:11
2. 서로 아름다움을 애찬함 아4:1-5:16
3. 서로 뜨거운 사랑을 노래함 아6:1-8:14
이사야(Isaiah)
1. 명칭
그림설명 / 이사야: 자기 몸을 희생하여 봉헌하는 이사야.J 레수트 작.18세기, 아미엥 대 성당 박물관 소장.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아 주전 745-695년까지 50년간 활동한 위대한 예언자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의 아버지 아모스(예언자 아모스와 동명 2인)는 아마샤왕의 형제라고 한다.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이사야는 웃시야 왕과는 4촌 형제간이며 요아스 왕의 손자가 된다. 역대하 26:22와 32:32을 보면 이사야는 본서 외에도 다른 책들을 쓴 것이 분명하다 (그 책들은 오늘 보존 되어있지는 않지만). 그런데 그 책들은 왕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들임을 보면 이사야는 위대한 예언자인 동시에 역사가이기도 했다. 이사야는 특히 메시야에 대한 예언자이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은 전 세계 모든 민족들에 대한 메시야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이 모든 민족에게 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사야는 그러한 축복된 미래에 대한 꿈을 놀랍도록 아름답게 예언하고 있다.
2. 내용과 주요사상
이사야가 활동한 시대는 앗수르의 침략의 마수에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몹시 곤욕을 당하는 때이었다. 이미 주전 840년 예후 왕 때부터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쳤었다. 이사야가 아직 젊은 시절인 734년에 앗수르는 북 왕국으로부터 많은 포로를 붙잡아 가고 북 왕국은 완전히 멸망해 버렸다. 수년 후에 앗수르는 남 왕국 유다에 침입하여 46개의 성을 파괴하였고 20만 명의 포로를 붙잡아 갔다. 그리고 끝내는 710년 즉 이사야가 노인이 된 때에 앗수르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이사야가 활동한 시기는 이와 같이 선민 이스라엘의 두 나라가 앗수르의 큰 힘 앞에 무참히 짓밟히고 멸망하는 비통한 시대였다. 암혹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예언자 이사야가 메시야에 관한 예언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도 되지만 아주 위대한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사야가 활동한 시기의 남쪽 두 나라의 왕들은 다음과 같다.
A. 남왕국 유다의 왕들
1. 웃 시 야 :779-740년 좋은 왕. 오래 나라를 잘 다스림.
2. 요 담 :740-736년 좋은 왕. 웃시야의 섭정이었다.
3. 아 하 스 :736-728년 악한 왕.
4. 히스기야 :727-699년 좋은 왕.
5. 므 낫 세 :698-643년 악한 왕.
B.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
1. 여로보암 2세 :783-743년 국가는 번영했으나 우상숭배와 부정이 많았음.
2. 스 가 랴 : 743년. 암살됨.
3. 살 룸 : 743년. 암살됨.
4. 므 나 햄 : 743-737년 잔인함.
5. 브가히야 : 737-736년 암살됨.
6. 베 가 : 736-730년 앗수르가 많은 포로를 붙잡아 감.
7. 호 세 아 : 730-722년 사마리아가 722년에 함락되고 북왕국의 종말
3. 본서의 저자
본서의 저자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도덜라인(J.C. Doederlein)이 1775년에 이사야서 의 주석을 낸 이후로 이사야서는 1장부터 39장까지와 40장부터 66장까지는 다른 저자에 의하여 기록된 두 다른 책으로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근래에 다시 제 2 이사야를 다시 나누어 40장부터 55장 까지는 제2 이사야서라고 하고 56-66장 까지는 제 3이사야서라고 부르고 있다.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40-66장까지의 내용을 예언자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고 다른 여러 사람이 쓴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한예수교 장로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사야서 전체의 저자는 이사야라고 하는 주장을 고수한다. 그 주된 이유는 신약 성경은 아무 의심 없이 이사야서 전체가 예언자 이사야의 저작자라고 하는 확신 속에서 다른 모든 예언자들 보다 더 많이 인용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앗수르의 압박에서 시달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은, 더 나아가 인간의 구원이라는 것은 강대국가에 예속되어 그 가호 밑에서 구차하게 얻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즉 구원은 인간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즉 은혜에 의하여 오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본서의 내용이다. 본서 1:27(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의 말씀은 이사야가 그 백성에게 정의의 힘과 영의 힘이 최후의 승리를 굳게 믿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을 것을 가르쳤던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지배하시며 역사를 주관 하신다는 것과 오직 정 의와 신앙만이 최후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본서는 (남은 자)의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가 위기에 직면할 때 모든 국민이 강대한 이방 나라의 힘에 의존하여 비굴하고 불 신앙적으로 살지만 그래도 끝까지 의롭게 믿음을 가지고 살려는 소수의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희망은 바로 그 소수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소수를 남은 자(the remnant)라고 부르고 있다.
(사10:20) 본서의 또 하나 두드러진 교훈은 메시야 사상이다.민족의 일대 위기에, 풍전등화와 같이 민족의 전멸이 눈앞에 임박한 절망의 순간에 이사야는 놀랍게도 긍정적이며 낙관 적이다. 그는 아름답게 감동적인 표현으로 메시야가 오실 것과 민족의 황금시대를 예언하고 있다.
4. 내용 분해
1.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 사1:1-12:6
1) 패역한 시온이 벌을 받으나 회복될 것임 사1:1-31
2) 끝 날에 모든 나라가 평화를 얻고 시온이 정화될 것임 사2:1-4:6
3) 무가치한 포도원에 대한 심판 사5:1-30
4)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음 사6:1-13
5) 아하스 왕을 위하여 구원의 징조를 주심 사7:1-8:22
6) 평화의 왕과 진노의 막대기 앗수르 사9:1-10:34
7) 이새의 뿌리에서 구원이 올 것임 사11:1-12:6
2. 여러 나라에 대한 경고 사13:1-23:18
1) 바벨론에 대한 경고 사13:1-14:32
2) 모압에 대한 경고 사15:1-16:14
3) 다메섹에 대한 경고 사17:1-14
4) 구스(에디오피아)사절단에 관한 예언 사18:1-6
5) 애굽에 대한 경고 사19:1-25
6) 애굽과 구스에 대한 앗수르의 정복의 상징적 예언 사20:1-6
7) 바벨론, 두마,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 사21:1-17
8) 이상 골짜기에 대한 경고 사22:1-25
9) 두로에 대한 경고 사23:1-18
3. 세계심판에 관한 환상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 사24:1-27:13
1) 죄로 인한 세계의 황폐 사24:1-23
2) [그 날]의 감사 찬송 사25:1-27:13
4.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사28:1-31:9
1) 에브라임의 화와 지도자들의 죄 사28:1-29
2) 예루살렘의 화와 백성의 어리석음 사29:1-24
3) 애굽을 의지하는 자의 화 사30:1-31:9
5. 회복될 시온 사32:1-35:10
1) 죄인이 멸망하고 시온이 회복됨 사32:1-33:24
2) 에돔은 망하고 시온이 부흥됨 사34:1-35:10
6. 히스기야 왕과 이사야 사36:1-39:8
1) 이적적으로 앗수르의 침략에서 구원됨 사36:1-37:38
2) 히스기야왕의 병이 나음, 바벨론 왕의 사자가 옴 사38:1-39:8
7. 임박한 하나님의 내림 사40:1-48:28
1) 야웨의 내림과 시온의 위로 사40:1-31
2) 민족들에 대한 심문 사41:1-42:4
3) 하나님의 종이 모든 나라에 정의를 세움 사42:5-25
4) 이스라엘이 용서를 받고 바벨론에서 나옴 사43:1-28
5) 고레스를 통하여 시온을 재건함 사44:1-45:13
6) 열국의 회개 사45:14-25
7) 우상들의 파멸과 여호와의 구원 사46:1-13
8) 바벨론에 대한 조롱 사47:1-15
9) 역사와 예언 사48:1-22
8. 이스라엘의 구원 사49:1-55:13
1) 여호와의 종이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음 사49:1-26
2) 회개하지 않는 백성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종 사50:1-11
3) 장차 얻을 구원 사51:1-16
4) 하나님께서 왕이 되심 사51:17-52:15
5)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 사53:1-12
6) 이스라엘의 위안 사54:1-17
7) 풍성한 은혜 사55:1-13
9. 하나님의 공의 사56:1-59:21
1) 충성되고 회개하는 마음을 받으심 사56:1-57:21
2) 진정한 금식과 안식일의 성수 사58:1-14
3) 하나님은 공의로운 구원자 사59:1-21
10. 회복될 시온의 영광 사60:1-66:24
1)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내림 사60:1-22
2) 시온에 대한 구원의 좋은 소식 사61:1-11
3) 메시야 왕국의 백성 사62:1-12
4) 구속의 해 사63:1-6
5) 예언자의 중보적 기도 사63:7-64:12
6) 새 하늘과 새 땅 사65:1-25
7) 만국민이 하나님을 경배함 사66:1-24
예레미야(Jeremiah)
1. 명칭 : (hy:m]r]yI,Jeremiah)「여호와는 떨어뜨리신다(즉, 모태에서 낳아 떨구신다)」
예레미야는 주전 640년 경 예루살렘 동북방 2마일 지점에 있는 아나돗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는 주전 626년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렘1:2). 그때 그는 20세도 안 되는 젊은 나이였으며 내성적이며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부르심을 받은 후 그는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의 환상을 보았는데 이 환상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시야 왕이 새로 발견된 (주전 621년) 율법 책에 의하여 종교 개혁을 시작하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의 거민들과 모든 유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다(렘11:1-17). 그러므로 타락한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였다(렘11:18-12:6). 요시야 왕이 죽은 후 율법은 실행되지 않았고 백성의 생활은 621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다. 희생 제물이나 드리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고작 이었다.
그림설명 / 예레미야상 : 렘브란드가 그린눈물의 예언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예레미야 의 모습. 암스테르담 왕립 미술관 소장
예레미야는 이러한 종교 생활을 꾸중하였으며(렘7:21-26). 성전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으로 그들의 안전과 존속을 망상하는 백성을 책망하였다(렘7:4,10). 이러한 예레미야를 백성들은 죽이려고 하였다. 어리석은 민중은 언제나 의로운 충고를 멸시하고 자멸의 길을 가는 것을 본다.605년에 갈그미스 전쟁 직후(렘46:1-12)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확실히 예언하였다 605년 말, 감금되어 있던 그는 처음 20년간의 예언을 그의 서기(바룩)에게 받아쓰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전에서 백성에게 낭독해 주도록 하였다(렘36:1-10). 후에 여호야김 왕이 이 두루마리를 읽는 것을 듣고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 화롯불에 태워 버렸다(렘36:21-26). 하나님은 또 다시 예레미야에게 타버린 그 두루마리에 기록 된 것을 다시 기록하도록 하셨다. 그 기록이 현재의 본서의 렘1장부터 렘25장을 형성하고 있다. 여호야김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그는 7년 동안 고난과 실망과 여러 가지의 내적 갈등 속에서 신음하였으며 끝내는 영적 신앙의 승리를 맛본 영웅적인 긴 은거 생활을 하였다. 느부갓네살 왕이 587년에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 유다 왕 히스기야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해 줄 것을 요청 하였으나 예레미야는 항복할 것을 종용하였다. 예언한 대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그는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따라 선대를 받았다. 그러나 후에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다가 석방되었다.이스마엘이 총독 그다랴를 죽인 후 예레미야도 바벨론의 복수를 피하여 백성들과 함께 애굽으로 피난 갔다 .(렘40:7-43:7). 그 후의 그의 행적을 알 길이 없으나 애굽에서 죽은 것 같다. 한 마디로 예레미야는 수난의 예언자이었다.
2. 내용과 주요사상
A. 신관
예레미야는 독특한 신 경험을 가진다.그는 많은 고통과 절망이 연속되는 험한 시대에 살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확신하였다. 그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다.
1)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 יםyj' !yIm' rqom;) 렘2:13이라고 부르고 있다. 즉 하나님은 절망하고 약해진 자들을 위로하며 소생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신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을 (토기장이 hm;d;a} ycer]j')렘 18:1">렘18:1-12로 비유하고 있다.즉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모든 사람과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만드시고 움직이시며 사용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였는데 그 까닭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뜻이 아니고 그도 역시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는 한 작은 피조물이요 도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3) (남편 vyai('ish)) 렘3:14과 (아버지 ba; ('ab))렘 3:19">렘3:19로 하나님을 묘사하였다.그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그의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렘31:3의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는 구절이 이것 을 잘 나타낸다.
4) 예레미야는 철저한 유일신론자였다.그는 다른 신들을 (허탄한 것)렘 2:5">렘 2:5 (신 아닌 것) 렘2:11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 렘2:13들로 표현하고 있다.
B. 개인적, 정신적, 신앙 강조
예레미야는 어느 예언자 보다 개인적 신앙을 강조한 예언자이다(렘31:29-30). 그는 또 신앙생활에 있어서 인간의 내면적 상태를 중시하였다.참 신앙은 성전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며(렘7:1-15,렘26:1-24), 가나안이라는 땅도 아니고(렘29:1-14), 할례도 아니며 (렘9:25-26) 오로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렘29: 13) 임을 강조하고 있다.
C. 죄와 회개
예레미야는 가장 강하게 회개를 외친 예언자이다.그가 사용한 회개의 낱말은 ([히] [動] bWv(shub) [그] [名] metanoia(metanoia)) 라는 말인데 돌아오다, 돌이키다. 라고 번역되고 있다. 패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렘3:12)는 말씀과 렘4:1-4,18:11등에서 그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3. 내용 분해
1. 예레미야의 말 렘1:1-25:38
1) 이 책의 표제 렘1:1-3
2) 예레미야의 소명 렘1:4-19
3) 유다와 이스라엘에 관한 초기의 경고 렘2:1-6:30
4) 예루살렘의 그릇된 종교 렘7:1-10:25
5) 예레미야의 언약 지지 렘11:1-12:6
6) 비탄과 경고 렘12:7-13:27
7) 큰 가뭄 렘14:1-15:9
8) 고백과 연설 렘15:10-20:18
9) 왕과 거짓 예언자들에 대한 공박 렘21:1-23:40
10) 두 가지 환상 렘24:1-25:38
2. 예레미야의 전기 렘26:1-45:5
1) 성전 연설과 그 결과 렘26:1-24
2) 바벨론의 멍에 렘27:1-28:17
3) 바벨론 포로에게 보내는 편지 렘29:1-32
4) 미래에 대한 희망 렘30:1-33:26
5)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왕 때의 예레미야의 경험 렘34:1-36:32
6) 예루살렘 함락 전후의 예레미야 렘37:1-39:18
7) 예레미야의 말년 렘40:1-45:5
3. 외국에 대한 예언 렘46:1-51:64
1) 애굽에 대한 예언 렘46:1-28
2) 블레셋에 대한 예언 렘47:1-7
3) 모압에 대한 예언 렘48:1-47
4) 암몬에 대한 예언 렘49:1-6
5) 에돔에 대한 예언 렘49:7-22
6) 다메섹에 대한 예언 렘49:23-27
7) 게달과 하솔에 대한 예언 렘49:28-33
8) 엘람에 대한 예언 렘49:34-39
9) 바벨론에 대한 예언 렘50:1-51:64
4. 역사적 부록 렘52:1-33
1) 시드기야왕의 정치적 요약 렘52:1-3
2) 예루살렘 포위와 함락 렘52:4-27
3)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의 수 렘52:28-30
4) 여호야긴 왕의 석방 렘52:31-33
예레미야 애가(Lamentation)
1. 명칭 : [에-카- hk;yaE The La-mentations of Jeremiah
그림설명 / 쿰란 제4동굴에서 발견된 애가의 단편(4Q Lam) 사해두루마리의 일부. BC 1세기.
본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본서의 첫 글자인 (에카hk;yaE )어찌하여이다.그런데 70인역의 번역자들이 본서의 내용을 따라 (예레미야의 눈물) 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라틴역에서는 (눈물)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예언자 예레미야의 애가)라는 주석을 붙였다.영어 성경이나 한글 성경은 이 라틴어 성경을 따른 것이다.
2. 내용과 주요사상
한글 성경에는 본서가 예레미야서 다음에 있는데 이것은 70인역 역자들이 바꾸어 놓은 순서를 따른 것이지 히브리어 원전의 순서는 아니다. 애가는 히브리인들의 국치일인 압(Ab)월 9일 즉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파괴당한 날에 낭독한 두루마리이다. 본서의 내용이 바로 예루살렘의 파괴와 그 후의 참상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서의 구조적 특징은 제 1장부터 4장까지 각 장이 히브리글자 가나다순으로 각 절의 첫 글자가 되게 지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을 아크로스틱(Acrostic)시형이라고 한다.그래서 각장의 절수가 히브리어의 가나다 글자 수인 22절로 되어있다.제3장은 글자 하나로 세절씩 만들었기 때문에 66절이 되어있다.제5장은 가나다순으로 짓지 않았지만 절수는 22절이다.
본서는 주전 586년에 멸망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참상을 슬퍼하는 시이다.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가 한 때는 모든 나라의 수도 중에서 으뜸가던 예루살렘의 현재의 비참이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죄를 지은 결과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동시에 저자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애절하게 하나님께 구원하여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다.
3. 내용 분해
1. 화려하고 거룩한 예루살렘의 비참을 슬퍼함 애1:1-22
2. 이 비참의 원인 애2:1-22
3.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나 그의 자비를 의지함 애3:1-66
4. 예언자와 제사장들의 죄와 그 결과 애4:1-22
5. 하나님의 은혜와 나라의 회복을 기도함 애5:1-22
에스겔(Ezekil)
1. 명칭 : (la qez]j,y] , Ezekiel)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심」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 부시의 아들이다.597년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여호야긴 왕과 그 모친과 왕비, 그리고 많은 포로를 붙잡아 갔을 때 에스겔도 그 중에 끼어 있었다(왕하24:10-17). 바벨론에 간 그는 [그발] 강가에서 주택을 가지고 가정생활까지 하며 살았는데(겔3:24) 유대인 장로들이 종종 찾아와 상담하는 일이 있었다(겔8:1). 에스겔은 593년 즉 여호야긴이 잡혀간 지 5년째 되는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자가 되었다. 그는 586년 조국의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무참히 무너지는 비극적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본서에 기록된 예언의 대부분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에 전한 말씀이다.본서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민족은 멸망을 스스로 초래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밝히 말하고 있다.
그림설명/에스겔서의 여러 장면 묘사된 노아이유 성서 10세기
2. 내용과 주요사상
A. 신관
에스겔은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바벨론과 같은 이방 땅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민족과 국토의 영역을 넘어서 다른 민족과 국토에도 그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의 신관은 민족신 관념을 넘어선 것이다. 에스겔은 겔1:26-28의 말씀에서 여호와는 압도적으로 위대하시고 거룩하시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 하였다. 이 신관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근재성을 강조한 것과 대조가 되면서도 이 둘은 이스라엘 민족의 훌륭한 신관을 잘 나타낸 것이다.]
B. 주체적 신앙 강조
에스겔은 개인의 중요성과 책임을 강조 하였다.당시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고생하는 유대 민족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도 함락되어 완전히 나라를 잃으면 이제는 조국에 돌아갈 희망을 잃게 됨으로 그들의 멸망은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비통해 하였다.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에스겔은 신앙의 주체성, 개인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범죄 하는 그 영혼은 죽을 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 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악인의 죄도 자기에 게로 돌아가리라(겔18:20).
C. 신생의 사상
본서 겔37장에 나오는 해골의 골짜기의 기사는 유명한 말씀이다.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뼈가 살아 움직이는 환상을 보았다. 에스겔은 개인이나 민족에게 그러한 신생의 미래가 있을 것을 예언함으로써 그들을 격려하며 희망을 불어 넣은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선민에게 신생의 기쁨을 주실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축복은 진정한 회개가 있은 후에야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않고 가르치고 있다(겔36:25). 본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두드러진 말씀은 (그들이 나를 여호와 인줄 알리라)는 말씀이다. 무려 65회나 사용하고 있다.
3. 내용 분해
1. 유다의 몰락 겔1:1-24:27
1) 에스겔이 활약한 곳과 때 겔1:1-3
2) 네 생물의 환상 겔1:4-28
3) 두루마리의 환상 겔2:1-3:27
4) 예루살렘은 적에게 포위되리라 겔4:1-5:17
5) 이스라엘의 죄 겔6:1-14
6) 끝이 가까왔다 겔7:1-27
7) 예루살렘의 죄 겔8:1-18
8) 내릴 벌 겔9:1-11
9) 주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다 겔10:1-22
10) 심판과 회복 겔11:1-25
11) 이스라엘 멸망을 상징으로 보이다 겔12:1-28
12) 거짓 선지자들 겔13:1-23
13) 우상 숭배 겔14:1-11
14)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겔14:12-23
15) 포도나무의 비유 겔15:1-8
16) 부끄러운 과거 겔16:1-63
17) 도수리와 포도나무 겔17:1-24
18) 저마다 자기 죄로 죽는다 겔18:1-32
19) 방백들의 죽음을 애도하라 겔19:1-14
20) 내 이름을 욕되지 않게 하라 겔20:1-49
21) 하나님의 칼 겔21:1-32
22) 예루살렘의 악 겔22:1-31
23) 두 음녀,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겔23:1-49
24) 예루살렘은 녹슨 솟이다 겔24:1-27
2. 여러 외국에 대한 예언 겔25:1-32:32
1) 이웃 네 나라에 대한 예언 겔25:1-17
(1) 암몬에 대하여 겔25:1-7
(2) 모압에 대하여 겔25:8-11
(3) 에돔에 대하여 겔25:12-14
(4) 블레셋에 대하여 겔25:15-17
2) 두로에 대한 예언 겔26:1-21
3) 두로에 대한 애가 겔27:1-36
4) 두로와 시돈에 대한 예언 겔28:1-26
5) 애굽에 대한 예언 겔29:1-21
6) 애굽에 임박한 운명 겔30:1-26
7) 애굽의 멸망 겔31:1-18
8) 바로와 애굽에 대한 애도 겔32:1-32
3. 이스라엘의 회복 겔33:1-39:29
1) 책임에 대한 예언 겔33:1-33
2) 이스라엘의 목자와 양 겔34:1-31
3) 세일산에 대한 예언 겔35:1-15
4) 이스라엘의 산들과 백성들의 회복 겔36:1-38
5) 마른 뼈의 환상 겔37:1-28
6) 이방인들에 대한 최후의 승리 겔38:1-39:29
4. 회복된 나라에 관한 환상 겔40:1-48:35
1) 성전의 구조 겔40:1-44:3
2) 제사직 겔44:4-45:17
3) 성전의 의식 겔45:18-46:24
4) 거룩한 땅 겔47:1-48:35
다니엘(Daniel)
1. 인간 다니엘 (laEniD; ,Danihvl, Daniel)「하나님은 나의 심판자」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왕족과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다가 바벨론 왕국에서 일하게 하였다. 그들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라고 하는 영리하고 잘생긴 네 소년이 있었다. 한 관리가 그들의 이름을 벧드사살(다니엘), 사드락(하나냐), 메삭(미사엘), 아벳느고(아사랴)의 모든 자보다 지혜와 총명이 10배나 뛰어났다.
느브갓네살 왕이 이상한 꿈 (머리는 정금, 가슴과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는 철, 발은 철과 진흙으로 된 신상)을 해석한 일로 인하여 다니엘은 대 바벨론제국의 총리가 되었고 그 친구들은 그의 보좌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사람의 시기를 받아 모함에 빠졌다. 세 친구는 뜨거운 불속에 던져졌고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 주셨다. 그들의 신실한 신앙 때문이었다. 본서는 그러한 신앙의 생활의 용사와 그러한 자들을 축복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다.
2. 다니엘서의 성격
한글 성경에는 다니엘서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같이 예언서에 넣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전에는 성문서집에 넣어 있다. 다니엘은 예언자의 성품은 가지고 있었으나 예언자의 업무를 수행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바벨론제국의 120방백을 다스리는 정치가(2:48)였고 세 총리 중 한 사람이었다(6:1-2). 다른 예언자들이 즐겨 사용한(여호와께서 가라사대)(나 여호와가 말하노라)(여호와의 말씀이니라)하는 말씀을 본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본서의 저자와 저작 연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견은 다니엘이 저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3. 내용과 주요사상
본서는 1-6장과 7-12장의 두 부분으로 내용을 구분해 볼 수 있다.
제 1부(1-6장)의 내용은 다니엘과 그의 세친구들이 어떻게 귀한 몸들이 되었으며 또 질투 속에서 박해를 받고도 신앙의 절개를 지켜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제 2부(7-12장)는 묵시 문학의 대표적인 것으로 네 개의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환상을 통하여 땅위의 인간들의 왕국들은 한때는 흥하나 끝내는 멸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존속할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본서의 주요사상(교훈)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구약 성경의 어느 책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분명하고 강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 사상은 신약과 깊이 관련되게 된다. 지상의 왕국의 불완전함과 취약함을 말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영존성과 지상 왕국을 심판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2:44,4:34,7:14). 특히 다니엘의 하나님 나라 사상은 더욱 종말론 적이라는 데에서 다른 예언자 보다 특이하다.
둘째는 부활사상이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받을 자도 있을 것(단 12:2)을 밝히 말하고 있다.
*** 느브갓네살 왕이 꿈꾼 네 나라에 대한 해석이 세 가지가 있다.***
A. 1. 바벨론 2. 메데-파사 3. 희랍 4. 알렉산더의 후계자들
B. 1. 바벨론 2. 메데 3. 파사 4. 희랍
C. 1. 바벨론 2. 메데-파사 3. 희랍 4. 로마
4. 내용 분해
1. 다니엘의 세 친구 1:1-6:28
1) 다니엘과 세 친구의 결백한 삶과 축복 1:1-21
2) 다니엘왕의 꿈을 해석함 2:1-49
3) 세 친구가 풀무 불에 들어감 3:1-30
4) 느브갓네살 왕의 두 번째 꿈의 해석과 성취 4:1-37
5) 벨사살 왕과 그의 죽음 5:1-31
6)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감 6:1-28
2. 땅의 왕국들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환상 7:1-12:13
1) 네 짐승과 인자의 함성 7:1-28
2) 두 뿔 가진 수양과 숫염소의 환상 8:1-27
3) 백성의 죄를 위한 다니엘의 기도 9:1-27
4) 미래의 심판과 부활에 대한 묵시를 받음 10:1-12:13
호세아(Hosea)
1. 명칭 : ( ['vE/h Hoshea) @Wshe(Hosee)「구원」
북 왕국 이스라엘의 죄를 꾸짖고 그들의 회개를 외친 이스라엘 최대의 예언자인 호세아는 브에리의 아들이요(호1:1) 북 왕국의 사람이다. 구원 이라는 뜻을 가진 호세아라는 이름은 여호수아의 본명이기도 하며(민 13:8), 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 왕의 이름이기도 하다(왕하 15:30). 예언자 호세아에 대해선 본서 외에는 다른 자료가 없어 그의 사회적 지휘나 가정적 배경을 잘 알 수가 없다. 높은 지위에 있던 제사장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호7:4에 근거하여 빵을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매우 음탕한 아내와 살면서 세 아들 딸을 두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매우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호1:4-5, 호1:6-7, 호1:8-9. 세 자녀까지 둔 고멜은 타락하여 정부와 함께 사는 것을 호세아는 그래도 사랑하여 정부에게 돈을 주고 고멜을 데려왔다. 성경학자들 사이에는 이것이 사실인가 비유인가를 두고 논란 한다. 호세아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여로보암 2세의 말년이었다.
그림설명 / 호세아서 단편 : 주석이 달린 호세아서 인용구 (2:8-9,10-14).BC 1세기 후 반의 것으로 쿰란 제 4동굴에서 발견되었다.
2. 내용과 주요사상
A. 신관
본서의 교육의 핵심은 호세아와 음탕한 아내 고멜과의 결혼생활에 두고 있다.즉 호세아는 절망적인 비참한 부부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개인적인 고뇌는 가정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의 강함과 불변성을 깨달았다. (호3:1)말씀은 이것을 잘 나타내 준다. 호세아의 최대의 공헌은 이스라엘 종교에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의 관념을 가장 분명하게 밝힌 일이다.
B. 세 가지 죄악
호세아는 특별히 세 가지 죄악을 강조하여 지적하고 있다. 1) 우상 숭배다.이스라엘 민족이 마치 바알을 섬기듯 여호와를 예배하고 장식과 연락이 많고 신령과 진정은 없었다. 2) 계약 파괴다.부부의 언약을 파괴하는 일이 악하고 부도덕한 일인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하는 것은 가장 큰 죄악이며 그러한 죄를 범한 민족은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3)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다.어리석은 민중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도 타락 하였으며 그들의 죄악과 책임은 더 큰 것이었다(호4:9).
3. 내용 분해
1. 호세아의 가정생활 호1:1-3:5
1) 호세아의 아내와 자녀 호1:1-9
2) 이스라엘의 회복 호1:10-2:1
3) 회개와 재 결혼 호2:2-23
4) 음행한 아내를 값을 주고 데려옴 호3:1-5
2. 이스라엘의 타락 호4:1-13:16
1) 영적 불 충성 호4:1-7:7
2) 정치적 불충성과 불안정 호7:8-10:15
3) 하나님의 사랑 호11:1-11
4) 에브라임의 죄악과 운명 호11:12-13:16
5) 회개와 축복 호14:1-
호세아(Hosea)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죄, 심판 그리고 사랑 -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돈에 거쳐 넘어지리라 (호14:9,호2:14-16,6:1-4,8,9,14:4-8)" 의심할 바 없이 이 말씀은 호세아 자신이 쓴 선지서의 결론이다. 유다 왕국에서의 그의 사역 기간은 70년 이상이다. 본서를 통해 우리는 그의 사역 기간 동안에 행했던 많은 설교의 집대성을 대할 수 있다. 호세아는 본서를 완결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본서가 16선지서 중 이러한 말씀을 갖는 유일한 선지서라는 사실 때문에 훨씬 더 돋보인다. 선지자의 의도가 주목할 만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가 지혜가 있느냐?" 그리고 "누가 총명이 있느냐?"는 것은 이 글이 어떤 조건하에서 고찰되어야 하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지혜와 총명이라는 말들은 간단하면서도 깊은 뜻을 지닌 말들이다. 하지만 선지자가 사용했을 때 그 말들에는 보다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지혜는 참 빛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총명은 빛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받은 자가 알 것이다. 이 조건을 제시하는 질문 다음에는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라는 인상적인 선언이 따른다. "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길, 즉 행위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탄탄대로를 일컫는 말이다. 선지자는 이 길이 정직하다고 선언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자신이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해석하고 예언하였던 하나님의 통치와 활동의 모든 결과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 호세아는 하나님의 도가 정직하다는 이 진리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보여 주었다. 첫째는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도는 변함이 없다. 또 언제나 정직하다. 따라서 그 도에 순종하는 자들은 그 도에 행할 것이다. 즉 여정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그 도에 순종치 않는 자들은 같은 도에 거쳐 넘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물음과 선언에 대한 답으로서,"그렇다면 본 호세아서에 정직한 것으로 선포된 하나님의 도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그 답을 70년 이상 동안 호세아가 선포한 말씀의 참 의미를 깨달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 이 질문을 염두에 두고 본서를 읽을 때,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의 명확한 계시, 죄에 대한 심판에 있어서 그의 활동에 관한 분명한 단언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의 사랑의 호소에 대한 언명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죄와 심판과 사랑이라는 세 단어가 하나의 선상에 놓이게 된다. 이것들은,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백성 가운데 있으며 또한 그들은 위해 있는 하나님의 도에 입각해 취급될 수 있는 말이다. 즉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 그의 심판 활동, 그리고 그의 사랑의 호소이다. 이 세 가지는 본 선지서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이 세 가지는 서로 결합하여, 선지자가 정직하다고 선포한 하나님의 도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그렇다면, 호세아는 죄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첫째는 많은 특권을 가진 백성의 범죄는 인간이 범하는 죄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러운 죄라는 것이다. 그것이 유다의 죄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에게 사랑을 물 붓듯 쏟으셨다. 그런데 그들은 그 가상에 배신으로 답하였다. 이 선지서에서 죄가 통속적인 형태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음은 주목할 만하다. 죄는 단지 도덕적이며 영적인 의미로만 언급되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죄는 사랑에 대한 배신의 죄이다. 유다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사랑하시고 찾으시며 구속하여 주신 민족의 죄였다. 그들은 그들이 행할 바에 대해 하나님께 가르침 받은 백성이었고, 하나님의 팔에 안긴 백성이었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인에 대한 사랑 이상의 것이었다. 이런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의 계약에 불충실했다.
호세아는 자신의 찢긴 심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웠단. 그의 가정생활은 파괴되었으며,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고멜의 배신 때문에 참을 수 없는 번민에 시달려야 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죄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죄를 묘사하는 데 간통, 행음이라는 자극적이며 통속적인 단어를 채택하였다. 간통죄는 불법적인 관계에서 만족을 추구하는 범죄이다. 이는 이 백성들이 범한 죄였다. 행음은 더 나쁜 것이다. 이는 돈으로 몸을 팔고 사는 죄이다. 이 죄 역시 유다가 범한 죄었다. 선지자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셨으며 사랑하셨다. 또 그들에게 행할 바를 교훈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른 신을 좇았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계시는 그러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일 것이다. 첫째는 그러한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거룩함은 그러한 죄를 결코 너그럽게 봐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와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묘사는 생생하고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 백성들에 있어 사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업신여겼다. 따라서 그들은 그의 사랑을 훼손하였다. 하나님은 부드럽고 아름다운 언어로 그들에게 말씀 하셨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자신의 목적을 밝히셨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돌이켜, 그의 사랑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음녀와 간부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고통당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눈감아 준다거나, 죄와 타협하는 것이란 있을 수 없었다. 지혜가 있는 자는 깨달을 것이고, 총명한 자는 알 것이다. 하나님의 도는 정직하다. 따라서 언제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특권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우리는 흔히 대화 속에서 작은 죄 또는 큰 죄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구분은 전혀 근거가 없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보면 이는 사실이다. 호세아처럼 민족적인 견지에서 보면 특권을 가진 민족의 죄는 특권을 가지지 못한 민족의 죄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빛을 누리는 데에는 언제나 책임이 뒤따른다. 결국 쉽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치 못할 것이라면, 우리는 영국에서 태어나는 것보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위대한 선지서는 고멜이 호세아를 대하듯 인간이 하나님을 대하면 하나님께서 괴로워하신다는 점을 탄식과 한숨으로 교훈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두 번이나 말했듯이, 죄와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너그럽게 눈감아 줌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통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뿐만 아니라 그의 필연적인 심판 행위에 대한 것까지도 명백히 밝혀졌음을 알게 된다. 이 경우에 있어서 심판이란 말은 공의 속의 징벌적인 요소를 지적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 선지서 전반에 걸쳐 진노의 호통으로 울려 퍼지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이 선지서의 빛 가운데서, 그리고 실로 성경 전체의 계시의 빛 가운데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결코 변덕스러운 것이 아님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징벌은 오히려 죄 자체가 가져오는, 취소할 수 없는 결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곧 도덕적 세계를 조성 하사 우리가 그러한 결과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게 하셨다. 죄는 언제나 심판에 이른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이는 바로 사람이 스스로 심은 것을 거둔다는 것을 명백히 의미한다.
하나님의 통치에 있어 형벌은 불가피한 것이며 죄의 경로 속에 반드시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의 불가항력적인 강제성이 죄에 대해 최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호세아에게서 들어 인식하였지만, 이외에도 알아야 할 것이 상당히 많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사실로부터 피할 길은 없다.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가리이까?"라고 시편 기자가 물었을 때, 그 정확한 답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선언 가운데에서 명백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다. 또 그의 통치가 완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도 없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사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간구하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이요, 옳은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의 왕권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반역할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의 강력한 방패에 부딪혀 깨질 수 있다. 또 하나님의 피난처로 피 하여, 모든 해로부터 보호받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자신의 통치를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생각, 그의 선택, 그리고 그의 철학을 그 통치의 궁극적인 결과에까지 성취하지 않을 수 없게 하신다. 한 전사를 바라보고 "누구뇨"라고 물었던 이사야는 그 질문에 대해 스스로 대답하면서 매우 주목할 만한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사63:1). 그 전사는 포도즙 틀을 밟고 있었다. 즉, 포도를 짜서 그것의 특성을 드러내게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늘 하고 계시며 오늘날 전 세계에 이 일을 행하고 계시다. 따라서 인간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통치하에서 자신의 철학과 선택을 그 통치의 궁극적인 결과에 까지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벌로서의 심판은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니다. 이는 인간이 자발적으로 떠맡은 것이다. 그 심판은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의지를 망라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도덕적 세계의 원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벌칙은 의에 대한 축복만큼이나 결정적인 것이다. "여호와와 도는 정직하니."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에게 사랑의 호소를 하신다는 가장 중대한 사실에 접하게 된다. 이는 실로 호세아가 전한 메시지의 가장 뚜렷한 특색을 이루는 내용인 것이다. 그것은 시편의 음악을 끊임없이 울린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호세아의 비극을 통해 그에게 나타났다. 고멜은 그를 속였고, 그에게 불충실하였으며 그를 버렸다. 그녀가 허망한 연인에게로 가 버렸을 때, 그의 마음은 크게 상처를 입었다. 호세아서의 이야기는 그녀의 연인들이 그녀를 버렸고, 그녀는 종으로 전락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때 호세아는 그녀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그녀를 노예로서 사야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아골 골짜기에 있는 그녀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 주었다. 아골(r/k[;.akor)이라는 단어는 고통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통의 골짜기에서 소망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이 개인적인 뼈아픈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영적인 간음과 매음의 죄를 범한 민족에게 그가 무엇을 준비하고 계신가를 보이셨다. 고통의 골짜기에 소망의 문이 열렸다. 이는 모든 인간의 지각을 뛰어 넘는 사랑의 노래이다. 오직 호세아만이 그가 순종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명해진 일을 수행함으로써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사랑의 메시지를 다음의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나니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 큰 외침은 자기 백성의 반역으로 인해 고통 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극도의 경멸 속에 처해 있던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은 떡, 즉 설구워져 흐물거리는 떡, 한 쪽은 덜 익었고, 다른 한쪽은 재가 되어 버린 떡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중심의 외침을 듣는다.
사진설명 : 나라 혹은 민족은 그 심은 것을 거둔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그에게 돌아온다면 그 땅에 다시 번영을 가져다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유대 산지에서 추수한 곡식을 타작하고 있는 장면.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11:8)
이에 대한 답변은 바로 다음의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14:4).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중심에서 나온 변함없는 말씀을 듣게 된다.
내가 이 설교의 본문으로 이러한 말씀들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다른 구절들 즉 죄의 특성과 피할 수 없는 심판을 나타내는 엄하고 두려운 경고의 말씀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끊임없이 사랑의 노래가 들려오는 이 구절을 택하였다.
이 구절은 호세아의 위대한 메시지에 있어 불변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 궁극적인 사상으로 인해 이에 관계된 말씀을 다른 말씀들보다 강조함으로써 본서 전체의 가치를 매우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우리가 사랑의 노래만 듣고 심판의 선포는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심판만을 강조하고 사랑의 노래는 잊어버린다면, 이 또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요컨대 사랑에 대한 배신이야말로 가장 가증스러운 죄악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고통을 준다. 또한 죄인 자신도 파멸시킨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를 눈감아 주시기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회복시키실 수 있고, 또 회복시키신다. "누가 지혜가 있는가?" 그는 깨달을 것이다. "누가 총명이 있는가?" 그는 알 것이다.
요엘(Joel)
1. 명칭 : (lae/y, Joel) 「여호와는 그의 하나님」
이 예언자에 대하여 참고가 될 자료를 본서 외에서 찾아볼 수 없다.그는 브두엘의 아들인데 요엘이라는 이름의 뜻 (야훼는 하나님이시다)으로 보아 그의 부모는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요엘의 연대에 관해서 학자들 사이에 9세기로 부터 2세기까지 큰 연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요엘의 연대를 요아스 왕(836-797)시대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포로기 전이다. 그 이유는 본서가 호세아서와 아모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은 옛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아모스, 호세아와 같이 초기 예언자로 간주 했다는 증거다.또 본서의 문체가 포로기 전의 형식이며 또 왕에 대한 말이 없고 장로들과 제사장만 언급되어 있는 것은 요아스 왕이 7살에 왕위에 오른 것(왕하 11:21)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간주 된다.그러므로 본서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1장과 2장의 말씀이 미래에 대한 일에 대한 예언인가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사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인가 하는 문제다.
2. 내용과 주요사상
가공할 만큼 많은 메뚜기 떼가 모든 곡식과 초목을 먹어 버리고 땅을 초토화 하는 큰 재앙이 유다에 일어났다. 요엘은 이 사건에서 자연적인 재난과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도덕적, 생활 사이에 어떠한 깊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즉 자연적 재난 속에 종교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였다. 요엘은 하나님께서 범죄 한 민족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메뚜기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하여 요엘은 이 재앙을 보고서 회개하라고 호소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 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욜2:12)라고 외쳤다. 그러니 요엘의 말씀은 희망의 예언이기도 하였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가뭄과 메뚜기 떼로 잊어버린 것보다 더 많이 주실 것이라고 예언 하였다 (욜2:19, 욜2:25-26).
그림설명 / 메뚜기 재앙: 성서의 사람들의 삽화로 이집트 전역이 메뚜기 떼로 가득 찼다
3. 내용 분해
1. 메뚜기의 습격과 가뭄 및 그 회복 욜1:1-2:27
1) 메뚜기의 습격과 가뭄 욜1:1-20
2) 여호와의 날의 임박과 메뚜기의 습격 욜2:1-11
3) 민족의 회개와 권고 욜2:12-17
4) 재앙의 제거와 풍년의 약속 욜2:18-27
2. 장래의 축복과 외국들의 심판 욜2:28-3:21
1) 성신을 부어주심 욜2:28-29
2) 여호와의 날의 징조 욜2:30-32
3)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이유 욜3:1-3
4) 최후의 결전과 심판 욜3:9-17
5) 유다가 받을 축복 욜3:18-21
요엘(Joel)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여호와의 날 -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큰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 욜 1:15(.욜1:14,15,2:1,11-14,28:32,3:14)"
요엘이 예언한 연대를 명백하게 확정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요엘서 본문에 의하면 그는 가장 초기의 선지자이거나 아니면 가장 후기에 속한 선지자인 것 같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된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가 가장 초기에 속한 선지자인 것 같다. 그러므로 요엘서를 12소선지서 중에서 가장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요엘의 메시지의 취지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표현 속에 나타나 있다. 이 말은 요엘서에서 다섯 번 나타나지만 세 가지 양상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양상은 요엘과 그 당시의 사람들이 곧 겪게 될 일들에 대한 그의 이상이다. 메뚜기의 재앙이 실제로 그 땅을 엄습했으며 따라서 그의 메시지의 앞부분이 보여준 대로 그 재앙으로 인하여 그 땅이 황무하게 되었다.
두 번째 양상은, 백성들을 위협하고 있었던 중대한 심판인 침략군의 습격에 관하여 그가 깨달은 일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메뚜기 재앙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이 일에 대한 설명에 이어 별개의 사실이 삽입되고 있다. 요엘은 그 가운데서 성령이 부어지는 날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세 번째 양상은 장래에 있을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인데, 이때는 하나님의 주권이 완전히 확립되는 마지막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그는 모든 메시지 안에서 여호와의 활동하심을 보았다.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결과들을 둘러보면서, 또한 임박한 침략을 내다보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훗날에 있게 될
은혜에 관해서 볼 때 요엘 선지자의 가르침 전반에 걸쳐, 은혜가 통치의 기조라는 사실이 어디서나 나타난다. 그는 은혜를, 심판을 중단시키는 활동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 메뚜기 재앙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임박한 심판을 선포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옷을 찢기 보다는 마음을 찢으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였던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심판을 거친 후 있게 될 최후의 승리를 묘사함에 있어서, 파괴를 기뻐하는 자의 승리가 아닌 평화와 아름다움을 베푸시는 자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 통치의 결과 역시 은혜스럽고 자애로우며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다.
통치와 은혜라고 하는 이 원리들은 먼저 메뚜기 재앙의 경우에서 예시되었다. 그러한 재앙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것이 쓰라린 재난이라고 말하기 쉽다. 즉 그것을 예견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메뚜기가 그 나라를 휩쓸어 버리자, 요엘 선지자가 선포하고 있듯이 그 땅에는 술꾼들이 마실 포도주도 성전에 바칠 제물도 없어졌으며, 심지어는 사람들이 먹을 양식조차 부족할 정도로 그 땅이 황무하게 되었다. 백성들에게 요엘이 전한 메시지는 이 예견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던 재앙이 오직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세대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세대였다. 따라서 요엘은 그 황폐한 가운데 서서 사람들이 자연 현상으로 보려고 하는 그 사건이 사실상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위였다는 사실을 선포하였다. 그러므로 메뚜기 재앙은 "여호와의 날"이었다. 그는 늙은 자들과 취하는 자들, 그 땅의 소유자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그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메뚜기 재앙이 또한 임박한 군대의 침공을 비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말했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 하신다"라고 선포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그들에게 침략군이 하나님의 지배 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마지막에 있을 일들에 살펴볼 때 분명히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도를 알리시기 위해서 심판 가운데 앞으로 행하시고자 하는 것에 대한 예언하였다. 이와 같이 요엘은 임박한 일을 보건, 먼 훗날의 일을 보건 그 일들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을 역설하였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을 말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명쾌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사실을 예시하였다. 메뚜기 재앙을 당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회개를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은혜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는 임박한 이방의 침략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 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2:12,13).
이와 같이 인간이 마음을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설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심판에서 돌이키시리라고 선포된 이 메시지에서 알 수 있듯이 통치의 근본적인 의도는 은혜임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진노하기를 망설이시는 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마지막에 있게 될 일 앞에 설 때조차도 은혜는 명백하게 나타날 것이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2:29).
이것은 바로 크고 두려운 최종적인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이다. 그러나 그때조차 하나님의 은혜는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2:32).
다시 요엘의 증거를 유의하여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한 계획에 관한 계시를 접하게 된다. 앞을 내다봄에 있어서 그는 당시의 시대상황 뿐 아니라 곧이어 있게 될 일들까지 초월한, 최종적인 심판의 날에 있게 될 일을 내다보았다. 즉 그는 시기를 정할 수는 없으나 은혜롭고도 놀라운 축복으로 가득 찬 한 시대를 내다보았다. 인간이 처하게 될 임박한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길이 약속되어졌다. 그때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그 시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2:28) 물론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강림 일에 베드로 사도가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행2:16)라고 선포한 것을 통해서 이 주목할 만한 말씀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요엘은 대강 보았기에 완전하게 묘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정확하게 그 일을 묘사하였다. "그 후에"라는 말은 곧 그가 그 일이 일어날 때가 역사 속의 어느 시점이 될지를 몰랐다는 점을 보여 준다. 우리는 그 일이 적어도 그가 예언한 때로 부터 5세기가 지난 이후에야 일어났음을 잘 알고 있다. 이 예언은 일개 히브리 선지자의 예언으로서는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성령의 부어짐이 계급에 구애됨이 없이, 즉 왕, 제사장, 치리자, 방백 등 특권층 뿐 만 아니라 노예 계층에도 있게 될 것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시대를 지나서 하나님의 통치의 또 다른 활동들을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시대가 끝나고 마지막에 있게 될 일이 시작됨을 보여 주었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2:30,31). 이것은 성령시대에 대한 표적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그 시대가 가까왔으며 최종적인 심판의 날이 곧 도래하게 됨을 보여 주는 표적일 뿐이다. 이와 같이 현재의 일과 임박한 일, 그리고 먼 훗날의 일을 바라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이상과 목적이 최종적인 성취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드러나게 되었다.
요엘의 추론에 따를 때, 우리의 시대에도 그 메시지를 성립시켜 주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첫째는 '여호와의 날'이 항상 현재적이며 항상 가까워 오고 있다는 중대한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여호와의 날" 항상 있을 것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는 반면 지금이 "여호와의 날"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미래의 '여호와의 날'만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속에서 활동하신다. 지금은 인간의 날이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놀랄만한 진보의 시대에 살고 있다. 발명이 끊임없이 증대되었으며 인간의 문화는 결코 전에는 도달할 수 없었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 결과 그 모든 것들을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양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이 널러 신격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결과는 인간 생활의 가장 중요하고 귀한 모든 부면에 불행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요엘의 증거는 지금 이 시대가 외관적으로 볼 때 인간의 날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역시 "여호와의 날"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활동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지배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사야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사33:14) 모든 인간의 일들은 그 불과 그 타는 것 가운데서 진행되어 나가는 것이다. 누가 그 안에 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이 나타나고 있다.
오직 의롭고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사33:15). 인간의 어떤 활동도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많은 논제 가운데서 오직 의에 관한 것들만이 영원하다. 모든 시대는 하나님께서 최종적인 활동들을 통해서 자신이 뜻하시는 목적들을 여실히 나타내시게 될 마지막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가 여러 번 살펴보았듯이, 일어나는 모든 사건 가운데는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가 들여 있다.
각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들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성령이 부어진 바 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철저히 자각토록 하는 메시지가 된다. 우리의 직임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도록 그래서 그의 징벌하시는 심판에서 구원을 얻도록 항상 촉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엘의 예언의 전 메시지는 다른 모든 선지자들의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실제적인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시대가 다 "여호와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도록 우리를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서 킹슬리(Kingsley)의 다음 시를 상고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이 시는 진리의 능력 안에서 살 것을 교훈하고 있다.
주의 날이 가까웠도다. 가까 왔도다!
그로 인하여 하늘엔 폭풍이 감도는 도다.
열방은 금더미에 앉아 주려 잠들며
모든 꿈꾸는 자들을 탄식하고 있도다.
새벽이 오기 전에 밤은 더욱 캄캄한 법이니.
고통이 극심하게 되면 해산하게 되듯이
주의 날이 가까 왔도다.
모이라, 모이라, 자유와 자비와 진리여
그 하나님의 사자들이여.
오라, 이 땅이 노쇠하고 두려움에 잠겼음이라.
와서 이 땅을 다시 새롭게 하라.
지혜, 자기희생, 용기, 사랑이
다급히 전장으로 내달아
주의 날이 가까 왔도다.
모이라, 모이라, 기근, 재앙, 전쟁,
게으름, 편협, 악정이여,
그 지옥의 개들이여,
와서 함정에 떨어지라.
배금주의자, 패역한 우상숭배자, 악한은
전장으로, 무덤으로 기어가니
이제 주의 날이 가까 왔도다.
모든 시대를 주장하시는 주께서 여기 계시매
금을 좇다 망한 시대를 위하여
앉아서 탄식할 이 누구겠는가.
온갖 고난을 이긴 진실한 자들은
하나님의 승리를 기뻐하고
모든 금을 좇던 세대는 놋의 세대가 되었네.
온유한 성도들은 철저한 심판을 보게 되리니
이제 주의 날이 가까왔도다.
아모스(Amos)
1. 명칭 : ('s/m[; ,Amos) 「짐 지는 자, 짐」
그림설명 / 아모스의 성서사본 장식 문자에 표현되어 있는 아모스 12세기.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여로보암 2세의 말년이었다. 이때는 북 왕국의 전성시대요 평화롭고 번영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정치, 경제, 종교 각 방면의 지도층은 불의하고 종교는 형식화되고 미신화 하였다. 선민이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허망한 방심과 입으로만 믿고 행동은 먼 상태였다. 이기심, 탐욕, 부도덕, 가난한 자들에 대한 억압 등, 부정의가 판을 쳤으며 외국의 침략이 없는 평화시대의 번영의 단 꿀은 특권층이 독점하고 가난한 자들은 아들과 딸을 팔아야 하는 판국이었다. 순박하고 정직한 아모스는 가난한 농민이요 목자로 고난을 체험해 잘 알고 있는 아모스는 그 예민한 도덕적 통찰력과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죄로 인하여 장차 큰 벌을 받을 민족을 경고하게 된 것이다.이스라엘이 임박한 멸망의 환상들을 보고 가서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그는 유다를 떠나 북 왕국의 종교적 중심지인 벧엘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2. 내용과 주요사상
A. 신관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어느 예언자보다도 명확하게 가르친 예언자가 아모스이다. 하나님은 부도덕, 불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강하게 가르치고 있다.하나님은 정치, 경제, 도덕, 종교 등 모든 삶에 있어서 정의의 질서가 지켜질 것을 무엇보다도 먼저 원하신다는 것과 만일 정의의 법을 어기면 반드시 벌을 주신다고 가르친다.(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지로다 (암5:24). (여호와의 지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암3:6).
B. 예배관
아모스의 가장 혁명적이고도 독특한 사상은 그의 예배관이다.하나님은 희생제물, 절기, 노래, 형식적 기도 등 일체의 종교의식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고 폭탄적 선언을 한다. 율법주의적인 유대 민족의 생활에 있어서 이 관념은 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모스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였다(암7:12-13). 여호와의 날에 범죄 하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의 나라들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이 온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날이 온 다는 것을 믿었다. 이 헛된 꿈을 아모스는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다(암5:18). 범죄 하는 민족에게는 희망과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3. 내용 분해
1.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암1:1-2:16
1)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을 벌하심 암1:1-15
2) 모압, 유다, 이스라엘을 벌하심 암2:1-16
2. 이스라엘의 죄와 벌 암3:1-6:14
1) 선민에 상응하는 심판 암3:1-15
2) 여러 차례의 징계 암4:1-13
3) 제사보다 정의를 실천할 것 암5:1-27
4) 불의하게 사치한 자들이 받을 벌 암6:1-14
3. 아모스가 본 환상들 암 7:1-9:15
1) 황충, 가뭄, 다림줄의 환상 암7:1-17
2) 여름 실과의 환상, 임박한 운명 암8:1-14
3) 임박한 최후 심판과 남은 자 암9:1-15
아모스(Amos)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하나님 말씀에 대한 기근 -
"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암 8:11-14,참조. 참1:1,2,7:12-16,8:1-2).
기라성같이 늘어선 히브리 선지자들 중에 아모스는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찬란한 영광과 미덕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그가 아마샤에게 한 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암7:14). 여기서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는 말은 그가 선지자의 학교에서 공부한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한다면 아모스는 평신도였다. 그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였다. 그는 아마 남 왕국 유다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드고아 출신이었다. 그는 실로 가장 고상하고 진실한 의미에서의 선지자였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서 다음 구절을 들 수 있다.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7:15)
이처럼 아모스는,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여호와의 선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메시지에서는 흙냄새와 가축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 그는 말을 할 때 자신의 직업에서 비유를 끌어다 썼다. 그는 솔직했으며 인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사마리아 궁에 가서 그곳의 사람들을 향하여 암소들이라고 비난한 사실에서 그러한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단지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어라"고만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때때로 이러한 그의 특징은 쉽게 간과되어 버리기도 한다.
사진설명 : 나무판에 못을 박아 만든 전통적인 타작 썰매
아모스의 방법을 답습한 선지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드고아를 출발하면서 전파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의심할 바 없이 곧바로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주변 국가들을 책망하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맨 처음에 그는 북동쪽 너머에 있는 다메섹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 후, 눈길을 남서쪽으로 돌려 가사에 대해 다루었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두로를 책망하고 나서 남동쪽의 에돔을 향해 외쳤다. 또한 그는 동쪽에 있는 암몬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으며 그 다음 남동쪽의 모압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곧이어 그는 유다에 대해 말하고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 관해 다루는데 이제까지의 모든 메시지는 바로 이를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그는 다메섹의 잔인함과 가사와 두로에서 성행하던 노예매매 및 에돔의 용서할 줄 모르는 비정함, 그리고 물욕이 깔려 있는 암몬의 잔학성과 타민족에 대한 모압의 맹렬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증오에 대해 말하였다. 그는 유다로 가서 그 나라가 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한 것을 책망하였다. 마침내 그는 이스라엘을 책망함으로써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 메시지는 이미 놀라운 구원을 몸소 체험한 민족의 타락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서, 지금까지 주변 국가들에 대해 언급된 모든 메시지를 통해 이미 조명된 것이다.
이 선지서를 읽을 때 주목할 만 한 점은 아모스가 이스라엘 내에 있으면서 주변 국가를 책망하는 동안은 좋은 평판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언제나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우리가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소련을 비난한다 해서 원한을 사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모스가 자기 자신의 나라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자 그의 명성은 도전을 받게 되었다.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을 때, 아마샤는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 땅에서 떠나갈 것을 명했다.
그의 전 메시지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점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로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 즉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등 모든 나라를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그의 메시지는 그들 각 나라의 의무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권에 따라 달라진다는 놀라운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에 대해 이야기한 것과 같은 그런 심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특권을 받은 나라에 가장 큰 진노를 내리려고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본문으로 읽은 구절은 본서의 예언 중 세 번째 부분으로, 거기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그는 4가지 은유 즉 "황충"과 "불"과 "다림줄"과 "여름실과 한 광주리"의 은유를 사용하여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그 여름 실과 광주리가, 모든 것들이 참으로 완결되었으며 이스라엘의 범죄가 극에 달하였고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게끔 의도되었다는 점이 그에게 계시되었다. 다가올 심판의 임박성을 나타내는 이 마지막 은유와 더불어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올 것을 선포하는 이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 말이, 하나님 편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일을 변덕스럽게 그만두신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 아님을 즉시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오히려 들을 수도 분별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인간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며 선지자들의 선포 역시 계속될 것이다. 글은 계속 읽혀질 것이지만 백성들은 그 음성, 곧 그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말씀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이로부터의 메시지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즉 어떻게 그러한 상태가 일어나게 되는가? 우리는 다음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무릇 사마리아의 죄 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8:14)
이 북 왕국 사람들은 진리 되신 분 대신에 거짓 것을 숭배하였었다. 옛날에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송아지를 세웠었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을 상징화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그것을 그들의 신으로 삼고 숭배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 백성들은 창조주를 피조물로 대체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계에서 나온 것이 아닌, 가치도 내용도 전혀 없는 것들로 대체했었다. 따라서 그들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영혼의 깊은 곳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이 거짓 신들에게 바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위치에 다른 어떤 것을 놓으면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만다. 그는 둔해지며 무감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말씀하고 계시지만 그는 듣지 않는다. 하나님을 자연으로 대체시켜 자기들은 자연을 섬기고 있노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또한 하나님을 교권주의적인 형태로 혹은 형식적이거나 의식적인 어떤 형태로 대체시키는 자들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 그리고 그와 유사한 모든 경우에, 인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면 성경은 언제나 봉인된 책이 되고 만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며, 그러한 기갈은 인간성을 약화시키게 된다. 그때 선지자는 일어나게 될 일을 매우 주목할 만한 방법으로 서술하였다.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불안에 빠지게 하였을 것이다.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8:12)
하나님이 없는 삶에 만족하려는 모든 시도는 이런 결과를 낳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매우 뚜렷하게 보이는 모든 침착하지 못한 열광에 대한 이유이다. 오늘날 영국의 도로위에 쇄도하는 자동차들을 보라, 확실히 그것들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북에서 동으로 뒤로 앞으로 비틀거린다. 나는 최근에 채링 크로스(Charing Cross:런던시의 중심부에 있는 광장)에 있는 웨일즈 교회(Welsh Chapel)옆을 지나가면서, 노변 강단이라고 부르는 것에 쓰여 진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다.
당신이 도착할 곳은 당신이 달리고 있는 그 속력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빠른 것만이 전부일 뿐 종착지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이 백성들이 분주히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찾으나 이는 부질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통치하지 않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그들은 죄와 연루되어 있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따라서 우주가 세워진 원리들을 무시해 버린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체계화된 교회 생활 속에서 새로운 설교자들, 새로운 운동들, 새로운 신학들을 찾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이 소리들을 듣느라고 매우 분주하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에 사마리아의 송아지를 둔다. 또한 초라하고 무가치하며 사라져 버릴 유해한 곳이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가 된다. 따라서 그 결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있게 되는 것이다.
선지자는 그들이 계속해서 구할 것이나 얻지 못하리라고 말하였다. 물질주의는 끝없는 욕망이다. 감각주의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아편이다. 새로운 것은 유해한 자극제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으로도 안식이나 평온을 얻지 못한다. 침착치 못한 것은 열광의 징후이며, 열광은 대단히 파괴적인 불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기갈이 있을 이유로 결코 없다.영국 성서 공회(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는 1936년 '밀물'이라는 제목의 간략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보고서에서 우리는, 공회 역사상 어느 해보다도 그 해에 숫자적으로 훨씬 많은 성경이 보급되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다. 그는 현재도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다. 지금도 성경은 팔리고 있으며 배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성경책을 사서 읽는 것은 가능하며 그것을 연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는 못하는 것이다.
아모스가 기갈의 문제를 설명함에 있어서 생략한 것들이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그는 완전히 성장한 남녀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노인들에 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물론 그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기갈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은 더 나아지기를 꾀하기보다는 과거에 안주하려 한다. 노인들은 옛날 일을 생각하며, 계속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고통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선지자는 기갈의 결과를 말하면서 젊은이 곧 가장 강하고 가장 희망적이며 아름다운 젊은 청년들과 처녀들을 언급하였다. 그는 가장 좋은 시기의 인생을 묘사하였지만, 그에 대해 말하기를 '갈하고 피곤하리라'고 하였다. 아모스가 언급하지 않았던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아침에는 어두워지며, 한낮에는 대소동이 일어나고, 밤에는 한 점 별빛도 없게 된다. 아름다운 처녀들과 젊은 남자들로 상징된 가장 훌륭한 능력들이 올바른 영감의 결핍으로 실패하고 타락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우리 세대에 대한 히브리 선지자의 음성이며, 오래 전 이스라엘에게 선포되었던 것만큼 확실히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을 통해 먼저 우리는 특권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에게는 빛이 주어졌었다. 그들에게는 율법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책임은 아모스가 언급한 다메섹과 기타 나라들의 책임보다 훨씬 컸다. 나는, 오늘날 우리나라보다 큰 특권을 가진 나라는 없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 비례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데에 주저치 않는다. 나는, 이 시대에 있어서 아마도 가장 희망적인 징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지를 깨닫고 있다는 증거가 보인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서나 사람들은 이렇게 탐문하고 있다."우리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는 언제나 말씀하고 계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의 징표라고 거듭 말하는 바이다.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듣기 위해 멈추어 설 때 기갈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뛰어난 비유 속에서 우리는,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한 것 때문에 기근이 든 곳에 처하게 되었던 한 인간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그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있다. 그가 우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되었을 바로 그때는 헐벗고 굶주림의 고통으로 쇠약해졌을 때였다. 그때 그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즉 그것은 그 자신의 극도의 궁핍함에 대한 깨우침이며 아버지 집에 있는 풍족한 양식에 대한 깨우침이었다. 그곳으로 가면서 이렇게 말하는 자는 남녀를 막론하고 복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힘은 그와 같이 돌아서는 자세에서 생기는 법이다.또 다른 히브리 선지자는 하나님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 선포하였다. 우리가 얼굴을 그에게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영혼 깊은 곳을 향해 말씀하시며 충만하고 결정적인 권위로 말씀하시는 그의 음성을 듣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 모두는 물론 개인 개인에 대한 것이지만 국가적으로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이다. 이 나라에는 아직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있다. 우리는 예수께서 완전하고 궁극적인 삶의 철학을 보여 주시기 위해 인용하시면서 재강조하신 예수 모세의 말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 4:4,신8:3).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다. 만일 인간이 기다리며 귀 기울이려 한다면 그 말씀이 혹 희미한 속삭임뿐이건 천둥소리 같건 그의 음성은 계속 들릴 것이며, 따라서 기갈은 사라지며 삶은 충만하고 만족스러워질 것이다.
오바댜(Obadiah)
1. 명칭 : (Why:d]b'[o, Obadiah)「주의 종」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종)이다. 오바댜에 대해서 다른 참고 자료를 얻을 수가 없다.그러나 오바댜라는 이름은 히브리인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던 것 같다.(왕상 18:3, 대상3:21, 옵7:3, 옵8:38, 옵9:16, 옵12:9, 대하17:7, 옵34:12, 스8:9, 느10:5등) 참조. 연대에 관하여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많으나 예레미야 전 후의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렘49:14-16과 본서 옵1:1-3은 아주 같은 낱말들과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 내용과 주요사상
그림설명 / 에돔 : 에돔 땅의 전형적인 광경으로 이 지역은 물이 귀하여 우물 소유자에 게 물을 사서 먹는다.
그러나 본서가 가르치는 중심 내용은 이웃나라(이스라엘)가 당하는 고난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화로 자기(에돔)의 이익을 얻을 좋은 기회로 삼는 잔인한 무관심과 부도덕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는 것과 그러한 나라는 이웃나라와 똑같은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본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에돔의 과거를 잘 알아야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의 후손이요 에돔 민족은 에서의 후손이다. 야곱의 간교는 형제 사이에 불화를 가져왔는데 그 후손들도 화목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 하려고 에돔 땅을 지나갈 것을 요청 했을 때 에돔은 그것을 거절했던 일이 있으며 가나안 정착 후에도 두 나라는 서로 무역 경쟁자의 입장에서 이해상반의 대립 관계에 있었다.에돔은 유다 왕국의 멸망을 바라고 기뻐하는 처지였다(옵11:1-14절, 애4:21).
3. 내용 분해
1. 에돔의 심판과 그 이유 옵1:1-14
1) 에돔의 멸망에 대한 경고 옵1:1-4
2) 에돔의 완전한 멸망 옵1:5-9
3) 에돔의 심판 이유 옵1:10-14
2. 여호와의 날 옵1:15-21
1) 만국의 심판 옵1:15-16
2) 이스라엘의 회복 옵1:17-21
오바댜(Obadiah)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
"구원자들이 시온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옵1:21)
오바댜의 예언은 분명히 구약 성경에 있어 특이한 것이다. 그 예언 속에는 우리를 위한, 또 우리 시대를 위한 메시지가 전혀 없다고 생각되기 쉬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도르(Isadore)는 성경의 비유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이 선지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모든 선지자들 중에서 그는 가장 짧은 말씀을 전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신비에 관한 은총은 다른 선지자들과 다름이 없다.
본서는 하나의 메시지로 엮어져 있다. 선지자가 누구인가와 그 시대적 환경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바댜가 누구인가에 대해 명확히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성령의 다른 곳에서도 오바댜란 이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며 또한 그의 예언의 시기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로 중요치 않은 이 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말씀 자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본 선지서의 특성은 이곳에 야곱과 에서의 반목이 다른 어떤 선지서에서 보다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처음 8절까지를 보면, 오바댜가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의 많은 부분이 예레미야서에도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바댜가 예레미야의 예언에 정통하였거나, 예레미야가 오바댜의 예언에 정통하였거나 둘 중의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야곱과 에서의 반목은 성경을 통해 명확히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고, 지속적으로 암시되고 있는 명백한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아이들이 그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는 리브가에게 있어 하나의 사전 경고였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고,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것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는 말씀은 많은 사려 깊은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해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자신이 사랑하시게끔 만든 것도 아니고, 예서 자신이 미워하시게끔 만드시지도 않았다는 것이 정당한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 각각을 사랑하시거나 미워하였기에 그와 같은 사람들이 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미움을 초래한 것은 오히려 그들 자신의 행동과 성품이었다. 지속적으로 구약에 나타났던 이 반목은 신약에 다시 나타난다. 이는 결국 예수와 헤롯이라는 두 뛰어난 인물을 통해 매우 놀라운 방법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헤롯이 에돔인이었다는 것과 예수께서는 혈통에 따라 야곱의 후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예수께서 결단코 헤롯에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점은 매우 시선을 끄는 섬뜩한 사실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시기 위해 그에게 신랄한 메시지를 보내신 적은 있다. 또한 그를 심하게 경멸함으로 자신의 반감을 드러내신 적도 있다.
오바댜서의 배경에는 야곱이 있다. 그는 고통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 이 오바댜서의 前景에서는 에서가 야곱의 고통을 조롱하고, 그의 환난을 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하나님은 야곱과 에서 둘 다에 관여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에돔에 대한 계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가치는 실질적인 불 경건에 대해 계시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야곱과 에서의 시대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야곱과 에서에게 나타났던 원리는 지금도 여전하며, 그것이 인류 역사 속에 분명히 드러났듯이 오늘날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삶의 두 가지 유형과 개념, 그리고 방법은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한다.
이 선지서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에서라는 인물의 적나라한 모습과 에돔의 의미에 대해 깨닫게 된다. 선지자는 그것을 그들 개인들에게서가 아닌 그들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족속들에게서 그 당시 입증되었던 것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 에서와 에돔에 대한 계시에서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잔인과 폭력의 가공할 모습이다. 여기에서 에돔은 자만의 높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에돔은 구경만 하다가 급기야는 국경을 넘어 야곱의 고통을 더한다고 폭로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에돔의 죄악의 전부는 아니다. 드러나야 할 뿌리깊은 악은 무엇인가? 우리가 이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려면, 우리는 이 불신앙에 앞선 것, 이 불신앙을 유발시킨 것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는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란 말씀에서 드러난다. 마음의(중심의)교만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났다. 에돔인은 하나님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신도 몰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른 족속들은 자기들의 신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이었다. 그런데 에돔 족속은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로도 신을 섬기지 않았던 것 같다.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필요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신약에서 에서와 그의 모든 후손, 그리고 그들이 행했던 것과 같은 생활 태도에 관한 무서운 말씀을 대하게 된다. '불경한 사람에서'여기서 불경하다는 것은 부주의하고 경망스런 정도의 언동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는 완전히 자의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불경스런 사람은 전혀 영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이며, 그의 삶이 완전히 유물론적인 사람이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나는 하나님과 무관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중심이(마음이)교만한 자이다. 이런 생각이 우리에게 놀라운 것이 아니라면, 이는 우리 생각 속에 그러한 죄악이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말을 들어도 무관히 여김은 모든 죄악이 이 근원적인 죄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교만한 자는 삶이 그 자체로 충분하며, 하나님과의 어떠한 관계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에돔의 이 교만은 에돔이 바위 성 높이 올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라고 말함에서 드러난다.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 별 사이에 깃들임으로, 에돔은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죄를 범하였다. 이 모든 것은 본 예언이 행해지던 당시의 상황이다. 에돔 족속은 우리가 지금 페트라(petra)라고 부르는 암벽 지대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 하였다. 또한 실제로 그들은 오랜 기간을 그 요새에서 안전하게 지냈다. 그 결과 그들은 가장 도전적인 불신앙의 화신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신격화시켰으며, 자기 스스로 완전하다고 믿었다. 또 자기 방어를 위해 만든 요새가 모든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었다.
자, 이 마음의 교만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보자. 이 교만에서 비롯한 죄는 폭력, 잔인 그리고 완악함의 죄였다. 이는 야곱의 성품으로 표현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처음에 이는 소극적인 잔인함으로 나타난다. 재앙의 날에 에돔 족속은 이를 방관만 하였고 패망의 날에는 이를 즐겼다. 고난의 날에 그들은 스스로 교만해져서, 입을 크게 벌려 떠들어대었다. 이제까지는 소극적이던 것이 적극적이 되기 시작한다. 야곱 족속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그들은 그 성문에 들어가 그 고통을 방관하였고 재물을 강탈하였다. 또 야곱 족속이 도망치려 할 때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이 모든 것은 인간에 대한 태도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한 결과이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는 그들의 이웃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짓밟는다.
그렇다면 이것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오바댜의 말씀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오바댜가 예언하던 바로 그때는 야곱이 매우 고난을 당하던 때였다. 야곱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뿐 아니라 잔인하고 잔혹한 에돔이란 적으로부터도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야곱은 에돔의 거만한 외침을 들었다.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 내리겠느냐." 이는 대응할 길 없는 도전 같았다. 에돔은 언제나 번성할 듯했으며, 또 형통한 가운데 영원히 불경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응답의 여호와의 말씀 속에 있다.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지혜 있는 자를 멸하고 용사를 놀라게 하리라." 오바댜는 그러한 일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리라고 보았다. 에돔에 대한 말씀은 "너와 조약한 자들이 너를 대적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즉, 너와 협약을 맺었던 자들이 그 협약을 깨리라, 네 식물을 먹는 자들이 너의 적이 되리라."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연합하여 에돔에 대적하므로, 에돔은 바위 성으로 부터, 또 별 사이에 깃든 곳으로부터 땅에 끌어내려진다. 이는 우리가 종종 시적으로 표현하곤 하는 하나님의 정의이다.
네가 행한 대로 받으리라. 이제 우리는 확실히 시사적인 마지막 말씀에 주목하여야 한다.
구원자들이 시온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이 마지막 문장은 마치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즉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는 깊은 확신으로부터 솟구쳐 나오는 것 같다. "구원자들이 시온산에 오른다"는 말씀은 두 가지로의 해석이 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심판"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집착한다. "구원자들이 시온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이 심판이라는 단어의 최우선적인 의미는 의로운 통치이다. 물론 이는 종종 징벌로서의 통치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서 이 오바댜의 말씀에는 에서에 대한 소망,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소망이 빛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의 산인 시온산 위의 "구원자들"이 모든 사악한 것들을 심판하여, 이를 의롭게 세우기를 바라는 소망이 빛나고 있다. 결국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기"까지 모든 사악한 것들을 심판하여, 이를 의롭게 세우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사진설명 : 이전에는 에돔이었던 나바태의 도성 페트라의 바위 요새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
이 선지서의 마지막 말씀은 다른 모든 선지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비관적인 말씀으로 결론을 맺은 히브리 선지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명백한 사실이다. 히브리 선지자들은 음울하고 어두운 것을 보았다. 또 죄악과 불신앙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의 것을 보았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이 음울함과 어두움 그리고 불신앙으로 끝나리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를 꿰뚫어 보았다. 짧은 글을 통해 불신앙과 신앙 간의 반목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는 오바댜도 마지막 문장을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로 맺고 있다. 오바댜는 눈 앞의 갈등, 즉 야곱의 고통과 에돔의 비웃음 이상을 보고 있다. 그는 반드시 에돔에게 임할 심판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를 보았다. 그러므로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는 것을 보았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귀 기울여야 하고, 주의해야 하는 선언이다. 아마도 불신앙이 오늘날처럼 심하게 번진 적도 없을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이교도들의 공격은 거의 다 사라졌다 해도 무장하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실질적인 불신앙이 팽배한 시대도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 우리는 별들 사이에 깃들여 있다. 누가 능히 우리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사람들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처럼 행하고 있다. 따라서 기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한다. 그들은 영혼에 대해 아무 생각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을 높이는 바로 이때에, 그들과 조약한 모든 이들과 그들의 자만심이 함께 작용하여 그들을 교만한 위치로부터 끌어내린다. 이로써 그들은 현실에 직면케 된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바댜처럼,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우리는 우선 그 점을, 오늘날 나라가 여호와의 것이라는 사실로 인해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이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또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결코 벗어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 나라는 이미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호와께 속할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삶 속에서도 여호와께서 선포하신 말씀과 복음을 통해 나라가 그에게 속한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과의 관계에서 어디에 위치하는가? 우리는 야곱의 편인가, 아니면 에서의 편인가? 야곱은 칭송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바로 우리의 표본이었다. 그는 대단히 많이 실수하였고 실패하였으며 어리석었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을 때에라도 언제나 하나님을 믿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인내하셨으며 그가 자신의 기만행위로 말미암아 집을 떠나 방황할 때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가 집으로 돌아올 때 친히 그를 만나 그와 겨루시고 또한 축복하셨다.
혹시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경스런 사람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며, 영혼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지 못하는 에서, 또 스스로 암벽으로 된 요새에 거한다고 자만하여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 내리겠느냐"고 외치는 에서와 같은 사람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먼저 그래도 구원의 길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또 그는 구원자를 보내주신다. 불경스런 자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성화될 수 있다. 이 묵상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 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말은,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도 있고 개인에 한정될 수도 있는 말씀인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요나(Jonah)
1. 명칭 : (hn:/y, Jonah) 「비둘기」
본서는 그 저자, 기록 연대, 사실기록이냐, 우화냐 하는 문제 등 논란이 많은 책이다 그리하여 교단 안에서 문제를 야기 시킨 적도 있다. 왕하14:25절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르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어구에서부터 아라바바다까지 하였으니)라는 말씀이 있다. 본서의 예언자 요나는 바로 여기에 나와 있는 여로보암 2세 때에 예언 활동을 한 그 요나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본서의 내용을 우화로 보고 주전 4세기 중반에 살았던 익명의 한 사상가의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세인 들과의 대화에서 요나의 표적을 들어 말씀하셨다 (마12:39).
그림설명 / 바다에 던져지는 요나 : 루네왕의 기도서를 장식한 삽화로서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고 있고 바다 한편에서는 요나를 토해내고 있다. 그런데 요나가 타고 있는 배는 15세기의 범선이다.
2. 내용과 주요사상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을 독점하고 있으며 다른 민족들은 그 은총 밖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소수의 선지자 들은 그러한 편협한 민족주의를 초월하고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다고 깨달았으며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도구와 사신이 되어서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전파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본서에는 이러한 두 사상의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본서의 제일 중요한 사상은 [세계의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다.(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수고도 아니 하였고 배양도 아니 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 만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0-11)라는 말씀에서 잘 나타나있다. 이러한 사상은 그들의 선민의식이나 민족주의와 상당히 큰 갈등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 말씀을 전하는 요나 자신도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질투와 반항의식을 가졌었다. 그리하여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하다가 큰 고기의 배 속에 들어가 죽을 뻔 하였고 니느웨에 가서 전도를 하면서도 역효과가 나기를 오히려 희망하였다
3. 내용 분해
1. 요나의 사명과 불순종 욘1:1-17
2. 요나의 기도와 구원 욘2:1-10
3. 요나의 전도와 니느웨의 회개 욘3:1-10
4. 요나의 불평과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 욘4:1-11
요나(Jonah)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하나님의 긍휼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 만 여명이여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욘4:11,참조 욘3:4)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는 요나서를 향한 어떤 태도를 유발시킨 철학적 분위기를 경험해왔다. 이러한 때에 물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들을 무시한 채 요나서를 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물고기의 배가 얼마나 큰지를 규명하는 데 너무 몰두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는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고찰을 3장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만일 내가 그 역사적 사실성을 의심하기 때문에 처음 두 장을 생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지식으로는 이러한 의심이 용납될 수 없다. 특히 본문 중 네 번에 걸쳐 나타나는 하나님에 관련된 서술의 사실성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그러므로 물고기, 박 넝쿨, 벌레, 동풍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나에게 결코 난점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훨씬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이 글의 교훈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그 교훈이 내가 본문으로 택한 말씀 속에 번뜩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는 큰 성읍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을 잘 알면서도 그에게 반역하여 득죄한 자, 요나에게 주어진 말씀이었다. 그는 니느웨로 갈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니느웨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그곳에 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 때문이다. 그는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림설명 / 요나를 토해내는 물고기 : 얀 브뤼겔이 그린 요나의 모습으로 뮌헨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거대한 이 물고기는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라고 생각 되었다.
요나서 자체는 하나의 장엄한 계시이다. 엄밀히 말해 이는 예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언적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요나와 같이 자기 민족을 제외하고는 어느 민족도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다는 배타성이 죄에 빠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쓰여진 글이다. 요나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에 관한 사실들과 잘 화합되어야 했다. 요나는 이러한 일을 겪었을 때, 자신의 실패한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용감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같은 실패를 범치 않도록 경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하나님의 이 말씀은 한 큰 성읍에 관한 것이다. 여러 해 전에 비스마르크 경은 "대도시는 국가의 커다란 환부이다"라고 말했었다. 나는 어떠한 사람도 이 선언을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따르면, 최초의 성읍은 에녹이었는데, 살인자에 의해 건설되었다. 우리가 성경이나 그 밖의 문헌에서 도시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즉 지금의 런던까지를 살펴본다면, 도시의 거대함과 웅장함에도 불구하고 이 진술이 옳은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해 하나님에 계획하신 것이다. 다시 한 번 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성령이 시골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만, 도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음을 발견케 된다.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의 전체 이야기는 인간이 도시를 건설하려는 시도에 대한 것이다. 우주의 유일한 중심이신 조물주에게 반역하는 것을 동산에서 실패한 인간은 도시를 건설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럼으로써 늘 인간은 하나님의 질서는 고사하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해왔다.
역사상,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 명이나 있는 니느웨라는 성이 존재했었다. 이 도시는 걸어서 가로지르는 데 사흘이 걸릴 정도로 큰 도시였다. 하나님이 이 도시를 주목하시고 그 죄악을 아셨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은 바로 이 도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4:11)
이처럼 우리는 여기에서 율법의 계약과 무관한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밝히는 계시를 접하게 된다. 이 도시는 바울이 피조물 속에서 보여준 영원히 빛나느니 빛에 반역하는 죄를 범한 도시이다. 또 우리가 알듯, 백년 후 자신의 회개를 다시 돌이킴으로써 멸망할 때까지, 임박한 파멸로부터 구제되었던 도시이다. 바로 지금,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에게 말씀하시는 가운데 이 주목할 만한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계시다.
이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 질문의 강조점은 "내가"에 있다. 요나와 그 민족은 니느웨를 전혀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도 니느웨를 같은 식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계시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 요나서의 최고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이 질문과 이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교회는 그의 계시의 도구라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또 인간의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이든지, 그것이 교회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위 질문과 이에 대한 필연적인 대답은 인간과 인간의 도시를 향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니느웨를 향한 냉담과 무관심이 바로 유다의 죄였으며, 요나 자신의 죄였다.
하나님은 도시를 아신다. 이는 물론 공감이 가는 일반적인 진술이다. 그런데 이를 보다 세부적으로 적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런던을 알고 계시다. 50여 년 전에 찰스 킹슬리느니 런던에 대하여 말하였다.
하나님은 런던을 아신다. 그는 웨스트 엔드(West End)의 야한 광채, 그 세속화된 불신앙, 부패 그리고 요동치는 혼란상을 알고 계시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어느 누가 웨스트엔드에 대한 이 묘사를 변경시킬 수 있겠는가? 그런데 킹슬리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또 하나님은 이스트 엔드(East End)의 처절한 가난과의 싸움, 그 추악한 부도덕, 불결한 주거,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스러움과 극심한 고뇌 또한 알고 계시다. 이 말을 통해, 그는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깨우치고 있다. 이는 또 다음의 말을 통해서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눈앞에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적나라한 상태로 드러난다.
요나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말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말의 숫자가 런던 거리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뿐만이 아니라 "육축도 많이"있는 니느웨를 알고 계시다는 말씀 속에 드러난 사실을 변경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적은 위로밖에는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단순한 지식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이 단순히 하나님이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주의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훼이버(Faber)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네.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슬픔을 더 잘 아는 이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네.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약함을 더 자비롭게 판단하는 이는.
나는 때때로, 인간의 상황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과,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심하지 않으시다는 점을 우리가 곧잘 잊어버린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일들을 아시고, 느끼시며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염려하시고 괴로워하시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준 매우 유능한 신학자가가 "냉정한(impassive)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의 주장은 하나님에게는 결코 어떤 형태로도 감정의 흔들림이 없음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글을 읽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아님을 하나님께 감사한다."보다 깊은 진리가 다음의 글귀 속에 있다.
가슴을 짜는 고통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는 함께 하신다.
여러 해 전에 한 시인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죽었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지구는 죽어 시체가 되어 누워 있다.
그 주위에는
어둠이 둘려 있다.
구름과 천둥이
그 수의이다.
지구의 죽음은
황혼의 죽음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이 아니다.
힘 센 용사의 죽음처럼
급작스런 것이다.
지구는 죽어 시체가 되어 누워 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조객,
그의 영욕을 목격한 유일한 조객이다.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죽음의 유일한 목격자.
천지의 유일한 조객,
한때 그렇게 자상하시던 하나님이.
이는 실로 가련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한다.
하지만 보라, 누군가가 다가온다.
주검 곁으로.
천사 가운데서 내려와 살며시 다가오신다.
그는 왕으로서 오신다.
죽은 자가 누운 곳으로.
그는 힘차게
오른 손을 뻗어 부드럽게 명하신다.
일어나라, 잠에서 깨어나라,
내가 죽음으로 너를 대속하리라.
깨어 일어나라.
여기에서 우리는 지금 고찰하고 있는 논지에 도움을 주는 사항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고통 받는 자, 죽어 가는 자 그리고 죽은 세계를 돌보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이 무력하다는 사실을 아신다. 인간의 주거, 모든 남녀의 직업들이 모두 그의 감독 하에 있다. 인간의 정신적인 고통, 이유를 알 수 없는 비참함, 비참의 신비스러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원한 것을 알지 못하는 영적인 죽음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다. 럿셀 로웰이 "저주스런 슬픔의 산"으로 묘사했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마음속에 가장 깊이 새겨져 있다. 인간이 상황이 어떨지라도, 그들의 죄악이 어떤 것일지라도, 하나님은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계시고 돌보신다는것뿐만 아니라 그가 활동하신다는 명백한 사실, 즉 그가 선지자를 보내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며,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사 그 말씀을 궁극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지혜로 풀 수 없는 문제는 있을 수 없다. 그의 힘을 꺾을 정도로 강한 대적은 없다. 그의 빛을 가릴 수 있는 어두움은 없다. 또 그의 지각이 미치지 않는 사소한 일이란 없다.
하나님에게는 오직 하나의 난점만이 있다. 이는 바로 인간의 의지이다. 반역하는 완악한 인간성은 하찮은 주먹을 쳐들어 하나님의 면전에 들이대곤 하였다. 이 반역은 아무래도 인간을 말살시키는 것으로 보응하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옛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한 선지자의 말씀을 상기해 보자. "내가 어떻게 너희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요나가 벌 받았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태도와 활동에 대한 반역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을 표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인간의 도시들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오늘의 도시에는 그 활동을 지배하는 이기주의와 열정적인 탐욕이 넘쳐흐른다. 인간은 어디서든지 적자생존만을 믿는 사악한 철학을 좇아 행동한다. 그러한 생각에는 하나님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하나님의 교회가 부여받은 소명은 하나님의 태도를 받아들여 드러내는 것이다. 즉 이기주의 대신에 자기를 적자생존 대신에 부적자를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소명이다.
사도는 우리가 도성을 찾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때 그는 우리가 하늘을 향해 가고 있고, 거기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도시를 추구하는 것은 세상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뜻을 위로 향하게 하고 또한 위에 것에 따라 행동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떻게 이 책임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첫째는 하나님의 도성의 원리를 내적으로 실현함으로 서이다. 그 도성은 네모반듯하고 어느 곳으로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으며, 투명한 순수성과 찬란한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하는 도성이다. 개인적 입장에서 볼 때, 교회의 소명은 도시에서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삶의 의미는 단순히 공존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될 수 있느냐는 데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가족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저임금 근로자가 공장에서 하루 몇 시간 일하여야 하느냐의 문제는 사업주의 이윤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에 관한 문제이다. 어느 지역에 술집이 하나 있느냐, 백 개 있느냐의 여부는 장사의 배당금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환경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교회가 세상일에 종사하는 인간에게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의 벽이 구원이 되고 우리의 문이 칭송의 대상이 되려면, 우리의 관리들이 친절해져야 하고 우리의 세무원들은 의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교회가 지속적으로 남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이룰 수 있게 함이니 그 소명으로 한다는 것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이 생각하신 것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 글 처음에 언급했듯이, 요나의 실패는 그가 하나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우리의 주님은 자신에 대해 친히 이렇게 선포하셨다."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노라."요나와 그리스도의 차이는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은 둘 다 하나님을 알았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셨음에 반해, 요나는 그렇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성읍을 바라보시며 그것을 위해 우셨다.
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들리는 요나의 음성은 하나님을 알라는 것 뿐 만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그의 긍휼을 느끼고, 그가 하고자 하시는 바를 맡아 수행하며 그가 진실로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사람들에게 보이라는 것이다.
미가(Micah)
1. 명칭: (ak;ymi , Mica).「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냐」
미가는 농촌인 모라셋 출신의 예언자이며 이사야보다 약간 늦게 활동한 예언자이다 이사야가 수도인 예루살렘 출신인데 반하여 미가는 아모스와 같이 시골 출신이다.그리하여 미가도 아모스처럼 빈부의 심한 차이와 부자나 권력자들의 불의를 실감 하였다.당시 앗수르는 사방의 여러 나라를 위협하고 있었는데 유다는 앗수르와 애굽 양 대국 가 사이에 완충 지대가 되어 있었다. 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여러 왕의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 이다.
2. 내용과 주요사상
미가의 사상은 대 예언자들에 못지않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그는 가난한 농민 과 노동자들에 대하여 동정 하였고 부자들의 횡포와 불의에 대하여 예민하였다.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불의를 공격한 것은 아모스와 흡사하다. 미가도 불의한 개인과 민족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고 가르쳤다. 미가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그 범죄 때문에 머지않아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한다고 내다보았다. 또한 그와 똑같은 운명이 남왕국 유다에게도 임할 것을 확실히 예견하였다. 미가는 억압과 불공평한 재판으로 신음하는 빈민 대중의 대변자가 되었다. 먹을 것이 없고 전답을 저당 잡히고 심하면 자녀들까지 저당 잡히는 빈민들을 위해서 그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이러한 이유로 미가를 분노와 위협만 선포하고 구원과 회복은 선포하지 않은 예언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미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메시야의 재림 에 중심을 둔 구원을 선포한 예언자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3. 내용 분해(대분류)
1.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경고 미1:1-2:3
1) 표제 미1:1
2) 사마리아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 미1:2-16
3) 하나님의 분노의 이유 미2:1-13
2. 심판 후에 따르는 회복 미3:1-5:15
1) 백성의 죄와 예루살렘의 파괴 미3:1-12
2) 하나님의 나라 건설 미4:1-5:1
3) 새로운 왕과 왕국 탄생 미5:2-15
3. 벌과 하나님의 최후의 자비 미6:1-7:20
1)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불만 미6:1-16
2) 꾸지람과 약속 미7:1-20
미가(Micah)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하나님의 요구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참조.미6:1-7)
선지자 미가는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다. 그가 전한 세 가지 말씀은 권위에 관한 것이었다. 주로 그는 민족적 삶의 중심지로서, 권위를 가진 자들이 거주하던 성읍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는 백성을 잘못 이끄는 불의한 통치자들을 수없이 비판하였다. 또 그는 구약에 있어 가장 훌륭한 필치로써 단 한사람의 참된 통치자가 오실 것을 예언하였다. 물론 그의 말씀은 민족에 관한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 속에서 개인에 관한 것도 찾아낼 수 있다. 6:8의 말씀은 앞 두 절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영적, 도덕적 고통 속에 처해 있는 사람, 즉 예언의 교훈을 들음으로써 죄를 깨닫고 개인적 책무를 깨우친 사람의 질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6:6).
질문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림설명 : 메마른 산들과 무성한 초목은 선지자들에게 영적인 황폐와 회복의 비유적인 표현들을 제공하여 주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네가 나를 괴롭게 한 것에 대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행하였느냐?"고 말씀하셨다. 이는 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애처로운 외침이다. 고통 받는 영혼이 부르짖었던 호소에 대한 답변인 것이다. 또 이 영혼의 부르짖음에 대해 선지자는 바로 8절의 말씀으로 답하였다.
전 민족적인 사건들은 궁극적으로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선지자는, 권위를 오용한 민족에게 그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진정한 권위자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 또 그는 한편으로 이를 개인에 대한 말씀으로 외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미가서를 이해하여야 한다.
이때 우리는 세 가지 사실에 주의하여야 한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을 구하시는가"라는 말씀 속에 있는 가정이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이 요구하고 계심을 가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본문(6:8)을 시작하는 말씀, 즉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라는 말씀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분명히 알리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는 본문 내용이다. 즉 선이 무어인가에 대한 해설이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따라서 예언의 말씀은 스스로 자연스럽게 간명하게 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순서대로 살펴보자.
먼저, 가정을 보자. 개개인에 대해 말씀하신다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떠오른다. '사람아, "오직 너 사람아."이는 다른 모든 이들과 절단된 "너" 혼자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질문은 하나님이 무엇을 구하시는가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의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구하시는가"이다. 사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개인 개인에게 물으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한한 힘과 위안이 된다. 하나님이 어느 한 사람에게 요구하신다면, 이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람은 그가 살고 있는 도덕적 세계에 방치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의 권위와 그 세계를 가정하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단순히 추상적인 것으로나, 가능성으로만 생각한다면, 이 본문에서 우리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이는 성경 전체에 해당되는 진리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다음의 것들에 익숙해 왔다."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은 왕이시다.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구세주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근본적인 정의를 발견할 수 있다. 만약에 우리가 무엇인가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가 강조한 피조물에게 그 창조된 목적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창조할 수는 없다. 바울은 이를 구약에서 인용하여 분명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롬9:20).
하나님은 창조주 이상의 분이시다. 그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방임하지 않으셨다. 또한 자신이 만드신 인간을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으셨다. 하나님은 왕이시다. 따라서 그는 입법자이기도 하다. 그의 법은 그가 창조하신 피조물의 존재와 권위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가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그 법이다. 또 하나님은 창조주와 입법자 이상의 존재로 나타나신다. 그는 아버지이시다. 이는 하나님이 스스로 지으신 피조물을 돌보시고 주의 깊게 살피시며 섭리하신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의 법은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며, 그의 부성애는 그의 지속적인 보살핌 속에 나타난다.
이상의 것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조물주 이상이시고 왕 이상이시며 또 아버지 이상이신 분이다. 그는 구세주이시다. 모든 것이 변하여도 변치 않는 것이 그의 사랑이며,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 그의 사랑이다. 그는 긍휼히 없는 곳에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손길이 없는 곳에 구원을 베푸신다.
이 모두는 하나님이 요구할 권리가 있는 분이심을 입증하는 것들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의도적이며, 신중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닌 인생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출산의 놀라움에 대해 안다. 그러나 이는 오직 인생의 육신적인 면에 불과하다. 이것 역시 놀랍고 경외로운 능력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생명의 탄생 속에 하나님의 행동이 개입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적인 조건에 비추어 아이가 잘 태어났는지 아닌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아버지가 있으며 또 그에게도 자신의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이시다. 모든 인간에게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 이상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의 인간에게 있어 놀라운 사실은 그 분별력이 계속 퇴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부인의 필요성에 관해 말씀하신 것은 자아가 부정되어야만 비로소 자아가 건전해짐을 선포하신 것이다. 부인되어야 할 것은 거짓 자아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원래 의도를 실현할 수 있도록 개성이 되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도덕적 세계에 관해 생각해 보자. 부도덕의 거대한 물결이 인류를 집어 삼킬듯 휘몰아친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 왕적 권위하에 도덕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의미에서 본문의 놀라운 선포를 접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래를 바라는 영혼의 애절한 부르짖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답변이 주어졌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6:8). 우리는 이 말씀의 첫째 대상이 히브리인이라는 것, 그리고 선지자는 이를 그들의 율법으로부터 인용하였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신명기에서 다음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10:12). 이는 백성들을 위한 율법에 쓰여져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선지자는 질문자 개개인에게 "주께서 네게 보이셨느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이 보다 강력한 의미를 갖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선한 것은 단순히 기록된 법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성육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예수는 나타나셨고, 선포되셨으며 알려지셨다. 그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이신다. 심지어는 예수의 인성에 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의 선하심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통해 선한 것을 보아 왔다.
다시 한 번, 이 두 가지 적용, 즉 첫째, 율법을 통해서 히브리 백성에 대해 하신 말씀과 둘째, 성육신을 통해서 온 세상을 향해 하신 말씀을 돌이켜 생각해 보자. 그리하면 우리는 고대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 또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본문의 말씀은 이런 이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요한복음 서두에 나오는 말씀을 떠올린다. 요한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 빛은 역사적인 성육신을 일컫는 것이다. 빛은 율법이나 복음이 선포된 적이 없는 곳까지도 비추인다. 인간의 속성 가운데는 잠언 기자가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묘사한 빛이 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에 관한 것임에 주의하자. 따라서 인간의 신비스러운 성품 가운데는 선에 대한 보편적인 의식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제 "선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영어에 있어 이 단어는 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성경 원전의 히브리어 단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병듦의 반대인 건강하다는 뜻이며, 추함의 반대인 아름답다는 뜻이고, 또 그른 것의 반대인 옮음이라는 뜻이다. 이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병들었음을 인정하는 것은 건강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추함을 아는 것은 또 아름다움도 아는 것이다. 그른 것을 안다는 것은 옳을 가능성이 있음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소라도 그러한 빛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빛의 분량만큼은, 즉 그 이상은 아니더라도 그 분량만큼은 책임을 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선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깨닫게 된다. 여호와는 번제물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일 년 된 송아지, 천 천의 수양,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번제물로 요구하시지 않는다. 또 영혼의 죄를 인하여 몸의 열매를 요구하시지도 않는다. 이러한 것들 중 어떠한 것도 우리가 하나님께 접근하는 수단인 희생으로써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선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시는 것"이라는 말씀 속에 드러난다. 이는 선한 사람의 삶에 대한 놀라운 분석이다. 이것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공의를 행하는 것, 인자를 사랑하는 것,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먼저 인간과의 관계, 즉 공의를 행하는 것과 인자를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다음은 인생에 있어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즉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이것들 중에서 최고의 것은 분명히 마지막 것인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되면 앞의 두 가지, 즉 인간과의 관계인 공의를 행하는 것과 인자를 사랑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관계는 역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말씀은 역으로 읽으면 이해가 쉽다.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 그리고 인자를 사랑하라. 그러면 공의를 행하게 되리라."이것은 선에 대한 완전하고 궁극적인 묘사이다. 하지만 이를 본문에 기록된 순서대로 살펴보자. 선이란 먼저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의를 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말이 궁극적으로 정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인 '미쉬파트'에서 유래된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정의는 무엇보다도 의로운 기준을 첫째로 요구한다. 또 둘째로 참된 판단을 요구한다. 세 번째로는 옳은 결정으로 요구하고,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것들의 조화로운 조합을 요구한다.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공의를 행하기 위해서는 참된 기준과 의로운 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웃에 대한 판단이 참된 것이 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우리는 각 사람에 대한 판단이 공의로운 것이 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행위가 하나님의 성품 속에 나타나는 위대하고 영원한 원리와 조화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이 요구는 결코 힘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하고 거룩한 것이다. 그것은 윤리적 삶의 표준을 밝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공의로운 행위라고 말하고 싶다. ]
그러면 말씀의 두 번째 요구, "인자를 사랑하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인자함이란 단어에는 "겸손히 머리 숙인다." "허리를 굽힌다." "봉사 한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이 모두는 사랑에 의해 창출되는 행동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단순하나 중대한 문제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본문에는 우리가 공의를 사랑하고 인자를 행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사람은 관념적으로 정의를 사랑한다 하면서, 실제로는 이웃에게 불의를 행하곤 한다. 그러므로 관념적으로 정의를 사랑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우리는 이를 행하여야 한다. 인자를 행하는 것은 더욱더 충분치 않다. 삶의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서도 자선이라고 불리는 행위는 있을 수 있다. 인자함이란 우리가 반드시 사랑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영혼이 하나님의 자비와 화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위대한 말씀의 도전에 직면케 되면, "누가 이 모든 것에 충분할 수 있겠는가"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핍의식, 즉 자기가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는 의식 때문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갈 것인가"하고 질문자는 외쳤다. 이에 대한 대답은 바로 마지막 세 번째 것, 즉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복종과 신의로 하나님과 함께 행하면, 우리 역시 인자를 사랑하고 공의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미가의 말씀이 바로 복음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는 오히려 율법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나는 곧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빛은 오직 정죄할 수만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이 미가의 말씀에는 복음에 대한 넘치는 갈망이 드러나 있다. 복음은 예수께서 빛 훨씬 이상의 분이심을 선포하고 있다. 그는 생명이며, 생명을 주시는 자이시다. 구약의 히브리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우리의 실패만 깨우쳐 주었다면, 예수의 복음은 그 회복과 자아의 완전한 실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를 받아들이신다. 또 그는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따라서 그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시다.
나훔(Nahum)
1. 명칭 : (!Wjn", Nahum) 「위자(慰藉)」
나훔에 관한 자료는 본서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 외에 다른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고향인 엘고스라고 나1:1에 언급되어 있으나 엘고스가 어디인지 불분명하다. 나훔의 연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는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노아몬(Thebes, 애굽 제18왕조 시대의 수도)의 함락(661년)이다. 다른 하나는 니느웨의 함락이다(612년). 나훔의 활동 시대는 이 두 사건의 중간 시대일 것이다. 본서 나3:8-10을 보면 노아몬의 함락이 과거사로 기록이 되어있는데 노아몬은 B.C,661년에 앗수르 왕 아술버니팔 (Ashurb- anipal) 에게 점령되었다. 또 본서에는 니느웨가 함락 되던일을 목격자처럼 묘사해 있는데 니느웨는 B.C. 612년에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이 함락시켰다. 그러므로 나훔은 B.C.661년과 B.C. 612년 사이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나훔은 메소보다미아에서 살다가 거기서 죽었다고 되어있으나 본서에 의하면 그는 유대인이며 유다에서 활동한 예언자이다.
2. 내용과 주요사상
본서의 주제는 니느웨의 함락이다.본서는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하는 찬미로 시작 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형벌과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한 자비와 선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본서는 니느웨가 포위된 일과 그 함락과 함락의 이유를 말하고 있는데 유다의 숙적 앗수르에 대한 불타는 분노와 증오가 예언의 중심이 되어 있다. 다른 예언자 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는 데에 그들의 관심과 임무가 있었는데 나훔은 이러한 일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본서는 오랫동안 선민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힌 숙적 앗수르가 패배당하고 그 서울 니느웨가 함락 되는데 대한 환희에 넘치는 복수의 노래이다. 약간 편협한 국수주의 사상이 나타나 있으나 앗수르가 오래 이스라엘과 유다를 괴롭힌 것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이해되는 일이다.
그림설명 / 니느웨 : 사로근 2세의 아들인 산헤립에 의하여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가 되 었다. 7.2km 에 이르는 메소포타미아 최대의 도시 건설에 북이스라엘로 부터 연행해온 포로들을 이용하였다. 발굴과정에서 특기되어야 할 일은 아슈 라바니팔 도서관이다. 26.000매에 이르는 토서판 중에 길가메쉬 서사시. 창 조설화. 대홍수 설화가 들어있다. 성벽은 제방이 되어 있는데 그중 일부 복 원된 북서벽을 일몰시간에 서쪽에서 촬영한 것이다.
3. 내용 분해
1. 복수하시는 하나님 나1:1-15
1) 여호와의 복수와 진노 나1:1-8
2)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나1:9-13
3) 앗수르의 멸망 나1:14-15
2. 니느웨의 멸망을 노래함 나2:1-3:19
1) 니느웨의 공격과 그 함락 나2:1-13
2) 니느웨의 죄와 그 멸망 나3:1-19
3. 벌과 하나님의 최후의 자비 나6:1-7:20
나훔(Nhum)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하나님의 보복 -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나1:2,,나1:1-15)
한 세대 전의 위대한 설교가이며 신학자였던 로버트 윌리엄 데일(Robert Willian Dale) 은 어느 날 필자에게 말했다. "나는 지옥에 관해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무디(D.L.Moody)이다." 데일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디가 지옥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거의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 없이 이 나훔의 선지서를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문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서술 句에 불과한 첫 문장에서 우리는 본서의 주제를 읽을 수 있다.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이를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니느웨에 대한 신탁'이다.
나훔서는 요나서의 후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요나서와 한 백년 정도 차이가 난다. 나훔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니느웨에 대한 신탁에 대해 말하려고 온 선지자였다. 나훔이 이 책을 기록하였을 때, 이는 하나의 예언이었다. 하나님의 뜻과 행동에 의해 거대한 성읍과 위대한 사람들이 완전히 소멸되리라는 예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역사가 된 사건에 대해 읽고 있는 것이다. 그가 예언으로 말하였던 모든 것이 그대로 되어졌다. 위로를 의미하는 선지자의 이름 나훔은 상당히 암시적이다. 분명히 그의 말씀의 목적은 이스라엘에게 위로를 베풀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앗수르 즉 니느웨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나훔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밝혔다. 또 그 성읍과 백성을 말살시킬 하나님의 행위를 예언하였다. 이 예언은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실제 군사들이 니느웨 도성으로 쳐들어와 성읍 전체를 황폐케 하였다. 나훔이 선포한 말씀은 매우 자세하고 명쾌하였다. 또 그 주장은 논리적이었으며 뚜렷하였다.
서두에 그는 이것을 묵시라고 기록하고 있다. "엘고스사람 나훔의 묵시 글이라."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의 묵시이다. 처음에는 진노하신 하나님의 묵시이고, 다음은 보복하시는 하나님의 묵시이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의 순서에 따라 장을 나눌 수 있다. 1장은 보복의 결정이고,2장은 보복의 내용이다. 그리고 3장은 보복의 이유이다.
본서의 최고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타나 있다. 이는 진조하심이 있다는 것과 그 진노의 이유를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형태까지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읽음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애정을 대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심오한 진리는 결코 가리어지지 않는다.
본서는 성경전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와 일치이며 본서 자체만으로도 그 계시를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 모든 선지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진노를 목격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또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도 목격하였다. 우리가 이 모든 말씀을 주의 깊게 읽으면, 특히 본 나훔서를 주의 깊게 읽으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유가 결국 그의 사랑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놓고, 오직 주님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찬송가 가사 식으로만 주님을 생각한다.
온순하고 온화하며 유순하신 예수.
이것은 주님에 대한 옳은 표현이긴 하지만 진리의 전부는 아니다. 구약의 어떤 선지자도 예수께서 하신 것만큼 깜짝 놀랄 만한 말을 하지는 못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는 우리가 위의 찬송가를 가르쳐 주는 아이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그는 분명히 "온순하고 온화하며 유순하신 예수"였다. 그는 아이들을 사랑하셨다. 그는 이처럼 아이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어린 아이를 실족케 하는 것보다는 연자 맷돌을 메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고 선포하셨다. 또한 그는 한 성읍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신 분이셨다. 그러나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그는 그 성읍의 운명을 천명하셨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23:38)
우리가 본문의 8절까지를 읽으면, 나훔이 본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밝히고 있는 뛰어난 말씀의 조합을 대하게 된다. 각 선지자들은 하나님에 대해 약간씩 다른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를 잘 조합한다면,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 이사야는 보좌에 오르신 하나님을 보았다. 하늘이 그의 보좌이며, 땅이 그의 발등상인 하나님을 보았다. 에스겔은 구르는 바퀴와 살아 있는 생물들 속에서 하나님을 보았다. 예레미야는 진노의 하나님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밝히고 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육 당 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렘 9:1). 나훔이 본 하나님의 모습은 본서 서두에 나타나 있다. 이것들을 모아 보자."투기"(jealous),"보복"(avengeth),"진노"(wrath),"노"(anger),"분노"(indignation),"진노"(fierceness),"진노"(fury). "노함"(anger)에 대하여 히브리어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용어가 본서의 서언에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끌게 한다. 이 용어들을 잠시 살펴보자. "투기"(jralousy)의 원뜻은 격렬한 감정적 혼돈이다. 이는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이다. 질투는 언제나 진노의 결과이다. 이 진노는 사랑이 잘못됨에서 오는 것이다. 배신에 대한 감정적인 반감이 바로 이 투기이다.
이 용어에 바로 이어 나오는 것이 "보복"(avengeth)이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의지적인 것이며, 활동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보복은 천벌이지, 앙갚음이 아니다. 천벌과 앙갚음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함은 거의 언제나 앙갚음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으시다. 하나님의 노함은 천벌이다.
"진노"(wrath)는 히브리어로 단순히 한쪽 편으로부터 다른 편으로 건너감을 의미하는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태도와 활동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심판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기이하신 행동"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즉, 이는 하나님의 마음, 그의 소망, 그의 목적, 그리고 그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진노에서는 불가피한 원인이 있다. 다음에 우리는 거의 같은 의미의 "노"(anger)와 "분노"(indignation)을 대하게 된다. 이 둘은 각각 활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진노의 표현을 가리킨다.
그 뒤에 나오는 "진노"(fierceness)는 타오르는 것을 의미하며 또 다른 "진노"(fury)는 뜨거움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을 분명히 기계적이며 인위적인 구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선지자가 시종 사용한 용어인 여호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이름을 통해 인간에게 나타나신다. 진노를 발하고 노하시는 이는 바로 이 하나님이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는 2절에서 세 가지 모습을 본다. 이는 또 6절에서 8절까지 세 가지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1:2). 이는 활동적인 격정을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이는 같은 것의 다른 면이다. 즉, 이것은 격정에서 나오는 행동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말씀은 무엇인가.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다스리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며, 이 세 가지 언명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격정의 결과라는 사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특이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선지자는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선포로써 그 설명을 시작한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죄인을 결코 멸하지 아니하시느니라(1:3)
그는 가장 강력한 성격의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호와의 길은 회리바람과 광품에 있고." 하나님의 응답은 저항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의 말씀을 주의깊게 살펴보자.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존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1:7) 이는 니느웨에 관한 말씀이다.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첫째, 하나님의 진노는 행동으로 진전하는 사랑에서 나온 격정이다. 우리가 본 선지서를 계속해서 읽으면, 니느웨가 어떤 도성이며, 니느웨가 무엇을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니느웨는 주변의 모든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듣고 있었다. 이는 니느웨가 전제적 압정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니느웨는 건방진 오만함으로 모든 종류의 잔혹한 행위를 하였다. 여호와는 갇힌 자의 외침을 들으셨다. 니느웨에게 억눌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니느웨를 향한 노를 발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데, 니느웨가 바로 그 증거였다. 백 년 전에 선지자 요나는 마지못해 하면서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었다. 그때 니느웨는 회개하였었고, 하나님은 기다리셨다. 그 사이에 니느웨는 다시 자신의 회개를 돌이키는 가증스런 죄악을 범하였으며 잔악한 행위를 계속하였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니느웨에 임하게 되었다. 선지자는 이어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환상을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 노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하는도다(1:11).
이는 역사적 언명이다. 그가 행한 행위는 이사야서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산헤립을 중심으로 한 니느웨의 죄, 즉 하나님을 향한 니느웨의 죄였다. 그 결과는 그 성읍에 명백히 임하였다. 3장을 읽어보자.
화 있을진저 피 성이여 그 속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휙휙하는 채찍소리. 굉굉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살육 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는 마술의 주인 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을 인함이라. 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그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3:1-4). 바로 이것 때문에 여호와는 "내가 네 대적이 되어서"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는 노하셨다. 이는 통치자가 하나님의 뜻에 거스려 자고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그 결과로 백성들을 가혹히 다루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통치자는 압제자가 되며 잔혹해지는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비참함과 황폐함이 따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통해 어떤 이들은 은혜를 입기도 한다. 바로 억압당하던 자들, 짓밟히던 이들, 억울함을 당하던 이들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오래 참음 후에 이 성읍을 향해 발하여졌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하자. 이때는 이미 희망이 사라져 버린 때이다.
너의 다친 것을 고칠 수 없고 네 상처는 중하도다(3:19).
불의의 잔이 이미 넘쳐흐르기 때문에, 니느웨가 넘어져도 이를 위로할 자는 아무도 없다.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정당한 것임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일단 하나님의 진노를 발하시면, 이는 완벽한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지자가 기록한 니느웨에 대한 시적 기술이 실제 역사 과정을 통해 실현되었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하자. 우리는 이 성경적 예언 말고도 역사적 설명을 잘 알고 있다. 데오도루스 세쿨루스(Deodorous Seculus)는 강물이 대적할 때가 되어야 니느웨가 멸망하리라고 예언하였었다. 때가 되매 강이 범람하여 둑을 무너뜨리려 20스타디아(stadia)의 제방을 쓸어가 버렸다. 광포한 강물의 범람에 의해 니느웨는 멸망하였다. 역사가들은 이를 단순히 불운에 의한 강의 범람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행위임을 안다. 그는 강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이 말씀은 하나님에 관해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은 곧 그의 진노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라는 점이다.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는 진노일 수 있다. 사랑은 진노이다. 오늘날 비참함과 유혈, 그리고 잔인함과 잔혹,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침묵하며 고분고분히 비위나 맞추고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비위나 맞추고 있다면, 하나님이 노하시리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인간성이 짓눌리고 훼손된 곳에는 언제 어디든지 하나님의 진노가 분연히 임한다. 우리는 이를 주님의 말씀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7).
나훔서는 놀라울 정도로 명쾌하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죄악에 대해 밝히고 있다. 첫째는 교만의 죄이다. 이는 자만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 교만은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전혀 생각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하나님은 교만에 대해 언제나 노를 발하신다. 이는 교만이 낳는 결과 때문이다. 또 하나님의 진노는 언제나 어떤 형태든 잔혹함이 있는 곳에 나타난다. 오래 참으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는 가중된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29:1).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선지자의 분명한 선포로 돌아가 보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로 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1:7)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언제나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의로움과 그의 사랑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우리는 다시 한 번 시편 기자의 말씀을 듣는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시2:12).
하박국(Habakkuk)
1. 명칭 : (qWQb'j}, Habakkuk) 「포옹」
그림설명 / 하박국 사본 : 1947년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중에 하박국서 주해가 발견되었는데 이 사본은 그 중의 일부이다. 이스라엘미술관 소장.
어떠하든 하박국이 활동한 시기는 유다왕국의 암흑시대이었음이 분명하다.특히 유다 왕 여호와김은 폭군으로 백성들을 탄압하고 무죄한 사람들을 죽이고 자기만족에 도취해있던 왕이다. 그리하여 나라 안은 부정과 착취와 죄가 횡행하였으며 악인이 흥청거리고 의인이 멸시를 받는 어두운 시기였다.
2. 내용과 주요사상
하박국은 대담하게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으로 그의 예언은 시작한다. 하나님은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이러한 점에서 하박국은 이스라엘의 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기도 한다.그의 질문의 핵심은 왜 하나님의 정의는 이렇게 악하고 부패한 시대와 사회와 인간들에게 시행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의로운 하나님은 의인과 또 의로운 백성에게는 번영의 상을 주시고 악인과 악한 민족에게는 형벌을 주신다고 유대인들은 믿고 있었다. 이러한 상선벌악의 사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하므로 하박국의 의문은 당연 한 것이다. 하박국은 유다 왕국의 무죄한 백성들이 왜 앗수르인들에게 특히 자기 나라의 악한 왕에게 까지 심한 고난을 당하여야 하는가? 라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은 불의한 백성과 왕들은 반드시 벌을 주고 징계할 것이라고 대답해 주신다. 갈대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채찍이 되어 범죄 한 유대 민족과 왕들을 벌 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하박국은 그의 의혹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즉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벌하시는데 있어서 바벨론을 사용하시는가? 이스라엘의 불의를 벌하기 위하여 바벨론의 더 큰 불의를 용서하시는 것은 과연 하나님의 도리인가? 실로 하박국은 모든 철학적 세계관과 종교적 세계관의 중심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이에 대한 궁극적 대답이(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합2:4)는 것이다.
3. 내용 분해
1. 왜 하나님은 악이 승리하도록 방임하시는가? 합1:1-17
1) 첫째 질문 합1:1-4
2) 사납고 성급한 백성 합1:5-11
3) 둘째 질문 합1:12-17
2.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합2:1-20
1) 성루에서 들려오는 대답 합2:1-3
2) 다섯 가지의 화있을진저 합2:4-20
3. 하박국의 기도 합3:1-19
하박국(Habakkuk)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신앙의 문제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7,18,1:1-6,2:1-4,3:1,2:16-19
이 글이 뛰어난 문장이라는 데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이 글에는 뛰어난 운율과 생생한 묘사가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묘사된 상황과 저자의 체험간의 놀라운 대조이다. 묘사된 상황에 다시 한 번 주의를 기울여 보자.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다. 밭은 황폐해 식물이 없다.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 이상이 배경이다. 여기에 바로 이어서,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찬미자의 노래가 시작된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사진설명 : 예루살렘의 북쪽 산지에 있는 한 망대.
이 모든 상황은 가장 불행한 사람에 대한 묘사이고, 이시는 가장 음울한 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자는 행복하고 기쁨에 넘쳐 있다. 그러므로 슬픔의 노래는 찬송의 서곡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우리는 이와 같이 자문하게 된다. 이 사람은 광신자인가? 그는 속았는가? 아니면, 그는 이 세상이 전혀 알지 못하는 지혜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곧 이것이 지고한 지혜의 노래라는 사실과 찬미자는 삶의 참된 비밀을 소유한 철학자라는 사실을 단번에 확신케 된다. 먼저 찬송이 있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두 번째로 그가 확신을 가진 이유를 조사해 본 후, 마지막으로 그가 누린 기쁨을 알아보자. 인간의 체험적 측면에 관한 이 하박국의 예언의 전체적 가치는 이 찬송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밝혀져 있다는 데에 있다. 즉 하박국은 이 승리의 기록으로 본서를 시작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나니 어느 때 까지 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1:2-4). 그는 이렇게 시작하였으나, 놀라운 기쁨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서는 그것이 하박국이 백성들에게 행한 설교나 설교문이 아니라는데 특징이 있다. 이는 엄밀히 말해 이야기이다. 이 점은 요나서와 마찬가지이다. 요나서 역시 요나에 의해 기록된 이야기였다. 요나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였었다. 하박국서는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한 또 하나의 책이다.
절망이 나타나는 이 서두의 질문 후에, 저자가 찬송에 이르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이 과정에는 세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나타난다. 첫째는 그가 매우 솔직한 의심을 통해 확신의 찬송에 도달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가 성루에서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께 물음을 통해 찬송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가 성루에서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께 물음을 통해 찬송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가 솔직한 의심을 표현하고 기다리며 바라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삶의 가장 깊은 비밀을 드러내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 그는 의심에 싸여 있었으며, 이를 매우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굉장한 무질서 속에 살고 있었다. 앞에 기록된 문장들이 애를 매우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심적 태도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면, 또 이를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셨다. 즉 그에게 하나님은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잔혹함이 만연되어 있었으며, 범죄가 관치고 정욕이 도처에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활동하시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물음의 요지는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 리이까"이다. 이 "어느 때 까지 리이까"라는 말에는 근처에 있는 믿음이 드러난다. 그러한 한편 거기에는 절박한 의심 또한 명백이 드러난다. 하나님이 이 끔찍한 상황 중에 아무것도 행치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심정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믿음의 사람들도 종종 이러한 질문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또한 매우 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대에 대해서도 이러한 난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하박국이 이 질문을 바로 하나님께 하였다는 점이다. 그러한 상황 하에서는 이 문제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 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여전히 어둠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하바국은 이 문제를 하나님께 물었다. 이와 같이 그는 솔직한 의심과, 피할 수 없는 심적 번민을 겪으며 하나님께 물었던 것이다.
이 솔직한 하박국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 하나님은, 비록 그의 종은 하나님의 활동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자신이 활동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하나님 자신은 무엇인가를 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가 하박국에게 말한다 해도 하박국이 믿지 못할 일을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 하나님이 하박국에게 제일 처음 하신 대답은 매우 부드러운 말씀으로 여겨진다. 이 말씀을 하신 후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하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하박국이 살아가면서 폭력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음과 임박한 침략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음에 대해, 갈대 안에 의한 이 위협적인 침략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그의 통치 활동은 자신의 백성을 다루시기 위해 그들의 외부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때, 하박국이 마음속에 가졌던 생각을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이는 분명히 나의 지각을 뛰어 넘는 일이다.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갈대 안을 사용하실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활동의 정규적인 범위를 벗어나 교만하고 잔혹한 자들을 사용하실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박국이 파수하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하였을 때는 그의 삶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었다. "내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기다려서 알아보리라." 이것이 본서의 전개 과정 중 두 번째 단계였다. 그는 접근하는 적을 보았다. 그는 적들이 하나님의 통치 하에서 접근하리라는 것을 들었었다. 하나님이 우리가 언제나 그 완전한 의미를 제대로 인용치 못하는 중요한 말씀을 통해 하박국에게 삶의 비밀을 알려 주신 것은 바로 그가 망루에서 기다리던 때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여기에는 대조적인 면이 나타난다. 이것을 조심스럽게 해석해 보자. 이 말은 "갈대안인에 대한 너의 생각이 옳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다. 그 민족은 교만하다. 그것은 하나의 생활양식이며 태도이다. 이와 대조되는 태도는 "의인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다. "의"는 분명히 옳은 번역이긴 하지만 그 의는 반드시 믿음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의인이 사는 것은 바로 믿음에 의해서라는 선언이다.
여기에는 교만과 부정직함의 결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멸망하리라는 것이다. 반면에 의인은 산다. 이처럼 이 말씀을 통해 하박국은, 종국에는 반드시 멸망할 생활양식과 반드시 영속할 생활양식 간의 대조를 정면으로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박국이 찬미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일 직후였다. 그 찬미의 표제를 살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시기오놋(hn:yOG:vi 노래, 시편 7편의 제목에 사용됨, 모호한 의미)에 맞춘 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3:1)
써틀(Thirtle) 박사는 시가와 그 표제에 관한 뛰어난 저서에서 시기오놋이라는 말은 단순히 "커다란 외침"을 의미한다고 말하였다. 성경에서 이러한 표제로 시작하는 시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시편 7편이다. 표제는 시와 노래의 특성을 표현키 의해 붙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미는 커다란 외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이 외침의 성격을 언제나 주변 맥락을 통해 이해하여야 한다. 시편 7편의 외침은 번민하는 인간의 외침이었다. 그런데 여기의 외침은 기쁨에 넘친 인간의 외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하박국이 그러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에 주의하면,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자신의 의문에 대해 솔직했었다. 그래서 그는 성루에서 기다렸었다. 그 다음에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렸고, 그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는 삶의 참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의 슬픔을 즐거운 송가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에 대한 확신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증은 모든 역사를 통해 발견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이 경우에서, 즉 하박국이 속한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에서 그렇게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볼 때 그는 모든 것이 파괴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실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때,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최초의 기적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당연히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박국이 새롭게 깨달았던 사실이 바로 이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 하나님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혼돈이 질서를 찾게 되었다. 오늘날 또한 황무하고 메마른 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깨닫게 되면 다음과 같은 확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사35:1).
하박국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근원으로부터 양식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나 사막에 있었다. 거기서 그들은 필요로 하는 모든 것, 즉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물을 구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자기 백성의 역사로부터 하나님이 적은 것을 늘리실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적은 것이 많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광야의 경험이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선지자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한 여인의 체험이었다. 통의 가루 한 움큼과 병에 남아 있던 기름이 부족함이 없이 불어났었다. 더 나아가 그는 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양식 없이도 생명을 보존시키실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모세는 산에서 40일을 금식했고,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40일을 금식했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의 열매가 없고 밭에 식물이 없으며 양과 소도 죽어 버렸다면, 남아 있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바로 하나님이 계실 것이다. 이것보다 더 심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떠한 새로운 것도 창조치 않으시고, 감추어진 근원으로부터 아무것도 공급치 않으시며, 적은 것을 불리시지도 않고, 음식 없이 지낼 수 있게 하시지도 않아, 우리가 쇠약해져 죽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도 우리는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자신을 거두어 물러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에게는 완전한 충만함과 큰 만족이 넘치는 기쁨,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하박국의 송가는 욥의 위대한 외침과 조화를 이룬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소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변백하리라(욥 13:15).
마지막으로 하박국이 누린 기쁨을 살펴보자. 히브리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여호와 앞에서 기쁨으로 뛰어 놀리라. 내가 빙빙 돌리라." 그는 너무 기뻐서 들뜬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그는 너무 기뻐서 춤추며 주위를 맴돌며 외치고 있다. 그의 기쁨이 넘쳐흐른다. 따라서 그는 오직 그러한 말로서 밖에는 자신의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그러한 체험을 누리게 됨이 바로 "여호와"로 인한 것, 또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한 것임에 주목하자. 이는 상황의 결과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승리의 결과이었다.
이처럼 기쁨에 이르는 과정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그의 의심을 표명하게끔 북돋아 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었다. 따라서 자신의 의심을 바로잡음으로써 그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있어 이 이야기의 가치는 분명히 드러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바로 "어느 때까지"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날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서신을 통해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벧후1:19) 이 위대한 예언의 말씀에 있는 모든 것의 확증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리라"(빌4:4) 라고 썼던 이유이다.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는 또 말한다. "그리고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하나님에 관한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그는 이 세상이 창조될 때, 창조 사역에 참여하셨다. 그는 감추어진 근원으로부터 주실 수 있었으며, 떡 다섯 덩이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처럼 적은 것을 많게 불리실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여호와로 인해 기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주변 환경은 가혹할 뿐이다. 우리는 횡포와 잔학, 그리고 압제와 악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활동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고요히 하나님께 귀 기울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박국에게 말씀하셨던 말씀을 들려주신다. 비록 우리는 이해할 수 없고, 알 수도 없지만 하나님은 활동하신다. 때대로 언약 밖에 있는 이들에게 역사하시며 통치하시는 이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는 언제나 하나님의 목적의 궁극적인 실현을 위해서 사용될 뿐이다.
가난한 자와 부정적인 자가 멸망하리라는 것은 오늘날도 사실이다. 또 믿음이 있는 자가 살아남으리라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기쁨은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확신에 비례하다. 또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그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비례한다. 찬송은 그러한 지식과 확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카우퍼(Cowper)에게서 우리 시대의 하박국의 송가를 들을 수 있다.
뭇 성도 찬미할 때 한 빛이 비치니
큰 은혜 베푸시는 주님의 역사라
우리가 낙심할 때 또 힘을 주시니
비바람 그친 후에 햇빛이 비친다.
저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못 맺고
논밭이 메마르고 양떼가 없어도
주 함께 계시오니 언제나 기쁘고
주 안에 사는 동안 늘 찬송하리라.
스바냐(Zephaniah)
1. 명칭 : hy;n]b'v](shebanyah),Why;n]b'v] (shebanyahu)[여호와는 데리고 돌아오신다].
본서의 습1:1을 보면 스바냐는 어느 예언자보다도 긴 계보를 소개하고 있다.대개 아버지 밖에 소개하지 않고 있는데 스바냐는 4대조까지 소개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그는 명문가의 출신이다. 그는 히스기야 왕의 현손인 것이 거의 틀림없다. 스바냐는 유다 왕 요시야 때에 활동한 예언자인데(습1:1)요시야 왕의 부흥기 조금 전에 본서의 말씀들을 외친 것 같다. 그 이유는 습1:4-6, 습8-9, 습12, 습3:1-3을 보면 백성의 도덕과 종교의 상태가 아주 낮은 것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2. 내용과 주요사상
본서는 멸망으로 접근하여 가는 조국에 대한 경고이다. 본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 이며 중심 사상은 심판이다. 스바냐는 백성들의 죄 때문에 그들의 조국에 임박한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고 내다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진노의 날을 예고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차 구원도 잊지 않고 예언하고 있다.
그림설명 / 최후의 심판(중앙부) : [최후의 심판] 주제로 한 그림은 바이든이나 메물링 을 비롯한 초기 네덜란드의 회화에 적지 않다. 이들 작품은 저주받은 자에 대해서는 축복받은 자를. 지옥에 대해서는 천국을 징벌에 대해서는 구제를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해 보쉬에게 있어서는 하나님도. 그 곁에 소환된 지복의 사람들도 보조적 존재일 뿐이며 그밖의 사람들은 이 미 벌을 받은 자들의 세계이다. 성악 설적인 입장에 있는 보쉬의 세계관. 인간관의 표명일 것이다. 패널.유화.중앙 163.7*127cm. 좌우(각) 167.7*60cm. 비엔나 미술 아카데미소장.
3. 내용 분해
1.예루살렘에 임할 심판 습1:1-18
1) 파멸의 선언 습1:1-6
2) 여호와의 날의 심판 습1:7-18
2. 여러 나라에 임할 심판 습2:1-15
1) 회개에 대한 마지막 경고 습2:1-3
2) 블레셋에 대한 심판 습2:4-7
3) 모압과 암몬에 대한 심판 습2:8-11
4) 구스와 앗수르에 대한 심판 습2:12-15
3.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을 이유 습3:1-8
4. 구원의 약속 습3:9-20
1) 여러 나라에 대한 약속 습3:9-10
2)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한 약속 습3:11-13
3) 회복된 이스라엘의 황금시대 습3:14-20
스바냐(Zephaniah)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하나님의 엄하심과 선하심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1:2,3:17, 습1:1-6,3:14-20, 벧후3:10-18).
이 두 말씀을 택한 이유는 이것들이 스바냐서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대조적인 면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조는 하나님의 엄하심과 선하심에 대한 계시로 묘사될 수 있다. 스바냐는 우리에게 공포와 부드러운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조는 대단히 뚜렷하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이 하나님의 두 가지표현이 한 사람에 의한 것일 수 없다고 주장하여 왔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들 자신의 이해에 입각하여 스바냐서를 분할해 왔다.
사실상 이 특성들의 결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바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교회는 언제나 요한을 사랑의 사도로 언급한다. 이는 분명히 그러하다. 여기에 덧붙여 예수께서 요한과 그의 형제를 보아너게 즉 우뢰의 아들이라고 부르셨다는 사실도 상기해 보자. 요한의 글을 잘 읽어 보면, 상당히 자주 반복되어 거의 핵심어라고 불리 울 수 있는 두 가지 단어를 그가 사용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해 그 하나는 "사랑"이고, 또 하나는 "계명"이다. 그의 저작을 통해 그는 사랑의 가치와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율법 혹은 계명의 중요성에 대해 요한보다 더 조리 있게 나타낸 이가 없음도 사실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그와 똑같은 것 즉 선하심과 엄하심 다시 말해서 공포와 자비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우리 주님의 가르침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완벽하게 발견된다는 사실을 경외심을 품고 상기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음의 두 가지 말씀을 하셨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화 있을 진 저, 독사의 자식들아."여기에서 우리는 또다시 엄하심과 선하심 곧 공포와 부드러운 사랑을 접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예언적인 말씀이 주로 민족적인 차원으로 적용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민족이 그 구성원인 개인들의 집합체임을 알았던 것도 사실이다. 여하튼 그들의 예언 대상이 민족이었다는 사실에서 보면 거기에는 개별적인 성격이 들어 있으므로 이제 우리는 그러한 방법으로 그것을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스바냐서의 핵심은 분명히 "여호와의 날"이라는 말씀에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주장을 펴 나가면서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신약에서나 구약에서 그 말씀을 발견할 때 언제나 선지자 혹은 사도가 하나의 대조를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조는 언제나 인간의 날과 하나님의 날 간의 차이점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날은 언제나 실패와 파멸의 날이다. 그래서 이들 예언적이고 사도적인 전달자들은 인간의 날과 여호와의 날 간의 차이를 뚜렷하게 보인다.
인간의 날은 여호와께서 인내하시는 날이다. 그 동안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삶의 철학을 다 이룰 때까지 내버려 두신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그에게와 그의 거룩한 뜻에 그리고 그의 영원한 사랑의 타오르는 정열에 대항해 온 모든 것에 대해 심판을 행하시는 날이다.
지금은 인간의 날이다. 우리는 인간의 날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의 궁극적인 의미에서 볼 때 여호와의 날은 올 것이다.
스바냐의 방법대로, 뿐만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의 방법대로 해석해 볼 때, 이 구절의 영구적인 가치는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날에는 결국 하나님 자신에 관한 것들이 심판 과정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그의 날에 스스로를 민족들에게 알리사 그들의 삶을 정화시키며, 그들에게 보다 깨끗한 언어를 주실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모든 사람들 심지어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도 그에게 제사를 드리러 오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궁극의 날이 임하는 것은 그의 참을성 있는 기다림이 끝나는 데에 있는 것으로, 인류의 궁극적인 복지와, 사랑이라는 그의 거룩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우선 하나님의 엄하심은 다음의 말씀에서 분명히 선포되고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1:2)하나님은 인간의 생활과 활동을 관찰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인간의 활동에 한계가 있음을 선포하시며, 또 그가 모든 것을 완전히 진멸하실 때 그 날과 그 시가 오리라는 것을 선포하신다. 조금 뒤에서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1:12).
이 말씀 속에는 모든 악하고 죄악 된 일들의 근본 원인이 드러나 있다. 인간은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선지자들이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선언한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러한 것들과 아무 관련도 없다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러한 것들과 아무 관련도 없다고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복을 내리시지 않는다. 그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찾아 죄를 벌하려 하지 않으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외면당하신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될 때조차도 그의 활동은 부정된다. 사람들은 그의 활동을 무시하고 살아나간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스바냐가 요시야시대 그의 사역을 하였다는 것은 시선을 끈다. 요시야 시대는 분명히 개혁의 시대였다. 그는 매우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더욱이 그의 의도는 여호와를 섬기려는 것이었다. 그는 온 정성을 다해 이를 행하였다. 그런데 스바냐가 이 개혁에 대해 언급치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것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면, 요시야가 마음속으로는 개혁을 계획하면서 훌다라는 여선지자에게 물으러 갔음을 알게 된다. 요컨대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하라. 네 의도는 거룩한 것이다. 네 손을 거두지 말라. 그러나 이것이 영구적인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부분적인 개혁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심령은 없으리라." 분명히 요시야의 지휘아래 개혁은 수행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심령은 없었다. 사람들은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은 수동적이실 뿐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나는 종종 이 옛 선지자들은 진부할 뿐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곤 한다. 인간은 온갖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매우 솔직하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하나님의 덕을 입은 적이 전혀 없다. 나는 스스로 진로를 개척해야 했으며, 그래서 스스로 내 위치를 구축해 왔다." 이 말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대단히 많은 독특한 생각을 함축하고 있다. 그에게 한 나의 대답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지난 30년 동안 의사에게 얼마의 돈을 지불하였는가를 물었다. 그는 미국인이었다. 그의 대답은 단 1센트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런데도 당신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요." 하나님의 엄하심은 그가 인간의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하는 이 모든 활동을 끝내실 때 그날이 임하리라는 사실에서 드러날 것이다. 그의 심판은 결국 하나님과 그의 통치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뒤따르는 황량함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선지자는 이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대단히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모두 찌끼 같이 가라앉아 있다. 즉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은 인간의 여러 활동 속에서의 방심으로 나타난다. 선지자는 하나하나의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성 - 물론 인간은 언제나 도성에 포함되지만 - 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3:2).
이 모든 것의 결과가 그 다음에 명백히 드러난다.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이리요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다(3:3). 하나님을 대신하여 의로운 통치를 하는 것은 맡은 바 기본적인 임무인 방백과 재판장,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모두 철저하게 실패하였다. 하나님의 엄하심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는 말씀을 통해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점은, 오늘날 인식되거나 언급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악을 행하시지도 않고 해도 끼치시지 않으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나를 설득시킬 수 있다면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를 거절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와 실패에 대해 무기력하시고 인간의 비위나 맞추는 분이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에 대한 아주 뛰어난 언명이다. 하지만 이 기간에 지나면 홍수가 밀어 닥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잊고 그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절한 이들에게 심판도 없고, 징벌도 없으며, 어떠한 신속하고 무서운 보복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를 설득시킬 수 있다면, 나는 엄청난 혼돈 이외에는 바로 앞에 있는 것조차 전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예언의 전부는 아니다. 이는 진리의 한쪽 면일 뿐이다. 이는 진리의 또 다른 쪽 면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잠시 처음에 인용한 두 번째 말씀으로 넘어가 보자. 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과거를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온 백성, 즉 불의를 행하거나 거짓을 말하기를 그만두고 속이는 혀를 더이상 놀리지 않았던 남은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다음의 말씀 속에 선포되어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이제 하나님의 공포의 선지자, 거룩한 하나님의 엄하심에 대한 선자지인 스바냐는 하나님의 심정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을 그는 하나님의 왕 되심에 대한 주장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하나님은 전능자이시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말이다. "그는 구원을 베푸 시리리."이는 하나님의 결심에 대해 선언하는 것이다. 그는 하실 수 있고, 하실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 곧 왕 되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그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는 능력이 있으시고,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영웅과 영웅 능력이 있으시고,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영웅과 영웅 숭배 "(Heroes and Hero Worship)라는 글에서, "궁극적으로 왕은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카알라일(Carlyle)이 아닌가. 이 힘의 능력은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고, 그의 전능하심이 흘러나가는 방향은 하나님 자신의 뜻과 의도에 따를 것이다.
하나님의 활동이 무엇인가는 "그는 구원을 베푸시리라"라는 말씀 속에 나타나 있다. 그는 불법에 따른 재난으로부터 구원을 베푸실 것이다. 즉 재난을 야기하는 불법으로부터 구원을 베푸실 것이다. 이때 이어서 매우 아름다운 장면이 나타난다. 이는 곧 모성애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즉 어린 자식을 팔에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나는 스바냐가 바로 이러한 모습을 목격하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어머니가 아이를 바라보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 여인이 너무 기뻐 아무 말도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결국 더 이상 잠잠할 수 없게 되어 갑자기 즐거운 노래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선지자가 본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구원을 베푸시고 나서 마치 어머니처럼 우리를 안고 자신의 사랑을 베푸시고 나서 마치 어머니처럼 우리를 안고 자신의 사랑을 만끽하실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노래를 부르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이며 부드러운 사랑이다.
이 모든 일의 결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을 통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자에게 슬픔 대신에 노래가, 아집 대신에 봉사가, 분산 대신에 연합이 임하게 된다. 인간과 우주의 안전은 바로 이 하나님의 성품의 양면에 달려 있다. 만일 하나님이 이 선지서에 표현된 것과 다른 분이시라면, 인간에게는 어떤 희망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엄하심을 믿고 그의 선하심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기뻐한다." 이런 면에서 베드로의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열심을 다하여 거룩한 삶과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 삶의 모든 행위가 그날의 도래를 촉진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미혹되고 우리의 신앙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따라야 할 것이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
학개(Haggai)
1. 명칭 : (yG'j'', Haggai) 「경절(慶節)」
스가랴와 동시대의 예언자로서 스가랴보다 두 달 먼저 사역을 시작하였다
파사의 고레스 왕이 주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하여 파사제국에 통합하고 정복한 모든 민족에게는 회유 정책을 썼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유의 종교를 믿는 것과 고국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 하였다. 이 정책은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 왔다. 그리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자들이 큰 희망을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어려움이 많았다. 15년간이나 성전 재건을 힘썼으나 결과는 실망적이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즉 다리오 왕 제2년(520년)에 두 위대한 예언자가 나타났다. 바로 학개와 스가랴이다. 에스라서에 의하면(스5:1, 스6:14)이 두 예언자의 활동의 결과로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번영하였다. 학개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짐작컨대 포로시기에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살다가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사람인 것 같다. 만일 이 가정이 옳다면 그는 바벨론에 있을 때 다니엘과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2. 내용과 주요사상
그림설명 / 성전을 재건하는 일꾼들 : 부르쥐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학개는 오직 성전 건축을 위해서만 책망하고(학1:1-11)격려도 한다(학2:1-9).본서에 영적 메시지가 약한 것을 혹평하는 학자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정치적으로 미약한 백성들을 격려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그런 연후에 백성을 영적으로 부흥시키고 민족적 단결과 결속을 꾀하며 선민의 긍지를 가지고 살게 하려고한 본서의 내용은 매우 귀중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본서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요 힘의 원천임을 밝히며 그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촛점을 성전 건축에 둔 것이다.
3. 내용 분해
1.성전 건축을 위한 호소 학1:1-15
1) 시기 상조론과 학개의 답변 학1:1-11
2) 백성들의 반응 학1:12-15
2. 성전의 영광 학2:1-9
3.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 학2:10-14
4. 좋은 시대에 대한 약속 학2:15-19
5. 여호와의 종 스룹바벨 학2:20-23
학개(Haggai)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상대적 가치 -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 (학1:4)
이 말씀을 통해 선지자 학개는 당시 사람들이 상대적 가치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실패하게 된 것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
성전은 황폐해 있었다. 아니, 15년 동안이나 계속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성전건축을 시작했다. 그러나 적들의 위협을 받기 시작하자, 이를 중지하였다. 해를 거듭했으나, 기초 석 이외에는 아무것도 선 것이 없었다. 또한 이때까지 작업장이 잡풀과 쓰레기로 덮여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 학개를 통해 그의 백성에게 임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일어나 성전을 건축할 것을 요구하셨다. 본문의 질문은 사실상, 성전 건축의 책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백성들이 한 말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들의 의무는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도다(1:2)
우리가 이 태도를 이해하기는 매우 쉽다. 왜냐하면 이 태도는 자주 되풀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을 끝내야 하기는 하지만 아직 그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하기를 매우 좋아한다. 영적인 기회가 이미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음속으로 그 기회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말에 대한 응답이었다. 본문에는 하나의 대비가 있는데 그것은 실로 3중적인 대비 즉 사람의 대비, 집의 대비, 상황의 대비이다.
사람의 대비에 있어 한 편은 지칭되어지지 않고 있는데,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칭되어 있다. 그들은 아주 명확하게 일컬어지고 있다.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이 말씀의 번역이 불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는 히브리어가 보다 잘 옮겨졌으면 무엇인가 더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여기서는 "너희" 라는 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바로 너희의 강조는 학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진정 누구인가를 상기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뛰어난 역사를 가진 백성,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가진 백성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 대한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백성이었다.
그 다음에 나타난 대비는 집에 대한 것, 즉 "너희의 집"과 "이 전"의 대비이다. "너희의 집"곧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그들이 안식과 수면을 위해서 들어가 쉬는 집, 그들의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반면에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만나기 위해 지정하신 장소였다.
그 다음은 상황은 대비이다. 그들은 "판벽의 집"에 거하고 있었다. 그 집은 갖은 방법으로 아름답게 치장된 집, 즉 비싸고 사치스런 집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15년 동안 상당한 번영을 누려왔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판벽한 집"을 건축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집"은 황무하였으며, 미완성인 채 버려져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은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전의 건축이 중요한 것임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보다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하는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악은 일반적인 것이었으며, 파괴적이고 간악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알기는 제대로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우선적인 일을 부차적인 것으로 미루었다. 물질적으로 그들은 성공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판벽한 집을 건축했다. 그런데 그때 고난이 닥쳤다. 따라서 전을 건축할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은 아주 그럴싸한 것이었다.
학개는 예언을 처음 할 때에, 그들에게 돌이킬 것을 권하였다. 그는 두 번 이상, 그들에게 먼저 자신들의 길을 살피고 일이 어찌 잘 안되는가를 살피라고 말했었다. 그들은 많이 뿌렸으나 거두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먹기는 먹었지만 배부르지 않았고, 마시긴 마셨으나 충족치 않았다. 또 그들은 입기는 입었으나 따뜻하지 않았다. 그들은 돈도 모았으나, 구멍 뚫린 전대에 모았다. 이는 매우 냉소적인 묘사이다. 아마 이는 실제 물질적인 상황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상황에 관한 묘사일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자신들의 길을 돌아보도록 명해졌다. 즉 그들은 산으로 가서 나무를 잘라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것을 명령받았다. 이는 오래 전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상대적 가치의 중요성에 관한 교훈 즉 먼저 하여야 할 것을 먼저 하는 것, 우선적인 것을 부차적인 것으로 돌렸을 때 오는 결과적 재난에 관한 교훈을 준다.
본문에 비추어 우리의 현대적 상황을 살펴보고 이러한 실패로 인한 일어날 재난에 관해 생각해 보자. 또 이 실패가 어떻게 고쳐질 수 있을까에 관해 생각해 보자.
이는 민족적,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삶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정의에 앞서 재물을 생각할 때, 인간보다 경제적 번영을 더 중히 여길 때, 그리고 하나님 이전에 인간에 더 집착할 때 민족적 삶에 있어 상대적 가치를 잊어버리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우리 민족의 삶에 인용될 수도 있다. 우리가 나라의 법전을 살펴보면, 아이들을 보호하는 법보다는 재산을 보호하는 법이 훨씬 더 많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경찰 재판소 기관지를 읽어보면 사람의 인격에 해를 끼친 사람에게보다 , 재물이나 재산상의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더 심한 벌을 가하시는 판결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최근의 우리 역사에 있어 이러한 문제가 많이 개선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아직 충분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별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 앞서 인간의 욕망을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얕은 생각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또 인간의 얕은 생각을 심화시키기까지 한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로 파악하고, 인간의 행복을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음을 깨닫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인간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이 광범위한 문제를 지나, 우리의 사회적 삶, 즉 인간과 인간 간의 상호 관계를 살펴보자. 우리가 사회적 활동의 이유를 영적인 곳에서 찾지 않고, 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에서 찾는 것은 사회적 삶의 기준에서 볼 때, 역시 먼저 하여야 할 일을 먼저 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삶의 조건을 삶의 특질보다 우선해서 생각할 때, 가치 혼돈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이 시대에 빈민촌 정비를 위해 행해지는 모든 활동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지만, 빈민들보다 빈민촌에 더 신경을 쓴다면 우리는 실패하는 것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예술의 영역에도 같은 진리가 적용된다. 나는 인간이 예술을 가져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우리가 예술을 낳는 정신적 능력보다 예술적 표현에 더 집착한다면, 우리는 축복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예술만을 낳게 될 것이다.
우리의 고민은 우리가 삶보다는 물질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물질에 대한 욕망에 거의 정복되었다. 또 물질은 종종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않았을수록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전체 사회 구조에 위험한 자기중심적 소유욕이다.
이제 개인적으로 적용시켜 보면, 우리는 사람이 삶보다 생존에 더 관심을 가질 때, 또 아침에 하는 생각과 낮 동안의 활동이 일시적인 것에만 집착하고, 영원한 것에는 태만할 때, 이는 먼저 하여야 할 일을 먼저 하는데 실패한 것이라는 점을 곧 알게 된다. 창조보다 휴양을 먼저 생각할 때, 오락을 자극적이거나 마취적인 것으로 생각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성경에 충만하기보다, 방탕함이 있는 포도주에 취하기를 더 열망할 때, 인간은 분명히 먼저 하여야 할 일을 먼저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보다 재물에 신경을 쓰고, 우리의 재산이 모든 것이고, 하나님의 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적 삶에 있어 이러한 태도의 결과는 파멸일 뿐이다. 나라는 죄의 굴레에 매어 있을 것이고, 비천한 노고에 시달릴 것이며, 악의 멍에를 목에 메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성의 퇴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민족적 삶의 마비는 반드시 재난을 초래한다. 어떠한 계획도 그 삶을 이끌기에 충분치 못할 것이고, 어떠한 힘도 역부족일 것이다. 우리는 거의 하나님을 잊었다. 또 우리는 언제나 그러하지는 않지만 대개의 경우에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또 하나님의 지시를 거역하곤 한다. 우리는 세노타프 성역(Cenotaph:런던에 있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사자 기념비)에 모여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지난 날 우리의 도움이셨던 하나님,다가올 날에 우리의 소망이시다.폭풍 속에 우리의 피난처,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시다.
노래만 이렇게 하고, 다가올 날에 있어 우리의 소망이 주님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위선자이다. 사회적 삶에 있어서, 우리가 먼저 하여야 할 일을 먼저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동물적 생활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비록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먹고 마시자, 내일은 죽고 말리라.
이는 때때로 한탄스럽게 말해진다. 또 이것이 사악한 동물주의의 표현임을 잊어버리고 부주의한 우스갯소리로 말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는 언제나,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삶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 만일 빈민가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을 전원도시에서 살게 하였는데 그의 성품이 옳지 못한다면 그는 전원도시로부터 다시 빈민가로 돌아가 버릴 것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태도와 행위는 사물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게 한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의 본질은 결코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장님도 그림을 소유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보지는 못한다. 귀머거리는 "메시아"곡에 귀를 기울일 수 있지만 들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틈 간 사이로 잡아 뜯어 손에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볼 수는 없다. 사람이 넓은 땅을 소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상대적 가치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땅을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각각의 심령에 적용시켜 보자. 먼저 하여야 할 일을 구별하고 행하는 데 실패하면 결국은 영적인 죽음에 이르게 되어 당연히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내 재물, 내 재물, 내 재물"한다. 그러나 그 사람을 몹시 조롱하는 한 음성이 들려온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학개의 처음 선포 가운데는 모든 비유적 표현이 적용되고 있다. 가난이란 수고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족함 없이 먹는 것은 배고픔이고, 끊임없이 마시는 것은 목마름이다. 따뜻함이 없는 입음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 구매력 없는 임금은 환상이고 낟알 없는 껍질이다. 또 그림 없는 틀이고 삶이 없는 삶이다.
그러면 치료책은 무엇인가? 해답은 간단하다. 상대적 가치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전이 먼저이어야 한다. 그의 영광과, 그의 은총, 그리고 그의 주장이 우선이어야 한다.
다음에 우리 자신과 우리 환경이다. 우리의 의존성과 우리의 의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최고의 치료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회복이다. 하나님 없이는 어떤 것도 선할 수 없다. 퀼스 (Quarles)는 기묘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던 것은 옳았다.
당신이 없다면, 땅에 생기가 없을 것이고,
당신이 없다면, 바다에 보물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없다면, 공기는 더럽혀질 것이고,
당신이 없다면, 하늘엔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누리게 되는 평안과 즐거움이 없다면,
나에게 땅, 바다, 공기 그리고 하늘이 무슨 의미를 갖겠습니까?
모든 것을 가졌어도, 당신이 없다면,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신이 없다면 나의 수고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당신만이 나의 기쁨,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당신만 있다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바다도 바라지 않고, 땅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또 하늘을 소유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이 없는 하늘이라면!
우리의 민족적 삶에 있어서, 정의가 수익이고 개개인이 재산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사회적 삶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이 더해지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개인적 삶에 있어서 그 삶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또한 최고의 것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비중의 참 의미(상대적 가치의 중요성)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민족적 차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우선이며, 사회적으로는 인간이 그가 살고 있는 상황보다 우선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육신보다 영혼이 우선이다.
이스라엘 시인의 말씀을 기억해 보자. 이스라엘 시인은 노래했다.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
까지 하더라(시132:3).
우리가 이러한 태도를 가질 때,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 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57:15).
스가랴(Zechariah)
1. 명칭 : (hy:r]k'z] , Zechariah) 「여호와는 기억하심」
1:1절을 보면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요 베레갸의 아들이다. 이 잇도는 바벨론으로부터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레위인 잇도(느12:4)일 것이다. 그렇다면 본서의 스가랴는 느12:16에 기록되어 있는 잇도 족속의 제사장 스가랴와 동 일인이다. 스가랴는 학개 보다 두 달 후부터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고 다리오 제4년(516년)까 지 일한 예언자 이다.
2. 내용과 주요사상
스가랴는 이스라엘 민족을 격려하는 책임을 다한 예언자 이다.그는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면 자기 민족은 영광된 미래를 가지게 되리라고 격려 하였다.그런데 이 일은 메시야를 통해서 오는 미래의 축복이라고 하였다.
그림설명 / 스가랴의 환상에 나타난 장면으로 스가랴와. 그의 환상을 설명해 주는 천사 및 한사람의 기사가 묘사되어 있다. 14세기 사본 삽화. 생 쥬느비에브 도서 관 소장.
이때에 북쪽의 사마리아, 서쪽의 아스돗, 남쪽의 이두메등 여러 족속이 새로이 재건되려고 하는 유다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그 부흥을 방해 하였다. 이렇게 안과 밖으로 가난과 역경 속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격려하며 종교를 부흥 시키고 국민을 결속시켜 국가를 재건하려고 노력한 학개와 스가랴는 위대한 예언자들이다.
3. 내용 분해
1.회개와 권고 슥1:1-6
2. 8 가지 환상 슥1:7-6:8
1) 첫 째 환상(네 사람의 말 탄 사자들) 슥1:7-17
2) 둘 째 환상(네 뿔과 네 공장) 슥 1:18-21
3) 셋 째 환상(척량하는 사람) 슥2:1-13
4) 넷 째 환상(대제사장 여호수아) 슥 3:1-10
5) 다섯 째 환상(등대와 두 감람나무) 슥4:1-14
6) 여섯 째 환상(날아가는 두루마리) 슥5:1-4
7) 일곱 째 환상(에바와 여인) 슥 5:5-11
8) 여덟 째 환상(네 병거) 슥6:1-8
3. 스룹바벨에게 메시야의 왕관을 씌움 슥6:9-15
4. 벧엘에서 온 대표단 슥7:1-8:23
1) 대표단의 질문 슥7:1-3
2) 스가랴의 대답 슥7:4-8:23
5. 메시야의 재림 슥9:1-12
6. 원수들에 대한 승리 슥 9:13-17
7. 하나님만이 비와 벌을 주심 슥10:1-12
8. 목자와 잡힌 양떼의 비유 슥11:1-17
9. 이스라엘의 승리 슥12:1-13:6
10. 민족의 정화 슥13:7-9
11. 여호와의 날 슥14:1-21
스가랴(Zechariah)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역
- 다가올 시대 -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슥8:5,참조 슥 8:1-17)
스가랴는 학개와 동시대인이었다. 두 선지서를 자세히 읽으면 스가랴의 초기 말씀이 학개의 말씀과 같은 시대에 선포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초기 활동에 있어서 메시지를 번갈아 가며 선포하였다. 또 그 모든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스가랴는 학개를 능가하였으며, 흔히 구약의 계시록 저자라고 일컬어져 왔다. 일련의 상징적 환상을 통해 그는 그 당시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았다. 우리가 본문으로 택한 장에서 우리는, 그가 모든 황폐함 뒤에 있는 회복을, 하나님의 징벌적인 심판 뒤에 있을 회개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돌이키심을, 그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가 세워지는 것을 보았음을 알게 된다.
때때로 옛날 히브리 선지자들은 환상을 통해, 다가올 영광 즉 아직은 임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임할 영광을 언뜻 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지막에 있을 조화에 대해서도 들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읍을 아득하게나마 보았다. 그들은 그 성벽을 보았다. 그들은 성읍이 건설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이루어질 상황들을 보았다. 내 판단에 의하면 그러한 환상들 중에서 우리가 택한 본문만큼 생생하고 완전하게 그 상황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없다. 스가랴는 성읍을 보았다. 그런데 이 성읍은 세상적인 질서 하에 있는 성읍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나이 탓으로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남녀 노인을 거기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다음의 것도 보았다.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나는 이와 같은 말이 대단히 의문시되던 시기에 태어나 자라났다. 나는 같은 또래의 나의 친구가 그리스도를 발견했을 때 교회가 마친 후 기쁨에 넘쳐 식탁 위에 손을 놓고 즐거워한 것을 기억한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쏘아 붙였다. "죠오지, 너 교회에 갔었지." 이는 단순하지만 상당히 시사적인 말이었다. 어머니는 교회에 갔던 소년이 영적 기쁨에 넘쳐 그러한 행동을 했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 지금은 분명 내가 말한 그러한 시대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그것은 노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이지 않은가?" 아니다. 선지자는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논다고 말했을 뿐이다. 더군다나 그는 그들이 거리에서 노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이는 더욱더 놀랍게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남과 동녀가 함께 장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그 말씀이 기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선지자 자신도 그 말씀에 놀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이렇게 말하였기 때문이다.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기이한 것이 그에게는 기이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동남과 동녀가 거리에서 같이 장난하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목표를 밝히고 있다. 오늘날, 내가 앞으로 있게 될 하나님의 성읍을 실제로 보기 원한다면, 나는 그것을 보기 위해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보다는 오히려 토요일 오후에 공원으로 가거나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장소로 갈 것이다. 나는 기도회에 참석하기보다는 운동장으로 갈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주일 예배나 기도회를 경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데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노는 것을 바라볼 때만큼, 앞으로 있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분명하게 볼 수 없다. 이 두 가지에는 분명히 모순되는 점들이 있지만, 정치학이나 경제학 또는 법학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뛰어 노는 아이들로 가득한 운동장에서 하나님의 이상에 대해 훨씬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옛 주석가들이 어떻게 성인들의 안전에 대한 계시를 본문에서 찾아냈는지를 살피는 것은 흥미롭다. 본문이 유아 인구의 증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이때가 평화로운 시대임을 보여 준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옳은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아이들 자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문제에 관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첫 번째 것은 본문이 아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본문은 아이들의 태도와 상황이 성읍과 국가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생각은 매우 명확한 것이다. 옛 선지서들에서 나라의 궁극적인 승리에 관한 말씀에도 아이들이 노는 것이 기록되어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으리라.(사11:6-8)
이처럼 어린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어린 아이를 동물원에 데리고 가면, 난간을 넘어 동물에게 접근하는 것이 위험함을 아이에게 설명하는 데에 어느 정도 어려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은 바로 아이가 원하는 바이며 아이들에게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고유의 본능이기 때문이다."논다"라는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러스킨은 이렇게 말하였다.
놀이는 자기 임의대로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 옳은 말이다. 직업상 자동차를 모는 많은 젊은이들은 그것을 고된 일로 여긴다. 하지만 자기 소유의 차를 모르는 젊은이들은 이를 즐거움으로 여긴다. 놀이는 언제나 일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심이 나면, 하루만 일을 쉬고 4살짜리 사내에든 계집애든 그들이 하는 대로 아침부터 밤까지 해보라. 그러면 놀이가 일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또 놀이는 일을 위한 준비를 의미한다. 아이들의 생활이 바로 이해되면, 아이들의 기본적인 능력 또한 이해될 것이다. 아이들은 일을 방편으로 노는 것이다.
죄송하지만 나 자신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겠다. 나의 놀이는 설교하는 것이었다. 나는 예닐곱 살 때 누이의 인형을 놓고 설교를 하였었다. 그것은 멋진 놀이였다. 나는 그 이후로 죽 설교를 해왔다. 이는 설교가 하찮은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그것은 지금까지 대단히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으며, 때때로 번민과 영적 고통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노는 시간 같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또 한 가지 것은 소년, 소녀들이 함께 장난하는 것으로 선지자에게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 체제와 청소년 단체를 통해 남녀를 구분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또 가족 간의 연대를 보면 소년들의 힘이 소녀들을 돕고, 소녀의 세련됨이 소년의 거친 품성을 순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자세히 다룰 문제는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놀이는 일을 위한 준비라는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우리는 어른들을 심각하게 하는 일을 아이들이 놀이로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좀 슬픈 예지만, 장난감 상점에는 장난감 병정, 장난감 대포, 장난감 비행기 등이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읍에 있어서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왕이 되고 종이 되는 놀이를 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가 서고 난 초기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대장간에서 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 것이고 창을 잘라 옷걸이를 만들 것이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대로 논다는 것이다.
이제 이것이 도래할 왕국의 공공의 생활에 관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선지자는 왕국이 성읍 곧 큰 성읍으로 임할 것임을 보았다. 또 아이들이 성읍의 거리에서 장난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어떻게 공공 생활의 시금석이 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두 가지 말로 쉽고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성읍에서 그 거리가 장난하는 소년, 소녀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곳이 소년, 소녀들이 놀기에 좋을 것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소년, 소녀들이 거리에서 노는 것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암시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읍에서의 권위와 생활에 관한 삶의 질서를 알 수 있다. 첫째, 거리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장소이다. 이 말의 의미를 다른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성산에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사65:25).
그 거리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아이들에게 적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읍에는 소홀한 부분이 있을 수 없다. 소홀함으로 아이들이 신체적인 위험을 당할만한 것은 전혀 없다. 노출된 하수구도 없을 것이고, 교통사고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읍에서는 아이들의 안전이 가장 우선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면 모든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리라. 또 정신적으로도 아이들에게 해를 끼칠 것은 전혀 없을 것이다. 불건전한 책은 판매되지 않을 것이다. 좋지 않은 포스터도 없을 것이고, 비속한 그림도 아이들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읍에서도 아이에 대한 사랑이 소유욕보다 더 클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 대한 영적인 관심 또한 최고일 것이다. 소자를 실족케 하기보다는 연자 맷돌을 목에 매는 것이 더 나으며, 소자를 해치는 자는 깊은 바다에 빠지리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더욱이 분명한 것은 가정생활이 제대로 되어야 거리로 나온 아이들이 거리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답은 오직 한 가지이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왕국이다. 하나님의 권위 곧 그리스도의 권위로 옷 입은 하나님의 왕국이다. 그리스도가 왕이 될 때, 성읍의 모든 권위가 그의 지도와 통치하에 있게 될 때, 그 왕국은 깊은 밤의 어둠이 걷히고 새벽 동이 트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의 모든 거리가 아이들의 놀이터일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성읍은 임할 것이다.
오늘날 아이들의 안전은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의 영이 얼마나 활동하시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반세기 동안 아이들의 안전도는 크게 향상하였다. 나는 런던을 거닐며, 수업이 파한 후의 거리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학교 근무 근처에 경찰관이 서 있었다. 경찰관이 그에게 매달리는 두 세 명의 아이들 손을 잡고 웃으며 길을 건네주고 있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였다.
이제 우리가, 아이들에게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이르렀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도시 문제가 그리스도인의 생각과 활동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배교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아는 것 뿐 만 아니라 그의 교훈과 이상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가정생활에 대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바로 아이들 자신 때문에 거리가 더럽혀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빈민가뿐만 아니라 교외에도 적용된다. 이때 그에 대한 비난은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하나님의 왕국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집에 걸어 놓고 있는 말씀 속에 드러나 있다.
그리스도는 이 집의 머리이시며,모든 식사 때에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고,모든 대화를 말없이 듣는 분이시다.
이 말씀이 지켜지는 가정의 아이들은 밖에 놀러 나가서도 친절할 것이고, 이기적이지 않을 것이며 깨끗할 것이다. 아이들이 가장 명랑하고 쾌활하게 놀 수 있는 조건은 복종이 강제적이지 않고 자발적인 가정, 신뢰와 고귀한 이상이 있는 가정,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어른들의 대화가 결코 거칠지도 않고, 아이들이 듣기에 거슬리지도 않는 가정 속에 있다. 가정은 나라의 힘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가정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사회 집단으로 사실상 다른 모든 것들이 그것을 기초로 하며 그것에 좌우된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과 우리가 지금 대하는 많은 일들을 비교할 때,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가고 있는 모든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지만 아직 얼마나 많은 슬픈 일들이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아이들 말고 많은 아이들을 생각하여야 한다. 오염된 환경 속에 사는 아이들, 부유한 아이들, 가난에 쪄들은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여야 한다. 아직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벤쟈민 위프(Benjamin Waugh)가 아이들을 위해 한 놀라운 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바라트 브라우닝 여사(Mrs. Barratt Brownning)의 시를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 양은 초원에서 울고,
어린 새는 둥지에서 지저귄다.
어린 사슴은 그늘에서 놀고,
어린 꽃은 서쪽을 향해 자라난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 어린아이들은, 오 나의 형제여!
그들은 슬피 울고 있다 -
남들은 놀고 있는데 그들은 울고 있다.
이 자유의 나라에서,
너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가.
오 나의 형제여,
너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나님이 그의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가르치는가?
아이들이 운다.
아이들이 네 앞에서 울고 있다.
그들은 점점 지쳐간다.
하지만, 강한 사람의 분노보다도
조용한 아이의 울부짖음은 더 깊은 저주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가정에 그리스도의 통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공공 업무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아이들을 위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영구히 노력해야 한다.
내게 오라, 아가야,
나는 네가 노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혼돈 시키던 문제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해가 보이는 동창을 열어라.
제비가 지저귀고 아침이 흐른다.
너는 지금까지 노래한
모든 시보다 낫다.
너는 살아 있는 시이고,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죽은 시이다.
말라기(Malachi)
1. 명칭 : (ykia;l]m' , Malachi)「나의 사자」
말라기의 생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료가 별로 없다. 본서에 약간의 시사들이 있어 그의 활동 시기에 관해서 추정해 볼 수 있는 정도다.말1:17-10, 말3:8 등을 보아 성전이 완성되고 제물을 드리던 때가 분명하며 파사의 총독 이 예루살렘에서 통치할 때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말라기는 주전 450-400년 사이에 활동한 예언자라고 대개 추정한다. [말라기]라는 이름은 [나의 사자]라는 뜻인데 이런 점에서 말라기를 고유 명사로 보지 않고 한 익명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2. 내용과 주요사상
말라기는 구약성경 마지막 책 말라기서의 기자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요나단 벤우셀의 타르굼에 "그의 이름은 서기 에스라라고 불린다"라는 말이 추가 되어 있고, 또 70인역이 이를 보통 명사로써 "저의 사자의 손에 의한 이스라엘의 주의 말씀…"말 3:1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말라기는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어느 선지자(아마 에스라)를 가리키는 직임일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다른 대선지서에도, 소선지서에도, 전부 개인의 이름이 표제가 되어 있는데, 하필 이 책만 예외로 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역시 개인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말라기가 어느 시대 사람인가, 또 어떤 인물이었는가는 말라기서의 내용으로부터 짐작하는 외에 전혀 알 길이 없다. 당시는 "총독, 헬라어로 폐하"(말1:8)에 의해 에루살렘이 통치되었으므로 바사의 속국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성전은 이미 재건되어 여호와께 경배를 드렸다.(말 1:10,3:1) 이것으로부터도 학개, 스가랴 시대보다는 후대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선지자는 1.제사장의 타락, 2.이방인과의 잡혼, 3.이스라엘 사람의 당연한 의무인 십일조 헌물을 게을리 하는 것 등의 죄를 책망하고 있는데, 특히 1과2는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생겼으므로 그들이 극력 개혁하려고 노력했다(스 9:2,10:3644, 느 13:1028). 이런 점으로 보아 말라기서에는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B.C. 440- 410년경의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말라기의 예언의 경우, 다행히도 바벨론으로부터 귀국한 백성은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에 격려되어 성전은 재건되고 그 예배는 회복되었다. 또 성벽도 중수되고 예루살렘은 강화되었으나, 지난시대의 선지자들이 말한 왕국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고, 약속의 영광(학 2:7)은 임하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오히려 흉년이 계속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실망하고 또 의심을 품게 되었다. 종교에 냉담하게 되고 도덕적으로 이완(弛緩)하게 되었다. 말라기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로서 열심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백성에게 호소했으나, 그들은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말 1:2,6,7,2:17,3:7,8,13)라고 반문했다.
말라기는 그 백성의 궁극적 구원이 그들의 회개에 의해서가 아니고, 여호와의 은혜에 의해서라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곧, 주의 큰 날의 여명이 온다. 그것은 경건한 자를 정결케 하고, 그 올바름을 확증하고, 사악한 자들을 멸한다. 선지자 엘리야가 옴으로써 그날의 준비가 된다.
3. 내용 분해
1.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선언과 증거 말1:1-5
2. 제사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 말1:6-2:9
3. 이혼과 잡혼의 죄를 꾸짖음 말2:10-16
4.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는 자를 꾸짖음 말2:17-3:6
5. 십일조를 명하심 말3:7-12
6.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자를 꾸짖음 말3:13-4:3
7. 맺는 말 말4:4-
그림설명 : 가시들 틈에서 피어난 꽃처럼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은 심판과 재난의 경고들 틈에서 피어났다.
말라기(Malachi)의 외침 G. Campbell Morgan 저 / 김현진
- 마지막 메시지 -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말1:1.말3:13-4:6)
여러 가지 의미로 성경 전체에서 이 구절만큼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구절은 달리 찾아 볼 수 없다고 나는 장담한다. 이 구절은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주고받은 말을 기록한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선언하시자 사람이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대답하였는데, 사실 이것은,'나는 그것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 셈이다.
이러한 구절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 아래서 이 대화가 발생하였는지를 조사해 보아야 한다. 말라기가 역사상의 순서로 볼 때 구약 선지자들 중 마지막 사람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의 메시지가 느헤미야의 활동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음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말라기서를 공부하기 전에 느헤미야서를 먼저 보는 것이 좋다. 느헤미야서에서 그 역사적 배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라기가 에스라서나 느헤미야서에 이름이 한 번도 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인 까닭에, 만일 말라기가 그들과 동시대 사람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그가 그들의 활동을 그대로 뒤따른 것이 분명하다.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부분을 말라기서와 비교해 보면, 느헤미야를 화나게 만들고 말라기로 하여금 메시지를 전하도록 만든 백성들의 여러 가지 잘못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느헤미야서는 우리에게 아주 특출한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듯이 책 자체가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때에 제사장직은 더럽혀졌고 이방인과의 결혼 풍습이 성행하였으며 백성들이 십일조를 잘 내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된다. 이 점들이 바로 말라기 다룬 문제들이다.
백성들의 정신 상태가 말라기서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다소 기묘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말라기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일곱 문장을 하나씩 읽어보면 내가 말하는 뜻을 알게 될 것이다.
첫째 문장은 본문으로 정한 구절에 들어 있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두 번째 문장은 1:6에 있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세 번째 문장은 바로 그 다음 구절에 있다.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2:17에는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이까?" 하는 말이 있고, 3:7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 말이 있다. 또한 같은 장 8절에는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하는 말이 있고, 이어서 13절에는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 말이 있다. 이 "어떻게"라는 말이 사실상 이 책을 여는 열쇠이며 백성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놀라운 계시이다. 백성들은 자기들에게 비난이 퍼부어질 때마다 그와 같은 말로 대꾸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말라기는 자기가 퍼붓고 있는 비난에 대해 항의를 하는 백성들을 상대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 전체는 무감각한 백성과 예민한 하나님을 동시에 보여 준다. 말라기는 바로 이스라엘을 향해 외쳤는데, 그가 이스라엘이란 말을 쓸 때는 단지 북 왕국만을 가리키거나 남 왕국 유다만을 가리키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를 두고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이 사실과 관련해서 다음의 사실도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바벨론 포로사건 이후에 이 백성들이 돌아왔는데 이스라엘 백성 중 오직 남은 자만이 처음에는 에스라의 인솔 하에 돌아왔고 다음에는 또 다른 대표단의 인솔을 받아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는 유다지파 뿐만 아니라 모든 지파 사람들도 다 있어서 말라기의 메시지는 자연히 이스라엘 전체에 전달되었다. 확실히, 돌아온 백성들 중 많은 수가 유다 지파에 속했으나 다른 지파 사람들도 들어 있었다.
느헤미야서에서 영감 받은 히브리 역사의 마지막 단편을 보듯이, 말라기서에서는 영감 받은 히브리 예언의 마지막 단편을 본다. 세례 요한이 올 때까지는 진정한 선지자가 달리 없었다. 마카비시대에 특출한 인물이 여러 명 일어났었지만 그 시대에 관해서 영감을 받아 쓰여 진 역사 기록은 성경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진정한 선지자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이때로부터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학개와 스가랴가 백성들로 하여금 다시 성전 재건의 책임을 지도록 만든 것을 알게 된다. 백성들이 수고한 결과로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성읍을 세우고 성벽을 둘렀다. 성전이 세워졌고 제사장들은 직무를 맡았으며 제물들을 바쳤다. 이때 말라기가 와서 이스라엘에게 경고 혹은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신탁을 알렸다. 그 경고의 첫 문장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는 것이고, 그 답변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이다.
그 다음에 이 책 전체를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 시대까지 그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세 가지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는 여호와의 끊임없는 사랑이 계시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 같은 사랑 앞에서 드러난 인간 생활의 끔찍한 실패에 대해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백성들의 그런 실패 가운데서도 실제로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힘의 비결이 밝혀지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이 다음과 같은 서언으로 선포되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이 번역문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히브리말의 근본적인 사상과 의미가 어느 정도 빠져 있다고 나는 본다. 나는 지금 이 문장이 부정확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는 시제가 영어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여기서 사용된 시제는 과거 시제로 쓰인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는 말보다 훨씬 그 이상의 어떤 내용을 암시한다. 그 시제는 연속성을 표시하고 있다. 그 시제는 뒤를 돌아 볼 뿐만 아니라 또한 주변과 앞을 내다본다. 따라서 우리가 그 말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 문장을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너희를 사랑해 왔고 지금도 사랑하며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감이 부여된 4백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와 그 기간 동안의 영감어린 예언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이러한 배경과 함께,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에 대한 이러한 위대한 선언을 접하게 된다. 세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변할 만한 이유가 생겼다고 해서 변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아주 멋진 말이다. 이 말이 맞는다면 우리는 사람의 차원에서 사랑에 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할 만한 이유가 생길지라도 변하지 않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어떻게" 라는 질문이 발생하는 경우들을 주목하면서 다시 한 번 이 책을 잠깐 훑어보면, 매 경우마다 어떤 비난에 대해 답변하느라고 질문을 꺼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비난은 신성한 것을 더럽힘과 탐욕, 예배를 권태롭게 여기는 무관심, 도덕적 가치 기준을 왜곡함,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고발하는 것들이다. 두려운 죄목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자 말라기는 비난할 때마다 매번 하나님의 사랑을 이유로 들어 이런 문제들에 대해 호소한다. 게다가 그는 자기 메시지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그들의 일곱 가지 잘못의 기저에 있는 가장 심각한 죄는 그들이 하나님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신성을 모독하는 언행과 신성한 것을 더럽히는 행위, 탐욕, 무관심, 도덕적 가치 기준을 왜곡함, 도둑질, 불경스러움 등 이러한 너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를 사랑해 왔다."이것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이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강렬한 사랑 때문에 생긴 하나님의 상한 심정에서 나오는 슬픈 목소리를 듣는다.
그 다음에 백성들의 실패의 배경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밖으로 드러난 실패의 근본에는 항시,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소홀하였다는 사실이 있다. 그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원인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나 신성을 모독하는 일, 탐욕, 예배를 드리지 않거나 예배를 지겨워하는 일, 도덕적 가치 기준을 왜곡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잃어버리고 마음마저 무감각해져서 그들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하고 지껄였다. 이 백성들이 그동안 호된 경험들을 겪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포로로 끌려가기도 했었고 끔찍한 노예생활도 겪어 보았다.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는 했으나 새 성읍은 이전의 여광을 갖추지 못했고 성전은 그 장엄함이 솔로몬 때의 성전만 못하였다. 그래서 노인들은 그 성전을 보고 울었다.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의 마음 자세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때때로 우리는 이렇게 묻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왜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이런 고통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왜 하나님은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통과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가?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우리는 자칫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생각이 들 때는 항시, 그 이면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어떤 이유 때문에 약해졌다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엇인가 끼이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종교의 형태와 의식은 계속해서 유지해 올 수 있다. 성전에 계속해서 참석하고 교회에 제물을 가져왔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사랑이 부족하다. 그동안 사랑이 우리 속에서 잘 발휘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도록 마치 수비대처럼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우리 자신의 사랑이 어디선가 이지러지고 냉담해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 속에서 사랑이 식으면 마음이 무감각해지고 그 다음에는 양심이 무디어지고 마비된다. 그런데 속 상태는 이러면서도 종교의 외형적인 형식들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말라기 시대의 이야기이다. 즉 능력이 없는 형식의 이야기요 겉은 정확하면서도 속은 이단인 시대의 이야기이다.
말라기는 그러한 마음 자세를 향해 하나님의 사랑의 변함없는 사실을 선언하였다. 사랑은 하나님의 통치의 동기이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 것은, 그들이 복종과 그 결과로 일어나는 교제에 실패하여 그들의 사랑이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에는 충성스러운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를 밝히 보여 주는 계시가 나온다.
앞에서 말했듯이, 백성들 가운데 오직 남은 자들만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그 남은 자들 가운데는 또 다른 남은 자들이 있었다. 이 시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혼란하였다. 이때는 왕이 없었다. 왕들은 그동안 다 사라졌다. 제사장직은 완전히 부패하였다. 예언은 이미 오랫동안 그쳐 왔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끔직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묘사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잠시 "그때에"라는 말을 살펴보자. 그때는 능력이 없는 형식이 판을 치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그 사랑을 의심하며 백성들이 십일조를 가져 오되 온전한 십일조를 가져 오지 않고 아주 차액이 심하게 가져오며,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지겹다고 말하던 때였다. 그때에 소수의 백성 집단이 알려지고 있다. 그들은 이런 사람들이었다.
그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였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3:16,17). 여기서 그 무리에 관한 두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첫째는 그들이 함께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피차에 말하매."타락한 시대 가운데서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흠정역 성경은 그 구절을 "그들이 가끔 서로 말하였다."고 번역하고 있으나 히브리어에는 "가끔"이라는 말이 없다. 말라기의 그 진술은 가끔 발생하는 경우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오히려 끊임없는 생활의 습관을 나타내고 있다.
그 다음에, 말라기가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였다."고 말한 것에서 우리는 그들이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여기서 잠시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여기서 잠시 "생각하였다"는 말을 주목해 보자. 바울이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썼을 때 그는 70인역 성경의 말라기서에 있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목록 중의 물품을 조사한다는 뜻이다. 이 사람들은 그 이름을 깊이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 이름 속에 들어 있는 그들의 재산 품목을 조사하고 있었다. 왕들은 죽었고 제사들은 타락하였다. 선지자들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나 그들은 여전히 그 이름을 생가하고 있었다. 그 이름은 여호와였다. 이 이름은 여러 시대에 여호와 샴마(Jehova-Shammah), 여호와 치드케누(Jehova-Tsidkenu), 여호와 닛시(Jehova -Nissi), 여호와 로페카(Jehova-Ropheka)등과 같은 말들과 연결됨으로써 다양한 뜻으로 해석되었다. 위 말들 및 다른 어구들은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담긴 풍부한 의미들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남들과의 교제에서 발생하는 그러한 정신적 활동 속에, 모든 이가 타락하는 가운데서도 충성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다음에는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m'v; shaw-mah, the Lord hearkened and heard)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도 잠시 몇 마디 말을 생각해 보자. 히브리말은 언제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들으셨다"(hearkened)라는 말은 동물에게 쓰이는 용어로서 귀를 세운다는 뜻이다. "heard"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도 회화적(pictorial)인데, 온 신경을 쏟아 한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낸다. 여호와께서는 귀를 세우시고 온 신경을 기울여 들으셨다. 대담하게 말라기 선지자는 이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림으로써 그들의 주의를 끌려고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란, 그들이 타고 다녔을 말이 그것을 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한 마디로 놓치지 않고 다 듣기 위해 귀를 세우듯이 혹은 엄마가 어린 아기의 잘 알아듣기 힘든 옹알거리는 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허리를 구푸려 듣듯이, 이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깊이 생각한 결과로 함께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듣고 계셨다는 것이다.
남은 자들은, 다른 모든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을 때 민족 생활에 있어서 실제적인 능력을 갖춘 중심인물이었다. 사백 년 동안 상태는 계속해서 악화되어 백성들의 대다수는 형식주의자들이 되었고, 그들이 자신들의 전통 때문에 질식하게 되기까지 더욱더 형식주의자들이 되어 갔다. 그러나 신약에서 우리는 시므온과 안나,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 밖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숙고한 결과로써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서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메시야께서 오실 때 하나님 편의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 선지서의 마지막 장은 백성들에게 또 다른 날이 다가오는 것을 보도록 촉구하였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4:1,2)
그 날은 해가 떠올라 밝아오는 날과 같게 될 것이다. 생활 상태에 따라 그 날의 결과가 좌우될 것이다. 해가 뜨면 뿌리가 없거나 생명이 없는 그루터기는 타 버릴 것이다. 그러나 뿌리도 있고 생명도 있는 곳에는 해가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다. 말라기는 백성들에게 그 날을 바라보고 그 이상 (vision)에 맞게 행동하라고 명하였다.
오늘날의 기독교 국가의 상태가 말라기서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교회에 대하여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교회와 기독교 국가를 명백히 구분하고 싶다. 교회는 함께 모여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이름을 깊이 생각하는 선택된 남은 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 국가는 외형적인 형식이며 교회를 괴롭히는 거대한 형식주의이다. 그 날이 오고 있다는 사실과 태양이 떠오르면 전적으로, 우리의 생활과 성품의 상태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태양이 뿌리 없고 생명 없는 그루터기는 멸망시킬 것이나 충성스런 사람들에게 치료하는 광선을 비출 것이다.
마태복음(Matthew)
1. 배경
마태복음은 이방인보다는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제롬은 가이사랴의 밤빌로 도서관에서 이 복음의 아랍어 사본을 발견해서 헬라어와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주장했다. 마태복음의 기록은 대략 주후 85년에서 90년경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유대교의 신앙의 중심지요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도 어느 정도 신앙의 본거지였던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허물어진 뒤 유대교 안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던 때였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태(9:9-13)라는 것이 전통적 의견이다. 당시 사람들은 흔히 이름을 두개 가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레위라고 하였고 (누가5:27-32) 알패오의 아들이었다. 그는 본래 세관에 앉아 사무를 보는 세관 관리로서 가버나움에서 일했다(누가5:27-28).
그림설명 / 가버나움 : (마 4:12-14) 이곳은 예수의 전도의 중심지였으며 AD 2세기경에 세워진 유대교의 회당의 유적이 유명하다.
마태는 예수께서 저를 부르셨을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고 하는 것은 마태가 얼마나 회개 하였고 진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따르기로 결정하자 곧 잔치를 베풀고 당시 종교인들이 경멸하던 자기의 옛 세리 친구들과 죄인들을 청해서 대접한 것은 마태가 자기 친구들에게 예수를 소개하고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마태는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전설에 의하면 그는 제일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도한 사람이었으며 후에 아시아와 마케도니아에서 전도하였다고 한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Matqai'o" , Matthew) 「하나님의 선물」
마태복음의 주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1:1)말씀이다. 창세기를 보면 대략이 이러하니라, 또는 계보가 이러하니라, 또는 후예는 이러하니라, 등(창2:4, 5:1, 6:9, 11:27 기타) 같은 말씨로 끝나고 있다. 이 말씨가 나올 때마다 그것은 메시야적 약속의 발전 단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 속에서 약속의 발전은 룻기 4:18에서 다윗에게서 그치고 있다. 마태는 이러한 계보를 끄집어내어 메시야의 약속이 예수에게서 성취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마태는 이 책을 기록할 때에 일정한 5개의 주제를 중심 삼아 정리하고 전개시켰다. 즉
1) 산상보훈(5:-7), 2) 제자들에 대한 교훈(10:)3) 천국 비유(13:)4) 교회에 관한 말씀(18:) 5) 최후심판(24:-25:)등
교훈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으며 매 주제마다(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며)라는 말씨로 끝내고 있다(7:28, 11:1, 13:53, 19:1, 26:1). 마태복음에는 (이루려하심이라)는 말이 많이 나타나 있다. 바로 예언된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줌으로써 예수께서 구약의 메시야 되심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임기응변의 방책이 아니라 장구한 계획으로써 예수의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써 성취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각 복음서의 첫 구절은 복음서 성격을 잘 규정해 주는 중요한 단어가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1:1-복음, 누가복음 1:1-내력, 마태복음 1:1-책 마태복음은 "기독교인들을 위한 교회 교과서", "요리문답책"(catechism)으로 기독교인들의 신앙훈련을 위해, 혹은 신앙 교육을 위해 기록된 교과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달리는 "교사의 복음서"(the teacher's Gospel) 혹은 "교육을 위한 복음서 "(the teaching Gospel)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3. 내용 분해
1. 메시야의 예언 실현 1:1-4:11
2. 메시야의 원리 발표 4:12-7:29
3. 메시야의 권능 발현 8:1-11:1
4. 메시야의 프로그램 설명 11:2-13:53
5. 메시야의 목적 선언 13:54-19:2
6. 메시야의 문제 제시 19:3-26:2
7. 메시야의 수난 완성 26:3-28:10
8. 맺음말 28:11-20
4. 마태 연구 (강유중목사) 총회신학교교장 1985년 02월 01일
(1)야훼의 선물
레위지파의 후손인 알패오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이 [레위]("연합하다"라는 뜻)인 그의 그 이름 뜻대로 세상과 야합하여 생활하였다.
그림설명 / 복음서기자 마태 : 복음서의 삽화 랑스의 주교 에보의 주문에 따라 오비리예 수도원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위엄에 찬 복음서기자와 달리 하가의 내적 감동이 매우 능숙하게 흐르는 듯한 선에 의해서 표출된 [화필에 의한 뎃상]이다. 835년 이전. 26*20.8cm.
재물에 대한 욕심이 특별히 많았던 그는 선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창녀와 죄인들과 같이 가장 천대를 받는 부류였던 세리가 되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기에 급급했던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인생이 반전되는 상황을 맞는다.
야훼 신앙을 버리고 메시아에 대한 소망마저 등진 철저한 죄인으로 살던 세리의 신분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써 영광스런 주님의 제자로 변화된 것이다. 로마 황제의 창고를 채우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버나움의 세관에 앉아 동족의 고혈을 짜내는데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던 [레의]가 이제는 회개한 죄인 [마태]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였다. 이전까지 그를 주장하던 육신의 안목과 가치관이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자 세상재물에 쏟았던 그의 열심은 주님께로 전이되었다. 불의하게 착복하여 쌓아 두었던 재물로 큰 잔치를 벌여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구원을 증거하며 주님께로 인도하는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다. 또한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생명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사도로서의 훈련을 쌓아갔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기 이전의 인간의 열심은 주님이 받으시는 고난의 자리를 회피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던 마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 날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사도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성령이 충만하여진 마태는 천국복음을 전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예수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을 위해 [마태복음]을 기록하여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랑의 빚을 갚는 헌신된 삶을 살았다.
주안에서 참으로 진실하고 정직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마태는 스스로를 "세리 마태"라고 일컬음으로써 은혜 받은 자의 겸손을 보여 주기도 했다. 세상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비천하게 사는 세리에서 목숨을 바치기까지 복음전파에 힘을 기울이는 사도로 발돋음 한 마태의 생애는 오늘날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새 지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들려줌으로써 생명의 길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세상의 썩은 재물을 포기하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본 마태의 이름은 믿는 자들만이 들어갈 새 예루살렘의 기초 석에 새겨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요한계시록 21: 14 )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주 앞에서 낮추는 자를 하늘나라의 큰 자로 높이시는 것이다.
(2) 마태는 어떤 사람인가?
마태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타이오스(Matqai'o")라고 하는데 이 말은 누가복음 3장25,26절에 있는 마타티아스라는 말에서 축소된 것인데,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마태는 알패오의 아들로서 처음에는 사람들에게서 천대를 받는 세리였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약 변하여 복음의 전도자,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그 사람됨이 그 나변에 있었는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몇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함
마태복음 10장 3절을 보면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라고 12제자의 이름을 쓸 때 다른 제자들은 이름만 썼지만 자기 자신의 이름을 쓰는 차례에 와서는 자신의 신분을 밝혀"세리 마태"라고 썼습니다. 그는 "레위"라는 본명 하에 로마 세무서의 부수제 청부인으로서 다메섹과 포에니 항구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무역하는 길인 갈릴리 바다의 가버나움에서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세리는 "가바이"라고 하여 세금을 받으러 다니는 자가 있었고 "모케소"라고 하여 세관에 앉아 관리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어떻든 둘 다 세금으로 사복을 채우는 자로서 무엇이 제일 나쁘냐?"고 할 때 "산에서는 곰과 사자요, 시가에서는 세리라"(Theocritus)고 할 만큼 백성에게서 냉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세리 중의 한 사람인 마태였지만 그리스도의 은혜헤를 확대키 위하여 그가 죄인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의 카다로그에서 나타내었습니다. 범인들은 자신의 신본 여하가 어떻다는 것을 나타내기를 그렇게 원하지 아니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신분이 저열하고 낮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자기의 결점과 약점, 부끄러움을 나타내기 싫어하는 범인의 본성일진대 마태도 그랬어야 했지만, 그렇지 아니하고 세리 마태는 자신의 저열한 신분을 똑똑하게 나타내었습니다.
"나는 세리 마태"라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신분이 무엇이었다는 것을 부끄러움이 없이 나타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듣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듣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는 죽기 전에 자기 신분 여하를 솔직하게 고백했고, 바울은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여러분의 신분은 무엇이었습니까? 강도? 살인자? 부랑자? 싸움꾼? 거짓말쟁이? 사기꾼? 우상숭배자? 바람둥이? 욕쟁이?....? 아 - 그 무슨 신분이었던지 간에 솔직하게 부끄러움 없이 고백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고백하는 여러분의 신분이 어떠하든지 다 이해하시고 용서하시고 불러 주실 것 입니다. 천주교 성당에서는 교인들이 신부에게 자기의 무서운 죄를 고백한다고 합니다. 고해성사라고 하는 것이지요! 신부 앞에서도 자신을 고백도 하거든 하나님께 자신을 감출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솔직히 고백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읍시다.
2.부르심에 곧 따름(마9:9)
"예수 거기서 떠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님은 세관에서 마태를 불렀습니다. 세리 노릇하는 그 자리에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그 부르심에 아무 이유나 조건 없이, 변명 불평 없이 곧 순종했습니다. 범인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법입니다. 그래서 습관과 인습된 자리에서 벗어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그러나 마태는 나를 좇으라,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일어나 좇았습니다. 곧 순종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직장 이상의 직장을 약속한 것도 아니고, 장래를 보장하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명령에 무조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따랐습니다. 여기에 마태의 마태다운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말씀의 위력과 마태의 결단성 있는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 직장, 체면, 장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좇아간 마태, 계속성 있게 좇아갔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 주저 방황하는 자 누굽니까? 십자가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요! 무엇하려고요? 내가 죽었기 때문에 살려 주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마치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를 살려 주신 것과 같이.
3. 영광의 잔치를 베품(마9:9-13).
마태는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세리인 자신을 주께서 불러 주셨으니 그 심정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감사했을 것입니다. 이 기쁨을 이길 수 없어서 그는 큰 영광의 잔치를 베풀어 자기가 받은 은혜와 감사의 만분지일이라도 표시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당한 일입니다.
자신이 천한 죄인인 것을 알면 알수록 주님의 부르심이 감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배가 고파본 일이 있습니까? 배가 고플수록 밥 한 그릇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죄를 인식하고, 죄인인 것을 알면 알수록 죄에서의 구원을 감격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인 된 죄의식에서 메시야의 구원에 얼마나 감격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얼마나 상한 심정으로 십자가를 대하고 있으며, 얼마나 예수의 공로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마태가 영광의 잔치를 베풀었다는 사실은 또한 그와 같이 있었던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기회를 갖게 했습니다. 누가복음 5장 29절은 이 일에 대해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라고 했고, 마가복음 2장 15절은 "그의 집에 낮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죄를 좇음이러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많은 세리와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가지게 하려는 노력이 이 집회를 성공리에 대성황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받은 은혜의 가치를 느끼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자 하는 마태의 위대한 태도의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주고서야 처음 알 수 있는 주님의 참 사랑! 참 은혜! 이 잔치 석상에 마태뿐이었다면.. 아닙니다. 보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음식보다도 세리의 죄인, 즉 병자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를 통한 형제에의 사랑과 전도열은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수님과의 잔치 석상에 많은 사람을 뫼시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까?이 마태는 그 때부터 일평생을 주와 같이 보내면서 주의 신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3절을 보면 "이르시되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와 및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예수의 사후에도 그는 뒤를 따랐고, 마지막에는 유다에서 전도했고 또 에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유세비우스 H.E.3:24).
세관에서 떠난 마태는 주님을 따르고, 좇고, 또 순종하다가 골고다까지, 십자가까지 따랐던 것입니다. 한 평생 변함없이 순교의 제물로 바쳐질 때까지 따르고 또 따랐던 것입니다. 세리 마태! 그러나 주님의 사도 마태! 그리고 순교자 마태! 아 - 얼마나 영광스러운 제자 마태입니까! 이 마태의 생애를 오늘 우리 중에서 누가 배우겠습니까? 누가 제이의 마태가 되겠습니까? 이름 그대로 "여호와의 선물" 마태! 누가 이 마태이겠습니까? 다 같이 마태여야 하겠습니다. 21세기의 마태 말입니다.
(3) 세리장 / 마태(사도행전 12:1-2) < 12제자 연구 > 홍만조목사
들어가는 말
진실한 교인인 한 청년과 그의 아내는 가까운 이웃과 친분관계를 가지면서 자기 아파트에 초대하여 기분전환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들은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구원받지 못한 친구와 이웃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무디 협회에서 제작한 영화를 보기도 했다. 항상 대화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의 촛 점이 맞추어졌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식사 전도"라는 증거 방법의 하나이다. 그러나 식사 전도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독특하게 생겨난 방법이 아니라 열 두 사도 중 하나인 마태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자 즉시 사용했던 증거 방법이다.
본 론
1.마태의 이름
마태도 다른 몇몇 사도들처럼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마태'로 불렸으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처음에 '레위'로 부르다가
세관에서 일할 때는 마태라고 불렀다. (막2:14/3:18/눅 5:27/6:15).
그의 첫 이름은 레위였는데 그리스도를 믿은 후 예수께서 마태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셨다.
레위라는 이름은 고향 사람들이 불렀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그는 사도들 가운데서 일곱 번째,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여덟 번째에 자리 잡고 있다(행1:13).
2. 경멸받는 마태의 직업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경멸받는 마태의 직업을 점잖게 표현하였으나 마태는 자신을 세리라고 했다.(마 10:3) 경멸받는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말하면서 마태는 "나는 더 이상 경멸받는 직업에 종사할 수 없다. 사도직분으로 일하고 싶다"고 고백하였다. 마태의 사회적 신분은 현대의 마피아단이나 또는 마약 판매자와 거의 비슷할 정도이다. 그는 스스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세리의 일
탈무드에 의하면
- 하나는 보통 세금을 징수하는데 술, 또는 과일이나 이와 비슷한 품목에 대한 세금을 거둔다.
- 하나의 세리는 마태가 속하여 있는 세관관리이다. 세관의 세리들은 사람들을 정지시켜 검색하거나, 짐을 시간을 끌며 조사하고,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밀수품을 색출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았다.
2)마태의 근무처
가버나움의 교역하는데 참으로 좋은 위치였다. 다메섹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간선도로로 짐을 가득 싣고 내려오는 대상들은 마태가 근무하는 세관에게 멈추어2-12%에 달하는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또 갈릴리 바다 근처에서 어부로부터 세금을 받아 들였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가끔 마태에게 세금을 바쳤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눈으로부터 크게 시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들의 짐을 검색하는 세리들을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세리들이 미움을 받는 데는 더 많은 이유들이 있다.
3)세리의 죄악
대부분의 세리들은 정직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로마당국에 일정한 금액을 바친 후 그 이상으로 주머니를 채우고, 가능하면 더 많은 돈을 사람들로부터 긁어모았다. 세리의 행동에는 탐욕과 부패와 착취와 협착이 뒤 따랐다. 로마제국이라는 권력을 배경으로 하고 로마 군사의 힘을 빌어 강제징수하고 사람들을 협박하여 감언이설로 속여 빼앗았다. 높은 세금 수탈에 서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동안 세리들은 점점 부자가 되었다. 로마제국에 봉사하는 직업 때문에도 미움을 받는 세리들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더러운 사람들로 보였고, 외국 정부와 야합하는 공모자로 간주되었다.
세금징수는 가장 추악한 직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세리들은 이방인이나 창기와 한 통속으로 취급되었다.(마 18:17/21:31). "세리와 죄인"은 최하층 사람의 통칭이었다(마9:9). 더구나 이들은 재판정에서 증언할 자격도 없었으며, 일반 죄인을 조롱할 자격도 없었고, 회당에 들어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리의 돈은 연보로 받아주지도 않았다. 이들은 사회적인 문둥병자의 지위로 버림을 받았다.
마태는 빛나는 황금에 유혹되어 그는 양심을 팔고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였고 속이면 속인 만큼 재산이 불어났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인 특권도 박탈당하고 버림을 받았다. 그가 세리로 출발할 때는 정직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것이지만 점점 자신이 몹시 싫어하는 직업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마음은 과부나 고아들의 울부짖음을 듣지 못할 만큼 강팍해 졌다.
3. 은혜로운 그리스도의 부르심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활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마태도 예수의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쳤는데 그 때문에 베드로의 문 앞에는 예수님에게서 병을 고치려는 가버나움 사람들로 몰려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태는 형제와 사촌들과 함께 시몬이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직업을 포기한 이야기와 지붕을 통하여 수족이 마비된 사람이 예수께로부터 고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중풍환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3-5)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도 내심으로는 자신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마태가 "경멸받는 세리도 예수께서 받아 주실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았다. 자세한 질문을 받은 마태는 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태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대단히 더러운 인간임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께서도 그를 "세리, 배신자, 죄인, 또는 사기꾼"이라고 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자비로운 말씀으로 "나를 좇으라"(마 9:9)고 하셨다. 예수님의 부름에 압도당하고 영접하심에 너무도 기뻤던 마태는 그 자리에서 성결을 느꼈다. 그의 마음은 평강으로 충만했다.
그림설명 / 복음서 기자 마태 : 마태복음서에서의 첫 구절이 기록된 복음서는 바로 위에서 본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성 마태는 왼손으로 따로 두루마리를 잡고 오른손을 턱에 고이고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시대는 카롤링조에 들어가고 있지만, 그 강한 장식성 (테두리만이 아닌 인물묘사에 있어서도) 그 색 감등에 있어서 물론 멜로빙가적인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8세기. 사본화 31*23.8cm 빈 국립도서관.
마비된 사람을 고친 것을 비난하는 사람에 대하여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자기의 죄를 용서하면서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마 9:6)하신 말씀을 상기 했다. 그는 즉시 순종하여 나와서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누가는 예수께서 "그 후에 나가 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묻는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눅 5:27-28))다른 제자들은 죽은 후 묻힐 곳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거나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어떤 지위에 대하여 토론도 했지만 마태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순간적이었다.
예수께서 마태를 택하실 때에는 서로 깊은 관계가 없었던 것 같다.
1)마태의 등장은 그 때까지의 사도들의 조직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다. 마태가 두 가지의 명단에서 일곱 번째로 기록된 것을 보면 안드레, 베드로, 야고보, 요한, 빌립과 나다나엘은 마태보다 먼저 사도로 불리었다. 이들 여섯은 모두 애국자이거나 어부들이었다. 혐오를 받는 가버나움의 배신자 세리가 사도들의 틈에 끼어들어 친숙한 동료들에게 긴장을 유발시켰을 것이다.
2)마태를 택하신 예수님의 정책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리감을 주었을 것이다.도덕적인 문둥병자를 부르신 것은 무분별한 정책처럼 보인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으며,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비난하면서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눅15:2)고 불평했다. 제자들 가운데 중요한 제자로 마태가 등장하여 유대인의 편견을 막지 못하고 군중들의 불만을 해소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태를 택하신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사악한 사람일지라도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선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그 은혜는 모든 인간에게 고루 베풀어진다. 모든 사람들이 마태를 질시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사랑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한 사나이, 마태를 보신 것이다. 이와 똑같은 사랑의 은혜는 죄짓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려 있다. 베푸시는 예수님의 계획적인 정책이었다. 만일 교회에 여러 층의 사람들이 있다면 어부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복음전파에는 다양성이 있는 것이 좋다.
4. 마태의 풍성한 잔치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직후 마태가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을 때 세리와 다른 사람들도 함께 앉아 있었다(눅 5:29). 잔치의 내용이나 넓은 집은 많은 손님들의 접대하는 데 충분했으며 모든 것은 마태의 재산정도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마태의 이 잔치는 훌륭하게 돈을 쓰는 것이었으며 또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1)축하하기 위함이다.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는 모두 가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 마태는 무척 기쁜 일이었다. 마태가 구세주와 영원히 혼인하는 것을 기념하여 마태의 영적인 결혼 잔치라고 부리어 왔다. 마태는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잔치를 베푼 것이다.
2)작별하기 위함이었다.
마태는 자신의 과거를 불사르고 있었다. 마태는 자신의 직업을 떠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 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간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일종의 송별파티였으며 옛 생명의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중생함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3)증거 하기 위함이었다.
옛 친구에게 증거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잔치에 친구들을 청하였다. 만일 그가 신앙 깊은 사람들을 초청했다면 그의 집에 세리와 죄지은 자들이 모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마태를 기피했을 것이다. 갈릴리와 유대의 모든 죄인들이 참석했는데도 예수께서는 마태의 초청을 쾌히 수락하셨다. 이 잔치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마태는 주인의 자리에 앉고 예수님은 상석에 앉으셨다.
셈 슈메이커는 [그리스도인이 택하여야 할 가장 좋은 자리는 구원의 문 바로 안쪽]이라는 글을 썼다. 안쪽에서 너무 깊숙하게 떨어져 있으면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 어려우며 문으로 부터 너무 멀리 가서 있으면 입구를 더듬어 들어오는 소경을 맞이할 수가 없다.
칠레의 한 교회에서 시민들의 큰 환영을 받는 철야 집회가 있었다. 밤마다 도둑들이 기쁜 찬송가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 놓고 집집마다 털었다. 그러나 어떤 도둑은 예배 석에 몰래 숨어 들어와 죄를 깨닫고 회개했다. 일 년이 지난 후 이 도시의 경찰은 복음전도 역사상 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진기한 일을 하였다. 경찰은 24명의 범인들의 사진과 함께 목사 앞으로 연하장을 보냈다. 경찰은 목사님의 복음전도를 듣고서 범인들이 도둑질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진을 교회의 기록에 함께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5.마태의 저술
마태 시대의 사람들은 세리는 변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마태의 잠재능력을 보셨다. 마태는 예리했고 훈련되어 있었으며 용모가 출중하고 헬라인과 라틴 사람과 아랍인에 대하여는 정통하였다. 미래가 인생의 목적에서 돈을 단념하려 한다는 걸 알아차리신 예수께서는 그가 신약의 첫째 권을 쓸 수 있도록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셨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겨냥하여 쓴 것 같다. 마태는 구약 속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약속된 참 메시야가 예수임을 증명하려는 결심을 하였다. 이를 위하여 마태는 복음서를 쓰면서 몇 군데에서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1:22)는 것과 마태복음서 2장15,17,23절 등은 그 형식과 내용이 비슷하다.
마태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왕의 혈통을 조사하여 그리스도 가계를 추적하였다. 조심스럽게 14대에 걸쳐 세 그룹을 만들어서 마태는 그리스도의 혈통을 밝혔다. 마태가 체계화하기를 좋아한 것은 언제나 모든 것을 정리하는 성품에 기인하였다. 마태복음의 거의 절반 정도가 마가복음처럼 활동의 기록으로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의 특징은 위대한 논술이란 점이다.
마태는 언어이든 상징적인 묘사이든 문서전도의 방법을 사용하는 시인이나 저술가, 신문기자 , 편집자, 서기, 장부 기록자와 회계원의 선구자였다. 마태는 복음을 쓰면서 일생을 살았다. 마태가 에디오피아와 바사에서 복을 전파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의 사도로소의 상징은 본래의 직업을 뜻하는 "세개의 지갑"이다. 그는 이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증거 할 수 있었다. 아마 마태는 여리고의 세리장인 삭개오에게 예수께서 여리고를 방문하면 예수님을 만나라고 권하는 글을 보냈을 것이다.
맺는 말
구원 받은 우리도 마태처럼 식사전도를 하여 올해를 마무리하자.
5.마태복음 강해
1)그리스도의 족보(1:1-17)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에 구원을 계획하셨으며 하나님의 계획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여 이스라엘을 건설케 하셨다. 아브라함을 남쪽 메소포다미아의 "우르"에서 불러내 사 그에게 언약을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실 것(창13:16, 롬 4:16)이며 그 자손 중에서 나타날 " 메시야"를 통해서 큰 축복을 받을 것(갈3:8)이다라고 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제일 처음에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복음의 (3:23-38) 족보와는 대조를 보인다. 즉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시기로 작정한 한 사람(아브라함)으로부터 족보가 시작된 것이다. 또한 마태는 다윗의 왕통을 이어받은 메시야임을 보여준다. 누가는 요셉의 개인적인 족보를 언급한 반면 마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왕위 계승자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림설명 / 마태 : 콘월의 세인트 네오트 교회 창문의 색유리(16세기경 건축) 날개를 가진 사람의 모습은 예수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며 예수의 족보로 마태복음은 시작된다.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마1:12)는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의 사건으로 다윗의 후손들이 왕 노릇 하다가 종살이와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중에도 하나님은 남은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다 무너져 없어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다윗 왕통을 이으시는 것 이다. 본국으로 귀환한 자들은 자칭해서 스룹바벨의 지배에 순종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연결시키신 것이다.
(1:3-6) 족보에서 특이한 것은 유대민족의 당시 풍습으로 보아 여자는 수에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예수님의 족보에 넣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지위가 높은 여인들이 포함된 것이 아니라 다말은 그의 시아버지 유다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았고(창38장), 라합은 여리고의 기생이었으며(수 2장), 우리야의 아내는 다윗이 더불어 간음한 밧세바였다(삼하11장). 예수님의 족보에는 신분만을 고집하며 왕통만 열거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필요했던 사람이 비록 여자라고 해도 포함된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1:18-25)
그림설명 / 목자들의 경배 :별을 따라 찾아온 목자들이 암굴로 된 마굿간에서 막 탄생 한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마리아와 요셉의 훌륭한 옷과 왼쪽 두 목자들의 옷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91*111cm 미국 내셔널 캘러리 소장.
탄생은 오래 전에 예언된 것이었지만 가깝게도 천사가 현몽하여(마1:20) 요셉에게 일러주었다. 누가복음은 마리아에게 초점을 두고 있으나 마태복음은 요셉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혼하고(18 절) 현재의 약혼과는 달리 당시는 정혼은 법적인 구속력이 있었고 따라서 이혼을 통해서만 정혼을 파기할 수 있었다. 25절은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부터 요셉과 정상적인 결혼생활에 들어갔다는 암시라고 볼 수 있다(13:55-56 참고) 초자연적인 성령의 잉태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과 그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믿음이었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때 초자연적인 계시가 나타났다. 별(마2:2)을 통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를 동방에 있는 박사들에게 알게 하신 것이다. 동방박사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마2:11)을 예수님의 탄생 예물로 드렸다. 목자들도 찾아와 경배를 드리고 돌아갔다 (눅2:20).
동방박사의 말을 듣고 광분한 헤롯은 자신의 지위와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을 듣고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이성을 잃었다. 이때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애굽으로 피신할 것을 알려주었다 (마2:13).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었지만 피난에서 돌아와 정착한 곳은 나사렛이었다. 이것은"나사렛이란 동네(洞里)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先知者)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稱)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 2:23)
그림설명 / 그리스도의 세례 : 파티니르는 인상파의 눈으로 자연을 본 것이 아니고 지지적인 고려와 사실을 넘어 자연을 그 추상적인 전체상에 대해서 포착한 것이었다. 그의 풍경은 우주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관찰한 바위와 강과 삼림과 호수에 정확한 회화적 표현을 부여할 수가 있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극히 시적인 감정에 의해서 생기를 띠고 세밀 화가의 세밀함을 갖고 묘사된 형체의 순결함은 얀 반 아이크에도 필적한다. 본도는 파티니르의 서명이 있는 진기한 작품의 하나로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의 모습을 딱딱하고 또 전통적이다. 패널. 172*139cm.
세례 요한의 기사에 대해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막 1:2)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主)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막 1:3)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막 1:4)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 1:5). 누가복음 3:2-22 에서 들려준다.
세례 요한의 강력한 설교는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좋은 발판이 되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의 앞에 올 사람임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요한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다. 모든 사람은 죄가(원죄: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죄) 있어서 세례를 받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표본이 되시고자 겸손히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弟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세례 줄 것을 명령하신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 대 이에 요한이 허락 하는지라"(마 3:15)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허락하신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나보다 큰 이(마3:11)라고 고백한다. 이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은 하늘로서 소리를 들려주심과(마3:17)"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이니라" 성령의 비둘기 모양으로 강림하심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와 성부의 확증을 주신다.
예수님은 복음을 증거 하시기 전에 모든 시험을 모두 당하신다. 40일간의 금식 끝에 당하신 시험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적인 약점을 이용한 첫 번째 시험은 금식 후에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는 유혹이었다. 양식의 근본적인 문제를 통해서 인간의 나약한 점을 마귀는 이용했다.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아주지 않겠느냐는 시험이었다. 세 번째 시험은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준다고 절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이기는 모범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물리치신 것이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 4:11)
그림설명 / 그리스도의 시험(상)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을 부르심(중) 세리마태를 부르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그리스도. 이 그림들은 1030년 경의 사본인 <에르테르나하의 황금책>중의 <마태복음서> 삽화로 독일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4) 전도사역 시작하심(마 4:12-25)
구약의 마지막인물(마11:13)이며 선지자격인 "주 앞에 가는 자(눅1:17) 세례요한의 사역이 마치는 시점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 전도를 하신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선지자보다 나은 자"(마11:9)라고 소개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세례요한은 헤로디아 사건으로 죽기 직전에 있었으며(마4:12-17). 요한이 잡힌 후에(막1:14) 복음을 전파하신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신 세 가지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첫째는 화려한 도시나 고위층이 있는 그러한 지역이나 사람들에게가 아닌 가난하고 소박한 갈릴리 호반의 성읍 가버나움을 그의 전도 본부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자들을 모으셨다는 것이며 이들을 통해 더 많이 전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혼자 모든 일을 하신 것이 아니며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을 파송 하셨다는 것이다(10:5). 셋째 천국 복음(막1:15)을 전파하셨다는 것이다.
그림설명 / 갈릴리의 산 :갈릴리의 베긴 마을은 예수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계속 살아온 매우 오래된 마을이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 사 저희 회 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마4:23).
예수님은 전도의 대상에 대해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온 천하, 만민이라고 일러주신다. 이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 삼으심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5) 산상보훈(마5:1-5:12)
그림설명 / 갈릴리에 있는 팔복교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5:3-10)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것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산상보훈은 8복이라고 말하는데 예수님은 여기서 먼저 우리가 어떻게 하라는 말씀을 내리시며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에게 내리시는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입을 열어(5:2)라는 표현은 히브리식 표현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시작하셨다는 말을 그리스도께서 입을 열었다 하는 식으로 표현한다.
1. 심령이 가난한 자 =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예수님은 결코 맹랑한 이론이나 우격다짐으로 스토아 철학들처 럼 혹한 결정론으로 이들의 마음을 굳어지지 않게 하고 스스로 의 마음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천국으로 안내하신다.
2. 애통하는 자 =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은 결코 비참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만에 빠져 있 는것 보다는 진실을 바로 알고 애통하는 것은 축복이라고 하신 다. 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위로를 찾도록 유도하신다. 바울은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 이로다"(롬 5:3-4)
3. 온유한 자 =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또한 온유한 마음은 결국 그리스도와 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일 것이다. 아직도 온유한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 일 부분을 사단이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배부를 것임이요
'주림'과 '목마름'은 대유법적 표현으로 필수적인 것의 부족에서 오는 궁핍으로 표현된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부패와 잘못 된 율법주의에 빠져있던 지도자들을 보며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자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있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 =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기존의 인간의 생각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누고
함께 나누어 가지는 자는 본인도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약속을 주신다. 결코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자 보 다는 이웃과 함께 하는 자와 하나님도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6. 마음이 청결한 자 =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 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마음이 더렵혀지지 않은 자 즉 세상의 향락이나 즐거움보 다는 하나님께 온전히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신다.
7. 화평케 하는 자 =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어디서나 다툼을 피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언제나 화평을 추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행 10:36)
8.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의를 위하는 자는 핍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 러나 천국을 약속으로 주신다. 예수님 자신이 의를 위하여 제일 많이 핍박을 당하신 분이다.
6) 율법의 완성(마5:17-7:29)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은 두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직접 돌 판에 새겨 주신 십계명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율법이다. 그러나 십계명 외의 생활 율법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폐하게 되는 것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제사 율법은 단번에 영원한 속죄양이 되어주심으로 우리가 다시는 양을 잡아 하나님께 대속 물로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히10장) 실제로 생활 율법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형식적으로 되어버린 경우가 흔하였다. 즉 마음에서는 멀고 행위만을 함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던 때였다. 바로 예수님은 이러한 잘못된 율법에 대해서 재정리해 주시는 것이다.
그림설명 / 경문 : 정통적인 유대인이 신6:8의 말씀에 따라 이마에 율법 구절을 넣은 조그만 상자(경문)을 차고 있다.
다섯 가지로 율법에 대해서 먼저 지적하신다.
1) 살인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1)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에 있는 자(요일2:9),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요일3:15)라고 행위 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원론적인 부분을 지적하신 것이다.
2) 간음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7)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 참고 욥31:1, 잠6:25)
3) 맹세
"또 옛 사람에게 말 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33)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 이니라"(민 30:2, 참고 레19:12, 약5:12)
4) 보복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출 21:24) 모는 문제를 폭력으로 풀려고 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며 용서를 바라신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21)
5) 이웃 사랑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43)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8 참고 눅10:29-37)
모세 당시에는 남자가 일시적인 생각에 따라 아내를 버릴 수 있었다. 모세의 율법은 아내에게 안전을 보증해 주었다. 예수께서는 결혼의 근본적인 의미와 목적을 지적하신다. 둘이 "한 몸"이 될 때 맺어지는 "결속"은 나눌 수 없다. 어느 한 편이 그 결속을 파기한 경우를 제외 하고는 이혼을 생각할 수 없다(마19:3-9). 만일 파기한 어느 한쪽은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결과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있어서 먼저 본을 보이실 것을 강조하신다. 그것은 지금까지 율법적인 해석에 의해서는 어떠하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새로운 말씀에 따를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 이라고 볼 수 있다. 남을 함부로 비판하지 말고(1-5절) 분별하여 행동하며(6절) 결코 모든 일에 있어서 기도하는 일을 뒤로하거나 단념하지 말고(7-11절) 남에게 대접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다(12절). 잘못된 길로 가는 자들도 많이 있는 만큼(15-20절), 자신은 영생의 길로 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라(13-14절) 또한 스스로 속이고 속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에 주의하고(21-23절)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24-27절).
7) 예수 그리스도의 병 고치심과 사역(마8:1-9:38)
병을 치료하시는 권세
예수님은 각종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질병에 대한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으며 결국 인류의 모든 병에서 해방시킬 메시야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병을 고치시는 일로 모든 사역이 마치는 것은 아니었다. 병을 고쳐 주심과 동시에 항상 가르치시는 일을 함께 하셨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 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문둥병자를 고치심(1-4절)유대인들에게는 문둥병자는 부정한 자요 접촉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에게 말로만 하던지 쳐다보시는 것으로 만도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 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가까이하지 않는 문둥병자에게까지 직접 손을 내밀어 치료하심으로 그는 모든 병자와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심을 조금도 꺼리지 않고 고쳐주셨던 것이다.(문둥병에 대한 자세한 것은 레13-14장)
백부장의 믿음(5-13절)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병을 고치러 온 것이 아니라 당시의 종은 노예와도 같은 보잘것없는 하인의 병을 위해 백부장이 자신의 신분과 채면을 뒤로한 채 예수님께 나아온 것이다. 예수님은 단번에 그의 믿음을 아시고 이스라엘 중에는 이만한 믿음이 없다고 칭찬하셨다.
자연에 대한 권세
예수께서는 인자(20절)라는 말로 자신을 가리켜 자주 사용하신다. 이 명칭은 그의 인성을 강조하나(시8:4) 그 인성 저편의 신성을 강력히 지적한다(단7:13-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 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마 8:27-28) 예수님은 자연에 대해서도 다스릴 권세가 있으셨다. 확실히 이러한 증거들로 인하여 그가 메시야 되심을 더욱 확증하신 것이다. "바다의 흉용(洶湧)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喧譁)까지 진정하시나이다"(시 65:7) 바람도 그치게 하심(마14:32)
귀신에 대한 권세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마 8:28) 마가와 누가는 이 중 한 사람 "군대"귀신 들린 자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막5:1-17, 눅8:26-37). 여기서 마태는 예수님이 그 두 사람을 어떻게 고치셨는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가다라(갈릴리 호수 동남 편 6마일쯤 떨어진 성읍) 주민들은 더 많은 돼지 떼를 잃을 것을 염려하여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실 것을 간구하였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셨다(막9:25) 귀신들도 믿고 떨음(약2:19) 이미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을 받을 때 사단도 물리치신 것이다.
그림설명 / 거라사 :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 지방에 이르러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막 5:1-2) 거라사라고 알려진 곳이 세 곳인데 가다라. 게르 게사.예라시이다.
사망에 대한 권세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 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마 9:24-26)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다가오는 것이며(히9:27) 인간은 그 모든 문제보다도 죽음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아무 능력이 없다. 예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충분히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임을 한 소녀의 살리심으로 입증되었다. 물론 후에는 예수님 스스로가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된 것이다. 바울은 믿는 우리에게 만일 부활이 없다면 제일 억울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도중에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마 9:23) 아마도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는 이적 행하시기를 피하고자 하셨을 것이다. 초상집에는 피리 부는 자들이 몰려와 조곡을 연주하는 예가 자주 있었다. 이번 사역에서의 결론은 예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들을 보시기를 민망히 여기신 것이다. 이것을 보시며 제자들에게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그림설명 / 제단화:그리스도와 열두제자를 묘사한 12세기의 제단화. 바르셀로나의 타타 루나미술관 소장.
8)열두 제자들의 선택과 파송(마10:1-42)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역을 함께 하시려는 의도에서였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신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6) 이것은 계속해서 복음을 이방인에게는 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처음에 택한 민족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먼저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의미와 가까운 곳에서부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뜻이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또한 예수님께서는 "차라리 이스라엘 집으로 가라"는 것은 사도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더욱 열심을 품고 복음을 전할 것을 명하신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는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라"(마10:8)고 하신다. 즉 복음을 전할 때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진 것만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를 바라시며 그 길에는 어떠한 조건이 우선되지 않는다. 다만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는 것은 강요적인 것이 아닌 받은바 은혜에 따라 하라는 것이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복음 전도자들은 무엇을 받기보다는 먼저 늘 대접하라고 하신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또한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 가라고 하신다.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공급해 주신다는 약속의 의미가 있다.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 사실상 복음전도는 불가능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데는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마10:14)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羊)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마 10:16) 그러나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마10:19) 핍박도 받으나(마10:23)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며(10:22) 몸은 죽여도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마10:28) 하나님은 모든 만물들을 기르시며 먹이시는데 참새 두 마리(10:29)보다는 제자들이 훨씬 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복음을 전하기 전에 권세를 주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영광스러운 것은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 이니라"(마 10:40)는 주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제일 힘이 되는 말씀이었다. 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7-38)
9) 안식일의 주인(마12:1-14)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휴일로 삼고 일을 멈추는 날로 1주간 중 제 7일째에 해당하는 날(출20:8-11, 신5:12-15). 안식일은 금요일 오후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이다. 안식일은 휴식만이 아니고 성일로 지켰다(왕하4:23).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서 안식일을 지키셨다. 그러나 평일에 한 것처럼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또 그들의 질병을 고치기도 하셨다. 따라서 바리새인들과 회당의 관원들은 종종 안식일에 선을 행한다고 그리스도를 비난하였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따도록 그의 제자들을 허락한 이유를 추궁 당할 때,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의 행위를 다윗이 자신과 그의 신하들이 시장할 때에 하나님의 전에서 행하였던 일과 비교하셨다(삼상21:1-6). 이와 같이하여 그리스도는, 비록 그것이 어느 정도의 일을 내포한다 할지라도 안식일에 필요하다면 일을 하는 것이 옳음을 암시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이해하는데 반대했다(마12:7, 막2:27, 요5:10).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주님의 부활이 일요일이었다는 데서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초대교인들이 지킴으로 비롯되었으며 이날이 바로 주일(성일) 이다(계1:10).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39가지 안식일 금법은 육체적 노동과 관련 있는 조항들이었다.
1. 씨 뿌리지 말 것
2. 밭 갈지 말 것
3. 곡식 단을 묶지 말 것
4. 곡식을 거두지 말 것
5. 곡식을 타작하지 말 것
6. 곡식을 까불지 말 것
7.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들지 말 것
8. 곡식을 찌지 말 것
9. 채질하지 말 것
10. 반죽하지 말 것
11. 굽지 말 것
12. 털 깍지 말 것
13. 빨래하지 말 것
14. 때리지 말 것
15. 염색하지 말 것
16. 실 짜지 말 것
17. 밧줄 끌지 말 것
18. 두 끈 만들지 말 것
19. 두실 을 짜지 말 것
20. 두실 을 가르지 말 것
21. 매듭을 짓지 말 것
22. 매듭(끈)을 풀지 말 것
23. 바늘로 두 번 깁지 말 것
24. 두 뜸을 깁기 위해 찢지 말 것
25. 사슴을 잡지 말 것
26. 죽이지 말 것
27. 껍질을 베끼지 말 것
28. 소금 치지 말 것
29. 그 가죽을 만들지 말 것
30. 머리털을 밀지 말 것
31. 그 것을 깍지 말 것
32. 두 글자를 쓰지 말 것
33. 두 글자를 쓰기 위해 지우지 말 것
34. 집 짓지 말 것
35. 헐지 말 것
36. 망치로 납작하게 때리지 말 것
37. 불을 끄지 말 것
38. 불을 켜지 말 것
39.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물건을 옮기지 말 것
10)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마12:38-50)
구약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은 그 증거로 표적을 수반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모세가 완악 했던 바로 왕 앞에 나아가 내 백성을 떠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 그는 많은 기적을 행함으로써 그가 하나님이 보낸 사람임이 입증되었다(출7:8-24).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 설 때에도 참선지자의 표로서 3년6개월간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게 했던 일이 있다(왕상17:1).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표적을 보이셔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증명해 보이시지 않았을까? 여기서 바리새인들이 요구했던 표적은 무엇이었는가? 바리새인들은 지금까지 예수님이 행하셨던 많은 이적에 대하여 듣기도 했고 또한 보기도 했을 것이다. 불구자를 낫게도 하셨고 문둥병자를 고치기도 하셨고 바다의 광풍을 잔잔케도 하셨고 또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시고 남는 기적을 베풀지 않았던가.
예수님의 이 같은 다양한 표적으로도 만족하질 못하였다면 그 어떤 표적이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렌스키란 학자는 "천체가 움직이며 지상에 일대 변화가 나타나는 그런 표적"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주의 자연법칙마저 변화시키면서까지 강팍하게 저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지 않고 표적이 있다면 오직 "요나의 표적" 그것만을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나를 토해내는 물고기 : 얀 브뤼겔이 그린 요나의 모습으로 뮌헨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거대한 이 물고기는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라고 생각되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사흘간 갇혀 죽은 줄 알았으나 기적적으로 구원받은 후 니느웨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였고 저들이 마침내 구원받지 않았던가. 요나의 물고기 뱃속에서의 기적적인 구원은 그가 하나님에게서 보냄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서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가 약속된 메시아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심을 증거 하게 됐다. 이 표적이 앞으로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로서 믿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진리와 표적을 주셨다.
니느웨성은 요나와 그의 설교로 회개하였으나 예수님의 동시대 사람들은 그의 부활(눅16:31)이나 그의 설교(눅11:32)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불신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오직 심판이 있을 것임을 교훈 한다. 그리고 참신앙은 기적이나 표적이 아닌 말씀에 근거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기적을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은 보고 믿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하고 값진 것이다(요20:29). 기적과 이사를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는 우리 세대의 크리스천들에게도 귀한 교훈을 주시고 있다.
※ 신학용어 이적/표적
이적: [히] [모-페-트 tpE/m(mopheth) [라] prodigium [영] miracle [독] Wunder신약성서에는 "기이한 일"(powerful deeds), "기적"(wonders), "표적 "(signs)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말들이 제시하는 것처럼 이적은 예수 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예수 이후 1 세기에 기독교인의 마음에 들어와 있던 희랍의 자연법 개념은 이 세 용어를 이적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되어 자연법에 역행하여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초자연적 행위로 전의 되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적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서의 권위를 증명하는 것이 되었다
17, 18 세기에 자연 과학이 발달하고 불변법(immutable laws)에 따라 작동하는 개가 계처럼 자연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이적의 개념은 교회의 외부로부터 신랄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정통적인 신학자들은 이적을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 안에서의 커다란 변혁은 자유주의 개신교의 발생과 성서비평의 인정과 함께 발생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개신교는 신앙이 기적적인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적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 고대문서와 다른 경전들을 성공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비평의 기준에서 성서를 제외한 것은 정직하지 못한 역사였다고 믿었다. 여기에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고대 사람들이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나 사건들을 모두 이적 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신약성서의 저자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결론은 정통파에게 혼란을 주었고 세계 2 차 대전 이전 수 십 년 동안 이적과 성서비평에 대하여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신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많은 자유주의 신학적 개념을 부인했지만 성서비평과 그 전제조건들을 인정했다.
어느 날 예수께서 바닷가에 앉으셨을 때 많은 군중이 모여들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배 위에 올라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한 농부가들에 나가 씨를 뿌렸다.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져 흙이 깊지 않으므로 곧 싹이 나왔으나 해가 돋자 뿌리가 없으므로 타버려서 말랐다.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나무가 자라 그 기운을 막았다.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로 무성하여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었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누구든지 하늘나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는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버린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곧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지는 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로 결실 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 사람은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림설명 / 학개의 삽화 : 씨를 뿌리는 사람을 묘사한 <로맹의 기도서>의 삽화. 15세기. 파리국립도서관소장.
11) 겨자씨의 성장 (마 13:31-32 막 4:30-32 눅 13:18-19)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하시기 전에 잠시 생각하셨다.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막 4:30), "하나님 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눅 13:18) 하셨다. 천국에 대해서 어떻게 무엇으로 비유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신 것이다. 천국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또 사람들은 사실 천국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서야 알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과 같으셨을 것이다.
본래 이 비유는 마가복음과 Q자료에 다 들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유의 주요 특징들은 두 형태의 비유에 있어 비슷하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는 마가와 달리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어 이것이 Q자료의 특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 새가 "가지들"에 둥우리를 친다는 언급(마가에서는 그늘이 강조됨)2) 겨자씨 식물을 "나무"라고 말하고 있는 점3) 겨자씨 비유가 누룩 비유와 연결되어 있는 점
그림설명 / 겨자 : 흑겨자 (Brassica nigra) 와 유사한 겨자씨 비유에 언급된 백겨자(Sinapis aiba).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본래 비유에 반영되어 있는 "성장"과 "대조"의 요소를 각기 자기 상황 에 따라 비유의 요점을 강조하고 있다.마가는 대조를, 누가는 성장을, 마태는 대조와 성장을 둘 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록하고 있다.
12) 비유를 사용하신 목적
예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목적은 마13:10-15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예수의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 즉 진리를 지상의 이야기나 은유적 표현을 통해 인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함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이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감추기 위한 것인가 ? 아니면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A. 계시적 효과
예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목적은 계시적 효과에 있다고 하겠다. 예수의 비유는 비유를 들은 모 든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신 후에 그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 예증으로 비유를 사용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기에 인간을 유한한 정신에 하나님나라의 장엄 한 계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들에게 친근한 것들로 낮아져서 전해야 하셨다.
B. 은폐적 효과
예수의 비유는 비유를 계시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 은폐적효과를 가지셨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효과에 대해 가장 잘 밝혀 주는 부분은 "마13장, 막 4장"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마13장, 막4장 이전에도 비유를 사용하였으나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가르침의 예증이 아닌 가르침 그 자체이며, 다른 교수 방법을 사용치 않고 비유로만 가르치셨던 이유는 예수께서 은폐를 의도하셨기 때문이 다. 이 의도는 막 4:12에 잘 드러난다.
C. 예수님 비유들
(1) 등불 비유:28,7월 그린 햇틴산에서(마5:15-16).
(2)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비유:28,7월 그린 햇틴산에서(눅6:39, 마15:14).
(3) 집짓는 비유:28,7월 그린햇틴산에서(마7:24-27, 눅6:46-49).
(4) 두 빚진 자의 비유:28,9 월 갈릴리 해변에서(마13:3-23, 막4:3-20).
(5) 힘센 자를 결박하는 비유:28,10월 가버나움에서 (마21:25-29,막3:23-27,눅 12:17-22).
(6) 씨뿌리는 비유:28,10월 갈릴리 해변에서(마13:3-23,막4:3-20).
(7) 씨가 은밀히 자라는 비유:28,10월 갈릴리 해변에서(막4:26-29,눅8:4-15).
(8) 곡식과 가라지 비유:28,10월 갈릴리 해변(마13:24-30).
(9) 겨자씨 비유: 28,10월 갈릴리 해변(마13"31-19).
(10) 누룩 비유:28,10월 갈릴리 해변(마13:44).
(11) 감추어진 보화 비유:28,10월 갈릴리 해변(마13:44).
(12) 진주 비유:28,11월 갈릴리 해변(마13:45-46).
(13) 그물 비유: 28,11월 갈릴리 해변(마13:47-50).
(14) 집주인 곡간에 옛것과 새것의 비유:28,11월 갈릴리 해변(마15:52).
(15) 새 천으로 헌옷 깁는 비유:28,11가버나움(마9:17,막2:22,눅5:37-38).
(16) 잃은 양 비유:29,11월 가버나움(마18:12-14,눅 15:3-7).
(17) 빚진 종의 비유:29,10월 가버나움(마18:23-35, 눅15:3-7).
(18) 선한 목자 비유:29,11-18일간 예루살렘(요10:1-18).
(19) 새술을 헌 부대에 넣는 비유:28,11월 가버나움(마9:17,막2:22).
(20)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29,12월 비리아(눅10:30-37).
(21) 밤에 찾아온 친구 비유:29,12월 비리아(눅11:5-8).
(22) 어리석은 부자 비유:29,12월 비리아(눅12:16-21).
(23) 주인을 기다리는 종 비유:29,12월 비리아(눅12:35-40).
(24) 지혜 있는 청지기 비유:29,12월 비리아(눅12:42-44).
(25) 악한 종 비유:29,12월 비리아(눅12:45-48).
(26) 열매 없는 무화과 비유:29,12월 비리라(눅13:6-9).
(27) 혼인집 낮은 자리 비유:30,1월 비리아(눅 14:7-11).
(28) 큰 잔치 비유:30,1월 비리아(눅14:16-24).
(29) 탑을 쌓는 비유: 30,1월 비리아(눅 15:8-10).
(30) 싸우는 왕의 비유:30,1월 비리아(눅1J4:31-33).
(31) 잃은 돈의 비유: 30,1월 비리아(눅15:11:32).
(32) 탕자 비유: 30,1월 비리아 (눅15:11-32).
(33) 불의한 청지기 비유: 30,1월 비리아(눅 16:1-13).
(34)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30,1월 비리아 (눅16:19-31).
(35) 관원에게 구하는 과부:30,3월 비리아(눅18:10-14).
(36) 무익한 종의 비유:30,3월 비리라(눅18:10-14).
(37) 바리새인과 새리의 기도 비유:30,3월 비리아(눅18:10-14).
(38) 포도원 일군 비유:30,3월 비리아(마20:1-16).
(39) 은 한근씩 준 비유: 30,3월 여리고(눅19:12-27).
(40) 두아들 비유:30,4,4,화요일 예루살렘 성전(마21:28)-32).
(41) 악한 농부 비유: 30,4,4 화요일 낮 예루살렘 성전(마20:33-41,막12:1-9,눅20:9-16).
(42) 왕의 아들 잔치 비유:30,4,4화요일 낮 예루살렘 성전(마22:1-10).
(43) 예복이 없는 손님 비유:30,4,4,화 낮 예루살렘 성전(마23:11-14).
(44) 무화과 나무 비유:30,4,4,목요일 낮 감람산(마24:32-34,막13:28-30,눅21:)
(45) 집 주인과 문지기 비유:30,4,4,화요일 낮 감람산(마24:34-37).
(46) 열 처녀 비유:30,4,4,화요일 낮 감람(마25:1-13).
(47) 금 몇량중씩 비유:30:4,4,화요일 낮 감산(마25:31-46).
(48) 산양과 면양 비유:30,4,6,화요일 낮 감람산(마25:31-46).
(49)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30,4,6일 감람산(요15:1-6).
* 도합: 마태-24,14, 마가-9,20, 누가-31,20, 요한-2.
13) 유전에 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마 15:1-20)
막7:1-23절. 종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6:1-18) 처음부터 바리새인들과 충돌을 야기 시켰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전"(성경을 보충하고 해석한 랍비들의 구전 적 가르침)이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것이 성경 어디에 뿌리를 박고 있든 혹은 성경의 어떠한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든 간에 그것의 그릇된 점을 가차 없이 책망하셨다. 그들의 맹세에 관한 규례가 그 중의 한 예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돈을 드리면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면제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렇게 하여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이익을 얻을 수가 있었다. 손을 씻는 것(2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씻는 것(18절)이 문제였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그들의 유전에 대해서 엄격한 준행을 고집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그 당시의 몇몇 외식 적인 경배 자들에 관해서 사용한 말씀을 상고시켜 준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서 이사야29:13을 바리새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으로 인용하신다.
14절 "그냥 두어라" 헬라어 "아페테 아우트스 ajfετε aujtov""는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라" 혹은 "그들을 그들 자신의 운명에 맡겨 두어라"라는 뜻으로 의미할 수도 있다.
그림설명 / 세례요한의 설교: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세례요한(중앙) 과 간교한 지혜와 격정을 내부에 감추고 있는 바리새인과 레위인을 대비시키고 있다.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루스티치작. 1506-1511년 청동. 피렌체 세례당 소장.
14) 변화산의 사건(마9:2-32)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팔레스타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름으로 둘러싸인 헤르몬 산으로 가셨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변형되시더니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찬란한 모습으로 계시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빠져 있었는데 구름 속으로부터 주의 음성이 들려왔고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듣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 지 않았다.
사진설명 / 헤르몬산 :(마17:3,5.6). 안티레바논산맥의 남단에 있는 최고봉으로 연중 눈이 덮여 있다.
성경학자 헨드릭스는 이 변화산의 사건을 말하면서 제자들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기 위함이며 그리스도에게는 고난을 이기는 힘을 얻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체험을 통해 점점 굳게 다져지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열심히 기도하여 치료받은 다음에는 누구보다 더 큰 치료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그러나 이러한 신비한 경험은 신앙의 본질적 의미를 떠나 아편과 같이 그러한 신비에 빠져들려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불신을 만들어 내는 결과가 주어질 것입니다. 분명히 이번 변화산의 사건은 제자들에게 예수가 누구인가를 확신케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두려움에서 눈떴을 때 오직 예수 한 분만 남아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의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1) 그들 앞에 오직 예수만 보인 것은 인류 구원을 이루신 오직 예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2) 그분은 하나님이 보내신 인류의 목자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사실이다. (3) 인류는 오직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변모는 본래의 모습이 보여 진 것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요 1:14)고 사도 요한이 자신들과 함께 사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며 고백했다.
태초부터 영화로우신 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잠시 초라한 모습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신 것이다.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빌 2:6-7)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하신 다음에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모습을 미리 보여 주셨던 것이다.
베드로는 그 영광의 주님을 보는 순간 세상의 어떤 좋은 것도 쓰레기 같고 더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주님의 본래의 모습인 영과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정신없이 거기에 도취 해 버렸다. 다른 아무 소원이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도 주님 곁이 싫고 세상 것이 좋은 사람은 영광의 주님을 보지 못하고 영광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다. 베드로가 만난 주님, 요한 이 만난 주님. 바울이 만난 주님을 우리도 성경 속에서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동등하게 대우한 것은 큰 실수이다. 거기에 초막 셋이 있어서 하나는 예수님, 하나는 모세, 하나는 엘리야를 분양하여 모시겠다고 하는 것은 아직 유대교 적인 발상이다. 자기들의 조상을 아버지라고 해서 거의 신처럼 떠받드는 것이 자기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특히 모세나 엘리야같이 뛰어난 선조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겠지만, 예수님의 비할 데 없이 높으신 그 신분에 대해서 실감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창조자이시고 모세나 엘리야는 피조물인 것이다. 세례요한에 대해서 예수님은 여자가 난 자중에 가장 큰 자 라고 평을 하신 분이다. 그러나 그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나는 그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고 했고 그는 흥해야겠고 나는 쇠해야겠다고 했다. 모세나 엘리야도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 앞에 무릎 굻고 엎드려 경배 드려야 할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아직 그 큰 차이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의 말대로 초막 셋을 지어서 거기서 산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초막에 가두려는 것이고, 또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셨으니 이제 모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예수님이 영화롭게 되셨으니 이제 모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자기를 잃어 버렸다. 변화된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자기 모습이 보인다면 멀리멀리 도망쳐 버릴 것이고, 이사야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만군의 하나님을 뵈었음이로다 (사 6:5)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뵙고 나는 망했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 거룩한 영광의 빛에 자기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그 더럽고 추한 자기가 그 광채 앞에 서 데 베드로는 자기 모습에는 전혀 관계치 않고 자기의 간 곳이 없습니다. 다만 주님만 보인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의인 것이다.
15)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마21:1-11)
마태복음 21장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함께 시작되는 고난주간의 첫째 날과 둘째 날, 그리고 셋째 날에 관한 내용이다. 즉 고난 주간의 첫째 날에 일어난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청결사건(1-17), 둘째 날에 일어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18-22), 그리고 셋째 날에 일어난 예수의 권위에 대한 논쟁과 두 아들의 비유 및 포도원 농부의 비유(23-46)가 언급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본 장에서 우리는 예수와 당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 나귀를 타신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그의 입성을 환영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겉옷을 길에 펴기도 하였고,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무리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종교를 대표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듯 예수는 훌륭하고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 영광 받기보다는 낮고 천한 많은 무리들에게 영광을 받으셨던 것이다.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은'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이는 '지금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가 당신께 간구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에게 찬송 하리로다'라는 뜻이다. 예수는 만감이 교차되는 감람산 기슭 벱바게에서 예루살렘 입성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먼저 예수는 자신의 전지성(全知性)으로 '주께 쓰임 받을 나귀'를 미리 아시고 제자들에게 준비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다. 이처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은 이미 스가랴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메시야의 모습이었다. 나귀는 뭇짐승 가운데서 가장 초라한 짐승으로 겸손을 나타낸다. 즉, 예수는 위엄하게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온유함과 겸손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많은 무리들의 기대에 어긋난 것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 어울리지 않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림설명 /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마22:1-11,막11:1,눅19:28-40,요12:12-19). 두치오의 1308-11년, 패널로 크기는 101*53.7CM이며 시에나 대성당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면 바로 앞의 성벽과 문의 묘사는 설득력이 없으나 건물과 성벽의 선에 의해서 현실적인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풍부하고 서술적 인 세부 묘사에 의해서 화면에 다양한 기분을 주려고 하는 두치오의 예술세계를 볼 수 있다. 종려나무가지를 따기 위해 나무에 올라간 사람, 도로변에 옷을 깔고,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사람, 유리창 밖으로 목을 내밀고 바라보는 사람 등 세부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서술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모습을 무리들에게 보이심으로써 자신이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임을 공식적으로 드러내셨다. 예수의 겉모습이 초라할지라도 그 사역의 성격상 승리와 영광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승리의 입성이라고 하고 또 영광의 입성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의미를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1-5절에서 예수님의 입성은 곧 승리의 입성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스가랴의 예언대로 나귀새끼를 타고 초라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 아마 이 모습을 본 무리들은 예수의 화려한 왕위등극을 보지 못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간의 자만심과 이기적인 욕심을 채워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무리들이 메시야의 도래를 대망 하였다면 메시야가 오실 때 어떤 모습일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자신들이 처한 압제의 상황에서 막연하게 어떤 돌파구로서 메시야를 고대하였을 뿐 메시야 도래에 대한 깊은 생각과 준비가 없었다.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면서 그에 따를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정작 메시야가 오셨을 때 깨닫지 못하고 2,000년 전의 유대인들처럼 메시야를 십자가에 매다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또한 자기 이기적인 생각대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자기 욕심을 채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림설명 / 예루살렘 입성 : 김기창 작. 1954년.수평구도를 잡아 위 3분의 1은 지붕과 누각으로, 아래 3 분의 2는 군중으로 잡아 나귀를 탄 예수에 군중들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다양 속의 일원화라는 미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여인들의 복장은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남자들의 얼굴은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김기창은 갓 쓴 예수를 한국 최초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내외에 큰 반응을 일으켰다.
예수는 겸손의 왕이요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분이셨기 때문에 겸손하게 주님께 순종하는 성도를 아름답게 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무리들이 예수의 초라한 모습에 실망했다고 해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외형상의 그 초라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승리의 입성이었다. 대적 자들의 시기와 질투, 음해와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예루살렘성에 당당하게 입성하심으로 대적 자들에게 승리하셨다. 초라한 메시야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모든 무리들에게 겸손과 온유의 왕으로 당당히 입성하였으니 그 또한 승리였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사역을 통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만유의 왕이 되셨으니 이 또한 승리가 아닌가?
6-11절에서는 예수님의 입성은 영광의 입성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에는 많은 무리의 환호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의 입성을 환영하는 무리들은 낮고 천한 소외계층이었다. 특히 무리들은 주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자기 겉옷을 깔며(겸손과 헌신을 상징하는 행위) 길옆의 나뭇가지를 꺾어 땅에 뿌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승리를 기뻐하는 행위) 환호하였다. 여기에서 종려나무가지는 승리의 상징이었다. 백성들의 환호와 영광은 장차 예수께서 고난 후에 받으실 영광을 예시한다. 비록 무리들은 예수가 왕위에 오를 것이라는 세상 적인 기대 때문에 열광하였지만 예수는 백성들의 기대를 영적으로 이루셨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단지 3일 만에 살아나셔서 사망과 세상을 이기시고 명실 공히 왕으로 등극하셨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환호와 열광은 바로 예수의 영광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영광의 입성이다.
16)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마21:18-22)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예수님 당시의 청중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이다. 농부의 삶과, 어부 그리고 목자의 삶을 많이 다루셨는데 당시의 청중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연을 접하며 살았다. 예수님도 그런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위의 자연을 보시면서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방탕한 유대교들에 실물 교훈/형식적인 신앙의 실체 일깨우심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란 책을 쓴 버트란드 러셀은 영국이 낳은 유명한 철학자요 저술가였다. 그는 자신이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던 이유를 「예수님이 말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그 행위를 자기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비이성적 그리고 비윤리적 처사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연 러셀만 그렇게 생각할까. 우리 또한 이 본문을 대할 때 예수님은 왜 사람도 아닌 나무를 저주하여 뿌리까지 말라죽도록 하셨을까.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자. 예수님은 유월절이 되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셨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시장하신 지라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 곁에 가시어 열매를 구했으나 그 나무는 잎만 무성 했지 열매가 없었다. 예수님은 그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시고 그 길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다시 성전 밖으로 나오셨다.
예수님이 본문에서 몰인정하게도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무화과나무 자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었다. 이 열매 없는 나무에 대한 주님의 심판을 통해 외식과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 당시 유대교도들을 비유해서 책망하신 것이다. 무화과나무에 대해 저주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가의 저주받은 무화과와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두고두고 기억시키기 위한 실물교훈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내 이 경고를 무시하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 위에 처형하지 않았던가. 그 죄의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 독생자를 십자가 위에 처형한 대가는 로마 군대에 의해 철저하게 보상받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기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잎은 무성하나 열매가 없는 나무 그것은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신앙의 실재가 없는 오늘의 우리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어 신앙의 실재인 그 열매를 요구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Ahiqar 사화(기원전 5세기의 것으로 확인됨)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아들아, 너는 물가에 서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다. 이제 주인은 그 나무를 베어 버려야 하게 되었다. 그 때 그 나무가 주인에게 말했다. 나를 옮겨 심어 주세요. 그 때에도 내가 열매를 맺니 못하거든 나를 베어버리세요. 그러나 그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물가에 서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했거늘 어찌 다른 장소에 옮겨진다고 열매를 맺겠는가?"예수님은 이러한 民話를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 민화에서는 무화과나무의 간청이 거부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자가 곧 문 앞에 가까이 온 것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설명 / 무화과나무; 흔히 길가나 집주변에 있는 성서시대의 주요한 과일인 무화과 (Ficus Carica).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포도원 근처나 길가와 집 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성경에는 무화과나무(Ficus carica)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타난다. 특히 예수님은 여러 비유와 예화들에 무화과나무를 사용하셨다. 이 나무의 잎사귀는 매우 일찍 돋아남으로 봄을 알리는 전령이라 할 수가 있다. 열매는 가을에 지는 넓은 잎사귀들 사이에서 여름 동안에 익는다. 무화나 나무는 이 무화과 위에 애굽 무화과(Ficus Sycomorus)가 있다.
예수님시대의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전역에 유실수로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Bethphage(무화과나무들의 집)이 위치한 예루살렘 근처는 더욱 그러했다.무화과나무는 히브리어로 "테에나"이며 헬라어로는 "수콘", 덜 익은 무화과를 "팍가"라는 말로 (아2:13 hn;aET]]테에나) 절에 사용되었다. 무화과나무는 구약에서"테에나"로 23번, 신약에서 (수케 sukh' )로 16번 언급되었습니다. 무화과 학명은 피쿠스 카리카(Ficus carica)입니다. 무화과나무 열매는 즙이 많고 열매를 자르지 않으면 꽃을 볼 수 없도록 생겼다. 무화과는 둥근 종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배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또 계절에 따라 일정하게 두 차례 열매를 맺는데 5,6월에 익는 일반적인 겨울 무화과가 있고 8,9월에 익는 여름 무화과가 있다. 매년 4월쯤 입이 나타나며 열매의 싹은 2월쯤 볼 수 있다. 팔레스틴에서는 1년에 9-10개월 이상 열매를 딸 수 있다는데 어린 무화과나무는 겨울에 얼어 죽어 첫 번째 열매는 딸 수 없다. 예수님 당시에는 여러 종류의 무화과나무가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화과나무는 더운 지방에서 무상한 커다란 잎사귀와 고마운 그늘을 제공해 준다. 우물 옆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올리브나 잡목, 그리고 감람나무와는 달리 무화과나무는 겨울이 다가오면 잎을 떨어진다. 그리고 다른 여러 낙엽송들이 봄철에 일찍이 생명의 신호를 보여주기 시작할 때도 무화과나무는 그 앙상한 가지를 여름이 오기 직전까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리고는 눈이 나고 봉우리가 터져 며칠 만에 부드러운 잎이 나온다. 자연은 살인적인 밤의 추위는 지나가고 여름철이 왔다고 전해진다.
예수님은 4월 첫 주 동안에 싹이 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가르치셨는데 바로 그 때가 무화과나무에서 생명의 첫 신호를 보여주는 시기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24:32) 이 말씀은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였다.
17) 예수님의 12제자
예수님의 12제자들 표 | ||
제자 이름 |
성경 본문 |
내 용 |
시몬 베드로 |
눅 5:10 |
안드레의 형제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고기 잡는 어부 |
막 1:30, 고전 9:5 |
결혼한 기혼자 | |
요 1:41-42 |
그의 형제 안드레에 의해서 예수님께 가게 됨. | |
눅 5:3-11 |
이후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자로 부름을 받게 됨. | |
마 8:14-15 |
예수님이 장모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 |
눅8:51,마 17:1-4 |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예수의 수제자가 됨. | |
마 14:28-31 |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물 위를 걸음 | |
요6:68-69,마 16:16 |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두 가지 신앙고백을 했다. | |
마 16:21-23 |
베드로의 마음에 사단이 들어와 그리스도의 죽음을 만류하려 함 | |
마 17:27 |
입에 동전을 문 고기를 잡았다. | |
마 18:21-22 |
용서에 관하여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 |
마 17:1-4 |
그리스도의 변화된 모습을 목격함. | |
마 19:27 |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대한 보답을 약속 받았다. | |
눅 22:8 |
마지막 유월절 준비를 함. | |
요 12:6, 24, 36 |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함. | |
요 18:10-11 |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다. | |
막 14:50, 54 |
멀리서 그리스도를 따라감. | |
요18:15-18, 25-27 |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함. | |
눅 22:62 |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에 심히 통곡함. | |
눅24:12,요 20:2-10 |
요한과 함께 빈 무덤을 찾아감. | |
눅24:34, 고전 15:5 |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방문함. | |
요 21:1-23 |
갈릴리 해변에서 그리스도의 마지막 이적에 참여함. | |
안드레 |
요 1:40 |
세례 요한의 제자였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형제를 인도함. |
요 1:44 |
베드로 형제로 갈릴리 벳세다 출신의 어부. | |
요 6:12-22 |
5,000명의 무리를 먹이실 때 예수로부터 시험을 받음. | |
야고보 |
마 4:21 |
요한의 형제로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고기 잡던 어부. |
막 3:7 |
예수님에 의해서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받음. | |
행 12:1-2 |
순교한 최초의 예수님 제자 | |
요한 |
마 4:21 |
야고보의 형제로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고기 잡던 어부 |
마 17:1-4 |
가장 총애 받던 제자로 3명의 수제자중 하나 | |
요 1:35 |
전에 세례요한의 제자였음. | |
눅 9:49-50 |
한 때 그의 예전 종파심 때문에 책망 받음. | |
막 10:35 |
천국에서 영광의 자리를 달라고 부탁함. | |
눅 22:8 |
최후의 만찬 준비하는 것에 참여함. | |
요 13:23 |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의 품에 기댐 | |
요 19:26 |
십자가 곁에 있었던 유일한 제자 | |
요 19:27 |
마리아를 돌보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받음. | |
요 20:2-3 |
베드로와 함께 빈 무덤에 찾아감. | |
요 21:7, 23 |
그리스도의 마지막 이적 때 있었다. | |
빌립 |
요 1:43 |
전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 |
요 1:40-46 |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함. | |
요 6:5-7 |
5,000명의 무리를 먹일 때 그의 믿음이 시험받음. | |
요 12:20-22 |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던 헬라인들의 방문을 받음. | |
요 14:8-9 |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질문함. | |
마태(레위라고도 불림) |
눅 5:27 |
전에 세리였다. |
마 9:9 |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름. | |
눅 5:27-29 |
큰 잔치를 마련하고 새로운 믿음의 친구들과 교재를 나눔. | |
가나안인 시몬 |
마 10:4, 막 3:18 |
열심당원이라 부르는 정치적 우익 집단의 일원임. |
도마 |
요 11:16 |
쌍둥이였다. |
요 11:16 |
나사로를 살렸던 예수님의 경정에 실망했다. | |
요 14:5 |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를 질문함. | |
요 20:24 |
부활 후 처음 다락방에 나타나실 때 없었음. | |
요 20:25 |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없다고 생각함. | |
요 20:28 |
한 주일 후에 예수를 만난 후 발 밑에 꿇어 엎드림. | |
요 21:2 |
예수님의 마지막 이적 때 함께 있었다. | |
나다나엘(바돌로매라고도 불림) |
요 1:45-46 |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빌립에 의해서 발견됨. |
요 1:49 |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부른 첫 번째 사람. | |
요 1:51 |
예수님의 첫 예언, 승천에 관한 말을 들음. | |
요 21:2 |
예수님의 마지막 이적 때 함께 있었다. | |
다대오(유다라고도 불림) |
막 15:40 |
작은 야고보의 형제. |
요 14:22 |
어찌하여 자신을 제자들에게는 나타내고 세상에게는 나타내지 아니하려는지 질문함. | |
작은 야고보 |
막 15:40 |
이 별명은 그의 키를 일컬어 말하는 것 같다. |
가롯 유다 |
요 12:6 |
유일하게 유대 출신의 제자로 보여짐. |
요 12:4-6 |
제자들을 위해 돈궤를 맡아 관리함 | |
요 6:70-71 |
예수님 사역 초기부터 사탄에게 팔렸다. | |
마 26:15-16 |
은 30에 예수님을 팔기로 의논함. | |
눅 22:3, 요 13:27 |
사탄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도록 허락함. | |
요 13:26-30 |
다락방에서 예수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담았음. | |
요 18:2-4 |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겟세마네로 군병들과 함께 찾아옴. | |
마 26:49 |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배반했다. | |
마 27:3-4 |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의 피 값을 돌려주었다. | |
마 27:5 |
밖으로 나가서 스스로 목매어 자살함. |
18) 십자가
1. 어원: 헬라어-히스테미(ίστεμι)-(문자적으로, 상징적으로), 붙잡다, 거하다, 지적하다, 가져오다, 이룩하다.-스타우로스 staurov"-막대기, 기둥 십자가(최고형을 집행하는 도구로서), 죽음의 위험에 노출 됨, 즉 자기 부인; 함축적으로 그리스도의 속죄.
2. 영어Cross. 옛날 서양에서 죄인을 사형하던 십자가 형틀.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케 하실 때 달리신 형틀. 기독교의 상징 예수께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신 고난의 십자가.
※.십자가에 대하여 출 처 : 기독 지혜사, "성서대백과" p 756-758
동양에서 기원한 처형 방법 또는 고문을 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다는 일, 특히 후자는 메대인과 페르시야인들에 의해 집행된 것으로서 AD 1세기경 헬라인과 로마인을 통하여 서양에 전래되었다.
1. 고문 수단으로서의 십자가
십자가는 수직 버팀대와 횡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횡대는 버팀대 꼭대기 또는 꼭대기 바로 아래에 가로 놓여 있었다. 수직 버팀대의 높이는 보통 사람의 신장 정도였다. 수직 버팀대의 높이는 보통 사람의 신장 정도였다. 수직 버팀대에는 나무받침이나 쐐기가 가설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사형수를 위한 의자의 역할을 했으며, 또한 부분적으로 사형수의 몸을 지탱해 주는 역할도 하였다. 또한 수직 버팀대에 발 디딤대가 가설될 때도 있었다.
십자가 처형을 받는 죄수들은 이틀 내지 사흘 만에 사망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시한은 의자(라틴어로는 sedile<세딜레> 또는 corun<꼬르누>라고 한다)나 발 디딤대가 있고 없고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손만이 묶인 채 매달린 경우 사형수의 혈압이 급격히 줄게 되어 맥박수가 증가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형수는 십자가에서 처형되기 전에 심한 채찍질을 당하였다. 그리고 십자가 형벌이 진행되면 뇌수와 심장에 피가 불충분하게 공급되기 때문에 곧 시력장애가 발생하게 된다. 다행히 사형수가 의자와 발 디딤대를 이용하여 몸을 지탱할 경우에는 피는 어느 정도 상체 순환하게 된다. 손을 횡대(라,patibulum<빠띠불름>)에 고정시키는 대에는 새끼나 못이 사용되었으며 간혹 발에도 못을 박을 때가 있었다. 이러한 고문을 끝내고자 할 때에는 사형수의 다리를 곤봉으로 때려 무릎 아래를 바스러뜨렸다.
이렇게 되면 사형수는 더 이상 그의 체중을 견딜 수 없게 되며 피도 급속히 신체에 순환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곧 이어 심부전증이 발생하게 된다. 사형수의 죄명은 보통 사형수를 처형장소로 끌고 온 정리가 발표하였다. 때로는 사형수 자신이 가져온 판( 라, tilulus <띠뚤루스>) 위에 죄명을 기록할 때도 있었다. 만약 사형수가 그에 대한 횡대를 메고 올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다른 사람이 이 판을 가져왔다. 후대에 이르러 죄명이나 죄명을 기록한 판은 처형서 십자가에 부착되었다.
2. 로마인의 십자가 처형
십자가 처형 방법을 주로 실시한 자들은 로마인이었다. 로마인에게는 사형수를 십자가에 비틀어 매는 일률적인 방법이 없었는데 이것은 로마법이 십자가 처형을 오직 노예와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사람들에게 실시하도록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 시이저(Augustus Caesar)는 그가 30,000명에 달하는 도망노예를 체포하여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은 자들을 모두 십자가형에 처하여 집단적으로 처형하기도 하였다. 크라쑤스(Crassus)는 스파르타쿠스(Spartacus)를 따라 나선 6,000명 이상의 반란 노예들을 체포하여 로마에서 카푸아(Capua)에 이르는 아피아로(the Appian Way)를 따라 이들을 십자가형에 처하였다. 이들의 시체는 이러한 반란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해 썩도록 방치해 두는 것이 관례였다.
쥴리어스 시이저(Julius Caesar)는 몸값을 받기 위해 그를 붙잡았었던 해적들을 체포하여 이들을 모두 십자가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시이저는 이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목구멍을 먼저 따 버렸다. 팔레스틴의 로마 군대는 셉포리스(Sepporis)성을 함락한 후 바루스(Varus) 와 그의 시리아 군대가 그의 군대를 살해하거나 체포할 때까지 셉포리스성으로부터 갈릴리 전역을 지배하였던 유다스(Judas)의 반란 가담군 2000여 명을 십자가형에 처했었다.
마셜은 로마 시민들의 여흥을 위해 한 도적이 원형투기장에서 십자가 처형을 받는 광경을 묘사한 적이 있다. 네로(Nero)는 기독교인에게 로마를 불태웠다는 협의를 뒤집어 씌운 채 많은 기독교인들을 십자가로 처형하였다. 오리겐 (Origen)의 기록에 의하면 이 때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한다. 로마의 황제들은 계속해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으며, 이에 따라 십자가 처형은 대부분의 기독교인을 살해하는 방법이 되었다. 끝으로 십자가 처형은 콘스탄틴 황제 치하 시 형벌의 방법으로서는 제국 전역에 걸쳐 폐지되었다. 이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꿈속에서 십자가의 거룩한 표징을 보았기 때문에 취해진 조처였다.
3.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 처형
예수의 사역은 십자가 처형으로 끝났다. 혹자는 예수의 사역 기간이 3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는 유월절에 세 차례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2:13, 5:1, 6:14, 13:1). 그러나 요한복음 5:1절에 나오는 유대인의 절기는 유월절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공관복음서는 유월절을 오직 한번 언급할 뿐이며, 이에 미루어 보아 예수의 사역 기간 동안 유월절이 두 번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은 예수의 공생애에 1년을 더 가산해 준다. 그리고 시저의 월력에 따르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 연도는 A.D. 30년 4월 7일 경이었다.
예수가 지고 가다가(요19:17) 나중에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간 십자가는 사실상 횡대(Patibulum)였을 것이다. 사형수는 오직 횡대만을 수직 버팀대가 이미 세워져 있는 처형지까지 옮기는 것에 관례였다. 죄명을 기록한 판을 십자가 위에 놓았다고 함으로 우리는 횡대가 수직 버팀대가 꼭대기에 놓여 있지 아니하고 꼭대기 바로 아래에 가로 놓아져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의 높이는 갈대의 길이로 측정되어 왔다(여기서 갈대란 요한복음 19:29절에서 말하는 우슬초이다). 갈대의 길이는 약 90cm 정도였을 것이며 십자가의 높이는 이로 미루어 볼 때 210cm였을 것이다.
로마 군병들은 예수에게 마취제로 쓰이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는 이를 거절하였다(막15:23). 예수는 제 삼시(오전9시경)에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15:25), 제 구시(오후3시경)에 사망하였다(15:34,37).그의 다리는 관례대로 꺾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다리를 꺾기 전에 이미 죽은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요19:32,33). 유대인들은 그의 죽음이 속히 진행하도록 요청하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예수는 안식일이자 오순절의 예배일인 그 다음날까지 목숨을 부지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눅23:54). 요한복음에 의하면 로마 군병들은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고 한다. 십자가형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집행되지는 않았으나, 신명기 21:23절에 규정하고 있는 법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된 자의 시체를 밤새도록 십자가에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예수의 범죄 사실을 기록한 판(titulus)위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요19:19)
유대인들은 십자가 처형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였다(신21:23).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못하게 한 가장 심각한 장애물이 되었다. 그러나 십자가는 기독교가 시작될 때부터 복음의 핵심으로 인정되었으며(갈6:14). 보편적으로 용인된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다.
4. 가상칠언
금요일 오전 11시경 안토니아 성문 앞에서는 예수를 잡아 죽이라는 무리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벌써 닷새 전 호산나를 부르던 사람들이 오늘은 "십자가 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바라바는 살리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 비겁하지만 합리적인 빌라도는 "그대들은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매달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노라."그러나 무리들은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세주라고, 메시야라고 고백하던 입술에서 큰 소리로 "죽이시오. 죽 이시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오."그때 빌라도는 군중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 박게 하고 예수의 죄상을 희랍어, 라틴어, 아랍어순으로 쓰게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 그것은 예수의 죄목이었습니다.
십자목중 세로 목은 항상 세워져 있었고 함께 붙일 가로 목은 직접 죄수가 지고 세로 목은 세워진 언덕까지 갔었는데 그 나무는 전나무로 깎은 것으로 두께가 12.7cm 길이는 1m80cm 무게는 40kg 가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피를 흘리며 석양의 노을에 휩싸여 고통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오전 12시경에 병사들은 13cm의 못을 입에 물고 예수의 손목 중 뼈가 없는 부분을 찾고 그 위에 힘차게 못을 때려 넣었습니다.
우는 사람들.백부장이 소리쳤습니다. "끌어 올리라"올릴 때 예수의 손목은 비틀어졌고 검붉은 피는 치솟아 흘러내렸습니다. "갑작스럽게 어둠이 밀려왔고 하늘은 어두워졌습니다. 병사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주사위를 띄우고 예수의 옷 나누기를 할 때 예수는 첫 말씀을 하셨습니다.
1. 첫 번째 말씀(눅 23:3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도 예수는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한 번의 기도가 아니라, 여러 번 끊임없이. 무지한 까닭입니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오늘 이 기도는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36절에 있는 베드로의 오순절설교는 뜨거운 회개의 불길을 일으켰고 무려 3000명이나 회개하게 하였습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였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았던 자도, 침 뱉었던 자도, 창으로 찌른 자도 능욕하고 저주하고 비웃는 자도 우리 주님은 용서하셨습니다. 자, 다음의 고백을 보십시요. 행 3:37그러나 그들은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행 3:38그리고 예수님은 주변에 매달린 두 사람 중에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한 강도에게 용서와 사랑과 구원을 확증시켰습니다.
2. 두 번째 말씀 (눅 23:42-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오늘 한 강도에게 임한 구원을 우리에게도 임합니다. 종교의식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율법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다만 은혜로! 이 강도를 보십시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 하실 때에 나를 기억 하소서"(눅 23:42)즉 이런 고백이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기억이라도 해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더 큰 것을 주십니다. 더 큰 것을!그러나 이제 고백이 필요합니다. 나의 모든 것에 대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그의 사랑은 세밀하셔서 눈물을 흘리시는 십자가 아래의 어머니 마리아를 보시면서 말씀 하십니다. ]
3. 세 번째 말씀(요 19:26-27)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 우리는 복음서 전체를 통해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른 일 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의 어머니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어머니의 고통, 그 아픔을 예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말합니다. "보라, 네 어머니다." 그의 용서와 사랑의 기도 후 그에게는 극심한 아픔이 다가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철저히 버리신 외로움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외칩니다.
4. 네 번째 말씀(마 27:45-46)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극심한 고통으로 외친 예수의 십자가 주위엔 어두움이 몰려오고 십자가에 쓸쓸함이 뭉쳐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버리심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하나님이 누구를 버린 적이 있었나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후 5:21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없이함 받았습니다. 누구 안에서 입니까? 롬 8:1 그의 고통과 아픔은 우리의 구속을 인함이요. 눈물과 피는 우리의 영생을 위함이었습니다.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극심한 아픔은 목마름으로 나타났습니다. 고통 받은 사람의 아들, 복종하는 종의 모습으로 그는 다섯 번째 말씀을 하십니다.
5. 다섯 번째 말씀(요 19:28)
"내가 목마르다."여기에는 인간의 고통과 더불어 승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마라톤 시합을 보면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결승점에 도달해도 여전히 팔팔한 모습이고 또 한 사람은 결승점을 넘자마자 지쳐서 쓰러지는 모습입니다. 전자의 사람과 달리 후자의 사람은 최선을 다한 경주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최선의 경주를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목마름과 고통은 우리의 모든 목마름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겐 목마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계 7:16 우리가 목마르다 외치실 때 예수님은 이미 먼저 아시며 그 고뇌를 깨뜨리고 우리에게 채워주십니다.
요 4:14 예수의 얼굴은 이제 고통의 고개를 넘어서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은 모든 사탄의 유혹을 깨뜨린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말씀을 하십니다.
6. 여섯 번째 말씀(요 19:30)
"다 이루었다."어떤 미술가가 나사렛목공소의 소년 예수를 그렸는데 그는 창가에서 창문 양끝을 쥐고 바깥을 내다보는 그림이었습니다. 서 있는 예수에게 햇빛이 들어와 그림자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십자가의 그림자였습니다. 그의 전생애는 십자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십자가가 오늘 성취되었습니다. 영원한 구속, 고통의 끝,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평화였고 버려졌던 아들 예수에게로 하나님의 찾아오심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말씀을 하십니다.
7. 일곱 번째 말씀 (눅 23:46)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완전한 회복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회복이었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회복이었습니다.
대지는 떨고 땅을 가르는 작은 금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뻗치고 처형장의 큰 바위가 깨어졌고 작은 금은 길을 가로 질러 예루살렘 성문을 지나 거리와 성전을 꿰뚫었고 마지막엔 성전의 장막을 둘로 나누어 찢어 놓았습니다. (눅 23:45)
완전한 용서였습니다. 이미 찌른 자와 능욕한 자, 심지어 가롯유다까지의 용서였습니다. 완전한 사랑이었습니다. 극심한 혼란과 적대를 깨뜨린 사랑이었습니다. 구속이었습니다. 공허한 세상의 묶은 끈을 풀고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속이었습니다. 갈보리 언덕 그 십자가위에 새로운 길이 생겼습니다. 십자가의 언덕을 넘어 있는 길. 그 길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께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히 12:2 우리가 이제 자랑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갈 6:14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갈 2:20 그리고 그 분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의 삶도 또 하나의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5. 십자가 사건의 중요성
1)생명이 맞선 상태에서 생명이 희생된 것이 십자가의 사건이다.기독교의 근본적인 관심은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영원히 죽느냐?에 있다. 이 생명의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오셨고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2)죄 값으로 처형 당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연사나 정의를 위한 죽음이 아니며, 자살은 더구나 아니다. 그의 죽음은 처형된 죽음이다. 십자가는 죄인을 처형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방법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 당 할 수 밖 에 없었던 죄란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십자가에 죽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있음을 안다면 군더더기는 필요 없는 것이다. 사도신경이 십자가의 죽음을 강조한 것은 그 죽음이 처형을 당한 죽음이요, 죄 값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스스로 택하신 것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3)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죽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오해를 일으켜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아셨고 예고된 십자가의 죽음이 라는 것이다. 마지막 만찬에서도"내가 너희를 위하여 피를 흘리며 살을 뗀다"고 하셨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일생과 연결하여 생각하여야 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전생애를 일관한 고난의 절정이다.
A) 십자가 처형
1.십자가의 고통
1)고난의 상징 십자가는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주기 위한 형틀의 명칭이다. 이 십자가 처형은 고난의 상징인데 사도신경은 그 고난의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십자가는 단순한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다. (예, 예수님의 죽음과 소크라데스의 죽음)
2)십자가의 유래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에서 배운 식민지 국민 처형 방법으로 정치적 범죄자들에게 가한 형구였다. 그는 하 루에 반란자 2000명씩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기록이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루스라는 사람이 갈릴리를 근거지로 로마에 대항하다가 2000명이 체포되어 죽었다고 한다.
※유대인의 처형 법은?
칼로 목을 베는 참수형(출21:)목을 베는 교수형(민 25:4)불 태워 죽이는 화형(레10:14)돌로 쳐서 죽이는 투석 형(레20:27)이 있다.
주님은 전통적인 유대처형 방법이 아닌 십자가 처형을 받았는데 이는 로마시민권이 없는 노예에게만 해당되었다. 그 후 3세기 콘스탄티대제에 의해 너무 처참함으로 폐지되게 이른다.
3)십자가의 형태
예수님은 라틴 형 십자가에 달리신 것으로 보인다. 죽이는 방법은 십자가에 매달아 굶겨 죽이거나 기운이 다하여 죽게 하거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손과 발에 못을 박아 죽이는 방법 그런 로마 병정들은 손바닥에 박으면 찢어지기 때문에 손목에 박은 것이다. 이는 고통을 더욱 가중하는 것이 된다.
2. 십자가형의 단계
1)가죽채찍으로 끝 부분은 쇠갈퀴가 달린 매를 맞고 죄인이 직접 무거운 형틀을 메고 가는데 2)옷을 벗겨 아주 부끄럽게 만든 후, 독주를 주어 술기운으로 조금 있으라는 "로마식의 긍휼"을 베푼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 까지 맑은 정신으로 감수하셨다. 3)형장에 가서 손과 발에 못을 박고 곧추 세운다. 4)죽었다고 생각되면 假死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보고 무릎을 꺽어 버린 후 시체를 까마귀가 파먹도록 방치한다.
B) 십자가의 의미
1.승리의 의미 (요18:11)실패가 아니라 승리의 십자가이며 그 승리는 사랑으로, 믿음으로, 소망으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 어진 승리이다.
2.부활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부활을 확증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의 죽음이다. 완전한 죽음은 완전한 부활을 의미할 수 있다.
3.속죄의 의미이다.히브리서에 나타난 대로 속죄의 제물로 제사자이시며, 동시에 제물이 되시어 돌아가셨다.(히9:12)
4.사랑의 의미가 있다.우리를 의롭다고 부르시기 위한 사랑의 희생이다. 공의로운 사랑이며, 동시에 구체적인 사랑이며, 완전한 사랑이다.
5.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시고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한 희생이다. (롬6:22-23, 롬 8:3-4)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지셨다. 이 은혜 때문에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바른 관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마다 하나님이 그렇게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고 내가 얼마나 죄인이었던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또 십자가 없는 기독교 복음은 불가능하며 부활 없는 기독교의 복음도 있을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 자체이신 '아가페'( 에 의한 창조이심을 기억하자.
※ 부활
1. 부활의 낱말 뜻
이 단어로는(마 22:28, 22:30, 막12:23, 눅14:14, 20:33, 요11:24, 계20:6)에 서 나온다.
from 450; TDNT - 1:371,60 AV - resurrection 39, rising again 1, that should rise 1, raised to life again + 1537 1; 42 1) a raising up, rising (e.g. from a seat) 2) a rising from the dead 2a) that of Christ 2b) that of all men at the end of this present age 2c) the resurrection of certain ones history who were restored to life (Heb. 11:35)
2.부활절기 이해
부활절은 성도에게 믿음의 생동력과 승리를 맛보게 하며, 환희의 절기이다. 그러나 부활절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준비와 과정 없이 부활절을 맞는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결혼 날을 맞는 신랑. 신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부활절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겠는데, '한날'에 치중하기보다 '전체'를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
* 사순절
사순절(수난절)이라 하는 절기는 부활절이전 46일간(주일을 제외한 40일) 기간을 의미한다. 이때에는, (1)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는 기간으로 삼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고난을 묵상하며, (2) 믿음을 살피는 기간으로 삼아, 내 믿음이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점검하는 기간이며, (3) 결단의 계절로 삼아, 이웃과 교회를 위한 좋은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기간으로 삼는다.
예를 들면 구제를 계획하거나, 선교비를 작정하여 보낸다든지, 헌혈을 계획하는 것도 좋겠다.
* 종려주일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예수께서 입성 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Palm tree) 가지를 길에 펴고, 손에 들고 흔들어 축하하였듯 고난을 향한 예수의 결단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절기이다. 종려나무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사탄을 대적하는 상징이 되며, 번영과 (시92:12), 아름다움 (아7:78)의 상징이기도 하다. 종려주일에는 온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위하여기도하여 주며, 고난을 기쁘게 감당하는 결단의 시간을 가짐이 좋겠다.
* 고난주간(아-말 lm'[;('amal))
종려주일로부터 시작하는 고난주간에는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한 주간에 일어난 성경기사를 중심으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데 전념한다. 특히 성경봉독과 기도에 힘쓰는 일을 주력하면 좋겠다. 이 고난주간 동안은 한끼 씩, 또는 금요일 하루 온전히 금식하는 것이 좋겠고, 이때 모여진 성미로 구제하거나 고아원 양로원 등에 보냄이 좋겠다. 수요일 밤이나, 목요일 밤에는 교회에 모여 세족식을 가지면 좋겠고, 고난주간동안 교회를 완전히 개방하고 성가를 연주하거나 틀어 놓아 인근 주민들이 들려 기도하게 함이 좋겠다. 토요일 밤에는 주일학교 교사들이 학생,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이웃들에게 나눠줄 부활계란들을 채색하는 것 역시 부활절에 가는 추억이 된다.
* 부활주일
유대인의 날 개념으로 금요일, 토요일과 주일, 사흘을 무덤에서 지나신 주일 아침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축하하는 절기이다. 부활절은 기독교에 있어서 성탄절과 함께 양대 절기인데, 주후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현재와 같이 춘분 후 만월 다음에 오는 첫 번째 주일을 부활주일로 정하고 시행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부활절 새벽에는 연합새벽예배를 드려왔고, 부활절 아침예배는 기쁘고 환희에 찬 가운데 드리도록 준비함이 좋겠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부활 감사헌금의 사용은 개 교회의 경상비로 쓰기보다 경찰병원, 원호병원, 정신병원 등의 환우들 및 장애단체들을 위해 구제비로 사용하거나, 선교비로 사용함이 좋겠다. 부활절 저녁에는 음악예배를 드려 찬송으로 영광을 돌린다면 인상에 남는 부활절 저녁이 되리라.
3.그리스도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Christ) (성서 교리학)
(a) 부활의 사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독특한 이적이다. 이 부활의 실재성을 한 번 기정사실로 설정하고 나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여타의 이적에 대하여는 왈가왈부 토론할 필요조차 없게 된다. 더욱이 이 이적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 설 수도 있고 쓰러질 수도 있다. 왜냐 하면 기독교는 이천 년 년 전에 팔레스타인에서 실제로 있었던 확실한 사건에 그 가르침의 기초를 두고 있는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적 사건들은 그의 탄생과 그의 전도와 죽음과 장사 지냄과 부활이다. 이 여러 가지 사건 중에서도 그의 부활은 가장 중요한 관석이 된다. 왜냐 하면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그는 그가 주장하는 대로 그의 죽음이 대속의 죽음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여러 세기를 두고 내려오면서 속은 것이요 설교자들은 거짓을 설교한 것이 되며 신도들은 헛된 구원의 소망에 기만을 당해 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부활의 교리에다 의문 부호를 부치지 않고 감탄 부호를 붙일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b) 부활의 증거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어떤 불란서의 회의주의자는 말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아침에 예수의 시체에 향을 바르러 왔던 사람들이 그의 무덤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을 발견한 것은 사실이다. 무덤이 텅 비어 있었다는 사실은 예수의 부활한 사실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설명될 길이 없다. 만일 유대인들이 우리 주님의 시체를 어디서든지 발견해 낼 수만 있었다면 부활을 전하는 최초의 설교자들의 증거를 논박하기는 매우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면 기독교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확실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매장된 채로 그대로 있을 것이 분명하다. 오순절 날, 생명 있고 빛나는 교회가 어떻게 죽은 지도자로부터 탄생할 수 있었으랴! 그러면 부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본 사람들의 증언을 어떻게 취급해야할 것인가? 부활 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 본 사람 중에 그와 더불어 말한 자도 있고 그의 몸을 만져 본 자도 있고 그와 더불어 같이 식사한 자들도 있었다. 바울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본 자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 있다고 바울은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신약 성경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영감 된 증언을 전해 주고 있지 않는가? 너무나 정직하고 성실하여 거짓된 메시지를 전하리라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증언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만 옳은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이 만일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보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그가 위대한 전도자의 한 사람으로 개종할 수 있었을까?
위에 열거한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부인하게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해왔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그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잃고 실망, 낙담한 그의 제자들이 감히 무장을 하고 시체를 지키고 있는 로마 병정들로부터 그 시체를 빼앗아 올 용기가 있었을까! 그런데 현대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제자들은 다만 환상을 보는 체험을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동일한 환상을 보고 참으로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또 이렇게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예수께서 실제로 죽었던 것이 아니라 다만 졸도 했던 것에 불과하였는데 십자가에서 그 시체를 내렸을 때에 그는 아직도 생명이 붙어있었다." 그렇다면 창백하고 핏기 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예수가 어떻게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 특별히 회의를 품고 있던 도마에게 자기가 부활하신 생명의 주라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있었을까!
위에 열거한 현대 학자들이 설명은 너무나 빈약한 것이기 때문에 논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바이다. 자유주의 신학자 드웨테 (De Wette)씨는 다음과 같이 단언하였다" 시이저가 암살당한 것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인 것과 꼭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부활의 사실을 조금도 의심할 바 아니다.
부활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구세주가 되신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주장에 대한 세상의 대답은 십자가이며 하나님의 대답은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속죄의 죽음이 하나의 실재라는 것을 뜻한다. 곧 인간은 자기의 과거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과 화목 할 수 있게 되었다. (롬4:25). 부활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평범한 하나의 죽음이 아니며 또한 죄를 제거할 수 있는가? 그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정 많은 우리들의 대제사장은 하늘에 계신데 그는 우리들의 생명을 위하여 사셨고 우리들의 슬픔과 연약함을 잘 알고 계셔서 우리들로 하여금 매일 매일 그리스도를 닮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우리들에게 주신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또한 우리를 위하여 사셨다 (롬8:34,히7:25).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내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죽었다 살아나서 내세에 대하여 말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로 보톤 사람들은 내세를 부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죽었다 살아 난 사람이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다 부활하였다. "만일 사람이 죽었다 다시 살 수 있느냐?"라는 물음에 대하여 과학은 다만 "알 수 없다"고 대답할 뿐이다. 또한 철학은"내세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사신 것처럼 우리들도 죽었다가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불멸의 사실을 입증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영원불멸을 보증 한다 (살전4:14,고후4:14,요14:19).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미래에 있을 심판에 확실성을 의미한다. 영감 받은 사도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17:31). 예수께서 분명히 죽음에서 부활하여 인간의 심판자가 된 것처럼 인간들도 분명히 죽음에서 부활하여 예수님에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4. 부활절 계란 풍습
부활절 계란을 주고받는 풍습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일까? 부활절 이전, 즉 이스터 축제일의 상징은 계란이 아니라 토끼였다. 이스터 여신의 상징이 토끼였기 때문이다. 이 부활절 토끼 풍습은 독일인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서 함께 들여갔다.
그림설명: 독일에서 계란을 굴리며 노는 모습을 그린 그림
그러나 18세기 당시 미국의 기독교는 청교도를 위시해서 엄격한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부활절 토끼는 전혀 발붙일 수 없었다.
부활절 역시 미국에서 자리 잡게 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였다
부활절을 축하하기 위해서 계란을 사용하게 된 것은 "모든 생명은 알에서부터 나온다."는 로마의 속담은 차치하더라도 어느 정도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까지 갈 때 잠시 십자가를 대신 져준 구레네 시몬의 작업이 계란장수였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뒤에 그가 집으로 돌아가 보니 암탉들이 낳은 계란이 모두 무지개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후로 교회에서는 자연스럽게 계란을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뜻 : 기름 짠다(1) 예루살렘 동쪽 감람산 서쪽 중턱에 있는 동산(요18:1).(2) 예수님이 자주 제자들과 같이 가셨다(막14:32,마26:36,눅22:39).
2.겟세마네교회 천장이 유달리 높고 90여 평이나 됨직한 넓은 교회당 안을 들여다보면 전등불로 조명된 모자이크 벽화들이 아름답다. 교회당 전면에는 넓은 바위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 뒷 쪽 벽면에는 예수님이 바위 위 앉아 기도하는 모습이 모자이크 벽화로 장중하게 그려져 있다. 그 주위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교하는 모습도 있고 횃불을 들고 몰려오는 로마 병정들 속에 간교한 생김새를 한눈에 식별 할 수 있는 가롯 유다의 모습도 보인다. 현재의 교회는 1924년 이태리의 건축가 안토니오 바를로치가 설계, 건축한 것이다. 이 교회는 또한 만국 교회 (Church of All Nations) 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이 교회가 세계 각국 (16개국)의 모금으로 건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카톨릭의 프랜시스컨 신부회에서 관리 하고 있다.
3.겟세마네 기도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불과 24시간도 채 못 남겨 놓은 시점에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공생애를 40일 금식 기도로써 시작하신 예수께선 이후 항상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기를 쉬지 아니하셨을 뿐 아니라(마 14:23) 그의 생애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도 기도하시기를 잊지 않음으로써(눅 22:39)우리들에게 참된 기도의 본을 보이셨다.
(2)예수께서 죽음을 앞두고서 처절한 고통을 호소하고 계시는 것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면서도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의 육체, 성정(性情)을 그대로 지니신 채 이 땅에 강림하셨음을 나타내 준다(요일 4:2).
(3)하지만 자신의 죽음이 영광의 길임을 깨닫고 그것을 평안함으로 받아들였던 순교자들(행 7:55-60)과는 달리 예수께서 이 문제를 놓고서 말할 수 없는 번민을 하신 것은 그의 죽음이 단순한 순교가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일순간 버림을 당하는 죽음이었음을 증거 해 준다. 즉 예수께선 온 인류의 죄를 대신지시고 하나님께 홀로 버림 받는 대속적 죽음을 당하신 것이다(고후 5:2)
(4)그러나 그 같은 고통과 번민 중에서도 예수께서 자신을 버리시되 아주 버리시는 것이 아님과 그 같은 죽음이 가져올 인류 구원이라는 놀라운 결과, 자신의 영광의 회복 등과 같은 일련의 이후 일들을 예견하시고 이를 조금도 의심치 아니하셨음을 드러내 준다(빌 2:8-11). 아무튼 비록 인간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에서 이기는하지만 예수께서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 된 우리 성도들이 과연 어떠한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지를 분명히 일깨워 준다.
그림 : El Greco (엘 그레고) 해설 : 에벌린 버틀러 맥큘로 엘 그레고(1541-1614)는 크레테 섬이 베니스에 속해 있을 당시 그 섬에서 태어났다. 초기의 미술 교육을 받은 다음에 그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티티안과 틴토레토 같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 드디어 그는 스페인으로 여행하여 1577년부터 최후까지 톨레도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레고의 작품은 스페인의 엘 에스코리알, 마드리드, 톨레도 등지에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작품들이 전 세계에서 수집되고 있다. 이 그림의 원본은 스페인의 톨레도 오히오 미술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엘 그레고는 그의 아이디어를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그의 작품 '겟세마네의 그리스도'에서 그 현란한 빛과 색채를 쓰는 기술과 구상면의 다양성과 주제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말미암아 시각적인 인상과 동시에 심리적인 효과도 성공적으로 구현하였다. 우리가 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려는 예수님의 격렬한 영적 고민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다가오는 반역과 부인, 고난과 정죄, 핍박과 죽음을 당하시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친히 도우심과 강한 힘을 구하고 있다.
예수는 비록 생명을 잃을지라도 그 "잔을 마시기로" 결심했다. 그가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원수들의 죄를 용서하고 죽으셨다. 이러한 그의 사랑과 희생으로 세계를 구원할 수 있었다. 엘 그레고는 기도하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데 달빛을 이용하지 않았다. 잔을 든 천사의 광채와 인간에게 사랑을 알리려고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고통 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는 구세주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광선을 사용하였다.
19) 배반자 가롯 유다와 최후의 만찬 (마26:14-29)
가롯유다는 가롯시몬의 아들이며 (요6:7) 주께서 택한 열두 사도 중에 한 사람이다. 가롯유다는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가장 불가사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의 뜻과 배경, 성품 그리고 예수님을 배반한 동기와 죽은 방법 등 모든 것들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가롯이라는 이름에는 다양한 설명들이 제시되어 왔다. 즉 "그리욧 사람" "암살자" "가짜, 거짓말쟁이, 위선자"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이 가운데 일반적인 설명은 두 가지이다. 첫째, "가롯사람"이란 견해로 12사도 중에 11사도가 갈릴리지방 사람인데 반해 유일하게 가롯유다만이 유다 지방의 사람이라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둘째는 가장 가능성 있는 견해로는 가롯이라는 말이 "가짜, 거짓말쟁이, 위선자"를 뜻하는 "세케르"라는 아람어의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이 말이 당시 아람 어를 사용하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배반자를 부를 때 사용한 별명이었다는 견해이다.
그림설명 / 유다의 입맞춤과 붙잡히는 그리스도 :프리델라 패널. 39.8*140.3cm 드레스 덴 국립회화관 소장.
막3:14, 요6:70을 미루어 보면 예수님은 복음을 전도할 사도를 신중히 선택하심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6:64를 보면 유다를 택한 것은 매우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예수가 속죄적 죽음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획에 의식적으로 복종한 것이라고 하여 이를 설명하려고 하는 바도 있지만 공관복음은 다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께서 유다를 제자로 선택하신 것은 그를 유망하게 보고 또 그의 성격을 통찰하고 크게 쓰여 질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여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 이 무리 안에 배신자가 있으며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여하튼 그의 성격을 생각하여 볼 때 아마 그리스도의 왕국이 건설될 때 지상에 있어서 어떤 이득을 얻게 되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가롯 유다는 예수의 제자단의 회계 일을 보면서 일행의 전대를 맡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부정을 행 했다. 베다니의 마리아 집에서 그녀가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표시로서 지극히 비싸고 순수한 나드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었을 때 제자들 특히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서 주지 아니 하였느냐” 라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의 본심은 그 돈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려는 생각이었다.
이에 예수께서 부드럽게 충고한즉 그는 오히려 분격하여 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팔아넘길 것을 제의했다. 제사장들은 이에 동의하여 은 30개를 지불했다. 그것은 당시 노예한 사람의 시세인데 약 9달러 50센트에 달한다고 한다.(화폐가치가 다를 수도 있음:성경상의 화폐가치 참조) 이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유다에게[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했다. 마귀가 그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던 것이다.“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예수께서 조용히 말씀했을 때 제자들은 모두 근심하면서 저마다 “내니이까?” 라고 반문하였다. 베드로는 예수의 품에 기대어 누워있는 요한에게 머릿짓을 하며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졸랐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나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요13:26)라고 말씀했다. 그것은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라고 한 성경말씀의 성취였다 (요13:18,시41:9) 그리고 예수께서는 한 조각을 찍어서 유다에게 주었다. 유다가 그것을 받자마자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
뻔뻔스럽게도 유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랍비여 내니이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마26:21-25)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요13:27). 제자들까지도 예수께서 왜 유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요13:28) 어떤 자는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쓸 물건을 사라고 하시는 것으로 혹 무엇을 나누어주라고 하시는 줄로 생각하였다. 이에 유다는 곧 나가서 제사장들에게 달려갔다. (요13:28-30)
최후의 만찬이 끝나자 예수께서는 11제자와 같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다(마26:36). 기도가 끝났을 때 유다의 선도 검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밤이기 때문에 누가 예수인지 알리는 신호로서 유다는 예수에게 입 맞추었다. 이리하여 예수께서는 체포되었다.(마28:47-50)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동기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토록 악명 높고 수치스러운 일화를 인위적으로 지어냈을 리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은 더욱더 더럽혀져 제4복음서는 그를 사탄이나,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유다에 대한 적개심이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사건 자체의 사실성을 왜곡시켰다고는 보기 어렵다.
앞에서도 약간 언급되었지만 유다는 아마 단순히 욕심이 많고 부정직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예수를 배반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흉악한 반역으로 얻게 되는 돈이란 하찮은 소액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배반한 동기를 전적으로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것으로도 여겨진다. 오히려 유다 자신이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한 것에 대한 실망과 거짓예언자들과 거짓메시야를 공격하는 유대교의 율법 및 제도에 대한 집착으로 그러한 행동을 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설명 / 최후의 만찬 :루벤스의 최고 걸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그림은 루벤스의 제작이라는 사실에 관련하여 곤란하고도 복잡한 문제에 관한 흥미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먼저 스케치와 완성품 사이에는 매우 유사한 많은 소품이 전해지고 있다. 루벤스의 그림에는 제자와의 공동 제작이 많다. 이<최후의 만찬>도 그 예외는 아니나 최종적으로는 루벤스가 전체적인 마무리를 하였다. 주제는 최후의 만찬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에 의한 유다 의 배반에 대한 예언과 (그리스도 앞의 두 인물) 성찬의 의식 (그리스도와 그를 둘러싼 열명의 제자)이 동시에 동일 화면속에 다루어지고 있다. 시간 적으로는 배반에 대한 예언 후에 의식이 행하여지지만 루벤스는 16세기 후반의 플랑드르파의 전통에 따라 시간적으로는 후자에 일치시키면서 전자를 포함하는 무대극을 묘사해 내고 있는 것이다. 유화. 패널.304*250cm
이튿날 아침, 어느 정도 냉정해진 유다는 예수께서 정죄 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것, 자기가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판 것을 알고 후회하면서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가서 은 30개를 돌려주면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 하였도다”라고 말했다. 그의 양심은 제자들의 양심처럼 마비되어 있지 않았다. 제사장들은 그에게 말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리라” 그래서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져놓고 나가서 목매어 죽었다. 제사장들은 [피 값]을 성전 재정에 넣는 것을 싫어하여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다.
이 밭은 [피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마27:3-5). 사도행전에서는 이 부분을 상당히 다르게 언급하고 있다. (행 1:18,19) 즉 사도행전에 따르면 유다 자신이 그 밭을 샀으며, 그의 몸이 곤두박질하여 (혹 부풀어올라?)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고 한다. 유다의 비참한 죽음은 초기 기독교 설교자들과 저자들에 의하여 수없이 인용되곤 하였다. 그리고 또 유다의 죽음이 보다 무섭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소름이 끼치는 종류의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유다의 죽음에 관한 신약의 두 기사는 유다가 배신행위의 결과로 횡사를 당했다는 것과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땅을 샀으나 배신행위의 결과로 인하여 [피 밭]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은 서로 일치한다. 구약 시편 109편을 보면 유다의 죽음에 대한 것이 예시되어 있다. 이것은 원리 작자와 동시대에 된 일에 대하여 노래한 것이었으나 사실은 가롯 유다에게서 이루어진 예언이었던 것이다.(시109:8,행1:20)그리고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만이 멸망했다(요17:12). ('Aceldamavc, Akeldama .피 밭)이 두 장을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에게 강요되어 멸망의 자식이 된 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거부해서였으며 그리고 그것을 구하지도 않아서 멸망했음을 알 수 있다.
1.유다에 얽힌 그림 이야기
1)화가 엘 그레코(El Greco)는 교회로부터 사도 개개인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유다는 비열한 인간이라고 생각했기에 따로 그리지 않았다. 배신 직전의 순간을 묘사하는 [겟세마네의 그리스도]라는 그림에서 오른쪽 구석에 간신히 보일 만큼 그려 넣었다.
2)한 화가가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하여 시실리 성당의 벽화를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을 그리기 위한 모델로 아주 적격인 순진무구한 열두살 짜리 아이를 발견하였다. 몇 년 후 그 화가는 고난주간 까지 유다를 제외하고 모든 인물들을 완성했다. 어느 날 오후 화가가 앉아 있는 술집에 만취된 얼굴로 비틀거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화가는 아직 그리지 않은 유다의 모델로 이 알콜 중독자를 선택하기로 작정했다. 화가는 그 사람을 성당으로 데리고 가서 비어 있는 벽을 가리키며 유다의 포즈를 취하여 달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 부랑자는 흐느껴 울면서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못합니까?" 하며 버럭 화를 냈다. 그는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 그림을 가리키면서 "오래 전에 나는 저 아이의 모델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2.유다에 대한 표현들
1)웝스터 신학생 사전//"배신자, 특히 우정을 가장하여 배신하는 사람" 2)유다색깔//붉은 머리카락. 유다나무//유다가 목 매어 자살한 나무 3)유다염소//도살장으로 가는 가축을 앞에서 인도하는 동물 4)유다의 키스//비열하게 남의 등을 찌르는 가면을 쓴 친절한 행위 5)유다사제//예수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세속적인 이단자 6)유다 구멍//감방 안에서는 볼 수 없고 밖에서만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
3.유다의 저주받은 이름
저주하는 뜻에서 사도들의 이름 중에 맨 끝 자리에 있다. (마10:4/막 3:19)주님은 왜 이런 인물을 택하셨을까? 처음부터 배신의 위험을 알고 계셨을까?운명적으로 배신자로 태어난 사람인가, 배신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가?
20) 유월절과 최후의 만찬
유대인의 각 가정에서는 유월절 만찬이 일정한 표준 양식에 따라 진행되었다. 처음에 시작하는 기도와 함께 첫 잔(만찬 중에 포도주 잔이 네 번 돌아간다)에 대한 감사 기도가 올려 진다. 첫 잔을 받은 다음에는 각기 나물들을 집어서 소금물에 담근다(마26:23 참조). 가장은 세 개의 납작한 무교병 중 하나를 집어서 몇 조각으로 떼어 옆에 놓아둔다. 그리고는 가족 중 가장 나이 어린 자로부터 시작하는 질문에 답하여 첫 유월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시편113-114편을 노래한다. 두 번째 잔(눅22:17 참조)이 채워지고 이어서 돌아가며 마신다.
그림설명 / 성찬 제단화 (중앙부) :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이 그림을 북방 최초의 선 원근법의 이론을 응용한 현존작품이며 오른쪽 뒤쪽에 서 있는 인물은 화가의 자화상이라고 전통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패널. 유화. 180*151cm. 세인트 베델성당 소재.
본 만찬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손을 씻기셨을 것이다.(요13:4-12), 감사기도를 올리고 나서 떡을 뗀다. 양념을 한 쓴 나물이 들려 진다(예수께서 유다에게 한 조각 찍어다 주신 바로 이 때였다. (요13:26) 이 예식은 유월절 어린 양의 구운 고기를 먹는 데서 그 절정에 이른다.
예수께서 주의 만찬(성찬)예식을 제정하신 것이 바로 이 뒤였다. 앞서 옆에 놓아 둔 떡을 떼시고 세 번째 잔 곧 "축복의 잔"을 돌리시면서 특별한 예식을 제정하셨다(마26:26, 28의 "이것이...이니라"는 표현은 그것이 바로 제자들에게 그 자리에서 떡과 잔을 주시는 주님 자신을 대표 혹은 상징하였으므로 "이것이...대표하느니라"의 의미임에 틀림없다). 만찬 예식은 나머지 "할렐"(할렐루야")[히]hy;WlL]h'(halelluyah) [그] aJllhouia(halleluia) aJllhlouia(halleluia) [라] alleluia [영] Hallelujah, Alleluia 히브리어로 [주를 찬양하라] 시편(115-118편)과 "대 할렐"(시136편)을 노래함으로써 끝이 난다. 마태가 언급한 "찬미"(마26:30)는 필시 이 시편들이었을 것이다. 찬미를 마친 다음에는 마지막 잔이 돌아간다.
주의 만찬(성찬)이 유월절 만찬의 핵심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그 의미를 잘 설명해 준다.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희생되는 자신을 유월절 어인 양으로 생각하고 계셨다. 떡과 잔은 그의 죽으심을 말하는 동시에 죄인을 하나님께 화목 시키는 새 언약의 확증을 뜻한다.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성찬 예식을 통해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기념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21)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에 달리심(마27:1-66)
그림설명 / 이 사람을 보라 : 가시관을 쓰고서 전신에 상처를 입은 그리스도를 높은 대에 끌어내 놓고 "이 사람을 보라"고 말하자 비속한 미소를 지은 사제귀족. 병사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라"고 외치고 있다. 대사가 현대의 만화처럼 인물의 옆에 쓰여 있는 것도 재미있지만 군중의 옆얼굴 표정에는 만년의 작품인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참조 2권 화보 154)와 통하는 강인한 표현력이 있다. 패널. 유화. 75.0*61.0cm.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노라."그러나 무리들은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세주라고, 메시야라고 고백하던 입술에서 큰소리로 "죽이시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오."그때 빌라도는 군중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 박게 하고 예수의 죄상을 희랍어, 라틴어, 아랍어순으로 쓰게 하였다. "유대인의 왕" 그것은 예수의 죄목이었다.
십자목중 세로 목은 항상 세워져 있었고 함께 붙일 가로 목은 직접 죄수가 지고 세로 목은 세워진 언덕까지 갔었는데 그 나무는 전나무로 깎은 것으로 두께가 12.7cm 길이는 1m80cm 무게는 40kg 가량이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피를 흘리며 석양의 노을에 휩싸여 고통으로 걸어가셨다.
때가 삼시가 되어 병사들은 13cm의 못을 입에 물고 예수의 손목 중 뼈가 없는 부분을 찾고 그 위에 힘차게 못을 때려 넣었습니다. 백부장이 소리쳤습니다. "끌어 올리라" 올릴 때 예수의 손목은 비틀어졌고 검붉은 피는 치솟아 흘러내렸습니다. "갑작스럽게 어둠이 밀려왔고 하늘은 어두워졌습니다. 병사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주사위를 띄우고 예수의 옷 나누기를 할 때 예수는 첫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림설명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 캔버스 215.9*146.1cm.
리용미술관 소장.
예수는 권위와 영광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시지 않고 고난과 슬픔의 종으로 오셨다. 이사야는 고난의 종으로 오시는 메시야의 모습에 대하여 생생하게 예언하였다(이사야 53장)그는 실로 무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질병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려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는 메시야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질고와 슬픔을 당하신 것을 말하였다. 또 그는 우리를 위하여 질병과 고난을 당한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위하여 찔림과 상함을 받고 우리의 평화와 나음을 위하여 징계와 채찍에 맞는다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슬픔과 죽음에 대하여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그리스도의 겸손과 복종은 십자가상에 절정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를 주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슬픔과 죽음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길은 하늘의 영광과 이 세상의 행복을 누리는 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영광과 행복을 누리기 전에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 다.
* 예수님은 죄 없는 몸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저주를 받으셨다.* 그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은 율법이 정하는 모든 저주의 형벌을 다 담당한 죽음이었다.* 그의 희생은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어서 다시 죄를 위해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의 피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그의 죽음으로 그를 믿는 자는 모든 죄의 형벌을 면제받는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인을 향해 가지신 사랑의 표현이었다.
2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마28:1-20)
그림설명 / 그리스도의 부활 : 알트도르퍼는 후기 고딕 회화의 금지 배경의 효과를 배경의 새벽하늘을 표현하는데 응용하여 악마처럼 작열하는 아침햇살을 그리스도의 후광으로 삼고 산들의 역광의 실루엣 상을 부각시켰으며 또한 동굴의 인간계의 중심에 환한 빛을 조명시키고 있다. 매우 농후한 색조를 이용하여 서 신과 자연의 승리를 충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518년. 패널. 70*37cm.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무덤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없다. 부활로 그 무덤은 빈 무덤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원초적인 부활은 하나님이 되셔야할 것과 거룩한 신성이 사망에 매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기 위해서 살아나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의 혼자의 부활이 아니다. 죽으시므로 온 인류를 위함이며 그의 부활도 온 인류를 위함이다. 이 부활은 가장 강한 사망의 적을 정복하시며 죽음에서 믿는 자들을 해방키 위함이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부활사건이 있기 전에 그의 누이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 이것을 봐도 분명히 부활의 교훈을 통한 후에 나사로를 살린 것이다 ?
※ 바울 신학으론 본 부활
고전15장은 이른바 `부활장`으로서 사도바울은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 전파 곧 (케그리마 khvrugma)도, 거기에 따른 믿음, 곧(피스티스pivsti")도 헛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바울 사도가 힘 있게 증거 한 예수 부활사건은, 오늘 우리 모두 경건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분명히 십자가에 죽어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확실히 믿으며 또 고백 한다. 과연 기독교는 확신으로 넘치는바 생명의 종교요, 또한 부활의 종교이다. 예수께서는 그 자신을 가리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요11:25 ajnavstasi")고 하셨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부활하심 에 대해 확신하기 바란다.
그림설명 / 그리스도의 부활 : 이 유화의 초기 형식을 묘사한 것을 보면 무덤 속에서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이전에는 생략되었고 이미 텅빈 무덤의 뚜껑을 여는 천사를 보고 수직하던 자들이 놀라 떤다고 하는 마태의 기술을 충분히 지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부활의 광경을 그려달라는 주문에 따라 후에 그는 그리스도의 자태를 화면에 첨가하였던 것이다. 또한 세 사람의 여 자들(눅 16:1-8) 이 아니고 두 사람만 묘사한 점도 마태복음에 따라 묘사했기 때문이다. 패널 위의 캔버스. 유화. 상부원형.92*67cm 1639년 제작. 뮌헨 회화관 소장.
바울이 쓴 서신과 사상에서 그의 강조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희생적인 죽으심과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다. 부활사상이 어떻게 바울 사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는가는, 그가 데살로니가 후서와 빌레몬서를 제외한 그의 모든 서신 서에서 부활에 대해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고 또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 했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하는 그의 말 첫마디도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였다.
또 그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했다.(롬6:4, 7:4, 고전6:14, 고후13:4, 갈1:1, 엡1:20.)바울은 또한 골로새 교인들에게도 이와 같이 전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골2:12) 이라고 했으며,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관한 가장 풍부한 교훈을 하고 있다. 그는 우선 무엇보다 부활에 관한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다. 그의 첫마디 말은 이러하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노니,"(고전 15:3)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그는 교회의 표준이 되는 가르침에 관해서 전했다. 이는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터무니없는 전개나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 교회의 초창기부터 교회 안에 구체적으로 있었던 것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이러한 전승에 대한 증거와 관련해서 바울은 몇 가지 사실을 더욱 첨가해서 전하고 있다. 그것은 바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내놓은 증거이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보이신 실례들을 명단으로 나열한 뒤에 이렇게 말한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4-8)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받아드려야 했던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직접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경험이 있는 사건이었으며, 또 그가 목격자로서 증언할 수 있는 사건이었으며, 또한 그의 증거는 직접적인 것이었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행위였다 한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를 일으키셨다는 것이었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산물이었으며, 하나님이 친히 하신 행위였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4절에서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했다.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불멸의 능력에 대한 완벽한 증거였다.
또한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최종적인 증거였다. 그는 로마서 1장 4절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말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메시야 관은 오실 메시야는 영광과 권세와 능력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할 왕으로 오실 분으로 생각하였다.그러나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메시야와 마주 대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야 관과는 모든 면에서 거리가 먼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그 메시야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역사가 필요했다. 그들에게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확신시키는 한 가지 일이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들이 꿈꾸던 사상을 초월한 승리요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부활하신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강조하였다. 실례를 보면 사도행전 13장 14-43절에 바울이 바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유대인 회랑에서 설교한 내용에 대해서 누군가 진술하고 있는 기사가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 바울이 설교를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을 들면서 예수의 메시야 되심에 관해서 유대인들을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메시야이심을 증거 하기 위하여 쓴 서신이 바로 히브리서이다.(추정) 부활의 그리스도를 온전한 대제사장으로 여기는 사상은 히브리서의 특징이 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들에게는 그 사상을 최소한 한번 사용했다. 로마서 8장 27절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중재 곧 중보의 기도를 하시는 것에 대해서 기록했다. 또한 로마서 8장 34절에서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했다. 바울 사상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사상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재판장으로 보는 사상이라 하겠다. 그 사상은 로마서 14장 9, 10절에서 볼 수 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 이니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한때 인간들이 재판 석에 앉아서 신문을 하고 또 인간들에게 정죄를 받으신 바 있는 바로 그 예수님이 모든 사람이 나아가 그의 심판석 앞에서야 할 부활하신 그리스도시라 했다. 바울의 사상 중에 매우 깊게 뿌리 박혀 있고 그가 소중히 여기는 사상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부활의 능력이라는 사상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자신의 삶의 최종 목표들 가운데 하나를 밝히면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알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에베소서 1장 19-20절에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에 관해 말하기를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에 역사 하신 그 능력을 믿는다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그리스도인이 영위할 새 생활과 연관시키며 또 그리스도인을 옷 입히는 새로운 선행과 연관시켰다. 로마서 6장4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했다.
로마서 7장 4절에서도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하였으며,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인간적인 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희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하였다.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 현존하는 능력이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철저한 필연성에 관하여 고린도전서 15장 14-1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 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이와 같이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만이 그리스도인을 보증하고 보호하는 위대한 진리로 믿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위대한 진리들의 보증이 된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은 진리가 거짓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에게 이르렀다. 인간들은 그 진리를 무시하고, 말살하고 파괴하려고 했지만 그러 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진리를 파괴할 수 없는 것임을 증거 하는 최종적인 증거가 되고 있다. 2) 또 그것은 선이 악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육신 하신 선이셨다. 인간의 죄는 그 선을 파괴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선이 결국에는 그것을 대항하고 있는 모든 악을 반드시 정복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3) 또 그것은 생명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단지 한 번 만에 멸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생명을 멸할 수 없는 것임을 증거 하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4) 또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랑이 미움보다 강함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영원토록 파멸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 의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들의 모든 미움보다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미움에 대항을 모두 좌절시킨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상 있었던 단순한 사건이 아니며, 하나의 신학적 교리도 아니다. 그 사건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사실이다. 이 사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체험한 사실을 입증한다. 바울의 이러한 윤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살아 계셔서 현존하는 주님의 역사인 성령을 통해서 입증되어 있다(롬6:1-9,8:1-2).
23)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데이빗 필드(DAVID FIELD)
1.하나님 나라의 의미
2.하나님 나라-현재와 미래
3.천국의 요구사항
1.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이라는 두 표현은 정확히 동일한 개념을 나타낸다. 경건한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너무나 신성한 것이어서 가볍게 혹은 빈번하게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주로 유대인 독자를 위하여 붓을 든 마태는 보통 "천국"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반면에 마가와 누가는 비유대인들의 이해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두 가지 표현이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아니한 것이 놀라운 일이다. 또 신약성경에서도 이 표현들은 첫 세 복음서들에 주로 나올 뿐 그 뒤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에 나오는 천국의 중요한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메시지를 통해서 천국이 가까 왔다는 말을 듣는다(막1:15).또 제자들이 사명을 받고 최초로 보내심을 입었을 때 그들이 전파해야 했던 것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메시지였다(눅 9:210:9-11).
베드로 대성당 정문에 세워져 있는 이 거상은 오른손에 천국열쇠를 쥐고 교회로 들어오는 신자들을 굽어보며 영접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로써 그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셨는지 밝힌 적이 없으시다. 그러나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반역 죄인으로 고소당한 데 대한 답변에서 그는 주의 깊게 이 세상의 지역적인 어떤 지배권에 대한 주장과는 일체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18:36)고 하셨다. 현대의 어떤 번역본들은 이 절에서 "나라"를 "왕권"혹은 "왕적 권위"로 번역해 놓고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보통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능동적인 통치를 뜻한다. 때때로 예수께서는 그 나라에 "들어간"는 말씀을 하셨다(막10:23).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떤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의미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신 말씀 배후에 있는 개념은 어떤 "영역"보다는 "통치"일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아마도 주기도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 동격의 위치에 둘 때 그 낱말의 의미를 가장 가깝게 설명해주고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비록 구약성경 저작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통치를 인정할 정도로 (슥14:9)극적인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사 24:23) 큰 날을 기대하였다. 이 예민한 기대감 곧 그 땅을 해방시키기를 사모하는 우주적 소망인 동시에 간절한 열망은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식지 아니하였다(마가는 우리에게 아리마대 요셉이"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고 들려준다) 그러므로 "천국이 가까 왔다"(마3:2)고 외칠 때 세례요한은 이내 역사상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가 만민 앞에 드러날, 실로 오래 기다려오던 그날을 맞기 위해서 수많은 백성이 그에게로 몰려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2.하나님의 나라-현재와 미래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분명히 세례요한의 그것과 내용이 비슷하였으나 마가복음서에 따르면 "때가 찼다"(막1:15)는 말씀으로 천국의 임박성을 더욱 강조하셨다. 이때가 찼다는 선언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임하였다는 의미로 복음서를 전체를 통해서 강조되고 있다. 그의 이적들, 특히 귀신들을 내어 쫓으신 그의 권능의 행적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통치가 사람에게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준다(마12:28).오직 그만의 특이한 권위를 가지고 전파하시는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르렀다는 증거였다(막 1:27,마11:5)."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말씀하신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사죄와 구원과 영생-은 그들이 미래에만 아니라 현재에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신다. 수 세기에 걸쳐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왕적인 권능이 이 땅에 나타나리라고 예언하였는데 이제 예수님 자신과 그의 사역에서 그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예수께서 자기 자신 안에서 천국이 실제로 임하였다고 가르치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하나님의 통치 혹은 주권적인 능력이 최종적으로 나타날 미래를 내어다 보신 것도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의 제자들은 "주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고 깨어 있어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한다.(막9:1,마25:1).그들이 본 주님의 이적과 주님의 능력 안에서 그들이 행한 이적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 임하여 있다는 하나의 강력한 표적이었다. 그러나 사단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아니하였고 또 분명히 그 결과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마25:41).그러므로 미래의 큰 종말에 과난 예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에 있다는 분명한 증거와 뒤얽혀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이 이 두 가지 진리를 다 깨닫기를 원하신 것이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들"에서 분명하여진다. 씨가 뿌려지고 자라나서 익어야 추수 때가 이르는 법이다.
3.천국의 요구사항
현재이든 아니면 미래이든 간에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는 사람의 자발적인 순종을 요구한다. 성경은 사람들 스스로 천국을 세울 것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그 나라를 구하고 그 안에 들어갈 것을 요구 한다. (마6:33,막9:47). 그 나라의 윤리적인 표준들은 아주 엄하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엄하여(마5:20) 이론적으로 그것을 알 뿐 아니라 또한 아는 그것을 실천에 옮길 것을 요구 한다(막 12:34). 요컨대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린 아이처럼 무조건 순종할 것(막 10:15)을 요구한다. 또 제자들의 충성과 헌신을 요구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복종은 바로 그 복종하는 자에게 가장 큰 복을 가져다준다. 이는 그의 나라는 감추인 보화나 값진 진주처럼 어떤 희생을 치루고서라도 손에 넣을 만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마13:44-46).
마가복음(Mark)
1. 배경
마가복음의 저자는 요한이라고도 부르는 마가이다.(행12:12) 그의 어머니는 일찍이 예루살렘에서 주를 믿은 마리아였다(행12:12).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요(골4:10), 베드로의 제자였다(벧전5:13). 그는 바나바와 바울이 제1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동행하였다가 도중 버가에서 되돌아왔고 이 일 때문에 2차 선교여행에서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지게 되었다.
그 후에는 다시 바울을 따랐으며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돌보았고(딤후4:11), 베드로와 함께 전도하다가 베드로가 순교한 후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 하다가 순교하였다고 한다.전하는 말에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훗 이불을 벗어버리고 도망한 사람이 마가라고 한다(막14:51-52). 이 복음은 베드로의 복음이라고도 한다.
2. 내용 분해
1. 준 비 막1:1-13
2. 사역의 시작 막1:14-5:43
3. 사역의 전성기 막6:1-8:26
4. 사역의 마침 막8:27-10:31
5. 마지막 여행 막10:32-13:37
6. 수 난 막14:1-15:47
7. 부 활 막16:1-8
그림설명 / 마가 : 4복음서의 첫 페이지에다 복음서기자의 상을 그려 넣는 관습은 서양에서는 카롤릭왕조 이전부터라고 생각하나 그 기원은 동방이었다. 이 그림은 사자가 마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사자가 마가의 상징이 된 것은 마가복음의 서두에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구절에서 소리를 사자로 추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11세기말. 사실화.27.5*20.0cm.
3.내용분석
1) 마가(Mark)
(요한,@n:h;ly,Mavrko" Mark) 「비추이다, 큰 망치」 예루살렘의 부유한 레위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래 유대 식 이름은 [요한]이지만 [마가]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성장 하였다. 어머니 마리아는 신실한 신앙인이어서 그의 집을 가정기도회에 참석하고 그의 집을 방문한 사도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마가의 마음에는 신앙이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행12:12, 골4:10). 특히 외삼촌인 바나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마가는 베드로에 의해 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베드로전서 5:13참조) 이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앙의 열기를 전달받은 혈기 왕성한 청년 마가는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열심도 보였다. 그러나 단지 경건한 분위기 속에 젖어서 살았을 뿐 참된 신앙을 갖기 못한 청년 마가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마가는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자 잡혀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던 마가는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자 두르고 있던 홑이불을 던져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하는 추태를 보이고 만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던 마가의 불신앙은 오순절 날 그의 집 다락방에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던 중에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서 변화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온실에서 자란 화초와 같은 그의 연약한 신앙은 험난한 폭풍우를 견딜 수 없었다. 선교사로 세움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여행에 동행하던 마가는 도중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그에게는 선교에 따르는 어려움을 감내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마가의 나약함은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마가는 오랜 연단기간을 거쳐 다시금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공헌을 세우고 위신을 회복하였다. 겁 많고 실수를 거듭하던 마가는 주 안에서 그 믿음이 장성해지자 병약한 몸으로 감옥에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바울의 곁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었다. 또한 마가는 제2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여 로마인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기도 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진 "(디모데후서 2:1) 마가는 말년에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우고 이집트에서 선교 활동에 전념하며 헌신된 봉사자로 살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상한 갈대와 같았던 겁쟁이 실패자의 모습을 떨쳐 버리고 자랑스런 천국 백성이 된 성공자 마가가 보여준 승리는 성령과 더불어 사는 우리 모두가 소유해야 할 믿음의 자세이다.
"약한 자를 택하시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고린도전서1:27)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마가와 같은 사명자들을 세우셔서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인생들을 참된 성공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2)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성경에 그 이름을 남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은 물론 명단 속에서 그의 온 집안까지 구원으로 인도한 신앙인들이 있다. 그들의 명단 속에서 우리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성경에는 마리아에 대하여 오직 한 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행12:12).
그러나 우리는 단 한 군데에 농축되어 있는 마리아의 신실한 삶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마리아는 그녀의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구원의 장을 제공하고 아들 마가를 주님의 종으로 키움으로써 초대 교회의 숨은 공로자 역할을 한 여인이다. 바울의 동역자인 바나바의 누님이기도 한 마리아는 남편과 사별하고 예루살렘에서 홀로 자녀를 키우며 살았다.
재산은 많았으나 과부로서 쓸쓸히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인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심으로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또한 마리아에게는 무엇보다도 주 안에서 신앙으로 양육하는 아들 마가가 있었기에 오히려 보람과 기대에 찬 나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경건한 마리아는 일찍이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활용하여 드리기를 자원하였다.
집을 개방하고 손님 접대하기에 인색하지 않은 마리아의 [실천하는 신앙]은 예수님의 방문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마리아의 집의 큰 다락방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찬을 하시는 장소가 되었다. 마리아 스스로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님께 장소를 제공하고 후하게 대접하던 그녀의 행위가 주님의 성만찬을 예비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또한 그 다락방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 강림이 실현된 역사적인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 마리아의 집은 모일 장소가 없던 성도들에게 예배처로 제공되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믿음과 용기는 모든 이해타산과 생사를 초월할 수 있었다.
마리아의 집에는 서도들은 물론 사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의 아들 마가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안일을 돕는 하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접하게 함으로써 식구들 모두가 구원받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드러내지 않고 겸손히 주님의 말씀을 생활 가운데 실천하며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린 마리아의 헌신은 믿음의 결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아름다운 믿음에 축복하시어 마리아 자신은 물론 그 자녀와 온 집을 영화롭게 하셨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 집의 주인이 되시어 함께 하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마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여 주신 모든 것을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 드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로 내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3)마가복음을 고난의 복음이라고 하는 이유
로마교회의 지도자 중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요한이라고 하는 마가가 있었다. 박해 시에 마가가 로마에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벧전 5:13절에서 증명이 된다. 베드로는 박해 아래에 있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고 마가도 불 같은 시험 아래에 놓여 있는 로마의 성도들을 위하여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로마 초대교회의 위기에 직면하여 목회자의 심정으로 이 최초의 복음을 집필 하였다. 그의 복음서는 로마 대화재 이후에 엄습해 온 포악한 제왕의 박해의 대상이 되고만 어린 교회에 써 붙인 팜플랫인 것이다. 단순한 시장언어로 예수의 행적과 말씀을 묶었고 그리고 직설적인 사도적 권위로 복음의 내용을 일러 주고 있다.
1) 저자가 제시하려고 하는 사실은 아무리 성도들이 큰 고난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그 고난은 이미 예수께서 먼저 겪으셨다고 하는 변증이다.
2) 마가복음만이 예수께서 광야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맹수들이 함께 있었다고 말한다.(막 1:13) 즉 현실적으로 맹수들 앞에 서야 할 성도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를 준다.
3) 로마에서 이교도들과 함께 생활하는 성도들은 자주 아무런 이유 없이 오해를 받았다. 3:21에 보면 예수께서도 그의 가족들에게 정신이 이상하다고 하는 오해를 받았으며 3:22-30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관원들로 부터는 귀신에 씌웠다고 오해를 받았다.
4) 로마의 박해와 공포 분위기 속에서는 고발자가 가족과 친지 가운데서 나온다. 3:9에 보면 예수의 경우에 있어서의 고발자는 제자 중 가룟유다였다. 성도들이 감당하여야 할 고난과 박해는 그 어느 것도 이미 예수께서 아시는 바였다. 이러한 마가복음의 구성은 마가복음이 고난 아래 놓여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저자의 의도임을 말해 준다.
5) 예수님은 제자들을 경고하시어서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4:17)라고 하셨다.
6) 마가는 다른 복음서의 저자가 말한 일이 없는 강력한 표현을 기록하여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9:49)하였다. 이 구절은 당시의 박해가 얼마나 열화같이 맹렬한가를 일러준다.
7) 예수를 따르면 "금세에 있어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10:30)라고 묘한 이율배반적인 문절을 추가하고 있다.
8) 형제가 형제를 배신하며 사망으로 넘길 것이요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그 지식이 자기 부모를 넘겨주며 예수 까닭에 모든 사람들로 부터 미움을 받게 될 성도인 것을 교훈하신 바 있다.(13:9-13)
9)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8:34-38)하신 교훈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지금에 와서는 사실적이고도 실제적인 경험이 되고 말았다.
10) 예수님도 재판 받으실 때 가죽 채찍에 뼈마디를 고리에 달은 그러한 무서운 채찍을 받으셨다, 조롱을 당하시고, 끝내는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참으시고 그와 같이 운명하심을 본 로마 백부장이 15장39절에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구나"하였다. 이제는 로마 백부장의 증언이 자랑스러울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그와 같이 박해를 인내하여 칭찬을 주시는 예수의 증언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11) 베드로의 세 번 부인과 그럼에도 예수께서 그를 세워주심(14:66-72)은 기독교인에게 용서의 신학이 무엇인가를 제시하여 준다.
12) 마가복음을 가리켜 "용기의 팜플랫"라고 말하는 이유 가운데 그 복음서 내용이 예수의 처형으로 끝나지 않고 빈 무덤으로 승리가 아버지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나열 한 이유 때문에 마가복음을 고난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약성서해설. 이상훈 저. 서울신학대학 p.9-10)
설교 : 1 복음을 믿어라
구 절 : 마가복음 1:1-15
요절/마가복음 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하 시더라."
I. 복음역사의 준비 (1-8)
1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저자 마가는 먼저 인류 역사에 일어난 장엄한 역사를 선포함으로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었다!" '복음'이란 무슨 뜻이지요?' 복된 소식',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1절 말씀의 뜻은 '이 세상에 참으로 좋은 소식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전쟁에서의 승전 소식, 황제의 탄생이나 대관식소식 등을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승전 소식이 피 정복인들에게는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황제의 대관식 소식도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큰 고통의 어두운 소식입니다. 마가의 증거대로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음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들을 죄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 구출 해 내는 참된 승리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승전 소식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이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인류 역사는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로 나뉘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역사의 신기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이 지배하는 곳에 빛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원한 죽음이 지배하는 곳에 영원한 생명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절망의 바다 속에 희망의 새 역사가 시 작되었습니다. 정죄와 심판이 지배하는 곳에 죄의 용서와 구원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불의가 세상을 지배하고 승리하는 것 같지만 의와 진리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증거의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가가 이 복음을 전파하던 그 시대는 불의하고 의인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의인이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한 개인의 삶, 한 가정, 캠퍼스, 직장, 국가에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면 신기원의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2,3절을 봅시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그런데 이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전 약 6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와 말라기를 통하여 예수님의 오심과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자를 보내실 것을 예언 하셨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메시야의 선구자를 가리켜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셨습니다. 소리는 인격이 없습니다. 다만 주체자의 사상을 전달하고 사라집니다. '소리'이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메시지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혹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영접치 않더라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외쳐야 함을 말해 줍니다. 그는 무어라고 외칩니까?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고 외칩니다.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선구자는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가정에 태어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어떻게 주의 길을 예비했습니까?
4절을 봅시다. "세례 요한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세례 요한은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어디에서 말씀을 전파했다고요? 광야에서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들입니다. 특히 유대 광야는 황량한 돌산과 바위와 뱀과 전갈만이 있는 삭막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세례 요한은 죄 사함에 이르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회개의 세례'란 회개한 자에게 주는 세례를 말합니다. 그는 "회개하시오. 그리하면 죄 사함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자에게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회개는 구체적으로 네 가지 단계의 행동을 통해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로 인해 마음 아파하고, 그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끊고 떠나는 것입니다. 이렇듯 참된 회개에는 지정의가 함께 역사하고, 회개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회개는 구제 적이어야 합니다. 요한은 군인들에게는 폭력을 회개하라고 했고, 세리들에게는 부정한 세금 수입을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 마음이 높아진 교만, 안일사랑, 절망감, 음란, 탐욕, 거짓, 불평, 두려움 등을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왜 예수님을 위한 지름길을 내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회개한 심령에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5절을 봅시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놀랍게도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로 이동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할 때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다 광야로 나아가는 역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는 사람은 누구나 무거운 죄 짐을 벗고 자유를 얻기 원한다는 진리입니다. 누구나 회개하라는 말은 듣기 싫어합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얼굴 근육이 굳어집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죄의식과 불안과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믿음으로 양들의 근본 문제에 도전하여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도록 도와야 합니다.
둘째는 광야에서도 큰 복음역사가 일어날 수 있으며, 오히려 복음역사는 광야에서 일어나는 역설적인 역사임을 배웁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더라도 박해와 핍박이 심할 때 오히려 복음역사는 황무지에서 꽃이 피는 것 같이 힘 있게 피어났습니다. 지난 해 우리 동역자들은 불같은 시련으로 많은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복음이 꽃을 피울 줄 믿습니다.
경쟁 사회 속에서 상처를 받고 마음이 상한 자들이 많습니다. 부모들의 부족함이 없는 관심과 돌봄 속에서 자라나 연약하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쌓음으로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습니다. 세상이 갈수록 메말라 갑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복음이 역사하기 힘들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지금이야말로 복음역사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세례 요한과 같이 이 시대 양들을 상한 심령과 성령의 권능으로 도울 때 세상골목으로, 유흥가로 몰려가던 양들이 말씀 앞으로 달려 나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사명인 세례 요한의 의식주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6절을 봅시다. "요한(쿰란 공동체)은 약대 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요한의 집은 하늘을 지붕 삼은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의복은 약대 털이었습니다. 요즈음은 무스탕이나 토스카나 같은 가죽옷 털옷들이 값이 비쌉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털옷이 가장 값이 쌌다고 합니다. 요한은 약대 털을 입었습니다. 낮에 약대 털을 입고 허리를 띠로 묶으면 옷이 되고, 밤에 벗어서 덮으면 이불이 되었습니다. 이는 전천후 의복이었습니다. 허리를 띠로 묶는 것은 깨어 있는 표시였습니다. 그의 음식은 야생 메뚜기와 야생 벌꿀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비단 옷과 부드러운 음식이 유행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제사장들은 이런 의복과 음식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광야에서 사명에 합당한 의식주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사명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이런 그에게는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우리 목자들은 사명 중심의 삶을 살므로 어디를 가든지 구별이 됩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더욱 더 개인기도와 말씀 묵상을 사랑하여 이 시대를 섬길 영력을 충만하게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7,8절을 봅시다.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세례 요한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가리켜 혹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때 그는 백성들의 관심을 예수님께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비교하여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가를 증거 했습니다. 그는 영광을 가로채지 않고 더욱 예수님만을 높이고 예수님을 선전했습니다. 요한이 증거 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예수님이 능력 많으신 분이심을 증거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몸을 굽혀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감당치 못할 위대한 분이심을 증거 합니다. 자신은 회개한 자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심을 증거 합니다. '세례'란 씻음을 상징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의 심령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십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님은 죄를 씻어 없애십니다. 성령은 아무리 주홍같이 붉은 죄도 양털같이 희게 하십니다. 아무리 고질적인 죄의 뿌리도 온전히 뽑아 없애십니다. 우리는 때로 '이 죄는 너무나 뿌리가 깊어 변화될 것 같지 않다'며 절망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어떤 고질적인 죄도 다 씻어 없애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약점, 허물로 자책감에 빠져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 생긴 어떤 상처도 깨끗이 치유하십니다. 성령님은 상한 심령을 치유하사 건강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사람의 본성과 성품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의 삶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 성령의 열매들이 맺히게 하십니다
II.복음역사의 시작 (9-15)
9절을 봅시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그 때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요한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나사렛으로부터 무려 3백리 길을 걸어 오셔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마3:15절에 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인 고난과 십자가의 메시야의 길을 가기로 결단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무슨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10,11절을 봅시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첫째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이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혔던 담이 허물어짐을 의미합니다. 막혔던 담이 허물어짐으로 모든 신령한 축복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됩니다. 죄 많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하늘의 축복들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에서 예수님에게 내려 오셨습니다. 성령은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지식의신이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를 풀어 주며, 갇힌 자를 놓아주는 신이십니다(사 11:1,2,42:1,61:1). 예수님은 성령 충만함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영적인 역사를 이루 실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권능만이 사람을 거듭나게 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만이 사단의 궤계를 파하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은 항상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결단하신 예수님에게 성령을 내려주셨습니다. 우리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며 자기를 비우고 순종의 마음을 드릴 때 성령님으로 충만케 해 주십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습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불화가 사라지고 평화가 임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불화가 사라지고 평화가 임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류의 그리스도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신 예수님을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과 복음역사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12,13절을 봅시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 지라.
광야에서 40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 성령께서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 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단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간 금식하심으로 육신은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들짐승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조금도 상케 할 수 없었습니다. 천사들이 예수님을 수종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빵문제와 명예문제와 권세문제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역사를 시작하시기 전에 사단에게 이런 시험을 받으신 이유 는 예수님께서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사단의 시험에 넘어가 범죄 함으로 인간이 사단의 지배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사단이 인간들을 종 삼고 죄를 짓도록 끌고 다닙니다. 불신과 두려움을 심고, 의심을 심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단과의 일전이 불가피했습니다. 복음역사는 사단의 권세로부터 생명을 구해 내는 역사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단의 시험 아래 있는 우리 인간들을 도우셔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먼저 사단과의 싸움을 싸우셔야만 되었고, 마귀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새 역사를 이루고자 할 때 마귀 사단은 이를 시기하여 어떻게든지 방해를 하려 합니다. 사단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자에게 장래에 대한 두려움을 심습니다. 가족들의 오해와 핍박을 통해 심령을 연약하게 만듭니다. 제자 양성을 거듭하여 실패하거나 기타 어려움이 생길 때 사단은 믿음을 빼앗고 사단의 밥이 되게 하려고 역사 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의지할 때 어떤 마귀의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역사를 시작하신 때의 시대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14a절을 봅시다. "요한이 잡힌 후" 헤롯왕이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헤롯이 왜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까? 막6:17,18절에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헤롯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취하 는 것은 옳지 않다'고 헤롯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의인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는 그 시대가 얼마나 부패하고 어두운 시대였는가를 보여줍니다. 지도자는 음란했습니다. 공의보다는 불의가 지배했습니다. 절대 권력 앞에서 백성들은 짓눌리고 상처받고 속으로 신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사회적해방의 소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14b,15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 가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전파했다는 말은 포고 혹은 선포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받은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불의한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인생들에게 가장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찼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한이 되었다는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셨던 그 시각이 입구까지 찼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는 창 3:15 절의 예언으로부터 시작된 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가장 절박한 것은 빵도 아니요 정치적 해방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절박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인생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물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인생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롬14:17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 가운데 살게 됩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평화가 있습니다.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때 불의한 세상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누가 이 나라를 얻을 수 있습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나라에서 죄를 지으며 무의미하게 살다가 죽고 영원한 파멸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 자리에 물질을 모셔 놓음으로 의식구조가 깊이 병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돈을 요구했다가 돈이 없다고 하자 가위로 혀를 1.5cm 자른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사건은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오늘날 이 사회의 병든 의식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또한 이 시대는 육신의 쾌락을 하나님 자리에 모셔 놓았습니다. 과학 문명은 고도로 발달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점점 더 짐승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죄의 파도가 우리를 덮쳐 삼키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 순간 이런 죄악의 물결을 회개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또한 이 시대는 십자가를 버린 시대입니다. 도전하고 개척하기를 싫어합니다. 편안하고 쉽고 안전한 길만을 원합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아기와자기와 함께 오순도순 사는 것을 인생 최대의 소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명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육신의 정욕에 빠지고, 머리 깎인 삼손처럼 무력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기를 쏟아 부을 때 능력 있고 생명력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안일 사랑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복음을 믿어야 할 절박성을 말해 줍니다. 이 복음은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강력하게 결단을 촉구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하나님나라를 충만하게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시더라." 할렐루야!
설교 : 2 나를 따라 오너라 구 절 : 막1:16-20
강가를 지나 내륙 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석회질의 황량한 민둥산과 인적이 전혀 없는 광야가 나타났습니다. 썰렁한 광야 독사와 전갈과 사나운 짐승이 무섭게 움직이는 땅,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에 그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밤에는 무서운 추위로 온 몸이 얼어붙고 낮에는 가슴가까이 뜬 태양의 빛으로, 더위로 기진하게 만드는 그 땅에서 40주야을 금식하며 지냈습니다.
어떤 인간도 흉내 낼 수 없는 빈곤함, 결핍과 눈물과 고통, 그것은 십자가의 준비였습니다. 신성의 모든 능력은 감추어진 채 인간들을 사랑하는 참된 고통의 인내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40일을 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 아 ! 광야 ! 광야 ! 광야 !
이렇게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신후 다시 돌아간 곳은 갈릴리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맨 처음 가셨던 곳은 그가 나셨던 나사렛이란 동리였습니다. 나사렛의 회당에서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 "(누가복음 4:16-19)그러나 고향 나사렛은 주님을 반겨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그에 대한 배척은 가장 가까운 나사렛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회당을 다니시면서 말씀을 전하시고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시며 다니시던 예수는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씻고 있던 어부 시몬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예수의 부르심은 간단하였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가복음 1:17)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당신의 제자들을 찾으셨고 오늘본문의 말씀처럼 어부들, 세리, 열심당원들을 제자들로 부르셨습니다. 대체적으로 예수의 부름 받은 제자들은 불학무식한 자들이었고 그 당시의 귀족 계층이 아닌 평민이거나 멸시받는 세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질문한 내용이지만 왜 주님께서 그와 같은 이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까?
고전 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라
놀라운 광경이 해변가에서 일어납니다. 예수가 부를 때마다 취하는 그들의 응답 모습입니다. 그들은 어떤 태도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나요? 즉시 응답했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마가복음 1: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그들이 지니고 있던 모든 세상의 관심사, 세상일을 다 포기하고 주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마가복음 1:18-20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포기한 내용이 무엇?
오늘 우리가 이 말씀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은 과연 갈릴리 해변가에 과연 이들 어부만 있었을까하는 점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어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걱정,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가리켜 키에르케고르란 철학자는 "죽음을 향한 존재" 란 표현을 씁니다. 사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그 모습은 이런 표현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베드로후서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 하며 시편 82:7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같이 엎어지리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부르고 찾고 믿음으로 모든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여전히 근심의 구름과 믿음의 확신이 없었으므로 늘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 위로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늘 평안과 소망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예레미야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참된 평안과 소망을 얻으려 한다면 매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욥기 37: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성경은 우리의 모습을 양으로 표현하는데 양들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늑대에게 혹은 골짜기 가시덤불, 웅덩이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인도롤 따르지 않는다면 그 삶은 참으로 "죽음을 향한 존재"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까닭은 기도하며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교만함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주님께 고백하지 아니하는 모습으로는 결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선 구하는 자에게 이미 채워질 준비가 다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 구한다는 것은 그 분이 가득 채워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편 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즉시 응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기다리며 간구하는 자에게 역사하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즉시 응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갈릴리 해변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오늘 4명의 어부들만이 제자가 된 이유는 그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리고 그들만이 즉시 응답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쫓았습니다. 세상적인 방법, 지혜들을 버리고 쫓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응답지 못하는 까닭은 이들과 달리 우리의 경험, 지혜 ,지식, 방법을 더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구 할 때 그것은 참으로 빈 모습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기대함으로, 사모함으로 우리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며 불확실한 삶을, 죽음을 향한 삶을 멈추고 확신, 소망, 영생의 삶으로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예수를 전적으로 신앙하지 못하게 막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예수님보다 내게 더 귀중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4) 쿰란 공동체 구 절 : 막7:1-23
I. 서 론
최근의 신학자들 사이에는 예수사상의 근원을 찾는데 몰두하는데 사해근처의 쿰란 공동체의 발견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사해 근처의 쿰란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예루살렘교회의 제도나 의식들은 쿰란 공동체의 것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어 초대교회의 시작이 쿰란의 직접 영향을 받았다거나 혹은 그 종파로 부터 떠나온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생애와 사상이 쿰란의 삶의 정황과 사상을 반영 한다고 하여 예수와 쿰란 공동체 사이의 강한 관련성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즉 예수께서 당시의 광야사회의 쿰란 공동체로 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그러나 여러 번에 걸친 유대광야의 발견물들을 통해 에센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쿰란 공동체의 사상적 특징을 연구해 볼수록 예수사상과의 많은 간격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필자는 먼저 쿰란 공동체의 기원적 특징들을 고전 작품들에 언급된 에센파와 쿰란문서 사이의 사상적 유사성을 찾고 둘째로 쿰란공동체의 의식주의에 관하여 쿰란 문서에 나타난 모습들을 연구하고 셋째로 예수와 쿰란사이의 비교를 위해 쿰란과 세례요한의 관계와 세례요한과 예수사상의 차이점을 간략히 언급하고 넷째로 쿰란 공동체의 의식주의적 사상의 특징인 음식규례와 정결례에 관한 예수의 반-의식주의 사상을 연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막7:1-23을 중심으로 예수사상의 독특성을 밝히고 한다.
2. 에센파와 쿰란 공동체 구 절 : 막7:1-23
A. 고대 문헌에서의 에센파
1. Philo of Alexandria의 언급
에센에 대한 최초의 설명은 필로의 논문집에 있다. 그는B.C.30-A.D.40년까지 문학 활동을 하였는바 그 기간에 집필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약 4000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Essaeans" 이라고 최초로 언급하였다.
필로는 그들에 대해 율법 중 안식일에 대해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하였는데 안식일은 거룩하기 때문이었다. 안식일에 그들은 모든 일들을 삼가고 거룩한 성소로 나가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이때 그들은 경건, 정의, 내적 규율 등,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배우고 어떤 행동을 행하고 피해야 하는가 방법을 배운다. 그들의 기본 규칙은 삼중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덕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등인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는 "정결"에 관한 수 천 가지의 예가 있었다. 그 중에서 그들은 공동식사의 관습을 채택하였기 때문에 동일한 옷과 동일한 음식을 나누었다. 심지어 그들은 동일한 옷을 입었는데 겨울에는 두꺼운 외투, 여름에는 값 싼 얇은 천의 옷을 입었다. 그래서 그들은 동일한 음식과 동일한 삶의 방식의 금욕주의적 생활로 소박함을 사랑하고 사치를 몸과 영혼의 역병으로 미워한다.
2. Flarius Josephus의 언급
요세푸스는 유대의 세 종파 즉 바리새인, 사두개인과 특별히 거룩하게 살려고 한 사람들인 에센파를 많은 작품에서 언급하였다. 그가 언급한 에센의 특징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에센의 정신적 이념은 금욕주의였다. 에센은 오락을 악으로 고난에 대한 인내를 덕으로 규정한다. 그들은 기름 바르는 것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누군가 타인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그들은 몸을 씻어 정결례를 행한다. 그들은 항상 흰옷을 입는다.
둘째, 에센은 일상생활에서 특별한 경건의 형태를 취하는데 떠오르는 태양에 대해 기도 및 기도문 암송을 한다. 그들은 제5시까지 일을 한 후 동일한 장소에 모여 린넨 천의 옷을 입고 냉수에서 정결례를 행한다. 정결례를 행한 후 성소에 모이는데 순결한자만이 성소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셋째, 식사 전에 제사장이 기도를 하는데 기도 전에는 아무도 음식을 맛볼 수 없었다. 그리고 식사 후에 그는 다른 기도문을 암송한다. 그 후에 그들은 식사를 위해 입었던 옷을 벗어놓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옷은 거룩하며 저녁때까지 다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에센의 종단 입교는 즉각 허락되지 않고 후보자들은 1년 동안 훈련을 받는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자질이 증명되었을 때에만 흰 옷이 주어지고 정결례를 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추가적인 2년 동안의 훈련기간이 경과한 후 정식회원이 되었다.
다섯째 에센의 결혼에 관해서는 다른 양상들이 언급되나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 결혼이 허락된다. 그럼에도 여자들은 3개월 동안 정숙하게 한다. 그들은 세 번 정결례를 행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증명이 되면 그 때 결혼을 허락한다. 이 때 여자는 린넨천을 두르고 목욕하고 반면에 남자들은 옷을 입는다. 이와 같이 에센공동체의 삶의 모습에서 저변에 깔려있는 근본 의식은 정결주의로 특징 지워진다. 이는 필로와 요세푸스의 저작이 주장하는 바의 의식주의의 모습이다.
B. 쿰란공동체의 에센기원
요세푸스는 하스몬왕가의 조나단(Jonathan B.C.160-142))의 통치를 설명할 때 에센인들의 존재를 언급했지만 에센의 기원과 초기역사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데 Cairo-Damascus 문서 저자는 종파 공동체의 창시자인 의의 교사를 언급할 때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대항 한 경건한 자들의 혁명을 출발점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에센 운동은 마카비 전쟁 이후에 일어난 하시딤(Hasidim)의 종교적 반대 운동의 영적후예들이다. 그런데 성전의 부정문제로 하시딤 자체 안에서 분열이 일어났는데 그중에 성전과 하스몬가와 손을 잡은 자들이 바리새인, 분열된 사람들이 에센인이었다.
그 운동을 촉발시킨 구체적 사건의 배경을 보면 하스몬왕조의 조나단이-제사장의 역할을 자처한데서 비롯되었다. 이 때 사독 계열의 한 제사장인 "의의 교사"가 그의 대제사장 역할(B.C.152)에 대항하였고 의의 교사와 그의 추종자들은 조나단을 "사악한 왕(The Wicked Priest)"으로 간주하였다. 이 갈등의 사건으로 의의 교사와 추종자들은 사악한 왕의 박해로 광야로 도망갔는데 이 에센의 거주지가 쿰란지역이다. 그런데 쿰란문서의 <하박국 주석>을 보면 "속죄일"에 사악한 왕이 에센 종파인들의 광야 은신처를 방문하였고 이 때 의의 교사의 생명은 위협을 받았다고 언급되어 있고 동시에 이 사악한 왕의 난폭한 죽음은 쿰란에 의해서 신의 징벌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에센파의 쿰란 은거는 하스몬왕조의 헬레니즘화와 세속화 경향에 대한 반발과 불법적으로 대제사장이라고 자처한 것에 대한 거부의 상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러한 에센의 정치적 신학적 배경은 쿰란문서 자체 안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고전 전승들과 사해문서에 포함된 역사 기록 등, 일차적 자료에 나타나 있는 거의 일치한다. 특히 쿰란 공동체의 성립과 그 사건에 뒤 따른 상황은 사해문서에 기록된 것과 동일한 에센의 종교 생활 및 사상의 형성에결정적인 것이었다.
C.에센파와 쿰란 공동체의 관계
쿰란 문서의 발견으로 고전작품에서 언급된 에센파와의 관계는 분명해졌는데 특히 제1동굴에서 발견된 문서들로부터 쿰란 공동체를 에센파의 한 집단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면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어느 면에서는 유사성과 차이점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 사이의 유사점을 보면 두 집단 모두가 유대교로 부터 분리된 집단이었다는데 근본적 일치점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새 계약 공동체로 남은자라는 자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훈련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제사장이 모든 회원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고 공동재산 관리 및 일정기간의 입교의식과 수습기간이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의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면 공동식사에 참여할 수 없었고 모두 정결의식을 행하였다.
다음으로 두 집단 사이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첫째 에센파는 동물 희생 제사를 거부하여 성전에 예물을 보냈지만 성전 종교 의식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쿰란은 예루살렘 종교 의식과 제사장의 근본을 불법적이라고 하였다.
둘째로 쿰란의 창시자는 의의 교사인데 에센에는 의의 교사가 없다.
세째로 에센은 흰옷을 입었으나 쿰란 문서에는 옷에 대한 묘사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두 집단의 차이점과 유사성을 비교해 볼 때 차이점은 본질적인 면에서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질적인 면에서는 둘 사이의 연속성이 더 강함을 볼 수 있다. 물론 에센파내에서의 다양한 공동체의 양상성들에서 때문에 미미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비록 미미한 차이점이 있을지라도 쿰란공동체는 에센파의 한 공동체이었다고 결론짓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3. 쿰란공동체의 의식주의(Ritualism)
A.쿰란 문서에서의 삶의 정황
이 쿰란 문서들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들을 "새 계약 공동체"로 남은자인 참 이스라엘로 여긴 것이다. 쿰란 공동체는 자신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임을 주장하고 제사장과 레위인들 그리고 12지파를 대표하는 평신도 조직을 갖추었는데 오직 성인들만이 공동체에 속할 수 있었다. 필로와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계약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재산의 공동소유와 영원한 새 계약 공동체로서 공동식사와 공동의식인 정결례를 나타난다.
그들의 일상생활은 토라와 종단의 전승들에 따라 정해졌는데 모세를 존중했으며 그를 모독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였다. 그들은 특별히 안식일준수에 있어서 주도면밀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남은자의 대표로서 율법에 대한 충성심이 새 시대를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경건의 모습은 여러 특징들 즉 떠오르는 태양에 대한 기도, 그들의 예전적인 정결례, 흰옷입음, 장방형 식탁에서의 금주와 침묵, 머리에 기름 붓는 것에 대한 반대, 변을 볼 때의 정숙함 등으로 그들의 의식주의적특징들이다.
또한 그들은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지 않았는데 그들이 자체의 정결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성전에서 사악한 제사장에 의해 배제되었기에 다른 장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동물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도록 정결례를 행함으로서 경건하게 보이게 하였다. 그들은 매 식사 때마다 식전에 찬물로 목욕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정결의식 후에 모여 의식을 진행하고 공동체 식사를 위해 줄지어 간다.
B.쿰란 공동체의 의식주의 형태
1.정결례
쿰란문서는 구성원들이 매일 목욕하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스스로 정결례를 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CD문서 X.11-13 on purification bywater"과 공동체 "Rule"은 계약 구성원들의 정결례와 세례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첫째 이 공동체 [규칙]V권13-14절에서 "악한 자들은 거룩한 사람들의 정결을 행하기 위해 물로 들어가지 말라. 사람은 악한 마음을 회개했을 때에 만 정결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둘째 VI권 16-17에서는 공동체 가입 첫해에 정결례를 행하는 것은 인정받지 못하였다고 특징 지운다.
셋째 III권4-9절에서는 폭도가 행하는 세례는 효과가 없고 성령이 정결례에 관여한다고 한다.
위의 구절들은 모두 "물로서 정결례"의 합법성과 필요성을 긍정하고 있는 언급이다. 그런데 정결례는 사람의 영이 하나님에게 돌이킬 때에만 육체를 정결케하는 의식이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물질주의와 신비적 해석을 경고한다. 그러한 쿰란의 교훈은 쿰란 종파가 본질적으로 세례자의 종파였음을 의미한다.
2. 공동식사
쿰란에서는 공동식사가 새 계약 공동체로서의 자의식에서 행했는데 그들이 정결례를 행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참여할 수 없는 매일의 거룩한 의식이었다. 공동체의 형제들이 식사하는 장소는 거룩한 성소이었기에 부정한자는 접근이 금지되었다. 이 식사 때 한 제사장이 식사를 관장하고 식사 전후에 기도하였는데 기도 전에 음식을 맛보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쿰란의 식사는 성찬 즉 종단의 거룩한 의식으로 이 거룩한 식사에는 공인된 형제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쿰란 문서에 나타난 공동식사 규칙은 종단의 의식주의의 성격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전 적 본질을 나타낸다. 이 예전에서 그들은 식사 때 마실 포도주와 함께 식탁을 차리었고 제사장은 빵과 포도주의 축복을 위해 손을 뻗친다.
C.쿰란문서에서의 정결 규칙
쿰란 문서에서 정결의 규칙은 대표적으로 CD문서의 [물로서 정결에 관하여] 부분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더러운 물에서 목욕하거나 너무 작은 양의 물에서 목욕하지 말라. 더러운 물로 욕조를 씻지 마라. 바위로 된 어떤 수영장도 사람을 완전히 잠기게 할 만큼 물을 충분히 채워라. 만약 부정한 사람이 욕조를 만졌다면 그는 욕조안의 물을 부정케 한 것같이 수영장의 물을 부정케 한다"
이와 같이 쿰란에서는 의식주의적인 목욕이 성행했다. 쿰란문서에 나타난 그들의 정결 의식은 세분화될 수 있지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쿰란 공동체에서는 부정한 것들을 금지하는 의식주의가 강조된다. 그들은 기름을 부정한 것으로 여겨 기름을 발랐을 때 반드시 정결례를 행하도록 되어 있다. 음식문제에서는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들에 대한구분과 교훈들을 언급하고 입교 후보자들은 공동체의 규칙에 내적으로 완전일치가 되지 않았기에 함께 음식을 나누지 않았다.
둘째로 쿰란의 정결 법은 다른 유대인들 보다 아주 엄격하게 실행되었다. 그들은 낮선 사람과의 접촉 후에 뿐만 아니라 연장자가 젊은 형제와 접촉했을 때에도 씻지 않으면 안 되었다.
셋째로 쿰란인들은 주둔지의 정결을 말하는데 용변을 볼 때도 부정에 관해 미리 주의할 것을 요구한다. 이 규칙들은 신명기23:12-14에서 용변을 볼 때 처소 밖으로 나가 구덩이를 파야 한다는 기록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그들은 신명기 율법에 특히 세심하였다.
결론적으로 쿰란공동체에서는 정결에 관한 관심이 지대하였고 공동체의 삶을 이어가는 기본적인 규칙으로서 정결의식은 공동체 보존의 근간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수많은 정결 규칙을 정해 놓고 있다.
4. 쿰란의 공동체와 세례요한 구 절 : 막7:1-23
A. 쿰란공동체와 세례요한
1. 쿰란과 세례요한의 관계성
의의교사 출현이후 1세기 만에 유대광야에 다른 예언자 세례요한의 출현은 새로운 길을 여는 희망이었다. 그런데 쿰란 공동체와 세례요한 사이의 관계성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이들 사이에는 많은 연결점들이 있다.
첫째, 세례요한의 광야에서의 영적인 활동과 쿰란 공동체의 연속성이다. 무엇보다 요한은 광야에서 자랐다(눅1:80). 광야는 예루살렘-헤브론 도로와 사해사이에 위치한 메마른 지역이다. 이 광야의 삶의 장소 중 한 곳이 쿰란이기에 요한이 쿰란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데 4복음서에서 요한의상은 연속적이며 모순적인 자료는 없다. 복음서에 나타난 요한의 모습에서 볼 때 쿰란과의 차이점은 요한의 옷이 쿰란의 흰 린넨천의 옷이 아니었고 그의 음식은 에센의 것이 아니었다. 또한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는 제사장 가문으로 예루살렘성전에 속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반 예루살렘적인 쿰란에 보냈을 리가 없다.
둘째, 세례 요한의 사명과 쿰란의 성전회복을 갈망 사이의 유사성으로 동일한 사40:3의 인용이다. 이들은 동일하게 광야에서 길을 예비하는 사명으로 동일내용과 표현으로 인용되었다. 그런데 쿰란에서 "길을 예비하는 것은" 신비의 교훈을 받고 자신들을 불의한 자들로 부터 분리시키기 위함이었고 "길"은 모세에 의해 명령된 율법을 채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표현은 쿰란문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요한에게 "길을 예비하는 것"은 광야의 은둔생활을 청산하고 회개의 복음 설교를 준비하는 것을 의미했고 "길"은 단순히 율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를 위한 백성의 준비였다. 이 일을 위해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눅3:3-17)
셋째, 세례요한의 검소한 금욕 생활은 쿰란의 생활과 일치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쿰란에는 공동식사가 있었지만 궁핍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그들에게는 토라를 읽는 것이 경건한 삶의 훈련이었고 나실인의 요소가 있었다고 주장될 수 없다.
넷째 세례요한은 물세례를 준 자로 쿰란 공동체 안에서도 정결례를 베풀었다.
2.쿰란의 정결례와 세례 요한의 세례
a.세례요한의 세례의 특징
위의 특징 중 쿰란과 세례 요한의 관계를 세례 중심으로 본다면 한층 더 깊은 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요한은 그의 세례에 관한 사상을 어디에서 갖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 중심 논제가 된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에서 청중들에게 요구된 것은 청중들이 회개할 것, 세례를 받을 것과 의로운 삶을 살 것 등 세 가지였다.
첫째,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의 물세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요한에게 있어 회개는 악에서 돌이키는 것과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의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요한이 청중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한 것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둘째, 그의 요구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의로운 삶은 위로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과 이웃들에 대한 정의를 말하며 회개의 근본적 열매로 보았다.
셋째, 요한은 물세례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쿰란공동체가 살던 주거지에는 세례를 위한 저수지의 유적이 남아 있어 청결케 하는 의식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은 제사장적 정결을 유지했고 모든 불결한 것을 피하려고 노력했으며 매일 몸을 씻음으로서 필요한 정결을 얻으려고 하였다.
b.둘 사이의 차이점
세례요한의 세례는 회당에서 개종자들에게 준 세례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개종자뿐 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에게도 이 의식을 적용시켰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그래서 쿰란의 정결례와 세례요한의 세례사이의 차이점에 관한 것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첫째로 쿰란의 정결례는 입회자에게만 주어졌으나 요한의 세례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다.
둘째로 쿰란의 정결례는 2년간의 견습기간이 끝나야 주어진 것이지만 요한의 세례는 회개하고 고백되었을 때 즉각 주어진 것이다.
셋째로 요한의 세례는 메시아의 오심과 관련되지만 쿰란 문서에서는 정결례를 의의 교사와 관련시키는 종말론적 측면을 볼 수 없다.
이외에도 쿰란의 세례는 반복적이고 의식적이지만 세례요한의 세례는 일회적이라는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복음서에서 요한의 세례 언급에서는 반복적이라는 단서를 찾아볼 수 없고 회개와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c.요한 세례의 독창적 성격
위에서와 같이 쿰란 정결례와 세례 요한의 세례사이에는 유사성과 상이점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요한의 세례의 기원과 성격은 어디인가? 쿰란의 정결례와 회당의 개종자 세례는 부정한 것을 씻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하는 자들에게 누구에게나 준 세례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요8:33)
그런데 의식주의적 목욕 혹은 세례의 개념을 생각할 때 그 의미는 입교식의 상징적 의미, 육체적 영적 부정에서 상징적인 씻음 혹은 병의 치유를 위한 의미 등이 있다. 이런 의미 중에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나라의 입회식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쿰란의 성격은 정결에 더 가깝다.
결론적으로 죄인에 대한 요한의 태도는 그가 쿰란인이 아니었거나 쿰란의 관점을 완전히 깨뜨렸음을 지시해준다. 이런 상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의 사상이 쿰란 사상에 친숙한 점은 당시 유대 사상적 맥락에서 볼 수 있다.
B. 세례 요한과 예수
예수는 세례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았고 그를 칭찬한 것으로 보아 예수와 세례요한의 관련성은 부인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의 삶은 세례요한의 노선을 따라 전개되었고 그와의 관련 속에서만 바로 이해될 수 있는가? 그러나 초기 전승들은 예수와 요한의 밀접성을 말하면서도 둘 사이를 갈라놓는 간격을 분명하게 설정되는데 세 가지 특징에서 구분된다.
첫째, 세례 요한은 광야의 적막한 곳에서 살며 광야라는 활동 지역을 근거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예언자적 삶을 살았다. 반면 예수는 광야를 떠나 이 세상과 정면 대결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다. 옷차림도 다를 바가 없었으나 요한은 엘리야와 같이 예언자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둘째, 세례 요한의 운동은 금욕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요한은 포도주와 술을 마시지 않는 나실인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잔치 집에 온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 어떻게 금식할 수 있겠느냐?"(막2:19)에서처럼 그 시대의 종말론적 예언자들과는 달랐다. 이러한 중요한 차이점은 심판과 은혜에 대한 상이한 이해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세례요한은 진노의 심판에 근거하여 회개의 세례를 요구했지만 예수는 세례를 행하지 않았다. 예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은 진노의 심판을 선포하는 두려운 소식이 아니라 구원의 도래를 선포하는 기쁨의 소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회개의 요구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를 두고 있다.
5.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반(反)의식주의의 사상
A. 마가복음 7:1-23의 자리
이 자료의 형식은 2:1-3:6에 나오는 다섯 개의 논쟁기사 자료와 매우 흡사하며 연결성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6:14-8:26의 이방선교의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논쟁기사의 중심에 위치하며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세편의 이적기사에 앞서 나오는 형식상의 전주곡 역할을 한다. 이 부분에서 부정, 전통(유전) 그리고 실제 문제에 관한 일관성 있고 연속성 있는 관심은 7:1-23을 하나의 단원으로 다루어야 할 마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마가복음 7:1-23을 세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첫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비난과 예수님의 첫 번째 답변(1-8), 둘째 서기관의 유전이 율법과 상충하고 있다고 하신 예수의 역 비평(9-13) 셋째 참으로 부정함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14-23)등이다. 그러므로 이 논쟁은 예수님과 공인받은 율법의 해석자들과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예수의 반-의식주의적 사상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을 보여주고 있다.
B. 본문에서 의식주의에 대한 예수의 태도
1. 정결법 문제
2절은 예수의 제자 중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언급한다. 여기에서 마가는 깨끗한 식물에 관한 바리새인들의 정결주의를 보존하고 있다.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제의적 부정의 문제에서 예수는 문둥이와 접촉(1:41), 혈루증을 앓은 여인과의 접촉(5:27-30), 죄인들과 세리와의 자유로운 접촉들을 통해 부정의 문제에 정면 도전하였다. 무엇보다 예수의 사상에서 핵심은 인간성이 배제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데 있다.
본문에서 제의적 부정의 문제는 깨끗한 식물과 깨끗하지 못한 식물의 구별과 취식법에서 드러난다. 제자들 중 몇 명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먹은 것이 부정함의 원천을 나타내어 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것이 되었다. 당시의 서민들이 죄인들이라고 배척당한 이유는 그들이 제의적 정결에 무관심하였다는 것이 이유이었다. 여기에서 제사장이 성막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어야 한다는 결례는 생활 조례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사장의 정결법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아침 기도 전에 규칙적으로 손을 씻었다. 만약 부정해진 다음에 레위적 정결의 회복을 얻으려면 물로 씻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일상적인 제의적 결례인 손을 씻는 법을 언급하였는데 이 결례는 음식 먹기 전에 공식적으로 요구되는 절차였다. 그 방법들은 물을 부어 손을 씻는 방법, 물을 뿌림과 목욕이나 손목까지 담그는 형식들이 있었다. 예수는 8절에서 제의적 결례로서 정하게 될 수 없는 더욱 깊은 곳에 근저를 두고 있는 부정의 원천에 관한 문제를 말씀하신다. 예수는 부정의 원천이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쿰란의 부정한 것을 거부하거나 배척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그들의 의식주의에 반대하고 계신다. 예수의 제자들은 자발적이었고 규율의 파괴로 부정하다고 출회하는 것과 같은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4장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손 씻음이 성찬의 본질적 요소가 결코 아니었음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2.부정의 문제
마가복음의 정결법 논쟁은 예수의 제자들이 음식 전에 손을 씻지 않고 먹었다는 데서 발단된다. 이 부분의 식사 규정은 분명히 에센파들의 식사 규정을 반영한다. 물론 랍비 규정에도 미쉬나 제6부 "정결에 대하여"에 손 씻는 것을 규정한다. 마가는 정결법의 전통들이 있다고 소개함으로"장로들의 유전"이 율법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음을 말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이 이런 규정을 무시하고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한 예수의 답변은 음식과 인간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관계를 제공한다. 예수는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더럽히느니라"(7:15-16)고 한다. 여기에서 예수는 물질적 정결과 도덕적 정결을 날카롭게 대조하여 손을 씻지 않고 먹어도 식물이 사람을 부정하게 못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부정은 외부적 원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마음의 정결 없이 제의적 정결을 행하면 진정한 정결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의 망상을 비난하신 것이다. 예수는 음식결례에 관한 논쟁에서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7:19)"고 결론지으므로 예수와 바리세인의 논쟁은 구약에 있는 음식 법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은 것이었다.
예수는 구약의 정결법의 규정이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을 판가름하기 보다는 인간에게 좋은 길을 가르쳐주는 인도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전통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사정을 고려해서 제정된 법일 따름이다. 이러한 예수의 입장을 밝혀주는 것은 "고르반"(7:11)에 있다. 예수는 랍비들의 가르침이 법조문의 형식적인 적용과 위선적 실행임을 폭로하고 있다.
3.예수 사상의 독자성
음식과 인간의 관계는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 첨가된다. 여기에서예수는 음식 규정이 안식일 규정과 같이 사람들을 위해 제정된 것이고 음식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예수는 "장로의 유전"(막7:5-)을 인정하였고 손 씻는 정결법 문제(7:1-8), 고르반 @k;r]q;(qorban)[그]korba'n(korban)예물(7:11),안식일 논쟁(2:23), 이혼 맹세 반대(마5:31-37)구전 율법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이 규정들이 진정한 권위적 율법이 아니고"사람의 규정"이라고 부르며 더 높은 원리로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다.
이 정결법에서도 궁극적인 것은 결국 인간은 누구이며 그의 생명의 근본은 무엇인가이다. 이것이 예수 사상의 독자성을 형성시키는 것인데 마음은 인간의 주체성으로 인간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들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 이러한 부정과 정결의 문제에 대한 예수의 해명은 근본적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쿰란과 다른 차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간의 책임성과 인격성을 교훈하시어 "식물은 다 깨끗하다"고 하신 것이다. 이런 예수의 사상을 쿰란문서의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아무데도 없다.
C.쿰란의 의식주의와 예수의 반제
쿰란공동체는 무엇보다 율법에서 세웠던 규정 그리고 그의 율법의 해석으로부터 이끌어낸 의식과 제의들을 매일 ,매시간, 매주, 매년, 안식년마다 준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중에서 쿰란 공동체에서의 일상적으로 삶의 의식들 중에 정결법과 의식주의의 복합은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르낙은 쿰란인들을 두고 말하기를 "이 무리들은 결코 욕조로부터 밤이고 낮이고 나오지 않으려 했다"고 하였다. 그들은 세례를 너무 좋아했기에 그들이 부정한 어떤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보거나, 만지면 곧 그들은 욕조로 들어가 정결례를 행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누군가가 자기를 만지기만해도 자신들을 욕조에 항상 두려고 하였다.
그런데 슈타우퍼는 "예수의 메시지에서 이와 같은 의식주의의 모습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아무데도 없다"라고 예수사상과 관련이 없음을 주장한다. 예수는 그 시대의 음식 규례뿐만 아니라 정결례를 얼마나 비판적으로 보았는가? 이에 대한 예수의 사상은 위의 마가복음7:1-23을 분석을 통해 볼 때 자명해진 것이다. 여기에서 쿰란과 예수사이의 대립적 요소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근본적인 면에서 쿰란은 닫혀 진 종파(a closed sect)이었다. 그들의 입회는 엄격한 판단의 과정이 있었고 의식주의적 정결례로 종파의식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모든 자에게 은혜로운 초대를 하였고 그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진정한 마음의 정결인 회개를 요구하였다. 예수는 복음의 우주적 확장을 위해 열려진 세계를 주장하였다.(마11-28-30;28:19-20)
둘째로 쿰란은 엄격한 율법주의를 택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바리새파 율법주의를 폐지했고 율법의 본질적인 의도를 찾으려고 하였다.(막2:23-28)
셋째로 쿰란의 삶의 방식이 의식주의적 활동과 의식적 정결의 지배 속에 있었지만 예수는 단순한 형식주의 보다는 영적인 원리를 주장하였다.(막7:1-23) 그러나 쿰란의 금욕주의적 성격은 입교자에게 2년의 기간 후에 입교의식을 행하였지만 예수는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였다.
6. 결 론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사상과 쿰란 문서에 나타난 의식주의적 정결례에 관한 두 자료군 사이에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음을 연구하였다. 그럼에도 많은 학자들이 예수사상을 쿰란과 어느 정도 일치시키고 사상의 근원을 연결시키려 했던 원인이 당시 예수 사상이 반 바리새주의이었고 성전권력자들과 긴장관계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쿰란공동체의 기원과 삶의 양식이 어정도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대문헌에 나타난 에센파에 대한 많은 설명은 쿰란공동체의 것과 일치되는데 수많은 연속성을 제공해 준다. 그들의 의식주의 모습은 쿰란공동체의 일상적 삶의 전반을 지배한 하나의 원리이기 때문에 다른 쿰란의 특징적인 삶의 양태를 결정해주는 요소가 아닌가 판단이 된다. 그들의 금욕주의적, 율법주의적 특성들 그리고 무엇보다 부정한 것을 싫어하여 광야로 은둔하게 된 그들의 삶의 정황에서 분파적 색체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종파입회 시에 즉각 가입이 허락되지 않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후 정결의식에 참여하게 됨으로 부정에서 해방된 것을 선언 받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이러한 의식주의의 근간이 되었던 것은 정결례이었다. 쿰란문서는 공동체 구성원들로 하여금 수많은 상황에서 정결례를 행하도록 의무규정을 두고 있고 정결례 규칙들이 있었다. 그래서 마치 쿰란종파라 하면 물과 동일시 될 정도로 항상 일상적 삶과 밀착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쿰란종파가 본질적으로 세례자의 종파였다는 의미인가? 쿰란의 정결례와 세례요한의 세례사이에는 많은 연결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복음서가 언급한 요한의 삶의 형태에는 연속적이며 전혀 모순을 찾아볼 수 없다. 복음서의 요한은 본질적인 면에서 쿰란의 사상과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다.
사실 그가 쿰란의 일파이었던지 아니었던지 간에 그의 일은 광야에서외치는 자의 소리로 회개가 요한 자들에게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었다는 면에서 독창적이다. 왜냐하면 쿰란의 사40:3인용은 자신을 부정한 세계에서 분리시키는 것이었고 모세의 율법을 찾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나라의 입회식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정결적인 의미를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식주의에 대한 예수의 사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Anti-Ritualism이었다. 마가복음 7:1-23에 나타난 예수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음식규례 즉 부정한 것과 정결례 논쟁에서는 "본질 대 형식"의 근본적 대립이 존재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이 부정의 원천적 원인임을 말하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인간의 악한 마음이 부정한 것이다”라고 하여 마음의 정결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고 하여 정곡을 찌르셨다. 위에서 인용했던 E.Stauffer의 말이 생각난다. "어디에서 이와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누가복음(Luke)
1. 배경
그림설명 / 복음서 기자 누가 : 성 아우루스티누스 복음서로 6세기말의 작품이다. 크기는 24.8*18.7cm이며 케임브리지의 코르푸스 크라이스트 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Ms 286.fal.129v). 이 고대 말기의 복음서는 596년에 로마에서 영국선교를 위해 파견되어 초대 캔터베리 주교가 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그가 로마에서 가지고 온 사본으로 추측되지만 삽화가 현재는 2폭밖에 남아 있지 않다. 본 그림은 그중의 하나로 복음서기자 누가와 그의 상징인 황소, 누가의 좌우에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12장면으로 그리스도의 생애가 그려져 있다.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가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해준 그대로...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눅1:1-3) 누가가 주의 사역을 발표하여 데오빌로에게 드릴 목적과 그리고 특히 헬라인으로 하여금 분명히 깨닫고 확실히 알게 하려 고 이 복음서를 기록하였다. 기록한 연대는 대개는 70년대 내지 80년대의 기록이라고 보고 있다.
누가가 복음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밝힐 수 있을 때는 되도록 정확히 밝히려고 하였는데(눅2:1-2,3:1-3 참조), 이것은 그가 얼마나 주의하여 복음을 기록하였는가를 보여준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에 없는 예수의 비유들과 독특한 교훈과 사건들이 많이 수록되어있다.세례요한의탄생(1:5-25,57-80), 예수의 탄생과 소년시절 (1:26-56,2:1-52), 족보(눅3:23-38)나사렛에서설교(4:16-30),베드로를부르심(5:8-10)6개의이적 5:1-117:11-17,13:10-17,14:1-6,17:11-19,22:49-51),19개의비유(7:41,43,10:30-37, 11:5-8, 12:13-21, 12:35-40, 12:41-48, 13:6-9, 14:7-11, 14:16-24, 14:28-30, 눅14:31-32, 15:8-10, 15:11-32, 16:1-13, 16:19-31, 17:7-10, 18:1-8, 18:9-14, 19:11-27), 삭개오를 만나심(19:1-10), 헤롯의 희롱(23:8-12), 그리고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기사(24:13-35) 등은 누가복음 안에 첨가되어 있는 것들이다.
이 복음은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인자로서 완전하고 대표적인 삶을 산 예수를 중심 개념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근거는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는 말씀에 있다. 누가는 예수의 사명이 세계적이며 보편적인 것을 고조하고 있다.
마태와는 달리 예수의 족보를 아담에게까지 소급함으로 예수는 전 인류의 구주가 되시는 것을 말하며, 세례요한의 활동에 관해서도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3:6)는 이사야의 말까지 인용함으로써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구원은 누가복음의 중요한 가르침이며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고 한 말씀은 이 책의 요절이다. 이 복음에는 또한 성령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으며 예수의 전 생애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졌다 (눅1:35, 눅3:22, 눅4:1,1 4,18, 눅10:21, 눅24:49).
※누가의 뜻 (Louka'" , Luke, Lukas) 「빛나다」
3. 내용 분해
1. 머 리 말 눅1:1-4
2. 구주의 준비 눅1:5-2:52
3. 구주의 소개 눅3:1-4:15
4. 구주의 사역 눅4:16-9:50
5. 구주의 선교 눅9:51-18:30
6. 구주의 수난 눅18:31-23:56
7. 구주의 부활 눅24:1-53
4.누가 복음 분석
1. 누가복음의 성격
누가복음은 신약성경에 포함된 복음서들 중에서 양적으로 큰 복음서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같은 사람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모두 같은 사람 - 데오빌로에게 헌정되었다(눅 1:3/ 행 1:1).
2. 누가문서의 구조(누가 문서= 누가복음 + 사도행전)
(1) 연대기적 방법 누가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까지,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주로 팔레스틴 안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다루어지고 있다.(사도행전은 예수의 승천 이후부터 바울이 로마에 입성할 때까지 즉 예수의 제자들이 땅 끝까지 이방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다루어지고 있다) 즉 예수의 활동을 담고 있다(행전은 제자의 활동을 담고 있다).
(2) 지리적 방법 누가복음은 주로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복음 전파과정이 다루어지고 있다.(행전은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라 말할 수 있다(행전은 로마로 가는 길)
(3) 누가복음의 구조
- 예수의 갈릴리 활동-눅4:14-눅9:50
-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눅9:51-눅19:28
- 예수의 예루살렘 활동-눅19:29-눅23:49
3. 누가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
누가는 자기들의 시대가 종말의 시대라고 믿었고 그래서 임박한 종말 사상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 종말이 오지 않자 복음 신앙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적절한 신앙적 해답을 제시하고 신앙적인 지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초대교인들에게 현재와 이 땅에서 기독교인들의 할 일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함을 알리고자 하는데 힘썼다. 참고, 눅 21:9. 종말시대 이전에 온 세계에 말씀을 전파해야 할 "교회의 시대", "선교의 시대"를 일깨워 준다. 행 1:8.
4. 누가복음의 주요 특징들
(1)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 같은 관심은 부자들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나타나는 특징을 지니다(눅14:12-13/ 눅18:22). 즉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선언과 더불어 부자에 대한 저주 선언이 나란히 강조되고 있다(눅6:20, 24/ 눅16:19-21- 거지 나사로의 비유/ 눅12:16-2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2) 세리와 죄인에 대한 관심 세리와 죄인은 소외된 버림받은 존재들로서 같은 의미로 함께 언급되고 있는데(눅 5:307:34, 눅15:1) 이들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눅7:34)로 나타남. 누가에서만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가 나온다(눅18:14).
(3) 여인에 대한 관심여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사렙다 과부(눅4:26), 나인 성 과부(눅7:11이하), 마리아와 마르다(눅10:38이하), 예루살렘 성에서 우는 여인들(눅23:27이하) 이 모든 이야기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4) 사마리아인에 대한 관심 복음서 가운데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가장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경멸하고 천대하던 사마리아인을 오히려 유대인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강조하고 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10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한사람 사마리아 문둥병자만이 예수님에게 돌아와 발아래 엎드려 감사했다(17:15-16). 사마리아인을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훌륭한 신앙인, 모범적인 예배자로 제시하고 있다.
(5) 이방인에 대한 관심 누가 복음을 "이방인의 복음서"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누가의 사상이 보편주의이고 그의 관점이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과는 달리 예수님의 족보를 온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까지 하나님에게까지 소급한다. 또한 이방인들, 특히 로마인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로마의 관리와 총독들에게까지도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었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기까지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5. 저자 / 기록연대 / 장소
(1) 저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동일한 인물로 보여 진다. 그 이유는 언어, 문체, 신학사상 등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 저자로는 바울의 동역자요 의사였던 누가를 생각할 수 있다.
1)고대 전승과 증언이 이를 뒷받침 한다. 무라토리 경전과 2세기 말의 이레니우스 문서
2)사도행전의"우리 항목"(we-sections)이라 알려진 본문들이 있다(16:10-17, 20: 6-21:18, 28:1-16). 여기서 저자는 삼인칭 단수가 아니라 1인칭 복수로 되어 있다. 이는 저자가 바울의 전도 여행들에 참여하여 동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행했던 자들 가운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가이다.
3)누가 문서에는 의학적인 용어가 많이 나오고 있는 사실은 저자가 의사임을 암시한다. 중한 열병-4:38(마 8:14, 막 1:30)/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5:12(막 1:40, 마 8:2). 바울이 사랑하는 의사로 언급한 누가가 저자이다(골 4:14 몬 24, 딤후 4:9-12)
(2) 기록 시기/ 장소 기록 연대는 80년에서 90년경에 이르는 시기로 생각된다.-마가복음을 자료로 이용/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을 알고 있었다.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해 앗수르 왕 사르곤 2세가 주전 722년에 사마리아지방 사람들을 잡아가고 이 지역에 이방지역 사람들을 거주시키면서 혼혈족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 유대인과 예루살렘의 정통파 유대인 간에 틈이 생겼다. 페르시아시대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재건할 때에 사마리아인들을 배제시켰고 사마리아인들의 총독 산발랏을 중심으로 이를 방해하던 시기에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다. 그 이후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헌물, 우양이나 부동산 취득, 유대인과의 혼인 등을 금했다.
6,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죤 심프선 (JOHN SIMPSON)
크리스마스 마태(A:18-25)와 누가 (1:30-35)는 둘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아버지 개입이 전혀 없이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셨으며 따라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고 진술한다. 우리는 이 사건을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혹은 보다 정확히 동정녀 잉태-이라 칭한다. 마태와 누가의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과 사역 위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나 마리아와 협력하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바로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그러나 성령의 창조적인 사역을 통해서 그는 새 인간 곧 새 인류의 시조가 되신 것이다.
이 일이 동정녀 탄생을 떠나서도 가능할 수도 있었다는 데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으나 성경의 증거는 이 이적을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 위하여 택하신 방편으로 지적한다. 우리나 성육신의 생리학에 관하여는 아무 것도 듣는 바가 없으나 마리아가 수태한 것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였다는 확실한 사실에 접하고 있다. 실로 이것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이다. 이는 우리가 여기서 무한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 세계 안이 들어오시는 과정을 대하고 있고 또 이것은 창조사역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정녀 탄생이 하나의 이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될 수는 결코 없다. 최대의 이적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자체이다. 우리가 그 이적을 받아들일 것이면 하나님이 그 이적을 행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방법도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동정녀 탄생이 신약 다른 곳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에게 균형을 잃지 말라는 하나의 경고가 된다. 동정녀 탄생의 사실을 진술하고 나서 성경은 아무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성육신 혹은 무죄하신 상태가 단지 그의 탄생의 방법자체로 말미암아 서거나 넘어진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처녀"가 잉태하여 "임마누엘"이라 하는 아들을 낳으리라 한 이사야 7:14의 예언은 예수님의 탄생 이 후에 보다 깊은 의미를 갖고 있음이 드러날 것이었다.(마1:22-23) 마가복음 6:3에서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셉이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소문에 근거한 모욕적인 의미가 담겼을 가능성이 있는 '마리아의 아들'로 불렀다. 요한복음 8:41도 비슷한 모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 사 여자에게 나게 하셨다'고 한 갈라디아 4:4과 또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곧 새 인류의 시조로 언급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15:45-47에서도 역시 동정녀 탄생에 대한 그 이상의 증거들을 찾아내었다.
8. 신약성경의 이적들 하워드 마샬(HOWARD MARSHALL)
1.이적에 대한 현대의 반론들
2.부활
3.이적들의 목적
복음서들은 35차례의 서로 다른 기회에 예수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들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것을 이적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는 또한 본문의 여러 기사들을 통하여 아주 일반적인 의미로 예수께서 이적들을 행하셨다는 말을 듣고 있다.
예수께 대한 이러한 기사들 중 절반 이상은 그가 열병과 문둥병(성경에서 이 명칭은 오늘날의 문둥병을 비롯, 그 밖의 피부병도 포함하고 있다). 고창병, 중풍병,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등 다양한 질병에 걸린 자들을 어떻게 고치셨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다른 경우들에 있어서는 그가 귀신 들려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서 귀신들을 내어 쫓으심으로써 그들을 온전케 하셨다.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 (오병이어(五餠二魚)
갈릴리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들은 성 베드로의 물고기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알을 머금고 다니는 이 고기의 입은 동전을 머금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마17:27).
세 차례에 걸쳐 우리는 그가 죽은 사람을 살리셨다는 말을 듣고 있다. 나머지 기사들은 사물에 대한 그의 능력, 곧 보리떡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큰 무리를 먹이시고, 물위로 걸으시며,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마르게 하시며,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게 하신 그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적에 대한 현대의 반론들
이적에 관한 성경의 기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그 이적들을 본 사람들에게 끼친 엄청난 감명을 증거 해 준다. 설사 그 기사들이 전설이었다 하더라도(결코 전설일 리가 없으나)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만들었던 비밀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고자 할 것이다. 처음부터 분명히 해 둘 것은 우리가 비이적적인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성경의 이적들을 버릴 수는 결코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적들은 성경의 빠뜨릴 수 없는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사람들(자유주의자들) 이 그 이적들을 버리려든단 말인가?
첫째로, 과학은 이적의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 주장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전제, 곧 순수한 물질계 안에서는 그 자연적인 원인들이 규명될 수 없는 사건이 하나도 일어날 수가 없다는 전제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우주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가정으로서 사실로 입증될 수가 없다. 기껏해야 이 가정에 근거해서 보통의 상태에서는 이적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상태에서 이적들이 일어날 수 없다 해서 어는 경우를 막론하고 도무지 아무 이적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은 불합리한 주장인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그 점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자세가 되어 있으나 입증되지 아니한 전제나 가정에 동의할 수는 없다.
둘째로, 우리가 이적들에 대한 신빙성이 있는 역사적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성경의 이적들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그 이적들이 이적 아닌 다른 사건으로는 설명될 수가 없다는 충분한 근거들을 갖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적이라고 하는 특수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그 증거도 또한 아주 강력한 것으로 제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현대의 자유주의자들과 불신앙인들이 성경에 나오는 이적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기 보다는 그것을 본 사람들이 착각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 오병이어의 기적은 출애굽 시 광야에서 이스라엘민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같은 의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에게 영혼구원의 구세주 뿐 만이 아니라 백성의 민생고를 해결하는 절대 군주적 카리스마도 보여 주시고 계시다. 이는 삼위일체적 전능자임을 알게 하는 이적이기도 하다.
부활
그런데 만일 한 가지 이적만 역사적인 것으로 주장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 이상의 이적들도 실제로 일어났었다는 것을 지적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 이적은 바로 부활이다. 신빙성이 있는 목격자들이 이미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고 주장한 증거(고전 15:3-8)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 증거의 의미를 바로 지적하는 유일의 설명은 곧 예수께서 이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납득이갈 만한 어떤 대안적인 설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부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일진대 다른 이적들도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첫째로, 그 부활의 이적이 모든 이적들의 가능성을 아주 확고히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연질서 안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활동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부활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적인 답변"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께서 친히 자기가 이적들을 행하신다고 주장하신 바 있다(눅 7:21 이하,11:19).
이 증거는 예수께서 복음서들에 나오는 이적들을 행하셨다는 신빙성이 있는 역사적인 전승에 의해서 확증된다. 확실히 우리는 이적에 관한 기사들을 낱낱이 검토하여 그 순수한 역사적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고 확증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는 보다 많은 자료들이 소개되고 있으나 다른 경우들에 있어서는 단순히 이적에 대한 언급만 나오고 있다. 어느 경우이든 성경 그 자체의 증거들은 이 모든 사건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그리고 분명한 목적이 있는 이적들이었음을 가장 강력하게 확증해주고 있다.
이적들의 목적
신약 이적들의 역사성에 대해서 자주 제기되는 한 가지 중요한 논점은 곧 그 당시의 위대한 인물들에 관하여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하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미신들에 젖어 있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위대한 인물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그와 같은 이야기들을 꾸며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론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제1세기의 용어로 "가장 위대한 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는 자가 뭘 필요가 있었던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실제로 이적들을 얼마든지 행하실 수 있었고 또 행하셨을 것이라고 답변할 수가 있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곧 예수님에 관한 기사들이 다른 인물들에 관한 기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이적들이 지니는 중요성은 그 이적들을 통해서 보여주신 그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있다기 보다는 그 이적들에 부여된 특별한 의의에 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이적들은 그의 단순한 말씀(막 1:27,2:11)이나 접촉(막5:41)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지 마술적인 방법들의 사용을 통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이적들은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눅7:16).
-예수님의 이적들은 고난당하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해주는 것이었다(막1:41,8:2).
-예수님의 이적들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몸과 영혼을 고쳐주실 구원의 때가 오리라는 구약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것이었다(눅 7:22,사29:18-19,35:5-6,61:1).
-예수님의 이적들은 사람들을 예수님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행하여진 것이었다(막9:23이하). 그 이적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리새인들은 그 이적들을 사단의 능력으로 돌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졌다(막 3:22). 그러나 볼 눈이 있는 자들에게는 분명히 그것들이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그의 약속들을 성취하신다는 증표였고 또 그를 믿는 믿음을 일깨워지고 확증해주는 산 증거였다.
이 모든 사실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자신의 이적들에 대하여 적용이 된다. 그것은 또한 초대교회 안에서 일어난 이적들에 대해서도 적용이 된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능력과 비슷한 능력을 나타내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죄수들이 이적적으로 풀려나고, 심지어는 물리적인 심판을 행하는 권능들에 대해서까지 듣고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예수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동일한 능력이 그의 제자들 안에서도 여전히 나타나서 그들의 구원의 메시지를 확증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실재성에 대하여 경고하는 증표들이었다.
부활에 관한 기사들 데이빗 휘튼(DAVID WHEATON)
네 복음서들에 나오는 부활에 관한 기사들을 건성으로 읽으면 그 기사들 가운데 서로 불일치되는 점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면밀히 검토해 보면 그것들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또 표면상 모순점들로 보이는 내용들을 사실상 복음서 저작자들이 초대교회의 서로 다른 출처들에서 그들의 자료를 수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넷 다 근본적으로 동일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무릇 한 사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증인들에게서 증언을 들어본 사람이면 그러한 상황에서 관심사와 배경과 정서적인 특성이 각각 다른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주견에 따라 동일한 사건들을 얼마나 다각적인 면에서 단편적으로 보고 또 서로 다른 점들을 기억하고 있는가를 잘 알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마28:1-10,막16:1-8,눅24:1-12,요20:1-10) : 1380년경의 패널로 크기는 132*97cm 이며 프라하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부 보헤미아의 아우구스티스 수도원 부속 성당에 그려진 제단화의 화로 앞에 비스듬히 놓여 진 석관 위에 붉은 옷을 입은 그리스도가 서 있다. 묘지기를 하던 병사들은 졸고 있는 사람도 있고 부활의 기적에 놀란 눈초리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나무 하나하나와 숲의 풍경 저편에는 별이 반짝이는 붉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자연주의적인 표현과 상징적인 표현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보헤미아적인 신비주의의 세계를 낳고 있다.
빈 무덤을 처음 보았던 주요 증인들은 최근에 정서적으로 심각한 긴장상태에 있었던 일단의 여자들이었다. 그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곧 그 여자들은 그 소식을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각기 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세부사항에 있어서 그 설명들이 달라진 것은 놀랄 일이고 또 그 증거는 어떤 의미에서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차이점들은 복음서 저작자들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출처에서 그들의 증거를 수집하였다는 사실을 암시해주며 이 사실은 네 복음서의 기사들의 전체적인 일치를 더욱더 인상 깊게 만들어주고 있다. 복음서들의 기록에 나오는 사건들은 대게 다음과 같이 간추려 놓을 수가 있다.
성경의 증거
-일단의 여자들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료를 바르기 위하여 무덤에 가다(마28:1,막16:1-2, 눅24:1,10,요20:1 상)
-그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 돌문이 굴려진 것을 발견하다(마28:2-4,막16:3-4,눅24:2,요20:1하).
-그들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체 대신에 그들에게 되어 진 상황을 설명하여주고 또 메시지를 준 천사를 만나다(마28:5-7,막16:5-7, 눅24:3-7).
-그들이 예루살렘에 달려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나 대부분 믿지 아니하다(마28:8, 눅24:8-11,22-23,요20:2).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가 무덤에 달려가서 그것이 비어 있음을 확인하고 그 후 집으로 돌아가다(요20:3-10, 눅24:24 을 보라).
-막달라 마리아가 그 두 제자를 뒤따라 무덤에 가서 그들이 떠난 뒤까지 그곳에 머물다. 이때 예수께서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다(요20:11-18,마28:9,마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바로 그 날에 예수께서 베드로(눅24;34,고전15;5)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눅 24;13-32,막16:12-13)에게 나타나시고 다시 예루살렘에서 도마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요20:19-23,눅24:36-43,막16:14)에게 나타나시다. 이 특주의 범주에 들지 아니한 그 밖의 "나타나심"은 네 복음서들과 사도행전 1장 및 고린도전서 15장에 기록되어 있다. 모든 기사들에서 얻어지는 결론은 두 가지 관점 곧 예수께서는 이제 그의 부활의 몸을 자신의 뜻에 따라 나타낼 수도 있고 숨길 수도 있으시다는 사실과 오직 그를 좇는 자들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운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상의 모순점들
-어떤 여자들이 무덤에 갔는가? 분명히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와 요안나와 "갈릴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온 다른 여자들"(눅23:55)이었다.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만을 골라내어 언급하고 있다.(20:1) 어쩌면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알려준 것이 막달라 마리아였기 때문일 것이다. 20:2에서 막달라 마리아 자신이 자기와 함께 다른 여자들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그러므로 복음서 저작자들은 각기 자기에게 인상적인 자료를 제공해주는 여자들을 골라서 그 이름을 밝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무덤의 돌문은 언제 굴려졌는가? 마가복음 16:3-4과 누가복음 24:2은 여자들이 그 지점에 이르기 전에 이미 굴려져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 28:2-4의 사건도 그들이 이르기 전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고 또 그 결과 파수꾼들이 성으로 돌아간 것이 분명하다(28:11-15에서 그 파수꾼들은 여자들이 무덤에서 돌아가고 있을 때 이미 성내에 들어가 그들의 거짓말을 여기 저기 퍼뜨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곳에 천사들이 몇이나 있었는가? 여자들이 도착했을 때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의 돌문을 굴려낸(마28:2)그 천사는 무덤 안에 들어가서 다른 천사와 함께 있었다(눅 24:4-막달라 마리아 역시 두 천사를 보았다. 요20:12). 마태와 마가는 대언자 역할을 하여 그 여자들의 주의를 끈 천사만을 언급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24:5("두 사람이 이르되")의 복수는 한 천사가 말하고 다른 천사는 옆에서 확증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을 것이다.
-천사들은 무슨 말을 하였는가? 다시 한 번 각 기사들을 종합하여 볼 때 우리로 하여금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너희가 여기 온 이유를 아노라. 예수는 살아나셨음으로 여기 계시지 않느니라. 빈 무덤을 보라. 가서 제자들에게 이르랴. 주께서 갈릴리에서 너희를 만나시리라. 그가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예수님을 처음 본 사람은 누구였는가? 마가복음 16:9은 주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나신 것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요한복음의 기사와 일치된다. 누가복음에는 이것과 상충되는 내용이 없다. 마태복음 28:9에서는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나신다. 이것이 처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그 이야기가 퍼져나갈 때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은 밝혀지고 다른 마리아는 잊혀 졌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마치 다른 복음서 저작자들이 바디매오는 언급하고 또 한 소경은 생략했듯이, 그리고 군대귀신 들린 자만 언급하고 또 다른 귀신 들린 자는 생략했듯이-하지만 마태는 각 경우 모두 둘 다 언급하고 있다).
마태와 마가가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을 기록하고 있고, 누가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신 일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요한복음 21장은 우리를 갈릴리로 데려다 주고 있고 또 마가도 그의 복음서 추신에서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신 일들을 언급하고 있다. 마태와 누가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이 각 저작자의 의도와 구조에 조화되고 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를 처음 시작한 곳-예루살렘-에서 끝맺고 있고 마태는 갈릴리의 한 산에서 하신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으신 왕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선언(28:16-20)으로 더불어 끝맺고 있다.
요한복음(John)
1. 배경
본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 그는 갈릴리 벳세다 사람으로 아버지는 세베데, 어머니는 살로매, 그 형은 야고보로 직업은 어부였다 (눅5:10). 예수의 12사도 중 젊은 자로 예수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요12:23)그는 성질이 급해서 '보아너게'라는 별명이 있었다.
요한:('Iwavnnh", John)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그림설명 / 현존하는 최고의 신약성서 사본의 요한복음 (요18:31-33)의 파피루스부분. 125-150년경.
예수를 가까이 모신 3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중의 한 사람이다.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되기도 하였다(계1:9-10). 그 후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어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시고 살았으며 주후 100년 경 순교가 아닌 자연사를 하였다.
요한복음은 1세기 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이다. 이 복음이 다른 복음보다 맨 나중에 기록되었는데 다른 복음들은 주로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신 사실을 나타내고 있으나 여기서는 주로 유다에서 된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의 생애의 역사적 정확성 보다는 그의 교훈의 종교적 의미를 중요시하고 영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비유는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으나 예수의 참 모습을 그려내는 다음과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다.
(1) 생명의 떡 요6:35
(2) 세상의 빛 요8:129:5
(3) 양의 문 요10:7
(4) 선한 목자 요10:1114
(5) 부활이요, 생명 요11:25
(6) 길, 진리, 생명 요14:6
(7) 참 포도나무 요15:1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공적인 접촉보다 개인적인 대화가 많아 15번이나 대화하신 일이 기록되어있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이 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요20:30-31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증거, 믿음, 생명, 이 세 단어가 특출하다.
먼저 증거는 다음 7가지 표적을 가지고 요한복음 조직의 줄거리를 형성하였으며 각기 다른 예수의 권능의 범위를 설명하고 있다.
- 제 목 - - 구절 - - 권능의 범위-
(1)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1) 요2:1-11. 질(질)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2) 요4:46-54. 공간
(3)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3) 요5:1-9. 시간
(4) 5천명을 먹이심 (4) 요6:1-14. 양(양)
(5) 물 위로 걸으심 (5) 요6:16-21. 자연법칙
(6) 나면서 소경된 사람을 고치심 (6) 요9:1-12. 불행
(7) 나사로를 살리심 (7) 요11:1-46. 죽음
이러한 표적들을 통해서 예수의 초자연적 능력을 나타내셨다. 다음 믿음은 복음의 열쇠가 되는 낱말인데 98번이나 기록되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에게 개인을 완전히 의탁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인데 (요1:12), 예수의 행하신 표적으로 인해서 확신하고 신자들의 믿음은 더욱 굳어지는 것이다.
생명은 복음의 열쇠로 신자들이 그의 구원으로 나누어 받는 것이다. 이것은 영생인데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17:3). 그리스도인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증거, 믿음, 생명은 논리적으로 조직되어 있는데 증거는 하나님의 계시이며, 믿음은 증거에 대한 반응이며, 생명은 믿음의 결과이다.
요한은 예수를 아브라함의 아들이나 아담의 후손으로 나타내지 않고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내려오셨으며(요1:14) 그는 참 인간이시지만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요5:20,요8:54,요10:30,요17:5 등)
이 예수가 죽으신 것은 생명을 빼앗기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유로운 뜻으로 생명을 버렸고(요10:11), 그의 죽으심은 굴욕이 아니라 영광이며(요12:23), 생명의 근원이다(요12:24). 이 죽으심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시게 되었다(요17:1-2).
3. 내용 분해
1. 머 리 말 요1:1-18
2. 중요한 시대 요1:19-4:54
3. 논쟁 시대 요5:1-6:71
4. 충돌 시대 요7:1-11:53
5. 위기 시대 요11:54-12:36
6. 대화 시대 요12:36-17:26
7. 성취 시대 요18:1-20:31
8. 맺 는 말 요21:1-25
4. 요한복음과 서신들과의 관계
1. 서신들 간의 관계
이 서신들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과 함께 같은 그룹 혹은 같은 '학파'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한일서는 전혀 편지의 형식으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신학적인 소책자 혹은 설교로 보는데 비해 요한 이서와 삼서는 분명히 동일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분명한 서신으로 보인다. 또한 요한일서는 익명으로 기록되었는데 이서와 삼서는 구체적으로 장로의 편지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요한일서가 일정한 지역의 여러 교회들에 보내진 편지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비해 요한이서와 삼서는 한 지역의 개체 교회들에게 보내진 구체적인 교회와 대상을 가진 편지이다. 그리고 요한 일서가 요한복음과 훨씬 더 유사하다.
2. 요한 서신들과 요한복음의 관계
요한일서가 어휘와 문체에 있어서 요한복음과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요한일서는 구약 인용문이 없고 "실현된 종말론"이 아닌 "미래적 종말론"을 강조하고 있으며 보혜사가 성령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빛]이 그리스도가 아닌 하나님을 가리키며 예수 죽음의 속죄 적 성격이 강조되며 거짓 교사들이 적그리스도로 규정되고 있다. 이러한 유사점과 차이점은 요한일서와 같은 저자 혹은 같은 학파에 의한 일종의 요한복음 주석이라고 보는 입장으로 또는 바울 서신과 목회서신과의 관계처럼 이해하는 방향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그러나 요한서신을 요한복음보다 후대의 기록으로 보는 데는 문제가 있다) 또 다른 설명 방법은 저자를 다른 사람으로 설정하는 것인데 요한 이서와 삼서는 같은 저자의 기록으로 볼 수밖에 없다.
3. 요한일서의 목적과 특징
요한일서의 기록 목적은 교회 안에 나타난 거짓 교사들을 경고하는데 있다. 이에 따른 보다 적극적인 목적은 거짓 교사들의 유혹으로부터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고 올바로 지도하는 것이었다.
1) 목회적 관심 : 저자는 그의 독자들을 위한 목회적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일차적 관심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기독교 신앙과 생활 가운데 견고히 세우기 위함이다.
2) 논쟁적 관심 : 이 목적은 목회적 관심과 연관이 되어 있다. 즉 이 서신이 교회내의 특수 하고도 긴박한 상황에 의해 쓰여 진 그 당시 상황을 위한 소책자라는 것이다. 저자는 거짓지도자들을 예수의 인격에 대한 신학적 오류를 범한 자, 죄로 인한 하나님과 인간의 절에 대한 윤리적 오류를 범한 자, 형제의 사랑이 없는 사회적 오류를 범한 자로 비판하고 있다. 뒤집어 말한다면 저자는 이 세 가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기독교 신앙의 올바른 척도라고 생각했다고 말할 수 있다.
4. 요한 이서의 목적과 특징
요한 이서도 요한 일서와 마찬가지로 거짓교사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다. 저자는 서로 사랑하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도 거짓교사에 대해서는 사랑도 관용도 베풀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즉 요한이서는 사랑과 관용의 한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5. 요한 삼서의 목적과 특징
요한삼서는 개인에게 보낸 사신의 형태이며 거짓 교사가 아닌 교회 지도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요한 서신들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성격은 요한삼서는 교회가 아직 연합된 조직체로 존재하지 않고 개교회로서 각 지역 지도자들의 지도 아래 운영되고 있을 때의 교회 지도자들 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서신에서는 양들의 영적 성장과 바른 신앙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장로"의 목회적 충정을 볼 수 있다.
5. 요한복음의 분석
1. 공관 복음서와의 비교
가. 공관복음-예수님의 활동이 주로 갈릴리와 그 근처에 치중되어 있다. 예루살렘에 머문 기간이 일 주일 요한복음-예수님의 활동이 처음부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언급되고 있다.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이 세 번 기록되어 있다(요1:13, 요5:1, 요7:10)예루살렘에 체류한 기간이 길다: 장막절(요 7:2), 봉헌절(요10:22),유월절 (요11:55, 요12:1, 요18:28)을 지내심.
나. 공관복음에 없는 이적과 말씀들이 많이 있다.이적들-가나의 혼인잔치(요2:1-12), 베데스다 못가의 치유(요5:1-18),날 때부터의 장님치유(요9:1-12), 나사로를 살린 일(11:38-44)교훈들-니고데모 이야기(3장), 선한 목자(10장), 사마리아여인과의 대화(4장), 생명의 떡(6장), 참 포도나무(15장), 보혜사 성령(14, 16장)
다. 공관복음에서는 이적들 자체가 강조되고 있고, 각자의 독립된 메시지, 곧 능력을 행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든가 하는 각자의 독립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기적이야기들은 설교를 소개하기 위한 일종의 도입 예화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결국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활동의 중심이 이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에 있는 셈이다. 공관복음에서는 단편적인 데 반하여 요한복음에서는 일정한 주제를 갖고 확대된 긴 설교들이 나타난다.
마. 공관복음-천국의 도래를 예언하는 예언자, 율법 문제를 논하는 랍비, 병자를 고쳐 주는 이적 행사자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보여준다.요한복음-하나님이 보내신 계시자,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 공간복음-긴 교훈적 비유들이 나온다.요한복음-이런 형태가 비유가 하나도 없다. 다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시자요, 우리의 구원자로 설명하기 위한 상징적 비유가 몇 개 나타난다.
2. 요한복음의 구조와 내용
(1) 구 조마태복음- 오경적인 구조(왕이신 예수)마가복음- 전반: 이적 이야기. 후반: 수난 이야기누가문서- 예루살렘과 로마로 구성된 지리적 구성요한복음- 전반: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들과 대중적인 이야기체 설교로 구성 후반: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확대된 설교와 수난 설화로 구성
(2)내 용가. 서론 :로고스 론과 세례 요한(요1:1-51)나. "표적의 책"(요2:1-12:50)다. 고별 설교와 교회를 위한 기도(요13:1-17:26) 라. 수난 이야기(요18:1-20:30)마. 부록 :갈릴리의 부활 현현(요21:1-25)
3. 요한복음의 주요 특징들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복음 공관복음의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인데 요한복음의 메시지의 중심은 "계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공관 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는 마치 ~과 같다"란 비유적 표현이 요한복음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나는 ~ 이다"( I am ...)라는 표현으로 예수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진술이 나오고 있다. 요한복음은 한마디로 하나님의아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정체를 나타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의 복음이다. "나는 생명의 ( )이다"-요6:35"나는 생명의 ( )이다"-요8:12"나는 ( ) 이다"-요10:9"나는 ( )이다"-요10:11"나는 ( )이요 ( )이다-요11:25"나는 ( )이요 ( )요 ( )이다"-요14;6"나는 참 ( )이다"-요15:1
(2) 성령의 복음 누가복음과 마찬가지로 요한복음도 성령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있다. 복음서 가운데 요한복음만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강조한다(3:5). 또한 요한복음서만이 "하나님은 영이시다"(4:24)고 말하고 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님을 강조한다(6:63). 요한복음서만이 성령에게 "보혜사"(14:16, 14:26, 15:26, 16:6,13), 혹은 "진리의 영"(14:17, 15:13,26)이란 특별한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부활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20:22)고 명령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서 요한복음을 "성령의 복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14:8), 제자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며(16:13),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한다(14:26). 이런 특징을 지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3) 사랑의 복음 사랑은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사랑이란 단어가 다른 복음서보다도 많이 사용되었다(마-10, 막-6+1, 눅-10+1, 요-20+21). 요한복음은 사랑이 기독교윤리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 13장 35절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 너희가 내 제자인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에는 "새 계명"이 주어진다. "서로 사랑하라"(13:34, 15:12,17). 이는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대조된다. 왜 그럴까?
(4) 세례 요한에 대한 부정적 이해 세례요한은 참 빛(요1:8)이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요, 하나님의 아들(요1:34) 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거자"일 뿐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1:27) 고백한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언급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5)공동체중심주의적인 복음 요한복음에는 교회생활이나 교회 조직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와 신자간의 개인적인 신앙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또한 마 28:19과 같은 세례를 주라는 명령도 없고,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은 이야기도 없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기자는 당시 교회 내에서 성례전을 구원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형식주의와 예식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피하여 외적인 예식보다 내적인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요한복음에만 12명의 제자이름이 소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12제자를 부르는 "부르심"이야기도 없고, 제자들에게 특별한 사명과 권위를 주어 내보내는 "파송"이야기도 없다. 요한복음의 강조점은 성령에 의해 새로 거듭나는 데에 있다.
4 저자 / 기록연대 / 장소
저자는 일세기 말경에 살았던 크리스찬이며,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으며,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 우리에게 전해졌다. 기록 시기는 영지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점과 유대인들에 의한 기독교인들의 내쫓김(9:22, 12:42, 16:2)이 있는 점들을 고려할 때 90-10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기록장소로 현재 시리아로 본다.
5. 지침
요한복음 실현된 종말론을 말하고 있다. 심판을 말하나 현재적이다.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으며(요5:24)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3:18). 심판은 세상에 오신 "빛"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며(3:19), 그를 믿는 자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5:24). 요한은 마가와 누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 사실은 입증한다. 언어적으로 꼭 같은 표현의 단어를 사용한다(요13장 2, 27절 =눅 22:3/ 요13:38=눅 22:34/ 요18:10=눅22:30). 요한에는 전도적인 성격이 전혀 결여되어 있으며, 말씀 안에 머물것을 당부하는 것(요8:31; 요6:67-68)을 보면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견고히 하려는 데 목적을 둔다고 볼 수 있다.
요한이 새로운 형식의 복음을 썼는가? 이는 상활이 달라졌던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누구인가를 반복할 수 없고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예수를 새롭게 이해해야 하게 했다. 이 요한의 목적은 예수가 누구였는가를 말하는 데 있지 않고 예수는 지금의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현존하느냐에 있다.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떡과 물(요4:15)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동시에 그 자신이 바로 물이다. 나는 ~이다란 명제는 생명에 대한, 영원한 참 생명에 대한 인간의 질문을 위한 대답이다. 이 명제의 의미는 예수 안에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 있고 그 분 안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 참된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의 복음이다.
요한의 신앙공동체는 제도적인 초대 교회의 주류로부터 벗어난 종파적 운동체였기에 기성의 교회 권위 대신 오직 성령의 권위에만 의존하려 했기에 성령을 권위를 의존하려 했다. 종파적 공동체에서 신자들 간의 굳은 결속을 강조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상호간의 사랑을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면으로는 요한의 이런 사랑의 요구가현실적으로 실제적인 요구로 보여진다.
6. 헤롯 가문 블레이클록(E.M.BLAIKLOCK)
B.C. 63년 동방이 로마제국에 편입되었을 때 폼페이는 힐카누스라는 한 제사장을 세워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유대와 베레아를 다스리게 하였다. 힐카누스는 교활한 신하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그 신하는 이두매사람 안티파테르였다. 안티파테르는 자기의 세력을 그의 가족에게 유리하도록 현명하게 사용할 줄 아는 자였다. 그는 두 아들 파사엘과 헤롯을 요직에 앉혔다. B.C. 3년에 안티파테르가 살해당했을 때 그 두 청년은 힐카누스의 조정에 대신으로서 공동 참예할 수 있게 되었다.
파사엘은 국경을 진정시키고자 했던 율리오 가이사(JULIUS CAESAR)가 찬탈당한 뒤에 있은 파르디아 족의 침입 시에 곧 희생당하고 말았다. 헤롯은 로마로 도망하여 옥타비안(미래의 아우구스투스)에게 큰 감명을 끼쳐서 팔레스타인을 회복시키라는 명령을 받아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는 이 명령을 B.C. 39-36년 정도에 수행하였다. 그는 34년간 로마를 위하여 팔레스타인의 행정을 맡아 성공적으로 관장하였고 그 동안에 가이사랴에 로마의 항구와 기지를 건설하고 사마리아에 아우구스투스에게 돌리는 신전을 세우는 등 공적을 쌓았다.
도나텔로의 <헤롯의 향연> : 세례반의 부조 금방청동 60*60cm 시에나의 세례당 소장.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에 대성전을 건축함으로써 에돔의 피가 섞인 자신을 증오하는 유대인들과 화해를 시도하였다. 그는 뛰어난 외교가였다. 그는 옛 귀족정치를 그 귀족 중 하나인 마리암네와 결혼하였고 관직에 귀족제도를 두었다. 그는 친 헤롯 유대당 곧 "헤롯당"을 신설하여 그의 왕가에 충성하도록 유도하였고, 애굽의 톨레미 왕조를 모방하여 관료 제도를 세웠으며, 용병으로 편성한 군대와 산성과 요새를 세워(그 중 하나가 마사다였다) 그의 권세의 안전을 꾀하였다. 위태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그가 치룬 희생은 그의 가족 안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살인을 불러 일으켰으며 끝내는 그로 하여금 피해망상증 환자가 되게 만들었다. 이 자가 바로 예수님 탄생 당시의 유대 왕 헤롯이었다. 새 "경쟁자"에 대한 헤롯의 질투와 베들레헴에서 어린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은 우리가 그의 성격에 관하여 아는 바와 일치된다.
안티파테르
파사엘 헤롯시대
아켈라오 헤롯안티파스 빌립 아리스토불루스
헤롯 아그립바 I세
헤롯 아그립바 II세
헤롯의 뜻은 그가 그처럼 오랫동안, 그처럼 능란하게 그처럼 무자비하게 다스려오던 나라를 분할하는 것이었다. 사마리아 여자 말다케에게서 난 아들 아켈라오는 가장 좋은 몫인 유대와 이두매를 차지하였다. 같은 어머니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베레아를 받았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하는 유대 여자에게서 난 아들 빌립은 이두래와 드라고닛과 그 주변의 갈릴리 북동편 땅을 받았다. 재능이 없이 아버지의 악한 면만을 물려받은 아켈라오는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혼란을 잔인하게 진압시켰다. 그 결과 더 크고 광범위한 폭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끝내는 수리아 총독 바루스의 강력한 개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아켈라오의 우매한 통치는 A.D. 6년까지 계속 되다가 유대인의 항거를 인하여 추방당함으로써 종식되었다. 유대는 총독의 지배하에 들어갔다(총독은 로마 당국의 직속 집정관이었다).
한편 헤롯 안티파테르(안티파스)는 그의 아버지만큼이나 오래도록 그의 권좌에 앉아 있었다. 디베료가 황제의 위에 있을 동안 헤로디아의 외교적인 솜씨가 그의 꼭두각시 통치를 지속케 해주었다. 그러나 안티파스는 노한 칼리굴라를 오해하였다. 왕의 칭호를 구한 그는 폐위당하고 유배되어 악명 높은 헤로디아와 더불어 호된 고생을 하였다. 이 자가 바로 세례요한을 옥에 가두었다가 죽인 헤롯이었다. 그는 또한 빌라도가 재판 중에 그에게로 보낸 예수님을 잠시 대면한 일도 있다.
첫 헤롯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I세는 로마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칼리굴라를 더 잘 다루었고 그리하여 세 형제 중 가장 훌륭했던 빌립이 죽었을 때 그 자리를 얻어낼 수가 있었다. 안티파스가 유배당했을 때 갈릴리와 베레아가 그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A.D. 41년에 아그립바 I세는 글라우디오 황제에게서 그의 할아버지가 다스리던 전 영토를 받았다. 이 자가 바로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헤롯이다. 그는 A.D.44년에 34세의 나이로 급사하였고 그리하여 팔레스타인은 완전히 로마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아그립바 I세는 10대의 아들을 남겼는데 그 아들은 A.D. 48년에 글라우디오 황제에 의해서 갈기스의 왕으로 세움을 입었다.A.D. 53년에 글라우디오는 분봉왕 빌립과 루사니아스의 영토에 새 성읍 디베랴를 포함하는 갈릴리 서편지역과 함께 이 지역 일대를 덧붙여 주었다. 그러한 영토의 확대편입은 왕의 칭호를 동반하였고 따라서 A.D.53년에 아그립바 I세인 아들은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인 아그립바 II세가 되었다. 그는 사도행전 25장의 놀라운 이야기에서만 나타난다. 거기서 그는 총독 베스도의 손님으로서 바울의 변증을 들었다.
※ 칼리굴라:Caligula(인명)
[라,영] Caligula [본명] Gaius Julius Caesar Germanicus 로마황제(37-41재위) [칼리굴라]라는 이름은 병사들이 붙인 별명으로, 젊었을 때 그가 신고 있던 [군대화]라는 뜻이 있다. 처음 선한 황제로서 영접되었으나, 즉위 수개월 후의 중환이래 성격이 일변하여, 잔인과 낭비로 뭇 사람에 증오되고, 또한 자기의 신성을 주장하기에 이르러, 애굽에서 살해되었다(궁전에서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는 헤롯대왕의 손자 헤롯아그립바1세 (Herod Agrippa 후 41-44 재위)를 팔레스티나 북부의 분봉 왕(영주)로 삼고, [왕]의 칭호를 주었다
사도행전(Acts)
1. 배경
4복음서가 먼저 나온 후에 역사적인 사도행전이 뒤 따랐다. 이 책은 예수의 후계자인 사도들의 환상도, 이론도, 또는 사색도 아니며 사도행전이라는 이 책의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저들이 실제로 행동해서 이루어 놓은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사도행전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에 의하여 교회가 설립되고 그 성령의 활동으로 교회가 로마로 번져나간 사실이다. 여기의 주요 인물은 베드로와 바울이며 대체로 살펴보면 바울의 사적이 6분지 3, 베드로의 사적이 6분지 2, 그 밖의 사도들의 사적이 6분지 1에 해당한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이다. 그는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같은 인물인 데오빌로에게 보내었다(누가1:1-4, 행1:1-2). 누가는 바울이 전도여행 할 때 동반자였다(행16:10-18). 바울은 누가를 사랑받는 의원 (골4:14)이라고 하였는데 사도행전에는 의학적인 술어가 사용되어 있다. 누가는 아마 63년 경 로마에서 기록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사도행전의 요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하신 말씀이다.
그림설명 / 성령의 강림 : 캔버스 유화. 341*174cm 치비코 박물관 소장.
사도행전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12:까지는 베드로의 활동사요, 행13:-28:까지는 바울의 활동사이다. 첫 복음의 청중은 유대인이었으나 행10:-12:에서 복음은 이방인에게도 증거 되기 시작했다 행13:부터는 복음은 세계로 퍼지고 있다. 유대인에게 전한베드로의 메시지에서 두드러진 말은 회개하는 것이며(행2:37-38) 이방인에게 전한 바울의 말은 믿으라(행16:30-31)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 책을 가리켜 말하기를 성령의 행적이라고 하였다.이 말과 같이 이 책의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성령의 역사의 결과로 예수의 제자들이 행한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증인의 행전이라고 하였다. 사도들이 행한 사적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저들을 통하여 하신 일을 증거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과 함께 증거가 있었음으로 해서 처음에 미미하게 시작된 복음운동이 불과 30년 동안에 로마 제국의 중심지 까지 이르는 놀라운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초대교인들이 증거 한 중심문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이것은 바울을 회개시킨 진리 이며 바울이 전한 복음의 힘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지만 초대교인들의 증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아직도 살아 계시다는 것이다.
3. 내용 분해
1. 예루살렘에서의 증거 행1:1-8:3
2. 사마리아에서의 증거 행8:4-12:25
3. 땅 끝까지 이르러 증거 행13:1-28:31
1) 바울의 1차 여행 행13:1-15:35
2) 바울의 2차 여행 행15:36-18:22
3) 바울의 3차 여행 행18:23-21:14
4) 바울의 감금 생활 행21:15-26:32
5) 로마의 바울 행27:1-28:31
3. 신약 시대와 역사 블레이클룩(E.M.BLAIKLOCK)
신약성경은 그 뒤에 일어날 모든 역사의 과정을 바꾸어 놓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예수님의 활동하시던 해들을 서술하고 있는 네 복음서는 로마의 가장 소란스러운 주의 여러 사회계층을 배경으로 하여 로마제국의 행정력을 강조하고 있고 또 A.D.66년의 가장 끔찍했던 로마의 전쟁으로 이끌어간 상황을 분명히 지적해주고 있다.
사도행전은 그 주제를 이어나간다. 사도행전은 교육을 받은 헬라인이요 타고난 인류의 역사가인 누가에 의해서 기록된 책으로서 세계를 바꾸어 놓은 복음운동의 승리적인 확산을 보여주고 있다. 그 운동은 최초의 유럽인으로 불리어야 마땅할 교육받은 랍비인 바울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는 헬라문학과 철학사상에 정통한(아레오바고 강연이 입증해주듯이)유대인이요, 또한 그의 복음화계획이 보여주듯이 로마제국의 가치와 권력과 중요성 및 로마의 평화가 지니는 의미를 철저히 인식한 로마의 한 시민이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오늘날 터키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하나의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하는 총독부가 설치되었던 로마 도시였다. 바울은 그의 통상적인 전도 전략에 따라 주요 지역의 중심부로 발길을 돌렸다. 사진에서 보는 것은 성내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설치한 수도 교각으로 오늘날에는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누가의 글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고고학이 보여주었듯이 그 신뢰도를 확인할 수가 있다. 그는 아주 정확성을 가진 사람으로 판명된다. 그리고 에베소와 고린도가 생명을 얻은 사실을 보라. 개개의 낱말들을 살펴보라. 예를 들면, 에베소의 폭동에 관한 기사에는 '총독들'이라는 복수명사가 나온다. 또 설명되어 나오는 세세한 역사적 사실..등을 찾아보라. 옛적의 사실들로 일관된 바울의 서신들은 마치 역사적으로 예증되고 있는 듯하다. 타락한 국제도시요, 사이비철학이 난무하고 여러 나라 말을 사용하며, 무질서하고 시비를 좋아하며, 논쟁의 지배를 받던 고린도는 그 잡음이 많던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소생된다. 그 곳의 들떠 있는 정신 상태와 도시의 악습이 교회 안에까지 스며들어서 그러한 결과가 빚어진 것이었다.
또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다채로운 상징들로 가득 차 있는데 특히 이 시대가 그것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한 지방의 철저한 적대자의 눈에 비친 로마, 곧 포학하고. 피에 취하고, 미친 듯이 박해를 일삼으며.. 끝내는 멸망하게 될 로마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무릇 신약성경의 문맥과 그 배경을 아는 사람은 AD1세기의 사상과 사회와 문제들과 시대정신을 폭넓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갖고 있다. 그 안에서 발생 중에 있는 폭풍우들-예를 들면,대대적인 유대인의 반란을 들여다 볼 수 가 있다. 재난의 전초 적 단계인 행정적인 실수들이 선명히 떠오르고 있다. 꼭두각시 왕들의 어설픈 통치와 억압적인 법률의 제정, 시대착오적인 갖가지 시민법, 그 변경의 생활(루스드라의 생활), 철학적인 분파들, 여러 공동체들, 그리고 다가오는 대격변의 분명한 징후들을 신약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인 문서들을 집대성한 책으로서 신약성경은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4. 신약성경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 콜린 헤머(COLIN HEMER)
1,헬라적인 영향
2.로마: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3.하나님의 때
4.팔레스타인의 통치자들
5.정치적 긴장
6.로마 세계의 복음 위기와 핍박
바사제국은 알렉산더대제(B.C. 336-323)의 극적인 정복으로 몰락하였다. 알렉산더는 헬라와 동방의 문화를 결합시켜서 하나로 만드는 데에 역점을 두었고 그리하여 그의 시대 이후로 헬라의 영향이 동부 지중해 연안에 퍼지게 되었다. 알렉산더대제가 갑자기 요절한 뒤로 그의 방대한 영토는 여럿으로 나뉘어졌다. 그의 휘하 장군이었던 톨레미는 애굽을 차지한 후 팔레스타인은 전략상 중요한 지역이었으나 종교상의 문제들에 있어서는 상당한 자치권을 허용하였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의 새 수도의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 실제로 이주하였고 또 그들의 공동체는 화려하고 성공적인 그 도시에서 정치적으로 제한된 권리들을 부여받았다.
1.헬라적인 영향
그 뒤에 이어진 전시대는 자주 헬레니즘시대(Hellen = "Greek")를 불린다. 헬라인의 코이네("공통")언어는 국제어가 되었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한 "흩어진"(이주한) 유대인들이 이 언어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이 그곳에서 완성되었는데 본래 톨레미 II세가 그 일을 위촉하였다고 전하여지고 있으며 BC 2세기 중엽에 완역되었다.
헬리니즘 운동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강력히 전개되었다. 하지만 하시딤(경건한 자들)과 후대의 바리새인들은 유대 율법에 헌신한다는 명분으로 헬라의 영향에 항거하였다.
톨레미 왕조의 세력이 기울자 팔레스타인은 B.C. 200년에 결국 경쟁적인 수리아의 마게도냐 왕조인 셀류키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III세("대제")에게 넘어갔다. 셀류키드 왕조는 처음에 유대의 제도들을 존중하였다. 그러나 안티오쿠스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소아시아와 헬라에서의 그의 야망들은 신흥 로마 세력과의 충돌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A.D.190년 서부 소아시아의 마그네시아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고 큰 영토를 넘겨주었으며 막대한 벌과금을 지불하였다. 그리하여 로마는 동방의 세력이 되었다.
안티오쿠스 IV세 에피파네스("신이 나타나다" B.C.175-164년)는 그의 왕국의 운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유대인 당파들 간의 음모들을 이용하여 유대인들에게 헬라 문화를 강요하고 또 이교의 제단과 제사를 예루살렘 성전 안에 들여 놓게 하였다.
이 같은 처사는 폭력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유대의 애국자들은 제사장 맛타디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들을 차례로 지도자로 삼고 투쟁하였다. 그 가족은 한데 묶어서 마카비 가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카비 가문의 명칭은 아버지가 죽고 나서 처음 지도권을 쥔 셋째 아들 유다마카비우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오랜 투쟁 끝에 그 형제들은 그들의 백성을 위한 신앙의 자유를 쟁취하였고 결국에 가서는 실제적으로 독립된 유대국가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이 국가는 마카비 가문의 대제사장들이 대를 이어 통치하였다. 이 통치자들은 그 왕조의 이름인 하스모네아인들로 알려지고 있다. 후에 그들은 "왕"의 칭호로 불리어졌다. 그들은 로마와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면서 북쪽으로 사마리아와 갈릴리를 정복하고 B.C. 63년까지 그 지역의 실권자로 남아 있었다. 그 해에 동방의 로마사령과 폼페이는 왕조의 한 싸움에 셀류키드 왕조의 영토를 새로 조직한 로마의 수리아 주에 편입시켰다.
2.로마: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로마 정부 자체는 사회분쟁과 당파싸움으로 깊이 나뉘어져 있었다. 자치행정제도는 방대한 정복자들의 통치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기에 이르렀다. 일련의 로마 내전들이 동방 도처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가이사(Julius Caesar)는 폼페이를 치고 B.C. 44년 공화주의자들에게 살해될 때까지 독재자로 군림하였다. 이제 안토니와 옥타비안이 주도하게 된 그의 당은 브루투스와 갓시우스가 주도하던 공화주의자들을 B.C. 42년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타도하였다. 후에 안토니와 옥타비안이 서로 패권다툼을 한 끝에 옥타비안이 B.C. 31년 헬라 서부의 악티움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로마 세계의 새 주인은 아직 청년인 대 가이사(Julius Caesar)의 조카의 아들이자 수양아들 옥타비안이었다. 원로원은 그에게 "아구스도"("Augustus")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그는 신중을 기해서 엄한 법률준수를 내세워 그의 권력의 범위를 위장하였다. 그는 공화정부를 회복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실상은 우리가 "제국"이라고 불러야만 할 정부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이론상 세습적인 군주정치의 개념은 로마인들에게 상극이었다. 그와 및 그의 바로 다음 후계자들은 지중해 세계 전체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A.D. 14년에 죽었다.
신약성경 저작자들 가운데 오직 누가만 로마 황제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의 언급들은 우리에게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건들의 대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준다. 예수께서는 아구스도 때에 탄생하셨다(눅2:1). 세례요한의 전파(눅 3:1-2)와 및 예수님의 사역 죽으심, 부활, 승천은 디베료 치하에서 일어났다(A.D.14-37년)바울의 여행들은 대부분 글라우디오(A.D. 41-54년, 행 11:28과 18:2에 언급된 황제)와 네로(A.D.54-68 년 바울이 호소한 가이사 황제)의 통치 때에 이루어졌다. 바울은 A.D.60년경에 로마에 도착하였다.
3.하나님의 때
예수께서 오시고 복음이 전파할 하나님의 때가 차 있었다. 아구스도는 그의 세계에서 전쟁을 종식시켰다. 거대한 신설 도로망이 문명세계를 하나로 묶어서 로마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전 어느 때보다도 의사소통이 쉬워졌다. 라틴어와 헬라어는 공식 언어가 되었다. 동방 도처에서는 헬라어가 사용되었다. 헬라어는 이미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의 언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신약성경의 언어가 될 것이었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약속된 메시야에 대한 열렬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고 또 이방인들 중에는 다소 불분명 하나 개인적인 "구원"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 로마제국의 전략적인 중심지들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사회들은 바울과 그 밖의 사람들의 선교를 위한 미래의 청중들을 쉽게 확보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4.팔레스타인의 통치자들
복음서들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정치배경은 로마의 정복 이전의 팔레스타인 지배자였던 안티파텔이라 하는 잔인무도한 혼혈유대인 모험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 그의 아들 헤롯은 이어지는 로마 통치자들의 환심을 샀고 그 결과 헤롯("대제")은 로마 당국에 의해서 유대인의 왕이 되었다. 그는 B.C. 37- B.C. 4년 어간에 유대를 통치하였고 예수께서는 그가 죽기 직전에 탄생하셨다(마2장, 눅1:5).
그가 죽고 나서 그의 왕국은 세 아들들에게 분배되었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통치자 헤롯 아켈라오(마2:22)는 A.D. 6년에 폐위되었고 그의 영토는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들어갔다. 로마 당국은 수리아 총독 밑에 속하는 "집정관" 혹은 총독을 세워 팔레스타인을 다스리게 하였다. 갈릴리와 및 다른 영토는 대부분 헤롯 가문의 왕들이 다스렸다. 갈릴리의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B.C 4-A.D.39년)는 세례요한을 죽인 자였다(마14장과 그 밖의 병행 기사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헤롯 아그립바 I세(A.D 44년 사망. 행12장)에 관한 내용을 대하게 되는데 그의 통치하에서 팔레스타인 전체가 잠시 다시 한 번 통일이 되었다. 그의 아들 헤롯 아그립바 II세(행 25-26장)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집정관 혹은 총독은 빌라도이다(A.D 26-36년). 그는 다른 자료들에서도 유대인들의 미움을 살 일들을 많이 한 요령 있고 난폭한 자로 알려지고 있다. 뒤에 바울은 벨릭스와 베스도 총독 앞에 선 일이 있다(행 23-26장).
5.정치적 긴장
팔레스타인은 정복자의 하나이어서 강력한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민족주의자들은 자기 백성을 로마인들에게서 해방시켜 줄 정치적인 메시야를 찾았다. 특히 소란했던 갈릴리에서도 자칭 메시야들이 많이 나타났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열심당은 로마에 세금 바치는 것을 거부하였다. 한편 대 제사장들과 그들의 사두개파 추종자들은 로마인들과 손을 잡았다. 특히 안나스와 그의 가족은 그들의 지위를 보장해준 로마 당국자들과 영합하여 기득이권을 얻었다. 헤롯 가문도 역시 그들의 지위를 로마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리들"과 그들의 앞잡이들은 로마를 위하여 동족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과정에서 부정축제를 일삼았다.
예수께서 민족주의 노선의 지도자 역할을 맡아주실 것으로 기대하였다가 그가 그들의 계획에 아무 관심도 표명하지 않으시자 물러가버린 사람들도 분명히 많았다(요6:15,66).그러나 전반적인 정치상황의 긴장은 예수님을 재판할 때의 계략에서 나타났다. 빌라도는 그의 죄수에 대한 기소내용의 가상적인 암시로 말미암아 강요된 행동을 취한 것 뿐이었다.
6.로마 세계의 복음 위기와 핍박
그 시대의 역사는 너무나 자주 로마 황실의 사건들만을 위주로 해서 살펴온 감이 있다. 사도행전은 지방의 생활 및 행정에 있어서 무시되었던 국면들을 보여 주는 아주 중요한 문서의 하나로서 그 본래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거기서 우리는 지방의 총독들과 예속된 왕들과 헬라 도시의 행정관들의 면모를 생생하게 엿보게 된다. 상당한 양의 관련기사가 나오는 소아시아 땅은 그 시대 헬라문명의 실제적인 중심지였다. 또 그곳은 이방인 기독교의 전략적 중심지였다. 로마는 헬라적인 시민생활의 제도들을 통해서 이 지역을 움직여 나아갔고 또 한편으로는 동양사상에 일치되는 통치자 숭배를 받아들였고 결국에 가서는 그것을 충성의 유대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전략적인 도시들에는 로마 당국에 의해서 보증을 받는 특권을 가진 부요한 유대인 사회들이 있었다.
다소 사람 바울은 유대인인 동시에 헬라인이요 로마인으로서 인종과 문화의 장벽들을 넘어서 복음을 전하기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었다. 우리는 대로들을 따라서 그가 지났던 길을 추적할 수가 있다. 또 그가 청중들 중에서 개인을 택하여 접근하는 방법을 채택한 사실도 찾아볼 수가 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다양한 지방의 제도들-에베소의 "서기장" 데살로니가의 "읍장들"(A.V.는 "그 성의 통치자들") 아덴의 "아레오바고"혹은 "군신의 언덕"등-을 아주 정확히 언급하고 있다. 로마 시민들의 "식민지"로서의 신분에 대한 빌립보의 교만이 분명히 그리고 풍자적으로 지적되고 있다(행 16:12,20-21,37-39, R.V.의 빌3:20과 비교하여 보라). 이 같은 유의 수많은 세부사항들은 이 성읍들에서 나온 돌비들에 새겨진 그 당시의 비문들에 의해서 확증이 된다.
에베소의 이 극장은 사도행전 19장에 아주 극적으로 서술되고 있는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 대한 군중의 반대 시위 현장이었다. 사해동포주의자인 바울은 로마의 제도들 안에서 복음에 대한 보호와 도움을 발견하였다. 유대교는 메시야적인 성취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다. 고린도에서 이 견해는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그것은 첫 시도로서 잠정적인 법률적 판례의 하나였다. 바울은 새 로마총독 갈리오 앞에서 율법에 어긋나는 종교를 가르치는 일로 고소당하였다(행18:13).미래의 황제 네로의 가정교사요 유명한 철학자인 세네카의 형제였던 갈리오는 감명을 받지 못하였다. 그의 보기에 그 전체의 일은 유대 종파의 신학에 관한 문제였고 또 별 흥미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소를 기각함으로써 그는 암시적으로 바울의 메시지가 다른 형태의 유대교와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되었다. 이 사건은 필시 A.D. 52년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스의 델피에서 나온 비문을 갈리오를 언급하고 있고 또 바울의 생애에 대한 연대기를 작성하는 데에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바울은 그가 나면서부터 얻은 로마 시민권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였다. 이것은 그 시대의 지방 유대인에게는 특별한 권리였다. 팔레스타인에서 긴장이 고조되어가고 있을 때 그는 황제에게 호소함으로써 그의 최고 권리를 행사하였다. 그는 결국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도착하였으나 분명히 무죄석방이 될 것과 네로의 최고법정 앞에서 복음이 변호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사도행전의 기사는 우리에게 그 결과를 들려주지 않고 갑자기 끝을 맺는다.
위기와 핍박
그 다음 해들의 역사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A.D. 64년에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로마시의 태반을 파괴한 대 화재의 범인들로 몰아세워 속죄의 염소를 삼았다. 그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온갖 잔인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처형했다. 그러나 이것은 심사숙고한 정책의 일부가 아니라 이성을 잃은 그리고 아마도 아주 집중적인 감정의 폭발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팔레스타인에서는 사건들이 하나의 비극적인 절정을 향해서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후임총독들의 실책과 열심당에 의해서 고무된 반항이 로마에 대한 필사적인 반란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A.D.66-70년). 로마 사령관 베스파시안은 A.D.69년에 황제로 선언되었고 그의 아들 티투스로 하여금 그의 원정을 끝내게 하였다. A.D. 70년에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헤롯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을 초토화시켰다.
그 재난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다 같이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였다. 두 신앙은 훨씬 더 결정적으로 분리되었다. 유대교는 그 특권의 일부를 상실하였고 기독교는 새로운 문제들과 다시 고개를 든 공식적인 핍박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후기에 몇몇 신약성경이 예루살렘 멸망과 초기의 핍박에 대해서 갖는 관계는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적어도 요한계시록은 베스파시안의 다른 아들인 도미티안 황제(A.D.81-96년)의 통치 말년에 속하는 것으로 믿을 만한 강력한 근거들이 있다. 로마는 이제 기독교의 보호자가 아니라 치명적인 대적이 되었다. 도미티안은 자신을 "주"와 "하나님"(황제숭배사상 강조)으로 예배하도록 하여 충성의 여부를 시험하도록 명령하였다. 백성은 그리스도와 가이사 중 어느 한편을 택해야 할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5. 초대교회의 설교 마이클 그린 (MICHAEL GREEN)
초대교회의 설교에 있어서 참으로 놀라운 일은 그것이 종교적인 의무들이나 도덕적인 표준들 혹은 어떤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물,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잘 알고자 하였고 더 나아가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예수님을 확실히 전하고자 하였다. 공통적인 신앙과 다양한 제시는 그들이 이룩한 성공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설교내용과 능력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었고 또 수년간 그를 좇은 경험이 있었다. 그가 목수로 성장하신 후 위대한 선생이 되셨고 친히 그들의 구주가 되신 일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에 있어서 광범하게 통일된 양식을 갖고 있었던 점이 지적되어 왔다. 그 양식은 대개 다음과 같다. "옛적의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는 다윗 집에서 나셨고 우리를 이 세상의 죄악에서 구하시기 위하여 성경대로 죽으셨다. 그는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성경이 예언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산자와 죽은 자의 주로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는 그를 좇는 자들에게 그의 주권에 보증으로서 그리고 그가 마지막 날에 사람들의 심판 주와 구주로 재림하실 것에 대한 예비조처로서 그의 성령을 보내셨다."
설교를 하는 마가 : 틴토레토 작품인 <마가의 기적>과 함께 베네치아의 스콜라 그란데의 산 마르코의 방을 장식하고 있었던 이 거대한 그림은 벨리니 형제의 공동작품이다. 이 그림은 알렉산드리아 유페이아 성당 앞의 광장에서 마가가 설교를 하고 있는 장면으로 석탑. 회교사원의 첨탑, 아라비아 고유의 복장. 기린. 낙타 등 여러 가지 동방적인 요소들이 광장의 분위기를 드높이고 있다. 캔버스 유화 347*770cm.
이 같은 설교양식은 이미 초기부터 발전되어 온 것이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설교나 찬송가, 혹은 서신서들에 구체화되어 있는 신조들의 단편들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빌립보서 2:4-11은 매우 이른 시기의 것이다. 어쩌면 아람어를 말하던 교회에서 유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약성경의 다른 것처럼 그것도 교리적으로 앞선 것이다. 최초기의 신앙에 관한 그 밖의 단편적인 진술들은 고린도전서 15:3-4,로마서 1:3-4,디모데전서 3:16과 같은 구절들에 보존되어 있다.
강조점이 약간씩 다른 사실도 역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유대인들에게 말할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신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이 강조되고 있다.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과 성결한 삶도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독자나 청중이 아주 이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을 때에는 옛적 사람들이 아주 두려워했던 귀신들의 세력으로부터 구원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께서 구약 계시의 절정인 그리스도 곧 구원자 메시야로 제시된다. 비유대인들에게는 그가 모든 악의 세력을 지배하는 주와 정복자로 제시된다.
하나님의 구약 계시에 대한 배경이 없는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할 때에는 초대교회 선교사들을 훨씬 더 뒤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해야 했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두 가지 예를 보여주는데 그 하나는 미개한 백성에 대한 설교(14:15-17)요, 다른 하나는 개화된 백성에 대한 설교(17:22-31)이다. 두 경우 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우상숭배의 맹점을 지적하였으며 자연계시(창조주시요 보존자이신 하나님)의 빛을 통하여 그리스도안에 있는 특별계시를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 힘썼다. 이 같은 방법은 그보다 앞선 시대에 유대인들이 부도덕하고 우상숭배에 젖어 있으나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이방세계에 이스라엘의 윤리적인 유일신교를 전할 때 사용한 것이었다. 그것은 특별한 기독교의 선언에 하나의 유용한 서론을 이루고 있었고 또 수 세기 동안 주요 접근방법으로 이용되었다.
유대인에게 설교하든 이방인에게 설교하든 간에 초대교회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신 일만 아니라 그가 제공하신 것(성령으로 말미암은 새 삶과 죄 사함)과 그가 요구하시는 것(회개와 믿음과 실천)까지도 강조하였다. 이것은 세례와 믿음과 성령을 받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다.
사도행전은 이 초대교회 설교의 깊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신들과 같이 선생들과 같이, 토론하는 자와 같이 행동하였음을 암시하는 낱말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들은 이 기쁜 소식(복음)을 논의하고 주장하였으며 그것에 대하여 증거하고 또 그것이 구약성경과 얼마나 정확히 일치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일정한 범주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만의 일이 아니었다. 여자들은 빨래터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철학자들은 길 모퉁이에서 그것을 논의하였으며, 죄수들은 옥중의 동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온갖 문화와 계층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었다(고전 6:9-11).또 고난과 죽음까지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쁘게 당하는 자세를 통해서 그것을 확증하였다(행 20:22-24).
그 새로운 메시지가 힘 있게 증거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특질들에 있었다. 그들의 사회적, 개인적 삶에 나타난 성령의 권능은 그들의 메시지를 뒷받침해 주었다. 그들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 중에는 또한 지적인 요인도 있었다. 그들은 여러 다양한 필요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갖가지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법을 찾아내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편협한 사람들이 다른 종교의 통찰력도 마찬가지로 참된 것으로서 새 믿음과 융합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기독교는 유대교처럼 이교 세계의 혼합주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대교와 달리 우리가 앞서 살펴 본 바 공통된 주요 양식과 내용만큼은 그대로 유지하되 믿음을 표현하고 제시하는 데에 있어서는 크게 융통성을 보일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는 유대사회에서는 의미가 깊은 것일 수 있으나 다른 곳에서는 정치적으로 불이 붙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설교자들은 예수님의 다른 표현들 곧 "영생"이나 "구원"이라는 낱말을 택해서 사용하였다.
또 "인자"는 유대교의 어떤 집단들에 있어서는 아주 묵시적인 의미들을 가지는 하나의 특수한 명칭이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무의미하였다. 융통성이 있는 이 초대교회 설교자들은 그러한 명칭 대신에 이방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명칭들-"하나님의 아들"혹은 "주"-을 사용하였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인물을 소개할 때에는 그들이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말들과 개념들을 사용하였다. 그들의 목적은 그들이 섬기는 주님이신 동시에 그들이 전파하는 메시지 자체인,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구원사역을 명백히 전하는 데에 있었다.
6.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 그로간 (G.W. GROGAN)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9). 이것은 4800미리 초 망원 렌즈로 촬영한 것이다. 가운데 솟아 있는 [승천탑]너머로 태양이 떠오른다.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각도는 1년 중 11월의 2.3일 정도이다. 승천과 일출의 조화 가운데 놀라운 상징성을 발휘한다.
사도행전은 특히 성령의 사역이 부각되고 있는 책이다. 실로 성령의 사역이 본서를 지배하고 있다. 본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행전"으로 불리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인격체이신 제3위 하나님 성령
성령이 인격체이신 사실이 본서에서 분명해진다. 이는 그가 인격체만 할 수 있는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친히 말씀하셨고(1:16,8:29,10:19등)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셨다(2:4,4:8,31등).그는 증거 하셨고(5:32).그리스도의 일꾼들을 파송하셨으며(13:4),사도들을 교회의 직분에 세우기도 하셨다(20:28).그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계시며(15:28)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분명히 받아들여지셨다(5:3,9).
그리스도의 사자
사도행전 1:1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통해서 그의 사역을 계속하셨음을 암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신 선물이며 (2:23)."예수의 영"으로 불리고 계신다(16:7).그는 또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으로도 불리신다(1:4).
교회의 창설자
현재 우리는 아는 교회는 오순절 날에 창설되었다. 바람과 불(2:2-3)은 하나님의 임재의 대한 구약성경의 상징들이다(출19:18,왕상 19:11-12). 방언의 은사(2:4-13)는 갖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서게 될 교회의 궁극적인 보편성을 상징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선정하여 베푸신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령께서는 사랑과 연합의 교제를 창조하셨고(2:43-46) 또 기독교 메시지의 응하는 사람들에게 임하실 것이 약속되었다(2:36,5:32도 역시 보라).
확장되어가는 교회를 하나로 묶는 힘
누가는 실제로 성령의 사역을 통한 복음의 진보와 그 결과적인 확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오순절 날의 교회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따라서 그들은 마치 유대인인 것처럼 계수되고 있다.2:10)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대인들은 혼합된 인종과 분리된 종교의 문제로 인하여 사마리아인들을 증오하였으나 사도행전 8:14-17에서 성령은 사마리아 신자들에게도 임하신다. 이 일이 (유대인)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한 후에야 일어난 것은 사도들 편에서의 그들에 대한 사랑과 교제의 자세를 암시하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요4:22)는 사실을 확증해주는 것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은 사도행전 10:44-48(11:1-18도 역시 보라)에서 베드로의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전파를 통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순절 날의 현상이 다시 나타났을 때 무너졌다. 성령에 대한 약속이 처음으로 제시된 것은 세례요한을 통해서였다(마3:11-12 행1:5,11:16을 보라).그러므로 누가는 일단의 요한의 제자들도 역시 성령을 받게 된 경위를 기록하고 있다(19:1-7). 이 구절들은 성령께서 이 각각의 무리들을 어떻게 하나로 묶으시고 이탈을 막으셨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증인들 배후의 권능
성령이 교회에 선물로 주어진 것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1:8,4:33). 교회는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이방인들을 복음화 할 선교사로 파송하였다(13:1-4). 그것은 앞서 베드로에게 지시하여 고넬료와 그의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경우와 같았다(10:19이하,8:29,16:6-7).성령의 충만을 입은 그들은 능력 있게 말하였고(4:8,31,6:10) 새 교회의 생명과 증거의 여러 다양한 국면들 담대히 소개하였다(6:3,5,11:22-24).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말과 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나타낼 능력을 주셨다.
교회의 생명
하나님의 영은 각처 교회의 내적 생명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9:31). 교회의 감독자(장로)들을 세우셔서 파수꾼으로 삼으신 이가 바로 성령이셨다(20:28). 새 시대는 교회의 설립과 육성(15:32)및 장차 올 일들에 대한 예언(11:28,21:4) 에 관심을 갖는 예언의 시대(2:17-18)가 될 것이었다. 교회의 회의는 성령의 지도를 추구하였고 또 이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으로 믿었다(15:28).
이와 같이 사도행전은 성령의 인격과 역할을 계시함에 있어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본서는 또한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되는 완성 혹은 성취를 기록한 책이다. 구약의 예언들과 성령에 대한 주 예수의 약속들은 오순절 날에 온전히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전파하셨고 또 서신서 들에 명백히 증거 된 새 시대, 곧 성령의 시대는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로마서(Romans)
1. 배경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쓴 것이다(롬1:7) 거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있었다(롬1:13, 롬2:17). 로마 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으나 그러나 로마의 성도들은 지중해를 중심한 여러 지방에서 로마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그중에 더러는 바울과 베드로가 순회 전도할 때에 개종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어떤 이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었다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가지고 로마로 돌아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행2:10).
그림설명 / 로마광장 : 카피둘리누스언덕의 동남부 중턱에서 내려다보면 로마광장의 거의 전모가 보인다. 기대한 기둥은 사투르누스 신전이다. 그 오른쪽 후미에 쌍둥이 신 로룰루스와 레무스의 신전과 베스타의 신전이 있고 멀리에는 티투스의 개선문과 골로세움이 보인다. 왼쪽 앞에 있는 개선문은 세베루스 황제의 것인데 그 뒤쪽에는 사두정치 시대의 원로원 회의소의 지붕이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이 편지를 쓸 때 까지도 한 번도 로마를 방문한 일이 없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세계의 수도인 로마로 가기를 원했다(롬15:23-25). 그래서 그 준비로서 이 편지를 써 보내기로 한 것이다. 바울이 제3차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 얼마동안 머물러 있던 때 쓴 것이다. 57년경이라고 본다. 바울은 로마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실제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기본적 진리에 관하여 쓴 것이다. 그리고 로마서는 갈라디아서를 쓰던 때에 거의 같은 시기에 쓴 것으로 이 두 편지는 비슷한 점이 많은데 이 두 편지의 기본 교훈은 구원이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다는 것이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로마서의 중심 사상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는 헬라인 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 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 하는 이 말씀이다.
이 주제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모든 경험의 기초인데 그것은 기본적인 접근이 확립되지 않는 한 아무도 하나님과 상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서신은 특별히 이방인에게 전하고 있다. 바울은 자기는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하고 있으며(롬1:5), 계시의 준비 행위로서 이방 세계의 종교적 역사를 묘사 하였다. (롬1:18-3)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며 헬라인 사이에 아무 차별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즉 로마서의 중심 내용은 의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이 만민의 구원의 길이 된다는 것이다. 이 믿음의 열매는 평화와 영원한 안전과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이다. 바울은 세 가지 실례를 들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과 예전의 죄의 생활과 전연 다르다 는 것을 밝혔다.
1) 부활이다.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김이 되어 죄와는 관계가 없다(롬6:1-11).
2) 종이다. 죄인은 본래 죄의 종이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여 주셨으므로 이제는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었다(롬6:12-23).
3) 결혼이다. 아내 될 사람은 그 남편이 살아 있는 한 그에게 매어 있는 것이다.그러나 죄인은 전에는 사탄과 결혼하였으나 그가 죄에 대하여 죽은 이상 이제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고 살 자유를 갖게 되었다(롬7:1-3). 로마서에서 특별히 드러나는 몇 가지 중요한 말이 있다. 능력, 죄, 의롭다, 하심을 입는다, 믿음, 양자, 택하심 등이다.
3. 내용 분해
1 .내용
롬1:1 - 17 = 서론
롬1:18 - 롬3:20 = 옛 시대에서의 유대인과 이방인
롬3:21 - 롬8:39 = 새 시대에서의 유대인과 이방인
롬9:1 - 롬11:36 = 바울의 구원사 해석
롬12:1 - 롬15:33 = 바울의 윤리적 교훈
롬16:1 - 27 = 문안의 편지
2. 로마교회의 시작
주전 61년의 폼페이에 의한 전쟁포로로서 로마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후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 포로들은 후에 석방되어 로마의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강력한 구성원들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로마의 기독교는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자기의 편지를 쓸 때에는 이미 상당한 역사를 배경에 갖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3. 편지를 쓸 당시의 교회의 구성
로마서는 이중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로마교회는 주로 유대인 기독교인들로 구성되었다거나 바울은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이방 선교를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거나, 바울은 로마에서의 영향력을 다시 얻기 위해서 로마로 돌아간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투쟁하고 있다는 추측 등은 유대적인 주장들에 대한 바울의 열렬한 논쟁에만 의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교회 내에 두 그룹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미친 성육신의 효력을 언급하면서 서로 용납하라는 호소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4. 로마서의 저작시기와 장소, 의도와 동기
이 편지는 바울의 마지막 석 달에 걸친 고린도 체류기간 중에 그곳에서 약 55년 혹은 56년 봄에 그리고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여행하기 전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많다. 로마서의 의도와 동기는 사도 바울의 상황과 계획에서부터 추출된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했지만 편지를 통해서 그들과 접촉하려고 하였다. 로마에 있는 교회와 관계를 즉시 맺는 것이 필요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로마인들을 자신의 장래의 사역에 있어서 협조자로서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누구이며 그가 무엇을 전하는 지를 말하려 했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보고 가르친 대로 기독교의 기본적인 진리에 관해 어느 정도 길게 자기 입장을 표현할 동기를 갖게 된 것이다. 로마서는 바울의 신학적인 고백이며 "바울의 성경"으로 규정지어 진 것은 적절하다. 로마서의 문학적인 성격은 그것이 여러 교회에 두루 보내어질 목적을 가진 선언서나 회람편지로서 쓰여 졌다. 바울이 구원의 메시지를, 로마교회와 관련된 구체적인 선교의 동기와 연관시켜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유대인 대적자들과의 새로운 논쟁을 예상하는 그의 상황에서 쓰고 있다.
5. 로마서의 진정성과 통일성
1) 로마서 1 -15장의 진정성과 동질성은 아무런 심각한 의심을 받고 있지 않다.
2)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에 대한 안부가, 실질적으로 에베소보다는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 있어서 더 적절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본문전승에 관한 가장 믿을 만한 추측은, 원래 1:1 - 16:23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6. 로마 교회
로마 교회는 누가 언제 어떻게 세운 교회인가?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설립과는 직접으로 관련될 수 없다. 본도 출신이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장막지기"로 로마에 있다가 고린도에 갔었고 다시 에베소를 들려 로마에 왔으며, 또 예루살렘, 갈릴리, 소아시아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몰려들기도 했다. 당시 세계적인 도시인 로마로 몰려드는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 이민자들도 있었다고 보며 이런 사람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참석하여 성령 충만을 받고 다시 로마에 돌아온 사람들이었다고 본다(행 2:10).
로마교회의 형태는 완전히 조직된 교회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정도였으나( 롬1:7) 16장의 기록을 참고할 때(5절) 로마교회는 여러 그룹교회 혹은 가정교회의 형태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롬16:10, 11, 14,15). 교인 구성은 유대인(롬2:17-24, 롬4:1, 롬7:1)과 이방인(롬1:5-7, 롬1:13, 롬11:13)으로 구성되었으나 이방인의 수가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다.
7. 기록동기와 목적
로마교회를 방문하기를 원했고 기도했으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여러 일로 인해-롬1:9-13). 서쪽 서반아(스페인) 전도 계획이 준비되면서 로마에 들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나게 되었고 또 서반아 선교를 위하여 로마 교회의 지지의 필요성이 있었다(롬15:17-24).그러나 먼저 할일이 생겼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모금했던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마치고 서반아로 가려고 계획하고 있었다(15:28,29). 로마교회에 예루살렘 가는 일에 대해서도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롬15:30-32). 편지를 쓴 이유는 방문에 앞서 그 준비를 위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밝혀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그들의 신앙 강화에 공헌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롬1:11-12). 로마서 는 그래서 "기독교 복음의 진수", "기독교 신학의 요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8. 구조와 내용
(1) 서 론(1:1-17)
(2) 바울의 복음(롬1:18-롬8:39)
제 1 부 /롬1:18- 롬3:20 -옛 시대에서의 유대인과 이방인
가. 이전 시대의 이방인(롬1:18-32)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다. 이성과 자연법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지 못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부도덕, 탐욕 등에 내버려 두셨다.
나. 이전 시대의 유대인(롬2:1-롬3:20) :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다. 율법과 할례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하지 못했다. 내적인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며 무 할례자라도 율법을 지키면 참 할례자로 여겨질 수 있다(롬2:36)
제 2 부 /롬3:21-롬8:39 -새 시대에서의 유대인과 이방인
가. 새 시대에서의 인간(롬3:21-롬4:25) : 새로운 의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다. 그 의는 행함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온다.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길이 율법적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에 있다(롬3:28).
나. 새 시대에서의 생활(롬5:1-롬8:39)
1)진노로부터 자유 한 생활-5장
2)죄로부터 자유 한 생활-6장
3)율법으로부터 자유 한 생활-7장
4)죽음으로부터 자유 한 생활-8장
(3) 바울의 구원 사 해석(롬9:1-롬11:36)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격하고 있는 반면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백성리가고 생각되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의 자리로 나아오고 있는 일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곧 온 인류를 다 구원하는 것이다. 유대인들도 오직 믿음으로만 의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10:3).
(4) 바울의 윤리적 교훈(롬12:1-롬15:33)
1)기독교인 상호간의 행동-롬12:3-13
2)비 기독교인에 대한 기독교인의 입장- 롬12:14-21
3)국가 권력을 장악한 자들에 대한 기독교인의 의무-13:11-14
4)이웃 사랑-롬13:8-10
5)종말의 임박성이 도덕적 진지성의 동기임-롬13:11-14
6)신앙이 약한 자에 대한 경고-롬14:1-12
7)신앙이 강한 자에 대한 충고-롬14:13-15:6
8)그리스도의 모범에 대한 일반적인 권면-롬15:7-13
9)사도직과 편지 목적에 대한 개인적 언급-롬15:14-21
10)바울의 여행 계획과 로마 방문 계획-롬15:22-33
(5) 부 록 : 문안의 편지(16:1-17)
9. 기록 시기와 장소
기록 장소는 고린도이며 기록한 시기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걷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출발하려던 때였다(롬15:19-29). 이는 고린도후서를 쓰고 나서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이전의 시기이며 대략 56년경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린도전서(1Corinthia)
1. 배경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지리적 위치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다.헬라 본토에서 페로폰네소스반도로 나가는 바로 길목에 있어서 육로와 수로로 상업상 교통이 빈번한 곳이다. 고린도에는 잡다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각 곳에서 모여온 우상도 많았고 생활은 사치하였으며 윤리적으로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곳에 바울은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다. 바울은 글로에의 집안 식구들이 고린도에 다녀와서 전도하는 말을 통해서 고린도교회가 가지고 있는 파당의 문제, 계모와 같이 사는 부도덕한 생활 문제, 또 신자들 끼리 관청에 소송하는 문제 등에 있어서 고린도 교회의 영적 생활과 전도 사업을 위협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고린도 교회에서도 그 교회에 발전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바울의 의견을 묻는 편지도 보내왔던 것 같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여러 문제에 대하여 실제적인 해답과 교훈을 주기로 하고 이 편지를 썼다.
바울은 3차 여행을 하는 중에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고전16:8), 57년 이 편지를 썼다 신약 성서에는 바울이 고린도교회로 한 서신이 둘 밖에 없다. 그러나 실상은 적어도 네 번은 하였으리라는 사서설이 있다.
그림설명 / 고린도 : (행18:5-7) 바울은 이곳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주로 고린도에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고린도에는 60m 높이의 산위에 아크로폴리스가 있었고 그 정상에는 아프로디테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다. 당시 이 신전에는 1천명의 신전 창녀가 있었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고린도 전서는 내용이나 양식에 있어서 모든 바울의 서신 가운데 가장 다양하다.화제도 분파의 문제로부터 금전문제, 그리고 교회의 예의 범절문제 부터 부활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이 편지는 고린도로 부터 온 방문자의 보고와 그리고 고린도 교회가 보낸 편지의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다. 글로에 집편에서 들은 문제들은 처음 6장에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7장부터는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고전7:1)이라는 새로운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고린도교회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는 신자 사이에 사랑이 없어서 피차 분열되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편지에서 취급한 각 문제를 사랑의 결핍에다 중점을 두고 논의하였다. 그래서 편지 서두에서 처음 9절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9번이나 기록하면서 그리스도에 관한 특별한 관심을 환기시키기에 힘썼다. 그것은 그리스도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므로 만일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이 그리스도에게로 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다면 피차 분쟁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웅변)과 지혜(철학)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 하였다(고전2:1).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바울 자신의 웅변이나 지식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 이었다. 바울이 방언이나 그밖에 신비로운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이 까닭이었다.바울의 전하는 바는 그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것이다.
3. 내용 분해
1. 인 사 고전1:1-9
2. 글로에의 집 편으로 들은 것에 대한 답변 고전1:10-6:20
3. 편지에 대한 답변 고전7:1-16:9
1) 결혼 고전7:1-24
2) 처녀 고전7:25-40
3) 우상의 제물 고전8:1-11:1
4) 예배 고전11:2-34
5) 신령한 은사 고전12:1-14:40
6) 육체의 부활 고전15:1-58
7) 연보 고전16:10-24
4. 마지막 인사 고전16:10-24
4. 고린도서(Corinthia) 연구
I.들어가는 말
바울의 적대자들에 대한 문제들은교부시대부터 종교개혁자들에게 이르기까지 주석가들에 의해 언급되었으며 19C 종교사학파들 가운데 초기 비판적인 학자들은 이 두 서신을 고찰한다고는 했지만 두 서신을 나눠서 고찰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고린도 전서는 그 교회에 침입한 지혜사변이나 자유주의 사상에 연관되어 파당 문제(고전 1:10-4:21), 성적 부도덕성의 관용(5:1-8), 교회 예배의 무질서(5:9-13), 영지주의의 경향, 성령의 은사의 열광주의적 이해(12 -14), 부활에 대한 회의(15:1-58)등이 속출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명해 가면서 이식연소하고 이교 환경에 흔들리는 그 교회의 공동체를 건설해 가는 방향으로 편지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특정한 개인이나 그룹이 특히 논쟁의 대상으로 되어 있지 않고 전체 교회가 생각과 행동을 같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린도 전서의 처음 몇 장은 서신 전체를 이해하기에 좋은 열쇠를 제공한다. 곧 바울이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 또 그 교회에 분명히 밝혀주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가르쳐 준다. 그 교회에는 "다툼(-1:11)"이 있다고 전해졌다. 고린도인들은 전보다 "변론이나 지식에서 부요해졌다(1:4)"고 하는 것을 보아 많은 논변들이 오고 갔던 것 같다. 그 다툼이라는 것은 어떤 교리적인 주의, 주장이 달라서 대립한 것일 수 있는데 다음에 오는 분열(-10)은 어떤 그룹 형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여러 지도자들을 각기 좋은 대로 자기의 신념의 대표자로 모시고 그들의 특수한 어조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바울, 아볼로, 게바, 또 그리스도까지 새워 이 네 이름이 서로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근원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3장 18-23절에서도 역시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계속적인 분쟁과 더불어 야기되는 것은 지혜()와 영적인 것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적인 요소들이다. 본 발제는 특별히 파당 문제(고전 1:10 - 4:21)에서 야기되는 적대자들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
II.본론
1. 교회내의 문제들(고전 1:10 - 17) 고린도 교회의 분파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과 듣는 사람들의 문제처럼 보인다.
바울이 소식을 듣고 취급하는 교회의 첫 번째 문제는 교회 내의 분파운동이었다. 그는 분파 문제는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설교가들에게나 자신들에게 세례를 베푼 사람들에게 충성하는데 있음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바울파는 바울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거나 세례를 받은 자들이었을 것이고, 아볼로파는 아볼로의 달변의 설교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을 것이고(행 18:24-28), 게바파는 원 사도의 우두머리 베드로의 추종자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베드로가 고린도에 체류했거나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근거가 희박해진다. 그는 유대인 그리스도교인의 대표자라는 견해를 갖기 쉬우나(갈 2:11 이하에 근거) 고린도전서에는 할례나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분파나 경향에 대해서 들을 수는 없다.
그 외에도 바울이 서신의 어느 부분에서도 이들 "분파들" 중의 어느 한 파 혹은 다른 파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이 증명되어지지도 않을 뿐 만 아니라 5장 이후에는 분파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1-4장에서 실제로는 전체 교회를 상대로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결과 최근의 연구는 "그리스도파"에 집중되고 있다. 그들은 베드로파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주님의 동생 야고보파, 성령주의자들, 자유주의적 영지주의, 혹은 하나님과 자유의 영성을 강조한 자들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신 전체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말하나" 그 실상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속하였다고 말하는"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을 지칭하고 있다. 이들은 "성령 열광주의(spirit-enthusiasm)"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영지주의적으로 왜곡하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신들이 이미 그리스도와 합일함으로써 완전한 구원 상태에 이르렀고 육()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주장하며 "모든 것이 가하다"는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곧 영지주의적인 열광주의적 경향이기도 하다. 바울은 서신 전체에서 이러한 경향에 반대해서 건전한 생활과 육의 부활을 강조하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을 선포하고 있다.
2. 교회 안의 파당 문제 마펫(J.Moffatt)은 말하기를 "바울은 여러 당파의 주장들을 분석하지 않는다. 그는 전체로나 부분적으로 그들의 견해를 말하기 보다는 그들이 품고 있는 분열 정신에 관계한다."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당파들이 교리적으로 다른 바가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신학 사상을 그 편지에서 왜 전해주지 않았겠는가 설명하려고 한다. 그로샤이데(F.W. Grosheid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교회원들이 일정한 교리, 곧 빗나간 교리에 집착한 그들의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 한 가지는 각 고린도 교인이 자기의 표어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다른 점이라고는 이 슬로건뿐이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바울이 몇 가지 죄를 견책할 때 견책 받는 사람은 한 그룹만이 아니고 전체 교회이다."그러나 이 파당이 그 지도자로 대표되는 사상적 입장을 모르고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지도자 각자의 입장을 체득하고 그것 때문에 싸우는 당파였다면 끝내 그 파당이 몇 개의 교회로 발전해 나갔을 것이고 마침내 복음의 중심에서 이탈한 소종파나 이단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그러한 조짐은 보이지 않고 고린도후서에서 그러한 문제가 다시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바울의 서신으로 그 "다툼"은 해결된 것 같다. 슐라터는 "그들의 바울 의존성이 변질한다든지 그를 위해서 열광주의자가 되었다는 말은 두 서신에 한 마디도 없다고 한다. 이 분쟁의 의미는 고린도 교인들이 지성적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지도자들의 가르침의 차이를 간취함으로써 시작한 불협화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그래서 바레트(C.K.Barrett)는 이 서신(1:11등)에서 말하는 분쟁()은 파당(Party)이 아니고 분란, 또는 다툼이라고 말했다. 심한 의견 대립이라 볼 수 있다. 우리가 각 파당을 개별적으로 검토할 때 어떤 특징에서 구별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바이스(J.Weis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게바파에 대한 판단을 제시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아볼로파와 구별되게 분명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이 3장 5 - 9절과 3장 10 - 17절에서 지도자들에 대해 말한 후 한 책망으로써 함께 묶어 4장 13절까지 계속해서 언급한다. 본문의 이 부분에서는 두 파당을 그의 마음속에서는 결합시켜 하나의 그릇된 불순종, 교만한 적대의 그룹으로 만든 것 같다.
우리가 이제껏 아볼로 추종자 사이에서만 발견되리라 생각한 지적 기만이 3장 18절 이하에서는 직접 게바파의 지도자들에 대해서 던져진 것에 연관시켜 책망 받고 있다." 또 그는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파란 것은 끼어들어간 난외구"라고 지적한다. 또 레이크(Kirsopp Lake)는 만일 바울의 대적자를 성령주의자들이라고 하기를 승인한다면 아볼로파를 "성령파('spiritual' party)"로 여기기는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 당파들을 단순히 관념적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각파의 정체를 파악해 보도록 하자.
1) 아볼로파 아볼로파는 다른 분파보다 파악하기에 유리한 점이 있다 그린도전서와 사도행전은 아볼로가 실제로 고린도를 방문했고 거기서 활동했다고 말하는데 일치한다. 고린도전서에서 그의 방문은 바울의 첫 체재 후이며 또 이 편지를 쓰기 전에 실현됐다는 것이 명료하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3:16)". 또 1-4장을 보면 바울에게 그가 가장 큰 주목거리였음을 알게 된다. 그랜트(R.M.Grant)는 고린도의 파당적 알력에서 아볼로의 비중을 높이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알력은 실제로는 바울과 아볼로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또는 도리어 둘의 견해를 그릇 해석하는 각자의 추종자들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바울과 아볼로는 원칙적인 적수(3:4-9였던 것으로 보이며 또는 그렇게 보이도록 되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이었고 달변이며 성서를 잘 풀어 말했다(행 18:24). 그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는 것(행 18:25)은 아마 그가 요세푸스가 했던 것과 같이(Ant. xxiii 117) 에세네 교도들의 양식에 따라(Beii. ii 138) 세례를 몸의 의식적 정결로 이해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 서술은 아볼로의 인격과 역할을 잘 엿볼 수 있게 한다. 타이더스(Eric L. Titus)는 다른 각도에서 이렇게 말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토론된 문제를 자신과 아볼로에게(4:6)축소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만일 아볼로가 참으로 육의 가시였다면 고린도의 상황에 관계된 한 그때, 바울에 관해서 말하는 '지혜'와 '신비'가 복음의 알렉산드리아적 알레고리적 해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 교사의 두 큰 인격 사이를 조명하기 위해서 이 같은 대립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 확실히 바울의 서신에서 그것이 명료하지 않으나 그때 그것을 명백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명석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볼로는 현존한 문헌이 묘사하는 것보다 더 영향력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맨슨(T.W.Manson)도 아볼로파는 교회의 참된 분열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그가 문제된 것은 설득력 있는 설교로 그를 신앙의 아버지로 본 교회원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울의 권위를 침범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은 아볼로를 필요로 하고 가치 있는 동역자로 인정하였다(고전 4:6). 레이크(K.Lake)는 "바울과 아볼로 사이의 명백한 친근 관계"를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을 인증하면서 변호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무렵, 아볼로는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머물렀고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과 관련하여 바울이 그에게 고린도로 가기를 강권하였으나 갈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16:12). 전시대의 주석가들은 이 "의사"라는 말을 아볼로의 것으로 보는 이와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사람들로 갈라졌다. 여하간 이런 증빙으로써 아볼로는 결코 바울의 경쟁자가 될 수 없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2) 게바파 어떤 학자들은 베드로를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가장 어렵게 만든 주된 분란의 근원으로 부각시킨다. 이 학자들이 사용한 증거들 중 많은 것이 고린도 후서에 나타난다. 주로 뒤퐁(Jacque Dupont)은 고린도후서의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이냐?(고후 11:22)"등의 구호에서 바울의 대적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그룹이었다고 가정한다. 또 녹스(W.L.Knox)도 같은 고린도후서의 구절(11:13)을 기초로 하여 "거짓 사도"가 고린도전서에서 반영된 바울에 대한 저항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다른 학자들은 베드로가 친히 고린도를 방문하였고 자기의 이름을 붙여 지칭할만한 개종자를 얻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헤링(J.Hering)은 이 그룹은 의심의 여지없이 사도 시몬 베드로의 추종자를 말하는데 그가 고린도를 방문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고, 이 파는 "아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은(비. 1:17) 팔레스틴 출신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앞에서 녹스등이 주장한 고린도후서의 바울의 대적자들은 유대주의자들이며 거기서의 게바파와 연관되었으리라는 생각은 그 대적자들이 유대주의적 색채와 헬라주의적 색채를 함께 가졌다고 주장하는 프리드리히(G.Friedrich)의 이론에 직면하여 무색하게 된다.
게바파가 율법주의적 유대주의자였으리라는 추측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리고 동시에 게바파는 독립된 존재로서 바울에게 큰 적대 세력이었을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곧 레이크는 "바울의 대적자들로서 유대인이었으나 성령주의자였지 유대화 획책자(Judaizers)는 아닌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유대화된 성 베드로의 모습은 역사에 근거 없는 튜빙겐 비판주의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이다"라고 말한다. 맨슨은 고린도교회의 고린도전서 12-14장에 나타난 것 같은 예배의 과잉 -그것은 흔히 헬라적 영향의 결과라고 생각되었는데- 은 "영의 참된 표징으로서 방언을 권장하는 게바파의 요청"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벤트란트는 이렇게 추측한다."아마 게바파 사람들은 원 사도들을 인증하면서 바울의 사도직을 공격한 것 같다. 최소한 그들은 그들의 그리스도인된 신분의 특수성을 강조한 팔레스틴적 유대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바울파의 요구가 무엇이었겠는가에 대해서 필하우어는 바울파와 아볼로파가 왕성함에 따라 게바의 권위를 주장하는 이들이 소수로 고립됨으로서 적극적인 자세로 진출한 것이라고 한다. 그 파의 크기가 얼마나 됐는지는 바울파나 아볼로파의 크기를 알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특히 영지주의파 또는 성령주의자가 바울파, 아볼로파 중에 어느 쪽에 더 근친하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바울이 서면 질의에 대해 대답할 때 어느 당파를 염두에 두고 하지 않았다는 일이 그 파당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하는 모습을 제시해 준다고 한다.
위의 토론들을 참고하면서 우리는 첫째로 게바 자신이 고린도에 왔다고 생각지 않으며 다만 사도의 질서에 대해 바로 생각해 보려고 하고 교회에 대해 베드로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한 그룹의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독립된 세력으로 있었다기보다는 바울의 사도직의 정당성이 문제될 때 베드로를 잊지 말 것을 강조하고 구속자적 맥락을 존중한 사람들이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베드로파가 헬라적 영향 아래 예배의 과잉을 가져오고 방언을 권장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3.교회의 설립
주전 146년에 부유하던 고대 도시 고린도는 멸망되었다. Caesar는 그 도시를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하였고, 주전 29년 전부터 고린도는 총독의 거주지이자 아가야 지방 원로원의 수도였다. 동서간의 자연적인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인종적으로 다양한 주민들 사이에는 종교적 혼합주의가 성행하였으며 약 49년경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중 고린도에 도착하여, 생계를 노동으로 꾸미며 회당에서 가르쳤다. 그의 사역이 1년 반 지난 후에 급성장하는 교회가 생겼는데, 이방인 기독교인들을 구성하였고, 대부분 하층계급인들 이었으나, 부유한 이들과 유대인들도 존재하였다.
4.저자 동기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들은 문제와 질문에 답하여 주었다.
5.진정성과 통일성
진정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통일성 문제는 고전내의 다양한 주제와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갈 때 갑작스러운 전환으로 인해 단절성이 존재하나 별 이견이 없다.
6.저작 시기와 장소
55년이나 54년 봄에 에베소에서 쓰여 졌을 것이라 추측되고 전, 후서 2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2권이 더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고린도후서(2corinthia)
1. 배경
고린도 교인 중에는 바울이 먼저 번에 고린도 교회로 보낸 편지에서 말한 몇 가지 조건을 아주 곡해하고 바울을 몹시 비평하였다.그 후 바울은 마케도니아로 가서 빌립보에서 지난번 고린도로 보냈던 디도를 만났다.그래서 디도에게서 고린도 교회의 형편을 듣고 디도를 보낸 목적이 성공된 것을 알고 안심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 편지를 기록하여 디도와 그의 동행 편에 고린도로 보냈다.이 편지를 마케도니아에서 56,7년경 썼을 것이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이 편지는 교리적 교훈이나 또는 교회의 질서보다도 개인적인 것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고린도전서와는 다르다. 인간 바울이 보다 또렷하게 나타났는데 그의 감정, 희망, 혐오, 야심, 및 책임 등이 그의 독자 앞에 모두 드러나 있다. 이 편지는 조직적인 교훈은 별로 없으나 고린도전서 보다 개인적인 감정이 많으며 그리고 책의 구조도 고린도 전서와 같이 뚜렷하지 않다. 바울에게는 원수들의 중상과 비방이 많았다.육체대로 행하는 자(고후10:2)겁쟁이다(고후10:10 ) 봉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니까 진정한 사도가 아니다(고후11:7) 12사도중 하나가 아니니까 복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후11:5, 고후12:11, 고후12:) 추천서가 없다(고후3:1) 등 기타 여러 가지로 중상하고 비방했다.그러나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후12:9)는 말씀에 따라 고난 중에서도 위안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받았다.
3. 내용 분해(대분류)
1. 인 사 고후1:1-11
2. 개인적 계획의 설명 고후1:12-2:11
3. 사도직에 대한 변호 고후2:12-7:4
4. 편지의 결과에 대한 논평 고후7:5-16
5. 주신 은혜 고후8:1-9:15
6. 개인적 변호 고후10:1-12:13
7. 방문 준비와 결론 고후12:14-13:13
4. 내용
1.이 편지의 내용은 명백하게 관련성이 없는 세 부분이 존재한다.
첫 부분은 서론(고후1:1-2)과 감사 (고후1:3-11)로 시작하여 직접적인 변론이 시작된다. 바울의 우유부단성에 대한 변론 (고후1:12-2:4), 바울을 공격했던 사건을 보다 온화한 방법으로 진정시키라는 교훈 (2:5-11) 직접적으로 전제가 되었던 사건들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고후2:12-13)사도직에 대한 변호 (고후2:14)자신이 하나님의 위임을 받았다는 것(2:14-4:6),
그 다음으로는 환란의 필요성 (고후4:7-5:10) 사도의 사명 (고후5:11-6:10)을 묘사, 사명의 내용(고후5:14-6:2), 교회를 향한 설교 (고후6:11-13), 불신자들과의 관계(고후6:14-7:1),결말부(고후7:2-4), 편지의 전 역사를 끝까지 추적함(고후7:5-16)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과 그것을 모으기 위해 파송되었던 자기의 동역자들에 대한 추천(고후9:1-15),비난들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와 변론으로 완전히 새로 시작하고 있으며
(고후10:1-18),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에 대한 어리석은 자랑을 하게 된다. (고후11:1 - 12:13), 자기가 교회를 착취했다는 비난 부정(고후12:14-13:10), 마지막 소원과 삼중 축도(고후13:11 -13)
2. 전역사와 저작 동기
고린도 전서를 쓴 이후에 고린도교회와 갖게 된 관계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지식은 고린도 후서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는 부분적으로 매우 불투명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들이 추론될 수 있다.
1) 고린도 후서는 다른 목적들도 많지만 바울과 고린도교회 사이의 심각한 갈등을 한 번에 결정적으로 해결해 버리려는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2) 고린도 후서는 고린도 전서보다 후대의 것이다.
3) 바울과 교회와의 관계를 흐리게 하는 이유는 정확하게 결정하기가 어렵다. 12:21, 13:2에 의하면 자기의 두 번째 방문 기간 중에 바울은 아직도 자기의 부도덕한 생활을 회개하지 않고 있던 교회의 교인들에 대하여 슬픔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13:2 "그 남은 모든 사람"을 덧붙여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범죄들도 역시 묘사되고 있다. 어떤 종류의 불의가 바울에게 행해졌는지는 우리에게는 불분명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 중간에 고린도에서 일어났던 바울에 반대하는 소동과 그 사건을 연결시키는 것은 추측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 행악자가 교회교인이었는지 여부는 결정될 수 없지만 교회에서 그를 심판했던 것은 분명하다.
4) 고린도 전서를 보낸 후에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반대하는 논쟁이 더 격화 되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바울은 편지전반에 걸쳐서 자신의 인격에 대한 공격을 방어해야만 하였다.
5) 바울은 고린도 전서와 고린도 후서 사이에 "큰 환란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소위 말하는 중간기의 편지 혹은 눈물의 편지를 그 교회에 썼다. 이 편지는 바울이 편지 안에서 S 에 대한 처벌을 명령했다는 점에서 고린도 교회들의 교인들 사이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바울과 교회 사이의 갈등과 관령해서 그 편지는 가장 극심한 긴장기에 쓰여 졌던 것이다.
6) 고린도에 디모데를 보낸 것은 어떤 완전한 성공을 가져오지는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디모데는 고린도에서 나쁜 소식을 가지고 왔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질서를 회복할 임무를 위해서 디도를 설득해서 정성을 다해 쓴 "눈물 의 편지"와 함께 그를 보내었다.
디도가 있는 자리에서 고린도 교회의 변화가 일어났다. 바울은 디도에게 자기 자신의 방문에 대한 준비로서 고린도 후서를 주었다. 고린도 전서와 고린도 후서 사이의 사건들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물론 고린도 후서가 전해 내려온 그 형태 그대로 원래 통일성을 보인다고 할 때에 만 유지될 수 있다.
3. 진정성과 통일성
고린도 후서는 전체적으로 그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는다. 반면에, 고린도 후서 6:14-7:1을 바울이 쓴 것인가는 오랫동안 의문시 되어왔다. 바울서신이나 신약성서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지 않는 단어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든지 바울에 의해서 통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어구 결합인 S S S 와 S 라든지, 쿰란 공동체와의 개념상 놀랄만한 유사성이 있다든지 하는 것 등이다.
고린도 후서의 본문을 원래의 통일된 것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보는 문제는 어려움이 너무 많이 있다. 무엇보다도 10-13장이 1-9장과 같은 문맥에 속하느냐 여부의 문제이다.
가장 좋은 가정은 고린도 후서가 전승으로 전해 내려온 그대로, 원래 통일된 편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가끔씩 그 편지를 받아 적게 하였기 때문에 일관성이 없을 가능성은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고린도 후서가 독특하고 복잡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나온 실제 편지로서 이해된다면, 그것은 역사적인 실제 상황이 그랬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저작 시기와 장소
고린도 후서의 저작 시기는 55년이나 56년 늦가을 이었을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틀림없이 고린도 후서는 마케도니아에서 기록되었다.
갈라디아서(Galatians)
1.배경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을 하는 중에 57년경에 에베소에서 기록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보냈다(갈1:2-3). 그런데 갈라디아는 넓은 지방이다. 상당히 넓은 지방이어서 이 서신의 목적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1)은 북부 갈라디아 설이다.2)는 남부 갈라디아 설이다.바울이 1차전도 여행 때 남부의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을 여행하였다. 대부분 남부 갈라디아 설을 지지한다.
그림설명 / 갈라디아의 회당유적
2.내용과 주요 사상
이 편지는 가장 토론적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부패에 대항해서 기록 하였다.바울은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보냈다. 바울이 제 3차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침 어떤 교사가 갈라디아 지방에 와서 만일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침으로 해서 믿음으로 의로워 진다는 근본 진리가 가려지게 되었다. 바울은 이러한 교훈이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하였고 그리고 저들의 자유를 멀리하게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편지를 썼다. 바울은 대단히 노한 어조로 이 편지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 책에는 사랑(갈5:13-22은 예외)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바울은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갈1:8)말함으로써 저들의 잘못을 비난 하였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짧은 서신이긴 하지만 마치 종교 개혁자 루터와 같이 유대교를 박차고 일어나는 독립선언이라고 하면, 로마서는 칼빈과 같이 기독교 근본 교리를 조리 있게 해설한 조직신학이라고 하겠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같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입는 교리를 논의 하였다.
3.내용 분해
1. 서 론 갈1:1-9
2. 전기적 논증 갈1:10-2:21
3. 신학적 논증 갈3:1-4:31
4. 실제적 논증 갈5:1-6:10
5. 결 론 갈6:11-18
4.갈라디아는 어디인가?
갈라디아란 용어는 본래 유럽으로부터 고올(Gaul)이란 큰 집단이 아시아로 이주 해 들어오면서 생겨났다 (주전 278-277년경). 주전 232년 이후 그들의 경계가 고정되고 그들의 나라가 갈라디아로 알려지게 되었다. 주전 25년까지 내려오게 되다가 마지막 왕인 아민타스가 그의 나라를 로마에 넘겨주었고 그때부터 갈라디아는 로마의 주(州)가 되었다. 주후 1세기에 들어서면서 몇 개 지역이 더 첨가되어 "갈라디아"란 말이 1세기 말경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고 지리적으로는 고올족이 살던 소아시아의 중앙 고원 북부 지역, 곧 옛 갈라디아를 의미 정치적으로는 광범한 로마의 행정 구역을 의미 한다.
이 북 갈라디아, 남 갈라디아 중 갈라디아서는 어느 지역 교회로 보낸 편지인가? 하는 문제가 계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갈 1:2절의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에"라고 기록된 본문의 갈라디아는 어디인가? 최근에 남 갈라디아의 성읍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썼다는 견해로 기울고 있다.
5.서신의 중요성
로마서와 같이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짧은 로마서"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변증하며 바울의 가르침을 요약된 형태로 담고 있고 이신칭의의 교리를 명확히 진술하면서 이를 근거로 어떠한 형태의 율법주의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변증한다.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었던 초대교회의 상황에서 갈라디아서가 그 구분 점을 명백히 해주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종교개혁 때에 이 서신이 차지한 중심적인 역할로 인해 "개신교 종교개혁의 모퉁이 돌"이라고도 불리기까지 했으며, 루터는 특별한 애착을 두어 자기의 아내라고도 하였다
6.구조와 내용
(1) 서 론(갈1:1-5) 수신자에 대한 감사의 말없이 곧바로 자기 사도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 주장
(2) 다른 복음에 대한 정죄 (갈1:6-10) 다른 복음을 따르는 독자들을 비난하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교란자를 정죄
(3) 사도직의 변호(갈1:11-갈2:21)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한다. <1>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온 것이다(갈1:11-24) <2> 바울의 복음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갈2:1-10) <3> 바울이 안디옥에서 베드로의 위선적인 행동을 공격했다(갈2:11-21)
(4)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전하는 바울의 복음(갈3:1-갈4:31) 의롭다함을 받는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지 율법의 행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1> 독자들의 경험으로 확인 된다(갈3:1-6) <2> 아브라함의 예가 증거 해 준다(갈3:7-9) <3> 구약성서도 이를 말해 준다(갈3:10-14) <4>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 율법보다 우선한다(갈3:15-18) <5> 율법의 역할은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의 개인 교사 역할이다(갈3:19-29) <6>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자유인이다(갈4:1-20)
(5) 윤리적 권면(갈5:1-갈6:10)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잘 보전하고 올바로 사용하라
<1> 기독교인의 자유의 의미(갈5:1-15) <2>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일(갈5:16-26) <3> 일반적인 권면(갈6:1-10)
(6) 마지막 결론(갈6:11-18) 적대자들에 대한 마지막 경고와 마지막 축도
7.저자는 누구이며 기록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울이다. 명백한 내증(內證)으로는
1)처음의 인사말-갈1:1과 뒷부분-갈5:2에서 자기를 바울이라 부른다.
2)1-2장은 자서전적 내용으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생애의 사건들과 조화를 이룬다.
외증(外證)으로는 2,3세기의 교부들(이레니우스, 클레멘트, 오리겐)은 "바울이 저자이다"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갈라디아의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의 권위를 부인했으며 거짓 복음을 선포했다. 절망적인 상황을 고쳐주고, 초기의 그리스도인을 모세의 율법으로부터 은혜로, 율법주의로부터 믿음으로 불러내 주기 위해 기록되었다.
* 갈라디아 교회의 적대자들<참고 성구> 갈1:6/ 갈1:9 / 갈2:4 / 갈3:1 / 갈4:9-11 / 갈5:7 / 갈5:10
적대자들 곧 거짓 형제들이 교회를 교란시키고 복음을 곡해하였다. 이들은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선동하고 있었으며(2:4, 5:2, 6:12-13), 율법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고 있었다(3:2, 5:4). 이들을 율법주의자, 혹은 유대주의자로 말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도덕적 방종주의로 빠지는 열광주의자들 혹은 율법 폐기론자들을 향해 싸우는 바울의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다(5:13).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율법은 끝장난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행함이나 도덕적 행동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도덕적 방종주의에 빠지도록 이끄는 "유대 기독교적 영지주의자"가 바로 이들이다. 갈라디아에서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적인 도덕적 방종주의에 대한 공격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때에 더욱 온전한 이해에 이르게 된다.
8. 기록한 시기는 언제이며, 기록한 장소는 어디인가?
초대 교회 안에 나타난 유대주의적 영향에 대항해 싸우던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로마서보다 먼저 기록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기록 연대는 대략적으로 바울이 3차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 도착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주후 54-55년 경 일 것으로 생각되며 그 장소는 에베소라고 여겨진다.
에베소서(Ephesians)
1. 배경
그림설명 / 에베소의 유적 : 공창이 있었던 거리로 위생설비의 도서관이 보인다.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에베소 교회를 설립하였다.처음 바울의 설교를 듣고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자기 집에 가지고 있던 많은 마술에 관한 서적을 불살라 버렸다.(행19:19) 신자가 많이 생김에 따라서 은(銀)방하는 사람들의 수입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들의 영업에 손실을 끼치는데 분격한 은 방하는 사람들은 바울에 대항하여 소동을 일으켰다. 에베소에는 다른 서신들과 달리 개인에 대한 문안이나 언급이 조금도 없고 어떤 특정 지방으로 보내는 기분도 없다. 고대의 유력한 사본들에는 "에베소 사람들에게"(엡1:1) 라는 말이 여러 교회에 공동으로 보낸 편지였던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개인적 문안이 없다는 것이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라는 한 주제가 전체에 흐르고 있다.이 서신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 신자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영적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신앙적으로 성숙하면서도 보다 풍부한 지식과 생명을 얻으려는 신자에게 보내는 것이다. 일정한 주제들이 계속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이 구원의 거룩한 계획을 잘 나타내고 있고 있는 전반부에 충만 해 있다(엡1:4. 9, 11, 13, 20, 엡2:4, 6, 10, 엡3:11). 하반부 에서는 신자의 행위가 "행함 "이라는 말로 강조되어 있다(엡4:1, 17, 엡5:1, 8, 15). 그리스도인의 활동 범위는 지리적인 위치보다는 영적인 것으로 '하늘에, 하늘 안에서' 서이다(엡1:3, 10, 20, 엡j2:6, 엡3:10, 엡6:12). 교회 생활의 원동력은 성령이시며 그는 인치시고 (1:13),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고 (2:18), 진리를 나타내시는 근원이며(3:5), 생각과 말의 조언자시며(엡4:30), 즐거움의 자극이 되시며(엡5:18), 그리고 싸움을 위한 무기 제작자(엡6:17)이시다.
3. 내용 분해
1. 인사 엡1:1,2
2. 교회의 조직 엡1:3-14
3. 교회의 의식 엡1:15-23
4. 교회의 창조 엡2:1-10
5. 교회의 일치 엡2:11-22
6. 교회의 소명 엡3:1-21
7. 교회의 행위 엡4:1-6:9
8. 교회의 투쟁 엡6:10-20
9. 결론 엡6:21-24
4. 문학적인 문제
1)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 비해서 이 서신은 어떤 구체적 내용들이 거의 완전히 빠져 있다고 하는 점에서 아주 독특하다.
2) 저자는 독자와의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3) 에베소서는 어떤 특정 교회로 보내기 위해 쓴 서신이 아니라 서문에는 그 서신을 받게 될 특정 교회의 이름이 첨가될 수 있도록 공간이 있었거나, 혹은 가장 오래된 사본에서처럼 일반적인 인사말 외에는 다른 이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것 이라는 가설이 많은 지지자를 얻고 있다.
5.진정성
1) 마르시온 이후로 에베소서는 바울 서신들의 경경으로서 의심받지 않았으며, 이레니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후로는 바울이 쓴 것으로 아무런 도전도 없이 받아들여졌다
2) 에베소서가 중요한 개념들을 나타날 때, 바울과 다른 단어들을 사용했다는 사실과 관계할 때에만 놀랍다.
3) 골로새서의 단어 중 1/3가량이 에베소서에 다시 나온다. 이러한 단어의 일치는 에베소서 전체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4) 에베소서가 다른 모든 바울 서신들 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바울 서간집 전체와 용어상의 일치를 보인다고 하는 사실에 의해서 심각하게 의문 시 되어 진다.
5) 에베소서의 신학은 단순히 바울의 것을 확대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분명히 바울과 모순되고 있기 때문에, 바울과 다른 점들을 단순히 이 서신은 "엄격한 의기에서 케리그마"로써 간주될 수 없고, "지혜, 신비에 관한 지혜, 그리스도 자신의 신비에 대한 지혜의 명상" 으로써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설명할 수도 없다.
6.서신의 의도, 역사적 상황, 그리고 저작 시기
1) 독자들이 이방인 기독교인들이라는 것 외에는 그들의 입장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거짓된 가르침에 대한 구체적 묘사나 독자들 사이에서의 오용에 대한 것은 완전히 생략되었다.
2) 이제 이방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가운데 속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은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은 허물어졌고, 그를 통하여 "둘 다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되었읍니다." 라는 점이다.
3)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꿰뚫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묘사하며, 그럼으로써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간의 영원한 관계를 강조하고, 그 몸에 속하는 것의 중요성을 고려해 볼 것과 스스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자인지를 보일 것을 요구한다.
4) 에베소서에 나타나는 강한 셈어적 용어를 볼 때에 저자는 자기 스스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유대인 기독교인 이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이방 기독교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영지주의적 신화에 분명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아마도 강하게 헬라화 된 유대교의 영향도 함께 받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5) 저작 시기는 80년과 100년 사이의 어떤 시기란 것 이상으로 자세히 결정할 수가 없다.
골로새서와 특별히 유사하다는 것을 보아 저작 장소는 소아시아일지도 모른다고 가정 하지만 하나의 추측일 뿐이다.
7. 에베소서에 대한 전이해
오래된 사본들에서 엡1:1의 "에베소에 있는"이란 문구가 없는 것들이 발견되고, 또 3,4세기의 성서학자인 오리겐과 바실, 제롬등이 이 사실을 분명히 한 점으로 인해서 에베소서가 에베소로 보내진 서신인가 하는 점이 계속 논의 되어왔다. 바울이 에베소와의 긴밀한 관계를 볼 때에(행 20:18-35) 에베소에 편지 쓰면서 지난날의 에베소에서의 경험한 일과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또한 에베소서를 받아보게 되는 사람들이 바울 자신도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점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1:15, 3:2, 4:20-21) 이 편지는 누구에게 보내어진 것일까?
이 편지를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써 보낸 서신으로 이런 의미에서 "회람편지"이거나 아니면 단순히 편지의 형태를 취한 일종의 신앙적인 소책자일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정한 상황이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고 특정한 인물들에 대한 문안 인사가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8. 골로새서와의 관계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유사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에베소서 155구절 중 절반가량이 골로새서 본문과 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적 구조도 아주 비슷하다.
* 전체 내용 구조에베소서 1-3장 : 교리적 부분 골로새서 1-2장 : 교리적 내용에베소서 4-6장 : 윤리적 부분 골로새서 3-4장 : 윤리적 내용
* 내용전개 방식그리스도의 영광과 목적을 다루는 교리적 항목 -->개인 생활 적용 -->인간관계에 대한 권면
* 내용 비교 1) 독자들에 대한 감사와 그들을 위한 기도에 대한 항목 엡 1:15이하 골 1:3이하 2) 기독교인의 생활 : 새사람을 입으라 엡 4:17이하 골 3:5이하 3)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종과 주인에 대한 권고 엡 5:22-6:9 골 3:18-4:1
이런 점에서 "자매서신", "쌍둥이 서신"이라고도 부른다.그러나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장엄함을 나타내며(교회론), 골로새서는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의 위엄을 나타내는(그리스도론) 점에서 주제와 관점의 차이가 있다. 에베소서는 고요하고 명상적인 특색이 있는 반면에 골로새서는 논쟁적인 문체적 특징을 지닌다.
9. 내용 개요
(1) 인사와 감사와 중재 기도엡1:1-14 인사와 감사(하나님의 비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엡1:15-23 중재 기도 (그리스도=교회의 머리, 교회=그리스도의 몸)
(2) 하나의 거룩한 교회의 영광(2:1-3:21) 엡2:1-10 우리는 은혜 가운데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교회의 영광의 근거는 모든 인간이 은혜 가운데서 믿음으로 구원받아 교회로 인도하는 이유에 있다).엡2:11-22 우리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되어 성도들과 같은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엡3:1-21 이방인을 위한 중재 기도(그리스도의 비밀=이방인도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
(3) 권면과 교훈(4:1-6:20) 엡4:1-16 신앙과 교회의 통일성(몸, 성령, 희망, 주, 믿음, 세례, 하나님이 모두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사도, 예언자, 전도자, 목사, 교사도 하나)엡4:17-32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할 필요성엡5:1-7 "악의 목록"엡5:8-20 "덕의 목록"엡5:21-6:9 "가정의 법전"(골 3:18-4:6)엡6:10-20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기독교인의 전투
(4) 두기고에 대한 마지막 언급과 마지막 축도(6:21-24)
빌립보서(Philippians)
1.배경
바울이 제 2차전도 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본 뒤에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그 지방 수도인 빌립보에 들렸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이 지방은 정치의 중심지였지만 유대인의 회당은 없었다.
빌립보는 구라파 기독교의 출생지로서 구라파에서 제일 먼저 교회가 세워진 곳이 이 곳이다.최초의 신자는 자주장사 루디아였으며 바울과 실라가 사귀들인 여종 하나를 고쳐준 탓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서 옥사장과 그의 집의 식구가 회개하여 마침내 빌립보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바울을 대하는 사랑이 두터워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갔을 때에도 두 번 도운 일이 있었고(빌4:16), 지금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는 에바브로디도 편에 돈을 보내고 그리고 그로 하여금 바울을 시종 들게 했다(빌4:18).
그 후 에바브로디도가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다가 회복되어 빌립보에 돌아가기를 원했으므로 그 기회에 이 편지를 썼다. 로마에서 61,2년경 쓴 것이다.
2.내용과 주요 사상
빌립보에서는 두 논제가 뛰어난다.첫째는 복음인데 9번이나 기록하고 있다.복음에서의 교제(빌1:5),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빌1:7), 복음의 진보(빌1:12), 복음을 변명 (빌1:16), 복음에 합당하게(빌1:27), 복음의 신앙(빌1:27),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빌2:22),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빌4:3), 복음의 시초에(빌4:15)등이다.
바울은 복음의 정의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고 있지 않으나 그러나 복음의 중심을 두 구절에다 담고 있다. 즉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빌2:8)와 내가 가진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빌3:9)하는 구절들이다.전자는 복음은 그리스도가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이요 후자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신 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기뻐하라 또는 기쁨이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로마에 있는 바울은 원수들 의 방해와 그리고 언제 시행될지 모르는 죽음 때문에 불행한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 기뻐하는 것은(빌1:3),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이며(빌1:18), 그리스도를 위한 개인적 제물(빌2:17)과 그리고 그의 친구들의 선물과 호의(빌4:10) 때문이다.
그림설명 / 빌립보 : (행16:25-26) 공회당 및 교회의 유적지.
3. 내용 분해
1:1 - 2 = 서두인사
1:3 - 11 = 교회의 상태에 대해 감사하고 더 성장하도록 중재기도
1:12 - 26 = 바울 사조의 형편에 대한 언급
1:27 - 30 = 믿음의 싸움을 용감하게 견딜것에 대한 호소
2:1 - 5 = 겸손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올바릉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권고
2:6 - 11 = 그리스도 찬가를 삽입하는 계기를 제시
2:12 - 18 = 구원을 위한 싸움을 계속 권유
2:19 - 30 =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소식
3:1 - 21 = 육을 의존하는 잘못된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경고
4:1 - 9 = 일반적인 교훈들
4:10 - 20 = 빌립보인들의 선물에 대한 감사
4:21 - 22 =일반적인 안부
4:23 = 축도
4. 바울과 빌립보 교회
1) 빌립보에서의 바울의 첫 번째 선교는 사도행전 16:12-40에서부터 알 수 있다. 그의 첫 번째 체류는 오래 계속되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큰 교회를 설립하는데 이른 것 같지도 않다.
2) 그 교회는 특정한 직책을 맡은 사람들을 가지고 있었다.
3) 바울 자신은 아마도 54년이나 55년 늦가을에 처음으로 마게도냐로 돌아왔을 것이며 그때에 분명히 빌립보에 머물렀을 것이다.
5. 빌립보서의 저작 동기
1) 바울은 편지에서 자기가 받은 사랑의 증거에 대해서 자신의 가사를 표현한다.
2) 에바브로디도가 교회의 봉사를 하다가 걸린 병이 거의 죽음에 이를 지경까지 되었으므로 빌립보 교인들은 그를 더 큰 존경을 가지고 영접해야 한다.
3)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자기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해 줌 .
또, 디모데를 빌립보로 보내어 교회로부터 새로운 소실을 듣고자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선언
4) 교회교인들의 도덕적 행동 중에 결여된 내용을 지적해 주고 "행악하는 자들" 과 "그리스도의 원수들"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교회에 경고함.
6. 저작 시기와 장소
빌립보서가 어디서 쓰여 졌는가 하는 문제는 확실하게 대답될 수는 없다.
만약 빌립보까지의 여행 문제와 빌립보서 3장에 있는 논쟁과의 유사성 문제가 그 경우에 충분한 근거로 간주된다면, 에베소는 저작 장소로 추측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에베소에서의 보다 장기간의 감금을 가정한 것이 근거가 없는 것이다 여겨진다면, 가이샤랴보다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타당성이 있는 저작 시기는 53-55년 (에베소 설)이나, 56-58년 (가이사랴 설)이 될 것이다.
7.진정성과 통일성
1) 전통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빌립보서는 원래는 독립된 편지들 혹은 편지들의 단편 두 세개를 후대가 편집한 것이다.
2) 이 사실에 근거해서 3:2-4:3이 삽입된 것이라고 추측되었다.
3) 빌립보서는 연대상으로 연속된 세 통의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들 중에서 편집된 것이다. 이 편지들 중에서 감사의 편지는 에바브로디도의 도착 후에 즉시 쓰여 졌고, 두 번째 편지는 그가 회복된 후에, 그리고 세 번째 편지는 새로운 소실을 듣고 난후에 나중에 쓰여 졌다는 것이다.
4) 비록 우리가 서신의 각 부분을 지배하는 동기들을 주목한다고 하더라도 이 서신의 통일성을 증명 할 수도 없다. 새로운 자료들이 발견된다면 모를까 이처럼 개인적이고 상황의 제약을 받는 빌립보서와 같은 서신 문서의 기원에 대해 완전히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5) 빌립보서의 통일성은, 2:6-11에 바울 이전의 찬양시가 서신에 삽입되었다고 하는 널리 퍼진 가정에 대해서 의문시 되지는 않는다.
골로새서(Colossians)
1.배경
골로새라는 도시는 에베소에서 내륙 쪽으로 약 100마일 떨어진 곳이며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가까우며(골4:13) 초대 기독교 교회의 중심지였다.
그림설명 / 골로새 : (골1:1-2) 바울시대에는 2천 명 정도의 유대인이 살면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였었다. 멀리 호나즈의 마을이 보인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전도해서 세운 것이 아니었다(골2:1, 골1:4).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믿게 된 것으로 보이는 이곳 출신이며 바울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이며(골1:7)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다(몬2:) 바울은 이곳을 방문 하지도 않았다.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 62년경 골로새를 가는 두기고 편에 보낸 것이다. 에바브라는 자기로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로마까지 바울을 찾아갔다.문제는 골로새 지방에 나타난 이단 사상이었다.
1) 유대주의적인 할례(골2:11), 의식(골2:14), 음식과 절기등(골2:16)의 문제 2) 금욕주의와 고행(골2:16,20-23)의 문제 3) 천사 숭배(골2:18)문제 4) 인간 지식 숭배(골2:8)문제 등이었다. 이 문제들에 관해서 써 보낸 서신이다.
2.내용과 주요 사상
골로새서에서 눈에 뜨이는 것은 바울의 기독론을 설명한 골1:14-22의 말씀이다.그의 사랑하는 아들(골1:13)이라는 구절로 시작된 말씀은 계속 그리스도의 신성을 설명 하면서 그 안에는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9)라는 말씀으로 요약 하였다.
이 서신의 교훈 가운데서 구속이라는 말씀이 특출하다.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은 죄 사함을 얻는다(골1:14). 그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 한다(골1:20,22).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골2:14). 또한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는데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의문에 순종하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2:20, 골3:1)고 가르치고 있다.
본 서신의 주제는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골3:11)며 그리스도만이 주님이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3.내용 분해
1. 인 사 골1:1,2
2. 그리스도의 탁월성 골1:3-2:7
3. 교리에 있어서의 탁월성 골2:8-3:4
4. 윤리에 있어서의 탁월성 골3:5-4:6
5. 결 론 골4:7-18
4.교회의 기원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세우지도 않았고 심지어 골로새서를 쓰기 전에는 그곳을 방문하지도 않았다. 골로새에 있는 교회는 에바브라에 의해 설립되었다. 골로새에서의 에바브라의 사역은 바울에 의해서 위촉받은 것이며 어떻든 바울은 그 교회들을 아시아에서 자기의 선교지역에 속한 것으로 간주했고 에바브라를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전파해 준 자이며 우리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으로 인정했다고 하는 점이다.
5.진정성과 통일성
진정성을 재고하는 조심스런 근거들은 이렇다. 언어와 문체, 신학 특히 골로새서의 기독론,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관계이다. 여러 증거들이 지시하는 결론은 골로새서는 아마도 Justin 시대에도 사용되었을 것이고, 마르시온의 정경목록에도 들어있는바 바울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서신의 저작 동기
골로새에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의 위험으로부터 위협당하고 있었다. 거짓교사들의 거짓 구원교리에 대항하여 바울은 참된 교리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우주와 모든 피조물과 모든 천상적인 존재들의 머리와 기원이 되시며 그것들을 위해서와 인류를 위해서 화평을 가져오시는 분이다. 그분의 십자가는 영적인 세력들에 대한 승리이다. 그 분 안에서는 하나님의 본성의 충만함이 육신적으로 존재한다. 그 분 안에서는 온 세상이 존재의 완전함, 구원과 지혜와 지식의 완전함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이단적인 가르침 속에서 금욕주의 적이고 제의적인 자연숭배와 유대교의 제사주의 그리고 유대교적인 천사사상이 혼합된 형태의 신비 사상을 간파하고 있는데 아주 정확하였다.
골로새의 거짓 교사들이 그리스도께서 세계를 극복하신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제의와 금욕생활로 이러한 세력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역할과 그 분에 의한 영적인 세력들의 극복을 강조한 것이다.
저작 시기는 56-58년, 58 - 60년
저작 장소로 최근에 제안된 곳은 에베소이다. 그러나 명단에 누가는 바울과 에베소에 있지 않았고 행 15:37-39부터 마가는 2차 전도여행 이후 바울을 동행하지 않음.
두 번째 가정은 바울이 가이사랴에 수감되었던 기간에 쓰여 진 것으로 추측하는 데는 몇 가지 증거가 있지만 로마도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
1.배경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중요한 도시다.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에 이곳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서 전도한 결과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그 성에 사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항하여 소동을 일으켜서 바울은 할 수 없이 그곳을 떠나게 되었으나 그곳의 어린 신자들의 영적생활에 걱정이 있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 있는 동안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디모데는 그 교회의 두어 가지 문제를 가지고 왔는데 바울은 이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낸다. 주후52년경에 썼다.
2.내용과 주요 사상
이 서신의 내용은 대체로 두 면에서 볼 수 있다.첫째는 유대인의 박해 아래서도 데살로니가 교회가 굳게 서 있는데 대한 칭찬이요,
둘째는 저들 가운데 자라고 있는 어떤 잘못과 오해를 교정 시키는 일이다. 여기에 주요 문제는 예수의 재림문제이다. 사람이 예수를 믿다가 예수 재림하시기 전에 죽으면 주님이 재림하시더라도 만나보지 못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3.내용 분해
1. 인 사 살전1:1-11
2. 교회의 상태 살전1:2-10
3. 사도와 교회와의 관계 살전2:1-3:13
4. 교회의 문제들 살전4:1-5:11
5. 결 론 살전5:12-28
4.저자
본서의 저자가 자신을 가리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1:1) 라고 밝혀주고 있다. 실루아노와 디모데의 이름이 함께 소개되어 있지만, 이것은 실루아노와 디모데 모두, 또는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본서를 쓰는데 어떤 역할을 했다거나 불러 준 것을 받아썼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첫 절 이후에 바울은 끊임없이 자신의 인격으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을 지시하는 일인칭 단수를 사용하고 있다(2:18,3:5,5:27).
본서가 바울의 저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19세기에 바우르(F.C.Baur,1792-1860)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서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보다 훨씬 덜 교리적이며, 또한 대수롭지 않은 내용이다. 본서는 칭의가 율법 행위에 의한 것이라는 관념을 공격하지 않는다. 수개월이란 짧은 시일 안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데살로니가전서 1:78과 4:10에 묘사된 바와 같이 강렬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리가 없다. 데살로니가전서 2:14-16의 유대인들에 대한 강경한 언어는, 바울의 저작인 로마서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라는 말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본서는 이상할 정도로 지나치게 바울 적이다. 본서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특히 고린도전서와 후서)에 있는 문장들과 비슷한 문장들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본서는 바울이 아니라 A.D. 70년 이후에 바울의 제자가 재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쓴 것이다.
이 편지가 정말 바울의 것이냐에 관해서는 바우르일파의 부정설이 있을 뿐, 대체로 의심 없이 바울의 편지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바울의 부정설은 유력한 학설이 아니므로 여기에 논할 필요를 인정치 않는다라고 일축해 버린다.
아무튼 우리는 바우르의 견해를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견해에 대해, 헨드릭슨은 대 사도의 모든 문서가 다 동등하게 교리적 특성을 가져야만 한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울 서신들은 어떤 구체적 상황으로부터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각 교회의 상황은 다르다. 따라서 어떤 교회에는 교리의 명백성을 제시해 주어야 하고, 어떤 교회에는 훈계에 주어야 하며, 어떤 교회에는 책망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둘째 견해에 대해 헨드릭슨은, 바울이 오직 단 하나의 사상만 가진 사람이었는가 반문한다. 더우기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은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의 상황과는 달랐다.
세째 견해에 대해, 우리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19:30,비교 20:16,막10:31)는 예수의 말씀으로 답변할 수 있다.
헨드릭슨 역시 그럴 수 없는가 반문하면서, 사실상 본서에 의해 제공된 일련의 정보는 사도행전 17:6의 서술에 의해 제공된 것으로 확증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째 견해에 대해, 헨드릭슨은 순수한 슬픔 및 고통을 느끼는 것과 무서운 실재의 계시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우리는 주를 거역하고 제자들을 핍박하는 죄를 일삼는 동족(유대인)에 대한 바울의 애절하고도 뜨거운 사랑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견해에 대해, 헨드릭슨은 첫째와 둘째가 반대되는 논의라고 공박하였다. 사실상 다섯째 견해는, 오히려 바울의 저작임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바우르의 학설을 여지없이 반박한 학자들은 코흐(Koch-1848), 뤼네만 (Luneman-1850), 그림(Grimm-1850), 랑게(Lange), 로이스(Reuss-1853)등이다.)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뒷받침해주는 외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본서는 말시온(Marcion)의 정경 (A.D. 140년경)에 포함되어 있다.)
(2) 본서는 무라토리 단편 (The Muratorian Fragment)에도 들어 있다.)
(3) 2세기 말의 교부인 이레니우스(Irenaeus,130-202), 터툴리안(Tertullian, 160- 220),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150-213)가 본서를 바울이 저작으로 알고 인용하였다. 이들보다 먼저 폴리갑(Polycarp,69-155), 저스틴 마티어 (Justin Martyr,100-165) 가 인정하고 있었다.)
(4) 옛 라틴어 역 성서와 옛 시리아 역 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5) 데살로니가전서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편지들의 최초 사본인 The Chester Beatty Codex (A.D.220년경)에 단편적인 형태로 발견된다.)
(6) 유세비우스(Eus- ebius)와 오리겐(Origen)도 본서를 바울의 것으로 인용하였다.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뒷받침해 주는 내적 증거는 논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무수하다. 본서는 바울의 처녀작이며 원형대로 우리에게 전해진 신약 중에 제일 먼저 쓰여 진 책이다.)
그 몇 가지 증거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본서 자체가 저자로서 바울을 지시하고 있다(1:1,2:18).
(2) 본서는 형식과 구조에 있어서,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부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울의 것으로 인정하는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 그리고 갈라디아서와 똑같다.
(3) 본서에 사용된 용어는 명백하게 바울의 것이다. 본서의 단어 중 80%이상이 소위 바울의 4대 서신(롬, 고전. 후, 갈)에서도 발견된다. 만일 옥중서신을 바울의 것으로 인정한다면, 4대 서신과 옥중서신 속에서 거의 그 90%를 발견하게 된다. 만일 목회 서신이 추가된다면 그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프레임,헨드릭슨).15)
(4) 본서에는 바울 서신에서만 발견되는 특징 있는 절들이 나타나고 있다 (프레임 핸드릭슨)
(5) 본서는 바울의 성품을 명백하게 반영하고 있다(핸드릭슨). 형제들이 장점에 대한 애정어린 인식(왈커),18) 목회적인 배려와 애정(부르스) 그의 개종자들에 대한 강렬한 사랑과 그들의 영적 복지에 대한 염려, 그들의 믿음과 자비에 대한 그의 기쁨, 고귀한 자립심(글로악)등. 이 점에 대해 프레임은 그에 의해 믿게 된 개종자들에 대한 포근한 애정, 부족한 그들에 대한 신뢰, 목회적 문제에 대한 재치 있는 처리, 사도로서의 권리에 대한 인식, 사랑의 양보, 모든 일에 있어서 독자들을 동료로 의식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동정과 기도를 위한 호소 등을 들고 있다.
(6) 본서에는 선교사인 목회자로서 살고 있는 사도 바울과 방금 태어난 고난 중에 성장하는 교회와의 가장 깊은 관계가 생생하게 묘사도어 있다(宮村武天).
지금까지의 논의를 미루어 볼 때, 본서가 바울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5. 대 상
1. 데살로니가
데살로니가는 테르마(Therma) 혹은 테르메(Therme)라는 옛 도성 위에 세워진 성읍이다. 그 테르마란 이름은 지금도 그 지방에 있는 테르마에(Thermae)라는 온천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의 살로니카인 데살로니가는 로마 제국 마케도니아의 중요 도시 살로니카(테르마)만 동북 모통이에 바다를 향하여 노천극장처럼 앉아, 앞으로는 물길, 뒤로는 유명한 로마 신작로(The Via Egnatia, 이탈리야 동해안에 있는 두라키엄(Dyrrhachium)항구로부터 에게 바닷가에 있는 네압볼리에까지 통하는 매우 중요한 길이었다)로 사방을 연락하고 있다.
주전 약 315년에 마게도냐 왕 카산데르(Cassander)가 성을 재건하고, 자기 아내인 데살로니가(마케도니아 왕 빌립 2세의 딸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의붓 누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부근에 있는 몇 개의 작은 도시와 촌락을 합하여 데살로니가라는 이름의 도시를 세웠다.
이 도시는 지역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이는 그 부근에 넓고 비옥한 평야를 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자연 항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주전 168년 마케도니아 로마에 정복되자 데살로니가는 그 사대 행정 구역 중 하나의 수도로 작정되었으며, 또한 해군 기지가 되었다. 주전 146년, 이 나라가 로마 제국 또한 해군 기지가 되었다. 주전 146년, 이 나라가 로마 제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을 때에도 총독의 주재지로 택정되어 사실상 마케도니아의 수도로 되어 있었다.
로마 판도에 편입된 후에도 데살로니가는 계속적으로 번창하여 갔다. 테르마 만의 제일 궁벽한데 있는 제일 좋은 항구에 건설되었을 뿐 아니라 유명한 로마 신작로가 그 도시를 통과한 까닭에 그 당시 아드리아와 헬레스폰트 사이의 가장 중요한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주전 58년에 거기서 귀양살이의 얼마를 보냈던 키케르(Cicero)는 말하기를, 데살로니가는 '제국의 무릎'이라 하였다. 주전 49년 가이사와 폼페이와의 첫 번 내전 때에 데살로니가는 폼페이 편에 섰었다. 그러나 주전 42년 제2차 내전 (브루스터와 캐시우스 안토니아와 옥타비안) 때에는 안토니아와 옥타비안 편에 섰었음으로, 이 충성의 보답으로 데살로니가는 "자유시"의 자격과 특권을 향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회의 자유와 행정관 선거의 자유를 갖고 있었다. 이 자유선거에 의해 선출된 행정관을 읍장 혹은 시장이라 하였다(행17:68).
이점에 대해 역사가인 누가는 정확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그러므로 그 옆에 로마 식민지인 빌립보 시에 비하여 이 데살로니가는 헬라적인 성격이 더 농후하였으며, 그 후에도 계속적으로 그러하였다.
바울 당시에는 마케도니아인과 헬라인 이외에 로마인과 동양인 그리고 다수의 유대인이 잡거하는 복잡한 도시였다(참조: 행17:1). 주후 150년경에는 인구 20만을 헤아려 '전 마케도니아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바울의 시대 이후의 로마 역사를 보면, 데살로니가는 고트족의 침입을 막는 요새가 되었다. 중세기에는 주후 904년에 사라센에게 점령되었고, 1184년에는 십자군에게 점령되었으며, 1185년에는 노르맨의 손에 들어갔었고, 주후 1430년에는 터키 땅이 되었다. 1914-1918년 사이의 세계 대전에서는 터키의 중요한 군사 기지로서 콘스탄티노플 다음 가는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업에 관련된 옛 도시로서, 로마를 제하고는 이 살로니카처럼 그 당시의 성격과 중요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가 없을 것이다.
2.데살로니가 교회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도시인 데살로니가에 교회를 설립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다. 이 교회의 설립 경로에 대해서는 누가의 기록인 사도행전 17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바울이 친히 써 보낸 이 두 편지에서도 그 밖의 많은 참고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 중에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에서 첫 선교 사업을 시작하여 미구에 경건하고 흥성한 교회를 설립하였으나, 그 반동으로 매를 맞고 갇혔다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이적으로 구출되었다. 그는 그곳을 떠나 에그나티아 신작로를 따라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지나 서남쪽으로 백 마일을 걸어서 그중 큰 도시인 데살로니가에 도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유대교 회당에 들어가 늘 하던 대로 성경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께서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한 후, 바로 예수께서 그 그리스도시라고 확증하였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살전 1:10 4:1516)과 그 왕국의 완성에 관하여 증거 하였다.
이 복음 전도의 결과로 얼마의 유대인과 경건한 헬라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 그리고 귀부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면, 그들 외에도 순 이교도로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살전 1:92:14).
바울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의 성공적인 선교는 유대인들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하여 이 유대인들은 저자의 괴악한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실라가 머물고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야손의 집을 습격하였다. 그러나 허탕 친 그들은 야손과 몇 사람의 성도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가이사에 대한 반역죄로 몰아 고발하였다. 그러나 이렇다 할 증거가 없었으므로 곧 보석이 되었다. 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업에 관련된 옛 도시로서, 로마를 제하고는 이 살로니카처럼 그 당시의 성격과 중요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가 없을 것이다.
6. 내 용
본서의 내용 및 특징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바울이 본서를 쓰게 된 동기와 목적을 알아야만 한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 선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을 때,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폭력배들을 선동하여 함께 바울 일행을 잡아 족치려고 소동을 일으켰다(행17:1-10). 이에 형제들이 밤에 바울과 실라를 베레아로 피신시켰으며, 바울과 실라는 베레아에서도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결실을 얻었다(행17:10-12). 이 사실을 알게 된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레아까지 쫓아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므로, 바울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 형제들이 바울을 아덴까지 안내해 주었다. 이 때 바울은 자기를 안내해 준 이들에게, 디모데와 실라를 속히 오도록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행17:13-15).
오라는 명령을 받은 디모데와 실라는 즉시 고린도로 옮겨 간 바울을 찾아와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핍박과 환난의 소식을 전하였다(살전 3:1-3). 어린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에 초조해진 바울은, 직접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고 싶어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살전 2:17-18).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대신하여 그들을 굳게 하고 위로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보냈다(살전 3:1-3). 그러나 실라는 다른 지방(빌립보나 베뢰아)으로 보내진 듯하다.
그 후에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건너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유하면서 함께 장막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한편 그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다(행18:1-4). 디모데와 실라가 마케도니아로부터 고린도로 와서 복명하였다(행18:5). 그 내용은 바울이 염려한 것과 달리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이 잘 성장하고 있고 또한 바울 일행을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이다(3:6). 그들은 핍박을 받으나 용감했으며, 그 굳센 크리스챤 품격은 널리 알려졌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꾸준히 바라며 지내고 있었다. (어드맨). 그러나 반면에 걱정거리도 적지 않았다. 우선 바울이 떠난 후 삼 개월밖에 안 된 그 때였지만, 벌써 유대인들은 바울의 사명과 인격에 대하여 악평과 중상을 여지없이 퍼뜨리고 있었다(3:5).
둘째, 그 교회는 핍박 받는 중이라서 성도들의 인격과 재산까지도 위협받고 있었다.
셋째, 이교도 출신인 교인들 중에는 여전히 옛날의 부도덕한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4:1-6).
넷째, 바울의 전도를 듣고 주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단정하여, 일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교인들이 있었다(4:11-12, 살후3:8). 또한 주의 재림 전에 죽은 자들 때문에 몹시 슬퍼하는 이들이 있었다(4:13-18).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해 감사하는 (1:2-3) 동시에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고린도에서 본서를 쓰게 된 것이다.
본서의 내용은 첫째, 소개와 인사(1:1),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한 감사와 기도(1:2-4), 그리고 각처에 소문이 자자한 그들의 믿음에 대한 칭찬이다(1:5-10).
둘째, 과거에 대한 바울의 회고, 즉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아비가 자녀에게 하듯 복음을 전하고 가르친 것 (2:1-12), 말씀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올바른 자세와 믿음의 시련에 대한 권면(2:13-16), 그리고 직접 가보고 싶었으나 뜻을 이룰 수 없어서 (2:17-20) 대신 디모데를 파견하였으며 (3:1-5), 그의 복명을 통해 위로를 받고 기뻐한다(3:6-10)는 것이다.
셋째, 바울은 그들의 사랑의 성장을 위해 기도한다(3:11-13).
넷째, 신자의 윤리 및 교리적 교훈, 즉 바울은 순종과 거룩(4:1-8),형제애와 근로(4:9-12), 부활과 재림(4:13-18), 재림의 시기와 그 대책95:1-11)에 관해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교역자들에 대한 태도(5:12-13)와 부족한 형제들에 대한 도움(5:14-15)에 관해 가르친다. 또한 그는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5:16-18)고 권하고, 취할 것과 버릴 것(5:19-18)고 권하고, 취할 것과 버릴 것(5:19-22)에 관해 훈계하고 있다.
다섯째, 바울은 그들이 주의 재림 때까지 성결하도록 기도해 준다(5:23-24).
끝으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인사하며 축도해 준다(5:25-28). 본서의 내용을 소개하는 가운데 대체로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본서의 특징을 다음과 같다.
(1) 개인적이며 임시적이다(어드맨).
(2) 교리를 진술하기보다는 바른 생활을 장려하고 있다(어드맨). 본서의 교리는 조직적인 것이 못되며, 종말론에 치중하고 있다. 이 점은 전. 후서에 공통되는 사실이므로 두 서신을 '바울의 종말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본서가 바울의 최고의 사본이라는 점을 미루어 보아, 초대 교회의 신앙의 중요한 요소가 바로 종말론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갖 설립된 어린 교회에 보낸 편지답게,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것처럼, 부모의 애정과 같은 사랑과 자비가 흘러넘치고 있다(글로악).
(4) 그 뿐만 아니라 본서는 참으로 사도적이며 권위적이고 영감적이다(어드맨).
(5) 선교사요 위로자요 예언자로서의 바울의 성격이 그림처럼 드러난다. 그의 확실한 신앙, 그리스도를 향한 전적 헌신, 그의 無私, 그의 기도, 부단의 감사, 복음의 대적에 대한 의분, 거짓된 비방에 대한 그의 예민한 감정, 친구들의 기도와 동정을 바라는 인정, 그의 기지, 예의, 그의 사랑(어드맨).
(6) 초대 교회의 전도의 열심, 핍박에 대한 인내, 목자에 대한 존경, 그리고 재빠른 믿음의 성장 등이 잘 드러나 있다.
어드맨은 전. 후서의 특징을 가리켜 이 두 잛은 편지는 실생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나 또는 정신적 종교적 광명을 탐구하는 모든 자에게 깊은 의의를 제공해 준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7. 기록 연대와 장소
A,K,L 사본 등에는 "아덴에서"로 되어 있으나 신빙성이 없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제2차 선교여행 중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록 연대를 규명하려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지내고 있을 때 그를 재판한 아가야 지방의 총독인 갈리오(행 18:12 이하)의 연대를 참조해야만 한다. 이 점에 대해 렌스키가 잘 설명하고 있다.
1909년에 회색의 석회석 비석이 델피(Delphi) 채석장인 하기아스 엘리아스(Hagias Elias)에서 발굴되었는데, 이 비문에 델피의 시민들에게 주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의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갈리오의 이름 (행18;12) 뿐만 아니라 "(Lucius Junius Gallio,my friend and proconsul of Achaia") 가장 중요한 시대, 즉 클라디우스의 12년째 (26대황제)라는 기록이 있었다. 이 진술은 이 사건을 52년의 아우구스트 1세와 1월 25일 사이에다 위치시키고 있다. 총독은 겨우 1년간 근무하였고, 2년도 채우지 못했었다. 황제의 명령은 이 지명된 총독을 4월 1일에 로마를 떠나 임지로 가게 하였고 그 이듬해 4월 25일에 돌아오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갈리오는 52년 5월 1일에 고린도에 왔고 바울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전서는 51년 말에서 52년 초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흑기와 토마스는 50년경, 에어하트는 50 또는 51년경, 헨리와 궁촌무천은 51년경, F.B.마이어는 51-52년경, 바니스와 光田 -52년경, 글로악은 52 또는 53년 초, 헨드릭슨은 51-53년경으로 보고 있다.
위의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본서는 50-53년경 사이에 고린도에서 쓰여 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본서는 바울 서신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데살로니가후서(2thessalon)
1. 배경
고린도에 있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한지 수개월 후에 기록한 것이다.데살로니가에 갔던 디모데는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간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 왔으나 그러나 그곳의 몇 사람은 예수의 재림에 대하여 너무나 신경이 과민하여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하면서 아무 일도 안하고 주님이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남의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고, 비신자들의 비난이 비등하다고 해서 이 둘째 서신을 기록하여 다시 디모데 편에 보냈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주님의 재림에 대해 전조가 되는 세 가지 사건이 있다.1)은 배도하는 일이 먼저 있다 (살후2:3).2)는 어떤 억제하는 영향의 움직임이 있다(살후2:6,7).3)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악한 자가 나타난다(살후2:4,9).
여기에서 불법의 비밀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비밀이 세상에서 발하여 결국은 필연적으로 충돌하며 그리스도가 승리할 것이다. 이 승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되어 적그리스도를 멸하며 그리고 성도들에게 상을 주 실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데살로니가 교인은 주님의 재림은 저들을 악에서와 그리고 세상의 긴장에서 해방 시켜 주어서 일을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조심하여 날마다 자기의 해야 될 일에 충성을 다하면서 준비하고 있다가 주님이 오실 때에 그를 반가이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3. 내용 분해
1. 인 사 살후1:1,2
2. 박해중의 기대 살후1:3-12
3. 사건들의 설명 살후2:1-17
4. 준비하라는 권면 살후3:1-15
5. 결 론 살후3:16-18
4. 저자
본서의 저자가 자신을 가리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1:1)라고 밝혀 주고 있다. 본서도 전서와 마찬가지로 실루아노와 디모데 모두, 또는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본서를 쓰는데 어떤 역할을 했다거나 불러준 것을 받아썼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첫 절 이후에, 바울은 끊임없이 자신의 인격으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을 지시하는 일인칭 단수를 사용하기도 하였다(3:17). 본서가 바울의 저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한동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19세기 초 슈미트(Schmidt,1801)가 최초로 바울 저작설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주로 독일 계통의 근대 학자들3)에 의해 바울 저작 설에 대한 반대 의견이 주장되었다. 그들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1) 본서 2:1-12과 전서 4:13-5:11을 비교해 볼 때, 전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임박하고도 갑작스런 것으로 묘사하는 반면에, 본서는 재림 전에 있을 여러 징조들을 기술하고 있다(슈미트).
본서에 나오는 종말론은 전서와 달리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 생겨난 기독교적인 전망을 대표하는 이론이다. 따라서 본서는 바울 시대 이후에 기록된 것이다 ("Kern",4) "Marxen,Reginald H.Fuller,Norman Perrin ") 또한 본서에 나오는 "불법의 사람"은 완전히 유대적 사상으로서 전서와의 사상적 근거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전서와 계시록을 조화시킨 후대인의 가작이다(in 흑기, p.226).
(2) 본서 2:11,12,13,의 엄격한 예정설은 바울의 것이 아니다(Perrin).
(3) 본서의 매우 많은 부분이 전서의 반복이라는 점은, 본서가 다른 사람에 의해 모방된 것이라는 증거이다(Wernle, Holtzmann).7) 그러한 이유로 [스피타(Spitta)는 본서를 디모데의 저작으로 보고, 버키트(Burkitt:전서 2:18과 후서 3:17은 후에 바울이 추가한 것이라 함)는 두 서신을 실라의 저작으로 보았다](Bailey).
(4) 매우 많은 점들에 있어서 본서는 순수한 바울의 서신들과 다르다. 즉 매우 냉혹하고(덜 우호적이며, 더욱 공적이다), 또한 전서보다 훨씬 더 유대적 색깔이 짙다(Werde).
(5) 인사 (살후 3:17)가 의심스러워 보인다. 그것은 확실히 위조자가 본서를 바울의 저작처럼 보이려고 한 기묘한 시도이다.
(6) 바울 이후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 신적인 속성과 기능을 부여하기 시작하였다(살후 2:163:5,살전3:11-13,Fuller).11) 두 서신의 기도문에 나타난 이러한 차이는 본서가 바울의 생존 시에는 쓰여 질 수 없었음을 보여 준다(Perrin). 우리는 이상과 같은 반대설을 하나하나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설에 대해 토마스는 [두 서신간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종말의 사건에 대한 두 서신에서의 다른 측면들을 강조할 것을 요구한다]13) 라고 답변하고 있다. 전서에서는 데살로니가 교인 중에 죽은 자 때문에 슬퍼하는 자가 있어서 그를 위로할 겸(4:13-18)재림의 임박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가르침을 받은 일부 몰지각한 신자들이 재림이 임박했다 하여 무위도식하고 남에게 폐를 끼쳐 교회를 어지럽히게 되었다(살후 3:10-12). 그러므로 바울은 좀 더 조직적으로 재림 문제를 다루어, 그들로 하여금 착실하게 재림을 위해 준비하도록 재림 전의 징조들에 관해 교훈한 것이다. 이 점은 전서 5:6에도 시작되었다.[더우기 재림에 관한 두 가지 관념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징조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설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은 놀라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참조 단11;1-12:13,마24:1-44,눅17:20-37)](헨드릭슨). 본서의 종말론이 유대적이라는 것은 본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런 것이다.
둘째 설에 대해 헨드릭슨은 로마서 8:28,39, 9:10-24,그리고 에베소서 1:4,11, 2:10등을 쓴 바울이, 왜 본서 2:11,12,13을 쓸 수 없었겠는가고 반문하고 있다.
셋째 설에 대해 모페트(Moffatt)는 [전 후서의 집필 시기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동일한 저자가 같은 내용의 말을 반복한다는 것은 잇을 수 있는 일이고, 더욱이 전서로 말미암아 독자들에게 어떤 오해가 생긴 처지가 되었다면 반복의 방법을 통해서 재강조할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넷째 설에 대해서는, 수신자의 상황의 변화로 보아 양서간의 분위기의 차이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트리(Guthrie)는 [두 서신 사이에 유사점과 차이점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바울이 저자라고 하는 사실을 매우 합리적으로 만들어줄 만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섯째 설은 논의의 가치가 없으며, 바울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여섯째 설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신적인 은혜의 근원으로 보았으며(1:1,5:28),마땅히 기도를 드려야 할 대상으로 (3:11,12), 더욱이 인간과 우주의 미래 운명을 결정지으실 이로(5:1-11)보고 있다. 토마스(p.293)는 [내적인 문제로 근거를 삼는 어떠한 논증들도, 바울이 저자라고 하는 서신 그 자체의 주장이나 강하게 입증된 전통적인 견해를 무너뜨릴 만한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결론지었다.
방금 논의에 언급된 이들 외에도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지지하는 이들은 웨른레(Wernle),핀들레이(Findlay,), 클레멘(Clemen), 휘셔(Vischer), 하이린히(Heinrici), 밀리간(Milligan), 부세트(Bousset), 멕킨토쉬(Mackinto -sh) 돕슈츠(Von Dobschutz), 모페트(Moffatt), 놀링(Knowling), 하르낙 (Narnack) 디벨리우스(Dibelius), 레이크(Lake), 다이스만(Deissmann)등이다](프레임).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지시해 주는 외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1)이레니우스의 글에 본서가 인용되었다
(2:8-9inIrenaeus,'Adv.Haeres'iii,7.2,2:3,4in 'Adv.Haeres'v.).
(2)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도 본서를 인용하였다(3:1,2 in Clement of Alex.Stromata v.3)
(3) 터툴리안 역시 본서를 인용하였다(2:1-3 in Tertullian, Resurrection
(4) 출처가 본서라고 거의 확실시 되는 두 구절이 폴리캅(Polycarp)의 저서에서도 나타난다.
(5) 12사도의 교훈집에도 본서가 인용되었다(3:8,10 in Didache).
(6) 저스틴 역시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명확히 보여 주며, 또한 본서를 인용하였다((2:3,4 in Justin Martyr,'Dial.cum Tryph.c.
(7) 이그나티우스도 본서를 인용하였다(3:5 in Ignatius,Rom.10).
(8)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non)과 마르시온 정경 (Marcion Cannon)에 본서가 수록되어 있다.
(9) 고대 수리아역이나 라틴 역에도 본서가 포함되어 있다.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뒷받침해 주는 내적 증거는 무수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반대설을 논의할 때에 이미 언급되었으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더욱이 전서의 저자가 바울이라는 것을 증명할 때 사용했던 증거들은 후서의 저자가 바울이라는 것과 후서가 일찍부터 정경으로 인정되었음을 증거 하는 보충 자료가 된다]라고 한 밀리간(Milligan)의 주장은 아주 타당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미루어 보아, 본서 역시 바울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5. 대상
본서의 대상에 관한 논의는 전서와 같다.
6. 통일성
본서가 두 개의 편지로 되어 있다는 의견(1:1-12,3:6-16 그리고 2:13,14 2:1-12, 2:15-3:5 3:17,18)이 제시되어 왔으나, 실질적인 지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전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이론은 주로 감사를 표시하는 두개의 구절(1:3 이하,2:13 이하)과 두개의 기도문이 있다는데 기초하고 있다. 본서를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 이론은 바울이 결코 상투적인 문장 형태를 벗어나서 글을 쓰지 않는 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정은 증명된 일이 없다. 비록 그 가정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문제될 것이 없음은 그 이론들에 불리하게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Best). 또한 본서의 통일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어떤 사본상의 권위 있는 증거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서가 원래의 형태를 잘 보존해 왔다고 결론지어도 무방할 것이다(토마스).)
7. 내용
본서의 내용 및 특징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본서를 쓴 바울이 곧 이어 후서를 쓰게 된 동기와 목적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 두 통의 편지 어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모르고 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고린도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에게 또 그 이상의 어떤 정보가 당도했으리라는 점이다](렌스키). 이 정보가 어떻게 전해졌는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바울이 서둘러 재차 편지해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재림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은 전서에서 재림 문제에 관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한 바 있었다. 특히 재림의 임박성을 강조하였다(3:13,4:13-5:11,23). 그런데 異設이 일어나 주의 날이 이미 왔다고 하며 인심을 동요시키는 자가 있었다. 더구나 그것을 성령의 역사로 잘못 믿거나 또는 말로 또는 바울의 편지를 조작하기까지 하면서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다(2:2,3:17). 아마 전서 5:1-3의 영향 때문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러한 건전치 못한 주장이 발생한 것 같다(2:1-12). 그 결과 세상의 의무를 팽개치고 매일 매일을 흥분 상태로 무위도식하는 자들이 생기게 되었다(3:11). 게다가 어린 데살로니가 교회는 여전히 핍박과 환난을 받고 있었다(1:4).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위로 및 격려해 주고 또한 재림 전에 있을 징조들을 가르쳐 주어, 현실 생활에 더욱 충실한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본서를 쓰게 된 것이다.
본서의 내용은 첫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소개와 인사(1:1-2), 그들의 믿음의 성장과 형제간의 사랑의 풍성함 그리고 인내에 대한 감사(1:3-10) 및 기도(1:11-12)이다.
둘째, 교리적 교훈으로 재림에 대한 자세(2:1-2), 재림의 징조인 배도하는 일과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의 출현(2:3-4), 불법의 비밀의 활동을 막는 자의 역사(2:5-8),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악한 자의 역사(2:9-12), 구원받을 자에 대한 당부(2;13-15), 그리고 성도를 위한 중보기도(2:16-17)이다.
셋째, 실천적 교훈으로 기도의 요청 및 성도에 대한 염원(3:1-5)과 규모 잇게 행하라(3:6-15)는 권면이다.
끝으로 바울은 평강을 기원하고(3:16),문안하며 축도해 준다(3:17-18). 본서의 내용을 소개하는 가운데 대체로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본서의 특징 역시 전서와 같다.
8. 기록 연대와 장소
일반적으로 본서는 전서를 쓴 후 얼마 지나서 않아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후서의 상황은 전서의 그것과 거의 같았고 또 바울이 교회에서 주는 충고나 교훈도 전서와 거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장소는 같은 고린도이다(전서의 기록 연대와 장소 참조).
9. 전서와 후서의 관계
이제 남은 문제는 전서와 후서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전. 후서의 관계를 취급함에 있어서 첫 번째의 문제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통일성에 관한 것이다. 즉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의 교회인가, 그렇지 않으면 둘로 갈라진 교회인가 함이다.이 점에 대해 아돌프 하르나크(Adolph Harnack), 커소프 레이크(Kirsopp Lake)등의 몇몇 학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유대인의 집단과 이방인의 집단으로 분리된 교회라고 보았다.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이방인들에게, 후서는 유대인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사실상 전서 1:9의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라는 구절과 동 2:14의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는 구절을 보면, 전서의 수신자가 이방인들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다른 한편, 후서에는 유대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것도 지적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서가 유대인에게 보낸 편지임을 확증할 만한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김용옥).아무튼 전서에는 이방적인 요소가, 후서에는 유대적인 요소가 뚜렷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만으로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갈라져 있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더욱이 바울이 갈라져 있는 교회라고 해서 두개의 편지를 따로따로 보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바울은 여러 파가 난립해 있던 고린도 교회에도 그 파들에 대한 개별적으로 편지를 보낸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교회의 단합을 위해서 전체 교회를 상대로 편지를 썼던 것이다(김용옥) 그는 누구보다도 교회의 일치를 강조한 사람이었다(고전 1:101-13,빌2:23, 4:2,3,엡4:3-6등).
또한 본서에 나타나 있는 바울의 감사((1:3)와 칭찬(1:3,4)을 보더라도 데살로니가 교회가 분열된 교회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사실상 본서에는, 바울이 크건 작건 분열의 문제를 안고 있는 고린도교회나 빌립보교회에게 한 것과 같은 일치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없다. 결국 우리는 데살로니가전. 후서가 한 교회에 보낸 바울의 두 편지라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두 번째의 문제는 전, 후서의 순서에 관한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견해는 전서가 후서보다 먼저 쓰여 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요한네스 바이스(Johannes Weiss), 외스트(J.S.West)등은 집필순서가 바뀌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전서가 후서보다 내용이 풍부한 것은 후서를 쓴 다음에, 부족했던 것을 보충하여 전서를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서5:1).27) 반면에 현재의 전서와 후서의 순서가 본래의 그것과 같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이는 레온 모리스(Leon Morris)이다.그는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1) 전. 후서에 다 같이 기독교인의 고난, 주의 재림, 태만한 자 등에 관한 것이 언급되어 있는데, 후서에서는 전서에서보다도 그러한 사항들에 관한 논의가 좀 더 심각하게 철저하게 다루어졌다. (2) 전서의 일반적 논조는 그 편지를 집필했을 당시의 바울의 심경을 그대로 잘 반영시키고 있다. 즉 전서를 썼을 때의 바울의 심경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관한 좋은 소식을 들은 뒤였기 때문에 매우 명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서의 논조가 다소 냉담한 것은 그동안 시간이 경과하면서 상황이 변했다는 사실과 데살로니가 교회의 일보 교인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3) 전서에서 바울이 일신상의 회상을 적은 것은 그것이 첫 편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런 것으로 볼 수 있다. (4)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생활에는 계속적인 발전의 흔적이 보인다. 전서 1:6에서는 그곳 개종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었는데, 후서 1:3에서는 그들의 신앙이 자란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전서 3:12과 4:10에서는 바울이 교인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갖도록 권유했었는데, 후서 1:3에서는 바울이 그들의 넘치는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비록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후서가 나중에 보낸 것임을 시사 한다고 생각된다.[결국 우리는 이 두 편지의 순서에 관한 이론이 확정적인 근거를 못 가진 것이라고 보며, 반면에 현재대로의 순서가 다 타당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김용옥)
디모데전서(1Timothy)
1. 배경
디모데는 아버지는 헬라인, 어머니는 유대인 사이에서 루스드라에서 태어났다(행16:1, 20: 4). 그는 어려서부터 유대인의 신앙안에서 자랐으며 성서를 배웠다. 바울의 제자가 되어 그의 제일 사랑하는 제자로서 제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바울을 따르기 시작 하였다(행16:1-3).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과 같이 여겼으며 그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하여 마케도니아(행19: 22), 고린도(딤전16:10), 에베소(딤전1:3)등지에 바울의 파송을 받아 가기도 하였으나, 바울이 첫 번째 죄수로 로마에 있을 때 그는 함께 있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어 목회하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 교회는 점차 확장 되었지만 동시에 이단을 주장하는 거짓교사도 일어나고 또 교회 치리에 필요성도 생기고 그리고 실제 생활의 순결에 대한 주의를 줄 필요 들이 생겼다. 그래서 젊은 디모데로 하여금 이러한 일을 착오 없이 잘 처리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이 서신을 기록하여 보낸 것이다. 주후66년 경 썼다.
그림설명 / 51년에서 52년 사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모자이크는 몬테알레 대성당에 있는 모자이크의 세부로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맡기는 바울을 묘사하고 있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이 서신은 회화체로 되어있고 그리고 열정적인 개인적 어조로 되어 있어서 내용을 확연하게 나누기가 어렵다. 마치 즉흥적으로 연설하는 사람이 불쑥 한 마디씩 던지는 식의 우연한 회화를 하는 종류의 글이다.
첫 부분에서 바울이 에베소에 디모데를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딤전1:3-17). 마치 어려운 임무를 그만 두려는 것을 말리는 것처럼 이 소명에 대한 책임을 자주 상기 시키고 있다(딤전1:18, 딤전4:6, 12, 16, 딤전5:21, 딤전6:11, 20). 단체로서의 교회의 경건, 직무 및 교리상의 문제들이 드러나 있으며 그리고 목회 행정의 방침을 약술하고 있다. 개인적 훈계 (딤전4:6-6:19)의 부분에서 바울은 목사와 그 자신 의 목회와의 관계,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각 단체를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서신 전체에 걸쳐서 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사랑의 마음이 넘치고 있다. 바울은 돈에 대한 충고를 하고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고 하였다. 또 바울은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조금씩 들라고 권면 하였다(딤전5:23). 이것은 마셔도 좋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약으로 마시되 조금씩 마시는 것이며 또 바울 시대에는 포도주가 보통 쓰이는 약이었다.
3. 내용 분해
1. 서 론 딤전1:1-17
2. 교회에 대한 임무 딤전1:18-4:5
3. 개인적 충고 딤전4:6-6:19
4. 결 론 딤전6:20,21
4. 목회서신
*목회서신이란?
디모데에게 보낸 두개의 편지와 디도에게 보낸 한 개의 편지를 가리켜 "목회서신"(the Pastoral Letters) 또는 "목자 서신"(the Shepherd Letters)이라 부르는데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1227-1274)가 "이 세 서신은 하나같이 목회규칙을 취급하고 있다"고 말 한 이유에서 기인하며, 1849년 영국 성경학자 헨리 알포드가 "목회서신"이라는 명칭으로 공식 사용 할 것을 주창함으로 일반화되었다. 이 세 서신만이 지역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개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디모데는 에베소지역을, 디도는 그레데섬을 책임 맡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서신은 지역 교회를 잘 지도하도록 훈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유대적 영지주의 형태의 이단적 교훈들로부터 신앙을 방어할 것을 교훈한다.
1. 수신자
디모데(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소아시아의 루스드라 태생(행 16:1이하)이다. 바울이 두 번째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 들렸고 이때 디모데가 바울의 일행이 되어 전도 여행에 나섰으며 그 이후로 디모데는 바울의 가장 충실한 동역자가 되었다(빌2:19-22). 디도는 바울에 의해 개종되었다(딛 1:4). 갈 2:1이하에서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동역자로 나타나고 있으며,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 디도를 고린도로 보냈고, 마케도니아에서 만나 다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모금을 위해 고린도로 돌려보냈다(고후 7:5이하, 8:23이하). 신실한 주의 종(참아들-딛 1:4, 동무-고후 8:23) 개인적으로 보내진 것이지만 이 편지들은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딤전 6:21, 딤후 4:22, 딛 3:15).
2. 기록 시기
바울이 1차 로마 감옥 생활을 마친 후부터 순교하기까지의 기간 동안에 목회서신이 기록되었다고 본다. 로마에서 석방된 시기가 62-63년으로 추정되기에 석방된 이후 계속 전도여행을 하면서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디모데전서를(딤전 1:3), 아가야의 니가볼리에서 디도서를(딛 3:12), 그 이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때에 디모데 후서(딤후 4:6-11)를 기록했다.
3. 기록 목적
사도들의 시대는 임박한 종말 기대로 특징지어져 있었고, 이로 인해 세상에 대한 무관심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재림의 지연과 더불어 사도이후 시대에 세상에 대한 무관심적 혹은 부정적 태도도 조정되어야 했다. 어떻게, 언제 종말을 맞아야 될까에서 종말이 오기까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적응해 가며 생활해야 할까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에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기구와 조직이 필요했다. 그것은 내적으로는 "이단"의 위협이, 외적으로는 "박해"라는 위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적 안정을 위해 교회의 제도화를 추구했으며, 외적인 안정을 위해서 세상에 대한 올바른 적응을 꾀해 나갔다. 그리고 정통 신조와 교회 성직자에 대한 순종만이 외적인 반대나 내적인 분열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최선의 방편임을 가르쳤다. 이것이 목회서신의 목적이다.
1.성육신 부인, 도덕 폐기론 주장하는 영지주의와 편협한 유대주의로부터 교회보호 (딤전 1:4-7 / 딤후 2:23-26 /딛 1:1-13) 2. 영적 나태를 막고 경건의 훈련과 도덕적 품성을 고양하도록(딤전 5:1-25/ 딤후 3: 14-17 /딛 2:1-10) 3.교직제도와 그에 따른 교역자들의 자질을 규정함(딤전 3:1 / 딛 1:5)
4. 내용구분
<1> 디모데 전서
1) 인사/1:1-2
2) 거짓 교사들의 교리에 대한 공격 /1:3-20거짓 교훈은 유대적 요소를 가진 영지주의 형태이며, "꾸며낸 이야기와 지리한 족보 이야기"(4절)는 영지주의적 경향을, 그리고 "율법"(8-9절)에 대한 언급은 유대적 요소를 가리킨다.
3)교회질서 /2:1-3:16 교회의 기구적 조직에 대한 관심이 나타난다.가. 교회예배/ 2:1-15 :세상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는 후대의 시도이다.나 성직제도/ 3:1-16 :감독의 자격과 집사의 자격이 규정되고 있으며 기독론적 찬양시(16절)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4) 거짓교사들의 윤리에 대한 공격 /4:1-10 거짓교사들의 윤리가 참 교사들에게 기대되는 행위와 대조되고 있다.
5) 교회질서 / 4:11-6:19 기독교 성직자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으며(4;11-5:2) 과부들에 관한 규정도 밝히고 있다.
6) 결론 /6:20-21
<2> 디모데 후서
1) 인사/1:1-2
2) 바울을 본받아 증거 한 것에 대한 권면(1:3-2:13) 바울로부터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받고 따르며 지킬 것을 권면하고 있다.
3) 모든 면에서 선한 행동을 보이라는 권면(2:14-4:8) 피해야 할 거짓교사들의 본보기와 따라야 할 사도 바울의 본보기가 제시되고 있다. 속되고 헛된 것(2:16)-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 말(2:18)-허탕한 이야기(4:4)는 거짓 교훈을 말하며, 이에 반해 성경은 "영감 된"것, 유익된 것으로 성경을 말하고 있다(3:16).
<3> 디도서
- 그레데 교회가 상당히 혼란스럽고 믿음의 선한 행위가 없었기에 교회 내의 질서 확립과 바른 신앙관의 정립이 시급한 상태였다(1:10-13 / 2:1-10). 이 그레데 교회에서 목회하는 디도에게 올바른 권면과 격려가 필요하였다.
1)인사/1:1-4
2) 성직제도 / 1:5-9 감독과 장로의 자격 및 그들에 대한 지시
* 두 직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3) 거짓 교훈에 대한 공격 /1:10-16
4) 올바른 기독교적 행동에 대한 권면 /2:1-3:7 표준적인 도덕 교훈이 나온다.
5) 거짓 교훈에 대한 또 다른 공격 /3:8-11
6) 개인적 언급 /3:12-14
7) 마지막 인사 /3:15
디모데후서(2Timothy)
1. 배경
디모데후서는 바울 서신중 최후의 것으로 두 번째 로마에 갇혀있는 동안에 기록한 것이다.주후 67년 경 이었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에서 일단 석방되어 그 후 서반아에 갔다가 다시 동방으로 와서 고린도와 밀레도를 거쳐(딤후4:20), 드로아까지 갔다가(딤후4:13) 드로아에서 갑자기 체포되어 다시 로마로 호송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때에 바울의 제자 가운데 그를 버린 사람들이 많았으며(딤후1:15-4:10)바울과 함께 있는 사람은 누가 뿐이었다. 또한 바울은 자기가 마지막이 가까워 진 것을 알고(딤후4:6-8) 더욱 디모데를 보기를 원하여(딤후4:9,20), 이 서신을 기록한 것일 것이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이 마지막 서신의 내용은 개인적 감상, 행정 정책, 회상, 교훈, 슬픔, 확신 등이 뒤 섞여 있다. 이 서신의 주 목적은 바울 자신은 이미 끝나 버린 어려운 임무를 감당해야 할 디모데에게 기운을 돋우어 주기 위한 것이나,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신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우리를) 부르심은 오직 자기 뜻과 은혜대로 하심(딤후1:9)임을 상기 시키면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전쟁에 나아가는(딤후2:3)심정으로 충성할 것을 말하고 있다. 개인 생활이나 교회와의 공적 관계에 있어서 항상 주의 종임을 알고 논쟁을 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도우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알렸다.
3. 내용 분해
1. 인 사 딤후1:1,2
2. 목회적 모범 딤후1:3-3:17
3. 마지막 권면 딤후4:1-8
4. 결 론 딤후4:9-22
4. 내용 분해에 따른 개론
(2) 목회적 모범
과거의 전례를 말하고 있는데(딤후1:3-8) 바울은 자기가 선조로부터 전해 받은 신앙과 디모데가 그의 어머니와 외조모로부터 길러진 신앙을 칭찬했다. 그리고 비록 반대를 당하고 교회에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우리 주를 증거하기에 부끄러워 말라 (딤후1:8)고 권고 하면서 자기의 과거의 경험을 말하였다(딤후1:12). 또한 현재의 문제로서(딤후2:1-13) 운동 경기자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칙을 충성되이 지켜야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적 관계에 있어서(딤후2:14-26) 쓸데없는 논란을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영원히 강하게 서있게 하라고 권한다. 미래에 대한 전망에 있어서(딤후3:1-17)마지막 시대에 배도하는 일이 일어나 악이 만연하 고 거짓 스승이 생겨날 것을 경고한다(3:1-9). 이러한 때에 신앙을 지켜야 하는데(딤후3:10-17)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딤후3:12)것을 알아 바울이 보여준 꾸준한 인내를 본 받아 지킬 것과 그리고 영감으로 된 성서의 교훈을 기억하라고 명한다.
(3) 마지막 권면
마지막 유언삼아 디모데에게 명하는 바는 어떤 핍박아래서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딤후4:1-2) 것이며 , 바울이 밑은 바 일에 모두 충성스럽게 마치고 이제는 받을 상이 주님의 손에 놓여 있다고 자신에 대해서 최후의 양심적 증언을 하고 있다. (딤후4:7-8).
(4) 결 론
각종 소식과 인사로 끝맺었다.
디도서(Titus)
1.배경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에서 첫 번 옥에 갇혔다가 풀려 나온 뒤 마케도니아에서 기록한 것 같다. 디도는 이방인의 한사람이었으며 바울과 함께 역사한 청년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교회의 형편이 낙담적이다. 새로이 설립된 교회로 교인들은 품행이 경솔한 것을 2장에서 볼 수 있다. 바울은 이 짧은 서신 가운데서 여섯 번이나(딛1:16, 딛2:7,14,딛3:1, 8, 14)선한 일에 대해 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는 윤리적 해석(딛1:12,13)과 특히 할례당의 논쟁(딛1:10)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교회에서 디도는 목회하였다.
2.내용과 주요 사상
디도서의 일반적 내용은 교리적인 강조점을 제외하고는 디모데 전서와 같다. 이 서신은 비록 개척 전도자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해도 개척의 범위를 벗어나 정책과 신앙을 굳게 한 교회로 언급하고 있다.여기에서는 교훈이나 생활에 있어서 그 표준을 건전 이라는 데 두고 있다.
3.내용 분해
1. 인 사 딛1:1-4
2. 건전한 교훈의 관리 딛1:5-16
3. 건전한 교훈의 설교 딛2:1-15
4. 건전한 교훈에 의한 조언 딛3:1-11
5. 결 론 딛3:12-15
4.내용 분해에 따른 개론
(1) 인 사
여기에 진지한 인사 가운데는 건전한 교리적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다.
(2) 건전한 교훈의 관리
장로를 세우는데 있어서 건전한 도덕적 표준을 세우라고 권하고 있다(딛1:5-9). 반대론에 대한 가장 좋은 공격은 훌륭한 생활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장로의 기능중의 하나가 바로 거짓 교훈의 횡포를 막는 일이다(딛1:10-16).
(3) 건전한 교훈의 설교
건전한 교회안의 여러 그룹에도 적용되어야 하는데 늙은 남자(딛2:1-2), 늙은 여자 (딛2:3-5), 젊은 남자(딛2:6-8), 및 종(딛2:9-10)들에게 각각 건전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이러한 도덕적으로 고상한 생활을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되도록 교훈하시는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선한 일을 하기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딛2:11-15).
(4) 건전한 교훈에 의한 조언
그리스도인의 사회를 향한 의무를 말하고 있다.집권자들을 존경할 것과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선한 국민이 되라는(딛3:1-11). 그리고 다시 한 번 쓸데없는 이론적 말씨름을 경고한다.
5) 결 론
몇 가지 사사로운 말을 하고 끝난다.
빌레몬서(Philemon)
1. 배경
이 서신은 1장으로 되어 있으며 바울의 서신 가운데서 가장 짧다. 이 빌레몬서는 바울이 자기 친구 빌레몬에게 다른 친구 오네시모를 위하여 써 보낸 순수한 개인적 서신이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지도적 인물이었으며 그 지방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집에 모여서 예배드릴 정도로(몬1:2) 큰 집에 살고 있었던 부자였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는데 주인에게 무엇을 훔쳐가지고 도망한 사람이었다(몬1:11, 몬1:18).
2. 내용과 주요 사상
오네시모는 로마 까지 왔다가 어떻게 해서 로마에 있는 바울과 접촉했는지 몰라도 하였든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는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 그는 감금 생활을 하고 있는 바울의 시종을 드는 좋은 신자가 되었고 바울은 또한 그를 아들과 같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속한 사람이므로 그를 로마에 그대로 데리고 있을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오네시모도 주인에게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주인은 자기 종에 대해 생사권을 가졌었다. 만일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찾기만 한다면 어떠한 행동이라도 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두기고 편에 골로새 교회에 보낼 서신을 기록하는 참에(골4:7)빌레몬에 게도 간략한 서신을 써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면서(골4:9)오네시모를 종으로 영접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로 대해달라고 부탁 하였다.그리고 오네시모로 인해서 손해를 입은 것이 있으면 바울 자신이 보상하겠다고 청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의 종 오네시모를 놓아 주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그리스 도 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 달라고만 하였다.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하여 주인과 종의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고 하는 새로운 수준에 놓아 주었다.
3. 내용 분해
1. 인 사 몬1:1-3
2. 믿음과 교제 몬1:4-7
3. 바울의 간구 몬1:8-20
4. 작별 인사 몬1:21-25
히브리서(Hebrews)
1. 배경
히브리서는 바울 서신에도, 일반서신에도 들지 않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 서신이다. 저자에 대해서는 누군지 알지 못하며 오리겐이 말한 대로 누가기 히브리서를 기록했는지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이 가장 적절한 대답이다. 이 서신은 어떤 개인이나 개 교회로 보낸 편지가 아니라 어떤 그룹의 교회들에게 보낸 것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인 것만은 틀림없다. 팔레스틴에 사는 사람들인지 로마에 사는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기록한 연대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다. 대략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멸되기 전의 것이라고 보는 설과 다른 설은 약 주후 90년경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독자들의 박해 경험들에 대한 언급(10:32-34)이나 사상적 분위기가 바울이후 시기를 반영하고 있으며 로마의 클레멘트가 히브리서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서신의 독자들은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아니고 얼마 동안 믿어 오다가 핍박을 받아 낙심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옛 종교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흔들리는 사람이 있었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이 서신의 전체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계시가 율법을 통하여 온 계시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계속 비교 하면서 더 좋은 이라는 낱말을 중심하고 전개 시키고 있다.천사들의 손으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그 아들을 천사들 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신 것은 완전한 인간 세계에 들어오시기 때문 이었다(히2:9, 히2:10, 히2:14-18). 그는 영원히 계시기 때문에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고(히7:24), 그의 봉사 하시 는 곳도 하나님의 보좌 앞, 하늘의 성소이다(히9:11,12). 더욱이 그가 드린 제사는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은 제사장으로서 그 자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완전한 제물을 단번에 드려서 율법아래서 범한 죄를 옮기셨다(히9:15, 히10:10, 19). 그리스도가 마련하신 이 영원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달성할 수 있으며 이 믿음 은 또한 구약 시대의 영적 지도자들이 가졌었다.이 믿음이 저들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보증과 인내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에게는 붙어 다니는 위험이 있다.첫째는 무관심 이라고 하는 본문에 흘러 떠내려간다고 표현한 태만이다(히2:1).
둘째는 불신앙의 위험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의 태도였다(히3:7-12).
세째는 불순종의 위험이다.다음은 미숙과 짐짓의 위험이다.마지막으로는 아들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솔직하게 거역하는 것이다(히12:25). 이것이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히12:24) 예수의 피로서 구원에 이르게 한다.
특별히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반차를 레위인이 아닌 아브라함과 동 시대인 멜기세댁에서 출발하고 있다. 제사장직은 레위지파에서 배출되었으나 예수님이 대 제사장이라고 하면 유대율법과 전통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12지파보다 앞 선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른 것이다.
3. 내용 분해
히브리서는 선포(케리그마)와 교훈(디다케)이 번갈아 나오는 독특한 설교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서론 없이 바로 본문이 시작된다.
선포: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의 구주이신 예수 (1:1 - 3:6)
교훈: (3:7 - 4:13) - 불순종의 본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끝까지 참는 자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선포: 대제사장이신 예수 (4:14 - 5:10)
교훈 : (5:11 - 6:20)- 이러한 대제사장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초보적인 교리를
버리고 성숙한 경지로 나가야 한다.
선포: 다른 자들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대제사장 예수 (7:1 - 10:18)
교훈: (10:19 -39) - 대제사장이 우리를 위하여 휘장을 열어 새롭고도 산 길
을 주었으므로 확고한 믿음과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선포: 믿음의 선구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11:1 - 39)
교훈: (12:1 - 13:17) - 우리를 훈련시키는 아버지 하나님의 훈련을 끝까지 잘
견디어야 한다.
마지막 축도와 인사: (13 :18 - 25
4. 개 론
(1) 더 좋은 사신
더 좋은 사신은 아들이다.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계를 창조 하셨다(히1:1-3). 천사들은 하나님의 부리는 종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들이심으로 천사보다 우월하다.
(히1:4-14). 그러므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에 태만해서는 안 된다(히2:1-4). 천사는 천적인 존재로서 모든 인간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사신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영원한 승리와 영광은 없었다. 그러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에게는 죽음을 이기신 승리와 영원한 영광이 임하였으므로 그는 보다 좋은 사신이다(히2:5-18).
(2) 더 좋은 사도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 집의 아들로 충성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우월하다(히3:1-6). 그러므로 조상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불신앙을 버리고 확고한 신앙을 유지해야한다(히3:7-19). 또한 모세는 백성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 하는데 실패 하였으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안식은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다.그리하여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우월하시다(히4:1-10). 그러므로 불순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증거 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한다(히4:11-13).
(3) 더 좋은 제사장
아론은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히5:4)이 며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충성스럽게 중재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약한 인간인지라 자신의 약함과 매 해 반복되는 제사를 드렸다(히4:14-5:4).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부터 대제사장의 임명을 받았고(히5:5-6).그리스도는 살아계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고(히7:1-17)아론은 그의 생전에만 대제사장 이었지만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대제사장이 되셨으므로 아론보다 우월하다(히7:18-25). 그리고 그리스도는 단번에 자기를 드리심으로 온전케 되셨다(히7:26-28).
(4) 더 좋은 약속
옛 언약에 의한 제사 제도는 완전히 무효가 되고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의 시대 가 왔다(히8:1-13). 그것은 성전이나 여러 가지 성전 기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죄인들 을 향하여 봉사하는 대제사장이 요긴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예수가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옛 언약의 내용은 1년에 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지만 그러나 일반 백성은 지성소에 들어 갈수 있는 길이 막혔었다.이것이 곧 옛 언약의 결함이었다(히9:1-10). 그러나 새 언약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은혜를 주시려고 이 땅으로 돌아오실 것이다(히9:11-28).
(5) 더 좋은 제사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로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것이다 (히10:1-4). 그러나 그리스도가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인해서 누구나 믿음으로써 죄만이 아니라 깨끗이 씻어내는 새 언약이 이루어 졌다(히9:11-28).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으므로 짐짓 죄를 범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히10:19-31).
(6) 더 좋은 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내로써 이 믿음을 가져야한다 (히10:32-39). 다음에 유명한 믿음장이 나온다(11장). 믿음의 정의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히11:1). 구약시대에도 믿음으로 산 예를 보여준다.환난과 박해는 신앙의 부수물이다. 신앙은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고 경주하는 것이다.그러므로 피곤과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히12:12) 용기를 내어야 한다(히12:1- 17). 그리스도인의 목적지는 하늘에 있는 시온 산이다(히12:18-24).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히12:25-29).
(7) 결 론
믿음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사회적 관계에서와(히13:1-6)신령한 관계 안에서 할 것을 권하였다(히13:7-17).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히13:8)기 때문에 그리스께 대한 변치 않는 충성이 있어야 한다.
5,문학적 성격
히브리서는 출처와 정체가 애매한 책으로 편지와 같은 성격과 함께 신학적 논문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히브리서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알려져 왔으나 편지라기보다는 편지의 형태를 본뜬 "신학적 논문" 혹은 "설교"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의 내용이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선포와 교훈의 혼합적인 내용 구성은 이미 믿는 자들을 위한 권면, 지도, 위로의 목적으로 기록된 교훈적이고도 교육적인 설교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 저자 문제
히브리서의 저자의 정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바울이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어휘나 문체, 내용의 구조의 면에서 차이가 있으며 구약 성서의 인용 방법과 신학에서 많은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는 히브리서의 저자에 대한 견해는 헬라 배경을 갖고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7. 수신자 혹은 독자
히브리서에서의 경우 히브리라는 용어는 이방인들과 구별하여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그러므로 단순히 이 문서가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보내진 것으로 생각되었었다. 그 증거로는 ㄱ.유대적 사상. 특히 구약 제사 제도에 대한 지식이 전제된 그리고 구약 사상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서적 증명 방법 / ㄴ.많은 구약 성서의 인용 / ㄷ. 구약에 대한 신약의 우월성과 예수가 모세나 대제사장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학적 논증 시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 편지의 독자가 단순히 기독교인 들, 즉 헬라 사상에 익숙한 기독교인들이라는 주장도 강력히 대두 되었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히브리서에는 특별한 유대 기독교적 특징이 있다고 하기는 어려우며 언급된 구약 지식의 정도는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수준이며 히브리서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이방인들을 위한 전도, 설교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영지주의적 이원론적인 사고가 제시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문서의 독자층은 유대인 기독교인이기보다는 헬라 사상에 익숙한 기독교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8. 히브리서의 주제
하나님을 절대 타자 혹은 초월자로 파악했던 고대 세계에서는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했었다 히브리서의 주제도 이러하다. 즉 히브리서 저자는 중보자 혹은 중간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에게로 접근하려고 하는 그래서 완전(2:10,5:9,7:11 등)을 성취해보려고 애쓰는 당시 독자들을 향해 "오직 예수만이 " 그 길임을 증언하고 그렇게 함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확신 가운데 거하게 하려고 했다.
야고보서(James)
1. 배경
이 서신의 기자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이다.신약성서에는 야고보가 셋이 있는데(막3:17, 15:40, 마13:55)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영도자였고 예루살렘 회의를 사회하였다(행15:13).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각지에 흩어져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써 보낸 것으로 주후 50년경에 기록 했을 것으로 본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이 서신은 전부 106절로 되어 있는데 그 중 54절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이 서신은 교회 보다는 그리스도적 생활과 증거에 있어서 몇 가지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주고 그리고 핍박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 것을 격려하는 서신이다.
야고보서를 선행의 사도라고 불러 사랑의 사도 요한과 믿음의 사도 바울과 그리고 소망의 사도 베드로와 한 고리에 묶고 있다. 여기에는 조직적인 교리의 제시는 없다. 흔히 야고보와 바울의 교훈이 정 반대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둘의 차이는 강조점과 정의의 문제일 뿐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응답한 것은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한 것이다(롬4:).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린 것은 믿음은 행위로 말미암아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증거 한 것이다(약2:21-24).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3. 내용 분해
1. 인 사 약1:1
2. 참된 종교의 본질 약1:2-27
3. 참된 신앙의 본질 약2:1-3:12
4. 참된 지혜의 본질 약3:13-5:18
5. 결 론 약5:19,20
5. 개 론
(1) 인 사
성경본문 1:1
(2) 참된 종교의 본질
참된 종교에는 시련이 있기 마련인데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 며(약1:2-11), 시련과 유혹을 끝까지 참는 자는 복이 있다(약1:12-18). 그리고 선을 행하기에 힘써야 한다(약3:1-12).
(3) 참된 신앙의 본질
참된 신앙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을 피해야 하며(약2:1-13), 행동없는 신앙 고백을 피해야 하며(약2:14-26), 혀를 재갈 먹여서 참견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약3:1-12).
(4) 참된 지혜의 본질
참된 지혜는 선행으로 보여야 하며(약3:13-18), 신령한 생활에서 지혜는 겸손 (약4:1-10) 이며, 율법의 관계에서는 비방하지 않는 것이 지혜이고(약4:11-12), 장사하는 사람에게 는 자랑하지 않는 것이 참 지혜인데 그것은 모든것이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이 기 때문이다.
(5) 결 론
지혜의 목적은 미혹당하는 자들을 구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6. 성경상의 야고보 이야기 뜻 : 발 뒤 축을 잡음
1. 12사도 중 큰 야고보로 부친은 세베대 모친은 살로매다.그 아우 요한과 같이 갈릴리 해변에서 어부 생활을 하다가 베드로의 형제와 같이 예수의 부르심을 받았다(마4:20). 그 성격이 급하여 어떤 날 주님과 같이 사마리아를 지나다가 유숙하고자 하나 허락지 않을 때에 그 형제가 주님에게 와서 그 곳에서 천벌을 내려 멸하기를 청 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이 "우뢰의 자식"이라는 별명을 주셨다(눅9:54, 막3:17). 베드로와 같이 그 형제는 주의 특별하신 교훈을 받고 또 다른 사도들이 보지 못하는 이적을 여러번 보았다(마7:1, 막5:37, 막1:29-31, 막13:3-14, 14:32-35).
2. 12사도 중 작은 야고보. 그 부친은 알패오 모친은 마리아 형제는 요셉이다(마10:3, 막5:40).
3. 예수의 동생(막6:3).그는 예수의 부활 때부터 믿기 시작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큰 기둥이 되었다(갈2:9).예루살렘 공회의 회장(행15:13).야고보서의 저술(약1:1).전설에는 주후 62년에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하고 혹은 69년에 유대 관리 들이 죽였다고도 한다.
성경에는 여러 명의 야고보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믿음을 실천하는 신앙으로 이름을 남긴 예수님의 동생도 있다. 보잘 것 없는 나사렛 마을의 목수 집안에서 태어난 야고보는 가난하기는 했지만 신실한 부모와 형제들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대교의 엄격한 생활 습관을 익혔다.
예수의 바로 밑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어린 시절부터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더욱이 아버지 요셉이 죽은 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형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야고보로 하여금 형제로서 의 우애를 초월하여 가장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생활하면서도 야고보는 그가 사랑하는 형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하고 선행을 하며 사는 예수의 모습이 그에게는 단지 자랑스러운 형의 모습일 뿐이었다. 공생애 기간에 집을 떠난 그의 사역을 수행하는 예수가 세속적인 혈연관계만을 생각하는 야고보에게는 가족을 버리고 객지를 전전하며 이상한 짓을 하는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형을 사랑하고 의지했던 만큼의 무게로 이제는 배신감과 불안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불신의 마음은 사랑하던 형 예수가 처형되는 데에도 찾아가지 않는 무정한 동생이 되게 했다. 그러나 인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부활 사건이 있은 후 그의 영혼을 덮고 있던 불신의 구름은 걷힌다. 예수는 더 이상 "육신의 형"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그의 마음을 점령한 것이다. 뜨거운 믿음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야고보의 인생은 오순절 날 성령세례를 받고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다. [예수의 동생]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믿음의 행진을 하는 야고보의 활약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야고보는 무릎이 단단하게 굳어 [약대 무릎을 가진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기도를 많이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야고보는 중생한 이후에도 계속 율법을 준수하며 성별된 생활을 하였는데 이러한 신앙관은 그가 성경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야고보서]에 잘 나타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야고보는 스스로 믿음을 실천하며 삶으로써 불신자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았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의로운 사람]으로 인식되던 야고보의 인생은 오히려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그 막을 내렸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어 삶 전체를 통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야고보의 굳은 믿음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미움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돌과 몽둥이에 맞아 죽은 야고보의 영혼은 그의 영원한 주인이신 순간까지 경건하게 살다 간 야고보의 신행일치의 삶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입으로만 믿음을 자랑하는 오늘의 외식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주고 있다.
진정한 예수 사랑과 올바른 복음전도는 믿음을 실천하는 "성화된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야고보 (예수의 동생)
4. 사도 중 한 사람인데 다대오의 부친(눅6:16)주후 44년에 헤롯왕에게 참살 당했다.(행 12:1-2).
7. 야고보서의 특징
본서는 내용적으로 볼 때, 그리스적이라기 보다는 유대적이다. 이것은 어떤 이론적 체계를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교훈을 단편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그 교훈은 시험 아래서의 인내(1:2-4,12:15),39) 죄와 죄의 경향성에 대한 경고등이다. 특히 본서는 실제적인 행동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개혁자 루터가 본서를 "지푸라기의 서신'이라 혹평하였다. 그러나 루터가 야고보서를 혹평한 것은 그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야고보가 강조하는 행위란 일반 윤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믿음에 따르는 행위인 것이다.
8. 기록 연대와 장소
본서의 기록 연대는 본서의 저자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윤곽이 밝혀진다. 이상근 박사에 의하면, 저자를 주의 형제 야고보로 보는 편에는 예루살렘 총회(49년, 행15:1-29,갈2:9)이전으로 보는 설과 총회 이후 그의 순교직전으로 보는 늦은 설이 있다. 전설의 근거로는, (1) 본서에 예루살렘 총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2) 교회란 말이 없고 회당이라 한 것, (3) 교회의 직분에 대해서도 감독이나 집사란 것은 없고, 장로, 교사로만 되어 잇는 것은 아직 이런 직책의 제도가 성립되지 못한 것, (4) 전체적으로 유대적 색채이고 이방인과 이방인 교회의 탄생에 대해 전연 침묵하고 있는 것,(5) 그 종말론(5:7-11)은 초대교회의 주의 재림을 임박한 것으로 본 것,(6) 골로새서 기록 당시(60년경)에 벌써 싹텄던 영지주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7) 로마서(56년경 기록)는 본서, 이후에 기록하였으며, 본서의 문제(약2:14-20)에 답한 것(롬3:28,4:1-6)으로 보는 것 등을 들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45-48년으로 보는 티이쎈(Thiessen)을 지지한다. 그러나 그가 내 세우는 근거들은 그 다시 설득력 있는 것이 못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가 내 세운 근거를 순서대로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루살렘 총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은, 총회 이전에 기록된 것을 증거 할 수도 있지만, 반면에 총회 이후에 서신을 썼다 해도 총회에 관한 것을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2)에 대해서는 회당뿐만 아니라 교회(5:14)란 말도 사용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3)의 직제 문제에 있어서 장로와 교사를 언급했다는 것만으로는 교회가 직제나 제도적으로 원시 형태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4)의 이방인과 이방인 교회의 탄생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오히려 야고보가 이방교회를 기정 사실화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편협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의미에서의 새 이스라엘(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그리스도인들 모두 포함)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5)의 종말론에 대해서는 임박한 종말론이란 예루살렘 총회(49년)이전에만 있었고 그 이후에는 그런 사상이 사라졌다고 하기 어렵다. (6)의 60년경에 싹튼 영지주의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이 서신의 목적과 특징이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요 실천적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7)의 로마서가 본서의 문제에 답한 것이라는 주장은 추측일 뿐이지 결정적인 근거가 없다.
이상의 논의에 의하면 기록연대가 49년 이전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같은 이유로,[이방 그리스도교에 대한 것과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방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을 들어 기록 연대가 50년의 예루살렘 총회 이전에 쓰여졌다]고 하는 깁슨의 견해도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흑기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각지에 교회를 형성하는 데에는 많은 햇수를 요한가고 보고, 또 이 편지를 로마서의 영향을 받아서 쓰여진 것으로 보아 62-65년경으로 본다.
바클레이는 야고보서가 후대의 것이라는 이유를 제시해 준다.
[첫째로 예수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 서신의 주제는 교회원들의 잘못과 결점, 불충분함과 불완전함, 죄와 과오들이다. 초기의 설교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은혜와 영광으로 열중하고 있었다. 이에 비하여 후대의 설교는 때때로 오늘의 설교가 그렇듯이 교회원의 불완전함에 대한 장광설이 되었다. 둘째로 보편적인 사실은 부자에 대한 비난이다(2:1-3,5:1-6). 부자에 대한 아첨과 부자의 오만은 이 편지가 쓰여 진 당시의 현실적인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초기의 교회 안에는 부자가 거의 없었거나 또는 전혀 없었던가 이었다(고전1:26-27)
흑기와 바클레이가 내 세운 근거들, 그리고 야고보서의 저자가 주의 동생 야고보의 설교와 교훈을 기억하며 기록했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야고보서의 기록연대는 야고보의 순교(62년)전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서신이 쓰여 진 장소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보고 있다.
베드로전서(1Peter)
1. 배경
베드로 전서의 저자는 12사도 중의 하나인 베드로이다. 주후 64년경 기록하였을 것이다
본문에는 바벨론에서 기록된 것이라고(벧전5:13)말했으나 실상은 로마를 가리키는 은어일 것이다. 이것은 소아시아 여러 도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이다
그림설명 / 베드로 : 코사 작품. 이 그림에는 바위 사이에 작은 새와. 냇물. 및 폐허가 보이고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술적 세계로 이끌어 들이는 듯하다. 인간성을 표현하는 방법과 데생이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 112*55CM 브레라 미술관 소장.
2. 내용과 주요 사상
이 서신을 받아 읽을 사람들은 핍박을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위로의 말이 필요했다.여기에는 희망이 그 지배적 사상인데 흔히 이 책을 가리켜 희망의 서신이라고 한다.로마서의 중심 사상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는 헬라인 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여기에는 베드로가 그리스도와 가진 개인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예수가 죽으셨을 때에 가졌던 의지할 곳 없던 감정이 예수가 부활하셨을 때에 그의 소망은 살아났다 (벧전1:3).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벧전1:8) 네가 나를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21:1 5-)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는(벧전5:2) 권면은 요21:15-17의 말씀을 반영 하고 있다. 베드로는 다섯 번이나 그리스도의 고난을 말하고 있는데(벧전2:2, 벧전3:18, 벧전4:1, 13, 벧전5:1) 마 치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광경을 보여 주는 것 같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벧전1:3)는 말씀은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재생의 기쁨을 갖게 한다.
3. 내용 분해
Ⅰ. 저 자
본서의 저자는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1:1 전반)라고 밝혀 주고 있다. 즉, 그는 자신의 아람어 별명인 게바를 헬라어로 바꾸어 사용한 것이다(마 16:18). 예수께서 붙여 주신 별명인 베드로로 더 널리 알려진(마 16:18, 막 3:16, 요 1:42.마 4:18, 8:14) 시몬(막 1:16, 마 16:17, 벧후 1:1. 시므온<행 15:14>)에 대해 마태복음에는 바요나의 아들로(16:17), 요한복음에는 요한의 아들로(1:42, 21:15-17) 기록되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는 기혼자이었고(마 8:14, 막 1:30, 눅 4:38, 고전 9:5), 동생 안드레와 함께 가버나움에서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어부였다(막 1:16, 21, 29). 그의 성격은 솔직하고 열정적이고(마 14:28-33, 막 8:32, 14:29-31, 47, 요 18:10) 충동적이며(마 14:28, 16:22, 17:4, 막 8:32, 10:28, 요 13:8, 18:10), 약간 변덕스러운 데(마 26:33-35, 69-73)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부름을 받은 12제자 중 으뜸이요 대변자가 되었고, 모든 사도의 목록에서 첫 번째로 언급되고 있다(마 10:24, 막 3:16-19, 눅 6:14-16, 행 1:13). 그는 예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에 예수를 부인한 적이 있고, 또 여러 번에 걸쳐 실수하기도 하였다. 비울은 그를 가리켜, "교회의 세 기둥 가운데 한 사람"(갈 2:9)이라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교회의 반석인 그는 64년(혹은 67년경이라는 설도 있다.)에 네로 황제의 박해로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1) 신분 ( Khfa", Cephas) 「반석」
벳세다인 요나의 아들. 안드레의 형제인데 본명은 시몬이다. 수리아어로 게바라고 예수님이 개칭하셨다. 게바를 번역하면 베드로다. 즉 반석이라는 뜻이다. 갈릴리 바다에서 어업을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족과 생업을 버리고 주를 따라 12제자 중 수위를 차지했고 야고보와 요한으로 더불어 친근하였으며 그의 행적과 공로가 지대하다(요1:41-44, 마10:2, 마17:1, 막5:37, 막14:33).(2) 인간상
그 성격은 정열적, 충동적이고 화고한 결심과 순간적인 주저와의 중간에서 동요로 인한 많은 실패가 전해지고 있다.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선두에서 맹세하고도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것이 그 예이다(막16:50, 72-77, 마16:22, 갈2:12).바다 위를 걸어 주님에게 가다가 풍랑을 보고 무서워함(마14:29-30).타인보다 먼저 주님을 메시야라고 말하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음(마16:16-18).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언하실 때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간하다가 책망을 받음(마16:22)
변화산에 올라가서 장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에게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주고 내려가지 말고 여기서 그대로 살자고 하였다 (마17:4).(3) 교훈
순수한 일신론을 주장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책하였으며 그리스도가 이방인을 교화 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셨다고 하였다. 사도중 대표적인 발언자로 성령의 역사를 받으라고 하였다.(4) 선교 상황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 후 40일간에 11차 나타나시는 중 베드로는 7차 만났다.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중 가롯유다 후임을 택하는 일을 주장했고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후 전도하기시작 했다.
하루 삼천 신자를 얻고 기사와 이적을 많이 나타내고 신도들이 유무상통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행1:12-2:).성전 미문에 나서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침(행3:1-7).
(5)베드로 교훈
사람이 세상에 태어 날 때 타고난 성격이 아니면 자라나면서 형성된 성격은 그 자신의 삶에 한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 성격이 자신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면이 있고 그 성격이 자신의 삶에 나쁜 영향을 주는 면도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베드로처럼 그 자신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그 성격은 좋은 면으로 나타날 때는 최대의 장점이 될 수 있었고 나쁜 면으로 나타 날 때는 최대의 약점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우선 베드로는 대단히 급한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급한 성격으로 인하여 좋은 일에는 앞장을 선 경우도 있었고 실수 할 때는 또한 여지없이 넘어졌던 것을 볼 수 있다. 그 급한 성격이 그의 신앙생활에서 장점으로 나타난 경우를 우선 성경을 통해서 많이 볼 수 있다.
예컨대 마 14장에 갈릴리 바다위에서 한 밤중에 다른 제자들과 노를 젓고 있을 때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모두들 유령이라고 벌벌 떨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만일 주님이시거든 저도 바다위로 걸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오라 하실 때 그는 서슴없이 물위에 발을 내밀어 물위를 걸었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던 것이다. 그 배에는 다른 제자들도 많이 있었으나 물위로 걸었던 제자는 오직 베드로뿐이었던 것이다.
또 마 16장에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앉아 조용히 묻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더이다, 혹은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더이다고 했다. 그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물음에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앞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대답을 했다. 이때 주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 바요나 시몬아 복이 있도다. 너를 베드로라 즉 반석이라 부를 것이요 그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요 천국 열쇄를 주리니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하셨다.
또 성경에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기 위해서 그물을 던졌지만 그 날 따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그물을 거두려고 하는 새벽에 예수님이 바닷가에 오셔서 그물을 깊은 데로 가서 던지라고 했을 때 그가 답하기를 내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도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하고 순종했다가 거물에 가득 차게 고기를 잡은 적도 있는 것이다.
정말 베드로의 성격이 순종하고 헌신할 때는 장점이 되어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에 늘 앞장서는 자가 되었고 주님의 칭찬을 받고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격이 단점으로 나타날 때는 그의 조급한 성격은 늘 사탄의 이용물이 되었던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예컨대 주님의 칭찬을 받고 난 뒤에 예수님을 붙잡고 십자가를 지지 마시도록 간하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나를 넘어 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어찌하나남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느냐고 책망을 들었던 것이다.
또 성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이 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에 베드로 차례가 되자 주여 절대로 내 발을 씻기지 못 하리이다 고 말을 한다. 예수님이 내가 너희 발을 씻기지 아니하면 너와 내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니 금새 그의 말이 바꾸어 져서 내 발 뿐 아니라 내 온몸도 씻어 주소서 라고 했다.
또 주님께서 성만찬의 자리에서 오늘 밤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도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고 했다. 그때 주님은 새벽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결국 그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 밀을 까불듯이 너를 시험할 것인데 나는 너를 위해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겠다고 하셨다. 정말 베드로가 신앙이 없을 때는 사탄의 손안에서 조롱당하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어떤 성품이든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때 그 성격은 자신의 장점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어떤 성품이든지 자신을 위한 성품이 되면 그 성격은 분명히 자신의 단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본문에 베드로를 통해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1. 자신을 과신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베드로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는 다른 존재로 생각하는 우월감을 가졌을 때가 많았음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그래서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말 중에 [나] 라고 하는 말이 문제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자신은 다르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자세는 영적으로 볼 때 가장 사탄이 이용하기 쉬운 자리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자세에서도 바로 그러한 생각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받아 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기도에도 나는 저 세리들과 같지 아니합니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드러내기를 좋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것 같으나 실제로는 은혜를 잃어 가는 것이다.
가상 임신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니면서도 꼭 같은 증상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오늘 가상 충성자들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충성자 같은데 주님 앞에 설 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성도인 것이다.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 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때는 실제로 다른 제자들보다 나은 것이 전혀 없었을 때였다. 시험이란 대체로 여기서 부터 출발한다. 다른 사람들 보다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이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은 다른 사람이 죄를 지을 때 나도 그러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더 조심하고 경성해야 한다고 했다. 성경 속에는 자신을 믿고 있을 때가 항상 넘어짐의 시기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2. 시험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한 환경은 이러한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선 베드로는 빌라도의 법정이 아닌 가야바의 집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가야바의 법정은 사형을 집행하는 곳이 아니다. 재판은 결국 빌라도의 법정에서 최후의 판결이 나게 되어 있다. 즉 베드로는 이미 마음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야바의 집에서 주님을 부인했던 것이다.
또 칼을 든 군인이 베드로를 붙잡고 위협을 했더라면 베드로가 본능적으로 두려워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질문한 사람은 계집아이였다. 그런데 베드로는 맹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베드로는 이미 마음으로 주님을 모른 체 하기로 생각하고 그 가야바의 집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것은 그 후 그가 변화를 받아 공회 앞에 서서 내가 너희 말 듣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은가 결단하라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 한 것을 비교하여 보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베드로는 헤롯에게 체포되어 다음날 사형에 처해 질지도 모르는 그 밤에 옥중에서 수족이 결박되고 보초들이 지키는 가운데서도 깊이 잠들어서 천사가 옆구리를 칠 때 비로써 깨어났던 그 담대성과 비교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죽을 것도 각오 할 때에 환경은 문제가 아니었다. 성경에 많은 신앙인들이 넘어지는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었고 신앙이 없었기 때문이며 신앙 승리의 모든 요소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믿음이 승리케 한 것이다.
베드로후서(2peter)
1. 배경
베드로 전서와 같이 베드로가 소아시아에 있는 동일한 그리스도교로 보낸 것이다.주후 약 67년경의 기록으로 본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베드로 전서는 박해에 관련된 경계였으나 후서는 교회안의 이단에 대한 경계이다.이 서신의 주제는 지식이다. 거짓 교사 들이 저들의 지식을 자랑하는데 대해서 참 지식을 보여 주기를 원하고 있다 또는 지식이란 말이 16번이나 나타나 있다.
3. 내용 분해
1. 인 사 벧후1:1
2. 참 지식의 본질 벧후1:2-21
3. 지식을 버리는 위험 벧후2:1-22
4. 참 지식 안의 소망 벧후3:1-18
4 개 론
(1) 인 사
성경본문 벧후1:1
(2) 참 지식의 본질
참 지식은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과(벧후1:3) 그의 약속을 통해서(벧후1:4) 선물로 주신 것이다.이 지식은 하나님나라의 충만한 경험을 위해서 준비하는데서 성장하며(벧후1:5-11), 이러한 지식의 기초는 그리스도를 안다고 증거하는 개인적인 증거와 그리고 성령이 직접 주시고 조정하심을 통해서 온 성서의 계시에 있는 것이다(벧후1:12-21).
(3) 지식을 버리는 위험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단이 교회에 들어올 것이며(벧후2:1-2), 저들의 결정적 잘못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으로 이것들은 도덕적 해이를 수반한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러한 범법자들을 심판 하셨다(벧후2:4-10) 이러한 이단이 힘 있게 활동할 것이지만(벧후2:10-19), 그러나 저들의 마지막 운명은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을 것이다(벧후2:21).
(4) 참 지식안의 소망
미래에 대한 소망은 하나님의 참 지식 안에 있다.곧 그리스도의 재림은 확실한 것이 다(벧후3:1-7). 그러나 예수의 재림이 더디다고 해서 전연 재림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기 때문이다(벧후3:8). 그러므로 그 날을 바라보고 사모할 것이다(벧후3:8-13). 그리고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벧후3:14-18).
요한일서(1John)
1. 배경
요한 1,2,3서의 기자는 요한복음의 기자와 같은 사람이다. 요한이 노인이 된 후 90-91년경 에베소에서 기록 하였다. 이 서신에는 구약의 인용문이 한 곳도 없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요한 1,2,3서의 기자는 요한복음의 기자와 같은 사람이다.이때는 교회와 회당이 완전히 분리 되었고 믿음과 행위의 논쟁도 끝난 때이다.그러나 이때 거짓 교훈들이 들어 왔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상으로서 나중에는 가현설이란 이단으로 발전 되었다. 그리고 죽은 분은 인간인 예수 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 고난에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에 대해서 이 서신을 기록하게 되었다.이 서신의 목적은 두 가지가 있다.첫째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교회에 침투해 온 거짓 교회를 타파시키기 위해서이다.이 서신에는 빛과 사랑의 두 낱말이 두드러진다.
3. 내용 분해
1. 서 론 요일1:1-4
2. 빛 안에서 행함을 통한 확신 요일1:5-2:29
3. 사랑 안에 거함을 통한 확신 요일5:1-12
4. 믿음의 행실을 통한 확신 요일5:1-12
5. 결 론 요일5:13-21
4. 요한에 대하여
요한의 뜻 :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1. 세례요한.
(1)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난 아들이며 예수와 친척 관계이며 예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했다(눅1:, 2:). (2) 30세기경 디벨리우스황제(AD.26)때 유대 광야 요단 강변에 나타나 복음을 외쳤다(눅3:1). (3) 그 선교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그는 회개의 표로서 세례를 베풀었으며 예수님도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마3:15,막1:9, 눅3:21). (4) 구약 선지자의 최후의 인물이라 여겼으며 예수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마11:11-13). (5) 그는 분봉 왕 헤롯 안디바의 불의한 결혼을 비난하여 목 베임을 당하였다(막6:17-29, 마14:3-12,28년경).
2. 사도요한.
예수의 12제자중의 한 사람으로 야고보와 형제이다.(1)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이것은 그의 과격한 성격 때문인 듯 하다(막3:17, 9:38, 눅9:54-:5). (2) 예수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다(요21:20) (3) 그는 베드로,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의 측근자였으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와 동반되었다(막5:37, 9:2, 14:33). (4)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을 썼으며 말년에는 밧모 섬에 유배되어가서 요한 계시록을 썼다.
3. 베드로의 아버지 (요1:42, 21:15)
4. 마가요한 (마가복음).
5. 산헤드린 공회의원(행4:6)
1. 세례 요한
요한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신약 시대를 펼쳐나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다. 성경은 요한의 탄생과 그의 이름과 사역이 모 두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순수한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한 요한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여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의 생애를 살았다.
요한은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확신 가운데 지키고 있었다. 그는 안정된 가정에서 안일한 생활을 하기 보다는 황량한 광야에서 거친 생활을 하는 고 독한 길을 택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복된 길이었다. 극히 검소한 복장과 간소한 음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천국 복음을 전하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요단강가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일대 변화를 일으킨다. 수 천 년 동안 고대하던 "오실 메시야"를 직접 보고 세례를 베푸는 요한의 입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증언이 터져 나온다.
겸손히 메시야만을 증거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요하의 헌신적인 삶은 스스로의 몸을 태워 빛을 비추며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한조차도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일 수밖에 없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타고난 요한은 헤롯왕의 불의를 질책하여 옥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주님을 의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타고난 요한은 헤롯왕의 불의를 질책하여 옥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주님을 의심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
요단강가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현을 직접 목격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자신이 들은 소문만으로 그의 존재의 의미가 되시는 예수님을 의심하는 인간 요한에게서 육신에 속한 자들의 안타까운 갈등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을 때에는 인간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보잘것없는 추한 죄인의 모습을 보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요한이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 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옥중에서 왕비 헤로디아의 간계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자신의 생일잔치 석상에서 어린 딸의 춤 솜씨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헤롯왕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요한의 목을 주고 만다.
끝까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순수하고 담대한 신앙의 열정을 지킨 요한의 순교는 비록 그가 한때 일시적으로 실수 했었을지라도 천국의 열린 문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세상에 한줄기 빛을 던져준 요한의 생애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작은 별로 남아 있다. 주님의 초림을 기다리며 그 길을 예배한 요한의 삶은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요한이 그랬듯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향하여 늘 복음을 전파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2. 사도 요한
1. 요한의 이름
레오날도 다빈치(Leonardd da Vinci)는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소녀처럼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흰 손을 겹치고 있는 요한의 얼굴을 그렸다. 십대의 말기에 주 예수를 만났을 때에는 비록 사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가장 어리며 나약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나 요한은 용감하고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라 부르셨다(막 3:17). 이 형제들의 활화산 같은 성품은 주님에게 겸손하지 못한 사마리아인에게 불을 내리기를 원했을 때 잘 나타났다. 또 이 형제는 앞으로 올 왕국에서 높은 자리 둘을 주십사고 예수께 간청하는 절제 없는 야망을 갖기도 했다. 주 예수는 이들의 불같은 열망과 경건하지 못한 욕심을 꾸짖으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을 삼년간 훈련시켜 폭풍 같은 성격을 잠재웠으며 우뢰를 조용하게 변화시켰다.
2. 요한의 초기 생활
형제인 야고보와 함께 요한은 가버나움에서 베드로, 안드레와 고기를 잡았다. 요한의 아버지는 세베대였다(마 10:2). 고기잡이는 근육을 발달시키는 힘든 노동이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노를 젓기 때문에 손바닥에는 못이 박혔다. 뙤약볕 아래서 그물을 수선하는 일은 청년들을 구리 빛으로 만들었다.
안드레와 함께 요한은 밥티스마 요한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되었다. 예수님과 몇 말씀을 나눈 요한은 그가 구세주임을 확신하였다. 요한은 육십년이 지난 뒤에도 처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한 감격적인 시간인 시간을 회상하였다. 이 순간부터 예수님은 요한의 생애에 빛이 되셨다. 사랑이란 서로 주고받는 보완관계이다. 요한은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과 처음 만난 후 요한은 고기잡이하러 돌아왔으나 나중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기잡이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요한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야고보,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큰마음을 먹고 아버지와 배와 고기와 직업을 버렸다.
3. 편협한 마음(막 9:38-40, 눅 9:49-50)
어느 마을로 복음을 전하러 가던 중에 요한은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동요하는가 보려고 요한은 앞으로 다가갔다. 귀신들린 한 소년이 땅 위를 뒹굴면서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이 미처 손도 쓰기 전에 낮선 사람이 귀신을 쫓아냈다. 그 소년은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뒤틀다가 조용해지더니 고쳐졌다.
요한이 귀신을 쫓으려 했을 때 깜짝 놀란 낯선 사람에게 큰 소리로 "감히 어떻게 당신이 주님의 이름을 쓸 수 있단 말이오? 도대체 당신은 무슨 권능이 있길래 그런 일을 하오?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권세도 받지 못한 사람이요. 나는 주님의 가까운 사람 중에 한 사람이요. 이전에 나는 당신을 본 일이 없소. 결코 주님의 이름을 쓰지 마시오"라고 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말할 수도 없으며 예수의 이름으로는 일도 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요한은 몰아쳤다. 요한은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 하였나이다"라고 여쭈었다(막 9:38).
예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한자니라"(눅 9:50)고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병 고치는 이 사람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전문적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임을 예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행 19:13-14). 이 사람은 어디에서인가 예수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성실한사람이었으며, 곤고한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흉내 내어 보려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사도들과 동등한 영적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요한의 성격이 외골수적인 것은 가장 높은 자리에 대한 그의 야망이 연장된 결과였다. 그는 사도로서의 자부심을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막 9:39). 요한은 주 예수의 이름을 의탁하여 주 예수의 일을 행하는 데 제자 아닌 사람을 제외시키려는 계획을 성공하지 못하였다.
열 두 사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부인하지 않은 것은 성도들에게 대단히 훌륭한 교훈이 된다. 마치 사도들이 예수를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따르며 무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우리는 믿음의 근본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을 행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 말년에 예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행위에 대하여 강경한 경고를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과 똑같이 행하면서도 신학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마음을 용서하고 관대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속한 종파만이 오직 진실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들과 똑 같지 않다고 하여 침례교이든, 감리교이든, 루터란이든, 오순절 계통이든, 성공회이든 배척할 정당한 근거는 없다.
4. 요한의 변화
어느 정원사가 정원의 흙을 보고 "너는 어떻게 그처럼 좋은 향기를 풍기느냐?"고 물었더니 진흙은 "사람들이 나를 장미꽃 옆에 두었기 때문이랍니다"라고 대답했다.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성급한 청년 요한은 성인이 되어 온유한 성격으로 변하였다. 요한의 야망은 줄어들었다. 편협한 외골수적 성격도 사라졌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격렬한 성격의 청년에서 마음 착한 성인이 된 것이다.
신학자들은 요한이 복음서뿐만 아니라 서신과 계시록도 썼다고 믿는다. 약 1세기 전에 일부 학자들이 "요한서신을 쓴 사람이 과연 사도 요한이냐"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복음서의 요한과 서신의 요한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요한을 야망으로 가득 차 있고 화를 잘 내며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비하여 요한서신의 기록자인 요한은 사랑의 정수라고 설명되어 있다. 요한은 주 예수에 의하여 우뢰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도로 변하였다.
요한이 이렇게 변하는 데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의 인격 속에는 타고난 성격이 항상 깃들어 있기 때문에 폭발적인 잠재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함께 해주시는 권능과 근엄한 용모는 여러 갈래로 찢어진 요한의 옳지 못한 정력을 온유한 길로 인도하였다. 유리들의 정력은 결코 옳기만 하지도 않고 나쁘기만 하지도 않은 그 중간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쓰일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요한의 강력한 정신이 거짓교리나 사악한 행동에 대하여 단호히 규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의 성품의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격려를 해 준다.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며 불평하기 좋아하는 청년이라 해서 반드시 고집 세고 이기적이며 잘 투덜대는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영적인 성장법칙에 따라서 떫고 시퍼런 과일이 달콤하고 맛좋은 과일로 익을 수 있는 것이다.
5. 요한이 보여준 사랑
우레와 같은 요한의 성격이 온유하게 변한 것은 십자가와 초대교회에의 성심과 용감성도 설명해 준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어느 사도보다도 먼저 예수님에게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 요한이었다. 베드로가 멀리 떨어져서 뒤따르고 있을 때 요한은 용감하게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갔다(요 18:15-16). 아마 대제사장은 요한의 아버지인 세베대의 사업과 관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과는 서로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 대제사장을 알고 있던 덕택으로 요한은 베드로도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종을 해쳤기 때문에 겁에 질려 베드로가 숯불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을 때 요한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재판장에게로 곧장 들어갔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비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요한은 진실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모든 사도 가운데서 오직 요한만이 십자가 옆에 서서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의에 찬 독설을 내뿜을 때에도 요한은 도망치지 않고 적들의 한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도 유일하게 요한뿐이었다. 예수님은 요한을 바라보시면서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하시고 요한에게 그 어머니를 가리키며 "보라, 네 어머니라"하셨다>(요 19:26-27)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마리아를 모셔온 후 요한은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려고 서둘러 되돌아갔다. 오직 요한만이 "내가 목이 마르다" 또 "다 이루었다"는 최후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고개를 떨구시고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가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때 피와 물이 나온 것과 요셉과 니고데모가 장사한 사실을 말한 것도 요한뿐이었다.(요 19:38-42). 요한은 용감하였으며 최후까지 예수님께 헌신하였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살인마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어린 양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 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6. 서로 사랑한 예수님과 요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몇몇 사도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셨던 것 같다. 예수님과의 우정을 갖는 것이 기뻐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끼리 점점 친밀해진 것은 큰 무리들로부터 더욱 독자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을 만들게 했을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오백여 형제이며(고전 15:6), 모인 무리의 수는 일백 이십 명이고(행 1:15), 예수께서는 칠십 인을 제자로 세웠다.(눅 10:1). 이들 가운데 열 두 사도가 있으며 사도 가운데 핵심이 되는 세 사람이 있으며 이 중에서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자주 불리어졌다(요 13:23/20:2/21:7). 요한은 "여호와의 은총을 받는다"는 이름의 뜻 그대로 일생을 살았다.
분명히 요한은 제자 가운데서 가장 소중한 세 제자의 한 사람일 뿐 아니라 예수의 사랑받는 제자로 불리어진 유일한 사람이며 다락방에서는 그리스도의 품에 앉았다(요 13:23). 초대교회의 문헌을 보면 요한을 예수의 가슴에 기댄, 사랑을 의미하는 "에피스테티오스"(The Epistethios)라고 자주 부르고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라는 부탁을 받은 요한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들은 사람이 되었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요한은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요3:16) 유명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겼다. 요한은 책임감으로서의 사랑뿐만 아니라 사도직의 징표로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가"(요 13:34-35)하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상기시켜 주었다. 요한은 그의 저술에서 오십 번 이상이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사랑받는 요한은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믿었으며 밤을 새워 고리를 잡은 후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 본 제자였다(요 20:8/21:7). 요한은 하나님 계시의 환상을 포함한 영적 진리를 알 수 있는 놀라운 지혜를 받았다.
요한의 사랑은 강했다.
사랑에 대하여 요한이 요약한 말은 사랑의 근간을 이루었다. 진실한 사랑이란 그 사랑의 대상을 해롭게 할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하며 결코 꺽이지 않는 강한 것이어야 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사나운 개로부터 아장아장 걷는 자기의 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진실한 사랑이다. 요한은 일반적으로 그릇된 가르침이 어린 아이들에게 크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요 한은 거짓을 행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서슴치 않고 경고했다(요일 1:6/2:4).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당부했다.(요이10). 또 디오레베는 교만하여 사악한 말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세상에 공개했다(요삼 9:10). 요한의 우레 같은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의 강경한 어조도 사랑과 겸손으로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야기// 어떤 전설은 요한이 에베소에서 공중목욕탕에 갔을 때 영지시주의자인 세린도를 만난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요한은 그를 보자마자 목욕도 하지 않은 채로 목욕탕을 뛰쳐나오면서 "모두 도망치자, 진리의 적이 들어있는 세린도 때문에 목욕탕이 무너질런지도 모르니 우리 모두 도망가자"고 외쳤다고 한다. 어떤 기회에 요한은 세린도를 "마귀의 맏아들"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레와 같은 그의 성격의 단면을 잘 반영하고 있다. 요한은 온유하면서도 강했다. 박식하면 격한 마음이 가라앉지만 요한의 사랑은 예리한 통찰력과 지식에 의하여 퇴색하지 않았다.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다섯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다. 요한복음의 서문은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요한에게는 "그리스도인 플라톤"(ChristianPlato)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삼 세기의 교부들은 계시록의 필자에게 "신학자"란 칭호를 붙였다.
7. 말년의 요한
소아시아 태생으로 요한의 제자이면서 폴리갑(Polycarp)과 잘 아는 이레니우스(Irenaeus)는 요한은 주후 98년까지 에베소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전설에 의하면 요한을 독살시키려는 음모에서 하나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셨다고 한다. 이 전설은 뱀이 그려진 성찬배가 요한을 상징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 다른 전설은 핍박받는 동안에 끓는 목욕탕에 던져졌으나 요한은 그 속에서 살아났다고 한다.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에게 해 복판에 있는 아름다운 섬인 밧모에 요한이 유배된 일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요한은 계시록의 인사말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1:9)라고 썼다. 밧모섬에서 도미티안 황제에 의하여 추방된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에 대한 메세지를 받고 환상을 보았다. 순교자와 성도와 하늘의 승리를 본 요한의 마음은 기뻤다. 계시록의 마지막인 22장에서 요한은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라고 썼다(계22:8)
트라얀(Trajan) 황제는 요한이 밧모를 떠나서 에베소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소아시아에서 그를 따르는 자들의 선교 사업은 그의 목숨이 다할 때 성취되었음을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에서 알 수 있다. 요한은 자기의 영적인 자식들이 진리 가운데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요한은 충분한 보응을 받을 것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들에게 충고했다. 요한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의 선행과 디오드레베의 교만함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요한은 그의 영적인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증거 하기를 원했다. 요한은 대단히 오래 살았다. 예수를 처음 따를 때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요한은 열 두 사도 가운데서 제일 장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형제인 야고보는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죽었다.
은혜 속에 살고 성장하는 것에 관하여 요한의 생애는 많은 교훈을 준다. 요한은 불같은 성급한 성격을 서서히 가라앉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권세에 순종했다. 여든 살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며 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8. 결론
요한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성도들에게 그의 삶을 통해서 어떤 문제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그것을 한 마디로 논한다면 "사랑의 훈련"이다.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는가?
1.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의 주님과 깊이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요한처럼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고동을, 그 사랑의 심장을 느껴 본적이 있는가? 그 분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가?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절에 사도 요한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의 가슴에 깊이 기대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면서 그 주님의 호흡을 느낄 때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2.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그리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기억하여야 하고. 사랑의 확인과 확신 없이 사랑의 지속이 어려운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3.사랑은 실천할수록 증가된다는 것사랑은 줄수록 늘어난다. 사랑의 생리는 사랑을 줄수록, 내 사랑의 창고를 계속 부하게 하는 것이다. 격정적이고 사나웠던 성격의 소유자 요한은 그 격정이 주님께 포로가 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주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을 때, 그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도로 변모하게 되었는지...
구스타프 도오르라는 유명한 화가가 주님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려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떻게 주님의 초상화를 그릴까라고 안타까워 하고 있을 때에 그를 사랑했던 , 예수를 잘 믿는 믿음의 친구가 그에게 찾아와서 이런 유명한 충고를 했다.
"사랑하는 친구여, 자네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나, 그러면 자네는 주님의 형상에 더욱 가까운 주님의 모습을 그릴 수가 있을 것이요" <홍만조목사 글>
유다서(Jude)
1. 배경
저자는 야고보의 형제 유다이다(1). 신약 성서에서는 유다라는 사람이 많이 있으나 야고보의 동생이 되는 유다는 예수의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이다(막6:3). 주후 67,8년경에 기록 했을 것이다.
2. 내용과 주요 사상
저들에게 이 편지를 써야 될 사정이 생겼다. 그것은 교회에 들어온 사람 중에 자기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여러 가지 부도덕한 일에 쓰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실례를 들어서 저들의 장차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클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세 가지 역사적 실례를 들었다.
(1) 애굽에서 구원하여 낸 후에 믿지 않은 자들을 멸하신 일(2)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3) 소돔과 고모라이다.
이 사람들의 범죄를 모세 오경에 큰 반역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가인과 발람과 고모라이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 생활이나 말에 있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그리고 시험에 들을 때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 우리 안에 계시는 주 예수는 멸망하는 자리에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실 것이므로 용기를 얻는 것 이다.
3. 내용 분해
1. 인 사 유1:1-2
2. 쓰게 된 동기 유1:3-4
3. 역사적 전례 제시 유1:5-7
4. 거짓 교사의 비난 유1:8-16
5. 신자에게 주는 조언 유1:17-23
6. 축 도 유1:24-25
4.개 론
1.문학적 특징과 목적
유다서는 분명히 서신의 형태로 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개체 교회에 보내진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강조도 없으므로 교회 안에 나타난 이단자들을 공박하는 논쟁적인 훈계나 설교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유다서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이단자들은 방종한 영지주의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부도덕에 빠진 불경건한 자들이 교회 안에 나타나 그들의 왜곡된 교훈과 악한 행동으로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이단 교설을 뿌리는 거짓 교사들을 공격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믿음 가운데서 견고해 서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2. 저자와 수신자 문제
서신의 저자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사도들의 시대를 멀리 뒤돌아보고 있는 점(17절)/ 훌륭한 희랍어로 기록되어 있는 점/ 야고보의 동생 유다의 시기보다 기록이 훨씬 후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점들은 그를 저자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많은 서신들과 유사하게 이 서신도 1세기 말경 익명의 저자가 "야고보의 동생 유다"의 이름을 빌어 교회 내의 문제에 대처하는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서신의 수신자는 교회 일반 혹은 기독교인 전체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유대 기독교인을 주요한 대상으로 한 것 같이 보인다.
3. 기록 장소와 시기
사도들을 과거의 인물로 회상하는 것/ 신앙의 전통을 암시하는 것/ 영지주의의 징조에 대한 언급이 있는 점으로 보아 유다서는 초대교회의 역사 중 후대 단계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다. 기록 장소에 대해서는 유대 기독교적 배경으로 미루어 보아 팔레스틴이나 시리아가 가장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요한계시록(Revelation)
1. 배경
그림설명 / 요한계시록의 단편 :희랍어 파피루스의 요한계시록(12:12-13:1)
2. 내용과 주요 사상
이 책은 그리스도의 계시의 중심이다(계1:1). 계시록은 세상의 악한 음모가 계속 반복 되고 고조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사단은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려는 주의 뜻에 대항하고 있다.이 오랜 싸움은 영광스런 백 보좌 앞에서 마지막 심판, 새 예루살렘의 도래, 영원한 시 작으로 끝이 난다. 부활하시고 영광을 얻으신 주님은 땅위에 있는 교회들을 보살피신다(계2,3장). 주는 예배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며 죽임을 당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어린양이시 다(4,5장). 장차 땅 위에 임할 칠년 대 환난의 심판도 어린양의 진노의 표현이다(계6:16 -17). 그리고 주의 재림(계19:11-21). 성도와 함께 천 년 간 통치하실 일(계20장). 새 하늘과 새 땅(계21-22장)의 환상이 계속이어 진다.
1 장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2,3 장은 지금 있는 일들4-22 장은 장차 될 일들을 예언한 것이다.
3. 내용 분해
1. 머 리 말 계1:1-8
2. 과거의 일 계1:9-20
3. 현재의 일 각 교회에게 계2:1-3:22
4. 미래의 일 계4:1-22:5
5. 끝맺는 말 계22:6-21
그림설명 / 밧모섬 : 배에서 바라본 밧모섬 전경.
4. 개 론
1. 문학적 성격
요한계시록은 복합적인 문학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 즉 묵시 문학과 예언 문학, 그리고 서신형식을 가진 기록이다.
1) 묵시적 성격 묵시 문학은 박해 시대의 산물로 고난 중에 가지게 되는 꿈과 환상에 대한 기록을 묵시록이라고 한다. 묵시 문학의 특징은 많은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초월적인 세계를 그리고 현재에는 위험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2) 예언 문학적 성격 요한 계시록은 독자들의 관심을 현재적이고 종말론적인 결론에로 돌리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기독론적 역사관에 의해 다른 묵시문학과는 구별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의무를 옛날 선지자들의 임무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책을 예언이라고 자주 지칭하고 있는 점에서 예언자적 전통을 따른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다.
3) 서신의 형태 요한계시록은 전형적인 기독교적 서신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서신의 특징인 어조의 직접성은 요한과 독자 간의 의사전달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2. 저자 문제
요한 계시록의 저자는 자신을 네 군데에서 "요한"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로마 당국에 의해 유배된 인물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동안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은 용어와 사상면에서 동일하다는 학설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는 두 문서 사이의 유사점보다는 언어와 종말론적인 사상의 차이점에 촛점을 맞추어 나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세기 말경의 유대 기독교인이거나 사도 요한의 영향 가운데 있던 요한 학파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3. 요한 계시록과 세례 요한에 관한 전승
요한계시록과 세례 요한전승에만 제시되는 독특한 신학적 주제들이 있다.
ㄱ.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표현한다.
ㄴ. 오실 이에 대한 사상이다.
ㄷ. 심판을 상징하는 불세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ㄹ. 신랑 사상이 두드러진다.
이밖에도 요한계시록 저자는 예배의식과 성전에 대한 친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 아마도 예언자이면서 제사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같이 세례 요한과 계시록이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계시록의 저자를 세례 요한 혹은 그의 제자로 보는 학자도 있다.
4. 기록 시기
요한 계시록의 기록 시기는 도미티안 황제 때의 박해 때로 추산한다. 즉 90-96년경에 계시록이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이 시기에 소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 교회들로 하여금 박해를 잘 견디도록 격려하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끝내 악의 세력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시켜 줄 목적으로 이 글을 기록한 것으로 생각된다.
5. 구조와 내용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학자들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이해되고 있다. 그 중에는 요한계시록이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 선언과 열방에 대한 저주 선언을 포함하고 있는 구약 예언서들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보면 계시록은 전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그리고 후반 로마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계시록의 구조를 [7] 이라는 숫자를 중심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숫자를 염두에 두고 나누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부 록
1. 666比較 考察과 컴퓨터 "666" 主張에 대한 反論
저 자 : 이영제 목사
[서론]
A.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B. 연구의 방법과 범위
A.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계시록은 주후 1세기 말, 로마 황제의 지배 하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대 박해가 임하던 때에 주어진 말씀임으로, 그 진리의 부르짖음이나 표현에 있어서 일반적인 직유법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긴박한 사회 정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우화와 환상, 상징과 은어 등을 사용하여 역사의 추이와 그 가운데서 지배하고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서술하고, 하나님 나라 실현의 종말관적인 예언을 기록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임종은, "열어놓은 계시록", 도서출판 소망사, 1989, 추천사 중에서 )
계시록은 성서 가운데서 가장 난해한 책들 중의 하나였다. 개혁자 칼빈은 신, 구약의 모든 책에 주해를 한 대 주석가였으나 본서에 한해서는 이를 피했다.
그것의 상징 주의적 성격 때문에 그것은 종종 난해의 책으로, 혹은 오해의 책으로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1991, p 9. )
이러한 계시록의 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과 계시록을 주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앞, 뒤의 문맥을 고찰하지 않고 오직 666하나에 집착한 나머지 전체를 바로 보지 못하는 잘못된 해석들이 난무하게 되었다.
계시록의 해석법에는 대체로 네 가지 방법이 있다.
1. 과거적인 해석법(The Preterist Method)
2. 역사적인 해석법(The Historicist Method)
3. 영적 해석법(The Idealist Method)
4, 미래적 해석법(The Futurist Method)이다.
위의 해석법들의 장점과 단점은 우리로 하여금 계시록을 해석함에 있어 어느 한 해석법에만 의존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박수암, 상게서, p 22-23. ) 계시록은 난해한 문제가 많이 있는 가운데 특히 요한계시록 13장 18절의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666은 오랜 세월을 지내 오면서 많은 추측과 이론들이 무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이론의 통일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너무 쉽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려는 이론들의 난무함으로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최근에, 줄곧 논쟁점을 안고 있던, 요한계시록의 한 부분으로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요즘 또 하나의 새로운 유형의 해석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해석 방법은 다른 해석들과는 달리 666이라는 수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김영철역, "복음과 요한계시록", 한국성서유니온, 1991, p 191. )
특히 컴퓨터와 관계있는 해석으로 컴퓨터 바코드가 666이다. 라는 주장과 그 컴퓨터가 666이다. 컴퓨터를 통제할 EC가 열 뿔이 있는 짐승이다. 라는 이론으로 현대 생활에 있어서 컴퓨터가 직접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불안감과 공포감을 조장하고 있어 사회에 무리를 일으키고 있다.
1992년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이 이론을 그대로 받아 들여 자신들의 편의대로 해석하였다. 1992년 10월 28일은 지나갔지만 아직도 컴퓨터가 666이라는 생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 만연되어 있다. 성경 저자가 의도하는 666의 내용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고 적어도 무분별한 해석으로 혼란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본 논문을 쓰려고 한다.
B. 연구의 방법과 범위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말씀에 의지하여 본 논문에서 구태여 666이 무엇이라는 결론을 얻어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많은 이론들을 비교 나열함으로 계시록의 저자가 전하려는 666의 참뜻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666의 해석에 대하여는 가감 없이 주를 달며 나열하는 방법으로 내용상 중복이 되어도 해석의 주장에 의의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이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저자 또는 책들에서 의도하는 바가 꼭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또 다른 서적들을 참고한 경우도 흔히 있어 이 문제를 연구함에 있어 무조건적인 오해를 해서는 아니 된다.
여기서는 그러나 요즘 대두되는 컴퓨터와 666의 해석에 대하여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컴퓨터가 666이라는 주장들에 대하여 그 이론의 방법을 고찰하고 그이론 자체가 성경적인 해석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도 객관성과 신빙성이 있는 내용들인가에 대하여 검증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이 이론을 무분별하게 받아 들였던 1992년 종말론자들의 주장도 고찰해 보도자 한다.
[ 본론 ]
666의 여러 해석들
1) 로마로 생각하는 이론
2) 로마의 반대 이론
3) 네로로 생각하는 이론
4) 네로를 상징적으로 보는 이론
5) 네로의 반대 이론
6) 교황으로 보는 이론
7) 교황으로 보는 반대 이론
8) 테이탄
9) 테이탄의 반대 이론
10) 솔로몬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런 죄를 가리킴
11) 솔로몬 반대이론
12) 요한복음 6:66
13) 개신교가 666이다. / 안식교의 이론
14) 마틴루터가 666이다. / 로마교회 이론
15) 개인을 지칭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16) 반기독교 독재주의자로 보는 이론
17) 사이비 단체로 보는 이론
18) 상징으로 보는 이론
1) 로마로 생각하는 이론
로마는 헬라어로 "라테이노스"인데 이 수치의 합산이 666이다.
- (람다;λ)=30 - (알파α)=1 - (타우τ)=300 - (엡실론ε)=5
- (이오타ι)=10 - (뉘ν)=50 - (오미크론ο) - (시그마σ)=200
30+1+300+5+10+50+70+200=666( 나원준, "휴거와 666의 정체", 월간현대종교 탁명환 편, 국종출판사, 1991, p 27. ) 이 된다. 666과 616중 666이 요한이 본래 사용한 숫자이며 이 수가 가리키는 이름은 라테이노스이며 따라서 로마 황제와 로마제국 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기독교 대백과 사전", 기독교문사, 91(7판), p 772. )
이 견해는 당시 기독교 핍박의 최대 세력인 로마제국이 바로 짐승의 수라고 본다(Irenaeus).( "크로스", 시내출판사, P 1003. )
6의수는 요한 당시로서 로마이다. 666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로마에 굴복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 6의 숫자를 나열한 것은 6의 인물의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세 인물을 말한다. 용과 짐승과 새끼양이다. 이들 세 인물을 인정하는 자들은 살아남을 수 있으나 그 밖의 사람들은 환난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환난은 12장에 의하면 하늘에 속한 자들이 된다. 그리고 11장에 의하면 두 선지자의 교회에 속한 자들이 되고 13장에서는 성도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다니엘서 11장에 의하면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에 해당한다. 이들 외에는 모두가 그들에게 굴복하기 때문이다.( 최정현, "성경의 대예언", 도서출판 한글, 1992, p 214. )
2) 로마의 반대 이론
666은 로마를 가리키는 "라테이노스"란 헬라어의 숫자란 것이다. 그러나 신약의 아무 곳에서도 로마를 "라틴"이라고 부른 곳이 없는 것은 이 견해의 크나큰 약점이다.(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183. )
3) 네로로 생각하는 이론
"네로 황제"를 히브리어로 표기하면 '네론 카사르'이다. 이것을 당시 유행하던 게마트리아 해석법(히브리어의 문자를 알파벳의 수치로 환산하는 유대 랍비들의 해석법)을 따라 풀이하면( 여기에 들어갈 문자는 히브리어로 표기하지 못했음) = 50 , = 200 , = 6 , = 50 , = 100 , = 60, = 200 이 되는데 이 수치를 종합하면 666이 된다. 이 견해는 로마 황제 네로(Nero, 54-68년)에 의한 기독교인 대 핍박 의 잔혼이 남아있던 그 시대적 상황이 참작되어 널리 신봉되었다.( "크로스", 시내출판사, p 1003. )
수세기에 걸친 그와 같은 시도 가운데 선택된 인물 중 가장 그럴듯 한 인물은 네로일 것이다.( "성서 대백과" 정인찬 편, 기독지혜사, 1985, p 394. ) 사도 요한은 로마 황제(국가)에 의한 기독교 대박해라는 당시대의 역사적 배경에서 666의 기본 의미를 추출해 낸 다음, 그것을 장차 도래할 종말의 세속적이고 사단적인 인물(적 그리스도 혹은 그의 세력)에 결부시킨 듯하다.( 요일 2장, 핵심연구 [적 그리스도에 대하여], "크로스", 시내출판사, p 1004, 재인용 )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문자들은 각각 숫자상의 가치를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666은 로마 황제 네로를 가리킨 것이다. 이 666은 어느 시대를 통해서든 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강봉국, "성서 주해", 성서교재 간행사, 1976, p 373. )
4) 네로를 상징적으로 보는 이론
바클레이 같은 주석가는 이 수가 네로를 뜻한다는데 의심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이 적 그리스도를 네로의 형태로써 악의 화신이 되어 이 땅에 되돌아오는 자로 내다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과거의 네로라고 할 수 없으며 네로적인 적 그리스도의 출현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입니다.( 이용호, "주님은 다시 오신다", 한국문서선교회, 1991, p 174. )
5) 네로의 반대 이론
현대 학자들이 보는 일반적 견해는 '네로-시이저'(Nero-Caesar)이다. (만약 라틴어 철자와 같이 만들기 위해 마지막 R자를 생략한다면 다른 수인 616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히브리어로 음역된 라틴어 이름을 헬라어로 바꾸어야 하며 철자도 좀 달리 써야 한다. (모음 y가 qysr에서 빠져야 함). 이러한 방법이 상당히 타당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왜 히브리어 이름을 헬라어로 변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네로를 위대하게 생각했던 그 당시에는 이 방법은 결코 적용할 수 없었다(네로 황제가 소생하는 신화는 학자들이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임).( "틴텔주석", p 1983. )
어찌 하여 헬라말로 본서를 기록하던 저자가 하필 여기 와서만 새삼스럽게 히브리어 표기를 심중에 두었을까 하는 문제와 고대의 어느 주경가도 이를 네로의 이름으로 생각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원한 해답이 못된다.(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183. )
"네로 가이사"를 히브리말로 계산하면 666이 된다고 하여 이 수는 네로 황제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네로 가이사를 신약의 헬라어로 계산하면 1005가 되며 사도 요한이 요한 계시록을 헬라어로 썼고 히브리말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순한, "요한계시록강해",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5, p 283. )
네로 황제 등에 숫자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해석해보려는 시도는 아무것 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계시록은 상징의 책이지 수수께끼의 책이 아니 다.( C.F. Wishart, op. cit., p 25. 핸드릭스, 아카페출판사, p 184(주) )
네로를 적그리스도를 닮은 자로 비유들 하기도 하나 이는 심히 빗나간 해 석(주장)들 입니다. 왜냐하니 네로 황제는 제1세기에 살다가 죽은 자이지만 나타날 적 그리스도는 장차 마지막 때에 출현할 자이기에 다르다는 것을 명 심해야 됩니다.( 송기호, "대환란(제4권) 666의 비밀", 정오출판사, 1991, p 322. )
6) 교황으로 보는 이론
로마교황 모자에 라틴어로 "하나님 아들의 대리자"라 했으며 교황의 공식 칭호 Vicarius Filii Dei를 666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해석한다.( 이광복, "성경종말론", 목양성경연구원, 1991, P 174. ) V I C A A R I U S . F I L I I D E I 5 1 100 1 5 1 50 1 1 500 1
교황은 이미 카톨릭 신자에게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평화의 왕", "평화 의 사도", "세계의 빛나는 별"이라는 칭호를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그는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회복된 교황권의 모습이 얼마나 크고 강하여지고 있는가를 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소수의 충성된 자들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교황을 추앙하고 경배할 때가 올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목하에서 "교회 일치 운동"(the Ecumenical Movements)과 초교파적 "은사 쇄신 운동"(the Charismatic Renewal Movement)으로 부지런히 그 성취를 보고 있는 것이다.( 유석근, "666 적그리스도", (주)임마누엘, 1992, p 123. )
라틴 십자가(The Latin Cross)는 전 카톨릭 조직에 찍힌다. 그것은 미사 때 사용되며, 교회 기도문에 군데군데 신비한 신호로 삽입되고, 사제의 가 운, 교회의 성구와 건물에 장식된다. 로마 교회는 그의 모든 추종자들에게 태어나서 죽기까지 라틴 십자가를 표해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 교황권이 가지고 있는 구별되는 표(Mark)로서, 짐승의 표 곧 666표이다.( 유석근, 전게서, p 147. )
루터, 위클리프, 허스, 칼빈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종교 개혁자들은 한결 같이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계시록 13장의 '짐승', 17장의 '음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불법의 사람'이 온갖 비성경적 교리들로 배도를 주도해 온 교황권(papacy)이라고 지적하였다. 칼빈은(John Calvin)은 그의<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밝혔다, "다니엘과 바울은 적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서방 교회에 있어서 이 저주받은 가증한 왕국의 머리를 우리는 교황 이라고 단정한다"( Calvin, Institutes, Vol. 2, p 314-315. (유석근, "666 적그리스도", (주)임마누엘, 1992, p 141.)재 인용. )
적그리스도는 미래에만 잠깐 나타나거나 과거에만 잠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도요한 때 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인물이 나타 날 것인데 현재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분명히 666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명칭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이름의 숫자가 666이기 때문인 것이다. 라틴어가 666이며 그 이름의 숫자를 받은 로마 교황이 라틴 어로 666이 되어 적그리스도의 이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의 총통이 나타난다 해도 같은 666이 될 것이며 유럽공동체 공식언어를 라틴어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에서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교황이 바로 예수님을 모방했기에 사탄의 직통화신이 될 것이며 우리가 살피고 있는 666의 숫자를 가진 적그리스도이며 현재 교황이든 장래 교황이든 666이란 사실을 깨닫고 깨어 있기 바란다.( 서달석, "바이블 뉴스합본 V", 생명의 서신, 1992, p 14. ) 666 적그리스도였고 현재도 적그리스도인 로마 카톨릭( 서달석, "바이블 뉴스합본 X", 생명의 서신, 1992, p 28. ) 이다.
7) 교황으로 보는 반대 이론
로마교황이나 검은 교황이나 모두 적 그리스도일 수 없습니다. 적 그리스도는 로마제국에서 나오는 것이지 로마교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적그리스도)의 번호는 "사람의 번호"이며 그 번호는 666입니다. 적 그리스도는 이 사람의 번호를 간단히 자기 것으로 전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교황이 사용하고 있는 삼중관에 대하여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그 왕 관에는 어떠한 글자나 숫자가 나타나 있지 아니합니다. 한 때, 왕관에는 "하나님 아들의 대리자"라는 뜻의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적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탁월한 인물의 이름에 로마숫자를 합하여 표시하는 방법은 신뢰 할 만 한 것이 못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나폴레옹이 적그리스도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러한 방법이 채택되었습니다. 뭇솔리니도 역시 이렇게 그 의 타이틀을 사용함으로써 적그리스도로 증명되었습니다. 다름 많은 이름들이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기껏 교황은 지상에 거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할 뿐입니다. 대환난기가 계속되는 동안 로마교회의 지도자는 적그리스도가 아니고 거짓 선지자이겠습니다.( 윌리암 베이르네스, "재림에 대한 의문과 해답", 보이스사, 1985, p 81-82. )
로마 교황께서 머리에 쓴 관에 새겨진 글자의 수이니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바로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대행(대신)해서 나타날 것이란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주로 미주지역과 한국등지에서만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솔직히 로마교황이 적그리스도라 한다면 왜 적그리스도가 수 천 년간 계속되어 나타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싯점에서 영어권적 666수와 라틴어권적 666수와 그리고 기타 서구 방언적 666수는 반드시 수정과 보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동양 종교임에도 왜 서양화하거나 되어져서 계속 굴러가고 있는지 식상할 지경입니다.( 송기호, "대환란(제4권) 666의 비밀", 정오출판사, 1991, p 328. )
8) 테이탄
테이탄은 헬라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신(神)을 가리키는데, 그 헬라어 문자를 수치화하면, 300+5+10+300+1+50으로서 종합하면 666이다. 그런데 이 테이탄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대체적으로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로마 장군 디도(Titus)나 혹은 사도 요한 때의 로마 황제를 네로에 이어 2차 대 박해를 주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81-96년) 등으로 추측한다.( "크로스", 시내출판사, p 1003. )
9) 테이탄의 반대 이론
테이탄은 헬라 신화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거대한 신이었으며, 저자는 도미시안을 테이탄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왜 하필 여기서 갑자기 헬라 신화를 연상했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183. )
10) 솔로몬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런 죄를 가리킴
헹스텐베르크는 666의 문제에 대해 에스라 2:13에 그 자손들의 수가 666으로 기록되어 있는 아도나김에게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찾고 있다. 하지만 666이라는 숫자는 열왕기상 10:14에서 솔로몬이 한 해에 거두어 들였던 금 달란트의 수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지혜자의 표징으로 간주되었던 솔로몬은 호화롭고도 사치스러운 생활로 인하여 결국 말년에 우상을 섬기는 사악한 죄에 빠지고 말았는데, 이 666이라는 수는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경계하라고 가르쳐 주시던 세속적인 탐욕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가? 17절에서 이 세상의 재물을 추구하는 자들이 짐승을 섬기는 자들로 서술되어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제안을 타당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W.T. 린).( "베이커 주석", 기독교문사, 1988, p 561. )
11) 솔로몬 반대이론
과거 이스라엘의 임금인 솔로몬 때에 세입금의 중수가 666 금 달란트였 데(열왕기상 10:14) 솔로몬 왕은 이 엄청난 금 666 달란트를 소유케 됨으로서 타락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 666수는 어딘지 모르게 유물주의가 적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기초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들을 하나 이 또한 의미하는 바는 있으나 상호 완전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송기호, "대환란(제4권) 666의 비밀", 정오출판사, 1991, p 322. )
12) 요한복음 6:66
나는 이에 대하여 기도하는 중 요한복음 6:66을 보라는 음성을 듣고 빨리 펴 보았다. 그 구절은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이 육백육십육은 예수의 참 제자 외에는 다 예수를 떠나게 되는 것을 말하는 수인 것을 깨닫고 이 뜻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 육백육십육을 요 6:66이라고 믿고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은 다 적그리스도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종우, "요한계시록해석", 도서출판국제, 1984, p 279. )
13) 개신교가 666이다. / 안식교의 이론
안식일 교회에서는 계시록에 나오는 표 중 하나는 짐승의 표요. 하나는 하나님의 표인데 안식일은 하나님의 표요, 일요일은 짐승의 표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을 받으려면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합니다.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자들을 짐승의 표 받는 것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하는 교황이 안식일을 주일로 변경했기 때문이며 그가 또한 앞으로도 강제 일요일 휴업령을 내려 성도들을 죽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희생을 각오해서라도 교황이 내리는 일요일 휴업령을 지키지 말고 짐승의 표도 받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교황은 앞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며 그에게 불순종하는 자는 다 죽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수영, "666을 이긴사람들", 소문출판사, 1991, p 86. )
안식교의 성서 학자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썻다. "우리들은 지금 모든 영혼들을 위한 큰 싸움의 최고 절정에 도달하고 있다. 지금 세상은 두 패로 갈라져 서로 대진하고 있다. 수 백만명이 속고 있다. 죽음의 위협과 보이콧(boycott)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 안식일을 지키게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이 저들은 거짓 안식일을 지키므로 짐승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안식일이지 결코 하나님의 안식일이 아니다. 안식일을 지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데 목숨을 바치고자 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안식일을 지키도록 법이 제정될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가까왔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안식교도들은 요한 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144,000명은 안식일을 지킨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저들은 제 칠일을 안식일로 지키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게 된다고 주장한다. 매매하기 위하여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고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면 짐승의 표를 받게 된다고 주장 한다.( J.N. 고트너, 이희숙역,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1970, p 212-213. )
14) 마틴루터가 666이다. / 로마교회 이론
로마 교회는 개혁자 마틴 루터(Luther)의 이름이 히브리어로 666이 산출 된다면서, 마틴 루터를 적 그리스도로 지목하여 했고 현재도 그렇게 단정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적 그리스도는 다니엘이 예언한 '작은 뿔'의 여덟 가지 특성들이 다 발견되어야 하는데, 루터에게는 그와 같은 특징들이 전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이름의 수치가 666이 산출된다고 해서 누구든지 적그리스도로 간주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석근, "666 적그리스도", (주)임마누엘, 1992, p 139. )
15) 개인을 지칭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이 숫자는 어떤 특별한 인물이나 국가를 나타내지 않는다. 666은 단순히 본문에 나타난 짐승들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숫자를 연구할 때 그것이 역사장의 특정 인물이나 국가를 가리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잘못된 해석을 8:1,2에 대한 그 들의 해석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두 구절은 독립된 사건을 나타내는 구절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건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8:1,2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어린양이 일 곱째 인을 뗄 때 하늘이 반시간 동안 고요하였다. 그 후 나는 일곱 나팔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다." 그들은 계속하여 일곱 나팔이 울리는 것은 일곱 번째 인이 떼어지는 사 건 바로 뒤에 따라온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는 일곱 나팔이 일곱번째 인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하늘이 반시간 동안 잠잠할 때, 어떻게 일곱 천사가 서로 모여서 나팔을 받았느냐 하는 등등의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요한이 본 환상의 내용과 형식을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8:1,2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구절은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인이 열리고 난 후부터 일곱째 인이 열리기 전까지의 반시간 동안 요한이 이제껏 보고들은 것을 묵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요한의 서신이 아시아에 있는 교회의 회중에게 전달되어 그들이 그것을 읽은 때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났을 것이다. 즉 그들이 일곱째 인을 떼 때 발생하는 사건을 읽기 전에는 다음의 일어날 사건에 대한 흥분과 긴장에 휩싸여서 얼마 동안의 적막이 흘렀을 것이다.
즉 그들은 1절과 2절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적인 공백이 있음을 깨닫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몇몇 고지식한 학자들은 이 공백 기관을 배제하고 1절과 2절을 연속적인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러면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본문 18절을 해석해 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는 666 이라는 것이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RV)라는 구절을 심사숙고해 보자. 바울은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유추를 사용하여 어떤 영적 진리를 암시하고자 할 때 이와 같은 구절을 여러 번 사용하였다(롬3:5619, 고전9:815:32,갈3:15).
사도요한도 영적 진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때 (time)와 '숫자'(number)를 사용하고 있다. 한 가지 예로서 3년 반은 전 역사를 통해 존속하는 교회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이 기간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느니라"(마24:36).
또한 주님께서는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행1:7)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연대의 실제계수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지 사람이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은 독자들에게 그 긴 기간을 나타내주는 3년 반 (42개월 = 1260일) 숫자를 제시해 주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3년 반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재림에까지 존재하는 교회의 시대를 말한다. 따라 서 이 숫자는 어떤 신비적인 상징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인간의 이성으로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숫자는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기간인 3년 반과 일치하기 때 문이다. 또한 만일 이 숫자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기간(그의 세례 받으심 과 승천까지) 인 3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어떤 것들을 가리킨다면, 3년 반 이라는 기간은 오순절에 일어난 교회의 성령 세례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를 만나기 위해 들리움을 받을 때까지 기간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계수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 백성의 실제 숫자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이다. 성경은 오직 "주님만이 자기 백성들을 아신다"(딤후2:19) 고 했으며, 또한 요한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 도의 많은 군중이었다(7:9). 그러나 계시록을 읽는 독자들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은 144,000명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준 것이다.
세 번째 실례는 21:17에 나오는데, 하늘 성곽의 벽이 144규빗으로 나와 있다(이는 아마 높이가 아니고 두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상징적인 것이지 실제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수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수치로써 하늘의 성곽을 표현한 것은 우리들로 하여 금 하늘의 성곽을 상상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짐승과 숫자를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왜곡되게 해석함은 어리석은 일이다. 계시록에서 교회는 여러 가지 다른 형상(24장로들, 여인, 증인들)이나 또는 숫자(144,000)에 의해 상징되어져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존속하는 기간도 어떤 형상(여인이 용으로 부터 보호받고 있는 것, 증인들이 예언을 선포하는 것,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짓밟는 것)이나 숫자 (3년 반)에 의해 상징되어져 있다. 한편 거짓 종교는 땅에서부터 올라온 짐승과 666 이라는 숫자에 의해 상징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666은 네로황제나 칼리굴라 또는 제국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짐승과 거짓 종교를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요한이 말하고 있는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고지식한 학자는 18절을 한번 힐끗 곁눈질하고는 하나의 독립된 절로 취급하여 해석한다. 그는 18절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이것이 지혜를 요구한다. 총 명이 있는 자는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인간을 가리키는 숫자이며 666을 말한다." 그는 18절 전체를 하나의 수수께끼로 보고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출발점이 바로 666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666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666은 네로황제나 또는 다른 황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666의 의미를 알아내 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단지 '666을 세어보라'고 말했을 뿐이다.( 마이클 윌콕, 이종일역, "역사의 저편 새 하늘과 새 땅", 기독지혜사, 1988, p 167-168. )
16) 반기독교 독재주의자로 보는 이론
저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 짐승의 수이면서 사람의 수라고 했기 때문에 짐승은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반항하는 반기독교자이기 때문에 반기독교 독재주의자는 모두 666에 해당하는 적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봅니다. 네로, 레닌, 스탈린, 히틀러, 김일성, 반기독교 독재주의자는 사단의 충복입니다.
17) 사이비 단체로 보는 이론
외모가 양과 같다고 했으니, 곧 기독교의 형태를 가지고 활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용의 말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짐승을 한 개인으로 보기보다는 기독교의 단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W.C.C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선명, 박태선처럼 기독교의 이름을 가지면서도 기독교가 아닌 단체들이 여기에 속 한다는 점이다.
18) 상징으로 보는 이론
본 구절에서 요한의 질문은 '사람의 수니'라는 부분까지이고, 나머지 부분은 그것에 대한 해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본 구절에서 666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거짓종교이다. 이제 우리는 이 구절을 요한 당시의 독자들이 읽었던 것처럼 해석해 보기로 하자. 지혜있는 그는 그 짐승의 수 곧 '사람의 수'를 세어보라. 그런데 그 숫자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와 전 역사를 통해 존재하는 교회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666이라는 숫자는 완전수 777에 가깝기는 하지만 결코 그것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지 않는가? 만약 참되고 완전한 것을 상징하는 숫자가 7이라면 거짓 종교는 6이라는 숫자로 표현될 수 있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는 666을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즉 이 숫자는 신약시대 때 온 세상을 대적하는 모든 거짓종교 즉 적 그리스도의 권세를 상 징한다. 그런데 이 짐승의 수는 단순한 6도 66도 아닌 완전히 채워진 666이니, 이 는 완전수인 7에서 1일 모자란 불완전한 수 6을 3개 포개 높은 것으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완전에 대한 마귀적인 모방, 현혹성, 환난, 저주 등 을 의미한다. 결국 666은 하나님의 완전함을 상징하는 777에 반대되는 숫자이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하나님의 의에 미달하고 당신의 주권에 도전하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뜻하고 있다.( 마이클 윌콕, 이종일역, "역사의 저편 새 하늘과 새 땅", 기독지혜사, 1988, p 167-168. )
수를 센다는 것은 본질을 안다는 뜻이고, 다음에 나오는 "육백육십육"도 질(質)을 표현한 수이다. 그 "수", 곧 "질"이란 것은 말씀의 여러 진리 가 저들에게서 거짓화 되었다는 표현이다. "짐승의 수"란 말씀의 확증, 곧 그 교리와 신앙을 확증하는 특질을 뜻하고, "666"이란 원칙적으로는 선한 속한 척하는 거짓된 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666"의 뜻이 이같이 표현되는 것은, 여섯은 셋의 곱수인데, 셋의 충만이나 전부를 표현하므로 진리를 전제로 하는 수요, 선과 진리의 결혼을 표현하는 수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여섯은 말씀에 속한 여러 진리를 표현하나, 여기서는 거짓화 된 그 교리들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또 "666"은 여섯의 세 겹인데, 세겹은 완결을 뜻하므로, 그들에게 함께 한 선을 가장한 모든 교리가 온전히 파괴된 것이란 표현이다.( 임종은, "열어 놓은 계시록", 도서출판 소망사, 1989, p 215. )
그 수가 사람의 수라고 하며 따라서 사람이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으로 말하였는데 요한계시록은 언제나 문자적인 뜻이 아니라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손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불완전수 6의 삼중적 표현으로 666이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이순한, "요한계시록강해",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5, p 283. ) 오늘 우리의 견해로는 그것을 상징적인 숫자로 보는 것이 계시록의 문서 적인 성격을 볼 때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상징으로 볼 때 불완전 숫자 6(7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이 세 개 모인 것으로서, 마귀의 수, 불완전의 수, 인본주의 수인 것이다. 777이 하나님의 삼위일체 수라면 666은 마귀의 삼위일체 수이다. 마귀는 언제나 모자라고 실패하는 것이다. "실패 에 실패에 실패"를 나타낸다(Hendsiksen) 그것은 불완전의 삼위일체다(T. Torrance).(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184. )
13:18의 말씀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666의 의미는 6이란 완전 숫자인 7에서 하나가 부족한 숫자이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레 중 엿새를 일해야 했으며 노예도 다만 6년을 일했고 밭도 6년을 사용한 뒤에는 7년째는 쉬도록 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짐승의 숫자가 6을 세 개 나란히 배열한 수자 란 점이다. 이것은 인본주의의 극단을 말하며 마귀의 삼위일체 수이기도 하다.( 신성종, "요한계시록강해", 정음출판사, 1983, p 99. )
우리는 이 예언을 신약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의, 구조나 또는 요한계시록의 나머지(예를 들면, 종말까지 인내하라는 가르침) 부분에서 따로 떼어 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복음에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며, "오직 믿음으로만"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로만"이라는 원리들을 이 시대의 마지막 날에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원리라고 간주하여 내팽개쳤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의 편협한 예언 해석에 근거하여 어떤 행위를 그 원리들에 추가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을 제대로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원히 구원받은 자들을 인친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반면에 짐승의 표는 불경건과 불신에 대 한 특징으로 보는 것이다.( 그레엄 골즈워디, 김영철역, "복음과 요한계시록", 한국성서유니온, 1991, p. 195-196. )
이 숫자를 단순한 상징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예수'를 헬라어로 쓴 이 예수스란 단어의 숫자 가치를 합산해 보면 888이 된다. 모든 수가 완전수 인 7을 넣고 있다. 그러나 666은 그 반대로 모든 수가 7에 미달되고 있다. 즉 이 수는 어떤 개인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의에 부족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본문의 숫자가 특정한 한 개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면 이 해석은 더욱 합리성을 띄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요한은 우리에게 중생치 못한 사람은 항상 악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범사마다 짐승의 표가 붙어있다. 즉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문화는 불가항력적으로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것이다.(틴텔주석,1983 )
666이라는 수를,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힘이 악한 영에 의하여 인도될 때 행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나타내 주는 상징적인 수로, 그리고 짐승의 힘이 가장 지고한 발전단계에 도달하고 인간의 모든 문명과 예술과 노래와 과학과 이성이 하나로 연합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허무맹랑한 것으로 간주하게 하고 미래의 삶에 대한 소망을 현세의 행복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간주하게 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수로 해석하고자 한 다. 그때 세속적인 힘의 영향력은 절정에 이를 것이며, 오직 참된 지혜자만 이 신앙의 세계와 무신앙의 세계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인식하게 될 것이 다.( 베이커 주석, 기독교문사, 1988, p 560. )
본문이 왜 하필 666을 말했는가? 그것은 우상이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함이다. 만약 하나님의 숫자라면 7이다. 그리고 7이 세 번이면 완전한 하나님이다. 6은 7에 못 미치는 숫자로서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이적을 행하고 신(神)인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하나님까지는 못 미친다는 것이 다. 그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의도를 망각하고 666 숫자 그 자체가 마치 신비적인 숫자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바른 성경해석 에 근거하지 못한 불건전한 종말론이다.(한정건,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p 185. )
우리가 이제 계13장을 통해서 얻어야 할 중요한 것은 짐승과 우상을 섬겨 그 표를 받느냐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의 표를 받느냐 또는 짐승의 표를 받고 멸망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표를 받아 영생을 얻는냐 하는 두 가지의 일 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표를 받을 수 없듯이 짐승을 섬기지 않으면 짐승의 표를 받을 수 없다. 짐승을 섬기지 않고 표만 받는 것은 짐승의 표가 아니다. 짐승의 표란 반드시 짐승과 우상을 섬기고 받는 것이다.( 김수영, "666을 이긴 사람들", 소문출판사, 1991, p 81. )
666은 '상징 수'로 보아야하고 결코 666의 문자적 표나 마크로 보면 안된다. 666의 해석을 강조하지 말고 666의 상징자인 짐승, 거짓선지자를 이길 수 있는 신앙을 강조해야 한다. 진정한 신앙은 어떤 제도의 변화, 정치의 변화 체제의 변화속에서라도 다니엘처럼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신앙의 훈련과 연단에 관심을 둘뿐이며 미래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선한 목자 여호와가 우리를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천정웅, "휴거와 666의 정체", 월간 현대종교 편집부, 1991, p 47. )
2. 컴퓨터와 666
컴퓨터와 666의 관계에서 분명하고도 명확한 관계 정립이 되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666을 컴퓨터로 해석하는가 하면, 이론이 궁색한 이단종파나 종말주의자들은 컴퓨터와 666이라는 문제를 잘 이용하고 있다. 컴퓨터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방황하는가 하면, 교회 전산화 문제와 관련된 많은 부분에서 무분별한 반대에 부딪쳐 진보적 입장이던 교회가 사회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난 1991년 10월 21일부터 11월 10일까지 20일간에 걸쳐 전국 1020명의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요한계시록 13장 18절의 '666'은 컴퓨터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20%가 직접 관계가 있다. 23% 간접 관계가 있다. 22% 아무 관계가 없다. 35%가 잘 모르겠다고 응답해 '666'이라고 생 각하는 응답자 수가 많았고 알 수 없다는 응답도 35%에 달하여 "컴퓨터 666"의 주제를 다룬 책들이 깊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와 선교 5주년 기념호", 한국컴퓨터선교회, 1991, P 28. )
르네상스 시대의 3대 발명품 중의 하나인 철판 인쇄기가 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구라는 것은 사용하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변할 수 있다. 사탄의 손에 들리면 사탄의 도구가 될 것이며 천사의 손에 들리면 천사의 도구가 되어 좋은 일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컴퓨터를 마귀나 사탄으로만 오해하는 많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사탄의 일을 돕고 있는가, 사탄이 준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이러한 문제들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하여 결국은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기에서 다루는 사항은 특별히 어떤 책이나 개인을 상대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분별한 이론은 혼란을 초래하며 많은 사람들을 방황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필자가 생각한 범주 안에서 컴퓨터는 666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다.
컴퓨터를 666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은 바코드이다. 바코드에서부터 컴퓨터가 666이라는 이론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이 이론을 중심으로 컴퓨터와 연관되는 많은 부분에서 666이라는 숫자를 찾아내기 시작하였다. 컴퓨터의 줄무늬 바코드가 666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사람의 책 속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약 3년 동안 필자는 666을 바코드로 나타낸 만국 상품 부호를 파악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읽고 또 설명도 들어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만족할 만큼 충분히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2년 동안을 조사해나갔다.( 메어리 S랠프, 장인순역, "세계독재자와 666", 문진당, 1988, p 40. )
필자도 위의 필자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666을 찾기 위하여 바코드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으며, OO바코드 시스템이라는 회사까지 찾아 바코드와 666이라는 관계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사실 바코드는 666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바코드가 666 이라는 문제는 기독교 일각에서 너무 종말론에 치우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영제, "교회와 컴퓨터",한국컴퓨터선교회, 1992,p 340.)
이 바코드에 대하여는 뒤에서 더 언급하고자 한다. 이 조사 과정에서 필자가 확인하게 된 것은 한 가지 사실이다. 컴퓨터 바코드는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것과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재의 표준제도와 국제규격이 확정되어 일정한 규율은 있으나 이것은 지금 현시대에 정한 논리이기 때문에 더 좋은 방법이 나오면 또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 한 가지 사실이 지금의 바코드가 어떻게 풀어 666이 되든지 안 되든지 사실 필자는 더 이상 논란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는 영원과 불변에 원칙을 둔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 14: 6).
어떠한 경우에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함이다. 또한 성경에서 말 하는 666이라는 숫자가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도 그렇게 간단하게 의미 없이 보이는 어떤 수로 나타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잘못된 세대주의적인 해석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666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3. 수(數)
수가 발전하여 컴퓨터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알아봄으로써 컴퓨터와 수의 관계를 좀 더 깊게 이해하여 컴퓨터가 666이 될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1) 수의 발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성경에서 처음으로 수의 개념이 나오는 구절이다. 성경도 처음부터 수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수를 몰랐다면 굉장히 불편할 것이다. 인간이 생각 할 수 있다는 것은 수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가 없었더라면 먼저 화폐가 있을 수 없다. 셈을 할 수 없는 화폐란 뜻이 없기 때문이다. 1대 1의 물물 교환을 하는 수단으로 항상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화폐로서의 효용을 가지기는 하겠지만 화폐로서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이윽고 누군가 대상물에 대해 손가락을 1대 1로 대응시키는 것을 착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둘 있는 것을 2개로 하지 않고 집게손가락으로 나타내며, 다섯이 있다는 것을 다섯 개라고 하지 않고 새끼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식의 계산법도 있었을 것이다. 이 방법이라면 3속에 1이 셋이 있다는 수의 관계는 좀처럼 깨닫기 어렵다.
고대 그리스의 계수법도 원리적으로는 이렇다. 한 손으로는 5가 한도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두 손이 쓰여 지게 된다. 10으로도 모자라게 되면 이번에는 발가락까지 이용하게 된다. 그러면 20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곤란하다. 이때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보태어 수의 벽을 극복했을지도 모르고, 자기 손가락을 다시 써서 20 이상의 수에 도전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에 익숙해지면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반복하여 50, 70으로 계수의 범위를 확대 하게 된다.
이 계수법이 이른바 20진법(진법)이다. 영국의 화폐 제도에서는 1 파운드를 20실링으로 하는 20진법을 최근까지 사용했다. 이것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사용한 계수법의 유물이다. 디지탈이라는 말이 시계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디지트란 손가락을 말한다. 따라서 디지탈이란 손가락으로 세는 것과 같은 이른바 눈셈을 뜻한다. 디지탈 시계에서는 1분마다 숫자가 바뀌는데, 이것은 손가락 하나를 접는 것에 해당한다. 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하면 셈의 연구가 시작되기 마련인데 이 수의 연구는 곧 과학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2) 수학
일반적으로 수학이라고 말하면 매우 간단한 것같이 들리지만, 학문으로 이를 분류하려 들면 수는 엄청나며 19세기의 수학부터 이야기한다 해도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중에는 수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도 전달이 가능한 현상도 많으며, 따라서 상당한 전문적인 훈련이 되어있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곤란한 부분이 많다. 그러므로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현대 수학을 이야기하려면 자연히 어떤 특수한 일면만을 문제 삼게 되는 폐단은 불가피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전 제를 놓고 제일 먼저 등장하는 부문이 비유클리드 기하학(Non Eucl- idian Geometry)이다.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우는 평면 기하학이 바로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B.C. 300년경에 생존했었다고 알려져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유클리데스가 집대성한"기하학 원본"에서 말하는 제5공준(공준)이 성립되는 공간을 말한다. 제5공준이란 하나의 직선이 있고 그 직선 밖에 한 점이 있으면 이 점을 통과해서 그 직선에 평행하는 직선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정리이다. 이와 같은 제5공준은 19세기 초까지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지만, 19세기 초에 로바체프스키와 볼야이가 평행선 공리를 담대히 부인 하고 소위"쌍곡 기하학"을 성립시킴으로써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그 지반을 굳히게 된다.
그 후에 리만이 로바체프스키의 사상을 발전시켜 "타원 기하학"을 확립시켰고, 따라서 어느 일정한 직선 외에 한 점을 통과하여 이 직선에 평행한 직선이 많다는 가정을 세워도 하등의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 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20세기의 공리주의가 시작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비유 클리드 기하학은 그 후 힐버트나 페아노 같은 유명한 학자들의 강력한 이론 적 뒷받침이 있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 (시공)의 성격은 유클리드적인 공간이 아니라 비유클리드적인 리만 공간이 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실질적인 현상의 뒷받침도 나타났다. 그러나 20 세기의 공리주의란 반드시 실제하지 않더라도 공리는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 힐버트의 해석이기도 하다.
오늘의 수학의 세계를 요약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관점 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르게 요약될 수도 있다. 제아무리 공리주의가 성행 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물리나 생물 분야에서 수학이라는 용어를 구사하면서 일정한 모델을 추구하고 있는 학자도 많으며, 이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수학은 미분 방정식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 수학에서도 미분 방정식이 차지하는 영역은 수학 전반에 걸쳐 매우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학을 한다는 사람끼리도 전공이 다르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비교 집단(비교 집단)과 같은 분야가 있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대수 기하학"(대수 기하학)이요,"대수 다양체"(대수 다양체)분야이다.
수학에는 노벨상이 없다. 수학 분야에서 노벨상에 해당하는 상이 피일즈 (Fields) 상인데, 이 상은 매 4년마다 국제 수학 학술회의(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s)에서 선정 및 수여하는 것으로 40세 이하의 학자로 서 한 번에 네 명을 초과할 수 없다고 한다. 상금 이래야 불과 1,500불 밖 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피일즈 상을 타는 사람 중에 대수 기하학이나 대수 다양체를 전공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인 그로땅딕이라는 사람은 연구 도중 이 같은 비교적(비교적) 연구 그 자체에 회의를 품고 산속으로 은신하고 말았다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옛날 희랍 시대에 피타고라스 학파가 비교적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세 번째의 분야는 계산기를 이용하는 수학 분야이다. 위에서 언급 한 비교 집단과 같은 분야의 내용은 거의 무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오늘날의 사회에서 계산기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을 존재이다. 계산기란 수학이라는 본래의 뜻에서 말한다면 수학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오늘날 계산기를 수학에서 제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네 번째가 [수학 기초론](수학 기초론)이다. 금세기에 들면서 발달한 분야이며 한동안은 철학적인 색체가 농후하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근자에 와서는 그 철학적인 색체가 희박해져가고 있다. 요컨대 수학에 있어서의 개념 구성 법 및 논법에 대한 수학적인 반성이 촉진되어 나타난 분야가 수학기초론이다.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욥 5:9)라고 욥은 고백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수학의 세계를 단순한 셈의 세계로 오인하고 다만 계산하는 기술만이 수학인 것처럼 오인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수학의 세계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에게 주신 사고(사고)의 세계를 더욱더 깊이 발전시키고 넓히는 인식의 세계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아라비아 숫자의 발견
[아라비안 나이트]라는 이름의 감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8세기의 아랍 이야기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사실은 당시의 아랍 문화가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와 반대로 오늘날의 아랍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등 일군의 석유 산유국과 전쟁의 끊임이 없는 지역이 될 뿐 그 문화는 문제가 안 된다. 여기에는 남아도는 오일머니가 있고 그것이 교육에 투자되고 있다는 보도는 있긴 하지만, 이것은 문화의 낙오를 되찾으려는 노력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중세 유럽이 이른바 암흑시대의 터널에 숨어버릴 무렵 문화의 꽃은 사라센 제국에 피었다. 이 제국은 7세기에 인도로부터 북아프리카를 거쳐 에스파니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였다. 얼마 후 두 개의 교왕국으로 분할되었으나 역대 교왕은 학문, 예술의 진흥에 힘을 쏟아 아랍 문화를 세계에 으뜸가는 것으로 꽃피게 하였다. 고대 그리스 문화와 당시의 인도 문화를 흡수하는데 유리한 지리적 조건이었다는 것도 큰 혜택을 입었을 것이다.
문화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수의 표기법을 갖는 것이 통례이다. 당시의 아랍은 다종다양한 민족의 집합체였으므로 지역에 따라 각양각색의 표기법이 채용되었다.
그들은 수에 대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머리글자로서 수를 나타내는 습관이 있었다. 이윽고 그리스의 방법이 도입되어 아랍의 알파벳 26문자로서 수를 나타내었다. [아라비안 나이트] 시대는 그 문화가 가장 고양된 무렵으로 바그다드의 교왕은 하룬 알-라시드였다. 그가 즉위하기 조금 전 773년에 한 천문학자가 멀리 인도에서 왔다. 천문학자는 천체 관측표를 왕에게 헌납하는 목적으로 인도 숫자도 함께 가져왔다.
그러자 그것은 요원의 불길처럼 상인, 수학자 사이에 번져나갔다. 이것이 아라비아 숫자로서 우리가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서 같은 3이 3,000 의 3에도, 300의 3에도, 30의 3에도 한결같이 쓰여 진다. 대수가 아랍에서 태어났어도 그리스에서는 태어날 수 없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4) 10진법의 발견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10진법과 친숙하다. 손가락 수가 양손을 합해 10이 되는 것에서 10진법은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는데, 수학자가 속출된 고대 그리스에서 그것을 몰랐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 일 수 밖에 없다.
삐에르 시몽 라쁠라스라고 하면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활약한 프랑스의 수학자인데,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10진법이라는 휼륭한 숫자가 발견 된 것은 인도에서다. 이 심원하고 중요한 발상은 겉보기에는 너무 간단하기 때문에 그 진가가 인식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모든 계산을 이 10진법이 단순화하고 또 용이하게 한 결과 산술은 제 1급의 유용한 발명품이 되었다. 아르키메데스나 아폴로니우스와 같은 고대 수학자가 이에 생각이 미치지 못 한 사실로도 10진법의 위대성은 명백하다.
그리스의 수학자들은 자기들의 문화를 최고의 것이라고 상정하고 큰 수나 까다로운 계산을 전통적인 방법으로만 하였다. 그런 오만하고 밑바탕이 없는 사회에 갑자기 큰 수가 나타났다면 수의 표기상 획기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도에서 10진법이 발명된 것은 기원전 100년경이라고 하는데, 10진법은 60진법과 더불어 바빌로니아에도 있었다. 바빌로니아의 10진법은 인도보다 오래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인도의 경우는 아라비아 숫자라는 것을 가졌었고 0을 가졌기 때문에 월등하게 발달되었다. 0을 가졌느냐 가지지 못했느냐, 표기법이 10진법에 적합하냐 아니냐로, 모처럼의 10진법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였다.
컴퓨터의 발명에 의해 2진법이 각광받게 되었다. 전기 장치로 수나 문자를 파악한다면 정보는 모두 스위치 on과 OFF로서 조립될 필요가 있다. on을 1, OFF을 0으로 한다면 수는 둘밖에 없으므로 2진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펀치 카드에서는 1에서는 구멍을 뚫고 0에서는 구멍을 뚫지 않는다. 2진법 이라면 0이 0,1이 1,2가 10, 3이 11, 4가 100, 5가 101, 6이 110, 7이 111 이 된다. 이 2진법으로 필산한다면 불편하기 그지없다. 단 컴퓨터는 그것을 전자적으로 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알 수 없고 컴퓨터가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이러한 2진법은 전자적으로 계산이 가능한 컴퓨터용 밖에는 안 된다. 현대의 우리는 10진법 외에 60진법과 2진법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5) 2진법과 비트(Bit: Binary Digit)
10진법과 2진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사용하도록 주신 암시이며 인간은 그 수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이 열이며 발가락도 열이 라는 것은 10진법이며, 남녀가 있다는 것과 빛과 어둠은 2진법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러한 힌트를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복잡한 수의 계산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알려진 바와 같이 0과 1의 2진법을 기본 원리로 구성돼 이것을 기초로 동작한다. 2진법에 사용되는 0또는 1을 비트(bit)라 부른다. 예를 들어 10110은 5bit이다. 따라서 컴퓨터에서 처리하는 최소 기본 단위는 bit라 할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도 결국은 bit에 의해 처리된다. 여기서 8 bit를 바이트(byte)라 하기도 한다.
byte는 16진법 등 다른 진법으로의 변환이 용이하기 때문에 처리의 기본 단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byte를 처리의 기본 단위로 하는 컴퓨터 는 동시에 8bit를 처리할 수 있다. 대부분의 마이크로컴퓨터는 byte단위로 처리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본 컴퓨터의 내부에서는 그 수를 사용함에 있어서나 어디에서도 666이라는 숫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컴퓨터의 내부 작동 방법과 원리는 2진법의 방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의 숫자 계산 방법은 10진법과 60진법, 2진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컴퓨터에서 6이라는 숫자는 1부터 시작하여 2,3,4,5,6이라는 숫자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에서는 6이라는 숫자를 특별히 다루지 않으며 순서 상 오게 되는 확률일 뿐이다. 10진법으로 생각할 때 0-9까지 10번 중에 한번은 모든 숫자와 마찬가지로 한번은 6도 나오게 되는 뿐이다.( 이영제, "교회와 컴퓨터", 한국컴퓨터선교회, 1992, p 348. )
[4] 결 론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며 여러 서적들을 참고하면서 공통적인 부분은 계시록을 처음부터 주석을 하든지 아니면 강해로 설명하든지 하는 서적들은 666문제를 다룰 때 적어도 신중을 기했다는 사실과 여러 책들을 참고한 것이 주목되며 특별히 길게 언급할 때는 필자에 따라 의견을 첨부하는 식으로 진행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근간에 문제가 되는 컴퓨터와 현실적인 적용이 없었던 것이 주목할 만하다.
반면에 종말론과 666만을 가지고 해석한 책들은 외국의 번역본들의 영향 을 받아 거의 특별한 주장 없이 이론을 받아들여 나름대로 추가한 흔적만이 보일 뿐이다. 이러한 책들의 제목은 666과 컴퓨터, 바코드, 신용카드 등의 열거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목적이 뚜렷해 보였으며 성경이 말하는 666을 석의하려는 성경적인 해석법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가끔씩 성경의 본문을 언급한 부분은 있으나 무리한 추측과 연결로 상식적인 생각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666의 문제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666자체에 연연하여 그 숫자만을 또는 그 수가 무엇을 가리키느냐 에 만 집착한다면 올바른 해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성경을 마구 해석한다면 이것은 기독교 의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부터 지탄을 면치 못할 것 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세상에 비교하는 세대주의적 해석은 결코 성 경이 말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666의 뜻을 완전히 찾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지나치게 찾으려고 또는 알려고 할 이유가 없으며 또한 염려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666을 꼭 알아야만 천국에 간다든가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 다. 오히려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할까 염려될 뿐이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문제를 꼭 알 필요가 있다면 인간의 억지적인 해석이 아닌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이론으로 깨우쳐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4.성경상의 길이
길이 측정의 기본이 되는 것은 규빗이다.
규빗은 보통사람의 팔꿈치에서부터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다.
규빗에도 차이가 있는데 에스겔 40장 5절의 규빗은 정상보다 손바닥 크기만큼 더 길다.
신약시대에는 한 규빗은 21.6인치 550mm 였다.
안식일에 갈 수 있는 길이는 2,000규빗 이내의 거리였다.
길이는 동시대에도 지역에 따라 이해하는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환산은 어렵다.
아래 도표로 정리하여 보았다.
명 칭 |
길 이 |
관 련 성 구 |
비 고 |
손가락(Finger) |
1.9cm |
렘52:21 |
|
손 바닥 폭 (Hand breath) |
7.6cm |
출25:25 |
|
뼘(Span) |
22.8cm |
출28:16 |
|
규빗(Cubit) |
45.6cm 1.5 尺 |
창6:15 |
|
길(Fathom) |
1.8m 6尺 |
행27:28 |
|
갈대(Reed) |
2.67m 9尺 |
계21:15 |
|
리 스타디온(Stadion) |
184.85m 1/2 里 |
마14:24, 눅24:13 |
|
마일(Roman Maile) |
1.48 km 4里 |
마5:41 |
|
안식일 길(Sabbth Day's Journey) |
1.1 km 3里 |
행1:12 |
|
5.성경상의 화폐가치
화폐의 단위는 사실상 정확한 계산은 어렵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그리고 오늘날에도 수시로 변하는 것이 화폐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성경을 근거로 그 가치에 대해서 대략 표기한 것에 불과하다. 주조화폐는 BC 7세기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는 금속들과 일시재와 영구재, 양모, 곡물, 대추야자, 목재, 가축 등을 서로 물물 교환 하였다. 무게 명칭들이 몇몇 주화 명칭들로 사용되기 시작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초기에는 인을 눌러 찍은 금속 조각들이 화폐였다. 그리고 금이나 은화로 직접 값어치가 나가는 것을 화폐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신약시대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이스라엘이 로마 표준 화폐도 사용하였는데 안디옥과 두로에서 주조한 주의화폐(헬라 표준)와 필시 가이사랴에서 주조했을 지방의 유대화폐가 그것이었다. 이때는 금, 은, 동 그리고 청동이나 놋쇠로 주조되었다. 비교적 가치가 낮은 로마화폐 아스와 유대화폐 렙돈은 청동 주화였다. 신약성경에 자주 언급된 화폐는 은화 헬라화폐 테트라 드라크마와 로마화폐 데나리온이다.
이를 아래와 정리하였고 기준은 우리나라의 현재 노동자 하루 품삯을 50,000원이라 가정하여 계산하였다
성경상의 화폐가치
|
명 칭 |
가치 |
관련성구 |
한국돈(현재) |
비고 |
유
대 |
게라(Gerah) |
세겔의 1/20 |
출 30:12 |
10,000 |
한국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50,000원이라고 가정할 때 |
베가(Beka) |
세겔의 1/2 |
출 38:26 |
100,000 | ||
세겔(Shekel) |
금=은의 15배 |
대상 21:25 |
3,000,000 |
예수님은 은 30세겔에 팔림 즉 600만원(당시 1명 노예의 값) | |
은=일반 노동자 4일의 품삯 |
삼하 24:24 |
200,000 | |||
므나(Minah) |
달란트의 1/60 |
눅 19:13-25 |
5,000,000 | ||
달란트(Talent) |
금=은의 15배 |
대상 29:4 |
45억 |
| |
은=6000 드라크마 |
마 18:24 |
3억 |
| ||
로
마 |
코드란트(Kodrantes,호리) |
앗사리온의 1/4 |
마 5:26 |
781 |
|
앗사리온(Assarius) |
데나리온의 1/16 |
마 10:29 |
3,125 |
| |
데나리온(Denarius) |
하루품삯 |
마 18:28 |
50,000 |
| |
헬
라 |
렙돈(Lepton) |
로마 고드란트의 1/2 |
막 12:42 |
391 |
과부의 두 렙돈은 782원 |
눅 12:59 | |||||
드라크마(Drachoma) |
하루품삯 |
눅 15:8 |
5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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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총론》
1. 성경은 어떠한 책인가? 2. 구약성서는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3. 구약 성경의 내용 분해 4. 각 책의 주제
A.우리말 구약성서는 무엇에 근거했는가?B.구약성서의 배열C.구약성서 외경 일람표
1. 성경은 어떠한 책인가?
1) 하나님의 계시의 책이다.
인간은 지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이 세계는 어떻게 생성 되었으며,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지, 인간은 왜 이렇게 불행하며 죄가 많은지, 또 어떻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며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내세는 있는지, 어떠한 곳인지, 인류의 역사의 종말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하나님은 계시는지, 어떠한 분이신지, 진정한 구주는 누구이신 지 등등 삶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문제들에 관하여 알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림설명 / 율법낭독: 사진에서처럼 유대인 회당에서 회중들 앞에서 낭독하기 위해 귀중 한 두루마리가 보존된 성궤에서 율법을 꺼내 펼치면 신자들은 경건한 자세로 그 율법을 우러러 본다.
그리하여 이성을 가지고 많은 사색을 해본다. 또 경험을 통하여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의 능력과 경험은 한계가 있고 미약한 것이어서 그러한 중대한 문제들을 알 수가 없다.
성경은 이렇게 중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감추인 모든 비밀을 진리의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것이다. 자연을 통해서나 양심을 통해서 또는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조금은 알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을 일반(보통)계시라고 한다.
성경은 이러한 것을 분명히 계시한다. 그러므로 특별 계시라고 부른다.
성경을 통하여 즉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구약)와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신약)를 통하여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구원의 도리, 인간이 알고 싶어 하는 귀중한 진리가 바르고 밝게 계시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신, 구약 성경이다.
2)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롬10:17 에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신앙을 깊고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연구하며 공부하고 성경의 학구적 연구를 힘써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고 신구약 성경은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계시의 책임을 밝히 말씀하고 있다.
신구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책이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구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하신 [한 민족]에 관한기록이고,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라고하는 [한 분]에 관한 기록이다.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의 활동의 무대를 설정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고, 신약성경은 그 무대에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활동에 대한 이야기 들이다.
3) 구약 정경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구약 성경은 유대 인들의 긴 역사 과정에서 기록되고 읽혀진 모든 책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또 구약 시대의 모든 종교서들이 전부 현재의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많은 종교적인 책들 가운데서 특별한 권위가 있다고 인정되어 선택된 책들이다. 이렇게 선별된 책들을 정경 이라고 부른다.
기독교가 유대로부터 상속받은 것은 정경으로서의 이 구약 성경이다.주님께서도 구약 성경에 대하여 많이 언급하셨고 사도들도 그러했다.
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많은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거룩한 권위가 있는 경전이며 모든 종교적 교훈과 일반 생활의 규범이 되며 영원히 모든 교훈의 표준과 원천이 되는 귀한 책이다.
2. 구약성서는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각 종교에서는 그 기본이 되는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서의 <경전>, 또는 정전이라고 하는 분서가 있다. <정전>이라고 번역된 말은 현대 유럽 여러 말의 캐논 Canon-Kanon에 해당하며, 그 어원은 슈메르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며, 앗시리아어, 우가리트어, 헤브라이어, 그리스어 및 라틴어를 거쳐 오늘의 유럽 제어에 이른 것이다. 그 본 뜻은 <갈대(풀)>을 의미하며, 그것이 <곧 은 것>이라는 뜻, 그리고 <자>,<규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즉 여러 가지 <곧다>는 의미의 도구류의 명칭에서 바르고 그른 표준이 되는 모범적 규준적 문서를 가리키게 되고, 일반적으로는 규범, 표준, 모범 등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정경>이라는 말은 그 후 유럽 제어의 Apocrypha(외경) 및 Pseudepigrapha(위경)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구약성서는 신약성서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경전이 되어 있으며, 그것은 유대교의 경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약성서라는 명칭은 신약성서가 편찬된 뒤에 이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2세기말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명칭이다.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서는 <율법(토라)>,예언서(네비임)및 제 문서(케투빔)로 되어 있으며, 다음 3단계를 거쳐서 성립되었다. 첫째는 <율법>이며 모세의 <5서)라고 불리며, 그 경전으로서의 위치는 기원전 400년경까지에 확립되었다. 둘째는 여러 예언자들의 이름으로 된 <예언서들>이며, 기원전 250년경까지 확립되었다. 셋째는 율법이나 예언서가 출현한 배경을 기록한 <문서들>이다. 그 중에는 예외도 있기는 하나, 이 문서들은 기원 90년경의 야무니아(텔.아비브의 남쪽 약 20킬로미터에 있는 도시)에서의 유대인의 종교회의에서 경전으로서의 구약성서 전체의 범위가 결정되었을 때에 경전으로 인정되었다.
이것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즉, 기원 70년에 유대교의 중심인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로마군에 의하여 파괴되고 조국을 빼앗긴 유대인들은 유대교에 마지막 희망을 건 <경전의 백성>이 되어, 유대인의 경전이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따라서 경전의 완성과 공인은 유대교의 경전 이외의 문서의 권위도 인정하고 있던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유대교의 확립과 자존을 위한 필수조건이었다.성서에 들어 있는 문서들의 문학 유형은 역사, 율법, 예언, 시가, 서한 등 다양하지만, 성서는 그 내용에 그 안에 일관되어 있는 공통된 사상의 일체성 때문에 하나의 책이 되어 있다.
구약성서의 배열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유대교의 경전과 그리스도교 개신교의 구약성서의 내용은 대체로 같다.
카톨릭에서는 70인역에 들어 있는 외경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장과 절은 처음에는 없었던 것을 사용상 편의를 위해서 12.3세기에 먼저 장이 매겨지고 16세기가 되어 절이 매겨져서 그 후 이것이 보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3. 구약 성경의 내용 분해
그림설명 / 율법보관상자:18세기 이탈리아에서 만든 아름다운 것으로 유대인 회당에 보관되어 율법을 넣어 두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유대미술관 소장.
1] 율법서(토라) 5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2] 예언서(느비임) 8권
-전기 예언서 4권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를 한 권으로), 열왕기(상하를 한 권으로)2. 후기 예언서 4권-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예언서(호세아 이하 12권을 합하여 한 권으로)3] 성문서집 (케투빔) 11권
-시가 3권
시편, 잠언, 욥기
-다섯 두루마리 5권아가, 룻기, 전도, 애가, 에스더
-역사 3권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합하여 한권), 역대기(상 하를 합하여 한권)
위와 같이 원문 성경으로는 합계가 24권의 책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39권으로 된 한글 성경은 헬라어 구약 번역(70인역=LXX)에 순서를 따른 것으로 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 하게 된다.
1. 율법서 -모세 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2. 역사서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열왕기, 역대,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3. 성문서요나, 시편, 잠언, 전도, 아가
3. 예언서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권수와 순서는 좀 차이가 있지만 그 내용은 히브리 정경과 꼭 같다.
4. 각 책의 주제
구약 성경의 각 책의 내용들은 많고 또 깊어서 한 말로 그 책의 중심적인 사상이나 주제를 규정짓기 어렵다. 그러나 쉽게 참고 되도록 개략적으로 본 각 책의 주제를 열거해 본다
1. 창세기:히브리 민족의 창건
2. 출애굽기:히브리 민족과의 약속
3. 레위기:히브리 민족의 율법
4. 민수기:약속한 땅으로의 여로
5. 신명기:히브리 민족의 율법
6. 여호수아:가나안 정복
7. 사사기:가나안에서의 처음 30년 생활
8. 룻기:메시야 가정으로서의 다윗가문 시작
9. 사무엘 상:왕국의 조직
10. 사무엘 하:다윗의 통치
11. 영왕기 상:왕국의 분열
12. 열왕기 하:분열된 왕국의 역사
13. 역대 상:다윗왕의 통치
14. 역대 하:남쪽 왕국의 역사
15. 에스라:포로 생활에서의 귀환
16. 느헤미야:예루살렘의 재건
17. 에스더:민족 전멸에서의 회생
18. 욥기:고난의 문제
19. 시편:이스라엘 민족의 찬미가
20. 잠언:솔로몬의 지혜
21. 전도서:이 세상 생활의 헛됨
22. 아가:결혼 생활의 영화
23. 이사야:메시야적 예언자
24. 예레미야: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한 취후의 노력
25. 애가:예루살렘의 황폐에 대한 장송가
26. 에스겔:내가 하나님인줄 알리라
27. 다니엘:바벨론 에서의 큰 예언자
28. 호세아:이스라엘의 배교
29. 요엘:성령 시대의 예고
30. 아모스:정의의 하나님
31. 오바댜:에돔의 파괴
32. 요나:니느웨에 대한 자비의 부르심
33. 미가:메시야 탄생지 베들레헴
34. 나훔:니느웨의 파괴
35. 하박국: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36. 스바냐:깨끗한 입술의 회복
37. 학개:성전 재건
38. 스가랴:성전 재건
39. 말라기: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주는 최후의 메시지
학자에 따라 각 책의 주제는 조금씩 다르게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예는 상당히 많은 공통성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 된다.
그림설명 / 서기의 상: 일반적으로 <미지의 서기상>혹은 <분명하지 않은 서기 상>으로 대 부분의 서기 상들이 그렇듯이 무릎 위에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펴넣고 오른손 에 붓을 들고 쓰고 있는 모습이다. 다갈색 피부. 검은 머리칼. 엄숙한 태도 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기하학적 구성 등 이집트 조각의 특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보다 지적인 긴장에 찬 표정은 주목할 만하다. 제5왕조 BC 25-24세기. 석회암에 채색.눈은 청동으로 만들어 박았다. 높이 51cm 삭카라 출토.
A.우리말 구약성서는 무엇에 근거했는가?
구약성서 제문서, 신약성서 제 문서 및 외경 제 문서(구약성서 외경, 위경)의 저작 연대는 별표와 같으며 신약, 구약을 불문하고 성서 각 문서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약성서 원본(Text)은 <헤브라이어 원전>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하게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창세기, 에스라 , 예레미야서, 다니엘서의 일부분이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또 원본은 번역에 견준 말이기 때문이다.
-옛부터 본래 기록한 그대로의 원본이 어떤 것이었는지, 또는 전해진 그대로의 원본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하는 작업이 계속되어 왔다. 특히 유효한 근거는 남아있는 많은 사본들이다. 유대인은 없애버렸기 때문에 현존하는 구약성서의 사본은 대단히 적다. 1947년에 <사해사본>이 발견되기까지는 구약성서의 일부 저명한 기록은 파피루스 사본이었다. 이것은 기원전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헤브라이어로 기록되어 있으나 단편이 현존할 뿐이다.
-19세기에 발견된 다른 헤브라이어의 사본은 훨씬 후대의 것이다. 유대교의 전통에 의하면, 회당에서 사용되는 율법의 사본은 헤브라이어로 된 것이라야 한다. 또한 그것은 정통파 유대인에 의하여 깨끗하다고 생각되는 동물의 가죽(레위기 11장 3절)에 손으로 쓴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회당용 두루마리의 경우는 모음 기호를 달지 않고, 말과 말, 구절과 구절 사이를 떼지 않고, 계속해 쓰도록 돼 있다.
-헤브라이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그리고 헤브라이어 알파벳에는 모든 기호가 없고, 한 단어의 표기는 기본적으로는 3자음을 묶어서 한다. 그러므로 기록한 단어는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헤브라이어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언어이면서 동시에 일상어로서는 죽은 말이 돼 있었던 오랜 시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른 독법이 생겼다. 그래서 전승에 근거해서 바른 독법을 정하여 헤브라이어의 각 자음 기호의 위나 아래에 점이나 선 등의 기호를 달아서 모음을 나타내는 방법이 고안되어 오늘과 같은 본문이 확정되었다. 이것이 마조르(masore<전통>라고 불리는 것이며, 이것은 2세기경부터 고정되기 시작하여 6-8세기 사이에 확립 되었다고 한다. 즉, 우리는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완전한 구약성서 사본으로 인정되어 있는 1009년에 된 레닌그라드 도서관 소장 레닌그라드 사본을 포함해서 중세의 구약성서 제 사본에 보존된 구약성서 원본을 오늘날<마조르 원본>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중세의 구약성서 필사본 전달에 직접 종사한 유대교의 성서학자(발레, 마조렛)에 의하여 불려 진 것이다.
-헤브라이어 성서를 필사하는 일은 상당한 숙련과 정확성이 필요하며, 현재 전해지고 있는 여러 사본은 많은 성서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에 본뜻을 알 수 없게 된 말이나 필사하면서 생기는 오필(誤筆)이나 사본의 파손 등 원인으로 본뜻을 알 수 없게 된 부분이 있다.
헤브라이어 원전(24서) |
한글번역(39서) |
1.율법(5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1.역사서 (17서) 창세기, 출애굽,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상 모세5경) 여호수아기,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 헤미야, 에스더 |
2.예언서(8서)전기예언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 열왕기 (후기예언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 예언서(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댜서, 요나서, 미가서, 나훔서, 하박 국, 스바냐서, 학개서, 스가랴서, 말라기) |
2.성문학(5서)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
3.제문서(11서) (진실)시편, 욥기, 잠언, (두루마리)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서. 다니엘서, 에스더 ,느헤미야 ,역대기 |
3.예언서(17서) 이사야서,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서, 다니엘서,(이상4대 예언서),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댜서, 요나서, 미가서,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서, 스가랴, 말라기서(이상 12 소 예언서) |
4.구약성서 제 문서 일람표(주제)
헤브라이 원전구분 |
문서명 |
사료 , 저작연대, 저작지 (연대는 모두 BC, 단독 수자는 세기) | |
율법 |
1.창세기 2.출애굽기 3.레위기 4.민수기 |
야훼이스트(J)사료...BC 10-9 유다 에로히스트(E)사료...BC9-8 이스라엘 신명기적(D)사료...BC 7-5 유다 제사적(P)사료....BC6-5바빌로니아, 유다 | |
예
언
자 |
전 기 예 언 자 |
1.여호수아기 |
사료는<율법>과 대개 같으나 보수가 많다. 최초의 편집은 BC 6세기 중기 |
2.사사기 |
J.E.D를 포함하나 P는 없다. BC 10이전의 사료도 일부 있다. 주요 부분은 BC 7.6에 개정 | ||
3.사무엘상.하
|
전기사료...BC 10,후기사료...BC 7말-6. BC4-3에 보수. | ||
4.열왕기상.하 |
이스라엘 왕 및 유다왕의 연대기 등을 사료로 하고 BC 600년 전후에 편집. | ||
대 예 언 자 |
1.이사야 |
제1이사야(1-39장)...BC 8 후반...유다.제2이사야 (40-55장).제3이사야(56-66장)...BC 6-4... 바빌로니아. 유다 | |
2.예레미야 |
BC후반-6후반 유다.가필..BC 5-3 | ||
3.에스겔 |
BC 6-5,가필....BC 3 | ||
소 예 언 자
12 예 언 자 |
1.호세아 |
BC8후반....이스라엘 | |
2.요엘 |
BC 4 | ||
3.아모스 |
BC 8중기....이스라엘 | ||
4.오바댜 |
BC 5-4 | ||
5.요나 |
BC 4-3 | ||
6.미가 |
BC 8후반...유다, 가필....BC 6 | ||
7.나훔 |
BC 7말기...유다. BC300년경 편집 | ||
8.하박국 |
BC 7말기...유다, 일부는 BC 6-5 | ||
9.스바냐 |
BC 7말기...유다,후대의 가필 포함 | ||
10.학개 |
BC 6후반 | ||
11.스가랴 |
1-8장...BC6후반,9-14장...BC 3 | ||
12.말라기 |
BC 5 | ||
제 문 서 |
1.시편 |
주로 BC 4이후, 그보다 오랜 것이 있으나 BC 7이전의 것은 적다. 마지막 편찬은 BC 100년경 | |
2.욥기 |
BC 7말-6(더 소급하는 설도 있다).일부는 BC 4, 완성은 BC 200년경 | ||
3.잠언 |
주로 BC4-3,오래된 것도 BC 600년 이전 것은 없다. | ||
다 섯 두 루 마 리 |
4(1)룻기 |
BC 400년경(왕국시대 말라기라는 설도 있다) | |
5(2)아가서 |
BC3(최근 솔로몬 시대라는 설도 있다)
| ||
6(3)전도서 |
BC3중기-2중기 | ||
7(4)애가 |
BC6,일부는 BC 4-3 | ||
8(5)에스더 |
BC3-2 | ||
|
9 다니엘서 |
BC2 | |
10 에스라 느헤미야 |
BC 5-3의 사료로<역대기>저자가 편집 BC 5-3의 사료로<역대기> 저자가 편집 | ||
11역대기상.하 |
BC 4-3 |
비고 1.<율법>중의 시가의 편수는 BC 12이전 및 BC 12-11로 소급된다고 한다.
2.J및 E사료 등으로 사용된 원 사료에는 BC 12-11로 소급되는 것도 있다.
3.BC 7에는 J와 E가 혼합된 설화가 이루어졌다.
4.BC 중기에 <율법>과 <전기 예언자>가 신명기저자에 의하여 개정되었다.
5.<율법>이 최종적으로 결집된 것은 BC 400년경으로 본다.
6.<전기예언자>는 BC3에 가필되었다.
7.<예언자>전체는 BC 200년경에 완성되었다.
8.고대 유대교에서는 제서를 24종으로 나누었다. 이것은 <소 예언자>를 일괄해서 1종으로 보고,<에스라>와 <느헤미야>를 1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외경 일람표
구분 서명(각종 파가 다르다)
|
각문서의 용어 |
성립연대와 지방 |
1 에TM라제1서(울가타에서는 제3서) |
H(G설도 있다) |
BC2,팔레스타인 |
2 에즈라제2서(울가타에서는 제4,5서) |
H(또는 A) |
AD 1말기. 팔레스타인 |
3 토비트(토비아)서 |
A? |
BC 2전후, 팔레스타인 (바빌론 설,이집트 설) |
4 유딧서 |
H.또는 A |
BC 2전후, 팔레스타인 |
5 에스델의 추가기사 |
G(일부는 H 또는 A에서 번역?) |
BC 2말-1전반 팔레스타인 |
6 솔로몬의지혜(지혜서) |
G |
BC 2후반-AD1전반, 알렉산드리아 |
7 예수. 벤.실라의 지혜 (집회서) |
H |
BC 2전반,팔레스타인 |
8 바룩서 |
H,일부는 G |
BC 1-AD 1,팔레스타인 |
9 예레미야의 편지 |
H설,A설,G설 |
포로시대 이후 불명 |
10 다니엘의 추가기사 아자리아의 기도 세아이의 노래 |
H 또는 A |
불명(BC2전반?). 불명 |
11 다니엘의 추가기사 (스산나) |
H(G설도 있다) |
불명(BC 1전반?) 불명 |
12 다니엘의 추가기사 (벨롸 용)
|
H(?) |
불명(팔레스타인?) |
13 므낫세의 기도 |
H설과 G설 |
BC 2-AD 2.불명 |
14 마카베오 제1서 |
H |
BC 1전반,팔레스타인 |
15 마카베오 제2서 |
G(H설,A설) |
BC1경,알렉산드리아(?) |
1 마카베오 제3서 |
G |
BC 1경,알렉산드리아 |
2 마카베오 제4서 |
|
(BC 2후반)-AD 1 (알렉산드리아,안티옥설) |
3 아리스타아스의 편지 |
G |
BC100년경,알렉산드리아 |
4.요벨서 |
H또는 A |
BC100년경,팔레스타인 |
5 이사야의 순교와 승천 이사야의 순교... 이사야의 순교 ... 이사야의 승천 |
H(또는 A)....BC 1초기 G..AD100년경 |
불명 |
6 솔로몬의 시편 |
H 또는 A |
BC 1팔레스타인 |
7 시비르(시비라)의 신탁집 |
|
BC2-AD3,최종 편집은 AD6,여러지방 |
8 에녹 제1서(이디오피아 어역이 현존) |
H 또는 A |
BC2-1,팔레스타인
|
9 에녹 제2서(슬라브 어역이 현존) |
G,일부는 H |
BC1전반,팔레스타인 또는 이집트 |
10 모세의 승천 |
H(또는 A) |
BC1,팔레스타인 |
11 바룩바룩(시리아 레스타인 어역이 현존) |
H(또는 A) |
AD 1말-2초기,
|
12 바룩바룩(그리스 어역이 현존) |
H(또는 A) |
AD2,팔레스타인 |
13 12족장의 유언 |
H(또는 A) |
BC2-1,팔레스타인, (후에 그리스도교에 의한 개정도 있다) |
비고 H.....헤브라이어, G.....그리스어, A....아람
신약의 배경과 총론
1. 신약의 역사적 배경
1-1. 파사시대 1-2. 알렉산더 시대 1-3. 애굽시대 1-4. 수리아 시대 1-5. 마카비 시대 1-6. 로마시대
2. 신약성경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
2-1. 1.바벨론시대(626-539.B.C) 2-2. 페르샤시대(539-331 B.C) 2-3. 그리이스시대(331-63 B.C.) 2-4. 하스모니안 독립시대(167-163 B.C) 2-5. 로마의 통치시대(63 B.C.부터)
3. 문화적 종교적 배경
3-1. 유대교(Judaism) 3-2. 헬레니즘(Hellenism) 3-3. 로마의 제국주의
4. 신약의 정경
4-1. 새 계약의 기원 4-2. 신약 성경을 기록한 동기와 정경화의 과정 4-3. 정경 결정의 원리 4-4.신약 성경과 그 권위
1.신약의 역사적 배경
신약성경을 연구하는데 있어 그 배경을 모르면 적합한 평가를 하기 어렵다. 따라서 복음과 사도행전에 전제되는 상황을 이해하려면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 즉 마카비시대(Maccabean age)나, 나아가 바벨론 포로에서 복귀하는 시대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구약 성경은 페르시아 통치하의 이스라엘로 끝을 맺고, 신약성경은 로마 지배하의 국가로 시작된다.
1-1파사시대
바벨론 포로동안 바사인의 바벨론 정복으로 인해 유다는 여러 지도자들이 바뀌었다. 팔레스틴으로의 복귀는 고레스와 협력함으로 가능했고 세 사람의 지도자가 그 뜻을 불어 넣어 주었다. 세 지도자란 성전을 세운 에스라, 예루살렘의 성을 재건하고 민족의 경제적 및 영적인 생활을 일깨워 준 느헤미야이다.
단지 적은 수의 국민들만이 그들의 조상의 땅으로 돌아와 다시는 죄를 범치 않을 것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와 십일조를 등한히 하게 되었다. 잡혼의 금지도, 안식일의 신성함도 무시하게 되었다(느13). 말라기 시대에 이르러 성직자들은 부패와 나태함을 인하여 심한 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쇠망의 또 다른 부분적 원인은 이스라엘이 혈통적으로 순수성을 잃은 사마리아인들의 성전재건 참여를 거절하므로 심한 적개심을 일으켰고, 요한福音 4장에 언급된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는 분열을 초래했다.
1-2알렉산더 시대(332-301 B.C.)
이수스(Issus)와의 전쟁과 다리우스(Darius)를 동쪽으로 몰아낸 후에 알렉산더는 파사인을 다시 한 번 전쟁터에서 맞아 싸우기 전에 수리아와 팔레스틴과 애굽을 정복하려고 했다. 지중해 동부지방 여러 나라들은 알렉산더와 그의 업적에 의해 영향 받은바 실로 크다.
전쟁을 좋아하는 아버지 필립의 뒤를 따라 철학자 아리스토틀과 협의하며, 알렉산더는 그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한 전쟁의 천재가 되었고, 그의 선생 아리스토틀 보다도 어떤 점에서 월등했다. 그의 당시의 전략 목적은 캘커스(Xerxes)의 지도아래 파사가 헬라를 침략한데 대한 보복이었으나 그의 원대한 목적은 동양을 헬라화 하려는 문화적인 것이었다. 전쟁에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그를 수행했다. 헬라 태생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그의 군대의 뒤를 따랐다. 알렉산더는 동 서 헬라인과 야만인의 격차를 연결하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정복한 파사인을 높은 지위에 올리고 그도 동양여자들과 결혼했다.
그림설명 / 알렉산더와 테바이 명가의 부인인 티모클레시아의 일화를 묘사한 그림 17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이루도메니키노 작품.
알렉산더가 팔레스틴으로 옴으로 전략상 중요한 땅은 헬라화(Hellenization)의 물결에 쏠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유대인의 독특성도 해체되고 후에 국가는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팔레스틴 정복은 그가 다른 곳에서 받은 개인적인 숭배를 요구하지 않았기에 종교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알렉산더의 정력적인 생명은 30대 초반인 323년에 끊어졌다. 이 때문에 제국 통치 문제로 인한 헬라의 장군들 간의 오랜 싸움은 끝이 났다. 그 중 넷은 비록 톨레미는 실제로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입수스(Ipsus) 전쟁(B.C.301)에서 적을 섬멸하자고 결속했다. 이들 중에 동쪽 넓은 영토를 통치한 셀레쿠스(Seleucus)와 수리아 애굽을 통치한 톨레미(Ptolemy)만이 유대인들의 운명에 영향을 끼쳤다. 팔레스틴은 톨레미가 한 세기 간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니 수리아는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으므로 파레스틴은 두 왕국의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1-3.애굽시대(B.C. 301-198 )
이 당시 애굽의 통치자들은 헬라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톨레미는 지혜 있게 그 자신의 몫으로 양식이 충분하고 침략도 별로 없는 부분을 선택했다. 요새지인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와 그의 건축가에 의해 세워졌고 곧 상업과 문화로 이름난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급속히 성장하였다. 처음에 톨레미는 이곳에 큰 도서관을 건립했는데 이것은 약 1000 년간이나 있었다.
이때 유대인과 헬라인은 별로 접촉이 없었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 유대인이 선원을 직업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제 많은 유대인들이 애굽으로 옮아가서 헬라어를 배우고 헬라문학을 접하게 되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마게도니아인과 같은 시민권을 받았다고 한다.
모세 오경(pentateuch)이 헬라어로 번역된 것은 필라델프스 통치기간 동안이었다. 그 후 구약의 다른 책들이 잇따라 번역되었다. 이 시기에 팔레스틴은 조용히 헬레니즘화 과정을 맛보게 되었다. 헬라어의 언어, 예술, 축제나 놀이 등의 헬라적 생활양식의 매력에 접하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원형극장이나 공동 목욕탕에 드나들게 되었다. 유대 민족의 예배를 간섭하려고 하지 않는 한 이 문화적인 영향은 격렬한 반대 없이 진행되었다. 그 다음 시기에 예배에 대한 간섭이 있었으며, 팔레스틴의 유대민족이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1-4.수리아 시대(B.C.198-167)
애굽의 통치를 해치려는 수리아인들의 노력이 끝내 성공을 보게 되었다. 판네아스(Paneas)전쟁(198)에서 안디오커스대제(Antiochus the Great)는 스코파스(Scopas)와 그의 군대를 격퇴시켰다. 얼마 후에 안디오커스는 로마인에 의해 패배를 맛보고 공물을 마치게 되었다. 그의 계승자는 집정 중에 재정상 곤란을 회복키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보물을 약탈하려고 했다. 수리아와 유대 관계의 위기는 안디오커스 4세(Epiphanes)의 통치 동안에 생겼다. 그는 유대 민족 의 종교적인 생활까지를 규제하여서 완전히 헬레니즘화하여 강력한 국가를 소유하기를 갈망했다. 그는 화폐에 "신(神)은 왕 안디오커스를 승리자로 명시 한다".고 새겨서 그의 신성을 과시했다.
유대의 헬레니즘화에 대한 충돌은 유대인 중에 헬레니즘화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있었다. 헬레니즘화 지지파들은 안디오커스를 지원함으로 오히려 공세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헬라적 삶의 양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큰 압력이 미쳤다. 그러나 강제로 헬라화하려는 군주의 행동은 오히려 반항정신을 일깨웠고 폭동을 빚어냈다. 반대 그룹은 하시딤(Hasidim)(경건한 자들)이라고 알려졌다. 그들은 배교의 물결 속에 있는 유대 관습과 종교를 보존하려는 자들이었다.
안디오커스가 애굽에 있을 때 그 상황은 절정에 이른다. 두 지방 사람들은 대제사장직을 놓고 싸웠고 그들 추종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이러한 소동을 알고 왕은 유대가 그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돌아와 그의 군대들에게 공격하라고 했고 이로 인해 많은 목숨이 없어졌다. 이로 인해 기분이 상한 그는 왕의 법령에 의해 유대인을 완전히 헬라 화하겠다고 마음먹고 유대주의 습관을 금지시켰다.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나 할례, 성전예배는 금지 되었고, 성서는 파괴되었다. 마침내 168년 12월에 안디오커스는 성기(聖器)와 성전의 보물을 몰수하고 이교도 희생의 제단인 구리제단(brazen altar)을 세워 돼지를 제물로 바쳤으니 유대인에겐 말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이로 인해 반항하다 순교한 사람도 많았다. 유대교가 이제 살아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격렬한 힘으로 타 올랐다.
예루살렘을 떠나 모딘(modin)이란 곳에 머물고 있던 마타티아스(Mattathias)란 제사장은 이곳에서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헬라의 관원이 와서 이교도 예배를 주도하는 제사장이 되라는 말을 거절하고 다른 유대인이 그의 직책을 맡았을 때 그 유대인을 죽이고 헬라 관원도 죽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을 데리고 두메산골로 도망을 했다. 이 사건으로 방방곡곡에 반란이 일게 되었다.
1-5.마카비 시대(B.C.167-63)
다른 사람들도 반란에 참여하고 당국에 대한 게릴라전에 협조하였다. 처음 충실한 유대인들은 적들이 전쟁하는 날을 안식일로 택해서 하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은 그의 무리들을 힘에는 힘으로 싸우라고 격려했다. 지금 안식일을 몇 번 범하고 나중에 지키는 것이 적에 손에 죽는 것보다 나은 것이라 하였다. 마타티아스는 곧 죽었으나 그의 아들 유다 함머르(Hammerer) 마카비가 지휘하게 되었는데 숙련된 훌륭한 지도자였다. 점차 유대 인들은 게릴라전에서 공식적인 전투를 하게 되었고, 수리아 수비대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요새 한 곳을 제외한 전 예루살렘을 관할하게 되었다. 지성소는 말끔히 치워지고 하나님께 바쳐졌다.
요나단이 그의 형 유다의 뒤를 이어 독립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국내의 친 헬레니즘파를 억누름과 동시에 유대 밖에서 무력을 사용할 줄 알았다. 유대인들은 그의 뒤를 이은 형제(동생) 시몬의 지도 아래서 정치적인 독립을 달성했다. 이때가 143년경이었고, 이 새 시대는 로마인들이 나라를 통치할 때까지의 약 80년간 계속되었다. 당분간 로마는 유대인들의 독립을 인정했고 간섭하지 않았다. 한편 시몬은 국민의회(國民議會)에 의해 훌륭한 선지자가 나올 때까지의 대제사장 軍지도자 국민의 통치자로 결정 되었다.
이두메아(Idumea)나 특히 이전에 종교적인 박해의 고통을 경험한 민족이 유대 밖의 사람들에게 행한 유대교 강제 부과 정책에는 다소 모순이 있었다. 군사력은 용병을 기용함으로 유지 되었는데 가끔 유대인의 적으로도 사용되었다. 외부의 침략이 없어 자유를 향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황금시대는 아니었다.
1-6.로마시대(B.C.63 이후)
로마는 얼마동안 애굽과 소아시아에서, 후에는 수리아에서 활약했다. 로마가 유대인들의 문제에 개입한 것은 왕위를 놓고 다투던 아리스토부루스(Aristobulus), 힐카누스(Hyrcanus)형제가 다메섹에서 폼페이(Pompey)에게 항복하고서 국민이 그들을 반대하고 제사장의 법도를 신설하는 대표자를 보낸데 반대해 당혹케 된 때이다. 폼페이는 적절한 때에 결정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오자 그 민족들은 의견이 여럿으로 갈렸고 문밖의 로마 군대를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리스토부르스(Aristobulus)파가 그가 성전 지역으로 들어가는데 방해하자 폼페이는 무력을 사용했다. 이 사건으로 수 천명이 죽고 로마의 점령은 잔혹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유대인에게는 많은 공물이 부과되고 헤스모네안 규약에 의해 점령지의 많은 도시인들은 놓여나 수리아 영토의 관할하에 놓이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로마 권력에 대항해 싸울 투사로서 왕가 사람들을 믿고 있는 한 반란의 위험은 분명히 있었다. 아리스토부루스와 그의 두 아들이 살아있는 동안 독립의 염원은 꼭 폭발할 듯하였다. 로마 정치의 혼란은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통치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 믿게 했다. 공화국은 원로원이 효과적인 지도력을 상실하고 지도자의 무력과 민중의 지지를 수단으로 권력을 차지하려는 데서 큰 시련에 빠지게 되었다. 폼페이, 시저, 크라수스는 B.C 60년에 제1회 3두 정치를 결성했다. 의견이 엇갈리자 시저는 집정관으로 우세한 위치를 차지했다.
팔레스틴에 그는 몇몇 중요한 변화를 일으켰다. 대제사장인 힐카누스는 정치적인 지위를 다시 얻게 되었다. 힐카누스의 지도 아래 있는 사람들이 충성스런 행동과 평화적인 의도로 인해서 시저와 다른 로마 관리들은 유대인들에게 한걸음 양보해서 세금을 줄여주고 몇몇 지역을 복귀시켜 주고 안식일의 법을 이유로 군복무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소아시아에 있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받드는 등 그들의 종교관습을 지키는데 방해를 받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정복 민족의 종교생활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로마인들의 정책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2.신약성경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
예수님의 초기 추종자들은 다 팔레스틴에 사는 유대인들이었다. 그의 열두 제자들은 가룟 유다만 남방 출신이었고 다른 열한 제자는 다 갈릴리 출신이었다. 심지어 신약성경의 모든 기록자들은 누가를 제외한 모두가 유대인이었다. 이스라엘 나라는 1만 평방 마일 밖에 안 되는 스위스 보다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는 한국의 역사만큼 복잡하게 외세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 주변에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고 이집트 등 많은 강대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들의 정치적 문화적 배경을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 순서는 바벨론-페르시아-그리스시대, 그 중에서도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에 이스라엘 통치를 위하여 서고 다투었던 프톨레미 왕조와 셀루커스 왕조, 그리고 그 후 100년 동안 독립을 유지했던 마카비시대, 끝으로 로마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측면 순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2-1.바벨론시대(626-539.B.C)
앗수르가 북왕국인 이스라엘을 점령(B.C 722)한 뒤 남왕국인 유다는 단순히 정치적 실제로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그러다가 바벨론이 이집트를 점령한 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를 정치적으로 통치하기 시작했다(B.C 605 ). 이 때 다니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왔다(단1:1-6). 성전의 기물들은 몰수되어 바벨론으로 실려 갔다.
얼마 후 유대왕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반항했으나 붙들려 잡혀갔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또 반항(B.C 597)했으나 붙잡혔기에 석 달 정권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때 왕 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아내들과 군대들의 장성들과 군인, 그리고 많은 기술자들이 끌려갔다(왕하24:6-16). 당시의 선지자인 젊은 에스겔(겔1:2)도 끌려갔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숙부인 마타니아(Mattaniah)를 시드기야로 개명하여 왕위에 올려 놓았다(왕하24:17-20). 그러나 시드기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충고를 어기고 애굽과 동맹을 맺어 바벨론에 대항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목전에서 아들들이 잡혀 죽는 것을 보았고 자신의 양 눈도 뽑혀 소경이 된 후에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이 때 그 아름답던 솔로몬의 성전은 불타버리고 예루살렘 성의 벽은 파괴되었으며, 남은 국민들은 세번째 포로로 잡혀갔다 (B.C 586 왕하25:1-21). 이리하여 사울에서 시작한 유다의 500년 왕국은 종막을 고하게 된 것이다.
반 세기 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 동안의 포로생활(B.C605-535)을 하게 되었다. 당시의 주요한 사건으로는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자 성전 예배의식은 없어지고 회당(Synagogue)에 모여 예배드리며 구약성경을 연구하고 친교를 가지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 회당 모임을 통하여 유대교가 체계화되기 시작하여 후에 바울의 선교활동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당시에 일어난 것 가운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서기관(Scribe)들의 계급이 생기게 된 것이다.
제사장들이 예배를 인도할 수 없게 되자 서기관들이 구약 성경을 복사하며(copy)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서기관들은 유대교를 연구하는 신학자들이 된 것이다. 끝으로 바벨론 포로시대의 산물로서 디아스포라(Diaspora)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디아스포라란 해외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즉 70년의 포로생활 후 본국 귀환이 허락된 후 바벨론에 그대로 남아서 살기를 작정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들이 후에 신약교회의 핵심이 되었다.
2-2.페르시아 시대(B.C 539-331)
바벨론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멸망되자 고레스 왕은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축할 것을 허락하는 칙령을 내렸다(스1-4장). 그리하여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은 세 번에 걸쳐 귀환하게 되었는데 제1차 귀환(B.C 536)은 스룹바벨의 인솔로, 제2차 귀환(B.C 458 )은 에스라 인솔로, 제 3차 귀환(B.C445)은 느헤미야 인솔로 이루어졌다.
해방의 기쁨을 안겨준 고레스가 죽고 캄비세스(Cambyses)가 즉위했으나 8년 안에 죽고 그후 다리오 1세가 즉위하여 35년 동안 통치하게 되었다. 그 당시 학개, 스가랴 등의 선지자들이 나타나 성전 건축을 연기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신랄히 꾸짖었다. 마침 다리오가 법정 기록에서 고레스의 칙령을 발견하여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정부의 기금으로 보조하도록 허락했다(스6:7-12). 그리하여 성전재건이 완성되니 때는 B.C 516-515 이었다. 이 성전은 후에 헤롯 1 세에 의해 확장되었으며(요2:20). A.D 70년 로마의 디도(Titus)대장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멸망하기까지 계속되었다.
그 후 켈케스(Xerxes)가 뒤를 잇게 되니 그가 에스더의 남편인 아하수에로 왕이다. 그는 헬라인들에게는 적개심을 가졌으나,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노력에 힘입어 모든 유대인을 없애려는 하만의 음모에서 유대인들을 구한 구원자가 되었다. 그의 후계자인 아닥사스다(Artaxerxes) 1세가 서기관 에스라에게 팔레스틴에 돌아가 율법을 가르치도록 허락했다(스7장-10장).
에스라가 귀국한 후(B.C485)얼마 안 있어 느헤미야가 돌아와(B.C 445 ) 예루살렘 성을 재건함으로써 새로운 종교적 붐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모세 오경에 의한 종교개혁은 제사(祭司)이며 학자인 에스라와 평신도이면서 총독인 느헤미야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들은 죄의 회개와 이방인들과 결혼한 사람들은 헤어지도록 했고, 안식일과 안식년의 엄수, 성전의 재정적 후원(스8장-10장)을 하도록 했다. 이 일이 완성되자 느헤미야는 폐르시아로 돌아갔으나, 두 번째 돌아왔을 때 국민의 해이한 신앙을 보고 재훈련을 명하니(느13장) 이것이 구약에 기록된 역사의 마지막이다. 그뿐 아니라 예언자의 시대도 종말을 고하게 되어 세례요한이 나타나기까지 400여 년 동안은 예언자가 없는 침묵의 시대가 된다.
2-3.그리스시대(B.C 331-63 )
마게돈의 빌립(Philip)이 헬라제국의 기초를 놓았다. 본래 헬라는 도시국가였는데 그의 이전에는 아무도 이 도시국가들을 통합하지 못했다. 빌립이 죽자 그의 아들 알렉산더는 짧은 시일 내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모든 나라를 차례로 점령했다. 팔레스틴과 이집트도 점령했다. 그러나 예루살렘만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당시의 대제사장인 자두아(Jaddua)가 다니엘 8장의 예언을 통하여 알렉산더가 폐르시아를 점령할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사실성 여부는 알기가 어렵다.
정복 왕 알렉산더가 그리스로 돌아오는 도중 B.C 323 여름 말라리아와 과음으로 쓰러지자 온 천하는 그의 부하 장성들의 놀음판이 되었다. 알렉산더는 일찍 죽었지만 그의 공헌은 대단히 컸다. 무엇보다도 헬라 문화의 보급과 언어의 보급은 헬라 문명을 동방으로 소개함으로써 글자 그대로 세계 문화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헬라 문화는 무려 600여 년 동안(B.C 300-A.D 300)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당시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헬라어는 당시의 세계어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이 당시의 세계어인 헬라어로 그것도 코이네(Koine)헬라어로 기록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침내 헬라 왕국은 네 장군들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프톨레미(Ptolemy)는 이집트를, 안티파테(Antipater)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리시마쿠스(Lysimachus)는 동북부에 있는 트리키아를, 셀루커스(Seleucus)는 수리아를 각기 차지하게 되었다. 팔레스틴은 처음에 프톨레미와 셀루커스 사이의 경합지였으나 마침내 프톨레미의 통치 하에 들어갔다. (B.C 285 B)
그러나 80년 뒤 자칭 헬라문화의 사도라고 부르는 셀루커스 왕조에 의하여 통치 받게 되었다. 당시 가장 유명한 왕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1V Epiphanes)였다. 그는 로마에 볼모로 12년간 잡혔다 온 모세 율법에 충실한 자들을 다 개종시키거나 다 없애려 했다(B.C168 )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자나 할례를 행하는 자,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을 가진 자들을 사형에 처하였다. 그리고는 곳곳에 이방의 신상을 세웠다. 더욱이 예루살렘 성전 가운데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의 피로 제단을 적시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를 (나타난 신)이란 뜻을 가지는 (에피파네스)란 이름 대신 (미친 놈)이란 뜻의 (에피마네스 Epimmanes)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런 불경한 행동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2-4.하스모니안 독립시대(167-163 B.C)
처음에는 잔인한 행동에 대하여 소극적으로 대하고 처형을 받았으나 점차 여기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각오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모딘(Modin)이란 마을에 (마티디아스)란 늙은 제사장이 그의 다섯 아들 유다, 요나단, 시몬 등과 함께 일어나 수리아의 관원을 죽이고 마카비 혁명을 일으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엔 계속해서 실패했으나, 차츰 인원도 늘고 전술도 밝아져 수리아의 군대를 물리치게 되고 예루살렘을 해방시켰다. 이때부터 소위 하스모니안의 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이 승리를 기념한 것이 (하누카:Hanukkah) 절기로서 빛의 절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셋째 아들인 시몬이 죽자 그의 아들인 요한 힐카너스(Hyrcanus)가 대제사장 겸 왕의 자리에 앉게 됨으로서 B.C 63년에 로마의 손에 통치권을 넘겨주기까지 질투와 의심과 욕심으로 멍든 정치를 하게 되었다.
당시 두 개의 종교적 정치적 당파가 생기게 되었다. 하나는 하시딤(Hasidim)이라고 불리는 보수파(保守派)로서 그들은 유대의 종교적 국가적 자유를 유지하면서 헬라문화에 대하여 저항하는 자들로서 이 분리주의자들이 후일에 바리새인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반면 두 번째 당은 헬라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두개인들이었다. 이 두 당의 특징에 대하여는 종교적 배경을 말할 때 하기로 한다.
2-5.로마의 통치시대(B.C 63 부터)
힐카너스 2세가 그의 동생인 아리스토뷰로스(Aristobulus) 2세에 의하여 불의로 축출되자 아라비아로 망명하였다. 이때 헤롯 1세의 아버지요, 이두메 사람인 안티파터와 알게 되었다. 안티파터의 충고로 아라비아의 군대를 이용하여 자기를 축출했던 동생 아리스토뷰로스 2세를 물리치려 했다. 눈치를 챈 로마가 힐카너스 2세를 도왔고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이요 대제사장이 되었다. 이로 인해 아티파터의 가문은 팔레스틴의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때 축출된 아리스토뷰로스 2세의 아들인 안티고너스(Antigonus)가 팔티안들과 공모하여 예루살렘을 되찾게 되자 젊은 헤롯 1세는 로마로 도망가서 당시 로마의 통치자 중에 하나인 안토니(Antony)의 환심을 사게 되어 유대인의 왕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다. 그는 로마의 힘을 빌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 명맥만 유지하던 하스모니안 (즉 마카비) 가문의 통치에 종막을 고하게 되었고,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헤롯은 유능한 정치인이었으나 잔인하여 열 아내 중 둘을 죽였고 처남 하나, 세 아들, 그리고 장모를 죽인 사람이다. 더욱이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죽인 자이다(마2;16). 그는 죽을 때(B.C 4) 국민들이 울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많은 유능한 지도자들을 가두어 두었으며, 그가 죽은 뒤 다 죽여서 국민들이 울도록 하려 했으나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증축하고(막13:1)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헤롯 1세가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영토는 세 아들에게 나누어 주어졌다. 아켈라오(Archelaus)는 팔레스틴의 남쪽 부분, 빌립(Philip)은 북동쪽,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는 갈릴리와 베뢰아 지방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 헤롯 안디바는 헤로디아 문제로 세례 요한을 처형했고(막6:17-29), 예수님을 다시 살아난 세례 요한으로 생각한 그는(마14:1-2) 예수님을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눅13:31). 예수님은 그를 (여우)(눅13:32)라고 부를 만큼 간교한 자였다. A.D 39년 안디바는 헤로디아의 말을 듣고 로마에 가서 현 분봉왕의 직위에서 보다 높아지기 위하여 간청하려고 간 사이에 헤롯 아그립바 1세가 황제에게 고발하여 분봉왕직에서 추방했다. 아그립바는 야고보를 죽였고(행12:1-3), 베드로를 체포했으며 여러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을 괴롭힌 자이다. 그는 A.D 44에 죽었고 그 후 17세 밖에 안 된 헤롯 아그립바 2세(행25)가 즉위하였다.
A.D.53년까지 유다는 로마의 영토나 다름없이 통치를 받다가, 그 후부터 A.D 66년까지 왕에게 통치를 받았다. A.D66년에 반란이 일어나 로마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네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70년까지 정권을 유지하게 되었으나 70년 봄에 마침내 디도(Titus)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성은 무너지고, 지금까지 성전 중심의 유대교는 종막을 고하게 되었다.
3.문화적 종교적 배경
당시 문화는 크게 셋이다.
첫 째는 유대교(Judaism), 두 번째는 헬레니즘(Hellenism), 세 번째는 로마의 제국주의다. 그 중에서 유대교는 기독교의 뿌리가 되었고 헬레니즘은 기독교가 성장한 지적 토양이 되었으며, 로마의 제국주의는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즉 로마의 안정된 정치와 법률, 건축술, 조직력 등은 교회 구조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이 세 문화는 기독교의 가장 무서운 적이 된 것은 역설적 사실이다.
3-1.유대교(Judaism)
1세기의 팔레스틴 인구는 150-200만 정도였으며, 유대인이 약3/1정도(50-60만) 되었다. 그러나 요세프스(Josephus)에 의하면 유월절 때 예루살렘에 모여드는 유대인의 숫자가 무려 270만이나 되어 당시 예루살렘의 모습이 어떠함을 볼 수 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유대교엔 크게 세 종파가 있다.
(1)바리새파(초자연주의자)
당시 바리새파의 수는 6천명이 약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바리새파의 기원에 대해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마카비 전쟁 전후 일어났던 하시디안 ,즉 경건주의자들로 보여 지며 그것이 바리새란 이름으로 처음 나타난 것은 요한 힐카너스 당시(B.C. 135-105)이다. 그 뜻은 (파르쉬)(분리하다)란 뜻으로 그들의 배타적 성격을 볼 수 있다.
(2)사두개파(자연주의자)
숫자로는 바리새파보다 소수이나 주로 교육을 받은 자들이며,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 그 시작은 다윗 당시의 사독(왕상1:32) 이며 A.D.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3)에센파(금욕주의자)
성경엔 이 에센파(the Essenes)에 대하여 놀랍게도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요세프스나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플리니(Pliny)등의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약 4천명 쯤 되었으며, 유대의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었으나 중심은 사해의 서쪽 광야였다고 한다. 이 종파는 B.C.2세기부터 A.D.70년까지 계속되었다.
에센(Essenes)이란 원래 (호씨오스 οσιοσ 거룩)이란 말에서 왔다고 필로는 말한다. 그들은 흰 옷을 입었고 독신을 강조했다. 어떤 그룹에서는 자녀를 위해 결혼을 허락했으나 대개는 양자를 데려다가 길렀다. 생활은 손 씻는 결례, 세례, 기도 등 수도원적 생활을 했다. 기독교와 비슷한 점이 많아 어떤 비판적 학자들은 기독교의 고향은 베들레헴이 아니라 쿰란(Qumran)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에센파의 회원이 되려면 도합 3년간의 견습기를 거쳐야 하며 서약을 한 후 세례를 받은 후에야 된다. 그들은 율법 준행이 바리새파보다 더 엄격하고 다른 사회에서 들어온 음식은 먹지 않았다. 에센파는 제사장과 그들을 보좌하는 레위인, 이스라엘 자녀들과 할례를 받지 않은 문(門)의 개종자들이 있다.
(4)서기관과 랍비들
유대교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율법에 대한 깊은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새로운 계급, 즉 서기관이 생기게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각 회중들마다 자신의 사본을 갖기를 원했다. 그래서 구약, 그 중에서도 율법을 베끼는 전문가들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성경학자들이 되었다. 이것이 서기관의 유래이다.
서기관의 대표적 인물은 에스라(느8:9)이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흔히 율법 교사, 또는 단순히 교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들은 예루살렘은 물론 유대와 갈릴리 각 지방에도 흩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서기관들은 바리새파에 속해 있어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의 서기관)(막2:16)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행23:9)라고 표현하고 있다.
3-2.헬레니즘(Hellenism)
기독교의 지적 토양을 준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헬레니즘, 그 중에서도 헬라의 철학이다. 이것은 신 플라톤의 철학이 어거스틴(Augstine)을 통하여 신교(新敎)의 교리적 체계를 세운 것과 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철학이 아퀴나스(Aquinas)를 통하여 구교(舊敎)의 교리적 체계를 세웠다는 이 단 한 가지만으로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헬라의 문화 일반에 관한 연구나 기독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흔히 주장되는 신비종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철학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고자 한다.
(1)플라톤주의(Platonism)
플라톤주의는 주전 4세기에 살았던 플라톤(Platon)에서 연유된 사상적 체계를 말한다. 그는 소크라테스(Socrates)의 제자로서 이원론적 입장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즉 세상의 물질세계는 보이지 않는 이데아(Idea)의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함으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이데아의 세계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변하는 비실재(非實在)의 세계에서 참으로 실재(實在)하는 세계에 이르기 위하여 반성(reflection)과 명상(meditation)과 고행(asceticism)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지식은 구원이며 죄는 무지(無知)라고 하였다.
플라톤주의는 신약성경에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이원론(Dualism)은 1세기에 일어났던 영지주의(Gnosticism)와 3세기 플로티누스(Plotinus)에 의하여 소개된 신플라톤주의에 의해서 반영되고 있다.
(2)영지주의(靈知主義))
영지주의(Gnosticism)란 이름 그대로 헬라어의 지식을 뜻하는 그노시스(γνωσισ)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들은 영지에 의해서 구원받는다고 한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천하고 타락한 이 세상을 창조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하나님에게서 여러 단계로 그의 신성이 발산되어 마지막으로 물질세계가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물질은 악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물질세계를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나온 사상은 첫째로 금욕주의이고, 두 번째는 영은 깨끗하고 실재하나 물질은 더럽고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에 대해 바울은 (골2:821)에서 지적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한국 교회에 이 영지주의 사상이 여러 형태로 흘러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3)신 플라톤 주의(Neo-Platonism)
플라톤의 원리들은 이집트의 리코폴리스(Lycopolis)에 살았던 플로티누스(Plotinus, A.D.204-269)에 의해 소개 및 발전되었다. 또한 플로티누스는 폐르샤의 이원론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신플라톤주의라 함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상으로 보는 이원론과 폐르샤의 빛과 어두움 둘로 보는 이원론 사상에 기초한 종교철학을 말한다.
따라서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본다. 그들에 의하면 구원이란 감각에 의존하는 모든 육적 욕망을 제거하고 영의 생활을 하는데 있으며 그것은 죽을 때 이루어진다고 했다. 신플라톤주의가 플라톤주의와 다른 점은 영적 생활이 지적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무한자(The Infinte)와의 신비적 연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본 점이다.
그런데 영지주의와 신플라톤주의는 기독교의 성육신(Incarnation) 교리와 조화할 수가 없다. 그것은 육체는 악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속에 오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4)에피큐리안주의(Epicureanism)
에피큐리안주의란 B.C 341-270 년에 살았던 에피큐러스란 사람의 사상적 체계를 말한다. 에피큐러스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인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작품 속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그에 의하면 세계는 원자(原子)가 우연히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에피큐러스의 우주관은 현대의 무신론적 물질주의 진화론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 세계엔 목적도 절대선도 없다고 했다. 있다면 최고의 가능한 선(possible good)이 있을 뿐인데 그것은 쾌락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쾌락이란 고통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 사상을 흔히 육체적 쾌락주의로 보는 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반대로 보다 지속적이고 완전한 만족을 주는 즐거움을 택하라고 가르침으로서 정신적 쾌락에 강조를 둔다. 이 에피큐리안주의에 대해서는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할 때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
(5)스토아 철학(Stoicism)
사도행전에서 에피큐리안주의와 함께 언급되고 있는 것은 스토아 철학이다. 이 스토아 철학은 지중해 동부에 있는 키프러스의 제노(B.C 340-265)에 의해 기초가 세워졌다. 그는 인격적 신을 인정치 않았으나 우주가 절대이성(Absolut Reason)에 의해 지배된다고 했다. 그는 이성에 일치된 생활이 최고의 선이라고 하면서 개인적 감정은 실체가 없는 해로운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감정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완전한 자기 절제를 목적으로 내세웠다.
이 스토아 철학은 고상하기는 하지만 기독교와는 다르다. 여기엔 자유의지나 악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모든 악은 선의 일부에 불과함으로 그들에게는 개혁이나 변화가 배재된다. 그들의 신은 비인격적 존재임으로 인간의 일에 인격적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윤리관이 많은 점에서 기독교의 윤리관과 유사하지만 그들의 전제와 실천은 서로 다르다.
(6)냉소주의(Cynicism)와 회의주의(Scepticism)
냉소주의(冷笑主義)는 플라톤의 철학과 같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서 나왔다. 소크라테스는 단순한 욕구를 가진 사람만이 어려운 역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냉소주의자들은 최고의 덕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욕망에서 자유롭기 위하여 욕망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들은 모든 표준과 법을 포기하고 완전히 개인주의자가 된다.
최초의 회의주의자는 엘리스의 피로(Pyrrho of Elis, B.C 365-295)이다. 그들은 경험에 의지하기 때문에 궁극적 표준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경험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모든 판단은 상대적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에게 가벼운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무겁게 느끼기 때문이라 한다. 따라서 회의주의자들의 논리적 면은 완전한 지적 마비로 끝난다. 아무튼 냉소주의나 회의주의는 표준을 포기하는데서 시작한다. 전자는 윤리를 다루었고 후자는 지성(知性)을 다루었다. 기독교가 이들과 크게 다른 것은 하나님을 인간의 절대적 표준이라고 믿는 점이다.
3.로마의 제국주의(帝國主義)
유대교와 헬레니즘과 함께 기독교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로마의 제국주의이다. 특히 그들의 법률과 모든 제도는 초대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의 건축 양식이나 음악 같은 예술은 중세기에 그 꽃을 피우기까지 계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뿐 아니라 로마의 세계적인 통일은 온 세계를 한 이웃으로 만들어 주었다. 즉 세계의 평화와 교통의 편리, 언어의 통일은 기독교의복음을 전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독교에 큰 영향을 준 3대 요소, 즉 유대교와 헬레니즘과 로마의 제국주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역설적인 사실은 이 세 요소가 기독교 발생에 큰 영향을 주었으면서도 두고두고 기독교의 원수가 되어온 사실이다. 이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그래서 교회는 오랫동안 이 세 문화적 공해(公害)를 제거하기 위하여 몸부림쳐 온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신약성경을 기록한 언어(코이네:κοινη) 헬라어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 보고자 한다. 본래 (코이네:κοινη)란 뜻은 (일반적인:common)이란 말이다. 이 언어는 B.C300 년에서 A.D 500년까지 사용된 말이다. 헬라어에는 고전 헬라어와 일반 헬라어 두 종류가 있었는데 코이네 헬라어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한 후 통용시킨 말이다.
본래 이 코이네 헬라어는 고전 헬라어에 비해 누구나 읽고 이해하기 쉬운 글로 알렉산더가 문화의 교류와 정신세계의 통일을 위해 보급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복음을 전 세계에 보급하는데 사용될 줄은 알렉산더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도 깊고 넓어 아무도 측량할 수 없음을 본다.
新約의 정경화
1.새 계약의 기원
본래 신약이란 말은 고전 11장 25절과 고후3:6절의 (헤 카이네 디아데케 η καινη διαθηκη)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그 뜻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유언(Testament), 두 번째는 계약(Covenant)이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것은 두 번째의 계약(契約)이란 말이다. 즉 신약이란 새 계약으로 이것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중재자로 하나님과 맺은 옛 계약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중재자로 성립된 새 계약이란 뜻이다. 이 새 계약에 대하여는 예레미야가 이미 예언한 것이었다.
(렘 31: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 하였음이니라 (렘 31: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 예언은 장차 그리스도를 통해 새 계약이 이루어질 것을 말한 것이다. 마침내 이 예언은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마지막 성만찬에서 (눅 22: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의 잔, 다시 말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무너뜨리고 이즈러진 관계를 회복시킨 새 언약의 상징이요 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새 계약의 내용을 기록한 내용이 바로 신약성경이다. 그리고 옛 계약의 내용을 기록한 책을 구약 성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두 책은 서로 구별은 되지만 사실은 서로 뗄 수 없는 한 권의 책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서로 분리된 두 계시(啓示)가 아니라 한 계시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즉 구약 성경은 새 계약을 예언한 책이요, 신약은 구약의 예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은 27권, 모두 합쳐 66권이다.
2.신약성경을 기록한 동기와 정경화의 과정
예수님 당시엔 구약 성경 외에 다른 아무런 문서도 필요치 않았다. 예수님 자신 아무런 글도 쓰신 일이 없었다. 있었다면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요8:1-11) 앞에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요8:6)라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마28:18-20) 명령했으나 복음을 기록하라고 하시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복음 전파하기에 분주한 것도 그 중에 한 이유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그의 행적을 알고 또 그에게서 교훈을 직접 받은 제자들과 주님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게 되어 주님의 생생한 교훈을 남겨 놓아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게다가 교회 안에는 일정한 교리와 규칙이 없어서 신앙과 생활에 혼란이 생기고 여기저기서 이단 사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바로 이 두 가지 큰 이유에서 신약성경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요한은 성경을 기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 20: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위에서 신약성경을 기록한 직접 동기를 말했거니와 요한은 여기서 근본적인 목적을 두 가지로 말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갖게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을 통하여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기록했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과정으로 신약성경이 기록되었을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약 20년 동안은 구전시대(口傳時代)였다. 주후 50년경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로 인해서 편지를 써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물면서 전도하였다. 이 때 (주의 날 the day of the Lord)에 대하여 언급했으나 분명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주님이 곧 재림하신다면 내일을 위해 저축하며 일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하고 오해했다. 따라서 바울은 이것 을 가르쳐 줄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바울은 (때와 시기)에 대하여는 우리가 알지 못함으로 깨어 근신하고 피차 권면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살전 5: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얼마 후 바울이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은 더욱 악화되었다. 많은 교인들이 이미 그리스도께서 임하셨다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써야 할 입장에 처했다.
그러므로 바울은(살후 2: 15)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가르쳤다. 이렇게 바울 서신들은 당시의 교회에 실제적 필요성 때문에 기록 되었다. 그리고 복음서들은 이보다 약 20년 늦게 마가복음부터 시작하여 기록되었는데 누가복음 서론(눅1:1-4)의 내용으로 보아 예수님의 교훈집이나 언행록(言行錄)같은 단편적 기록이 있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런데 많은 문서들이 기록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그것은 어떤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느 것이 보다 큰 권위를 가진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그러다가 경전(Canon)이 제정되게 된 것은 140년 마르시온(Marcion)이란 이단자에 의해서 비롯되었다. 마르시온은 영지주의(靈知主義)자로서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다고 하여 구약을 부인하고 누가복음과 바울의 서신 10권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였다. 마침내 이것은 교회에 혼란을 야기시켜 144년에 교회에서 파문을 당하게 되었고 그 결과 경전 제정의 필요성을 가중시켰다.
경전 제정의 제 2단계는 189년 이레니우스(Irenaeus)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당시의 문헌들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완전히 경전으로 인정하는 책으로서 4복음서와 13권의 바울서신, 그리고 요한 1서와 베드로 전서이다.
둘째는 경전으로 인정해야 할지 의심나는 책으로 예를 들면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후서.요한2,3서. 및 유다서와 계시록이다. 세 번째는 경전으로서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책인데 그 예로서 바나바 서신. 헬마스의 목자서. 12사도의 교훈집(Didache) 및 솔로몬의 지혜서 등을 들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경전 제정의 결정적 시기는 제 3단계인 367년 아다나시우스(Athanasius)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부활절 기념 강연에서 신약 27권만을 경전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서. 벤시락. 에스더. 유디트. 도비트. 12사도의 교훈집과 헤마스의 목자서 등은 경전이 아니나 읽어서 도움이 되는 제 3급의 책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397년 칼타고의 제 3차 회의 때 어거스틴(히포)이 참석한 회의에서 27권만이 정경이라고 결정됨으로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신약의 경전이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경전 제정은 우연히 어떤 개인의 의견에 의하여 단시일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성 령의 역사 속에 오랜 세월을 통하여 결정지은 것이다.
3.정경 결정의 원리
정경 결정의 원리가 초대 교부(敎父)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으나 지금 우리들이 갖고 있는 재료에 의해 크게 세 가지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사도서(使徒性), 즉 신약성경은 사도들과 또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마가나 누가 같은 사람들은 사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으로서 베드로를 통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누가도 바울의 의사로서 바울과 그 밖의 (눅 1: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눅 1: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 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이 모든 일들을 근원부터 살핀 자료를 통해 역사적 예수와 초대 교회의 역사에 대하여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 기록자들이 다 한 성령을 통하여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초대 교회는 이들의 교훈을 사도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하였으며 바로 이것 때문에 그들의 기록이 사도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된 것이다.
두 번째, 정경(政經) 제정의 원리는 보편성(普遍性), 즉 당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도성 인정에 대한 당연한 추론이다.
세 번째, 정경 제정의 원리는 교리의 일관성이다. 놀라운 것은 1600여 년 동안 여러 가지 다른 환경에서 기록되어진 성경이 서로 모순됨이 없이 일관성 있는 교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위에서 말한 것 외에 성경經의 내적 증거(internal testimony)에 대해서 강조한다.
칼빈은 신약성경 전체의 정경성을 말했다. 그는 말하기를 성경을 읽게 될 때 신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신약성경의 정경성을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4.신약성경과 그 권위
신약성경의 권위에 대해 생각하기 전 그 권위를 표현하는 (계시, 영감, 권위)란 말의 뜻을 잠시 살펴보자
계시(啓示)란 말은 (αποκαλυψισ)즉 (벗긴다)는 뜻이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에게(욥 11: 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고 말한대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가려진 커텐을 벗겨 주셔야 알 수 있다.
다음 영감(靈感)이란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 θεοπνευτοσ(데오프뉴토스) 즉 God breathed (하나님이 불어내셨다.)는 뜻으로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실 때 사용하시는 통신 방법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어내실 때 기록한 사람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이 사용한 말까지 불어 넣으셨기 때문에 축자영감(逐字靈感)이란 말을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말은 권위(權威),즉εξουσια(에두시아)이다. 이 말은 성경에 들어 있는 능력, 혹은 무게를 말한다. 그러면 왜 성경이 무게와 능력을 가지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성경을 통하여 그 권위를 살펴보자. 마태복음21:42절에 보면 예수님은 구약을 가르켜 성경(복수로), (요10:35)에도 성경(단수로)이라고 언급했다. 원문에는 γραφη(그라페) 라고 하셨다. 그 뜻은 (기록 a writing)란 말이다. 즉 예수님은 구약의 기록을 하나님이 영감하신 권위 있는 말씀으로 보신 것이다. 바울도 (거룩한 기록 딤후 3:15,롬1:2), 또는 (하나님의 말씀 롬3:2)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구약 성경에 대한 의심은 없다. 이제 문제는 신약도 구약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데 바울은 딤후3:16절에 모든 (πασα γραφη파사 그라페),즉 신약을 포함해서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했다.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을 곡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시키면서 (벧후 3: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 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다른 성경 τασ λοιπασγραφασ타스 로이파스그라파스)란 말이다. 이것은 분명히 구약 성경을 말하는 것으로서 베드로는 바울의 모든 서신들을 구약과 꼭 같은 권위를 가진 말씀으로 본 것이다.
아무튼 초대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A.D200년경)은 처음으로 라틴어로 신약(Novum Testamentum)이라고 하여 오늘의 신약성경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또한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강조되어 왔다.
그로마키(Gromacki)는 신구약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약은 구약에 포함되어 있고 구약은 신약에서 설명된다. 신약 구약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에서 계시된다.) 그러면 신구약 신약의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 그리스도이다(눅24:44). 따라서 우리는 신구약의 내용을 그로마키와 함께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경------그리스도를 위한 준비
복음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사도행전-----그리스도 전파
서신 ------그리스도의 설명
계시록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
본문:(히8:13)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새 언약(καινην:카이넨) 헬라어 원문에는 새 언약이라 번역된 한글번역에 해당되는 말로서 단지 형용사 새로운(καινην 카이넨)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번역 상 앞의 구절들에서 새 언약이란 용어가 수차 등장되어 그 표현이 (διαθηκην καινην:디아데켄 카이넨)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문맥상 언약이란 말(διαθηκην:디아데켄)을 생략한 듯이 보인다. 히브리서 기자는 여기서 더 나은 언약을 묘사하고 있다.
구 언약이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을 말하는데 이는 첫 번째 것으로서 낡아져 없어져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미 선지자 예레미야가 새 언약이란 말을 사용하여 시내산 언약의 철폐 시기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새 언약이란 말에서 형용사 새로운의 (καινην카이넨)은 특별한 의미에서의 새로움을 뜻한다. 그것은 알려지지 않은 낯 설은 또는 주목 할만 한 길로서의 새로움을 의미하며 종종 성경 속에서는 옛 것의 상반되는 개념에 쓰이고 있기도 하다. 새 언약, 그것은 그리스도의 도래로 말미암은 은혜의 계약이다.
본론
새로운 언약(New Tastment)로 일컬어지는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언약하셨던 인류에 대한 구원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고 온전하게 확증(롬5:8)된 것을 증언한 책이다. 본문에서도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라고 함으로써 신약성경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구원 언약의 그림자라면 신약성경은 그 실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그 내용을 총괄적으로 살펴보겠다.
1.복음서
구세주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로서 복음서라고 불리는 책들을 공관복음서와 제 4복음서로 나누기도 한다. 공관복음音서는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를 뜻하는데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되 히브리 사람들의 종교적 관심으로 공통되게 그리스도를 증거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관복음서들을 보면 구약성경의 인용문들이 많고 세 책 들이 유사한 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요한 사도가 기록한 요한복음서는 기독교가 세계로 확장해 나갈 주후 90년경에 기록되어 그리스 철학 사고에 젖은 당시 세계인들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철학적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전했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교의 일부분이 아니라 온 세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우주적인 복음임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요한복음이 우리들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용어로 쓰여진 것은 바로 그와 같이 전 세계인들을 위한 선교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 복음서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1)마태복음: 만인의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를
(2)마가복음: 쉬임 없이 일하시는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를
(3)누가복음: 완전한 인격자로서의 그리스도를
(4)요한복음: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복음서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언약하셨던 구세주(창3:15)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를 위한 죄 값을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음을 전하는데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믿어 영생을 얻을 것을 권하고 있다.(요20:31)
2.역사서
즉 사도행전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며 어떻게 인류의 구원을 성취 하셨는지를 기록한 것이 복음서들이라면 사도행전은 그 성취된 복음이 어떻게 해서 "온 유대로부터 땅 끝까지"(행1:8) 교회를 통하여 전파되어 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누가로 주후 62년경에 로마 판도에 있는 세계인들에게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하여 기록했다(행1:1-3).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일반 역사인 관점으로 쓰여 진 것이 아니라 신앙적 관점에서 초대 교회사를 기록한 것이다.
* 그 주요한 내용은
(1)교회의 탄생과 그 배경
(2)교회의 고난과 궁극적인 승리성
(3)복음은 유대 민족의 전유물이 아닌 온 세계인을 위한 것
(4)교회와 인류의 역사는 인간들이 주인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동 무대임을 강조했다.
3.서신서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사도행전 이후의 책 들을 뜻한다. 서신서들은 대개 사도들이 교회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신앙 교리, 규범, 위로와 경계를 고양시킬 목적으로 기록되었다(딤전1:3,벧후1:12-13,유다1:3). 이 서신들은 크게 교리 서신(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옥중 서신(에베소,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 그리고 목회 서신(디모데전, 후서, 디도서), 공동 서신(히브리서, 유다서, 요한1,2,3서 ,베드로전,후서)으로 나눌 수 있다.
*그 내용의 특징은
(1)교리 서신(로마서, 고린도전, 후서 갈라디아서): 기독교의 최대 신학자요, 개척자인 바울사도의 편지로서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기록해 놓았다. 어떤 신학자는 (성경 66권이 반지라면 로마서, 갈라디아서는 그 반지의 보석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기독교 구원의 도리를 깨우치려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필히 이해해야한다.
(2)옥중 서신(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투옥된 후에 기록한 것으로서, 기독교복음의 충만성, 통일성, 보편성, 주성 등을 아름답게 증거했으며 그 복음 안에 거하는 성도들의 삶의 가치관, 윤리관, 목적 등을 교훈했다.
(3)재림서신(데살로니가 전. 후서)
(4)목회 서신(디모데전, 후서, 디도서):바울 사도가 후계 목회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그들의 사역을 돕기 위해 보낸 편지로서 교회의 행정, 목회자의 자세 이단 침투에 대한 경계 등을 기록해 놓았다. 특히 디모데 후서는 바울 사도가 순교하기 1-2년 전에 기록한 (유언장)과 같은 것으로 바울 사도의 신앙 고백적 내용이 듬뿍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딤후4:6-817-18,21)
(5)공동 서신(야고보서 베드로 전, 후서, 히브리서, 요한1,2,3서, 유다서):각 사도들이 온 교회에게 보낸 회람 편지 형식으로서 기독교 신앙 확립, 이단 침투에 대한 경계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윤리관, 교회 윤리관 등을 교훈한 글이다
4.예언서
요한계시록을 뜻한다. 저자는 요한 사도로서 이 땅에서 복음 때문에 고독과 고난을 당하기 마련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경계를 주실 목적으로 기록했다(계1:4-59).
그 내용의 특징은 이 세상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종말이 닥칠 것이며, 그 종말의 때가 시작되기 전 악이 창궐하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핍박할 것이나,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권세로 이기고 또 이길 것(계5:517:14)이며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영생으로 보상받을 것이니, 신앙을 변절치 말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계2:10)하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희망을 예언한 셈이다.
5. 2C 말까지의 신약성서의 정경화 - 신약성서는 어떤 사본에 근거하고 있는가
1. 원시 기독교에서 권위 있는 책들
예수와 원시 기독교는 결코 성경이 없지는 않았다. 그들은 구약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유대교에서 물려받았으며 후에 구약 정경이 된 세부분 모두에서 인용되었다.
랍비들에 의해서 주후 1세기에 성경으로 규정된 39권의 마소렛판의 정경은 여러 세기 동안 기독교회에서 채택하지 않았다.
원시 기독교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확실하게 한정된 정경이나 배타적인 기준을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고전 15:1ff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원시 기독교 신앙의 근거가 되고 있다. 새로운 살아있는 규범은 우선 주님을 위시해서 주님의 메시지를 증거 하는 사도들을 갖고 있던 교회에서 형성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2. 사도이후 시대에서 정경화 과정의 예비적 단계들
주님의 말씀을 인용할 때에 그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는 표시가 없다고 하는 사실이며 오늘날까지 클레멘스 1서나 이그나티우스 서신이 쓰여 진 복음서를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견해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소한 2세기 초까지는 소아시아에서 알려져 있던 바울 서신들의 수집이 끝났고 이러한 수집은 이미 마르시온의 정경에 잇던 10통의 편지 전부를 포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2세기 중엽쯤에는 상황이 바뀌어져 갔는데 클레멘스 2서와 130년대에 기록된 폴리캅의 서신의 주요 단락들이다.
사도시대 이후로 이러한 저작들의 수집과 병행해서 2세기 중엽에는 "성경"이 형성되는 예비적 발전이 있었다.
소위 클레멘스 2서는 교회의 기원이 위에서 부터 온 것이라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권위있는 것으로서 를 들고 있고, 그럼으로써 그 본문의 가장 타당한 의미에 따르면, 그는 사도들을 구약성서와 나란히 살아있는 권위로 놓았던 것.
3. 2C 후반부에서 정경화의 시작
Justin이 4복음서 정경을 알고 있었는지는 증명될 수 없고 Justin 에 의하면 인용된 몇 가지 조화를 이룬 공관 복음서의 본문들은 그에게 구전 전승으로 전해졌을 가능성도 아주 높다.
Marciond의 정경은, 다소간 후대의 서문들에 의해서 보여주는 신학적 의도에 따라서 특정지어 있는데, 분명히 두 부분으로 정확하게 구분된 성격이었다.
이 부로 구성된 새로운 경전이 2세기말에 발전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Vienna와 Lyones의 교회들의 서선들 속에서 177년부터 요한계시록을 로 인용하고 있었다.
2세기말의 세 명의 위대한 신학자들은 4복음서와 13통의 바울 서신들, 사도행전은 베드로전서, 요한1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포함된 사도 서신들을 내용으로 하는 신약 성서를알고 있었던 반면에, 일반 서신들과 히브리서의 경전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또 종종 다른 문서들이 경전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개별문서들을 포함시키거나 제외시킨 동기들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주 분명했던 의식은 예언적인 문서들의 숫자가 고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사도적인 문서들도 정확한 한계가 정해져서, 새로운 겅경도 확정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였다.
6.고대 교회에서의신약정경의 확정
1. 오리겐에서부터 고대 말엽까지 헬라 교회 내에서의 신약성서.
오리겐은 자기 세대에 신약성서와 관련해서 교회의 여러 지방 별로 어떤 경향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고, 이 연구에 근거해서 조심스럽게 몇 가지의 결론들을 이끌어 낸 것이다.
첫째부류는 그에 의하면, 에 속하는 것이다.
의심스러운 문헌들 : 베드로 후서, 요한2서, 3서, 히브리서, 그 외에 야고보서와 유다서, Hermas의 목자서와 Didache를 로 인용한다.
이집트 복음서, 도마 복음서, 바실리드 복음서, 맛디아 복음서 이런 것들은 이단적인 왜곡이 있는 것으로서 배척됨. 3세기에는 Codex Claromontanus에 의해 다른 증거가 제시되고 이 목록 안에는 4복음서와 13통의 바울서신들, 7통의 일반 서신들, 요한계시록, 사도행전 등이 열거되었다.
신약성서의 사도적 서신들의 한계에 대한 불확실성은 가이사랴의 Euswbius가 자기의 교회사에서 신약성서에 관해 벌였던 확대된 논쟁에서 나타난다
(1) 모두 성경으로 인정하는 것
(2) 의견이 나누이는 것
(3) 완전히 분별없고 불경건하며, 참된 신앙에서 이탈된 이단자들의 위조인 것. 그에게 있어서 의견이 나누이는 것을 두 그룹으로 나눔.
유세비우스 자신이 증거 하는 7통의 일반 서신들을 대부분은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의견이 일치되는 문헌들과 의견이 나누이는 문헌들 중 첫째 그룹이 함께 묶일 수 없다면, 현대적인 의미의 신약성경이 구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약 성경의 범위에 대한 불확실성은, 동방 교회에 있어서는 367년의 Athanasius 의 39회 부활절 축제 서한에 의해서 종결되었다. 이 서한은 거의 완전하게 헬라어, 시리아어, 그리고 콥트어로 보존 되어 있다.
후기 비잔틴 시대까지 남아 있었던 신약 성서의 헬라어 문헌들 중에는 단지 몇 개 만이 요한계시록을 포함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헬라어 사본들은 그 본문이 주석의 일부로서가 아니면 비 성서적인 문헌들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
2. 시프리안에서부터 5세기까지의 라틴 교회에서의 신약성서
Novatian (약 250년 경)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열 세통의 바울 서신들 이외에는 단지 요한 1서와 요한계시록만을 "성경"으로 인용한다.
Jerome 은 서방과 동방의 경전 사이의 구분을 철폐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
Ambrosioster 라는 사람은 히브리서를 제외한 13통을 바울 서신들로 제한했으며, Pelagius 도 로마에서 약 400년경에 시도하고
4세기 후반에는 Piotoers 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베드로 후서를 사도적인 것으로 인용한다.
3. 동방의 국가 교회들 안에서의 신약성서
5세기 초에 생성된 시리다의 전승인 Doctrina Addai 가 전하는 바로는, Edess 의 교회를 설립한 사람이 자기를 고별 설교에서 후임자 Aggai 에게 훈계하기를 구약성서 이외에는 복음서, 바울 서신들, 사도행전 등 하나님의 진리가 담긴 것 이외의 다른 문서들이 교회에서 읽혓는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5세기 초에 감독안의 공동 노력에 의해서, 시리아 교회의 성경인, 소위 말하는 Peshitta 가 형성되고 히브리서를 포함한 14통의 바울서신들 다음에는 세 통의 일반서신들, 야고보서, 베드로 전서, 요한1서 등이 있었고, 요한계시록등 다른 것들은 제외되었다.
508년에 Mabby 의 감독 Phildyenus에 의한 공인개정 작업 - 즉, 신약성서의 새 번역 사업으로서, 소위 Philoxeniana - 과 616 년에 Harkel 의 Thomas 에 의한 수정 작업에는 요한2서, 3서와 벧후,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포함된다.
종교 개혁 이후의 서방교회에서의 정경과 정경에 대한 신약적 문제는 1442년에 플로렌스 공회에서 서부 시리아의 야곱파와 연합할 때에도, 아타나시우스의 정경은 다시 한 번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공인되었다.
Trent 공회는 구약 성서 전체와 신약성서 전체가 Vulgate 에 수록되어 있는 그대로 정경성이 있는 것이라고 선언하였으며 모든 개별적인 책들을 열거하였는데 그 가운데 히브리서는 바울의 14번째 서신으로 야고보서는 사도 야고보의 것으로 열거되었다. 공회는 전체 성서의 모든 책들이 같은 권위를 기지고 있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비록 신약 정경의 외적인 역사는 종결되었지만 계몽주의 신학 시대 이후로 정경에 대한 교회의 제한과 개신교 신학에 있어서 정경의 구속력 등이 타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Semler 시대 이후로 얻어진 바를 정경의 범위에 대한 여러 세기에 걸친 동요와 역사적 발전에 대한 통찰이야말로 정경의 이러한 형성의 가치와 합리성을 고려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경의 역사는 복음서와 사도문서들로 구성된 두 부분으로 된 정경이 교회의 삶속에서 2세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정경의 범위에 대한 고대 교회의 결정들은 대부분 사도성을 문제 삼았는데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사도성이라고 하는 기준도 역사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정경의 범위에 대한 현실적인 개방성과 사실상의 한계 설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성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7. 신약성서는 어떤 사본에 근거하고 있는가
신약성서의 원본에는 원저자 자필의 원본은 없다. 그러므로 모두 사본에 의하여 전승되어 있다. 신약성서의 원본의 재건에는 (1) 그리스어 사본, (2)고대 번역, (3)교부들의 저서 중에서 성서를 인용한 것과 언급한 것 등의 세 가지 사료가 주로 사용된다. 그중에서 그리스어 사본이 주요 사료가 되며, 고대의 번역과 교부들의 인용구나 언급, 그리고 그 밖의 단편들은 2차적인 사료가 된다. 그러나 번역도 양질이나 정본의 독법을 반영했을 경우는 그리스어 사본과 맞먹는다. 그리고 초기 교부들의 인용이나 언급은 중요한 도움이 된다.
그리스어 사본의 수는 5천을 넘으며, 이것은 다음 네 종류로 분류된다.
(1) 파피루스(사본수 81),
(2) 대문자 사본(267),
(3) 소문자 사본(2768), (
4) 일과서(2146)
신약성서의 주요 사본은 기원 2세기에서 10세기 사이의 것이 많이 남아있다. 대문자 사본으로 주요한 것으로는
시나이사본(4세기, 시나이산기슭 수도원에서 발견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대영박물관 소장).
바티칸사본(4세기, 바티칸 도서관 소장)
알렉산드리아사본(5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것, 대영박물관 소장)
에브라임사본(5세기 중기사본, 배자사본(5-6세기,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대조 판)등이 있다.
신약성경의 종교적 배경
리챠드 프란스(RICHARD FRANCE)
※앞에서 기술한 내용과 중복성이 있지만 다른 학자의 견해를 다시 첨가한다.
1.유대인의 종교
2.유대교의 몇몇 중요한 제도들
(1)성전
(2)회당
(3)율법과 유전
3.유대교의 분파와 당과 운동들
(1)바리새파
(2)사두개파
(3)엣세네파
(4)열심당
(5)묵시 문학 운동
4.메시야에 관한 소망들
5.흩어진 유대인들
6.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
7.사마리아인들
8.헬라인과 로마인의 종교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이셨다.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 탄생하였고 그 최초의 교인들 역시 유대인이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종교적 배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곧 유대인의 종교 그 자체이다.
1.유대인의 종교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들은 세례 요한이 나타나기 400년 혹은 그 이전에 활동하였다. 그때 이후로 오늘날까지 유대인의 종교는 일어서지 못하였다. 구약의 전통적인 종교는 유대교로 발전(어떤 이들은 전락하였다고 말할 것이다)하였다.
2. 유대교의 몇몇 중요한 제도들
(1) 성전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귀환한 유대인들이 건축한 간소한 성전(스룹바벨 성전)은 헤롯 대제(B.C. 40-4년)의 명령에 따라 지어진 웅장한 건물로 대체되었다. 헤롯의 성전은 B.C 19년에 착공하여 예수 당시까지도 준공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요2:20) A.D. 64년에 이르러 완공하였으나 불과 (2:20) A.D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놀라게 한 (막13:1) 것이 바로 최고급의 화려한 색깔들을 가진 거대한 돌들과 대리석과 황금으로 지어진 복잡하고도 위압적인 이 성전의 건물들이었다. 여기서 제사장들과 성전 수종자들의 집례로 수 세기에 걸쳐 내려온 제사의식과 경배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안토이나 요새의 로마 수비대가 성전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낱낱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행 21:31이하).또 이방인의 뜰(이 뜰에서 이방인이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죽임을 당하였다-행21:28-29: 엡2:14)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여움을 샀던 장사하는 자들(비둘기등 제물들을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성전세를 위한 환전상)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지붕이 가리워진 행각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무릇 자신의 뜻을 펴고자 하는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2)회당
성전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으나 각 지역사회는 그들의 회당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제사의식이 거행되지 않았다. 회당은 예배와 율법연구의 지방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안식일에는 회중이 모여 남녀 간에 자리를 따로 하여 앉아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고 해석하는 것을 듣고(눅 4:16이하) 또 기도식에 참예하였다. 그러나 회당은 예배처소 이상의 무엇이었다. 그것은 지역사회 학교요 공동체의 중심이요 또한 지역행정의 본부였다. 회당의 장로들은 그 지역사회의 행정당국자들이요 행정관들이요 공중도둑의 파수꾼들이었다.
(3)율법과 유전
이스라엘은 모세 이후로 율법을 항상 지녀왔다. 그러나 에스가 시대(B.C. 5세기, 선지자들의 율법에 대한 백성의 불순종이 초래한 직접적인 결과로 보았던 바벨론 포로생활이 풀려 고국으로 귀환하던 시대)이후로는 율법의 연구에 더 큰 강조점을 두었고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학자 백성"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 철저한 율법연구는 "유전"의 목록이 점차 비대해져가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그 유전들은 율법 못지 않는 구속력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는데까지 나아갔다. 율법과 유전의 직업적인 연구생들이자 전문가들인 서기관들은 모든 경우들에 대한 규례들을 정하여 둘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금지된 행위에는 39가지의 형태가 있었는데 추수하는 일과 타작하는 일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는 것도 역시 금지사항에 해당되었다(눅 6:1-2).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행 1:12,3분의 2마일 정도)은 허영된 최대치였다. 애석하게도 유전의 세목에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서기관들은 때때로 율법 자체의 보다 더 중요한 부분과 관심사를 잊어버리곤 하였다(막 7:1-13,3:4-5,마23:23).
3. 유대교의 분파와 당과 운동들
(1) 바리새파
이들은 종교적인 순수주의자들로서 B.C. 2세기의 "하시딤" (하나님의 충성된 자들)에서 발전하여 정치적인 일들보다는 종교적인 일에 전념해 온 집단이었다. 그들의 최고 관심사와 기쁨은 율법(물론 유전도 포함하여)을 낱낱이 지키는 데에 있었다. 이 표준으로 판단할 때 그들은 모범적인 유대인들이었다(빌3:5-6). 이 목적으로 그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였다. 그들은 십일조(하나님께 드리는 10분의 1)을 드리지 아니한 음식일 경우 바리새인 아닌 자로 더불어 함께 식사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필연적으로 이 같은 분리정책은 그들보다 못한 모든 사람들을 경멸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을 것이다. "너보다 더 거룩하다"는 그들의 태도는 바리새인이라는 이름을 오늘날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사랑과 자비에 앞서 엄한 율법준수를 요구하고 메마른 율법주의자와 혼합된 이 오만한 태도는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만들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정통신앙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범한 오류와 교만과 무정한 생활자세를 책망하셨다. 바리새인들의 영향은 그들의 숫자에 비하여 미미한 것이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로 유대교가 발전해온 것은 바로 이들의 노선을 따라서였다. 그들은 개인적인 경건과 엄한 윤리표준. 그리고 더 잘 알려진 가혹한 율법주의에 계속 강조점을 두어 왔다. 그들은 다른 유대인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존경은 받았다.
(2) 사두개파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당시 또 하나의 주요 분파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일찍이 정치적인 이점을 교활하게 이용하여 유력한 지위를 확보해 두었던 부요한 지주회(유대 최고 종교회의)에서 바리새파와 거의 대등한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었다(행23:6-10).대제사장들 중 상당수가 사두개파였거나 친 사두개파였다. 그들의 종교적인 입장은 자유주의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모세오경(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이외의 어떤 계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멸과 부활, 천사와 귀신들을 믿는 신앙과 같은 보다 최근의 관념들을 배격하였다. 이점에서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입장을 달리하였다(막 12:18,행23:8). 하나의 귀족적인 소수 공동체로서 그들은 일반 사람들의 지지를 별로 못 받았다.
(3) 엣세네파
상당히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이 "분파"는 1947년 이래 사회사본의 발견과 더불어 극적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사해사본은 사해에 가까운 광야에서 격리된 생활을 하던 한 은둔종파인 쿰란 사회의 도서관에서 나왔다. 비록 이 종파가 옛세네파였는지는 결정적으로 확인할 수가 없을지라도 분명히 유사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 종파는 달리는 알려지지 아니한 "의의 선생"에 의해서 필시 B.C. 165년경에 창건되어 A.D. 68년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유대 반란 사건 때에 파멸되었다. 예루살렘의 유대 지도자들을 포함한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다 그들의 원수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빛의 아들들"로서 "어두움의 아들과"의 최종적인 전투에서 마땅히 그들의 것이 될 승리와 통치권을 쟁취할 날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 동안에 그들은 성경연구에 골몰하고, 엄한 은둔 생활 훈련을 하며, 그들끼리는 서로 사랑하고, 밖에 있는 모든 자들은 철저히 미워하면서 그들 스스로를 지켜 나아갔다. 그들은 정성을 다하여 상세한 성경주석들을 펴내었고 구약의 모든 문구들과 구절들을 그들의 처지와 기대하는 것들에 적용하였다. 그들은 두 메시야 곧 아론의 (제사장적인) 메시야와 이스라엘의 (왕적인) 메시야-어쩌면 두 역할을 겸한 한 메시야-의 강림을 고대하였다.
쿰란 문서가 그 종파 자체에 있어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나 그것은 예루살렘의 유대교와는 아주 거리가 먼 하나의 금욕적이면서도 묵시적인 유대교의 경향이 또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여 주고 있다. 예루살렘의 유대교는 이 고립된 집단의 유대교보다도 훨씬 더 널리 퍼져 있었을 것이다. 1947년 이전 같았으면 우리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유대인들"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려 했을 것이나 이제는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한 금욕주의자 공동체의 수도원이었던 사해 근처 쿰란(Qumran)의 폐허. 로마군의 침입 위협을 인하여 그들의 장서였던 사해 사본들이 동굴들에 숨겨졌는데 1947년에 극적으로 다시 발굴되었다.
(4) 열심당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로마의 통치를 최대로 이용하려 했고 또 쿰란 사회가 하나님의 강권적으로 개입하여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리라는 꿈을 가졌던 반면에 많은 유대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구원을 쟁취하고자 하였다. 뒤에 와서 열심당으로 불리게 된 이 집단은 유대백성의 혁명군이요 자유의 투사들이었다. A.D. 70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사건을 초래한 대 반란의 불을 붙인 것이 바로 열심당이었다. 예수 당시에도 실패로 끝나긴 했으나 이미 산발적인 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었다.(행 5:36-37) 또 백성들도 반란을 일으킬 태세가 되어 있었다. 애국심에 불탄 열심당원들은 로마에 복종하는 것은 곧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라는 신앙에 호소하였다. 적어도 사도들 중에 하나는 이전의 열심당원이었다.
(5) 묵시 문학 운동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아포칼립스"(묵시)로 알려진 문학형식이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B.C. 2세기 이후로 팔레스타인에서는 많은 묵시문서들이 저작되었다. 그 문서들은 하나의 강력한 이원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곧, 선과 악, 하나님과 사단, 빛과 어두움은 서로 충돌하고 있어 도무지 화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 세계질서는 악의 세력의 지배하에 있으나 최후의 결전이 있게 될 것이며 그 후에는 판도가 바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반대자들을 물리치시고 모든 악을 영원힌 멸하실 것이며 새롭고 복된 백성이 모든 압제에서 풀려나 영광중에 통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자주 특별한 환상들을 통해서 상징적인 숫자들과 세심한 날짜와 연한 및 시대의 계산과 함께 전달되고 있다. 그리고 대개는 신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거의 절망에 빠진 백성에게 소망을 갖게 하는 메시지요, 유일하신 참 하나님 곧 이스라엘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호소하는 승리적인 메시지였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의 전형적인 묵시문서이다(하지만 요한계시록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오류 없이 기록된 에녹, 모세, 엘리야, 혹은 에스라와 같은 구약의 유명한 인물들에게 돌리고 있는 데 반하여 요한은 그 기록한 계시록에 자기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그 밖의 중요한 차이점은 유대의 묵시 문학가들은 과거의 역사를 그것이 마치 예언이나 되는 것처럼 기록하고 있으나 요한은 온전히 미래에 집중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4. 메시야에 관한 소망들
메시야에 관한 묵시문학의 엄청난 환상들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마음에 품고 있던 여러 가지 소망들 중 어느 한 가지만을 붙들고 있는 것에 불과하였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신18:15-19). 다시 올 엘리야(말4:5-6).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에게 승리와 평화와 영광을 가져다줄 사명을 띤 위대한 왕이요 용사인 다윗의 자손 등과 같은 구약의 여러 메시야적 인물들이 일반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방인들도 이 소망에 참예할 자리가 있는 것으로 보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소망을 배타적으로 자기만족만을 위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영적인 회복을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였고 로마에 대전투적인 승리로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메시야"(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는 말을 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인 독립에 대한 소망을 고무시킬 것이었으므로 예수께서 자신에 대하여 "그리스도"라고 칭하게 하는 데에 신중을 기하셨던 것은 놀랄 일이 못된다. 그는 자기들이 바라고 소망하던 것에 다 같이 동의하지 않았더라면 온전히 연합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눅 2:25)를 간절히 기다렸을 그러한 백성에게 오셨다. 그러나 아무도 그 위로가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하였다.
5. 흩어진 유대인들
이제까지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만을 생각해왔다. 그러나 기독교는 곧 팔레스타인 밖으로 퍼져 나갔고 거기서도 역시 유대인들과 첫 대면을 하였다. 적어도 B.C. 6세기의 포로시대 이후로 유대인들은 중동지역과 지중해 동편의 여러 나라들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A.D.1세기경에는 애굽에만 백만명에 달하는 유대 교포들이 살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유대인이 전 인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였고 대부분의 주요 도시들에 회당 (아니면 적어도 기도처, 행16:13)을 가진 유대인 집단촌이 들어서 있었다. 이들은 바로 흩어진(나그네) 유대인들이었다(헬라어로는 "디아스포라") 때로는 이들이 헬라파 유대인들로 지칭되었는데 이것은 약간 부당한 명칭이다. 알렉산더 대제의 정복과 함께 지중해 세계를 휩쓸고 그보다 더 먼 지역에까지 퍼져간 헬라문화와 사상의 파장인 "헬레니즘"은 로마제국의 문화에서도 여전히 그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또 팔레스타인의 보다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떠나 있던 이 흩어진 유대인들은 아무래도 헬라의 생활양식을 더 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의 구별된 종교와 문화를 포기하여 유대인의 신분을 저버렸다기 보다는 헬라사상과 접하고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고자 한 것이었다. 후대의 유대인 저작물들 중 상당수, 특히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온 저작물들(예:솔로몬의 지혜서나 필로의 저작물)은 헬라 철학의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철학의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학식있는 유대인 아볼로(행18:24)는 그가 기독교로 돌아오기 이전에 분명히 이 학파에 속하여 있었을 것이다.
6.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
유대인들이 부당하게 완고한 배타주의자들이라고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자주 있다. 사실 특히 흩어진 유대인들 중에는 이방인들에 대한 사명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방인들을 유대교에 입교시키기 위해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일이 있었다. 유대인의 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방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교지원자는 먼저 할례와 세례를 받아야 했고 안식일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규례와 같은 의식적인 법규들을 포함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지키기로 서약해야만 했다. 그는 사실상 자기 본래의 민족성을 버려야만 했다. 이같이 엄격한 단계들을 거쳐서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은 상당수에 달하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로마의 퇴폐적인 다신교와는 아주 대조적인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과 엄한 도덕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믿음과 사상에 자신을 일치시킬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완전한 개종의 절차를 밟는 과정 앞에서 멈추고 있었다. 상당수가 부자요 영향력 있는 관리들이었던 이 유대교 동조자들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혹은 "경건한 사람들"로 알려지고 있다(행 13:26,43,50,17:4).
사마리아인 대제사장 아므람(Amram) : 그는 오늘날 생존하고 있는 사마리아인 소수 공동체의 지도자이다.
7.사마리아인들
사마리아인들은 B.C. 722년 사마리아가 함락된 이후 그곳에 새로 이주시킨 이방 민족들과 피가 섞인 북방 이스라엘 왕국의 살아남은 백성들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유다와 협력한 적이 결코 없었고 느헤미야 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불화가 분명히 해결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세겜을 내려다보는 그리심산 위에 사마리아인의 성전을 건축한 것(요4:20)은 유대인들이 이 이단종교를 배척한 증거였다. B.C. 128년에 사마리아인의 성전을 파괴한 것은 유대인의 왕 힐카누스였다. 하지만 유대인이 그리하였듯이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그들의 권위는 모세오경(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구약성경은 인정치 않았다. 그들의 모세오경은 유대인의 그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많은 유대인들처럼 그들도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강림을 고대하였다.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증오와 멸시는 어떤 근본적인 신앙의 차이에서 온 것보다는 역사적인 측면과 인종적인 측면에서 온 것이 더 많았다.
8.헬라인과 로마인의 종교
헬라인의 전통적인 옛 종교는 인간들처럼 사랑하고 다투고 싸우는 남신과 여신들의 신전과 함께 실제로 로마의 유사한 다신교와 융합되어 있었다. 그것은 헬라와 로마 문화의 일부로 보존되었고 또 공적으로 장려되었다. 대부분의 헬라인과 로마인들은 여전히 그 옛 신앙에 공식적으로 동의하고 그 의식들에 참예하였으나 마음은 이미 그것들에서 떠나 있었다.
로마제국의 동부 지역에서는 이 신들이 지방 신들과 결합하여 때로는 땅을 지배하는 에베소의 다산의 여신과 헬라인의 아주 순결한 아데미(Artemis)여신이 동일시되는 것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로마의 다이아나 여신. 행 19:24이하) 루가오니아 지방의 쓰스와 허메(Zeus Hermes. 로마의 Jupiter와 Mercury,행 14:11이하) 숭배는 필시 그곳 지방 신들에 전통적인 헬라 신들의 이름을 붙인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새로운 종교 사상들이 일어난 것은 동방에서였다. 그중 하나가 황제숭배였다. 이것이 도미티안(A.D. 81-96년)이 자신을 "주와 신"으로 칭할 것을 주장할 때까지는 로마 황제들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장려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신약시대 전체를 통해서 아첨하는 신하들에 의하여 동방에서 자유롭게 행하여졌다.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도 헤롯 대제는 아구스도(Augustus,헬라어는 "세바스토스","경배를 받을자")황제의 명예를 위하여 사마리아의 이름을 "세바스데"로 개칭하였고 또 그곳에 아구스도의 신전을 지었다.
보다 개인적이고 감동적인 믿음을 원하는 자들은 신비종교들에 빠져들었다. 헬라의 신비적인 요소들-엘류시스의 신비나 오르퓨스의 신비-이 서방에 알려진지는 오래였으나 로마제국의 영토 확장과 함께 애굽(이시스와 오시리스/세라피스)과 페르시아(미드라스)와 그 밖의 동방 여러 곳에 퍼져 있던 유사한 신비종교들이 차이가 있었다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일정한 가입절차를 밟아서 입교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일제의식에 참예시키지 않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의식들은 자주 신(페르세폰, 오르퓨스, 오시리스, 그리고 그 밖의 신들)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신화에 중심을 두었고 모든 입교자들이 다 참예하는 연극을 통해서 그 신화가 재연되곤 하였다. 그들은 공식적인 국가의 종교가 지닌 냉랭한 지성주의와는 아주 다른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개인적인 헌신의 정신을 불러 일으켰다.
점성술과 복술, 마술, 마귀숭배, 그리고 그 밖의 신비적인 관습들 역시 동방종교의 매혹적인 요소들로서 종교에 어떤 실재성과 실제적인 효력을 부여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신약의 서신 서들이 저작될 때 즈음에는 뒤에 가서 "영지주의"로 총칭된(A.D. 2세기) 수많은 종파들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세부사항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으나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기본 사상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이 사상에 의하면 하나님이 물질로 만물을 창조하실 수 없었고 또 그의 아들이 그 물질세계 안에서 육신의 몸을 입으실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세상사이의 전반에 걸쳐서 종속적인 존재들을 대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물질세계의 악을 함께 나누고 있었으나 가능한 신의 불꽃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이 구속받기 위해서는 하늘에 근원을 둔 지식(헬라어는 그노시스)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같은 견해들은 환상적인 신화들에 표현되어 있었고 또 신비종교들의 경우에서와 같이 영지주의의 여러 종파들의 초보자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바울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 당시의 세상은 "범사에 종교성이 많았다"(행 17:22). 사람들은 헛된 신화가 아닌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신앙을 원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구하고 참되고 실제적이며 만족을 주는 종교로 인도하는 길을 간절히 찾는 세상이었다.
그림설명 / 최초의 완역성서는 옥스퍼드의 학자 존 위클리프와 그의 후계자들의 번역본 이며 이 필사본은 1420년경에 번역된 신약성서로 오늘날 현존하는 170권 중 의 하나.
큐(Q) 자료
'자료'를 뜻하는 독일어 Quelle의 첫머리 글자로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수록되어 있으나 마가복음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바, 주로 담화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는 가설적인 자료에 붙여진 명칭을 가리킨다. 이 자료는 '이중 전승', '어록자료', 'Redenquelle', '로기아' 등과 같은 명칭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이 자료는 복음서의 출처를 밝히는 두 자료 설에 있어서의 두 번째 문서를 이루고 있는데, 그 첫 번째 문서는 마가복음이다. 모든 학자들이 이 Q 자료를 단일 문서로 간주하고 있지는 않다. 다른 몇몇 학자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수록되어 있는 반면에 마가복음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자료들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학자들은 이 자료가(비록 전적으로 다 그러한 것은 아니라고 할 경우에)주로 마가복음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으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수록되어 있는 병행자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설화와 수난에 대한 자료를 거의 내포하고 있지 않고, 주로 산상수훈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은 예수의 단독적인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누가복음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의 교훈들을 참조), 마태복음보다는 누가복음에 그 순서가 더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Q 자료의 정확한 재구성, 본래의 용어, 마가복음이 이 Q 자료를 사용했는지의 여부 그리고 이 자료 안에 혼합되었을지도 모르는 다른 자료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많은 의견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Q 자료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매우 귀중한 증거자료로 간주되고 있다. 이 자료는 주후 50년경에 아마도 안디옥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서, 예수가 죽은 지 20년 안에 기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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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문서는 예수의 어록이라고 생각되는 구절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기독교 문서를 말한다. Q라는 명칭은 출처 또는 원천을 말하는 독일어 Quelle에서 유래했다. 주로 예수의 설교를 담은 어록 복음서일 것으로 보며 따라서 Q자료, Q 복음서, 어록, 예수어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관복음서 문제에 가장 널리 알려진 해법은 Q문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목차
1 공관복음서 문제
2 마르코/마가 우선 설
3 두 문서 가설
4 Q문서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이유
5 Q문서가 없었다고 생각되는 이유
1. 공관복음서 문제
이 부분의 본문은 공관복음 문제입니다.
공관복음서 중 마태 복음서와 누가 복음서의 많은 부분은 중복되어 있다. 예를 들면 마태 복음서 3장 7절-10절과 누가복음서 3장 7절-9절까지의 그리스어 판본은 단어 하나와 글자 하나만 다를 뿐 완전히 똑같은 단어와 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일치에 대한 문제를 공관복음서 문제라고 한다.
이 둘이 한 출처에서 왔다는 것이 설득력 있으며, 이러한 공통의 출처를 Q문서로 본다.
2. 마가 우선 설
마태 복음서에는 마태가 Q문서와 더불어 공동자료로 사용했다는 마가복음서의 90%가 인용 또는 마의 신학에 맞추어 편집되어 담겨 있으며, 누가복음서에도 마르코 복음서의 2/3가 들어있다. 또 마르코의 문체가 다른 공관복음서들보다 간단하다. 따라서 마가복음서가 가장 먼저 쓰였으며, 마태오와 루가 복음서가 마르코 복음서를 참조하였으리라고 본다. 마가 우선설이라고 한다.
3.두 문서 가설
성서학자들은 마태와 누가가 모두 50-60년 사이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가상의 문서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가상의 문서를 Q문서라고 부른다. Q문서라는 이름은 출처 또는 원천을 뜻하는 독일어 Quelle(한국어 읽기:크벨레)에서 왔는데, 성서학자들은 이 Q문서를 마태오와 루가가 마르코복음서와 더불어 사용한 공동자료라고 본다. 이를 두 문서 가설 또는 두 자료 가설이라고 부른다.
이의 변형인 네 문서 가설은 마르코 복음서와 Q문서를 바탕으로, 누가는 L문서(또는 예수에 대한 구전자료)를 따로 참조했고, 마태는 M문서(또는 예수에 대한 구전자료)를 따로 참조했다고 보는 것이다. 실례로 누가는 누가 복음서 서문에서 예수에 대한 자료를 자세히 살폈으며 이는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4. Q문서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이유
개신교 신약성서학자 김득중은 마태복음서에 나오는 종말에 대한 가르침이 Q문서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로마 가톨릭 성서학자 정양모는 그 자신이 어록이라고 부르는 Q문서가 50년에서 60년 사이에 형성되었으며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의 특정장절을 Q문서에서 가져온 문서라고 분석하였다. 특히 누가복음서는 Q문서의 내용을 통째로 가져와서 편집했다고 본다. 두 자료 설을 주장하는 신약성서학자들은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서와 공유 자료로 추정되는 Q문서를 자료로 사용하여 복음서를 썼다고 본다.
신약성서학자 브래드 스캇은 누가 복음서에 나오는 겨자씨 비유가 Q문서에도 있다는 점을 다른 복음서들과 신약외경인 토마복음서와 비교하면서 주장하였다.
5. Q문서가 없었다고 생각되는 이유
어거스틴 파러(Austin Farrer)마이클 고더(Michael Goulder), 그리고 마크 굳애이커(Goodacre)는 Q 문서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는 주장을 하였으며 마가복음이 먼저 쓰인 것은 사실이지만 누가복음은 마태복음을 참조하여 썼다고 주장했다. Q 문서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는 다른 학자들은 주로 마태복음이 가장 먼저 쓰였다고 보는 학자들이다. 이러한 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마태와 누가복음서가 동일하게 마가복음서의 내용을 보정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탄생과 부활에 대한 서술이 더해졌다는 것, 유사한 긴 설교들이 더해졌다는 것이 우연으로 보기엔 힘들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마태와 누가에 모두 추가적으로 등장하나 마가에는 없는 단어 또는 구절들이 347 개 있다. 이들은 마가와는 다르나 마태와 누가는 일치하는 "작은 일치"라고 불린다. 그중 198 개는 단어들이며, 82 개는 두 단어, 35 개는 셋, 16 개는 넷, 그리고 나머지는 그 이상의 단어들로 이루어진 구절들이다.
Q 문서의 존재 가능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토마 복음서의 발견이 "예수님의 어록"이라는 문서가 있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보나, 마크 굳애이커는 Q 문서는 단순한 어록이 아닌 서술 형태의 편집된 문서를 가리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Q 문서는 발견된 적이 없으며, 초대 교회 저작들에도 명확하게 Q 문서를 언급한 적은 없다.
윌리엄 파머(William Farmer)와 같은 학자들은 마태오가 가장 먼저 기록되었고, 그 다음 루가, 그리고 마르코는 마태오와 루가를 요약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스바흐(Griesbach) 가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두 개 출처 가설"을 따라 구상 된 Q 문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는 마태오가 가장 먼저 쓰였을 경우 루가는 Q 문서로부터 마태오를 통해서는 3 중의, 마르코를 통해서는 2 중의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존 웬햄(John Wenham)과 같은 학자들은 "어거스틴 가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마태, 마가, 누가의 순서로 복음서가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위의 그리스바흐 가설에 가깝다.
에타 린네만(Eta Linnemann)은 Q 문서 뿐 만 아니라 공관 복음에서 제기되는 문제들 또한 부정한다.
니콜라스 페린(Nicholas Perrin)은 도마 복음이 타티안(Tatian)의 "Diatessaron"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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