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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뱀은 종신토록 흙을 먹는가(창 3:14)?

그랄~~` 2015. 8. 12. 14:18

뱀은 종신토록 흙을 먹는가(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 3:14)


 



 


뱀이 종신토록 흙을 먹을 것이라는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 신학도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온 적이 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뱀을 저주하시면서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뱀이 흙을 먹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얼핏 듣기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으므로 그 흙은 땅에 있는 흙이 아닌 사람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질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 해석이 맞는 것일까.”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으므로 그 흙은 “땅에 있는 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흙으로 창조된 사람”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질 것이라는 해석은 일종의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무조건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타락 이전의 환경과 생태에 관해 우리 인간은 정확하게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본문을 통해 우리들이 알 수 있는 일반적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뱀은 다른 짐승들보다 더 저주를 받았다.
(2) 뱀은 배로 다니게 되었다. 이것은 뱀이 저주 이전에는 배로 다니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다녔음을 암시한다. 고대 벽화 가운데는 이런 뱀의 저주 이전 상황을 웅변적으로 묘사하는 그림들이 많이 남아있다. 물론 이것이 실제적 사실을 형상화한 것인지 아니면 성경의 기록이 전파되어 가는 과정에서 변형되어 나타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3) 뱀은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다.


 


뱀은 흙을 먹는가?


바로 여기서 종신토록 흙을 먹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상황을 말하는 가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흙을 먹는다는 것을 굳이 음식물로서의 흙을 먹는다고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기는 하다. 일부 창조과학적 해석 시도이다. 인간(Homo)도 흙(Humus)이므로 때로는 흙을 먹는데(심지어 살기 어렵던 옛날에는 일부 특정한 흙으로 실제 죽과 빈대떡을 해먹었다. 지금도 강원도 등 일부 지역에 그 어려웠던 시절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뱀이라고 어찌 흙을 먹지 않겠는가. 당연히 뱀은 기어 다니며 먹이를 구하면서 흙을 핥으며 산다. 뱀의 입천장에는 ‘제이콥슨 기관’(Jacobson's organ)이라고 불리는 기관이 있다. 이것은 코와 더불어 뱀이 냄새를 맡는 것을 돕는 기관이다. 뱀은 포크처럼 갈라진 날름거리는 혀의 양끝으로 흙먼지를 입안으로 말아 올린다. 그런 다음 그 흙을 입 안에 있는 제이콥슨 기관으로 넘겨준다. 그런 식으로 냄새를 맡고 뱀은 그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다시 혀를 재사용 할 수 있도록 깨끗케 한다. 그렇다면 정말 성경은 뱀이 과연 이런 과정으로 흙을 먹으며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것이 그리 만족할 만한 설명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뱀의 주식은 분명 흙이 아니라 설치류 등 특정한 육식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뱀은 단순한 뱀이 아니다


그럼 창세기 3장이 알려주려는 참뜻은 무엇일까? 이 구절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본문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뱀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나하쉬”(Nahash)는 뱀을 나타내는 다른 단어 “탄닌”(Tannin)이나 “사랖”(Saraph)을 대신할 수 있는 단어이다. 뱀이 된 지팡이에 관하여 “나하쉬”는 두 번, “탄닌”은 세 번 사용되고 있다(참조 출 7장). 여기서도 이 두 단어는 완벽히 호환(互換)되고 있다. 문제는 탄닌이 단순한 “뱀”이 아니라 성경에서 큰 물고기(바다 괴물), 바다 뱀, 고래, 용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누가 바다뱀이나 고래나 큰물고기나 용을 흙을 주식 삼아 살아가는 짐승이라 하겠는가? 즉 이 뱀은 흙을 핥는 단순한 뱀이 아니다. 그리고 그 “탄닌”(사단 상징)은 바로 창세기 3장의 뱀(사단 상징)에 정확하게 대응되는 단어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뱀이 나타내는 핵심은 흙을 먹는다는 단순한 생물학적, 창조과학적 해석에 집착할 문제가 아닌 신학적(성경 해석)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칼빈도 창세기 3장의 본문을 그런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즉 이 구절은 과학적 해석에 집착할 문제가 아닌 ‘여자의 씨’(창 3:15)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구속사의 연속선에서 해석하는 것이 바른 해석법이라 할 수 있다. 창세기 3장 14절은 단순히 흙을 먹게 된 육체적 짐승으로서의 뱀의 저주 문제가 아니라 ‘뱀(마귀)과 여자’, ‘뱀의 씨와 여자의 씨’, ‘뱀과 여자의 씨’라는 3중의 원수 관계 속에서 오실 메시아에 의한 은혜 왕국의 완성을 기대하는 최초의 복음(Protevangelism)의 연속선상에서 비로소 바르게 해석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할 때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창 3:15; 창 25: 26; 시 56:6)를 상하게 하며,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창 3:15; 수 20: 22-25; 삼하 22:39; 시 91:13; 시 110:6)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구절까지 자연스럽게 해석이 가능해진다. 만일 뱀이 흙을 먹는다는 데 집착하면 뱀은 예수님 육체의 발뒤꿈치를 물어야 하고 예수님은 파충류인 생물학적 뱀의 우두머리를 찾아가 결투를 벌여 머리를 상하게 해야 할 판이다.


 


뱀이 나타내는 참 의미는!


이제 뱀이 나타내는 참된 의미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뱀이 어떤 식으로든 흙을 먹는 것은 사실이나 창세기 3장의 이 뱀은 단순한 뱀이 아닌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그 뱀이요, 용이나 바다 괴물과도 호환되는 상징적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의 ‘종신토록 흙을’ 먹는다는 표현이 흙을 주식(主食)으로 삼게 될 거라는 의미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흙을 먹는 데 그 참 의미를 둔 게 아니라 수치와 저주의 상징적 표현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본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던 자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리라고 예언하였다(미 7:17). 창세기 3장의 뱀이 흙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 것처럼 미가서의 예언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정말 여호와를 조롱한 사람들은 뱀처럼 흙을 먹고 살 것이라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성경해석자는 당연히 없다.


 


이사야 선지자는 반대로 뱀이 흙을 양식으로 삼는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오히려 축복이 됨을 묘사하고 있다(사 65:25). 언젠가 흙을 먹고 사는 것조차 뱀에게 복이 되는 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흙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관련된 상징적 단어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신 책이 아니라 온 열방의 민족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메타포를 담은 책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도 그래서 비유로만 말씀하셨다 하지 않는가! 복음은 단순하나 신앙은 그리 단순하거나 가볍지 않다. 그것을 제대로 깨닫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지혜이다.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출처 : 솔라그라시아
글쓴이 : 삼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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