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에 대해서....
홍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
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창1:6-8)
윗구절에서 궁창이란 "펼쳐진 것" 혹은 "넓은 것"을 의미하는데 히브리어로는 "라키아"라고 한다.
궁창이라고 번역한 이유는 아마 하늘이 반구(半球)와 같은 형태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여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었다"는 것은 땅에 있는 물과 대기권의 물(구름, 수증기등)을 가르킨다.
그야말로 현대과학에서도 이론을 말할 수가 없는 정확한 논리인 것이다.
그런데 반기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은 주로 성경의 비과학성을 비난하고 반박하기 위하여 노아의 홍수를 예로 든다.
즉 지구상의 물과 대기권 안에 있는 수분(수증기와 구름)만으로는 지구전체를 물로 덮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성경구절의 "궁창"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창1:14)
이 창1:14에서의 궁창은 대기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궁창은 대기권을 벗어나 더 연장하여 태양과 달이 있는 우주까지를 포함한다.
다시 말하자면 전 우주에 포함된 수분은 지구를 덮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우주에는 얼음상태의 수분도 매우 많이 존재한다.
또한 성경은 매우 흥미있는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시편104편 6-9절이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시104:6-9)
오늘날 지질학자는 현재의 산과 골짜기에 대해서 먼 옛날보다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다고 말하고 있음은 우연일까?
만일 지질학자들의 학설과 같이 옛날, 창조시의 태초의 산이 그다지 높지 않았고, 골짜기가 깊지 않았다면 우주의 물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물이 지구전체를 덮을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우주의 물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남극과 북극지방의 얼음이 녹는다면 지구의 대부분이 물에 덮힌다는 이론적으로 충분한 학설도 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
혹간 자유주의 학자들과 무신론자들은 창세기7:11을 예로 들며 그 모순을 지적한다.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7:11-1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터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황당한 주장이라는 이야기이다.
즉 라키아라는 대기권상의 수증기와 구름과 우주의 수분이 아니라, 궁창의 샘과 하늘의 창이 터진다는 황당한 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은 그것은 실제적인 표현이 아니라, 시적 표현이라고 본다.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깊음의 샘이 터지며 하늘의 창이 열렸다는 것이.....!!
그러한 시적표현을 문제삼아 비논리니 논리니 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가 노래한다는 표현(시96:12)은 실제로 나무가 음에 맞추어 입을 열어 노래한다는 것인가?
왜 그러한 기록을 시적표현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본인은 그러한 성경적인 기록이 시적인 표현이라고 분명하게 단정을 지을 수 있다.
아래 성경구절은 비와 구름의 관계를 정확한 이론과 논리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습기로 빽빽한 구름 위에 실으시고 번개 빛의 구름을 널리 펴신즉(욥37:11)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렘51:16)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욥36:27)
다시 말하여 그 옛날의 성경기자들이 비와 구름의 관계를 정확히 논리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특히 욥기는 현재 모세나 솔로몬이 그 저자라고 할 견해가 있을만큼 연대가 오래된 기록이다.
욥기가 족장시대의 기록이라는 것은 모든 성경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성문서, 모세오경의 두 번째 책이다.
욥이 데라(205세)나 아브라함(175세)처럼 장수했다는 사실(욥42:16), "금 한조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케시타"가 야곱시대의 화폐단위였다는 점(창33:19), 욥이 성소나 제사장의 참석이 없이 개인적으로 제사를 드렸다는 점(욥1:5. 42:8), 야곱처럼 가축으로 재산을 평가하였다는 점(욥1:3, 42:12. 참고, 창12:16. 32:5)등은 욥기가 매우 오래된 년대를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되어진다.
즉 위의 욥기에서 구름과 수분과 비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정확한 논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즉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렸다는 것은 시적인 표현일 따름이며 그것을 비판한다는 것은 모든 시인들의 시적표현을 비과학적이니 비논리적이니 하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또한 성경은 대기권과 대기권의 연장이 우주까지 도달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실제로 수분(물)은 지구상의 물과 함께 대기권을 포함하는 우주에도 존재한다.
방주의 공간
그렇다면 과연 노아의 방주가 지구상의 모든 짐승을 다 실을 수가 있었을까?
이에 대한 견해도 매우 다양하고 많다.
그러나 길이가 삼백규빗이며, 넓이가 오십규빗이며, 그 높이가 삼십규빗이라는 방주는, 전문가들이 제시한 체적능력중 가장 작은 체적으로 계산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현재 미국철도에서 사용하는 표준가축운반차량 522대의 체적과 같다고 한다.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규빗, 광이 오십규빗, 고가 삼십규빗이며"(창 6:15).
규빗은 당시 성인 남자가 팔을 편 상태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하는 것으로 당시 사람들의 신장을 고려할 때 45센티미터가 될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따라서 방주의 크기는 길이 135미터, 폭 24미터, 높이 14미터가 되며 (규빗의 길이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소 오차가 있다) 이것의 길이는 축구장보다 좀더 길고, 폭은 축구장의 절반 가량, 건물 3층높이가 되는 배수량 2만톤의 거대한 배인 셈이다. 이 면적이면 현재 생존하는 생물체(포유류, 조류 등) 17,600여종의 암수 한쌍씩, 즉 35,200마리의 동물을 실어도 약 3분지 1만 차지하는 큰 면적이다. 따라서 방주는 동물들과 노아의 가족을 싣고 항해하기에 충분한 크기였다는 것을 알 수있다. 권위자들은 오늘날 약 일만팔천종 이상의 생물학적 종이 창세기의 종류(Kind)와 동일하다고 가정을 하여도, 방주의 용적이 그들을 수용할만한 충분한 체적을 가진다고 본다.
표준가축차량 한 대는 약 240마리의 양을 수송할 수 있다고 하는데, 150대의 차량으로는 양 정도의 크기의 짐승을 삼만육천마리를 수송할 수 있다고 하며, 이것은 방주 약 삼분지 일의 체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창세기의 짐승들은 양보다 훨씬 큰 짐승들도 있었으나, 양보다 훨씬 작은 곤충이나 새들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에, 표준 짐승의 크기를 양으로 계산하는 것은 솔직히 너무 크다고 한다.
또 생물학적인 종에 대한 구분이 태초에는 지금보다 적었음이 분명하다.
결론은 방주의 체적은 모든 짐승을 싣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역청
또한 역청(pitch)이라는 구약성경의 "코페르"라는 단어는 원래 "가리는 것"(Covering)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단어는 레17:11의 속죄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파르"(덮다)와 그 어근이 같다.
예수를 믿는 믿음의 "의"가 우리의 죄를 가리우며 덮는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서 추방될 때에, 하나님은 가죽옷으로 그들의 치부를 가리워 주셨으며, 구약의 희생제물을 바치는 제사는 당사자의 죄를 덮어주고 가리워 준다.
그리고 모세가 태어나 생명을 건지게 된 상자에도 그 역청이 발려져 있었다.
또한 방주라고 하는 히브리원어는 "테바"이다.
히브리어 "테바"는 상자. 궤짝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모세가 담겨있었던 상자도 역청을 바른 갈대상자였다.(출2장3절)
방주 역시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6:14)
노아의 방주 역시 구원을 상징하는 "생명을 구하는 배"였으며, 모세가 실린 상자 역시 이스라엘의 "생명을 구하는 상자"였으며 그 상자가 띄워진 것의 공통점은 "물"이었다.
물이란 성경에서 죄를 씻어내는 죄사함과 깨끗함을 상징한다.
역시 물로 세례를 받아 죄사함을 받는 구원이라는 배에 우리는 탈 수 있는 자격이 그 믿음으로 주
어진 것이다.
또한 노아의 홍수로 인한 심판은 모세가 건넜던 홍해에서 애굽군사들이 수장되었던 심판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도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노아의 방주제작기간
노아의 방주 제작기간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지만 많은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문제를 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120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홍수를 계획하신지 120년에 인간
의 날이 되리라는 것이지 노아의 방주 제작기간을 120년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
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이 구절은 사람의 수명을 120년으로 단축시킨다는 견해와, 120년 후에 노아의 홍수가 있게 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라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정통신학의 일반적인 견해는 후자인데, 그 이유는 홍수이후에도 사람의 수명이 120년 이상이었기 때문이다.(참고: 창11:10-31)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 제작기간이 120년이 되지 않음을 주장하는데, 그러나 어느 누구도 방주제작기간이 120년이라고 하지는 않으며, 다만 하나님이 홍수를 계획하신 것이 120년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살펴 보자...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홍수 5년 전에 죽게되고, 라멕을 낳은 므두셀라는 그 홍수가 나던 해에 죽는
다. (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세에 라멕을 낳고 칠백팔십이년을 더 산다. 즉 라멕은 일백팔십이세에 노아를 낳았으므로 노아가 육백세가 되던해에 므두셀라는 죽는다. 그리고 노아가 육백세때 홍수가 나게 된다.)
즉 노아의 아버지도 노아의 할아버지도 모두 홍수 이전에 죽는다는 것은 인류 조상의 새생명이 노아로부터 시작되어 바뀌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노아의 배를 완성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었는지를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성경적으로 볼 때에는........
홍수가 시작되었을 때는 노아가 600살이었다.(창7:6. 7:11)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 노아의 방주는 홍수 이전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홍
수를 계획하신다.(창6:5-8)
일단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 진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이후라는 것도 상식이다.
그런데 창세기 5장 32절은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을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하자.
노아가 600세 때에 홍수가 났으니 600세가 되기 이전에 방주가 완성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렇다면 언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느냐는 시점이 문제인데.....
성경은 노아가 500세 때에 세 아들을 낳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1년 안에 (500세 때에) 동시에 세 아들을 낳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셈이 노아가 496세 때에 낳았고, 함은 498세 때에 낳고, 야벳은 500세 때에 낳았다는 가설의 추측도 해 볼 수가 있다.
물론 셈을 500세 때에 낳고 함은 502세 때 낳고 야벳은 504세 때에 낳았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런데 창세기 11장 10절에는 셈이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삭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셈이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이라고 되어 있으니 홍수로부터 98년 전에 셈이 태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셈은 노아가 502세 때에 태어 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5장32절을 정확하게 보면......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이다.
즉 오백세에 낳았다는 것이 아니고 "오백세 된 후"라고 되어 있다.
즉 502세 때에 낳은 것은 오백세 "된 후"인 것이지요.
그렇게 계산을 하면 성경은 전혀 모순이 없는데.....
문제는 언제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것을 명하셨는가인데 애석하게도 그것을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알지 못하는 더 복잡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창세기 5장 30-32절을 보면, 노아의 아버지였던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595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
았다는 것을 유의하여야 한다.
즉 노아의 아버지인 라멕은 홍수가 시작되기 전 바로 오년 전까지 생존하여 있었다는 것이다. (노아가 600세때 홍수가 났으므로)
라멕은 노아를 낳고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
라"라고 이미 예견했다는 점이다.(5:29)
그렇다면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일에 동참했을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지만 상식적으로 동참하였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심에 있어서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 갈것"을 말씀하셨다.(6:18)
그렇다면 셈과 야벳과 함이 이미 부인이 있을때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것을 말씀하셨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셋이 최소한 20세가 되었을 경우를 계산해 낼수 있고 그렇다면 노아가 502세때에 셋을 낳
았으니 노아가 522세라고 계산(물론 추측이지만)해볼 때에 방주를 만들었던 시간은 최소 78년이라
는 계산이 나온다.
망내아들이었던 야벳이 부인이 있었다는 것은 아마 그보다 더 시간이 앞당겨지지 않을까 모르겠다.
자 이제는 하나의 모순이 나온다.
하나님이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년이 되리라고 하신 것이 인간의 수명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
반적인 정설이니까 말이다.(창6:3)
대개 그 120년은 노아의 방주가 120년 후에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본다.
그러나 이것을 알자.
하나님이 6장 3절의 말씀을 하신 후의 120년이라는 이야기이며, 하나님이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신 날로부터 120년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와 타락을 아시고도 약 40년을 인내하시고 참으셨으며 끝내는 약 80
년 간을 노아에게 방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을 주셨으며 마침내 노아와 그 가족 외에는 모두 깨
끗히 쓸어 내셨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을 다시 모세의 120년 생애와 비교하면 어떨른지!!!
모세가 애굽 생활을 한 40년을 제외하면 80년이 된다.
그렇다면 이 기간이 방주제작기간을 추리하여 본 기간과 매우 흡사하다.
하나님은 인간이 육체가 됨으로서 하나님의 신이 영원히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의 날이 120년이 된다고 했다.
그것은 분명히 인간의 수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120년 후에 하나님의 신이 떠나겠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며, 120년 이상을 산 사람이 홍수 이후
에도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있기 때문이다.
홍수는 세례(침례)를 상징한다.
그 육체의 소욕(죄)를 물로 씻음으로 구원(방주)를 탈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성령님은 수면 위를 운행하셨던 분이었으며 그 히브리적 원의미는 "물을 품다"이다.
성령님이 품고있던 궁창의 물이 쏟아져 내림으로 죄는 씻겨지고 없어지게 된다.
이제 전에 창조된 노아의 윗사람들은 모두 죽고 노아의 새 시대에 사람만이 생명의 방주를 타게 된
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또한 이스라엘을 구하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작은 방주에 실려 떠내려간 모세에게 주어진다.
모세는 120년의 나이에 죽게되고 마침내 그들의 후손은 가나안이라는 땅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은 결국 목이 굽은 백성이 되어 하나님과 단절이 되고 만다.
그들은 또 육체가 되고 만다.
이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다.
이제는 죄사함을 주심으로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다.
그 분이 바로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이셨으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이셨다.
죄를 씻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 죄사함은 예수를 믿음으로서 의인이라고 칭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무죄판결로 인하는 것이며 우리는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거듭나며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죄씻음과 구원의 언약을 받게 된다.
모든 물이 빠지고 난 후에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여 졌다.(창8:1)
그 바람이란 용어가 히브리어의 성령 "루아흐" 였다.
창세기 1장 2절의 수면 위를 운행하던 하나님의 신도 "루아흐"였으며, 그 루아흐가 "나의 신이(루
아흐가)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노아라는 이름이 곧 안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방주는 믿음의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
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
음을 쫓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11:7)
분명히 하나님은 홍수를 계획하시고 즉각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벧전3:20)
홍수 이야기에는 십칠일이 반복하여 나온다.
이월십칠일에 홍수가 시작되었고(창7:11), 칠월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된다(8:4).
홍수가 시작된 지 아홉달 후인 십일월 십칠일에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을 물고 돌아왔다.(8:5-11)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을 제공하여 준다.
유대인력의 칠월은 종교력의 첫달로 정해졌고, 그리고 유월절은 그달 십사일로 정해졌다(출12:2)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후 삼일 후인 유대력 칠월십칠일에 부활하셨는데, 그 날 구원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도착한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짐승의 숫자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
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
케 하라(창6:19-20)
윗문장은 암수 한쌍을 방주에 실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다음 문장은 암수 일곱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창7:2-3)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창7:9)
그러나 아무런 모순이 없다.
윗 문장에서 암수 일곱은 정경한 짐승과 공중의 새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왜 정결한 짐승과 공중의 새를 일곱씩 취하라고 하셨을까?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창8:20)
정결한 짐승이란 곧 제사의 제물로 드릴 수 있는 것을 가르키며, 성경에 기록된 그러한 짐승은 그렇게 많지 않다. 즉 모든 짐승은 일반적으로 암수 한쌍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아와 그 가족이 홍수가 끝나자 처음 행하였던 일은 곧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일이었다.
즉 제물로 바치는 정결한 짐승이 암수 한 마리씩만 있었다면 곧 그 종류의 대가 끊어지게 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제물을 남겨 두신 배려를 갖고 계셨던 것이다.
혹간의 사람들은 암수 한쌍과 암수 둘의 숫자가 다르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개역성경의 번역이 좀
다를 뿐이며, 히브리어 원어는 위의 창6:19. 7:1. 7:9 의 세구절의 단어가(쉐나임) 모두 같으며 둘 혹은 한쌍을 가르키는 단어이다.
즉 정확하게 짐승의 숫자를 말하자면, 모든 짐승은 암수 한쌍, 둘이며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는 일곱이 되어진다.
방주를 본 사람들 - 19세기
성경의 기록대로 방주가 아라랏산으로 올라가 머물렀다면 지금의 아라랏산에서 발견되지 않을까? 이 질문은 매우 오래전부터 있어왔었으며, 방주에 대한 기록은 주전 275년 바벨로니아 시대부터 로마시대, 중세시대, 초대교회를 거쳐 15세기 마르코폴로에 이르기까지 여러 소설, 역사, 교회의 설교와 강론에서 자주 언급되어온것이 사실이다. 19세기에 들어서 아라랏산을 탐험한 사람들의 자취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아라랏산 정상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Friedrich Parrot박사로 독일사람이다. 1829년 그는 열악한 상황에서 부족한 등산장비로 5160미터 정상을 정복하였다고 알려져있으나 방주를 목격하지는 못하였다. 1856년에는 영국의 무신론 과학자 세명이 방주를 발견하고 기독교의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위하여 방주에 불을 질렀고, 자신들의 길을 안내하였던 안식교인들의 목숨을 위협하면서 방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위협하였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러나 다행히 방주는 만년설과 얼음강에 파묻혀 있고, 오랜 기간 보존된 나무가 석화(돌처럼 딱딱해지는 현상)되어 불에 타지않고 보존되었다고 한다.
1876년 영국 대사 James Bryce등이 수목한계선(나무가 자랄수있는 산의 최고 높이) 위에서 오래된 나무조각을 발견하는 등 방주의 목격자가 점차 늘어나자, 1883년 터어키 정부는 노아 방주가 아라랏산에 있는것이 분명하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방주를 본 사람들 - 20세기
"방주 나무는 매우 딱딱하고 방주내부에는 이끼가 끼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고 1907년에 설명한 미국인 George Hagopian이 20세기 최초의 방주목격자이다.
1916년 제정 러시아 공군기 조종사인 로스코비츠키 소위는 방주 탐헝에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는 비행기로 방주위를 선회하며 방주 앞부분 4분의1 이 물속에 4분의3 은 눈 속에 묻혀 있음을 보고 이것을 짜아르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황제는 150명의 군대를 두조로 편성하여 아라랏산에 파병하였고 이들은 한달동안 등반하여 방주에 도착, 완전한 측량을 실시하였는데, 다음은 그가 황제에게 보낸 보고서의 일부이다.
"방주는 수백개의 작은 방들로 나뉘어져있었고 높은 천정을 가진 매우 큰 방들도 몇개 발견되었다. 커다란 방들은 보통 그 방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목재로 만들어진 울타리를 가지고 있었다. 울타리의 두께는 때로는 2피트가 되기도 하였는데 마치 코끼리보다 10배 더 큰 동물을 가두는데 사용된 것처럼 보였다. 다른 방들은 오늘날 가금류 전시장에서 보는 것과 같은 수많은 우리들이 열을지어 나란히 있었는데 우리의 앞은 줄 대신 작게 가공된 철 막대들을 사용하여 막혀져 있었다. 모든 것은 왁스류의 페인트로 두껍게 칠해져 있었고 숙련공의 장인정신은 높은 수준으로 발달된 문명의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체에 사용된 나무는 서양 협죽도로 사이프러스의 일종이며 겉에 페인트가 칠해져있을 경우 전혀 썩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시간을 얼은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탐사대는 배의 한쪽 면에서 없어진 목재가 재가 되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목재들은 산 꼭대기로 끌러 올려져 한개의 방을 갖는 작은 성전을 짓는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안에는 희생제를 위해 사용된 것과 같은 번제단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창세기 내용과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첫째로 동물들을 가두기 위한 시설인데 가금류(닭, 칠면조 등)와 덩치큰 동물(예를 들면 공룡 같은)을 가두는 우리를 관찰한 것이며, 둘째로 나무의 재질과 공사 마무리 방법 등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령한 내용 그대로이며, 셋째로 창세기 8장 후반부와 9장 전반부에 설명된 노아와 가족들의 번제를 드리기 위해 방주의 나무를 사용하였다는 것이 가능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홍수 이후 아라랏산의 나무들은 거의 뿌리째 뽑혀 떠내려갔을 것이며, 혹 나무를 구하더라도 물에 젖어서 잘 타지 않았을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방주를 발견한 사람중 가장 유력한 증거를 찾은 사람은 프랑스 사업가 Fernand Navarra이다. 그는 방주 사진을 촬영했을 뿐 아니라 얼음 강에 잠긴 방주에 로프를 타고 내려가 나무 일부를 떼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방주조각은 이집트 농무성, 카이로박물관 고고학부, 스페인 산림연구소 등에 보내져 고고학 및 산림학적 방법으로 그 나이가 추정되었는데 그 나무의 나이는 당시로부터 5000년 내지 6000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노아홍수의 시기와 성경적으로 유사하며, 혹 연대 추정이 부정확하더라도 잣나무로 밝혀진 그렇게 오래된 나무가, 수목한계선위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노아방주의 실체를 증명하는 유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방주를 목격하거나, 사진을 촬영하고, 자료를 수집한 사람들은 현재까지 통털어 약 200명에 다다르며 이들의 증언에 따른 방주의 모양, 보존상태 등은 그림에서 보는바와 같이 서로 잘 일치하고 있다. 또한 아라랏산은 수차례 인공위성에 의해 촬영되었으며 방주목격자들의 증언과 일치하는 방주모양이 여러차례 촬영되기도 했다. 그리고 1987년부터는 터어키이세 아라랏산의 방주가 있는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하여 도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계속되는 방주탐험
아라랏산 주변(현재의 터어키, 이란, 러시아)에 살던 부족들을 과거에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이라 불렀으며 이들에게는 방주주위에 악령이 있어 방주로 접근하는 사람에게 재앙을 내린다는 오랜 전설이 있어서 이 지역을 탐험하는 사람들을 막거나, 길 안내를 꺼리는 전통이 있어서 방주 탐험을 어렵게 한다고 한다. 또, 방주는 수천년동안 산속에 묻혀 있어서 그 형태가 변해서 배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고, 아라랏산 정상부근의 만년설에 완전히 묻힐경우 찾아내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주탐험을 어렵게하는 것은 방주가 아라랏산 어디에 있는지 성경을 비롯한 어느 자료에도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주 탐험은 현재도 계속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